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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28] 바람직한 교회의 모습과 역할 (마 5:13-16) - 수지 할렐루야교회


제가2008년 1월 13일 28년 동안 개척해서 목회하던 강변교회에서 은퇴한 다음 지난 11년 7개월 동안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매 주일 전국의 작은 교회들을 주로 방문하며 설교하고 있는데 오늘 2019년 7월 28일 주일 교회 창립 8주년을 맞는 수지 할렐루야교회에 처음으로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설교를 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저를 불러주신 석철효 목사님과 성도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무슨 설교를 하면 좋을까 생각을 하다가 교회 창립 8주년을 맞는 오늘 “바람직한 교회의 모습과 역할”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라는 귀중한 말씀을 전파하신 다음 주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서 아주 귀중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마 4장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마 4:17). 마태복음 5장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 5:1-12). 여기 주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이란 오늘날의 교회의 목회자들과 신자들을 가리킨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팔 복의 말씀들은 오늘의 목회자들과 신자들이 몸과 삶에 지녀야 할 영성과 도덕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주님을 믿고 따라는 제자들에게 팔복의 말씀을 전파하신 다음 바람직한 교회와 목회자들과 신자들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매우 귀중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성자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교회와 목회자들과 신자들의 바람직한 모습과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3-16). 여기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라는 말씀도 오늘날의 교회의 목회자들과 신자들을 가리킨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와 목회자들과 신자들은 “세상의 소금과 빛” 입니다. “빛과 소금”이 아니고 “소금과 빛” 입니다.



첫째로, 우리 교회와 목회자들과 신자들은 세상에서 “소금의 역할”을 하여야 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교회와 목회자들과 신자들은 기질과 특성이 “소금”으로 바뀌어진 존재들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본래는 소금이 아니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의 피와 살로 그 기질과 특성이 “소금”으로 바뀌어진 존재들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존재에 변화가 일어났을 때 행실과 역할에도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소금”이 하는 일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썩는 것을 막는 일입니다. 생선에 소금을 뿌리면 생선이 썩지 않습니다. 무와 배추에 소금을 뿌리면 무와 배추가 썩지 않습니다. 소금은 썩는 일을 방지합니다. 즉 방부제의 역할을 합니다. 두 번째는 맛을 내는 일입니다. 생선에 소금을 뿌리면 맛있는 굴비도 되고 맛있는 고등어도 됩니다. 무와 배추에 소금을 뿌리면 맛있는 김치가 됩니다. 소금은 맛을 냅니다. 세 번째는 스스로 없어지는 일입니다. 소금은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스스로 녹아서 없어지고 맙니다. 즉 희생의 역할을 합니다.

세상에 대한 교회와 목회자들과 신자들의 사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와 목회자들과 신자들은 첫째로 썩어져 가는 세상과 사회를 썩지 않도록 막는 방부제의 역할을 하여야 합니다. 이 세상과 사회는 그 대로 놔두면 썩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가정도 썩고 학교도 썩고 사업도 썩고 정치도 썩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와 신자들은 둘째로 맛이 없는 이 세상의 삶을 맛 있게 만드는 조미료의 역할을 하여야 합니다. 교회와 목회자들과 신자들은 사람들의 삶에 보람과 의미를 부여해 주어야 합니다. 소명 의식과 사명 의식을 부여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삶의 맛을 누리며 의미 있게 살게 해주어야 합니다. 교회와 목회자들과 신자들은 셋째로 세상의 어느 곳이나 깊이 파고 들어가서 녹아서 없어지는 희생의 역할을 하여야 합니다. 없어진다는 것은 희생을 의미하고 손해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돈도 손해를 보고 시간도 손해를 보고 건강도 손해를 보고 마지막에는 생명도 손해를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한국의 교회와 목회자들과 신자들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썩는 것을 막고 있습니까? 함께 썩어져 가고 있습니까? 맛을 내고 있습니까? 오히려 맛이 없어지게 하고 있습니까? 스스로 없어지며 희생하고 있습니까? 오히려 자신을 드러내며 이익과 명예만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지금 우리 한국 교회와 사회에는 무엇보다 먼저 “소금”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소금”은 자신이 없어지면서 세상을 살리는 존재입니다.



둘째로, 교회와 목회자들과 신자들은 세상에서 “빛의 역할”을 하여야 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교회와 목회자들과 신자들은 기질과 특성이 “빛”으로 바뀌어진 존재들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본래는 빛이 아니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의 살과 피와 빛을 받아서 그 기질과 특성이 “빛”으로 바뀌어진 존재들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엡 5:8). 존재에 변화가 일어났을 때 행실과 역할에도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빛”이 하는 일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어두움을 몰아내는 일입니다. 숨어 있던 더러운 것들을 밝히 드러내는 정화와 청결의 일입니다. 둘째는 밝음과 따뜻함을 가져다 주는 온화의 일입니다. 빛이 비치면 따뜻함과 기쁨이 생깁니다. 셋째는 방향을 제시하는 등대의 일입니다. 등대의 빛은 배가 항해하는 방향을 제시합니다. 교회와 목회자들과 신자들의 사회적 책임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와 목회자들과 신자들은 첫째로 세상의 어두움과 죄악을 드러내고 몰아내는 정화와 청결의 역할을 하여야 합니다. 교회와 목회자들과 신자들은 둘째로 어둡고 차가운 이 세상에 밝음과 따뜻함의 빛을 비치는 온화의 역할을 하여야 합니다. 교회와 목회자들과 신자들은 셋째로 혼돈 가운데 사는 세상 사람들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안내자의 역할을 하여야 합니다.

오늘날 한국의 교회와 목회자들과 신자들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어두움을 드러내고 부정과 부패와 불의를 몰아내고 있습니까? 오히려 어두움 속에 빠져서 부정과 부패와 불의와 타협하고 있지나 않습니까? 부드러움과 따뜻함의 빛을 비치는 온화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오히려 차갑고 냉정하고 무정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혼돈 가운데 사는 세상 사람들에게 삶의 방향을 바로 제시하는 안내자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오히려 우리 자신이 혼돈에 빠져서 우왕좌왕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지금 우리 한국 교회와 사회에는 “빛”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태우면서 어두움을 밝히고 차가움을 따뜻하게 만들고 혼돈을 몰아내고 삶의 바른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빛”이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빛”은 자신을 태워서 세상을 밝히는 존재입니다.



셋째로, 교회와 목회자들과 신자들은 세상에서 “착한 행실”을 나타내 보이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이 말씀은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한 마디로 요약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소금과 빛”의 삶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착한 행실”을 세상에 나타내 보이는 “착한 삶” 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교회와 목회자들과 신자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중요한 목적은 “착한 행실”을 나타내 보이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착한 행실”은 주님을 믿고 따르는 교회와 목회자들과 신자들이 지녀야 할 아주 중요한 덕목입니다. “착한 행실”이란 자기의 유익과 자기의 행복을 위해서 하는 행실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의 유익과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하는 희생적인 행실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 10:11,15) 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착한 행실”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의 유익이나 기쁨을 구하지 않고 모든 사람과 많은 사람의 유익과 기쁨을 구하며 산다고 고백했는데 그것이 바로 “착한 행실”입니다(고전 10:33). 사도 베드로는 그런 “착한 행실”을 예수님께서 행하셨다고 지적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행 10:38).

복음서들이 이미 그것을 지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다가 저주받은 문둥병자 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를 만져주시며 고쳐주셨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 진지라”(마 8:3). 그것이 예수님의 “착한 행실” 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신 후 가버나움에 들어가서 그 당시 개 취급을 받던 이방인 로마 사람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시면서 그의 하인의 병을 고쳐주셨다고 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찌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마 8:10,13). 그것이 예수님의 “착한 행실” 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수가성에 찾아가서 세상을 등지고 절망 가운데서 살아가던 부도덕한 여인 하나를 만나서 그와 이야기하면서 그 여자로 하여금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수가성 여인은 너무 기뻐서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요 4:28,29). 그것이 예수님의 “착한 행실” 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간음 현장에서 붙잡혀 돌에 맞아 죽게 된 한 창녀에게 가까이 가서 그를 돌로 치려는 사람들과 그녀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일이 있었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7).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 8:11). 그 여자는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났을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착한 행실” 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보려고 뽕 나무에 올라갔던 세리장이고 죄인인 삭개오에게 친절하게 그의 이름을 부르시고 뽕 나무에서 속히 내려오라고 말씀하신 다음 삭개오에게 이런 축복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 19:9). 그것이 예수님의 “착한 행실” 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면서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로마 군인들의 죄 사함을 위해서 기도하셨고 그리고 강도에게 낙원의 구원을 선포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착한 행실” 이었습니다. 스데반 집사도 토마스 선교사도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도 한경직 목사님도 모두를 품고 용서하는 “착한 행실”의 길로 걸어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와 목회자들과 신자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 중의 하나가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선하고 “착한 행실”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라고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믿고 따르는 교회와 목회자들과 신자들이 하여야 할 일은 “소금과 빛”이 되어서 “착한 행실”을 광야와 같은 사막과 같은 세상에 나타내 보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도들을 권면하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착한 일을 하라고 분부했습니다.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할찌니라”(갈6:10). “하나님이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착한 일들’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9:8). 사도행전은 바나바와 도르가와 고넬료와 디모데와 루디아와 브리스길라가 모두 “착한” 사람들이었다고 지적했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행 11:24). “도르가가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행 9:36).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행 10:1,2). “디모데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행 16:2). 루디아는 바울의 일행을 자기 집으로 영접 했습니다.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행 16:15).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나니”(롬 16:3,4). 교회와 목회자들과 신자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 중의 하나가 “소금과 빛”이 되어서 광야와 같은 사막과 같은 험한 세상에 “착한” 행실을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착한 행실”을 나타내 보이지 않는 교회와 목회자들과 신자들은 참된 목회자들도 아니고 참된 신자들도 아니고 참된 교회들도 아닐 것입니다.

제주도 복음화의 선구자였던 이기풍 목사님과 윤함애 사모님은 제주도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제주도 성내교회를 13년 동안 “착함”과 “사랑”으로 섬기셨고 제주도에 30여 개의 교회를 세우고 교회와 성도들을 “착함”과 “사랑”으로 돌아보았습니다. 설교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신학강의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착한” 일을 아주 많이 했습니다. 제주도 복음화의 중요한 도구로 사용된 윤함애 사모님은 무엇보다 먼저 “착한 행실”을 많이 나타내 보인 사람이었습니다.

신의주 제이교회와 영락교회를 “사랑”과 “착함”을 몸에 지니고 섬기신 한경직 목사님이야말로 한국 땅에서 “소금과 빛”으로 사신 아주 착하고 귀중한 분이셨습니다. 한경직 목사님께서 목회하시던 신의주 제이교회와 영락교회야말로 세상에 “소금과 빛”이 되는 아름다운 교회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여수 애양원교회와 나환자 성도들을 “사랑”과 “착함”을 몸에 지니고 섬기신 손양원 목사님이야말로 한국 땅에서 “소금과 빛”으로 사신 아주 착하고 귀중한 분이셨습니다. 손양원 목사님께서 목회하시던 여수 애양원교회야말로 세상에 “소금과 빛”이 되는 아름다운 교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수 많은 불우한 환자들을 “사랑”과 “착함”을 몸에 지니고 섬기신 장기려 박사님에야말로 한국 땅에서 “소금과 빛”으로 사신 아주 착하고 귀중한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장기려 박사님을 가리켜 “작은 예수”로 사신 분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들이 세상에 “착한 행실”을 나타내 보이면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성자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존재의 변화가 있어야 하고 행실의 변화가 있어야 하지만 동시에 목적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목적이 분명하지 않을 때 존재와 행실에 혼란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존재와 행실의 목적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둘 때 우리들의 존재가 건강하고 착하고 아름답게 되고 우리들의 행실이 건강하고 착하고 아름답게 됩니다. 그런데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이익과 자신의 명예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합니다. 공부하는 목적도 결혼하는 목적도 직업을 가지는 목적도 심지어는 하나님을 믿는 목적도 자신의 이익과 명예와 우리들이 아무리 착한 일을 많이 해도 그 목적이 우리들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는데 둔다면 우리들의 모든 착한 일은 허사가 되고 맙니다.

우리들이 아무리 선지자가 되고 사도가 되고 위대한 목회자와 선교사가 된다 하여도 만약 그 목적이 우리들의 이름을 나타내고 우리들의 영광을 추구하는데 둔다면 우리들의 모든 수고는 허사로 돌아가고 맙니다. 마 7:22,23을 읽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2,23). 아주 무서운 말씀입니다. 자기의 영광을 추구하며 주의 일을 한 사람들에게 마지막 날 주님께서 하실 무섭고 준엄한 책망의 말씀입니다. 삶의 목적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두면서 사는 사람들이 참으로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많이 받으면 그래서 자기 자신을 부인하면 조금씩 조금씩 됩니다. 회개를 많이 하면 조금씩 이루어집니다.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의 훈련을 받으면 조금씩 조금씩 이루어집니다. 실패의 과정을 거치면 조금씩 조금씩 이루어 집니다. 기질이 변화되고 행실이 변화되면 조금씩 조금씩 이루어집니다. 사도 바울도 조금씩 조금씩 변화되어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자기 몸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이 높임을 받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저와 여러분들이 너무너무 부족한 이기적인 죄인들이지만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로 “착한 행실”을 나타내 보이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복 있는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교회가 어떤 곳입니까? 교회는 예수님께서 피 흘려 사신 예수님의 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눈과 귀와 마음이 향하시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교회는 성령께서 임재하시는 성령의 전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성전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의 친밀한 교제가 있는 만남의 장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긍휼과 용사와 자비와 사랑을 쏟아 부으시는 축복의 장소입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교회의 머리와 몸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교회는 또한 “세상의 소금과 빛”입니다. 즉 “착한 행실”을 세상에 나타내 보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살아가는 신앙 공동체입니다. 수지 할렐루야 교회가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수행하는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를 바라고 소원합니다. 교회의 목적을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는데 두어서 “착한 행실”을 많이 나타내 보이시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두는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를 바라고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이 수지 할렐루야 교회와 목회자들과 성도 여러분들 모두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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