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 것도 살지 않지만/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 마리/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로 시작되는 김민기 작사/작곡의 ‘작은 연못’이라는 통기타 유행가를 열심히 따라 부르며 지냈습니다. ‘환경 노래’로 흔히 분류되는 이 노래는, 따스한 마음으로 주변을 보살피며 함께 살아가지 못하고 개인의 이기심만 충족시키려다가 함께 망하는 우리네 공동체의 비극을 예리하게 풍자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김민기씨의 묵직한 중저음 목청으로, 때로는 양희은씨의 맑고 또랑또랑한 소리로 젊은이들의 가슴을 여지없이 파고들었던 노래를, 50대 중년이 된 지금도 서늘한 가슴으로 가끔씩 다시 챙겨 부르곤 합니다. 오늘날 ‘웰빙’이라는 말로 압축되는 지나친 ‘자기 사랑’이, 서로 보듬고 함께 살아야할 이 세상을 몹시도 추하게 무너뜨리는 탓인지도 모릅니다.
엊그제 등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어느 애견가게가 눈에 띄어 진열장 앞에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유리 진열장 안쪽에서 애견 미용사들이 열심히 애완견의 털을 다듬고 가꾼 다음 여러 가지 액세서리로 정성껏 애완견의 모양을 내는 것을 한동안 들여다보며 잠시나마 생각이 많았습니다. 잔뜩 복잡해진 세상, 사람들의 취향과 기호가 다 다르기 때문에 아주 작은 동물들에게도 인간의 사랑을 베푸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겠지만, 작은 애완동물 하나를 소중히 여기며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세상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미국에 태어난 고양이가 아프리카에 태어난 사람보다 더 잘 산다”고 한 어느 사회학자의 씁쓸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웃도는 세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절대 빈곤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형제 자매들이 아직 많고, 휴전선 너머 북녘엔 추위와 굶주림에 떠는 동포들도 있습니다. 해저 지진과 엄청난 해일로 삶의 소망이 완전히 끊긴 채 흐느껴 울 힘조차 없이 아파하는 서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형제 자매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애완견의 털을 지극 정성으로 매만지는 것만큼만 있다면 세상은 좀 더 따스하고 포근해 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널드 B. 크레이빌은《뒤집힌 왕국(The upside-down Kingdom)》이라는 책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 설명하면서, “한 쪽 눈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구원 행위를 보고, 다른 한 쪽 눈은 불행하게 지내는 사람을 보게 하기 위해서” 사람의 눈이 두 개로 만들어졌다고 했습니다. 내 생명이 내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선물로 받은 생명의 힘으로 수고하여 얻은 모든 것 역시 엄밀히 말하면 내 것은 아닙니다. 크레이빌의 지적처럼, 공평하신 하나님의 나라가 끝내 ‘뒤집힌 왕국’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들의 가치체계가 볼썽 사납게 뒤집혀 있기 때문입니다. 애완동물은 지극 정성으로 사랑하면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사람은 도무지 돌볼 마음이 나지 않는 우리들의 뒤집힌 사회, 깊은 산골 작은 연못에서 서로 다투다 죽어버린 붕어들이 깔깔대며 비웃을 일입니다. (2005. 1. 24.)
* CBS 라디오 에세이 방송 원고
* 이광우 목사의 CBS 라디오 에세이 : 매주 월요일 밤 11: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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