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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21] 눈물의 감동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 (시 39:12, 56:8) - 청주 양성교회


제가 2017년 5월 21일 주일 청주 양성교회에 처음으로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헌신과 축복의 은혜”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7년 10월 8일 주일 여기 두 번째로 와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나누신 친밀한 대화”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8년 3월 25일 주일 여기 세 번째로 와서 “화해와 평화와 통일의 주님으로 오신 예수님”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9년 1월 20일 주일 여기 네번째로 와서 "생활 전도와 교회 부흥"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는데, 오늘 2019년 7월 21일 주일 여기 다섯 번째로 와서 “눈물의 감동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김진상 목사님이 오늘 “눈물의 감동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해 달라고 부탁을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베푸신 모래알보다 더 많은 은혜들 중에서 “눈물의 감동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는 간증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눈물을 아주 귀중하게 보십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눈물을 아주 귀중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맨날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는데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들었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시 6:6). “여호와여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시 39:12).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시 56:8).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행 13:22). 하나님께서 귀중하게 사용하신 선지자 예레미아도 맨날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는데 예레미아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그렇게 되면 살륙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곡읍하리로다”(렘 9:1). “밤새도록 애곡하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애 1:2). “내가 우니 내 눈에 눈물이 물 같이 흐름이여”(애 1:16).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끓으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는 처녀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젖 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혼미함이로다”(애 2:11).


성자 예수님께서도 눈물을 흘리면서 우셨다고 했습니다. 나사로가 죽었을 때에도 눈물을 흘리면서 우셨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요 11:35). 예루살렘 성이 망할 것을 바라보시면서도 우셨다고 했습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눅 19:41,42). 성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 5:7). 성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라고 부르짖으시면서 통곡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도 아들을 내어 버리시면서 캄캄함으로 얼굴을 가리우시고 우셨다고 생각합니다. 부활하신 후 주님께서 디베랴 바다가에서 배신자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을 만나서 타이르시면서도 우셨다고 생각합니다(요 21:15-17). 그리고 승천하신 후 주님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항상 살아서 간구하신다고 했는데(롬 8:34, 히 7:25), 우리들이 여러 가지 죄악에 밀려서 넘어지고 또 넘어지는 것을 바라보시면서 우시고 또 우신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도 자기 죄 때문에 그리고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사랑하는 성도들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와 사랑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울고 또 울고 또 울었다고 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24).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행 20:31). “내가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고후 2:4).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빌 3:18). 사도 바울은 맨날 울면서 눈물을 쏟은 눈물의 목회자였다고 생각합니다.


길선주 목사님과 이기풍 목사님과 이성봉 목사님과 김치선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과 박윤선 목사님도 자기 죄 때문에 그리고 민족이 당하는 불행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와 사랑 때문에 평생토록 눈물을 흘리면서 울고 또 운 눈물의 목회자들이었습니다. 길선주 목사님과 그가 인도하신 1907년 1월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일어난 “부흥운동”은 사실은 “눈물운동”이었고 “회개운동” 이었습니다.  


눈물은 너무너무 귀중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눈물은 가장 진솔하고 처절한 자기 표현의 방식이고 가장 친밀한 소통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눈물을 흘릴 때 하나님과 친밀하게 소통하게 되고 사람들과도 친밀하게 소통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야곱이 울 때 에서가 함께 울면서 화해했고, 요셉이 울 때에 형들이 함께 울면서 화해했고, 다윗이 울 때 백성들이 함께 울면서 하나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눈물은 가장 귀중한 은혜의 통로이고 가장 귀중한 소통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면서 우는 자들에게 가까이 하시면서 친밀하게 소통하셨습니다. 자기의 죄 때문에 흘리는 눈물도 귀중하고, 자기가 당하는 슬픔과 아픔과 고통 때문에 흘리는 눈물도 귀중하고, 민족이 당하는 재난 때문에 흘리는 눈물도 귀중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에 감격하여 흘리는 눈물도 귀중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요엘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찌어다”(욜 2:12,13).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아모스에게 울음 군을 불러다가 울게 하라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농부를 불러다가 애곡하게 하며 울음 군을 불러다가 울게 할 것이며”(암 5:16). 눈물은 너무너무 귀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귀중하게 받으시는 것이 눈물이고,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의 은혜를 받게 하는 것이 눈물이고, 나를 살리는 것이 눈물이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까지 움직이게 하는 것이 눈물입니다. 저주 받아 마땅한 니느웨 성이 굵은 베옷을 입고 울며 회개했을 때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려고 하셨던 재앙을 내리지 않으시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 그 소문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으니라 왕이 그 대신으로 더불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가로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떼나 양떼나 아무 것도 입에 대지 말찌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하나님이 혹시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로 멸망치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욘 3:5-10).


그런데 하나님께서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인 저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눈물의 감동을 아주 많이 주셨습니다. 저는 본래 눈물이 없었던 좀 강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무엇이든지 두려워하지 않고 막 하고 막 가는 “막가 파” 였고 심한 장난꾸러기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별의 슬픔과 아픔을 통해서 눈물을 흘리면서 울기 시작했고, 이성봉 목사님 김치선 목사님 등 신앙의 선배님들을 통해서 회개와 은혜 사모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제가 범한 죄와 허물을 회개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울기 시작했고,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을 경험하고 묵상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신앙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11살 때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북에 두고 38선을 혼자서 뛰어넘어서 남쪽에 온 후 몇 년 동안은 거의 매일 밤 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습니다. 후에는 미국에서 태어난 어린 아들 철원이가 불치의 병인 뇌수종을 지니고 태어나서 극심한 고통을 당하면서 살다가 4살 때 저의 곁을 떠나 주님의 품으로 돌아간 일 때문에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슬픔과 아픔의 눈물들은 제가 늘 고백하는 대로 아주 귀중하고 아름다운 보석이 되었습니다. 이별의 슬픔과 아픔의 눈물들은 저로 하여금 십자가에 나타난 주님의 슬픔과 아픔으로 가까이 다가가게 만들었고 슬픔과 아픔을 당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로 가까이 다가가게 만들었고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 철원이가 먼저 간 슬픔과 아픔이 없는 천국을 사모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눈물의 감동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 라는 제목으로 저와 관련된 이야기들 아홉 가지를 글로 써서 발표를 했는데 오늘은 시간상 관계로 아홉 가지 중에서 처음 다섯 가지 이야기만을 하려고 합니다.  





첫째로, 저에게 “눈물의 감동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 중 하나는 제가 고등학생 때 손양원 목사님의 삶과 사역에 대한 책인 “사랑의 원자탄” 이란 책을 읽으면서 울고 또 운 일이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었을 때 어느 날 아침 남대문 네거리에 있던 기독교 서점에서 “사랑의 원자탄” 이란 책을 사 들고 제가 새벽기도 후 거의 매일 올라가서 기도하던 남산의 어느 숲 속에 올라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그 책을 읽으면서 울고 또 울고 기도하고 또 기도한 일이 있었습니다. “사랑의 원자탄” 이란 책은 손양원 목사님의 긍휼과 용서와 사랑에 대한 책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전도사님 때부터 여수에 있는 애양원에 가서 나환자들을 돌아보는 사랑의 삶을 살았습니다. 어느 날 손양원 목사님이 나병 환자들과 함께 산으로 소풍을 갔습니다. 도시락을 먹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어린이 나환자들은 자기들을 너무너무 사랑하는 손양원 목사님께서 혹시라도 자기들 때문에 나병에 걸릴까 봐 걱정을 하면서 손양원 목사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앉아서 자기들끼리 도시락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손양원 목사님은 그것을 눈치채고 어린이 나환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그들의 도시락을 나누어 먹으려고 했습니다. 어린이 나환자들은 안 된다고 소리를 질렀지만 손양원 목사님은 그들의 도시락을 빼앗아서 나누어 먹었습니다. 사실 손양원 목사님은 나병에 걸리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기도 나병에 걸리기를 속으로 바라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읽으면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순수하고 참된 사랑을 느끼고 볼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의 원자탄” 이란 책은 마지막 부분에서 손양원 목사님이 자기가 사랑하던 두 아들을 총으로 쏘아서 죽인 마귀 새끼 같은 공산당 청년을 미워하고 죽이고 싶어하는 대신 그를 불쌍히 여기면서 용서하고 사랑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보통 사람은 원수를 미워하고 죽이고 싶어하는데 어떻게 손양원 목사님은 자기의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미워하지도 않고 죽이려고도 하지 않고 그를 불쌍히 여기며 용서하고 사랑했을까? 말로만 용서하고 말로만 사랑한 것이 아니고 그를 자기 집으로 데려다가 자기의 양 아들로 삼았을까? 저는 그 이야기를 읽으면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세상에 있다는 말인가! 그 후부터 손양원 목사님은 제가 가장 존경하고 가장 사랑하는 본받고 싶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결국 저는 진리보다는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을 더욱 더 귀중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저에게 “눈물의 감동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 중 또 하나는 제가 고등학생인가 대학생 때 주암산 부흥회에 참석해서 찬송가 246장을 부르면서 울고 또 운 일이었습니다. 저는 고등학생과 대학생 시절 한국의 예레미아라고 불리던 김치선 목사님께서 목회하시던 창동교회에 다니면서 은혜를 받곤 했습니다. 김치선 목사님은 새벽마다 “성령이여 강림하사 나를 감화하시고 애통하며 회개할 맘 충만하게 합소서”를 부르시면서 눈물을 흘리며 회개의 기도를 드리시곤 했습니다. 저는 김치선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부흥회에 쫓아 다니면서 은혜를 많이 받곤 했는데 삼각산 관악산은 물론 대구의 주암산까지 쫓아 다니면서 은혜를 받곤 했습니다. 주암산 부흥회 어느 시간에 찬송가 246장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1절 가사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내 주의 나라와 주 계신 성전과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 저는 1절을 부르고 나서 더 이상 찬송을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 라고 찬송을 부를 때 저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피를 흘려서 교회를 사셨을까?” “어떻게 하나님께서 피를 흘려서 교회를 사셨을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너무 놀랍고 너무 감사하고 너무 감격해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또한 “늘 사랑합니다” 라는 가사에 “나는 늘 사랑하지 못하는데” 라고 생각하며 충격을 받으면서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습니다. 제가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면서 우니까 옆에 있던 어른 한 사람이 무슨 슬픈 일이나 어려운 일이 있느냐고 나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울었습니다. 아마 20여분 이상 계속해서 울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피 흘려 사신 귀한 교회를 늘 사랑하여야 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하면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저는 나중에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행 20:28) 라는 말씀을 아주 귀중하게 여기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피로 사신 교회를 더욱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셋째로, 저에게 “눈물의 감동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 중 또 하나는 제가 미국에서 유학할 때 어머니로부터 온 편지를 받아서 읽으면서 울고 또 운 일이었습니다. 제가 어머니를 이별한 지 17년이 되던 때인 1965년 10월 어느 날 북에 계시는 어머니가 저에게 보낸 슬픔과 아픔의 편지 한 장을 받았습니다. 제가 홍콩을 통해서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었습니다. “내 아들 명혁에게 9월 5일 네의 편지와 동시에 외로이 자라 성인이 된 내 아들 명혁이에 얼굴을 더구나 훌륭하게 된 내 아들을... 나는 보고 십고나. 손이라도 한번 꽉 쥐어 보고 십고나. 이 내 기쁨을 지면상으로는 표현할 수 없다. 명혁아! 나는 네 말 그대로 오래 오래 살아서 내 사랑하는 아들 만날 날을 기다리겟다. 몽중엔들 이저스랴 내 명혁이. 부디 건강하기를 축원하면서. 어머니 글 9월 29일” 저는 그 편지를 받아 들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뒷 마당에 가서 읽고 또 읽으면서 울고 또 울고 또 울었습니다. 결국 저는 슬픔과 아픔과 보고픔의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리면서 살아가는 눈물의 존재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 후부터 십자가에 나타난 슬픔과 아픔의 이별에 깊이 공감하게 되었고 “엘리 엘리 라마사빅다니” 라고 부르짖으시던 주님의 부르짖으심에 깊이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슬픔과 아픔을 당하는 여러 종류의 많은 사람들에게로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습니다. 아마 어머니를 이별한 수 많은 중국 연변의 조선족 고아들에게로 가까이 다가가게 된 것도 그런 연유였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와의 이별의 슬픔과 아픔은 저로 하여금 한 평생 눈물을 흘리면서 살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어머니의 편지 사본을 성경책 속에 넣고 다니면서 읽곤 합니다. 편지 사본 한 장은 제 사무실 벽에 부쳐두고 보곤 합니다. 편지 원본은 귀국 후 중앙정보부에게 빼앗겼습니다.





넷째로, 저에게 “눈물의 감동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 중 또 하나는 제가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지 20년 후에 북한을 바라보면서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라고 부르면서 울고 또 운 일이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12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해서 총회신학교에서 교수하던 1977년 11월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중앙정보부 남산 지하실로 끌려가서 밤이 맞도록 두 사람에게 심한 심문과 취조를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북한에 편지를 보낸 일과 주일 성수를 방해하는 군사 정부를 비판한 일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아주 편안하고 당당한 마음으로 그들의 취조에 응했습니다. 오히려 저들을 충고도하고 권면도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풀려 나왔는데 저들은 제가 귀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어머니의 편지 원본을 압수해갔습니다.


어머니의 편지를 압수 당한 지 20여 년이 지난 1997년 1월 5일 뜻밖에 어머니의 편지 사본 한 장을 이모님 한 분으로부터 전해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5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어머니의 예쁜 사진도 함께 전해 받았습니다. 저는 너무나 기뻤습니다. 30여 년 전의 감격이 되살아났습니다. 저는 편지를 읽고 또 읽으며 어머니의 피 맺힌 사랑을 다시금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를 부르고 또 부르면서 다음과 같은 글을 써 보았습니다. 북녘 하늘을 바라보면서 어머니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면서 눈물로 쓴 편지였습니다. 저는 편지를 쓰면서 울고 또 울고 또 울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부르고 또 불러도 못다 부를 그 이름,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부르고 또 불러도 좋고 또 좋은 그 이름,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압수 당했던 어머니의 편지 사본을 20여년만에 다시 찾아 읽고 또 읽고, 그리고 5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어머니의 예쁜 사진을 보고 또 보면서 나는 어머니를 부르고 또 불러 보았습니다. 아,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어머니는 너무나 예쁘고 아름답습니다 나는 나를 부르시는 어머니의 애절한 절규를 한마디 한 마디 다시 들으면서 어머니의 가슴에 피 맺힌 아픔과 슬픔을 가슴으로 다시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나를 너무나 사랑하셨고 너무나 사랑하시다가 나중에는 나를 남쪽으로 떠나 보내시는 가장 큰 희생을 감수하셨습니다. 어머니에게 있어서 맏아들을 스스로 잃는 것보다 더 큰 희생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어머니는 나를 위해서 스스로 가장 큰 희생을 감수하셨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어머니로 하여금 가장 큰 희생을 치르며 가장 큰 아픔과 슬픔을 안게 한 나의 불효를 무엇으로 갚아 드릴 수가 있사옵니까? 어머니, 나의 불효를 책하시고 또 책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도 보고 싶어하는 어머니에게 얼굴 한번 보여 드리지 못했고, 그렇게도 잡아보고 싶어하시는 손 한번 쥐어 드리지 못한 채 20여년이 지났고 30여년이 지났으며 이제는 50여년이 지났습니다. 이 몹쓸 불효 자식을 책하시고 또 책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나는 어머니가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철도 없이 어머니를 훌쩍 떠나 남쪽으로 온 다음 한 2년 동안 나는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밤마다 남 몰래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 물론 이모님들이 나를 잘 보살펴 주셨지만 나는 어머니가 너무나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기도와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나는 부족함이 없는 한 생애를 살아 왔습니다. 아니 너무나 넉넉한 한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이것이 어머니에게 조그마한 위로와 기쁨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하나님을 바로 예배하고 싶은 단 한가지 마음을 가지고 어머니를 떠나 남쪽으로 온 저를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많이 사랑하셨고 너무나 많이 축복해 주셨습니다. 마음껏 공부도 할 수 있게 해 주셨고 마음껏 하나님을 예배하며 섬길 수도 있게 해 주셨습니다. 어머니, 나는 병원에 가는 것도 잘 모를 정도로 건강하게 한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행복한 가정도 이루었습니다. 지금은 여러 가지 일들을 하지만 특히 북한동포 돕기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팔순이 훨씬 지나신 어머니께서 지금 살아 계시다면 나는 어머니를 마음껏 기쁘시게 해 드리고 싶습니다. 어머니의 몸도 씻어 드리고 싶고, 음식도 대접해 드리고 싶고, 그리고 어머니의 품 안에서 함께 잠도 자고 싶습니다. 어머니가 지금 하늘 나라에 계시다면 먼저 순교하신 아버지를 뵈올 터이니 어머니의 슬픔을 거두시고 위로와 기쁨을 아버지와 함께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요사이 나는 하나님께서 어머니를 많이 위로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합니다. 사실 이런 기도는 처음 드려보는 기도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나는 어머니 뵈올 날을 날마다 기다리겠습니다. 먼저 천국에 간 어머님의 손자인 나의 사랑하는 아들 철원이, 나를 늘 칭찬해 주시면서 나에게 신앙의 뿌리를 심어 주신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그리고 누구보다도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해 주신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를 뵈올 날을 기다리면서 하루하루를 바르고 진실하게 살아가겠습니다. 어머니가 진실하게 사는 법을 나에게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어머니를 사랑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머니를 위로하시고 축복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1997년 1월 12일 불효자식 명혁 올림.”





다섯째로, 저에게 “눈물의 감동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 중 또 하나는 뇌수종이라는 불치의 병을 지니고 태어나서 4년 동안 극심한 고통과 아픔을 지니고 살다가 세상을 떠나 하늘 집으로 올라간 철원이를 바라보면서 저는 맨날 울면서 기도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철원이를 경기도 양주시 신세계 공원묘지에 묻고 돌아와서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라는 제목의 글을 썼는데 그 글이 총신대보(1977년 19월 31일) 에 실렸습니다. 저의 제자들이 그 글을 읽고 너무나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고백하고 또 고백했습니다. 그 글을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고생과 수고로운 삶을 다 마치고 이제는 주님의 품 안에서 고운 옷을 입은 동무들과 함께 주님을 섬기며 즐거워하는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네가 즐겨 부르던 찬송소리가 지금도 아빠 귀에 쟁쟁하구나. “예수께로 가면 기쁘리로다. 걱정 근심 대신 재미 많도다. 예수께로 가면 기쁘리로다. 나와 같은 아이 부르셨도다. 영화로운 곳에 있는 동무들 고운 옷을 입고 주를 섬기네” 가사의 뜻을 되새겨 물으며 몇 십 몇 백 번을 아빠와 함께 부르던 그 찬송가의 뜻이 정말 그대로 이루어졌구나! “아빠, 걱정 근심이 아야 아야 이렇게 아픈거지? 재미 많은 게 뭐야? 아프지도 않고 좋고 기쁜 거지? 아빠, 누구와 같은 아이 부르셨지? 이렇게 물어봐” “그래 철원아, 누구와 같은 아이 부르셨지?” “철원이와 같은 아이 부르셨지 뭐” “누가 부르셨나?” “예수님이 부르셨지 뭐” “철원아 네 마음이 슬프나 기쁘나?” “기뻐!” “왜 기쁜가?” “예수 님이 나를 사랑하시니까 기쁘지!”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견디기 어려운 그 아픔 중에서도 너는 그렇게도 잘 참았고 기뻐했지! 철원아 너는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가장 견디기 어려운 괴로움과 아픔을 당하였단다. 머리 속 뇌수의 압력이 너무 심해져 머리뼈가 벌어질 정도의 아픔을 당하면서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울곤 하던 네 모습을 생각만 해도 이 아빠의 가슴은 미어지는 것만 같단다.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너는 아픔을 당할 때마다 아빠에게 기도해달라고 했었지? 이 아빠는 너 때문에 기도하는 법을 차츰 배우게 되었단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여 죄를 뉘우치며 간절하고 진실하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준 사람은 바로 너 철원이었단다. 아빠가 너를 위해 오래 오래(때로는 종일) 기도할 때마다 너는 그렇게도 좋아했지. “아빠는 기도를 잘 해서 최고야!”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그렇게도 괴롭고 아픈 나날을 보내면서도 너는 한 번도 하나님이나 아빠를 원망하지도 않았고 불평하지도 않았지! 마지막 1년 동안 시력을 잃고 아무것도 보지 못하면서도 너는 한번도 답답하다고 불평하지 않았지! 너는 오히려 사람들이 “아이고” “죽겠다” 라고 말하면 “아이고 소리 하지마” “죽겠다 소리 하지마. 그건 나쁜 말이야” 라고 했지. 마치 “나는 이렇게 힘든 괴로움을 당하면서도 ‘아이고 죽겠다’ 라는 말 한 마디 안 하는데 당신들은 왜 그런 소리를 하십니까?” 라고 타이르듯이! 아빠는 너의 마음 속에서 천국의 평화와 기쁨을 볼 때마다 천국이 점점 더 가까워짐을 느끼곤 했단다. 네가 시력을 잃은 마지막 1년 동안 때때로 “아빠 하늘이 보여!” “아빠 예수님이 오셨어” 라고 말하던 뜻을 이제야 분명히 알게 되었구나!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것을 보는 너의 눈을 가리우시고 천국을 볼 수 있는 눈을 여시었던 것을 이제야 분명히 깨닫게 되는구나!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너는 괴로울 때마다 “아빠 나 천국 가고 싶어. 엄마, 아빠, 누나 다같이 천국 가고 싶어. 천국 가고 싶어. 천국에 가면 구주 예수님이 나 아픈 것 완전히 다 고쳐주시지” 이렇게 이야기하곤 했지. 너는 심한 고통을 당할 때마다 이런 말을 하곤 했었지. “아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머리에 가시관 쓰시고 피 흘렸지! 손에도 발에도 못 박히어 피 흘리셨지! 아빠 예수님은 나보다도 더 아프셨지!” 네가 하던 말을 생각할 때마다 나의 가슴은 너무도 귀한 아픔으로 가득히 미어지는 것만 같구나! 너는 예수님 앞에 설 때 그래도 조금은 떳떳함을 가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이 너 위해 당한 고통의 몇 만분지 일을 너도 경험했으니 말이다. 고난의 축복을 나에게 가르쳐 준 사람은 바로 너 철원이었단다.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이 땅에서 4년 동안의 너의 삶은 이 아빠를 위해서 산 값진 삶이었단다. 아빠가 졌어야 할 십자가를 네가 대신 졌으니 말이다. 철원아! 고맙다! 너는 아빠에게 얼마나 귀한 설교와 간증과 교훈을 주었는지 모른다.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나는 네가 너무도 귀하고 사랑스럽고 보고 싶구나! 네가 있는 천국이 그렇게도 그리워지는구나. 너는 지금 무덤에서 잠자는 너의 몸을 바라보며 영화로운 부활의 아침을 기다리고 있지? 철원아 아빠도 너와 꼭 같은 심정으로 예수님이 다시 오실 부활의 아침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단다. 사도 요한이 “예수여, 오시옵소서!” 라고 기도하던 기도가 이제는 아빠의 기도가 되기 시작했단다!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네가 그렇게도 즐겨 부르던 수많은 찬송가! 아빠가 가사를 잘 모르는 찬송을 부를 때마다 네가 가사를 가르쳐주면서 같이 부르던 그 찬송가들을 지금 혼자 불러볼 때마다 너의 귀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만 같구나. 너는 찬송가와 고전음악을 그렇게도 좋아했지. 이제는 천군천사와 함께 마음껏 주님을 찬양하고 기쁘게 노래 하거라.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네가 날마다 즐겨 암송하던 그 수많은 성경 귀절을 지금 혼자 읽어 볼 때 그 말씀들의 뜻을 새롭게 깨닫게 되는구나.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시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네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혜를 잊지 말지어다 저가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네가 늘 암송하던 욥기 23:10 말씀과 같이 네가 가는 길을 하나님은 다 아셨고 너를 보배와 같이 정금과 같이 만드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너를 단련하신 것을 이제야 분명히 깨닫게 되는구나.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네가 비록 견디기 어려운 괴로운 삶을 살았지만, 그러나 너만큼 귀한 삶을 살고 이 세상을 떠난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죄 없는 깨끗한 삶, 고통을 당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위로와 교훈을 안겨주며 천국의 평화와 구원의 즐거움을 간증하며 사는 삶을 사는 것보다 더 귀하고 값진 삶이 어디 있겠니? 아빠는 너에게 주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축복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 새로운 감사와 찬양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단다.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너는 또한 엄마 아빠에게는 비할 수 없는 효자였단다. 세상을 떠나기 석 달 전에는 미국에 가서 전문의사의 진찰도 받았고 할머니를 비롯한 여러 친척들을 만나 인사도 드렸으니 너의 할 도리를 다 했다고 생각한다. 신유의 은사를 받은 현 권사님의 기도를 받은 후에 하늘 나라로 감으로 부모의 마음에 아무런 한스러운 마음을 남기지 않았으니 얼마나 효자였니! 그러나 아빠는 너에게 할 도리를 다하지 못해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모른다. “아빠, 신학지남 원고 써야 돼?” “아빠, 강의 준비하느라고 바뻐?” “아빠, 나하고 좀 놀아!” “아빠, 설교준비 해야 돼?” 아빠는 늘 바쁘게 지내느라고 너하고 같이 이야기하고 놀지 못했단다. 네가 천국으로 가기 4일 전에도 학교에 있는 아빠에게 전화하면서 “아빠, 나 머리 아퍼, 아빠 빨리 와” 라고 했지만 그날도 아빠는 원고 쓰느라고 밤 늦게야 집에 돌아갔단다. 왜 좀 더 일찍 들어가지 못했던가 생각하면 아빠의 가슴은 미어지는 것만 같단다.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미안하다! 그러나 고맙다! 어서 속히 철원이 만날 날만을 기다리겠다!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너는 커서 목사님이 되어 기도도 많이 하고 전도도 많이 하겠다고 늘 말하곤 했지. 네가 참으로 훌륭한 목사님이 되어 하나님께 많은 영광을 돌려보낼 수 있게 되기를 아빠가 늘 기도하던 것을 너도 잘 알지? 철원아 이제는 이 아빠가 너 대신 훌륭한 목사가 되겠다. 철원이의 몫까지 이 아빠가 다 하겠다. 철원이의 소원을 이 아빠가 다 이루어 줄게. 아빠는 너의 몸을 무덤에 묻고 돌아오는 길에 노회에 들려 강도사 인허를 받았단다. 그리고 얼마 있으면 목사 안수도 받게 될 것이다. 너의 몫을 이 아빠가 다 해주마! 아빠의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고통과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위로와 평안과 구원의 복음을 전하다가 보고 싶은 철원이 얼굴을 기쁨으로 대하게 될 그날만을 기다리겠다.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참으로 고맙다. 아빠는 너의 무덤 앞에 다음과 같은 비문을 세우려고 한다. “고난의 의미와 천국의 평화를 가르치고 먼저 주님의 품으로 간 어린 아들 철원이가 영화로운 부활의 아침을 기다리며 여기 편히 쉰다. 주후 1973년 11월 11일에 나고 주후 1977년 10월 10일에 가다.” 』 철원이야말로 부족한 저로 하여금 사랑의 눈물과 슬픔의 눈물과 아픔의 눈물과 회개의 눈물과 기도의 눈물과 감사의 눈물을 계속해서 흘리게 한 보석과 같은 어린 아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구중하고 아름다운 보석과 같은 어린 아들을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들립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 합니다. 오늘 아침 “눈물의 감동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 라는 제목으로 저와 관련된 간증의 이야기들 아홉 가지 중에서 처음 다섯 가지를 했습니다. 저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이지만, 이기적이고 정욕적이고 비판적이고 배타적이고 위선적이고 독선적인 죄인이지만,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서 눈물을 흘리면서 살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 드리고 또 감사 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제가 범한 모든 죄악을 회개하며 눈물을 흘리고, 다른 사람들이 당하는 재난과 고통과 슬픔과 아픔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저에게 베풀어주시는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울면서 살다가 죽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지금은 눈물을 흘리며 울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심성이 메말랐고 우리들의 교회와 가정과 사회와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세속화되고 프로그램과 행사에 너무 치우쳐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사야만 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야만 할 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이웃을 외면하면서 이기적으로 그리고 세상 유행을 따르면서 세속적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하나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울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웃과 동포가 당하는 고통을 함께 아파하며 눈물을 흘리며 울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우리들에게 눈물을 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울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회개의 눈물과 슬픔과 아픔의 눈물과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의 눈물과 감사와 감격과 찬양의 눈물을 흘리면서 살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한국교회의 아버지 길선주 목사님께서 집회 때마다 부르시던 찬송가, 김치선 목사님께서 새벽 기도회 때마다 부르시던 찬송가 177장 “성령이여 강림하사 나를 감화하시고 애통하며 회개할 맘 충만하게 합소서”를 함께 부른 다음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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