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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3] 성탄의 기쁨과 슬픔과 사랑 이야기 (마2:1,2,11) - 대구 새 비전 교회


제가 2008년 1월 13일 28년 동안 목회하던 강변교회에서 은퇴한 후 그 다음 주일부터 지난11년 동안 주일마다 전국의 작은 교회들을 주로 방문하면서 설교하고 있는 데, 오늘 대구 새 비전 교회에 처음으로 와서 오전과 오후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설교를 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김형식 목사님과 성도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김형식 목사님이 오늘 오전 11시 예배시간에는 성탄에 대한 설교를 하고 오후 예배 시간에는 북한 선교에 대한 설교를 해 달라고 부탁을 해서 오늘 오전 11시 예배시간에는 성탄에 대한 설교를 하고 오후 예배 시간에는 북한 선교에 대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성탄의 기쁨과 슬픔과 사랑 이야기” 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지닌 아기로 탄생하신 성탄은 이 세상에서 가장 기쁜 날인 동시에 가장 슬픈 날이었습니다. 성탄의 밤에 천사가 나타나서 목자들에게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게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10,11) 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허다한 천군이 이렇게 찬양을 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눅 2:14). 성탄은 세상에서 가장 기쁜 날이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구주가 탄생한 날이기 때문이고, 우리들에게 평화를 가져 온 날이기 때문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탄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날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셨는데 아무도 하나님의 아들을 맞이하지도 환영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모습으로 아기로 태어나려고 했을 때 태어나실 곳이 아무 곳에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눅 2:6,7). 여관에도 병원에도 집에도 아기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곳은 아무 곳에도 없었습니다. 이 보다 더 슬프고 더 비극적인 일은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결국 아기 예수님께서는 말과 소들이 여물을 먹는 구유에 태어나셨습니다. 성탄의 슬픔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아기 예수님께서는 태어나시자마자 애굽으로 피난을 가셔야만 했습니다. 헤롯왕이 갓 태어난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마리아와 요셉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저는 6.25 피난 시절 중학생 때 대구에서 살았는데 크리스마스 때 교회의 친구들이 너무 즐겁게 노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성탄은 슬픈 날인데 너무 즐겁게 노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한 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아기로 탄생하신 성탄은 이 세상에서 가장 기쁜 날인 동시에 가장 슬픈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성탄의 날은 가장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이 나타난 날이었습니다.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는데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러 먼 길을 찾아왔습니다. 아기 예수님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가장 귀중한 선물들을 준비해 가지고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기 위해서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먼 길을 찾아왔습니다.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마 2:2).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유대인들이 아니었습니다. 히브리 종교를 믿던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이방 종교를 믿던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동방에서 온 세 박사들은 카스파(Caspar)와 멜키오(Melchior)와 발사살(Balthazar) 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스파”는 아프리카를 상징하고, “멜키오”는 유럽을 상징하고 “발사살”은 아시아를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동방에서 온 이방인 박사들이 별의 인도함을 따라서 아기 예수께서 탄생하신 베들레헴 마구간으로 와서 무릎을 꿇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성탄 선물로 드렸습니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 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마 2:11). 이것이 성탄의 날에 나타난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의 사건이었습니다.





저는 오늘 또 하나의 감동적이고 슬프도록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해서 먼 길을 떠났던 네 번째 박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그 박사의 이름은 알타반(Artaban) 입니다. 제가 유치부 어린이였을 때 평안북도 신의주 제이 교회에서 성탄절 날 연극을 보았는데 지금도 그 연극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군인들이 어느 집에 들어가서 아기를 빼앗아 가려고 하는 데 알타반 박사가 그 군인에게 보물을 주며 아기를 빼앗아가지 못하게 하고 그 아기를 엄마에게 돌려주던 장면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연극의 마지막 장면은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습니다. 백발의 노인이 되어 쓸어져 가는 알타반 박사에게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성이 있었습니다. “알타반아! 알타반아!” 라고 부르시는 예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가슴이 찡하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어릴 때 받은 감동은 평생 지속됩니다. 제가 유치부 어린이였을 때 들었던 알타반 박사에 대한 이야기를 오늘 여러분들에게 하려고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동방 박사 세 사람과 그리고 성경에 나오지 않는 네 번째 박사 알타반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동방에 박사 네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카스파와 멜키오와 발사살과 알타반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재산이 많은 부자들이었고 학문이 많은 박사들이었고 메시야를 기다리던 종교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구약 성경을 연구하면서 메시야가 태어날 때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야가 태어날 때 새로운 하나의 별이 나타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알타반은 페르샤에서 다른 박사들은 바벨론에서 새로운 별이 나타나기를 살피기로 했습니다. 별이 나타나면 네 사람이 10일 후 한 곳에 모여서 각기 준비한 보물을 가지고 유대 예루살렘으로 가서 새로 태어난 메시야께 경배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알타반 박사는 재산을 다 팔아 사파이어와 루비와 진주를 사 가지고 밤마다 지붕에 올라가 밤 하늘을 바라보며 별이 나타나기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캄캄한 밤 하늘에 푸르고 붉은 색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별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흥분한 알타반 박사는 머리 숙여 감사하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별이다. 왕이 오셨다. 나는 왕께 경배하러 가야 한다.”


알타반 박사는 가장 빠른 말에다 안장을 얹고 말 위에 올라가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시여 우리를 지켜 주시옵소서. 우리들을 죽음에서 건지시고 왕께 경배하게 하시옵소서.” 그리고 약속 장소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충성스러운 말은 열흘 동안 달려서 바벨론 교외 어느 약속 장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달리던 말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몸을 떨기 시작했습니다. 알타반 박사가 말에서 내려 앞을 바라보았을 때 별빛에 희미하게 비치는 길가에 누어있는 한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온 몸에 질병의 흔적이 가득한 한 사람이 피를 흘리면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알타반 박사가 그에게 다가 갔을 때 그 죽어가는 사람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습니다. “날 좀 살려 주십시오.” 그러나 알타반 박사는 그곳에 머무를 시간이 없었습니다. 병자 한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다가 그의 전 생애를 바쳐 준비한 일을 그르칠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죽어가는 병자에게 미안한 생각을 하면서 말에 오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날 좀 살려 주십시오” 라고 호소하며 죽어가는 사람을 그대로 버려둘 수도 없었습니다. 알타반 박사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진리와 자비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옳은 길로 인도하시옵소서. 진리의 길입니까 자비의 길입니까?” 결국 알타반 박사는 자비의 길을 택하면서 죽어가는 사람에게로 가까이 갔습니다. 그는 겉 옷을 벗고 가지고 온 약들을 병자의 몸에 바르며 병자를 치료하기 시작했습니다. 병자는 의식을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알타반은 병자를 말에 싣고 어느 주막까지 데리고 가서 주막 주인에게 그 병자를 보살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리고 가지고 가던 보석 중 하나인 사파이어를 주막 주인에게 주었습니다. 빵과 포도주와 약초도 모두다 그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말을 타고 가던 길을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말은 최고의 속도로 빨리 달렸지만 약속한 장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약속 시간이 훨씬 지난 뒤였습니다. 동방 박사 세 사람은 그곳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곳에는 글귀만 부쳐 있었습니다. “우리는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먼저 떠납니다. 우리의 뒤를 따라 사막을 건너 오시오.” 알타반 박사는 너무 기가 막혀 땅에 주저 앉고 말았습니다. “음식도 포도주도 약초도 여비도 없이 지친 말을 타고 어떻게 사막을 건넌단 말인가?” 한숨을 쉬면서 알타반 박사는 다시 낙타와 음식과 여비를 장만했습니다. 그리고 유대를 향해 먼 사막 길을 떠났습니다.


알타반 박사가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 동방 박사들은 이미 그곳을 떠난 뒤였습니다. 베들레헴 거리는 한산했습니다. 아니 음산하고 삭막했습니다. 헤롯의 군인들이 새로 태어난 아기들을 잡으려 집집을 뒤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알타반 박사는 대문이 열려 있는 어느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 집에는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두려워하며 떨고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알타반 박사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삼일 전에 동방에서 박사 세 사람이 베들레헴에 와서 마리아와 요셉과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의 예물을 드리며 경배하고 다시 동방으로 돌아갔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날 밤 요셉은 마리아와 아기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난을 떠났다는 것이었습니다. 헤롯 왕이 새로 태어난 아기들을 모두 잡아서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때 밖에서 군인들의 떠드는 소리와 여인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습니다. “헤롯의 군인들이 아기를 죽인다” 리는 여인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아기를 안은 그 여인은 온 몸을 떨고 있었습니다. 알타반 박사가 밖으로 나왔을 때 군인들이 집으로 달려 들어왔습니다. 군인 장교가 소리를 지르며 알타반 박사를 밀치려고 했습니다. “이 집의 아기를 잡아내라” 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나 알타반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알타반의 손에는 커다란 루비 보석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이 보석을 주려고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소. 장교는 이 보석을 받고 다른 곳으로 가시오.” 군인 장교는 보석의 찬란함에 놀라며 보석을 받아 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 가자 이 집에는 아기가 없다.” 알타반 박사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오, 하나님이시여, 나의 죄를 용서하소서. 왕께 드릴 보석을 사람을 위해서 또 썼습니다. 내가 왕의 얼굴을 볼 자격이 있습니까?” 바로 그때 기뻐서 우는 여인의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당신은 나의 애기를 구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축복하시고 평안을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어린 아기의 얼굴에는 평안과 기쁨의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알타반 박사는 다시 왕을 만나기 위해 애굽으로 먼 길을 떠났습니다. 애굽의 곳곳을 찾아갔습니다. 피라미드 근처들을 뒤졌고 알렉산드리아 도시의 거리들도 뒤졌고 히브리 랍비들을 만나서 그들의 조언을 듣기도 했습니다. 히브리 랍비들은 메시야는 부자들 가운데 있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과 병자들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알타반 박사는 가난한 사람들을 찾았습니다. 그는 병자들이 사는 곳을 찾았고 재난 당한 사람들이 사는 곳을 찾았고 노예 시장들도 찾았습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폈습니다. 알타반 박사는 경배의 대상은 찾지 못했지만 섬김의 대상들은 너무 많이 찾았습니다. 수 십 년이 지나는 동안 알타반 박사는 배고픈 자들을 먹였고 벌거벗은 자들을 입혔고 병든 자들을 치료했고 갇힌 자들을 위로했습니다.


알타반 박사가 왕을 찾기 위해서 집을 나선지가 어느덧 33년이 지났습니다. 그의 머리는 어느덧 백발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디엔 가 살아 있을 그의 왕 메시아를 찾아 애굽과 온 세상을 헤매었습니다. 결국 알타반 박사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는 유월절 절기 때였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어디론 가를 향해 떼를 지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알타반 박사는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한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처형 장면을 구경하려고 성문 밖 골고다 언덕으로 갑니다. 강도 두 사람이 처형을 당하고 그 가운데서 나사렛의 예수가 처형을 당하지요. 나사렛의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그리고 평화의 왕이요 메시야라고 자처했지만 우리의 종교 지도자들은 그를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이 사람의 말이 알타반의 가슴에 천둥처럼 들려왔습니다. “왕이 처형을 당하다니!” 알타반의 가슴은 큰 소리로 거세게 뛰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이제라도 왕을 뵈어야 한다. 나는 이제 왕을 구해야 한다. 하나 남은 보석과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나의 왕을 구해야 한다.”


알타반은 군중들과 함께 골고다 언덕을 향해 사력을 다해 달려 갔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군인들이 한 젊은 여자를 끌고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알타반이 잠시 서서 그 여자를 바라보았을 때 그 여자는 군인들의 손을 뿌리치고 알타반 박사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할아버지, 저 좀 살려 주세요. 저의 아버지도 박사였는데 죽었어요. 아버지가 진 빚 때문에 저는 지금 노예로 팔려가요. 할아버지 박사님, 저 좀 살려 주세요.” 알타반 박사는 또 한번 영혼의 고뇌를 경험하며 떨었습니다. 그가 바벨론에서 경험했던 고뇌, 그가 베들레헴에서 경험했던 고뇌를 다시 한번 경험하며 떨었습니다. 왕께 드리려고 준비했던 두 개의 보석인 사파이어와 루비를 왕 대신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했는데 이번에도 또 그런 잘못을 범해야만 하는가? 그의 영혼은 깊은 고뇌로 떨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노예로 팔려가는 소녀를 내 버려 둘 수는 없었습니다. 알타반 박사는 결국 가슴속에 깊이 간직해 두었던 진주 보석을 꺼내었습니다. 그리고 소녀의 손에 쥐어 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딸아, 이것이 네 몸 값이다. 이것이 내 마지막 보석이다.” 알타반 박사가 이렇게 말하고 있을 때 하늘이 어두워지고 땅이 흔들렸습니다. 집들이 흔들렸습니다. 소녀는 진주 보석 때문에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군인들은 무서워서 도망을 쳤습니다. 알타반은 무너진 성벽에 기대어 기진 맥진해서 쓰러졌습니다. 알타반의 인생 여정은 마지막 종점에 도달하고 있었습니다. 왕을 만나려던 그의 한 평생의 추구는 이제 실패로 돌아가는 듯 했습니다. 또 한 번의 지진이 땅을 흔들어 댔습니다. 무너져 내린 돌들이 알타반 박사의 몸을 뒤 덮었습니다. 알타반은 신음하듯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하나님, 용서하시옵소서. 저의 죄를 용서하시옵소서.” 바로 그때 저녁 노을의 하늘로부터 고요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알타반아! 알타반아!” 알타반은 너무 놀랐습니다. 알타반의 옆에 기대어 있던 구출된 소녀는 알타반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닙니다, 주님. 제가 언제 주님께서 배고프셨을 때 음식을 대접한 일이 있었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헐 버셨었을 때 옷을 입혀 드린 일이 있었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병드셨을 때 제가 치료해드린 일이 있었습니까? 주님, 제가 아니었습니다. 언제 주님께서 옥에 갇히셨을 때 제가 가서 도와 드린 일이 있었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팔려가실 때 제가 구해 드린 일이 있었습니까? 주님, 제가 아니었습니다. 33년 동안 저는 저의 왕 되시는 주님을 찾았지만 저는 당신의 얼굴을 뵈온 적도 없었고 당신을 섬긴 일도 없었습니다.” 하늘로부터 다시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그 소리는 알타반 박사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알타반아! 알타반아!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니라. 너는 나를 만났고 나를 도와 주었고 나를 섬겼노라.” 알타반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기쁨의 빛이 가득했습니다. 그는 마지막 긴 평안의 숨을 쉬고 고요히 눈을 감았습니다. 그의 인생 여정은 끝났습니다. 왕을 위해서 준비된 그의 보물들은 왕 그 분에 의해서 기쁘게 열납되었습니다. 결국 네 번째 동방의 박사는 왕을 만났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가장 감격적인 방식으로 왕을 만났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그리고 영원에서도 그의 왕을 가장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방식으로 만났습니다. 저는 유치원 아이 때 들은 “알타반아! 알타반아!” 라고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이 지금도 감동적으로 들리는 듯 합니다. 사실 저는 알타반 박사에 대한 설교를 강변교회에서 28년 동안 목회할 때 4번 그리고 은퇴한 후 지난 11년 동안 12 번이나 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 합니다. 성탄은 가장 기쁜 날이고 가장 슬픈 날인데 가장 감동적이고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 나타난 날입니다. 동방의 세 박사들처럼 그리고 네 번째 박사인 알타반 박사처럼 아기 예수님께 보석 같은 아름다운 사랑의 예물을 드린 사람들이 이곳 저곳에 많이 나타났습니다. 스데반 집사님과 서마나의 폴리캅 감독은 순교의 피를 만 왕의 왕이신 예수님께 보석 같은 아름다운 사랑의 예물로 드렸습니다. 성 프랜시스와 손양원 목사님은 나환자 사랑과 원수 사랑을 만 왕의 왕이신 예수님께 보석 같은 아름다운 사랑의 예물로 드렸습니다. 길선주 도사와 이기풍 깡패는 회개의 눈물과 헌신과 전도와 봉사와 사랑의 삶을 만 왕의 왕이신 예수님께 보석 같은 아름다운 사랑의 예물로 드렸습니다. 한경직 목사님과 장기려 박사님은 모든 종류의 불쌍한 사람들에게 편 사랑과 도움과 희생의 삶을 만 왕의 왕이신 예수님께 보석 같은 아름다운 사랑의 예물로 드렸습니다. 지금도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도움이 필요한 불우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귀중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이곳 저곳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님 사랑과 나환자 사랑과 원수 사랑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드린 손양원 목사님의 나환자 사랑에 대한 고백을 읽어드리려고 합니다. “주여 애양원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애양원을 참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을 주시옵소서. 주께서 이들을 사랑하심 같은 사랑을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나는 이들을 사랑하되 나의 부모와 형제와 처자보다도 더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차라리 내 몸이 저들과 같이 추한 지경에 빠질지라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만약 저들이 나를 싫어하여 나를 배반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저들을 참으로 사랑하여 종말까지 싫어 버리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내가 이들을 사랑한다 하오나 인위적 사랑, 인간적 사랑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람을 위하여 사랑하는 사랑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고 주를 위하여 이들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보다는 더 사랑치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내가 또한 세상의 무슨 명예심으로 사랑하거나 말세의 무슨 상급을 위하여 사랑하는 욕망적 사랑도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만 그리스도의 사랑의 내용에서 되는 사랑으로서 이 불쌍한 영육들만을 위한 단순한 사랑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나의 남은 생이 몇 해 일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몸과 맘 주께 맡긴 그대로 이 애양원을 위하여 충심으로 사랑케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너무너무 귀중한 사랑의 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방 박사 네 사람들의 이야기는 2000년이 지난 21세기를 사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심각한 도전을 던져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도대체 한 평생 삶의 목적을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우리들은 과연 왕을 만나고 왕께 경배하는데 우리들의 삶의 목적을 두고 있습니까? 우리들은 과연 우리들의 가장 귀중한 예물을 우리들의 왕께 드리고 있습니까? 우리들은 과연 우리들의 왕께서 기뻐하시는 가난한 자들과 병든 자들과 갇힌 자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동방의 네 박사들은 인생의 목적을 왕을 만나 왕께 경배하는데 두었습니다. 왕께 가장 귀중한 보물을 드리는데 두었습니다. 알타반 박사는 가난하고 병들고 갇힌 자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데 인생을 모두 바쳤고 십자가의 주님을 만나는데 그의 마지막 생명을 바쳤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인생의 목적을 어디에 두고 살고 있습니까? 만 왕의 왕 되시는 주님을 저와 여러분들의 삶의 중심에 모시고 가장 귀중한 예물을 드리며 주님을 경배하는 데 저와 여러분들의 삶의 목적을 둘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가난하고 병들고 갇힌 자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데 저와 여러분들의 삶과 인생의 목적을 둘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불쌍히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와 축복이 대구 새 비전교회 성도 여러분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마 2:11을 다시 읽고 찬송가 348장 “나의 생명 드리니 주여 받아 주소서”를 함께 부르겠습니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마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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