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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2] 신앙 선배님들의 영성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 (


제가 2008년 1월 13일 강변교회에서 은퇴한 다음 지난 11년 11개월 동안 매 주일 전국의 작은 교회들을 주로 방문하면서 설교를 하고 있는데, 2012년 10월 21일 주일 수원 옥토교회에 처음으로 와서 “꿈과 비전” 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4년 3월 9일 주일 두 번째로 와서 “복음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누구신가?”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7년 11월 12일 세 번째로 와서 “성령으로 거듭나는 올바른 신앙생활”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8년 8월 26일 주일 네 번째로 와서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 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했는데, 오늘 2019년 12월 22일 주일 다섯 번째로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설교를 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저를 불러주신 최인주 목사님과 수원 옥토교회 성도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최인주 목사님이 오늘 “올바른 신앙생활”에 대한 설교를 해 달라고 부탁을 해서 오늘 “신앙 선배님들의 영성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 이라는 좀 긴 제목의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부족한 우리들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선한 목자이시고 구주가 되시는 성자 예수님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야 하지만, 또한 우리 신앙의 선배님들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에서 신앙의 선배님들의 이야기를 아주 길게 한 다음 히브리 12장 첫머리에서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라고 권면을 했습니다.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1,2).  


저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이지만 “올바른 신앙 생활”을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하게 된 것은 첫째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와 사랑과 축복 때문이지만 둘째는 신앙의 선배님들이 저에게 물려주신 귀중한 신앙의 영성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에서 목회하시면서 맨날 감옥생활을 하시다가 순교하신 저의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으로부터 순교 신앙의 영성을 조금이라도 물려받게 되었고, 평양 서문밖교회 주일학교에서 저를 가르쳐주신 이인복 명선성 최병목 선생님으로부터 주일성수와 새벽기도와 순교 신앙의 영성을 조금이라도 물려받게 되었고, 제가 11살 때 혼자서 월남한 다음 대구에서 피난 생활을 하던 중학생 시절에 한국의 무디 이성봉 목사님으로부터 회개와 기도와 은혜사모와 성결과 청빈과 재림 신앙의 영성을 조금이라도 물려받게 되었고, 고등학생과 대학생 시절에 한국의 예레미아 김치선 목사님으로부터 눈물의 회개와 은혜사모와 기도와 전도와 헌신의 영성을 조금이라도 물려받게 되었고, 후에는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으로부터 순수한 믿음과 사랑과 소망과 함께 희생적인 섬김과 순교 신앙의 영성을 조금이라도 물려받게 되었고, 한경직 목사님으로부터 회개와 눈물과 기도와 사랑과 온유와 겸손과 화해의 영성을 조금이라도 물려받게 되었고, 박윤선 목사님으로부터 기도와 말씀에 전력하면서 소박함과 진솔함과 따뜻함을 몸에 지니고 충성을 다하는 삶을 사시는 삶의 영성을 조금이라도 물려받게 되었고, 나중에는 정진경 목사님으로부터 온유와 겸손과 포용과 격려와 협력과 따뜻함과 칭찬의 삶을 사시는 신앙의 영성을 조금이라도 물려받게 되었고, 방지일 목사님으로부터 순수함과 섬세함과 정확함과 따뜻함과 사랑과 섬김과 눈물의 영성을 조금이라도 보물로 물려 받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오늘은 대신교단에 속한 수원 옥토교회에 와서 설교를 하기 때문에 부족한 저에게 귀중한 신앙의 영성을 물려주신 대신교단의 창설자이신 김치선 목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대신교단의 창설자이신 김치선 목사님께서는 성결교단의 최고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이성봉 목사님과 함께 부족한 저에게 너무나 귀중한 신앙의 영성을 물려주신 분이십니다. 저는 중학생 시절인 1951년부터 53년까지 대구에서 피난생활을 했는데 이성봉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부흥회에 12번 참석하면서 깊은 은혜와 감동을 받곤 했습니다. 이성봉 목사님은 “회개”를 강조하시면서 “죄 지은 사람이 지옥 가는 것이 아니고 회개하지 않은 사람이 지옥 간다” 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저는 금요일 밤에는 철야기도를 하고 토요일 새벽에는 이성봉 목사님으로부터 안수기도를 받곤 했습니다. 기도 제목이 무엇이냐고 물으시면 “좋은 목사님이 되는 것입니다” 라고 대답을 하곤 했는데 나중에는 묻지도 않으시고 “너 기도제목이 좋은 목사님 되는 거지” 라고 하시면서 안수기도를 해주시곤 했는데 모두 12번이나 안수기도를 해주셨습니다. 너무나 큰 은혜와 사랑과 축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김치선 목사님은 한국의 예레미야이셨고 회개운동과 기도운동과 부흥운동의 아버지와 같은 분이셨습니다. 저는 고등학생과 대학생 시절에 김치선 목사님께서 담임하시던 창동교회(후에는 대창교회로 개명)에 다녔는데 주일 아침과 저녁과 수요일 저녁 예배는 물론 새벽기도회를 빠지지 않았고 예배와 기도 드리는데 전력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김치선 목사님께서는 매일 새벽 “성령이여 강림하사 나를 감화하시고 애통하며 회게 할 맘 충만하게 합소서” 찬송을 부르시고 눈물을 흘리시면서 회개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김치선 목사님은 “회개”를 강조하시면서 설교 시간에 자신의 죄를 공개적으로 고백하며 용서를 구하시기도 했습니다. 저는 중학생 때 이성봉 목사님으로부터 “회개”의 영성을 조금씩 물려 받았는데, 김치선 목사님으로부터 “회개”의 영성을 계속해서 물려 받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하나님의 크신 은혜인지 모릅니다.


저는 그때 중구 회현동 2가 45번지에서 살았는데 새벽기도를 마친 다음에는 남산에 올라가서 30여분 이상 더 성경을 보며 기도하고 집으로 내려와서는 아침 밥을 먹고 30여분 동안 걸어서 서울 고등학교를 다니곤 했습니다. 저는 은혜를 사모하면서 김치선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부흥회는 어디든지 따라다녔는데 서울의 삼각산 관악산은 물론 대구의주암산 부흥회까지 따라다니곤 했습니다. 주암산 부흥회 때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 라는 찬송을 부르게 되었는데 “피 흘려 사신 교회” 라는 가사에 저는 깊은 감동을 받고 너무 감사해서 울고 또 울었고, “늘 사랑합니다” 라는 가사에 늘 사랑하지 못한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면서 울고 또 운 일이 있었습니다. 옆의 사람이 “학생 무슨 슬픈 일이 있어?” 라고 물었지만 저는 대답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울었습니다. 주암산 부흥회에 함께 참석했던 김치선 목사님의 아들 세창군이 저보고 안수 기도를 해 달라고 해서 제가 안수기도를 해준 일도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매년 년 초마다 3일씩 금식 기도를 했는데 저는 언제나 빠지지 않았고 금식기도에 참예해서 열심히 기도하곤 했습니다.


저는 김치선 목사님을 너무너무 존경하며 사랑했고 김치선 목사님의 사랑과 은혜와 가르침을 너무 많이 받았는데 김치선 목사님이 하라고 하시는 일은 무엇이나 다 하려고 했습니다. 한번은 김치선 목사님께서 관악산에 기도원을 짓는데 교인들이 모두 산 아래에서 큰 돌을 열 두 개씩 산 위로 메어 나르라고 말씀했습니다. 어떤 교인들은 귀찮게 생각하고 불평하면서 듣지 않았지만 저는 제 몫으로 큰 돌 열두 개를 나른 다음, 저의 어머니 몫으로 열두 개를 더 날랐고 그리고 저의 아버지 몫으로 열두 개를 더 날랐습니다. 물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주님을 사랑하고 김치선 목사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돌을 날랐습니다. 저에게 “들을 귀”와 “순종하는 마음”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김치선 목사님을 너무너무 좋아하고 존경하고 사랑했습니다. 김치선 목사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영혼이 살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물론 그 때 교인들 중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불평을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김치선 목사님은 매일 새벽마다 울면서 회개의 기도를 드리셨고, 2만 8천 여 동네에 우물을 파게 해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를 하셨습니다. 즉 2만 8천 여 동네마다 교회를 세우게 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무조건 왕십리로 달려갔습니다. 왕십리 들판에 우물을 파기 위해서였습니다. 토요일과 주일 왕십리 들판에 나가서 서울고등학교 학생의 교복을 입고 찬송을 부르면서 아이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설교를 했습니다. 아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점점 많이 모여들어서 주일날 들판에서 예배 드리기가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근처에 있는 어느 초등학교의 교장 선생님을 찾아가서 주일마다 학교의 교실 두세 개를 빌려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결국 주일마다 학교의 교실 두세 개를 빌려서 학생들과 함께 주일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고 3때는 공부에 전념하여야 하는데 저는 서울고등학교 3학년 때 전도와 목회에 전념했습니다. 그런데도 서울대학교 문리대 사학과에 합격하여 역사를 전공하며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대학생이 되어서도 서울대학교 학생의 교복을 입고 토요일과 주일 열심히 전도와 목회를 계속했습니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천막을 구해다가 천막을 치고 “한양 제일교회” 라는 교회 간판을 달았습니다. 아이들 60여명과 어른들 40여명이 모였습니다. 고등학생과 대학생이 시작한 초라한 천막 개척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젊은 엄마 교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한양 제일교회가 제일 좋아요.” 제가 주일 오후 대학생 교복을 입고 노방전도를 하는 것을 어떤 교인이 보고는 “천사가 전도하는 것 같아요” 라는 말도 했습니다. 저는 기분이 아주 좋았습니다. 이 모두가 김치선 목사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사랑과 은혜와 감동과 도전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김치선 목사님과 같은 눈물의 회개와 은혜사모와 기도와 전도와 헌신의 목사님을 저의 신앙의 스승님으로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고 또 드립니다. 그리고 저에게 사모하는 마음과 듣는 귀와 순종할 수 있는 몸과 삶을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신앙 선배님들의 영성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 이란 제목의 설교의 본론의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들이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하는 것이 가장 귀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런 고백과 권면을 했습니다.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고후 5:9).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살전 2:4).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엡 5:10). 그러면 이제부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이 어떤 삶인지에 대한 설교를 시작합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이란 “회개”하면서 살아가는 “회개”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윗은 성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제사가 보통 형식적인 제사가 아닌 상하고 통회하는 “회개”의 제사라고 지적하면서 밤낮 울면서 상하고 통회하는 “회개”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 51:15,17).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 34:18).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시 6:6). 결국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은혜와 특별한 사랑을 받아서 누리게 되었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제일 처음에 전파하신 말씀이 바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4:17). 성자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말씀도 “회개”의 메시지를 세상에 전파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눅 24:47,48). 사도 베드로가 오순절 날 제일 먼저 전파한 말씀도 “회개하라”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행 2:38). 예루살렘교회는 “회개”하므로 시작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소아시아 선교지에서 전파하고 증거한 것도 “회개”와 “믿음”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 바니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행 20:18,21).


“회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의 입문이고 과정이고 출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회개”는 자기가 죄인임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고백하면서 무릎을 꿇고 항복하는 것인데 “회개” 없이는 죄 사함도 구원도 의롭다 함도 천국도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회개”는 한 번 크게 삶의 방향을 돌이키는 데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울면서 돌이키고 또 돌이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을 “참회” 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회개”와 “참회”를 계속해서 가장 많이 가장 처절하게 한 사람이 다윗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도 다윗의 뒤를 이어 처절한 “회개”와 “참회”의 제사를 평생토록 계속해서 드렸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24).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귀중한 종으로 그리고 순교의 제물로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의 처절한 “화개”와 “참회”의 고백 때문에 성 어거스틴과 길선주 목사님과 이기풍 목사님도 사도 바울과 같은 “회개”와 “참회”의 길을 걸으면서 하나님의 귀중한 종들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이성봉 목사님도 김치선 목사님도 한경직 목사님도 박윤선 목사님도 그 뒤를 이어서 맨날 울면서 “회개”와 “참회”의 삶을 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이란 첫째로 “회개”하고 “참회”하면서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회개”와 “참회”가 없는 믿음은 형식적인 믿음이고 위선적인 믿음이고 거짓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셔서 날마다 “회개”와 “참회”의 제사를 드리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게 하시기를 바라고 소원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이란 우리들의 몸과 마음과 눈물과 정성과 소유와 생명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드림”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벨이 양의 첫 새끼를 잡아서 제사를 드렸을 때,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했을 때, 다윗이 상하고 통회하는 눈물의 제사를 드렸을 때, 성부 하나님께서 너무너무 기뻐 받으시면서 저들을 크게 축복하셨습니다. 우리들의 몸과 마음과 눈물과 정성과 소유와 생명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드림”이 곧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영적 예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드림”이 곧 예배입니다. 어린 소년 하나가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께 드렸을 때(요 6:9-11), 베다니 마리아가 지극히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씻었을 때(요 12:3), 막달라 마리아가 울면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었을 때(눅 7:38), 성자 예수님께서 너무너무 기뻐하시면서 저들을 크게 축복하셨습니다. “드림”이 곧 예배입니다. 몸과 마음과 눈물과 정성과 소유와 생명을 드리는 것이 곧 예배입니다. 주일 헌금은 물론 십일조 헌금과 감사헌금과 선교헌금과 구제헌금을 드리는 것이 곧 예배입니다.


기독교는 몸과 마음과 눈물과 정성과 소유와 생명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제사”와 “예배”의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는 안식일을 종일 거룩하게 지키며 성막과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게 하셨고, 신약시대와 교회 시대에는 주일을 종일 거룩하게 지키며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도록 하셨습니다. 주일을 종일 거룩하게 지키며 교회에서 “예배” 드리는 것이 기독교의 중심입니다. 사도 바울이 인식 후 첫날인 주일 아침부터 밤까지 드린 예배의 모습이 사도행전 20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행 20:7-11). 청교도들이 가장 강조한 것이 주일성수와 예배였습니다. 한국교회도 그 초기부터 주일성수와 예배를 강조해 왔습니다. 주일에는 온종일 모든 세속적 업무를 중단하고 예배와 전도와 봉사에 바쳐야 할 것을 엄격히 가르쳤습니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헌법 제 6부 예배모범은 주일성수의 원리를 엄격히 규정했습니다. 우리들이 주일을 종일 거룩하게 지키며 정성을 다해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우리들을 축복하십니다. 그리고 앞으로 하늘에서 이루어질 영원한 안식의 축복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은 앞으로 하늘에서 이루어질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도록 힘쓰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는 점점 주일성수의 영적인 유산을 저버리고 세속화와 인간화로 치닫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불행한 일이고 너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는 부족하고 또 부족하지만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로 주일 날 종일 교회에 가서 예배 드리는 것을 너무너무 좋아했습니다. 강변교회에서 28년 동안 목회하면서 제일 강조한 것이 주일성수와 예배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이란 주일을 종일 거룩하게 지키며 교회에서 “예배” 드리는 일에 모든 정성을 쏟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이란 이웃과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과 “섬김”의 손길을 펴면서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사랑”과 “도움”과 “섬김”의 귀중함을 강조하시고 또 강조하셨습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예수님께서는 또한 세상에 오신 목적이 “섬김”에 있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영국교회와 세계교회의 대표적인 지도자인 존 스토트 박사는 막 10:45 말씀이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가장 잘 묘사하는 성경 말씀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우리들도 주님을 본받아 “섬김”의 삶을 살라고 분부하셨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4,15). 예수님께서는 도움이 필요한 불쌍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삶이 바로 주님 자신을 사랑하고 섬기는 삶이라고 강조하면서 천국은 바로 그런 사람들의 것이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 25:34-3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마 25:45). 그리고 찾아가서 돌아보지 않은 사람은 영벌에 들어가고 찾아가서 돌아본 사람은 영생에 들어가게 된다는 놀라운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마 25:46). 사도 바울도 믿음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사랑”과 “섬김”이 없는 믿음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고전 13:2).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롬 12:13).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롬 12:20).  


불쌍한 이웃에게 사랑”과 “도움”과 “섬김”의 손길을 베푸는 구제와 선행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와 예배라고 성경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사 58:6,7).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히 13: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예루살렘교회의 신자들과 바나바는 밭을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앞에 구제헌금으로 드렸다고 했습니다.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 이러라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번역하면 권위자)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행 4:34-37).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교회의 신자들과 바나바의 선행을 기쁘게 받으시고 축복하셨습니다. 사도행전은 도르가의 선행과 고넬로의 선행과 바나바의 선행과 루디아의 선행을 하나님께서 귀중한 제사로 기쁘게 받으시고 저들을 모두 크게 축복하셨다고 기록했습니다.


성 프랜시스와 손양원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의 믿음은 “사랑”과 “도움”과 “섬김”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감히 이런 분들과 비교할 수 없는 이기적이고 정욕적이고 비판적이고 배타적이고 위선적이고 독선적인 죄인이지만 주님께서 지니셨던 그리고 우리 신앙의 선배님들이 지니셨던 “긍휼”과 “용서”와 “사랑”과 “도움”과 “섬김”의 조그만 아주 조그만 부스러기라도 지니고 믿음의 삶을 올바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프리카로, 방글라데시로, 북한으로, 중국 연변지역으로, 아프가니스탄으로, 파키스탄으로 달려가서 “긍휼”과 “용서”와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펴기도 했습니다.  





넷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이란 근심 걱정 불평 불만 염려 두려움을 모두 다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평안”과 “기쁨”과 “감사”를 지니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 말씀들이 그렇게 살라고 권면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요 14:2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1).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벧전 5:7).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사 41:10).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이란 근심 걱정 불평 불만 염려 두려움을 모두 다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평안”과 “기쁨”과 “감사”를 지니고 그리고 “모험심"과 “담력”을 지니고 막 뚫고 나아가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 속에 들어갈 것을 잘 알면서도 근심 걱정 불평 불만 염려 두려움을 다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평안”과 “기쁨”과 “감사”를 지니고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감사”했습니다(단 6:10). 그리고 “담력”을 지니고 사자 굴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관원들에게 붙잡혀 많이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지만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평안”과 “기쁨”과 “감사”를 지니고 옥 중에서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행 16:25). 사도 바울은 나중에 로마 옥에 갇힌 죄수의 몸이 되었지만 근심 걱정 불평 불만 염려 두려움을 지니는 대신 “평안”과 “기쁨”과 “감사”를 지니고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1-13).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이란 근심 걱정 불평 불만 염려 두려움을 다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평안”과 “기쁨”과 “감사”를 몸에 지니고 그리고 “모험심”과 “담력”을 지니고 막 뚫고 나아가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부족하고 또 부족하지만 어릴 때부터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지니고 살면서 근심 걱정 불평 불만 염려 두려움을 모두 다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평안”과 “여유로움”과 “기쁨”과 “감사”를 몸에 지니고 그리고 “모험심”과 “담력”을 지니고 막 뚫고 나아가면서 한 평생을 즐겁게 살았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사실 저는 한 평생 “모험적인” 일들을 즐기면서 살아오고 있습니다. 제가 11살 때인 1948년 8월 캄캄한 밤에 38선을 혼자서 넘은 일을 생각하면 그것은 대단한 “모험심”과 “담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서울에 와서 서울 중 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후 1년 동안 총신에서 공부한 다음 1962년 8월 단 돈 100불을 가지고 배를 타고 미국으로 유학을 간 일도 대단한 “모험”과 “담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12년 동안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서 목회와 교수의 일을 했는데 주일 성수를 방해하는 박정희 군사정권의 정책을 비판하다가 1977년 11월 20일 아침 남산 중앙정보부에 붙잡혀 가서 하루 종일 다음날 새벽까지 극심한 심문을 받으면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심문하는 사람들을 충고한 일과 잠깐 쉬는 시간에 설교 준비까지 한 일도 대단한 “모험”과 “담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1999년 1월 평양을 방문했을 때 소신껏 말하고 소신껏 비판하고 소신껏 행동한 일도 대단한 “모험”과 “담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2005년 12월 굳게 닫힌 타직 국경과 아프간 국경을 캄캄한 밤에 혼자서 뛰어넘어 아프가니스탄으로 가서 아프간 무라취드에 세운 학교 준공식에 참석한 일도 대단한 “모험”과 “담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이란 근심 걱정 불평 불만 염려 두려움을 모두 다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평안”과 “기쁨”과 “감사”와 함께 “모험심”과 “담력”을 몸에 지니고 막 뚫고 나아가면서 살아가는 삶을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은혜를 부어주시고 또 부어주셔서 고난과 환난이 많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근심 걱정 불평 불만 염려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면서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어떤 일을 당해도 “평안”과 “기쁨”과 “감사”를 몸에 지니고 그리고 “당당함”과 “여유로움”과 “모험심”과 “담력”을 몸에 지니고 막 뚫고 나아가면서 “즐겁고” “멋지고” “행복하게” 살아가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섯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이란 하늘을 바라보면서 “천국 소망”을 지니고 가볍게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8복을 말씀하시면서 첫째 복과 여덟 번 째 복은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라는 복이었고, 팔 복의 결론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 5:12). 예수님께서는 또한 하늘을 바라보시면서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요 14:1,2).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면서 하늘을 우러러 보셨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요 17:1). 사도 바울의 마음과 눈도 항상 하늘을 바라보며 “천국 소망”을 지니고 살았습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 하노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고후 5:1-3).


사도 요한이야말로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서 “천국 소망”을 지니고 가볍게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계 4:1).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계 5:1). “내가 또 보니 힘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 오는데”(계 10:1).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계 12:1). “내가 또 보니 어린양이 시온 산에 섰고”(계 14:1).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계 18:1).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가로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계 19:1).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계 20: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계2 1:1).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계 22:1).


기독교 신앙의 중심과 목표는 새 하늘과 천국입니다. 믿음의 조상들은 모두 이 세상의 본향을 바라보지 않고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며 사모했다고 기록했습니다(히 11:16).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이란 하늘을 바라보며 “천국 소망”을 지니고 기쁘게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은 잠시뿐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 “밤의 한 경점”(시 90:4) 같고 “아침에 돋는 풀”(사 90:5) 같고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게”(약 4:14) 같다고 성경 말씀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하늘 집을 바라보고 준비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마라나타” 라는 인사를 주고 받았는데 “마라나타” 라는 말의 뜻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였습니다. 한국교회의 아버지 길선주 목사님은 요한계시록을 만 독을 하고 암송을 하며 천국을 바라보고 사모하면서 한 평생을 “천국 소망”을 지니고 살았습니다. 한국교회의 무디라고 불리던 이성봉 목사님은 밤에 자다가 옆집 방앗간에서 방아 찢는 소리만 들려도 주님이 오시지 않나 하고 밖으로 나가서 하늘을 쳐다보곤 하셨다는 간증을 저는 중학생 때 여러 번 들었습니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도 감옥에 갇혀 있을 때 힘들고 지칠 때마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손수 지은 “주님 고대가”를 불렀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는 천국 신앙을 포기하고 이 세상의 정치 경제 문화 유행에 정신이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저에게 우리 믿음의 선배님들이 지녔던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부스러기를 조금씩, 조금씩 부어주셨습니다. 저는 참으로 부족하고 또 부족하지만 천국을 바라보면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이별했기 때문에 천국을 더욱 더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아들 철원이가 네 살 때 저의 곁을 떠났기 때문에 천국을 더욱 더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2008년 8월 31일 밤 천국을 바라보면서 “주님 앞에 섰을 때 나의 모습” 이란 제목의 글을 쓴 일이 있었습니다. 저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사랑하는 어린 아들 철원이와 그리고 길선주 목사님과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과 이성봉 목사님과 김치선 목사님과 박윤선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 등이 먼저 가 계시는 천국을 바라보고 사모하는 글을 써 보았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하고 귀중한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이란 어떤 삶인지에 대해서 다섯 가지로 나누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이란 “회개”하면서 살아가는 “회개”의 삶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이란 우리들의 몸과 마음과 눈물과 정성과 소유와 생명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드림”의 삶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이란 “사랑”과 “도움”과 “섬김”의 손길을 펴면서 살아가는 삶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넷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이란 근심 걱정 불평 불만 염려 두려움을 모두 다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평안”과 “기쁨”과 “감사”를 지니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섯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이란 하늘을 바라보면서 “천국 소망”을 지니고 가볍게 살아가는 삶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부족하고 또 부족한 우리들에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우리들로 하여금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면서 그리고 신앙의 선배님들을 바라보고 배우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이라도 살아가게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고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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