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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11] 주일 성수와 예배의 신앙 (출31:12-17, 마12:8, 행20:7) - 용인 사랑을 그리는 교회


제가 개척해서 28년 동안 목회하던 강변교회에서 2008년 1월 13일 은퇴한 다음 지난 11년 7개월 동안 주일마다 전국의 작은 교회들을 주로 방문하면서 설교를 하고 있는데 오늘 용인 사랑을 그리는 교회에 처음으로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설교를 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홍만표 목사님과 성도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교회들을 방문할 때마다 담임 목사님들에게 무슨 제목의 설교를 하면 좋겠냐고 묻곤 하는데 홍만표 목사님이 오늘 “주일성수”에 대한 설교를 하면 좋겠다고 해서 오늘 “주일 성수와 예배의 신앙”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죄와 허물밖에 없는 죄인중의 괴수인 저를 아직까지 버리시지 않고 작은 심부름꾼으로 써 주시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모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감옥의 길로 그리고 순교의 길로 걸어가시는 저의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을 바라보면서 즉 믿음을 지키고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평안과 안일을 버리고 감옥과 순교의 길로 걸어가시는 저의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저도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을 몸에 지니고 하나님께 정성껏 예배 드리면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고난과 슬픔과 아픔의 길로 걸어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또한 평양 서문밖교회 주일학교 시절 이인복, 명선성, 최병목 선생님들의 사랑과 가르침은 받으면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는데 그 때 이인복, 명선성, 최병목 선생님들께서 “주일성수의 신앙”과 “새벽기도의 신앙”과 “순교신앙”을 저의 생각과 마음과 몸에 심어주셨습니다. 제가 10살 11살 때 평양 제 오 인민학교에 다녔는데 일요일에도 학교에 오라고 명령했지만 저는 2년 동안 일요일에 한 번도 학교에 가지 않고 교회에 나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교회에 있으면서 정성껏 예배를 드렸습니다. 물론 월요일마다 학교에서 벌을 받았고 때로는 정학을 당했지만 저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결국 저는 “주일성수의 신앙”과 “새벽기도의 신앙”과 “순교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평양을 떠나 서울로 가기를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사동 탄광에서 중노동을 하고 계시는 아버지를 찾아가서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남쪽으로 가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한참 쳐다보시다가 “그러면 가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도 남쪽으로 가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너무너무 사랑하시던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는 저에게 “나는 너 없이는 못살아” 라는 말씀도 자주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남쪽으로 가겠다고 말했을 때 어머니는 울면서 그러면 가라고 말씀했습니다. 저는 오늘의 제가 된 것은 물론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와 사랑과 축복으로 되었지만 저를 늘 귀중하게 보시면서 칭찬해주시던 아버님의 순교신앙과 저를 너무너무 사랑하시던 어머님의 희생적인 사랑으로 되었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주일성수의 신앙”과 “새벽기도의 신앙”과 “순교신앙”을 지니고 살기 위해서 11살 때인 1948년 8월 사랑하는 부모님과 동생들을 평양에 두고 캄캄한 밤에 38선을 뛰어넘어서 남쪽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몇몇 어른들과 함께 캄캄한 밤에 38선을 넘게 되었습니다. 한참 걷고 있는데 갑자기 서서 손을 들지 않으면 총을 쏘겠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북한 경비군인들에게 발각이 된 것이었습니다. 어른들은 모두 그 자리에 섰습니다. 그러나 저는 설 수가 없었습니다.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남쪽을 향해서 혼자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40여분 정도 달린 것 같았습니다. 조금도 무섭지 않았습니다. 약간의 스릴도 느꼈습니다.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는 순수한 믿음을 몸에 지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언덕을 넘고 파밭을 달리고 목에 차는 강을 건너서 남한 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어느 초가집에 들어갔는데 그날 밤 38선을 넘어 온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있었습니다. 청년 한 사람이 저보고 어디로 가냐고 물었습니다. 서울로 간다고 대답을 했더니 누구와 같이 가냐고 물었습니다. 저를 데리고 오던 사람이 붙잡혔기 때문에 모른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바로 그 청년이 저를 기차에 태워 서울에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저는 그 청년을 “천사”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때 저를 안위하시고 의의 길로 선한 길로 인도하신 것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서울 중구 을지로 3가 7번지에 살고 계시던 이모님을 만나게 되었고 이모님 집에서 편안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물론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1,2년 동안 밤마다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아가 된 슬픔과 아픔을 지니게 된 저를 너무 많이 축복해주셨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게 하셨습니다. “주일성수의 신앙”과 “새벽기도의 신앙”과 “순교신앙”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학교들인 서울중학교 서울고등학교 서울대학교에서 공부하게 하셨습니다. 사실 38선을 혼자서 뛰어 넘은 사건은 저의 삶과 운명을 바꾸어놓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가장 좋은 길로 걸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 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시작합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님들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을 지니고 살다가 죽었고, 기도에 전력하는 “새벽기도의 신앙”을 지니고 살다가 죽었고, 모두를 사랑하고 섬기는 “사랑과 섬김의 신앙”을 지니고 살다가 죽었고, 일편단심 죽도록 충성하는 “순교 신앙”을 지니고 살다가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길선주 목사님, 이기풍 목사님, 최권능 목사님,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들께서 그런 길을 걸어가셨다고 생각합니다.

청교도들과 한국교회의 신앙의 선배님들은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을 가장 귀중한 신앙으로 여기며 “주일성수”를 철저하게 했는데, 오늘의 한국교회는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을 거의 포기한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교회의 목회자들과 신자들이 주일 날에 예배가 아닌 개인적인 사적인 일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식도 공부도 여행도 운동도 오락도 아무 거리낌 없이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일 저녁 예배를 폐지한 교회들이 너무 많습니다. 한국교회의 일부 목회자들과 교수들은 철저한 “주일성수의 신앙”을 “율법주의로” 간주하기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기가 막히는 일입니다. 저는 여러 가지 종류의 신앙 중에서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이 가장 귀중한 신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성부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창조하시고 구원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이 안식일 날 하나님께 예배의 제사를 드리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찬지 만물을 창조하고 일곱째 날에 쉬셨는데 인간들도 일곱째 날에 안식하게 하셨고 복을 받게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 20:8-11). 성부 하나님께서는 또한 오래 전에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시는 목적이 하나님을 섬기는데 즉 하나님께 예배의 제사를 드리는데 있다고 출 4장부터 10장까지 9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출 4:22,23).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출 5:1).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7:16).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8:1).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8:20).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9:1).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9:13).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10:3). 출애굽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독립하여 자유를 누리며 잘 사는데 있다기 보다는 하나님께 예배의 제사를 드리는데 있다고 거듭해서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구원의 은혜와 축복을 받은 신자들이 제일 먼저 하여야 할 일이 “예배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는데 있다고 분명하게 지적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그런데 “예배의 제사”의 중심은 구약시대에는 “안식일 성수”의 예배의 제사였고 신약시대에는 “주일성수”의 예배의 제사였습니다. 구약 성경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분명하고 강하게 명령했습니다. “인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출 20:8). “안식일을 더럽히는 자는 반드시 죽일찌니”(출 31:14, 35:2, 민 15:35).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령하신 이유와 목적은 인간을 복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창 2:3).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 20:10,11).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신 5:10). “안식일 성수”의 명령은 구약시대에 그친 것이 아니고 신약시대에 이어졌습니다. 구약의 안식일 제도는 신약의 주일을 준비하는 예표였습니다. 구약의 안식일 제도는 구약 시대에 잠깐 동안 주어진 제도가 아니라 “대대로” 지킬 “영원한” 언약이고 표징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했습니다.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 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 하라”(출 31:13,16,17).

성자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시고 안식일의 완성자시라고 말씀했습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마 12:8). 성자 예수님께서는 안식 후 첫날인 주일 새벽에 부활하셨고 그리고 첫 주일 이른 새벽에 사랑하는 제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위로와 기쁨과 함께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저녁 즉 첫 주일 저녁에 부활의 주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 열 명에게 나타나셔서 위로와 기쁨과 사명과 함께 성령을 부여하셨습니다. 한 주간이 지난 둘째 주일 저녁에는 도마를 포함한 열 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20:27) 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성령이 강림하신 날도 예루살렘 교회가 탄생한 날도 안식일 다음 날인 주일날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안식 후 첫날인 주일날 함께 모인 성도들과 종일 밤중까지 말씀을 전하며 예배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 쌔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행 20:7). 부활의 주님께서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던 사도 요한에게 나타나신 날도 “주의 날” 곧 주일이었습니다(계 1:10).

신약 성경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신약의 주일”은 영원한 “천국의 안식일”을 예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천국의 인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히 4:1,11). 앞으로 하늘에서는 목회와 구제와 봉사와 전도와 선교 등 중요한 일들은 모두 사라지고 맙니다. 구원함을 받은 지상의 모든 사람들이 천사들과 함께 그리고 생물들과 함께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돌리는 “천국의 예배”만이 영원토록 계속하게 된다고 사도 요한이 증언했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찌어다 네 생물이 가로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계 5:13,14).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찌로다 아멘 하더라”(계 7:9-12). 이것이 하늘에서 드려지는 영원한 “안식일 예배” 또는 영원한 “주일 예배”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볼 때 구약과 신약 성경이 가르치는 “안식일”과 “주일”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중요한 틀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안식일”을 통해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며 축복하셨고, 신약시대에는 “주일”을 통해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며 축복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하늘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며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세세토록 돌리게 하신다고 말씀했습니다. 구원함을 받은 성도들에게 있어서 지금 가장 귀중하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축복 받은 일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면서 하나님께 “예배의 제사”를 드리는 일입니다.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은 성경의 중심적인 신앙이고 기독교의 핵심적인 신앙입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킬 것을 분명하고 강하게 가르칩니다. 초대교회 교부들은 모두 안식일을 지키지 말고 “주일”을 지키라고 가르쳤습니다. 2세기경의 문서인 디다케와 2세기의 변증가 져스틴은 “주일”을 지키며 예배 드리라고 가르쳤습니다.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는 321년 칙령을 내려 일요일에는 휴식할 것을 명했습니다. 장로교회의 신앙고백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주일성수”를 철저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가르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세대의 모든 사람을 묶는 적극적이고 영속적인 도덕적 계명을 주시므로 일곱 날 중 하루를 안식일로 정하여 자기를 위하여 거룩하게 지키도록 제정하셨다. 이 날에는 그들의 세속적 직업과 오락에 대한 일이나 말이나 생각으로부터 온 종일 쉬어야 할 뿐 아니라 공적 내지 사적 예배행사와 자선의 의무를 수행하는데 모든 시간을 바쳐야 한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 예배모범은 “주일성수”를 강조하면서 주일을 “종일토록”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고 규정했습니다. 1920년대 한국교회에 큰 부흥 운동을 일으켰던 김익두 목사님은 “주일 범한 사람들은 구약시대 같으면 다 때려 죽일 사람들입니다. 지금은 때려 죽이지는 않지만 죄는 죄입니다” 라고 설교했습니다. 저는 성경의 가르침과 교회사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즉 기독교의 역사적 전통을 무시하고 현대적 유행에 영합하며 “주일성수”를 무시하는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무서운 죄를 범하는 정신 나간 사람들이고 귀신들린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이지만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 11살 때 아버지와 어머니와 고향을 떠나 38선을 넘어서 남한으로 왔는데 그것이 하나님께서 저에게 베푸신 망극하신 은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이별의 슬픔과 아픔이 가득한 한 평생을 너무 많이 축복해 주셨습니다. 저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이지만 “주일성수”를 저의 일관된 신앙과 삶의 원리로 삼게 되었습니다. 저는 귀국 후 박정희 정부의 주일성수 방해 정책을 비판하면서 “주일성수의 신앙”을 강조하다가 군사정부의 미음을 사서 1977년 11월 20일 아침 남산 중앙정보부의 지하실로 붙잡혀 가서 밤 늦게까지 다음날 이른 새벽까지 심문과 협박을 극심하게 받은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단 한 번도 불안하거나 두려워한 일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심문하는 두 사람을 책망하기도 했고 충고하기도 하고 권면하기도 했습니다. 저를 심문하던 두 사림이 잠깐 쉴 때 제가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무슨 글을 쓰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다음 주일 설교를 준비하고 있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내가 여기서 언제 나갈지 모르는데 설교 준비는 무슨 설교준비냐고 대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내가 나가고 나가지 않는 것은 당신들의 문제가 아닙니다. 당신들은 다음 주일 교회에 와서 내 설교를 들어야 합니다.” 새벽 두 시쯤 되어서 잠을 자라고 했습니다. 지하의 방이었는데 창문도 없고 책상 하나만 있었고 이불도 없었습니다. 저는 책상에 들어 누어서 아침까지 잠을 아주 잘 잤습니다. 아침에 저를 깨우더니 집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저는 올 때는 좋은 차에 태워주어서 여기 왔는데 갈 때도 좋은 차에 태워주어야 집에 가지 않겠냐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한 사람이 저를 데리고 밖에 나가서 지나가는 아주 좋은 차를 세우게 하고 저를 집에까지 데려다 드리라고 해서 좋은 자동차를 타고 집에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아주 즐겁고 유익한 붙잡혀가서 심문을 당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강변교회에서 목회하면서 “새벽기도”와 함께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을 제일 귀중하게 여기면서 강조했습니다. 주일 저녁 예배에 이따금씩 빠지던 교회 설립 집사인 한도정 집사에게 저녁 예배에 이따금씩 빠지려면 집사의 일을 그만두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주일 오후 여행을 떠났다가 주일 오후에 돌아온 집사들 10여명을 두 달 동안 모든 직분을 내려놓으라고 공개적으로 말하며 징계하기도 했습니다. 장로님 한 분이 주일날 군에 있는 아들을 보러 군 부대에 갔다 왔기 때문에 두 달 동안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징계한 일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허물과 죄와 잘못을 모두 아시면서도 저를 많이 축복하신 이유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신앙의 절개를 지키다가 순교하신 저의 아버지의 순교의 피 때문이고 또 하나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 사랑하는 가족과 고향을 떠난 저의 “주일성수의 신앙”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귀중한 신앙은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 이라고 저는 말하고 또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들의 시간과 몸을 온전히 주님께 드리며 주일을 종일 거룩하게 지키면 우리들의 삶이 변화됩니다. 우리들의 삶이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와 축복으로 가득하게 채워집니다. 저는 중학생 시절에는 대구에서 한국의 무디 라고 불리시던 이성봉 목사님을 통해서 은혜와 사랑과 안수 기도를 12번 받으면서 “주일성수”와 “새벽기도”에 전념하게 되었고, 고등학생과 대학생 시절에는 서울에서 한국의 예레미아라고 불리시던 김치선 목사님을 통해서 은혜와 사랑과 안수 기도를 받으면서 “주일성수”와 “새벽기도”에 전념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죄인인 저의 삶이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와 축복으로 채워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시간과 몸을 되는대로 쓰고 주일을 되는대로 지키면 우리들의 삶이 뒤죽박죽 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서 멀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주일을 종일 거룩하게 지키면서 정성껏 예배를 드리므로 우리들의 삶과 우리들의 가정과 교회와 우리들의 사회와 국가가 모두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순교신앙”은 물론 “새벽기도”와 “주일성수”에 충실하는 대신 각종 프로그램과 행사에 치중하는 것은 세속화와 타락의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주일 대신 토요일이나 금요일에 예배를 드려도 된다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정신 나간 사람들이고 귀신들린 사람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주일날 오전 예배만 드리고 저녁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계명을 절반만 지키는 것이 될 것입니다. 2014년 10월 10일 0시 20분에 104세로 별세하신 방지일 목사님께서 “주일성수의 신앙”이 해이해지는 것을 아쉬워하시면서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전에는 주일 아침 예배나 저녁 예배에 참석하는 신자들의 숫자가 거의 같았는데 언제부터인가 절반으로 줄어든 것은 문제야요. 그리고 주일 아침에 예배 보고 교인들이 헌금 낸 돈으로 점심 먹고 오후 예배 보고 집으로 가니 참 문제야요. 우리 영등포교회도 오후 예배로 바꾸자는 말이 나오는데 방 목사 죽은 다음에 바꾸자고 해요, 나 참!” 총신의 대표적인 교회사 교수인 박용규 교수님은 한국교회의 영적 침체가 주일성수 무시와 주일저녁 예배 폐지에서 비롯했다고 올바로 지적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주일을 범하므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서 멀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모두 주일을 종일 거룩하게 지키므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가장 귀중한 신앙은 “주일성수의 신앙” 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2015년 4월 10일 명성교회에서 “온전한 주일성수의 신앙을 염원하며” 라는 주제를 가지고 모인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월례모임에서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이 발제한 발제들중에서 대전 새로남교회의 오정호 목사님의 발제를 요약해서 소개합니다. “어떤 이들은 피곤한 현대인들에게 주일저녁 예배까지 요구하는 것은 성도들에게 짐을 더 지우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발제자의 생각은 다릅니다. 언제 한국교회는 아브라함처럼, 다윗처럼 예배중심의 삶을 구현할 수 있을 것입니까? 쓸 시간 다 쓰고, 쉴 시간 다 쉬고 나머지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예배자로서의 체면만 살리겠다는 생각자체가 문제의 출발이라고 여겨집니다. 우선 순위에서 밀린 예배는 참된 예배로서 품격을 상실한 것입니다. 복음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주일저녁 예배를 포함한 주일성수는 더욱 강화되어야 하리라 믿습니다. 주일성수는 한국교회의 건강을 위하여 허락하신 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의 특별한 선물이라 확신합니다. 주님 오실 때까지 한국교회가 온전히 예배하는 교회로 주님께 발견되어 쓰임 받기를 기원합니다.”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보다 더 귀중하고 더 축복된 신앙은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순교 신앙이 아주 귀중하고 축복된 신앙이지만 순교의 길로 달려가게 된 원인은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을 지키기 위함에서 비롯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께서는 감옥에서 교인들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면서 주일성수와 새벽기도를 철저하게 하라고 당부하시곤 하셨습니다.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은 이 세상에서뿐 아니라 천국에서 영원토록 계속될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 너무너무 귀중한 내용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열 번 반복해서 해도 부족할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베푸셔서 저와 여러분들로 하여금 남은 생애에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을 몸에 지니고 주일성수와 예배에 최선을 다하게 하시기를 바라시고 소원합니다. 찬송가 “즐겁게 안식할 날”(57장, 43장)을 부르고 함께 기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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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9  [08/18] 최권능 목사님의 오직 예수 천당의 신앙 (빌1:20,21) - 개포동 사랑의 빛 교회      21TV 2019/08/19
 [08/11] 주일 성수와 예배의 신앙 (출31:12-17, 마12:8, 행20:7) - 용인 사랑을 그리는 교회      21TV 2019/08/12
937  [08/04] 하나님과 예수님만 바라보는 올바른 신앙생활 (히12:2,3) - 가리봉동 중국동포교회      21TV 2019/08/06
936  [07/28] 죄를 사하시고 병을 고치시고 생명을 구원하시는 하나님 (시 103:1-5, 마 9:12,3) -굿모닝 요양 병원)      21TV 2019/07/29
935  [07/28] 바람직한 교회의 모습과 역할 (마 5:13-16) - 수지 할렐루야교회      21TV 2019/07/29
934  [07/21] 눈물의 감동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 (시 39:12, 56:8) - 청주 양성교회      21TV 2019/07/22
933  [07/14] 가난한자와 병든 자와 죄인들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마 9:12,13 눅 6:20,21) - 오산 진성 교회      21TV 2019/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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