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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30]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다섯 가지 삶 (고후5:9, 엡5:10, 롬12:1 ) - 김천 상남교회


제가 2008년 1월 13일 강변교회에서 은퇴한 다음 지난 11년 6개월 동안 주일마다 전국의 작은 교회들을 주로 방문하며 설교를 하고 있는데 2013년 8월 11일 주일 김천 상남교회에 처음으로 와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8년 7월 22일 주일 두 번째로 와서 “올바른 신앙생활”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는데, 오늘 2019년 6월 30일 주일 세 번째로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설교를 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저를 불러주신 박연수 목사님과 성도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전국의 작은 교회들을 방문할 때마다 무슨 설교를 하면 좋겠냐고 담임 목사님들에게 묻곤 하는데 박연수 목사님이 오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에 대한 설교를 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다섯 가지 삶”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쓴다고 고백하면서 우리들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지 시험해보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고후 5:9).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엡 5:10). 사울은 본래는 자기 자신의 소원과 욕망을 채우면서 이기적으로 배타적으로 불신앙적으로 살았는데 죄인중의 괴수인 자기를 “사울아 사울아” 라고 부드럽게 부르시는 십자가와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다음부터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자기의 삶을 모두 쏟아바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다섯 가지 삶”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입니까?



첫째로, 하나님께서 우리들로부터 받으시기를 원하시며 기뻐하시는 것은 울면서 “회개와 참회”의 제사를 정성껏 드리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회개”를 강조하시고 또 강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제일 처음에 전파하신 말씀이 바로 “회개하라”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마 4:17).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바로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말씀도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메시지를 세상에 전파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눅 24:47,48). 부활 승천하신 다음에도 예수님께서는 아시아에 있는 다섯 교회들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시면서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라고 다섯 번 반복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회개와 참회”의 삶으로 시작하고 “회개와 참회”의 삶으로 지속되고 “회개와 참회”의 삶으로 마무리 된다고 생각합니다.

배신자 베드로가 디베랴 바다가에서 회개하고 또 회개한 다음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서 제일 먼저 선포한 말씀도 “회개하라”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37,38). 살인자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던 사울아 회개하고 또 회개한 다음 소아시아 선교지에서 전하고 가르친 것도 “회개와 믿음”의 도리였습니다. “저희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 바니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행 20:18,21). “회개”는 한 번 크게 삶의 방향을 돌이키는 것을 말하고 “참회”는 계속해서 울면서 돌이키고 또 돌이키는 것을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죄인들이 한 번 돌이키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계속해서 울면서 돌이키고 또 돌이켜야 합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님들은 삶의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보다 더 철저하게 “회개와 참회”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고 또 드렸습니다. 그 중의 대표적인 사람이 성 어거스틴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의 아버지들이신 길선주 목사님과 이기풍 목사님께서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회개와 참회”의 제사를 계속해서 드리고 또 드렸습니다. 지금 우리 한국 교회와 사회에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모두가 내 탓이고 모두가 내 잘못이라고 고백하는 “회개와 참회”의 고백과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중학생과 고등학생과 대학생 시절 이성봉 목사님과 김치선 목사님들로부터 회개와 참회의 신앙을 조금씩 물려받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우리들로부터 받으시기를 원하시며 기뻐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몸과 마음과 정성과 물질과 생명을 제물로 드리는 “예배의 제사”를 드리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구원 얻은 신자들에게 제일 먼저 권면한 말씀이 “예배의 제사”를 드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아벨이 양의 첫 새끼를 제물로 드렸을 성부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열납하셨다고 했습니다.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창 4:4). 사실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들을 창조하시고 구원하시는 목적은 우리 죄인들로 하여금 우리들의 몸과 마음과 정성과 물질과 생명을 다 쏟아 바치며 “예배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출애굽의 목적도 성부 하나님께 “예배의 제사”를 드리기 위함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바로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8: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라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9:1).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라”(출10:3). 여기 섬긴다는 말은 “예배의 제사”를 드린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은 말씀을 하나님께서 출3장부터 출12장까지 에서 10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도 “예배”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니라”(요 4:23). 성자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주일성수의 예배를 강조하셨습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마 12:8). 성자 예수님께서는 주일 날 부활하셨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날은 모두 주일 날 새벽과 주일 날 저녁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안식 후 첫날인 주일 아침부터 밤까지 예배 드리면서 설교한 모습이 사도행전 20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행 20:7-11).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구원 받은 신자들이 제일 먼저 힘써야 할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 즉 “예배의 제사”를 드리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롬 12:1).

성부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는 안식일을 종일 거룩하게 지키며 성막과 성전에서 “제사” 드리게 하셨고, 신약시대와 교회 시대에는 주일을 종일 거룩하게 지키며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도록 하셨습니다. 주일을 종일 거룩하게 지키며 교회에서 “예배” 드리는 것이 기독교 신앙과 삶의 중심입니다. 청교도들이 가장 강조한 것은 주일성수와 예배였습니다. 한국교회도 그 초기부터 주일성수와 예배를 강조해 왔습니다. 주일에는 온종일 모든 세속적 업무를 중단하고 예배와 전도와 봉사에 바쳐야 할 것을 엄격히 가르쳤습니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헌법 제 6부 예배모범은 주일성수의 원리를 엄격히 규정했습니다. “이 날은 주일인 즉 종일토록 거룩히 지킬지니 공동 회집으로나 개체로 예배하는 일에 씀이 옳으며 모든 사무와 육신적 쾌락의 일을 폐할지니 세상 염려와 속된 말도 금함이 옳다. 먹을 것까지라도 미리 준비하고 이 날에는 가족이나 집안 사환으로 공동 예배하는 일과 주일을 거룩히 함에 구애가 되지 않도록 함이 옳다.” 구약시대의 안식일성수의 예배와 신약시대의 주일성수의 예배는 앞으로 천국에서 이루어질 천국안식의 예배로 이어진다고 히브리서가 강력하게 지적하면서 지금 주일성수를 철저히 하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히 4:1,9-11). 천국에서 영원토록 계속될 것은 인식일 예배뿐입니다. 목회도 선교도 구제도 다 그치고 맙니다. 지금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주일 예배에 정성을 다하는 사람들이 천국의 인식에 들어간다고 지적했습니다. 저와 우리들 모두와 한국교회가 특별히 힘써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주일성수의 예배”를 정성을 다해서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이 주일을 종일 거룩하게 지키며 정성을 다해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우리들을 축복하시고 우리들의 삶과 운명이 변화됩니다. 그리고 앞으로 하늘에서 이루어질 영원한 안식의 축복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과 평양서문밖교회 주일학교 선생님들이 이인복 명선성 최병목 선생님들러부터 주일성수와 새벽기도와 순교신앙을 조금씩 물려받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우리들로부터 받으시기를 원하시며 기뻐하시는 것은 “사랑과 도움과 섬김”의 손길을 모든 사람들에게 펴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히 13:16말씀이 그 진리를 우리들에게 분명하게 가르쳐줍니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 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 하시느니라”(히 13:16).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이는 “선행”과 “나눔”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놀라운 진리를 성부 하나님께서는 이미 구약시대부터 선포하셨습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니라”(신 10:17-19).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사1:16,17).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사 58:6,7). 성부 하나님께서는 주린 자에게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입히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이라고까지 말씀하시면서 “사랑과 도움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것을 아주 귀중하게 보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도 이웃은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것이 너무너무 귀중하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악한 자를 대적지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39-44). 예수님께서는 산에서 내려오시면서 병자들과 죄인들의 몸을 만지시면서 “사랑과 도움과 섬김”의 손길을 펴셨습니다.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진지라”(마 8:3). 그리고 강도 만나서 매를 맞고 거의 죽게 된 사람에게 “사랑과 도움과 섬김”의 손길을 편 사마리아 사람처럼 우리들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과 섬김”의 손길을 펴면서 살라고 분부하셨습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눅 10:33-37). 성자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자들에게 “사랑과 도움과 섬김”의 손길을 편 것이 곧 주님 자신에게 “사랑과 도움과 섬김”의 손길을 편 것과 같다고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 사람들에게 베푼 선행이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께 드린 헌신과 예배의 제사와 꼭 같은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비슷한 권면의 말씀을 했습니다.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롬 12:17,20). 요사이 한국교회가 처절한 “회개와 참회”도 소홀히 하고, “주일성수의 예배”도 소홀히 하고, “사랑과 도움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것도 소홀히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대신 각종 프로그램과 행사에 치중하고 있는데 너무너무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회개와 참회”와 “예배의 제사”와 “사랑과 도움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데 전력을 다한다면 하나님께서 너무너무 기뻐하실 것이고 한국교회는 교회다운 모습을 되 찾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후에 한경직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들로부터 사랑의 신앙을 조금씩 물려받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넷째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들로부터 받으시기를 원하시며 기뻐하시는 것은 구원의 복음을 땅끝까지 가서 땅의 모든 족속에게 전파하는 “선교적인 삶”을 살고 “선교적인 사역”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는 땅의 모든 족속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시기를 원하시는 선교의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는 세계적이시고 우주적이시고 선교적이시지만 사람들은 모두 본질적으로 개인적이고 인종적이고 민족적이고 국가적이고 반 선교적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부터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12:3).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끝까지 이르게 하리라”(사49:6).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외치라”(욘1:2).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말씀들을 듣고도 그대로 받아드리지 않고 오히려 이방을 멸시하고 정죄까지 했습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외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도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도망을 치기도 했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의 선교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셔서 애굽으로 사마리아의 수가성으로 여리고 성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시기 바로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분부하신 말씀이 “땅끝까지 가라”는 선교 위임령이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부활 승천하신 주님께서 베드로보고 가이사랴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고 마지막에는 베드로와 사도 바울을 반기독교 세력의 중심부인 로마로까지 가게 하셨습니다. 오늘의 현실에서 한국교회와 세계 교회의 선교의 시급한 대상은 공산권과 모슬렘권 이라고 생각합니다. 니느웨와 로마가 정복의 대상이 아닌 선교의 대상이었던 것처럼, 북한과 아프가니스탄 등 공산권과 모슬렘 권은 정복의 대상이 아닌 선교의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나중에 조동진 목사님과 훌러신학교의 선교학 교수님들과 영국의 존 스토트 박사님과 독일의 바이어하우스 박사님들로부터 선교의 신앙을 조금씩 물려받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섯째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삶에서 보시기를 원하시며 기뻐하시는 것은 분노와 증오와 분쟁과 분열로 치닫고 있는 한 반도와 이 세상에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이루도록 최선을 다하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는 창조와 구원의 하나님이시지만 궁극적으로는 “화해와 평화와 통일”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울면서 에서와 “화해”한 이야기를 전해주시면서 우리들도 “화해”하라고 말씀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울면서 자기를 팔아먹은 형들과 “화해”한 이야기를 전해주시면서 우리들도 “화해”하라고 말씀하셨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원수 같은 나라들과도 화해하고 교류하고 함께 예배 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그 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과 앗수르로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사 19:23,24). 성자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화려하고 대단한 예배를 드리기 이전에 먼저 가서 형제와 “화해”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4).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화해”를 이루시기 위함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2:13,16). 지금 저와 여러분들과 한국교회가 힘써야 할 것은 분쟁과 분열로 치닫고 있는 한 반도와 아시아와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화해”의 손길을 펴며 “화해”를 실현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또한 “평화”의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레 26:6). 그리고 독생자를 “평화”의 왕으로 세상에 보내셨습니다(사 9:6). 성자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과 함께 “평화”를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가리켜 우리의 “화평” 또는 “평화”라고 선언했습니다(엡 2:14). 예수님께서는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화평”과 “평화”를 이루면서 살아가라고 분부하셨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마 5:9). 성령의 열매도 화평과 평화라고 지적했습니다(갈 5:22). 야고보도 사도 베드로도 같은 권면을 했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약 3:18).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벧전 3:11). 지금 저와 여러분들과 한국교회가 힘써야 할 것은 전쟁으로 치닫고 있는 한반도와 아시아와 세계에 “평화”의 나무를 심고 “평화”의 꽃을 피우고 “평화”의 열매를 맺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또한 “하나됨”과 “통일”의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에 선지자 에스겔에게 “통일”의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겔 37:17). 성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피를 흘리신 것은 우리 죄인들의 죄를 대속하시고 그리고 서로 원수가 되었던 우리들을 “하나로” 만드시기 위함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만드사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2:16).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 사람들뿐이 아니라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피조물이 “하나 되는” “통일”이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이라고 선언했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0). 성령님의 사역도 하나되게 하시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2:3). 저와 여러분들과 한국교회가 평생토록 염원하며 힘써야 할 것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인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염원을 몸과 마음에 지니고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우리 나라와 아시아와 세계 안에 조금이라도 실현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나중에 한경직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들로부터 화해와 평화와 통일의 신앙을 조금씩 물려받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다섯 가지 삶”이 어떤 삶입니까? 첫째로, 하나님께서 우리들로부터 받으시기를 원하시며 기뻐하시는 것은 울면서 “회개와 참회”의 제사를 정성껏 드리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우리들로부터 받으시기를 원하시며 기뻐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몸과 마음과 정성과 물질과 생명을 제물로 드리는 “예배의 제사”를 드리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우리들로부터 받으시기를 원하시며 기뻐하시는 것은 “사랑과 도움과 섬김”의 손길을 모든 사람들에게 펴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넷째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들로부터 받으시기를 원하시며 기뻐하시는 것은 구원의 복음을 땅끝까지 가서 땅의 모든 족속에게 전파하는 “선교적인 삶”을 살고 “선교적인 사역”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섯째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삶에서 보시기를 원하시며 기뻐하시는 것은 분노와 증오와 분쟁과 분열로 치닫고 있는 한 반도와 이 세상에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이루도록 최선을 다하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하고 또 부족한 저와 여러분들과 한국교회에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다섯 가지 삶을 살게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부족한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기쁘시게 하는 제물 되는 삶을 살게 하시고 제물 되는 죽음을 죽게 하시기를 바라고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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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5  [07/28] 바람직한 교회의 모습과 역할 (마 5:13-16) - 수지 할렐루야교회      21TV 2019/07/29
934  [07/21] 눈물의 감동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 (시 39:12, 56:8) - 청주 양성교회      21TV 2019/07/22
933  [07/14] 가난한자와 병든 자와 죄인들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마 9:12,13 눅 6:20,21) - 오산 진성 교회      21TV 2019/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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