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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24]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 (막1:14,15, 롬 12:1, 요13:34, 요14:1-3 ) - 포항 아름다운 고백교회


귀중한 교도소 사역을 하고 있는 이기학 목사님께서 목회하시는 포항 아름다운 고백교회에 제가 2014년 6월 22일 주일 처음으로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신앙생활의 기본 도리”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5년 6월 7일 주일 여기 두 번째로 와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7년 8월 13일 주일 여기 세 번째로 와서 “이기풍 목사님과 죄인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8년 7월 8일 주일 여기 네 번째로 와서 “내게 베푸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 라는 제목으로 간증 설교를 했고, 2019년 4월 28일 주일 여기 다섯 번째로 와서 “복된 성도”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는데, 오늘 여섯 번째로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설교를 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저를 불러주신 이기학 목사님과 김연형 사모님과 포항 아름다운 고백교회 성도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2008년 1월 13일 강변교회에서 은퇴한 후 그 다음 주일부터 지난 11년 11개월 동안 주일마다 전국의 작은 교회들을 주로 방문하면서 설교를 하고 있는데 제가 방문하는 교회의 목사님들에게 무슨 제목으로 설교를 하면 좋겠냐고 묻곤 합니다. 오늘 무슨 제목으로 설교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이기학 목사님이 제가 2014년 6월 22일 주일 여기 처음으로 와서 설교한 “신앙생활의 기본 도리” 라는 제목의 설교를 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그 때 한 설교를 참조하면서 그러나 많이 수정 보완해서 하려고 하는데 설교 제목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 이라는 제목으로 바꾸어서 하려고 합니다. 우리들이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하는 것이 가장 귀중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고백과 권면을 했습니다.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고후 5:9).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살전 2:4).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엡 5:10). 그러면 이제부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시작합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이란 “회개”하면서 살아가는 “회개”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윗은 성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제사가 보통 형식적인 제사가 아닌 상하고 통회하는 “회개”의 제사라고 지적하면서 밤낮 울면서 상하고 통회하는 “회개”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 34:18). 결국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은혜와 특별한 사랑을 받아서 누리게 되었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제일 처음에 전파하신 말씀이 바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4:17). 성자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말씀도 “회개”의 메시지를 세상에 전파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눅 24:47,48). 성자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다음에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에게 편지를 보내시면서 다섯 교회들에게 권면하신 말씀이 바로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오순절 날 제일 먼저 전파한 말씀도 “회개하라”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행 2:38). 예루살렘교회는 “회개”하므로 시작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소아시아 선교지에서 전파하고 증거한 것도 “회개”와 “믿음”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 바니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행 20:18,21).


“회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의 입문이고 과정이고 출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회개”는 자기가 죄인임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고백하면서 무릎을 꿇고 항복하는 것인데 “회개” 없이는 죄 사함도 구원도 의롭다 함도 천국도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회개”는 한 번 크게 삶의 방향을 돌이키는 데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울면서 돌이키고 또 돌이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을 “참회” 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회개”와 “참회”를 계속해서 가장 많이 가장 처절하게 한 사람이 다윗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윗은 밤 낮 울면서 “회개”와 “참회”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시 6:6).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은혜와 특별한 사랑을 받아서 누리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다윗의 뒤를 이어 처절한 “회개”와 “참회”의 제사를 평생토록 계속해서 드렸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24).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귀중한 종으로 그리고 순교의 제물로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의 처절한 “화개”와 “참회”의 고백 때문에 성 어거스틴과 길선주 목사님과 이기풍 목사님도 “회개”와 “참회”의 길을 걸으면서 하나님의 귀중한 종들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이성봉 목사님도 김치선 목사님도 한경직 목사님도 박윤선 목사님도 그 뒤를 이어서 맨날 울면서 “회개”와 “참회”의 삶을 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이란 “회개”하고 “참회”하면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회개”와 “참회”가 없는 믿음은 형식적인 믿음이고 위선적인 믿음이고 거짓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제사는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회개”와 “참회”의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다윗과 사도 바울을 비롯한 우리 믿음의 선배님들이 모두 평생토록 처절한 “회개”와 “참회”의 제사를 드리면서 살았고 그래서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받아서 누리면서 살았습니다. 자기 주장과 자기 고집이 센 사람은 “회개”와 “참회”를 잘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셔서 날마다 “회개”와 “참회”의 제사를 드리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살아가게 하시기를 바라고 소원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이란 우리들의 몸과 마음과 눈물과 정성과 소유와 생명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드림”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벨이 양의 첫 새끼를 잡아서 제사를 드렸을 때,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했을 때, 다윗이 상하고 통회하는 눈물의 제사를 드렸을 때, 성부 하나님께서 너무너무 기뻐 받으시면서 저들을 크게 축복하셨습니다. 우리들의 몸과 마음과 눈물과 정성과 소유와 생명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드림”이 곧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영적 예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구원 받은 죄인들이 제일 먼저 우선적으로 하여야 할 일이 몸을 하나님께 제사로 드리는 “영적 예배” 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드림”이 곧 “예배”입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예배”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니라”(요 4:23). 어린 소년 하나가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께 드렸을 때(요 6:9-11), 베다니 마리아가 지극히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씻었을 때(요 12:3), 막달라 마리아가 울면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었을 때(눅 7:38), 예수님께서 너무너무 기뻐하시면서 저들을 크게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들을 창조하시고 구원하시는 목적은 우리 죄인들로 하여금 우리들의 몸과 마음과 눈물과 정성과 소유와 생명을 다 쏟아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와 “예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바로에게 가서 “내 백성을 보내라”라고 분부하시면서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게 하라 라는 말씀을 출 3장부터 12장까지 10번이나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바로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8:1). 여기 “섬긴다” 리는 말씀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와 “예배”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는 몸과 마음과 눈물과 정성과 소유와 생명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제사”와 “예배”의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성막과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게 하셨고, 신약시대와 교회 시대에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이란 “제사”와 “예배”를 “드리면서”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 “드린다”라는 것은 몸과 마음과 눈물과 정성과 소유와 생명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을 의미하는데 십일조와 주일헌금과 선교헌금과 구제헌금을 드리는 것을 포함한다고 생각합니다.  주일을 종일 거룩하게 지키며 교회에서 “예배” 드리는 것이 기독교의 중심입니다. 사도 바울이 인식 후 첫날인 주일 아침부터 밤까지 드린 예배의 모습이 사도행전 20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행 20:7-11). 청교도들이 가장 강조한 것이 주일성수와 예배였습니다. 한국교회도 그 초기부터 주일성수와 예배를 강조해 왔습니다. 주일에는 온종일 모든 세속적 업무를 중단하고 예배와 전도와 봉사에 바쳐야 할 것을 엄격히 가르쳤습니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헌법 제 6부 예배모범은 주일성수의 원리를 엄격히 규정했습니다. “이 날은 주일인 즉 종일토록 거룩히 지킬지니 공동 회집으로나 개체로 예배하는 일에 씀이 옳으며 모든 사무와 육신적 쾌락의 일을 폐할지니 세상 염려와 속된 말도 금함이 옳다. 먹을 것까지라도 미리 준비하고 이 날에는 가족이나 집안 사환으로 공동 예배하는 일과 주일을 거룩히 함에 구애가 되지 않도록 함이 옳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이란 “제사”와 “예배”를 정성껏 드리면서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와 “예배”를 바로 드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일을 종일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우리들이 주일을 종일 거룩하게 지키며 정성을 다해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우리들을 축복하십니다. 그리고 앞으로 하늘에서 이루어질 영원한 안식의 축복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은 앞으로 하늘에서 이루어질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도록 힘쓰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는 점점 주일성수의 영적인 유산을 저버리고 세속화와 인간화로 치닫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불행한 일이고 너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는 부족하고 또 부족하지만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로 주일 날 종일 교회에 가서 예배 드리는 것을 너무너무 좋아했습니다. 사실 저는 어릴 때부터 한 평생 주일에는 종일 집에 가지 않고 교회에서 예배 드리면서 살았습니다. 강변교회에서 28년 동안 목회하면서 제일 강조한 것이 주일성수와 예배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이란 주일을 종일 거룩하게 지키며 교회에서 “예배” 드리는 일에 모든 정성을 쏟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이란 십자가에 나타난 “긍휼”과 “용서”와 “사랑”을 지니고 “섬김”과 “봉사”의 손길을 펴면서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 산상 설교를 하시면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반드시 “긍휼”과 “용서”와 “사랑”을 지니고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마 5:7).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마 6:14).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예수님께서는 산에서 내려오셔서도 “긍휼”과 “용서”와 “사랑”을 계속해서 강조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마 9:13).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할 찌니라”(마 18:22).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이 바로 “섬김”에 있다고 분명하게 선언하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영국교회와 세계교회의 대표적인 지도자인 존 스토트 박사는 막 10:45이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가장 잘 묘사하는 성경 말씀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우리들도 주님을 본받아 섬김의 삶을 살라고 분부하셨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4,15). 예수님께서는 또한 도움이 필요한 불쌍한 사람들에게 “섬김”과 “봉사”의 손길을 펴는 삶이 바로 주님 자신을 섬기고 봉사하는 삶이라고 강조하면서 천국은 바로 그런 사람들의 것이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 25:34-3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 그리고 찾아가서 돌아보지 않은 사람은 영벌에 들어가고 찾아가서 돌아본 사람은 영생에 들어가게 된다는 놀라운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마 25:46). 사도 바울도 믿음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긍휼”과 “용서”와 “사랑”이 없고 “섬김”과 “봉사”가 없는 믿음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고전 13:2). “너희는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골 3:12-14).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롬 12:13).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롬 12:20).


성 프랜시스와 손양원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의 믿음은 “긍휼”과 “용서”와 “사랑”으로 그리고 “섬김”과 “봉사”로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감히 이런 분들과 비교할 수 없는 이기적이고 정욕적이고 비판적이고 배타적이고 위선적이고 독선적인 죄인이지만 주님께서 지니셨던 그리고 우리 신앙의 선배님들이 지니셨던 “긍휼”과 “용서”와 “사랑”과 “섬김”과 “봉사”의 조그만 아주 조그만 부스러기라도 지니고 믿음의 삶을 올바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프리카로, 방글라데시로, 북한으로, 중국 연변지역으로, 아프가니스탄으로, 파키스탄으로 달려가서 “긍휼”과 “용서”와 “사랑”과 “섬김”과 “봉사”의 손길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펴기도 했습니다.  





넷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이란 근심 걱정 불평 불만 염려 두려움을 모두 다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평안”과 “기쁨”과 “감사”를 지니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 말씀들이 그렇게 살라고 권면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요 14:2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요 15:11).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벧전 5:7).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사 41:10).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이란 근심 걱정 불평 불만 염려 두려움을 모두 다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평안”과 “기쁨”과 “감사”를 지니고 그리고 “모험심"과 “담력”을 지니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 속에 들어갈 것을 잘 알면서도 근심 걱정 불평 불만 염려 두려움을 다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평안”과 “기쁨”을 지니고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감사”했습니다(단 6:10). 그리고 “담력”을 지니고 사자 굴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관원들에게 붙잡혀 많이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지만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평안”과 “기쁨”과 “감사”를 지니고 옥 중에서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행 16:25). 사도 바울은 나중에 로마 옥에 갇힌 죄수의 몸이 되었지만 근심 걱정 불평 불만 염려 두려움을 지니는 대신 “평안”과 “기쁨”과 “감사”를 지니고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1-13).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지닐 때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믿음이 한 겨자씨 만큼만 있어도 못할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7:20, 눅 17:6).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이란 근심 걱정 불평 불만 염려 두려움을 다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평안”과 “기쁨”과 “감사”를 몸에 지니고 그리고 “모험심”과 “담력”을 지니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저는 부족하고 부족하지만 어릴 때부터 믿음으로 살면서 근심 걱정 불평 불만 염려 두려움을 모두 다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평안”과 “여유로움”과 “기쁨”과 “감사”를 몸에 지니고 그리고 “모험심”과 “담력”을 지니고 “막 뚫고 나아가면서” 한 평생을 즐겁게 살았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사실 저는 한 평생 “모험적인” 일들을 즐기면서 살아오고 있습니다. 제가 11살 때인 1948년 8월 캄캄한 밤에 38선을 혼자서 넘은 일을 생각하면 그것은 대단한 “모험”과 “담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서울에 와서 서울 중 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후 1년 동안 총신에서 공부한 다음 1962년 8월 단 돈 100불을 가지고 배를 타고 미국으로 유학을 간 일도 대단한 “모험”과 “담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12년 동안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서 목회와 교수의 일을 했는데 주일성수를 방해하는 박정희 군사정권의 정책을 비판하다가 1977년 11월 20일 아침 남산 중앙정보부에 붙잡혀 가서 하루 종일 다음날 새벽까지 극심한 심문을 받으면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심문하는 사람들을 책망하며 충고한 일과 잠깐 쉬는 시간에 설교 준비까지 한 일도 대단한 “모험”과 “담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1999년 1월 평양을 방문했을 때 소신껏 말하고 소신껏 비판하고 소신껏 행동한 일도 대단한 “모험”과 “담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2005년 12월 굳게 닫힌 타직 국경과 아프가니스탄 국경을 캄캄한 밤에 혼자서 뛰어넘어 아프가니스탄으로 가서 아프간 무라취드에 세운 학교 준공식에 참석한 일도 대단한 “모험”과 “담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순수한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삶이란 근심 걱정 불평 불만 염려 두려움을 모두 다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평안”과 “여유로움”과 “기쁨”과 “감사”와 함께 “모험심”과 “담력”을 몸에 지니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을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은혜를 부어주시고 또 부어주셔서 고난과 환난이 많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근심 걱정 불평 불만 염려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면서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어떤 일을 당해도 “평안”과 “기쁨”과 “감사”를 몸에 지니고 그리고 “당당함”과 “여유로움”과 “모험심”과 “담력”을 몸에 지니고 “막 뚫고 나아가면서” “즐겁고” “멋지고” “행복하게” 살아가게 하시기를 바라고 소원합니다.





다섯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이란 하늘을 바라보면서 “천국 소망”을 지니고 가볍게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8복을 말씀하시면서 첫째 복과 여덟 번 째 복은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라는 복이었고, 팔 복의 결론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 5:12). 예수님께서는 또한 하늘을 바라보시면서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요 14:1,2).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면서 하늘을 우러러 보셨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요 17:1). 사도 바울의 마음과 눈도 항상 하늘을 바라보며 “천국 소망”을 지니고 살았습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 하노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고후 5:1-3).


사도 요한이야말로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서 “천국 소망”을 지니고 살았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계 4:1).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계 5:1). “내가 또 보니 힘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 오는데”(계 10:1).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계 12:1). “내가 또 보니 어린양이 시온 산에 섰고”(계 14:1).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계 18:1).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가로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계 19:1).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계 20: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계2 1:1).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계 22:1).


기독교 신앙의 중심과 목표는 새 하늘과 천국입니다. 믿음의 조상들은 모두 이 세상의 본향을 바라보지 않고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며 사모했다고 기록했습니다(히 11:16).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 이란 하늘을 바라보며 “천국 소망”을 지니고 기쁘게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은 잠시뿐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 “밤의 한 경점”(시 90:4) 같고 “아침에 돋는 풀”(사 90:5) 같고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게”(약 4:14) 같다고 성경 말씀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하늘 집을 바라보고 준비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마라나타” 라는 인사를 주고 받았는데 “마라나타” 라는 말의 뜻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였습니다. 한국교회의 아버지 길선주 목사님은 요한계시록을 만 독을 하고 암송을 하며 천국을 바라보고 사모하면서 한 평생을 “천국 소망”을 지니고 살았습니다. 한국교회의 무디라고 불리던 이성봉 목사님은 밤에 자다가 옆집 방앗간에서 방아 찢는 소리만 들려도 주님이 오시지 않나 하고 밖으로 나가서 하늘을 쳐다보곤 하셨다는 간증을 저는 중학생 때 여러 번 들었습니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도 감옥에 갇혀 있을 때 힘들고 지칠 때마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손수 지은 “주님 고대가”를 불렀습니다.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내 주님 오시기만 고대합니다. 가실 때 다시 오마 하신 예수님,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고적하고 쓸쓸한 빈 들판에서, 희미한 등불만 밝히어 놓고 오실 줄만 고대하고 기다리오니,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먼 하늘 이상한 구름만 떠도, 행여나 내 주님 오시는가 해 주님 계신 그 곳에 가고 싶어요.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천 년을 하루같이 기다린 주님, 내 영혼 당하는 것 볼 수 없어서 이 시간도 기다리고 계신 내 주님, 오 주여 이 시간에 오시 옵소서.”


오늘날 한국교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는 천국 신앙을 포기하고 세상의 정치 경제 문화 유행에 정신이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저에게 우리 믿음의 선배님들이 지녔던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부스러기를 조금씩, 조금씩 부어주셨습니다. 저는 참으로 부족하고 또 부족하지만 천국을 바라보면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이별했기 때문에 천국을 더욱 더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아들 철원이가 네 살 때 저의 곁을 떠났기 때문에 천국을 더욱 더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2008년 8월 31일 밤 천국을 바라보면서 “주님 앞에 섰을 때 나의 모습” 이란 제목의 글을 쓴 일이 있었습니다. 저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사랑하는 어린 아들 철원이와 그리고 길선주 목사님과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과 이성봉 목사님과 김치선 목사님과 박윤선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 등이 먼저 가 계시는 천국을 바라보고 사모하는 글을 써 보았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하고 귀중한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이란 어떤 삶인지에 대해서 다섯 가지로 나누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이란 “회개”하면서 살아가는 “회개”의 삶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이란 우리들의 몸과 마음과 눈물과 정성과 소유와 생명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드림”의 삶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이란 십자가에 나타난 “긍휼”과 “용서”와 “사랑”을 지니고 “섬김”과 “봉사”의 손길을 펴면서 살아가는 삶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넷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이란 근심 걱정 불평 불만 염려 두려움을 모두 다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평안”과 “기쁨”과 “감사”를 지니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섯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이란 하늘을 바라보면서 “천국 소망”을 지니고 가볍게 살아가는 삶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부족하고 또 부족한 우리들에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우리들로 하여금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면서 그리고 신앙의 선배님들을 바라보고 배우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이라도 살아가게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고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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