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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7] 사랑으로 하나되어 섬기는 삶 (요 13:34, 막10:45, 출8:1) - 강변교회


제가 2008년 1월 13일 강변교회에서 은퇴한 다음 지난 12년 동안 주일마다 전국의 작은 교회들을 주로 방문하면서 설교를 하곤 했고 강변교회는 일년에 두 번씩 방문하면서 설교를 하곤 했는데 전국의 작은 교회들을 방문할 때는 담임 목사님들에게 무슨 제목으로 설교를 하면 좋을지를 묻곤 했고 부탁하는 제목의 설교를 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강변교회를 방문할 때는 무슨 제목으로 설교를 하면 좋을지를 묻지 않고 부활주일에는 부활에 대한 설교를 추수감사주일에는 감사에 대한 설교를 제가 정해서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추수감사주일에는 처음으로 강변교회의 이수환 목사님에게 오늘 무슨 제목으로 설교를 하면 좋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수환 목사님이 “사랑으로 하나되어 섬기는 삶”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면 좋겠다고 말을 했습니다. 아주 좋은 제목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추수감사주일에 “사랑으로 하나되어 섬기는 삶”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제가 설교를 두 달 전에 준비해서 지난 9월 6일 제 홈페이지 말씀,칼럼에 올렸는데 그 후에도 수정 보완을 많이 했습니다. 기독교에 있어서 “사랑”보다 더 귀중한 것은 없고, “하나”되는 것 보다 더 귀중한 것은 없고, “섬김”보다 더 귀중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사랑”과 “하나됨”과 “섬김”의 하나님이시고 우리들도 “사랑”과 “하나됨”과 “섬김”의 삶을 살라고 말씀하시는 분이라는 말씀을 하려고 합니다.



첫째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는 모두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셨다고 요 3:16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사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죄악이 하늘에까지 상달한 니느웨를 사랑으로 용서하셨고 간음죄와 살인죄를 범한 다윗을 사랑으로 용서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의 은혜를 이렇게 찬양했습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시 103:1-14). 성자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인들을 “사랑”하셔서 생명을 버리신다고 말씀하시면서 우리들도 서로 “사랑”하라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 10:14,1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인들을 “사랑”하시되 우리들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우리들을 위해서 탄식하시면서 기도하신다고 로마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사도 바울은 성령의 열매는 무엇보다 먼저 “사랑”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갈 5:22,23). 사도 바울은 방언도 천사의 말도 예언도 믿음도 구제로 소망도 모두 귀중하지만 제일 귀중한 것은 “사랑”이라고 아주 강력하게 선언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 먼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둘째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는 “하나됨”과 “통일”의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에서와 친밀하게 화해한 장면을 기록해서 주셨고 요셉이 자기를 노예로 팔아먹은 형들의 입을 맞추며 안고 울면서 화해한 장면을 기록해서 주셨고 나중에는 선지자 에스겔에게 “하나됨”과 “통일”의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겔 37:17). 성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유다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원수와 같은 애굽과 앗수르와도 서로 “교류”하면서 “하나”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과 앗수르로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사 19:23,24). 성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피를 흘리신 것이 우리 죄인들의 죄를 대속하시고 그리고 서로 원수가 되었던 우리들을 “하나”로 만드시기 위함이라고 에베소서와 갈라디아서가 지적했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0).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만드사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2:16).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 성령님의 사역도 “하나”되게 하시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2:3). 사실 성령님께서 예루살렘에 강림하시므로 3천 여명의 이방인들이 모두 교제하면서 “하나”가 되었다고 행 2장은 지적했습니다.

셋째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인들을 섬기시면서 까지 우리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너무너무 귀중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세계적인 복음주의 신학자인 존 스토트 박사님은 막 10:45 말씀이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가장 분명하게 지적하시는 말씀이라고 하셨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두루 다니시면서 죄인들과 병자들을 사랑으로 섬기시는 착한 일을 하셨다고 사도 베드로가 지적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 10:38). 여기 성자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병자들을 사랑으로 섬기시는 착한 일을 하신 일이 혼자서 하신 일이 아니고 성부 하나님과 함께 하신 일이라고 지적하셨고 구리고 성령 하나님과 함께 하신 일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성자 예수님과 함께 우리 죄인들을 사랑으로 섬기시는 너무너무 고마우신 분이십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 6:38,39). 성자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여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성부 하나님께서는 성자 예수님과 함과 우리 죄인을 사랑으로 섬기신 너무너무 귀중하고 고맙고 감사하신 분이십니다. 성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 죄인들을 사랑으로 섬기게 하신 분이 바로 성부 하나님이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도 언제나 성자 예수님과 함께 하시면서 우리 죄인들을 사랑으로 섬기셨습니다.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마 4:1). 성자 예수님께서는 태어나실 때부터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셨고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셨고 그리고 승천하시기 바로 전에는 제자들에게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과 권능을 받아 땅끝까지 이르러 십자가의 복음과 사랑을 전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인들을 섬기시면서 까지 우리 죄인들을 사랑하신 “섬김”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 죄인들을 향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바로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8: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되 내 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9:1). 이와 같은 말씀들이 출 3장에서 12장까지 열 번이나 나옵니다. 성부 하나님은 우리 구원받은 사람들의 “섬김”의 대상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우리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들을 사랑하며 도우며 섬기라는 말씀도 분명하게 하셨습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의 신이시며 주의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니라”(신 10:17-19).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사 58:6,7). 성자 예수님께서는 주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 “섬김”의 삶을 살라고 분부하셨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요 13:14). 성령 하나님께서도 우리들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우리들을 위해서 탄식하며 기도하시면서 우리들로 하여금 섬김의 삶을 살도록 도와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부족하고 또 부족한 우리 죄인들이 하나님의 망극하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와 축복으로 “사랑으로 하나되어 섬기는 삶”을 조금이라도 살게 되는 것보다 더 귀중하고 더 아름다운 것은 세상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사랑”이 너무너무 귀중하고 “하나”되는 것이 너무너무 귀중하고 “섬김”이 너무너무 귀중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사랑으로 하나되어 섬기는 삶”을 살았던 우리 신앙의 선배님들의 귀중한 삶과 사역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어머니 교회라고 할 수 있는 예루살렘교회는 “사랑”과 “하나됨”과 “섬김”이 충만한 너무너무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유대인들은 물론 메소보다미아, 가바도기아, 애굽, 구레네, 로마, 아라비아 등 십 사오 개 지역에서 온 다 문화 다 인종들 수 천 명이 함께 모여 친밀한 “사랑”의 “교제”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 2:41,42). 예루살렘교회는 코이노니아 즉 “사랑”의 “교제”가 충만한 “하나됨”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사실 “사랑” 안에서 친밀한 교제와 “하나됨”이 없는 교회는 참된 교회도 아름다운 교회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회사이고 학원이고 공연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설교 위주도 아니고 행사 위주도 프로그램 위주도 아닙니다. 주님과 친밀하게 “사랑”으로 “교제”하고 성도들과 친밀하게 “사랑”으로 “교제”하고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 친밀하게 “사랑”으로 교제하며 “하나됨”을 이루는 것이 교회의 귀중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 안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부자들이 친밀하게 “사랑”으로 “교제”하고, 건강한 사람들과 병든 사람들이 친밀하게 “사랑”으로 “교제”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런 교회를 보시고 너무너무 기뻐하실 것이고 사회와 백성들도 감동을 받으며 존경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다운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를 원하는 교회들은 주님과 친밀하게 “사랑”으로 “교제”하고 그리고 성도들은 물론 모든 사람들과 친밀하게 “사랑”으로 “교제”하는데 전혀 힘써야 할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친밀한 교제를 이룬 “사랑”의 “교제”가 충만한 “하나됨”을 이룬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결국 예루살렘 교회는 “섬김”과 “봉사”가 충만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4-47).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이러라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번역하면 권위자)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행 4:32-37). 예루살렘교회는 “사랑”의 “교제”와 함께 “섬김”과 “봉사”가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을 제일 길게 제일 상세하게 서술한 모습이 바로 “섬김”과 “봉사”의 모습이었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섬김”과 “봉사”와 “구제”의 손길을 펴는 데 제일 힘을 많이 썼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여 “섬김”과 “봉사”와 “구제”의 사역을 전적으로 하게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루살렘 교회가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게 되었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구원 받는 사람들이 날마다 더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행 6:7). 전도가 저절로 이루어졌습니다. 전도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니었고 전도하는 기술을 습득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기도하고 회개하고 말씀의 가르침을 받고 그리고 친밀하게 “사랑”으로 “교제”하면서 “섬김”과 “봉사”와 “구제”의 사역에 전력을 다했더니 전도가 저절로 이루어졌습니다. 부흥이 저절로 이루어졌습니다.



둘째로, 이방에 세워진 첫 번째 교회였던 안디옥교회도 “사랑”과 “하나됨”과 “섬김”이 충만한 너무너무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안디옥교회는 스데반 집사의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과 "원수 사랑"의 순교의 피로 세워진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전하는데”(행 11:19). 안디옥 교회는 스데반의 순교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예루살렘으로부터 흩어진 피난민 신자들이 안디옥에 와서 세운 소박한 교회였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씨앗은 스데반 집사의 “사랑”과 “순교”의 피였습니다. 그러므로 안디옥 교회는 순수한 교회였고 보배로운 교회였습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신자들이 안디옥에 와서 “사랑”의 기도와 “사랑”의 전도를 열심히 했습니다. 저들이 순수한 “사랑”으로 주 예수를 전파했을 때 주의 손이 저들과 함께 했습니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행11:21). 하나님께서 저들의 “사랑”의 전도를 축복하셨습니다. 결국 수많은 안디옥 사람들이 믿고 주님께로 돌아 오게 되었고 그래서 안디옥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순교자의 “사랑”의 피와 피난민들의 “사랑”의 기도와 “사랑”의 전도로 세워진 “사랑”의 교회였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또한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함께 모인 다 인종, 다 문화, 다 계급, 다 사회 교회였습니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행 13:1). 안디옥 교회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함께 모인 사랑의 “교제”와 “하나됨”의 교회였습니다. 바나바는 구브로 섬 출신의 유대인이었습니다. 시므온은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이었습니다. 루기오도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이었습니다. 마나엔은 귀족 출신의 유대인이었습니다. 사울은 다소 출신의 유대인었습니다. 안디옥 교회 안에는 수리아 출신의 이방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사랑”으로 교제하면서 “하나됨”을 이룬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오래 전부터 계획하시고 소원하셨던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결국 “사랑”과 “섬김”의 사역에 최선을 다하게 되었습니다. 안디옥 교회 설립의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바나바였는데 그는 무엇보다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자라”(행 11:24). “착한” 사람이 힘쓰는 일은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일인데 안디옥 교회는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사랑”과 “섬김”의 사역이 너무너무 귀중한데 “사랑”과 “섬김”의 사역에 무관심한 예배를 하나님께서는 받지 않으신다고 이사야와 야고보와 사도 요한 등이 강조해서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사 1:15-17). “사랑”과 “섬김”의 사역이 너무나 귀중한 사역임을 나타내 보여주기 위해서 바나바와 사울이 직접 “구제” 헌금을 가지고 큰 흉년이 든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주님께서 원하시고 뜻하신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 25:35,36). 안디옥 교회는 “사랑”과 “하나됨”과 “섬김”과 “구제” 사역에 최선을 다한 그래서 주님의 뜻을 이룬 너무너무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셋째로, 사도 바울이 제일 사랑하고 가장 귀중하게 여겼던 빌립보교회도 “사랑”과 “하나됨”과 “섬김”이 충만한 그래서 “기쁨”이 충만한 너무너무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사도 바울이 다른 데로 가지 않고 마게도냐의 빌립보로 가서 십자가 사랑의 복음을 전하게 되었는데 루디아를 비롯한 발립보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을 믿고 친밀한 “교제”와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저는 강변교회를 시작하면서 빌립보교회를 강변교회의 모델로 삼았습니다. 빌립보 강가에서 사도 바울이 루디아에게 십자가 사랑의 복음을 전했을 때 그와 온 집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친밀한 “사랑”과 “교제”와 “섬김”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계속해서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관원들에게 붙잡혀 매를 많이 맞고 빌립보 강옥에 잡혀가게 되었는데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열리고 죄수들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간수들이 너무 놀아서 죄수들이 다 도망을 간줄 알고 자살을 하려고 했는데 사도 바울은 도망을 가지 않고 간수들에게 부드러운 사랑과 도움과 격려의 손길을 폈다고 했습니다. 결국 간수들이 감동을 받고 바울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크게 소리질러 가로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 저희를 데리고 나가 사도 바울은 입을 열어 십자가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 결국 간수와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결국 발랍보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발립보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빌립보교회는 “사랑”과 “교제”와 “섬김”이 충만한 너무너무 귀중한 교회가 되었는데 빌립보교회에 대한 사도 바울의 진솔한 사랑의 고백을 사도 바울이 나중에 로마 옥중에서 이렇게 써서 보냈습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됨이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빌 1:3-1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빌 4:1-3). 사도 바울은 봉사와 섬김에 전력한 빌립보교회를 위해서라면 자기 몸을 제물로 드려도 자기는 기뻐하고 또 기뻐한다는 고백까지 했습니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찌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빌 2:17,18). 빌립보교회는 “사랑”과 “하나됨”과 “섬김”이 충만한 너무너무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였다고 생각합니다. 빌립보서에는 “교제” 또는 “참예”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오고 “섬김” 이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오고 “기쁨”이라는 말이 성경 중에서 제일 많이 17번이나 나옵니다.  빌립보교회는 친밀한 “사랑”과 “교제”와 함께 따뜻한 “섬김”이 충만한 아주 귀중한 교회였습니다. 사실 빌립보교회의 설립자 루디아는 “착함과 섬김”의 사람이었습니다. 루디아는 사도 바울이 전하는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빌립보 강변에서 온 가족이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루디아는 믿음과 사랑과 결국 “섬김”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루디아는 하나님을 “섬기고” 사도 바울을 “섬기고” 가족을 “섬기고” 빌립보 사람들을 “섬기고” 빌립보 교회를 “섬기는” “섬김”의 사람으로 새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루디아는 “섬기는” 사람이 되었고 하나님께 귀중하게 쓰임 받는 사람이 되었고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빌립보서의 두드러진 아름다운 주제가 “사랑”과 “교제”와 “섬김”과 “기쁨”인데 “사랑”과 “교제”와 “섬김”과 “기쁨”은 루디아의 “사랑”과 “교제”와 “섬김”과 “기쁨”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루디아는 “사랑”과 “교제”와 “섬김”과 “기쁨””의 모범을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강변교회를 시작하면서 교회의 표어를 빌립보교회를 생각하면서 “서로 돌아보고 기쁨으로 섬기면서” 라고 정했습니다. 그리고 권사님들과 여집사님들에게 루디아와 같은 “사랑”과 “교제”와 “섬김”의 사람들이 되라고 항상 권면하곤 했습니다. 사실 강변교회의 모델은 빌립보 강변에 세워진 빌립보교회였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몇 마디를 간단하게 드리려고 합니다. 제주도 복음화의 선구자였던 이기풍 목사님과 윤함애 사모님도 친밀한 “사랑”과 “교제”와 “섬김”이 충만한 너무너무 귀중하고 아름다운 삶을 사셨습니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과 정양순 사모님도 친밀한 “사랑”과 “교제”와 “섬김”이 충만한 너무너무 귀중하고 아름다운 삶을 사셨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존경하는 한경직 목사님도 친밀한 “사랑”과 “교제”와 “섬김”이 충만한 너무너무 귀중하고 아름다운 삶을 사셨습니다. 지금 우리들에게 어떤 삶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우리들이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축복 가운데서 “사랑”과 “하나됨”과 “섬김”을 조금이라도 몸에 지니고 “사랑”과 “하나됨”과 “섬김”의 삶을 살아가는 삶이 너무너무 귀중하고 아름다운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강변교회의 표어처럼 “서로 돌아보고 기쁨으로 섬기면서” “사랑으로 하나되어 섬기는 삶”을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살게 하시기를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래서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강변교회와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라고 소원합니다. 이수환 목사님과 성도 여러분들을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축복하셔서 귀중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자녀들과 일꾼들이 다 되시기를 바라고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위로와 평안과 기쁨과 축복이 여러분들 모두에게 항상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소원하며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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