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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5]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 (롬 12:1,2 ) - 봉천 옥토교회


제가 2008년 1월 13일 강변교회에서 은퇴한 다음 지난 12년 동안 주일마다 전국의 작은 교회들을 주로 방문하면서 설교를 하고 있는데 7개월 전인 지난 2019년 5월 26일 주일 봉천 옥토교회에 처음으로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새 신자들과의 만남과 대화와 교제”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는데 오늘 2019년 12월 15일 주일 여기 두 번째로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설교를 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저를 불러주신 이수철 목사님과 성도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무슨 제목으로 설교를 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이수철 목사님이 오늘 “주일성수의 신앙”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아주 좋아하고 귀중하게 여기는 제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적이고 영속적인 신앙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예배와 제사의 신앙인데 그 방식은 “안식일성수의 예배”와 “주일성수의 예배” 라고 생각합니다. “예배와 제사”의 중심은 구약시대에는 “안식일성수의 예배”와 제사였고 신약시대에는 “주일성수의 예배”와 제사였습니다. 구약 성경의 십계명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분명하고 강하게 명령했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 20:8-12). 그리고 계속해서 “안식일성수”를 아주 분명하고 강력하게 분부했습니다.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찌니 이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라 무릇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찌며 무릇 그 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쳐지리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제 칠일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무릇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일찌니라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 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출 31:14-17). “안식일성수”의 명령은 구약시대에 그친 것이 아니고 신약시대에 이어졌습니다. 구약의 안식일 제도는 구약 시대에 잠깐 동안 주어진 제도가 아니라 “대대로” 지킬 “영원한” 언약이고 표징이라고 성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 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 하라”(출 31:13,16,17). 구약의 안식일 제도는 신약의 주일을 준비하는 예표였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시고 안식일의 완성자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마 12:8). 예수님께서는 안식 후 첫날인 주일 새벽에 부활하셨고 그리고 첫 주일 이른 새벽에 사랑하는 제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위로와 기쁨과 함께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저녁 즉 첫 주일 저녁에 부활의 주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 열 명에게 나타나셔서 위로와 기쁨과 사명과 함께 성령을 부여하셨습니다. 한 주간이 지난 둘째 주일 저녁에는 도마를 포함한 열 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20:27)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께서 강림하신 날도 예루살렘 교회가 탄생한 날도 안식일 다음 날인 주일날이었습니다. 부활의 예수님께서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던 사도 요한에게 나타나신 날도 “주의 날” 곧 주일이었습니다(계 1:10).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그리고 신자들의 부족한 믿음으로 구원의 축복을 받는 우리 신자들이 제일 먼저 하여야 할 일이 “예배의 제사”를 하나님께 정성껏 드리는 일이라고 분명하게 지적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사도 바울 자신은 안식 후 첫날인 주일날 함께 모인 성도들과 종일 밤중까지 성찬을 하고 말씀을 전하며 예배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 쌔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행 20:7).


신약 성경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신약의 “주일”은 영원한 “천국의 안식일”을 예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천국의 인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히 4:1,11). 앞으로 하늘에서는 목회와 구제와 봉사와 전도와 선교 등 중요한 일들은 모두 사라지고 맙니다. 구원함을 받은 지상의 모든 사람들이 천사들과 함께 그리고 생물들과 함께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돌리는 “천국의 예배”만이 영원토록 계속하게 된다고 사도 요한이 증언했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찌어다 네 생물이 가로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계 5:13,14).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찌로다 아멘 하더라”(7:9-12). 이것이 하늘에서 드려지는 영원한 “안식일 예배” 또는 영원한 “주일 예배”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볼 때 구약과 신약 성경이 가르치는 “안식일성수”와 “주일성수”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중요한 틀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안식일성수”를 통해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며 축복하셨고, 신약시대에는 “주일성수”를 통해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며 축복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하늘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며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세세토록 돌리게 하신다고 말씀했습니다. 결국 구원함을 받은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지금 가장 귀중하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축복 받은 일은 “주일성수와 예배”를 정성껏 드리는 일입니다.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은 성경의 중심적인 신앙이고 기독교의 핵심적인 신앙입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주일성수”를 분명하고 강하게 가르칩니다. 초대교회 교부들은 모두 지금은 “안식일”을 지키지 말고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가르쳤습니다. 2세기경의 문서인 디다케와 2세기의 변증가 져스틴은 “주일성수와 예배”의 사명을 철저하게 가르쳤습니다.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는 321년 칙령을 내려 일요일에는 휴식할 것을 명했습니다. 장로교회의 신앙고백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주일성수와 예배”의 사명을 철저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가르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세대의 모든 사람을 묶는 적극적이고 영속적인 도덕적 계명을 주시므로 일곱 날 중 하루를 안식일로 정하여 자기를 위하여 거룩하게 지키도록 제정하셨다. 이 날에는 그들의 세속적 직업과 오락에 대한 일이나 말이나 생각으로부터 온 종일 쉬어야 할 뿐 아니라 공적 내지 사적 예배행사와 자선의 의무를 수행하는데 모든 시간을 바쳐야 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신학자인 촬스 하지 박사는 “주일성수와 예배”를 무시할 때 가정과 사회는 타락할 수 밖에 없다고 경고했습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 예배모범은 “주일성수와 예배”를 강조하면서 주일을 “종일토록”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고 규정했습니다. 1920년대 한국교회에 큰 부흥 운동을 일으켰던 김익두 목사님은 “주일 범한 사람들은 구약시대 같으면 다 때려 죽일 사람들입니다. 지금은 때려 죽이지는 않지만 죄는 죄입니다” 라고 설교했습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님들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을 지니고 살다가 죽었고, 기도에 전력하는 “새벽기도의 신앙”을 지니고 살다가 죽었고, 모두를 사랑하고 섬기는 “사랑과 섬김의 신앙”을 지니고 살다가 죽었고, 일편단심 죽도록 충성하는 “순교신앙”을 지니고 살다가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길선주 목사님, 이기풍 목사님, 최권능 목사님,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들께서 그런 길을 걸어가셨다고 생각합니다.


청교도들과 한국교회의 신앙의 선배님들은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을 가장 귀중한 신앙으로 여기며 “주일성수”를 철저하게 했는데, 오늘의 한국교회는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을 거의 포기한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교회의 목회자들과 신자들이 주일날에 예배가 아닌 개인적인 사적인 일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식도 여행도 오락도 아무 거리낌 없이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일 저녁 예배를 폐지한 교회들이 너무 많습니다. 한국교회의 일부 목회자들과 교수들은 철저한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을 “율법주의로” 간주하기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기가 막히는 일입니다. 저는 성경의 가르침과 교회사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즉 기독교의 역사적 전통을 무시하고 현대적 유행에 영합하며 “주일성수”를 무시하는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무서운 죄를 범하는 정신 나간 사람들이고 귀신들린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저는 여러 가지 종류의 신앙 중에서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이 가장 귀중한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신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창조하시고 구원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이 하나님께 예배의 제사를 정성껏 드리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에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시는 목적이 하나님을 섬기는데 즉 하나님께 예배의 제사를 드리는데 있다고 출 3장부터 10장까지 10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출 3:12)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출 4:22,23).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출 5:1).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7:16).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8:1).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8:20).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9:1).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9:13).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10:3). “모세가 가로되 왕이라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희생과 번제물을 우리에게 주어야 하겠고 우리의 생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으니 이는 우리가 그 중에서 취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임이며 또 우리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어떤 것으로 여호와를 섬길는지 알지 못함이니이다”(출 10:25,26). 결국 출애굽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독립하여 자유를 누리며 잘 사는데 있다기 보다는 하나님께 예배의 제사를 정성껏 드리는데 있다고 거듭해서 말씀했습니다.  


저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이지만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을 지니고 살기 위해서 11살 때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와 고향을 떠나 38선을 넘어서 남한으로 왔는데 그것이 하나님께서 저에게 베푸신 망극하신 은혜와 축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1살부터 9살까지는 북한의 신의주에서 살았고 10살과 11살 때는 평양에서 살았습니다.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께서 신의주 제이교회에서 9년 동안 목회를 하셨고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2년 동안 목회를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의주에 있을 때는 일본 경찰에게 붙잡혀 자주 감옥에 들어가셨고 평양에 있을 때는 공산당들에게 붙잡혀 자주 감옥을 들어가시곤 했습니다.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께서 일본의 신사참배를 거부하시면서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을 철저하게 지키셨고 공산당 정책을 거부하면서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을 철저하게 지키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감옥에 자주 들어가시는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 생활을 철저하게 하는 것이 아주 귀중하다는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평양 서문밖교회에 다닐 때 주일학교 선생님들인 이인복 명선성 최병목 선생님들의 사랑과 가르침을 받았는데 그 때 “주일성수의 신앙”과 “새벽기도의 신앙”과 “순교신앙”을 계속해서 이어받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제가 평양 제 오 인민학교에 다녔는데 일요일 날 학교에 오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교회에 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예배 드리는데 전력을 다했기 때문에 2년 동안 월요일 마다 야단을 맞고 벌을 서고 정학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결국 저는 “주일성수의 신앙”과 “새벽기도의 신앙”과 “순교신앙”을 지니고 살기 위해서 11살 때인 1948년 8월 부모님과 동생들을 평양에 두고 38선을 뛰어넘어서 남쪽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평양 외곽에 있는 사동탄광 감옥에 계시던 아버지를 찾아가서 여기서는 “주일성수의 신앙”을 지니고 살기가 힘들기 때문에 남쪽으로 가겠다고 말씀 드렸을 때 아버지는 저를 한참 바라보시다가 “그러면 가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를 너무너무 사랑하시던 “나는 너 없이는 못살아” 라고 자주 말씀하시던 어머니께서는 울면서 “그러면 가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아주 조그마한 가방 하나를 들고 혼자서 기차를 타고 해주까지 와서 몇몇 어른들과 함께 캄캄한 밤에 38선을 넘게 되었습니다. 한참 걷고 있는데 갑자기 서서 손을 들지 않으면 총을 쏘겠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북한 경비군인들에게 발각이 된 것이었습니다. 어른들은 모두 그 자리에 섰습니다. 그러나 저는 설 수가 없었습니다.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남쪽을 향해서 혼자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40여분 정도 달린 것 같았습니다. 조금도 무섭지 않았습니다. 약간의 스릴도 느꼈습니다.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는 순수한 믿음을 몸에 지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언덕을 넘고 파밭을 달리고 목에 차는 강을 건너서 남한 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어느 초가집에 들어갔는데 그날 밤 38선을 넘어 온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있었습니다. 청년 한 사람이 저보고 어디로 가냐고 물었습니다. 서울로 간다고 대답을 했더니 누구와 같이 가냐고 물었습니다. 저를 데리고 오던 사람들이 모두 붙잡혔기 때문에 모른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바로 그 청년이 저를 기차에 태워 서울에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저는 그 청년을 “천사”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때 저를 안위하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신 것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서울 중구 을지로 3가 7번지에 살고 계시던 이모님을 만나게 되었고 이모님 집에서 편안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2년 동안 밤마다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고아와 나그네가 된 슬픔과 아픔을 지니게 된 저를 너무 많이 축복해주셨습니다. “주일성수의 신앙”과 “새벽기도의 신앙”과 “순교신앙”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학교들인 서울중학교와 서울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에서 공부하게 하셨습니다. 나중에는 배를 타고 돈 100불을 가지고 미국으로 가서 12년 동안 유학생활을 넉넉하게 하게 하셨습니다. 사실 38선을 혼자서 뛰어 넘은 사건은 저의 삶과 기질과 운명을 바꾸어놓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후 평생 두려움이 없이 모험심과 담력을 몸에 지니고 막 뚫고 나아가는 “막가 파”로 즐겁게 살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은 너무너무 귀중한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님들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을 지니고 살다가 죽었고, 기도에 전력하는 “새벽기도의 신앙”을 지니고 살다가 죽었고, 모두를 사랑하고 섬기는 “사랑과 섬김의 신앙”을 지니고 살다가 죽었고, 일편단심 죽도록 충성하는 “순교의 신앙”을 지니고 살다가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길선주 목사님, 이기풍 목사님, 최권능 목사님, 주기철 목사님, 이성봉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한경직 목사님, 장기려 박사님들께서 그런 길을 걸어가셨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인 제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하나님께 정성껏 예배 드리기 위해서 11살 때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와 고향을 떠나 38선을 넘어서 남한으로 왔는데 그것이 하나님께서 저에게 베푸신 망극하신 은혜였다고 고백하고 또 고백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이별의 슬픔과 아픔이 가득한 한 평생을 너무 많이 축복해 주셨습니다. 저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이지만 “주일성수”를 저의 일관된 신앙과 삶의 원리로 삼게 되었습니다. 저는 12년 동안의 미국 유학을 마치고 1974년 귀국 후 박정희 정부의 주일성수 방해 정책을 비판하면서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을 강조하다가 군사정부의 미음을 사서 1977년 11월 20일 아침 남산 중앙정보부의 지하실로 붙잡혀 가서 밤 늦게까지 다음날 이른 새벽까지 심문과 협박을 극심하게 받은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단 한 번도 불안하거나 두려워한 일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심문하는 두 사람을 책망하기도 했고 충고하기도 하고 권면하기도 했습니다. 저를 심문하던 두 사림이 잠깐 쉴 때 제가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무슨 글을 쓰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다음 주일 설교를 준비하고 있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내가 여기서 언제 나갈지 모르는데 설교 준비는 무슨 설교준비냐고 대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내가 나가고 나가지 않는 것은 당신들의 문제가 아닙니다. 당신들은 다음 주일 교회에 와서 내 설교를 들어야 합니다.” 새벽 두 시쯤 되어서 잠을 자라고 했습니다. 지하의 방이었는데 창문도 없고 책상 하나만 있었고 이불도 없었습니다. 저는 책상에 들어 누어서 아침까지 잠을 아주 잘 잤습니다. 아침에 저를 깨우더니 집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저는 올 때는 좋은 차에 태워주어서 여기 왔는데 갈 때도 좋은 차에 태워주어야 집에 가지 않겠냐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한 사람이 저를 데리고 밖에 나가서 지나가는 아주 좋은 차를 세우게 하고 저를 집에까지 데려다 드리라고 해서 좋은 자동차를 타고 집에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아주 즐겁고 유익한 붙잡혀가서 심문을 당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심문하면서 화를 내던 한 사람은 그 후 10년 동안 나라에 무슨 어려운 일이 있으면 저에게 전화를 걸고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질문을 하곤 했고 제가 답변을 하곤 했습니다. 10년 동안 제가 돈도 받지 않고 자문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강변교회에서 28년 동안 목회하면서 “새벽기도”와 함께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을 제일 귀중하게 여기면서 강조했습니다. 강변교회의 실천 목표 다섯 가지를 정했는데 첫째가 “예배가 생동하는 교회” 였습니다. 주일 저녁 예배에 이따금씩 빠지던 교회 설립 집사인 한도정 집사에게 저녁 예배에 이따금씩 빠지려면 집사의 일을 그만두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한도정 집사가 충격을 받고 저녁예배에 빠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주일 오후 외국 여행을 떠났다가 주일 오후에 돌아온 집사들 10여명을 두 달 동안 모든 직분을 내려놓으라고 공개적으로 말하며 징계하기도 했습니다. 장로님 한 분이 주일날 군에 있는 아들을 보러 군 부대에 갔다 왔기 때문에 두 달 동안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징계한 일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죄와 허물과 잘못을 모두 너무너무 잘 아시면서도 저를 버리시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 삼으시면서 너무 많이 축복하신 이유는 근본적으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망극하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와 축복 때문이지만 두 가지가 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신앙의 절개를 지키다가 순교하신 저의 아버지의 순교의 피 때문이고 또 하나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 사랑하는 부모님과 고향을 떠난 저의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귀중한 신앙은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 이라고 저는 고백하고 또 고백하고 싶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 합니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우리 신앙의 선배님들이 아주 귀중하게 생각하면서 몸에 지니고 살던 “주일성수의 신앙”과 “새벽기도의 신앙”과 “순교신앙”에 충실하는 대신 각종 프로그램과 행사에 치중하는 것은 세속화와 인간화와 타락의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주일 대신 토요일이나 금요일에 예배를 드려도 된다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정신 나간 사람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주일날 오전 예배만 드리고 저녁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계명을 절반만 지키는 것이 될 것입니다. 2014년 10월 10일 0시 20분에 104세로 별세하신 방지일 목사님께서 “주일성수의 신앙”이 해이해지는 것을 아쉬워하시면서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전에는 주일 아침 예배나 저녁 예배에 참석하는 신자들의 숫자가 거의 같았는데 언제부터인가 절반으로 줄어든 것은 문제야요. 그리고 주일 아침에 예배 보고 교인들이 헌금 낸 돈으로 점심 먹고 오후 예배 보고 집으로 가니 참 문제야요. 우리 영등포교회도 오후 예배로 바꾸자는 말이 나오는데 방 목사 죽은 다음에 바꾸자고 해요, 나 참!” 총신의 대표적인 교회사 교수인 박용규 교수님은 한국교회의 영적 침체가 주일성수 무시와 주일저녁 예배 폐지에서 비롯했다고 올바로 지적했습니다.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보다 더 귀중하고 더 축복된 신앙은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순교의 신앙”이 아주 귀중하고 축복된 신앙이지만 순교의 길로 달려가게 된 원인은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을 철저하게 지키기 위함에서 비롯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께서는 감옥에서 교인들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면서 “주일성수”와 “새벽기도”를 철저하게 하라고 당부하시곤 하셨습니다.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은 이 세상에서뿐 아니라 천국에서 영원토록 계속될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하고 또 부족한 저와 여러분들에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저와 여러분들로 하여금 남은 생애에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을 몸에 지니고 “주일성수와 예배”에 최선을 다하면서 귀중하고 아름답게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살다가 죽게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사도 바울의 간절한 권면의 말씀을 다시 읽고 찬송가 348장(213장) “나의 생명 드리니”를 함께 부르고 함께 기도 드리겠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나의 생명 드리니 주여 받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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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8  [02/23] 교회란 어떤 곳인가?” (대하 7:12-16, 마 16:18, 엡 1:23) - 좋은 소식교회      21TV 2020/02/24
967  [02/20]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삶 (신 10:17-19, 마 25:40 ) - 사길사 정기총회 설교(광야교회)      21TV 2020/02/21
966  [02/16]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는 삶 (행 6:4 ) - 김천 상남교회      21TV 2020/02/18
965  [02/09] 모순되는 듯한 놀라운 복음진리 (마 5:3,11,12, 9:12,13) - 그레이스 선교교회      21TV 2020/02/11
964  [02/02] 행복한 가정 (엡 6:1-4 ) - 문경 예스교회      21TV 2020/02/03
963  [01/26] 드림과 나눔의 삶 (롬 12:1, 히 13:16 ) - 수원 동문교회      21TV 2020/01/28
962  [01/19] 나를 만드신 신앙의 선배님들을 바라보며 (히 12:1,2) - 광주 호산나교회      21TV 2020/01/20
961  [01/12] New Year’s wish and prayer” NamYangJu Ammi Mission Church (Rom 12:1, 1 Cor 10:31)      21TV 2020/01/13
960  [01/05] 새해의 소원과 기도 (롬 12:1, 고전 10:31) - 전주 부르심교회      21TV 2020/01/06
959  [12/29] 한 해를 돌아보고 새 해를 맞으며 (시 51:3, 롬 7:24, 시 139:17,18, 딤전 1:12-14) - 전주 대언교회      21TV 2019/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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