교통 정보통신의 눈부신 발달로 삶의 기본 틀과 세시 풍속이 아주 발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단지 ‘편의성’만을 기준으로 할 때, 예전보다 말 그대로 ‘살기 좋기 좋은 세상’이 된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이제는, 그 머나먼 서울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갈 수 있게 되었고, 각종 편리한 가전제품 덕에 살림살이에 매달려야할 자잘한 일손도 많이 덜게 되었습니다. 특히 거미줄 같은 인터넷 망을 통한 사이버 세상의 등장으로 삶의 방식에 정말 혁명적인 변화가 생겼습니다. 이젠 새해 인사까지도 인터넷 메일과 이동전화 문자메시지로 대신하는 이들이 차츰 늘어나고 있습니다. 인터넷이 제공하는 무한한 사이버 공간은 현대인들에게 현실과는 전혀 다른 삶의 자리를 제공했고, 이 가상공간을 점유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세대 차가 뚜렷하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사이버 공간을 여행하다 보면 그야말로 ‘지구촌’이라는 말이 실감날 때가 많습니다.
봉건시대의 유물로 자주 욕을 먹는 ‘군사부일체(軍師父一體)’라는 말이 있습니다. “임금과 스승과 부모는 똑같이 존귀하다”는 이 말을, 그 사회에서 “결코 잃어서도 안 되고 무시되어서도 안 되는 소중한 권위는 어떤 방식으로든 보존되어야만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큰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제가 어릴 적만 해도, 부모님은 말할 것도 없고, 학교에서 날마다 뵙는 선생님들 앞에서, 어린 가슴 속 은밀한 곳의 친밀한 느낌 한 쪽에 늘 조심스런 마음이 있었습니다. “길을 걸을 때는 선생님보다 앞서 가지 말라”거나, “몸의 그림자라도 선생님께 드리우지 말라”거나, “선생님 곁에 서더라도 바람 불어오는 쪽에는 서지 말라”는 등, 어르신들의 이러저러한 주문과 까다로운 가르침이 참 많았기 때문입니다. 어린 마음에 때로는 번거롭고 귀찮게 느껴지기도 했던 그 몸가짐의 법도가 50년 넘게 제 삶을 제법 반듯하게 붙들어 주고 있었다는 생각에 지금은 그런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물론 신세대 부모들이 들으면 그야말로 펄쩍 뛸 곰팡내 풀풀 나는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만, “옛 것은 모두 다 글렀고 새 것은 다 좋은 것”이라는 논리가 어차피 통하지 않을진대, 요즘 세상에 한 번쯤은 진지하게 귀담아 들어둘 가르침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인터넷을 통해 사이버 공간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보면 무슨 까닭인지 모르지만 요즘 사람들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심성이 너무 많이 황폐해 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심지어는 사랑과 은혜의 복음을 선포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독교 계통의 사이트 안에서조차 낯뜨거울 정도의 원색적인 욕지거리와 비방과 삿대질이 난무하는 것을 봅니다. 욕지거리로 시작해서 저주로 끝을 맺는 댓글들 속에도 나름대로 그럴싸한 논리가 깔려 있는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려옵니다. ‘어른’은 어디에도 없고, 걸핏하면 엉겨붙어 별 것 아닌 ‘손톱 힘’ 자랑이나 하는 철부지 아이들만 옹기종기 모여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우리 인간 사회가 살벌한 동물의 왕국이 되지 않으려면, ‘살기 좋은 세상’이 참으로 ‘살 맛 나는 세상’이 되려면, 어른은 어른답고 아이는 아이답게 사는 법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만 할 것 같습니다. (2005. 2. 14.)
* CBS 라디오 에세이 방송 원고
* 이광우 목사의 CBS 라디오 에세이 : 매주 월요일 밤 11: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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