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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04] 하나님과 예수님만 바라보는 올바른 신앙생활 (히12:2,3) - 가리봉동 중국동포교회


저는 중국동포교회의 김해성 목사님과 이선희 목사님을 사랑하며 존경합니다. 하나님께서 귀중하게 여기시고 사랑하시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들과 불우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면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또한 중국동포교회의 성도 여러분들을 귀중하게 생각하며 사랑합니다. 나그네 생활을 하면서 신앙생활과 예배생활을 성실하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중국 연변 지역에 있는 조선족 고아들과 불우한 학생들 150여명을 지난 20년 동안 계속해서 돕고 있는데 얼마나 보람된 일인지 모릅니다. 매년 거의 한 번씩 연변 지역을 방문하곤 하는데 연변 지역을 방문하고 불우한 조선족 학생들을 만나서 식사를 대접하고 가정도 방문하고 선물을 주고 학비도 전달하곤 하는데 얼마나 반갑고 보람된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제가 11년 전인 2008년 1월 13일 강변교회에서 은퇴한 후 지난 11년 7개월 동안 주일마다 전국의 작은 교회들을 주로 방문하면서 설교를 하고 있는데 큰 교회인 중국동포교회도 거의 매년에 한 번씩 와서 설교를 했습니다. 2009년에 한 번, 2010년에 한 번, 2011년에 한 번, 2012년에 한 번, 2013년에 한 번, 2014년에 한 번, 2015년에 한 번, 2016년에 두 번 와서 설교를 했습니다. 2017년에는 오지 못했는데 2018년 11월 4일 주일에 열 번째로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고난의 유익과 선교의 비결”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오늘 2019년 8월 4일 주일 여기 열 한번째로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설교를 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이선희 목사님과 성도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오늘 무슨 제목으로 설교를 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이선희 목사님이 오늘 “예수님만 바라보는 올바른 신앙생활”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너무너무 귀중한 설교 제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하나님과 예수님만 바라보는 올바른 신앙생활”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우리들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자기를 너무 바라보고 세상을 너무 바라보고 돈을 너무 바라보고 쾌락을 너무 바라면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도 바울이 이런 경고의 말씀을 했습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1-5).





그러면 이제부터 “하나님과 예수님만 바라보는 올바른 신앙생활”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우리 죄인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님과 예수님만 바라보는 대신 세상을 너무 많이 바라보고 사람들을 너무 많이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 자신만을 너무 바라보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나 자신만을 너무 바라보면 우쭐해져서 자만하게도 되고 낙심해서 좌절하게도 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나타난 고통과 아픔과 슬픔을 바라보는 대신 내가 당하는 고통과 아픔과 슬픔만을 바라보면 원망 불평하며 절망 좌절하게도 됩니다. 저는 신앙의 기본이 바로 잠잠히 하나님과 예수님만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정치 경제 군사 문화적인 움직임들을 바라보는 대신 잠잠히 하나님과 예수님만을 바라보는 것이 신앙의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히12:2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라고 권면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예수님만을 바라볼 때 믿음이 생기고 우리들의 삶이 변화된다고 말씀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서 죽어가던 강도가 십자가의 예수님만을 바라보았을 때 지옥 밑 바닥에 가야 마땅한 죄인 중의 죄인인 강도의 마음에 믿음이 생겼고 지옥 대신 천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서 죽어가던 강도가 십자가의 예수님만을 바라보았을 때 그에게 죄 사함과 구원의 축복이 임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위기와 불행과 고통과 좌절과 절망 중에서 하나님과 예수님만을 바라보았던 신앙의 선배님들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앞에는 홍해가 가로 놓여있고 뒤에서는 애굽 군대가 추격해오는 위기의 상황에서 가만히 하나님만을 바라보았던 모세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모세는 위기의 상황에서 두려워서 떠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 14:13,14). 모세의 모습과 말은 비현실적인 모습과 말이었고 어리석어 보이는 모습과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연의 위태로움이나 군대의 위협보다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손을 바라보며 믿었습니다. 결국 모세는 홍해가 갈라지고 애굽 군대가 몰살당하는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모세는 출애굽 이후 광야의 길을 걸어가면서도 불신앙과 원망의 죄를 범한 그래서 불 뱀들에게 물려서 죽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놋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아놓고 그 놋 뱀을 바라보라고 말했습니다. 그 놋 뱀을 바라본 사람들은 살고 바라보지 않은 사람들은 죽었다고 했습니다. “모세가 놋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 뱀을 쳐다본 즉 살더라”(민 21:9). 모세의 놋 뱀은 예수님을 가리키는 예표였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의학적인 지식만을 의지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명이 되시는 하나님과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군사적인 전술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것보다는 나라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좀 어리석고 좀 모순되는듯한 믿음을 지니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위기와 절망의 상황에서 잠잠히 하나님만을 바라보았던 다윗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크게 요동치 아니하리로다”(시 62:1,2). 시편 62편은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으로 곤경에 처했을 때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부르짖은 기도의 시입니다. 다윗은 환난과 고난을 당할 때 사람들을 향해 반항하거나 자신을 향해 낙담하지 않았고 오직 잠잠히 하나님만을 바라보았습니다. 안절부절하며 불안해하지도 않았고 잠잠히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기다렸습니다. 순수한 신앙은 침착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잠잠히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다윗이 환난과 고난을 당했을 때 하나님을 바라볼 뿐 아니라 시시로 저를 의지하며 그 앞에 마음을 토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 혼자서만 한 것이 아니라 다른 성도들을 향해서 그렇게 하라고 권면까지 했습니다. 순수한 신앙이란 하나님만을 잠잠히 바라보며 시시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고 그리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시편 62편에서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라는 말을 두 번 반복했습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시 62:1).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을 바라라”(신 62:5). 얼마나 간절한 고백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윗의 고백을 기뻐 받으시고 다윗을 크게 도우시고 크게 축복하셨습니다. 다윗이 고통과 좌절과 절망 중에서 하나님만을 바라보았을 때 그에게 죄 사함과 구원의 축복이 임했습니다. 신앙의 기본 중의 기본은 우리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과 예수님만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과 예수님만을 바라볼 때 우리들의 인생이 바뀌어지고 우리들의 운명이 바뀌어지고 우리들의 삶이 바뀌어지고 우리들의 기질과 습관이 바뀌어집니다. 죄 사함과 구원의 축복이 임합니다. 감사와 용기와 기쁨이 충만한 행복한 삶으로 바뀌어집니다.





셋째로, 일곱 귀신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가 귀신에게서 건짐을 받은 후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사랑과 기쁨으로 살게 된 변화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 들렸던 인간 쓰레기였습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는 귀신의 늪에서, 죄악의 늪에서, 지옥의 저주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건져주셨습니다. 결국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예수님에게 미친 사람이 되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항상 예수님 곁에 있으면서 예수님만을 바라보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럴수록 그에게서는 사랑이 솟아나고 기쁨이 솟아났습니다. 눅 8:2,3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막달라 마리아는 죄악에서 건짐을 받은 즉시 몇몇 여인들과 함께 자기들의 소유로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을 섬겼습니다.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눅 8:2,3). 막달라 마리아는 항상 예수님 곁에서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을 사랑으로 섬겼습니다. 예수님께서 로마 군인들에게 붙잡혀 골고다로 끌려 가실 때도 막달라 마리아는 십자가 행렬을 따라가면서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마 27:55,56). 막달라 마리아는 십자가 아래 가장 오래 머물러 있으면서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습니다(요 19:25). 슬픔과 아픔과 사랑의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을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와 요한이 집으로 돌아간 후에도 막달라 마리아는 계속해서 십자가 아래 남아 있다가 예수님의 시체를 넣은 무덤에까지 따라갔습니다(마 27:59-61). 안식 후 첫날 즉 주일날 이른 새벽 예수님의 무덤에 제일 먼저 찾아간 사람도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예수님을 너무 사모하고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무덤 문이 열린 것을 보고 그리고 예수님의 시체가 보이지 않는 것을 알고 막달라 마리아는 너무 놀라고 너무 슬퍼서 울고 또 울었다고 했습니다. 너무너무 보고 싶고 너무너무 슬퍼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순수한 신앙의 기본이고 순수한 신앙의 극치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신앙은 사모함이고 신앙은 같이 있음이고 신앙은 바라봄입니다. 너무너무 보고 싶어서 울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부활의 주님께서 제일 먼저 나타나 보이셨습니다. 주님께서 부드러운 음성으로 마리아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마리아야!” 마리아는 온 몸에 전율을 느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가슴이 뛰다가 멎는듯한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 순간 마리아의 몸과 마음에는 천지에도 채울 수 없는 충만한 기쁨과 환희가 넘쳤을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그 후 한 평생을 주님만을 바라보고 주님만은 사랑하고 주님만을 모시고 주님만을 전하면서 기쁘고 행복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순수한 신앙은 주님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넷째로, 자기만 바라보고 자랑하면서 살던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 예수님만을 바라보면서 살게 된 사도 바울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사울은 본래 히브리인중의 히브리인이었고 바리새인중의 바리새인이었고 자기의 가문과 교육과 종교적 전통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며 자랑하던 교만과 독선의 사람이었는데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자기의 종교적 전통과 가문과 교육을 모두 배설물로 똥으로 해로 여기면서(빌 3:5-9)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만 생각하고 예수님만 의지하고 예수님만 자랑하고 나타내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부터는 자기를 바라보고 의지하고 자랑하던 것을 모두 버리고 자기 자신을 극도로 멸시까지 했습니다. “나는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고전 4:13).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롬 7:18).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24).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결국 사도 바울은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의지하고 자랑하고 나타내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들을 살펴보겠습니다. 히브리서를 사도 바울의 저술이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게 때문에 히브리서에 나타난 고백과 권면들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 3:1).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빌 3:8).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 1:20,21).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갈 6:14).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갈 6:17). 결국 사도 바울은 예수님에게 미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고후 5:13).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하면 오고 죽으라고 하면 죽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눈 앞에는 예수님만 보였고 사도 바울의 귀에는 예수님의 음성만 들렸습니다.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에게만 순종하는 사도 바울에게 주님께서 자주 나타나셔서 자신을 보여주셨고 자신의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그 때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의 모습을 보고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순종했습니다.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라”(행 18:9,10).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행 23:11). “나의 속한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행 27:23,24). 얼마나 놀라운 절대 신앙의 고백인지 모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셨을지 모릅니다. 사도 바울은 전에는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자랑하던 지극히 교만하고 독선적인 사람이었는데 후에는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멸시까지 하면서 오직 하나님과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의지하고 자랑하고 나타내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 대신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들을 바라보고 정치 경제 군사 문화적인 동향들만을 바라보는 데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다섯째로,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인 제가 하나님께서 너무나 크신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주셔서 11살 때 38선을 혼자서 넘어서 남한으로 온 다음 한 평생을 고아와 나그네로 슬픔과 아픔을 지니고 살았지만 어떤 어려운 형편에 처하든지 근심 걱정하지 않고 하나님과 예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면서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왔다는 고백을 간단하게 하려고 합니다. 저는 주일을 성수하고 예배를 바로 드리면서 살기 위해 11살 때인 1948년 8월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북에 남겨 두고 38선을 넘어 남쪽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엄청난 일이었는데 제가 스스로 자발적으로 결정한 일이었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로 이루어진 것을 저는 잘 압니다. 제가 평양을 떠나기 전에 감옥에 계신 아버지를 찾아가서 주일을 바로 지키면서 신앙생활을 바로 하기 위해서 남쪽으로 가겠다고 말했을 때 아버지는 저를 한 참 바라보시다가 그러면 가라고 말씀했습니다. 저를 너무 사랑하시면서 저 없이는 못 살겠다고 늘 말씀하시던 어머니도 울면서 그러면 가라고 말씀했습니다. 저는 작은 가방 하나를 들고 평양을 떠나 기차를 타고 해주로 오면서 이별의 슬픔과 아픔을 가슴에 지니면서도 신앙의 자유를 찾아 하나님을 바로 섬기기 위해서 그리고 아버지를 따라 좋은 목사님이 되기 위해서 고향을 떠나 미지의 곳으로 간다고 생각하면서 저의 마음을 추스르기도 했습니다. 해주에서 하룻밤을 자고 그 다음 날 밤 어른들 5,6명과 함께 38선을 넘게 되었습니다. 안내원을 따라서 조용 조용히 국경을 넘다가 우리 일행은 국경경비 군인들에게 발각되고 말았습니다. 모두 손을 들고 서지 않으면 총을 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어른들은 모두 손을 들고 섰습니다. 그러나 저는 설 수가 없었습니다. 국경을 넘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혼자서 남쪽을 향해서 뛰기 시작했습니다. 언덕을 넘고 긴 파 밭을 달리고 목에 차는 강을 건너면서 계속해서 달렸습니다. 저는 조금도 두렵지가 않았습니다. 약간의 스릴까지 느꼈습니다. 아마 3,40분 동안 달린 후 저는 남 조선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11살 때 혼자서 38선을 뛰어넘은 사건은 그후 저의 평생의 삶의 성격과 방향을 정하는 중요한 사건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두려움 없이” “모험적으로” “막 뚫고 나아가는” 삶이 저의 삶의 모습이 된 것이었습니다. 그 후의 이야기는 아주 간단하게 줄여서 합니다. 단 돈 100불을 가지고 미국에 가서 12년 동안 유학생활을 했는데 아무 부족함이 없이 넉넉한 생활을 하면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귀국 후 제가 군사 정권의 주일 성수 방해 정책을 비판한다고 남산에 끌려가서 아침부터 하루 종일 다음날 새벽까지 극심한 심문을 당했는데 저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저를 심문하는 두 사람을 책망도 하고 충고도 하고 권면도 했습니다. 북한에 가서 여기 저기 다니면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소신껏 말하고 소신껏 비판도 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국경도 비자도 없이 캄캄한 밤에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혼자서 뚫고 넘어가서 제가 지어준 학교 준공식에 참예해서 축하의 메시지와 사랑의 선물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할 때 사망의 음침한 골자기를 걸어가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뚫고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을 저는 체험하고 또 체험하고 또 체험했습니다.


중국을 떠나 한국에 와서 어려운 형편에서 나그네 생활을 하시는 여러분들도 날마다 하나님과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면서 조금도 근심 걱정 두려움이 없이 부족함이 없는 넉넉한 삶을 살아가게 되기를 바라고 소원합니다. 제가 매일 암송하는 시편 23편을 읽습니다. 다윗의 고백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 23:1-6).





이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우리가 잠잠히 하나님만을 바라볼 때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첫째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서 잠잠히 하나님만을 바라볼 때 우리가 죄인인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무릎을 꿇고 울면서 회개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 죄 사함의 은혜와 구원의 은혜가 임합니다. 모세가 그랬고 다윗이 그랬고 이사야가 그랬고 사도 베드로가 그랬고 막달라 마리아가 그랬고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누구이신지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들의 모든 병을 고치시고 우리들의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는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고 사랑이 한없이 많으신 우리들의 아버지이심을 조금씩, 조금씩 알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게 달려 죽으시기까지 모든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모든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모든 죄인들을 사랑하시고 모든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우리들의 구주가 되심을 조금씩, 조금씩 알게 됩니다. 성령님께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우리 죄인들을 도와주셔서 회개도 하고 기도도 하고 믿기도 하고 사랑도 하고 봉사도 하도록 옆에서 도와주시는 보혜사이심을 조금씩, 조금씩 알게 됩니다. 그래서 원망 불평하면서 살던 우리들이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부르게 됩니다. 셋째로 하나님을 닮아서 모두를 불쌍히 여기면서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게도 됩니다. 모세가 그랬고 다윗이 그랬고 이사야가 그랬고 사도 베드로가 그랬고 막달라 마리아가 그랬고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님을 잠잠히 바라볼 때 우리들의 기질도 바뀌어집니다. 분노와 증오의 기질이 긍휼과 용서와 사랑과 온유의 기질로 바뀌어지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닮아서 모두를 불쌍히 여기고 울면서 사랑하게도 됩니다. 넷째로 소망이 생기고 용기가 생겨서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모험심과 담력을 지니게 됩니다. 모세가 그랬고 다윗이 그랬고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했을 때 저는 38선도 혼자서 두려움 없이 넘게 되었고, 단 돈 100불을 가지고 미국에 가서 12년 동안 아무 걱정 없이 공부하게 되었고, 남산에 끌려가서 하루 종일 밤 늦게까지 심문을 당해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북한에 가서 여기 저기 다니면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소신껏 말하고 소신껏 비판도 했습니다. 아프간 국경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혼자서 넘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할 때 사망의 음침한 골자기를 걸어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뚫고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올바른 신앙의 기본이 무엇입니다. 우리들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과 예수님만을 바라보는 것이 신앙의 기본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만을 바라보는 것이 올바른 신앙의 기본입니다. 우리들이 잠잠히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예수님만을 바라볼 때 우리들의 인생이 바뀌어지고 우리들의 운명이 바뀌어지고 우리들의 삶이 바뀌어집니다. 죄 사함과 구원의 축복이 임합니다. 우리들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을 바라볼 때 우리들이 누구인 것을 조금씩 알아가게도 되고,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조금씩 알아가게 되며 그래서 하나님을 조금씩 닮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모두를 불쌍히 여기며 울면서 용서와 사랑을 베풀게도 됩니다. 그리고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모험심과 담력이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를 베푸셔서 저와 여러분들이 세상과 사람들을 너무 바라보는 대신 하나님과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면서 올바른 신앙생활을 귀중하고 멋지게 하게 되기를 바라고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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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8  [08/11] 주일 성수와 예배의 신앙 (출31:12-17, 마12:8, 행20:7) - 용인 사랑을 그리는 교회      21TV 2019/08/12
 [08/04] 하나님과 예수님만 바라보는 올바른 신앙생활 (히12:2,3) - 가리봉동 중국동포교회      21TV 2019/08/06
936  [07/28] 죄를 사하시고 병을 고치시고 생명을 구원하시는 하나님 (시 103:1-5, 마 9:12,3) -굿모닝 요양 병원)      21TV 2019/07/29
935  [07/28] 바람직한 교회의 모습과 역할 (마 5:13-16) - 수지 할렐루야교회      21TV 2019/07/29
934  [07/21] 눈물의 감동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 (시 39:12, 56:8) - 청주 양성교회      21TV 2019/07/22
933  [07/14] 가난한자와 병든 자와 죄인들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마 9:12,13 눅 6:20,21) - 오산 진성 교회      21TV 2019/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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