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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20] 사도행전에 나타난 신앙의 선배님들을 바라보며 (히 12:1,2 행 2:42-47) - 성주 계정교회


제가 2010년 3월 19일 주일 성주 계정교회에 처음으로 와서 오전에는 “즐겁게 살도록 지음 받은 존재”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오후에는 “감사하며 살도록 지음 받은 존재”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2013년 6월 9일 주일 여기 두 번째로 와서 “하늘을 바라보며 천국소망을 지니고”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4년 8월 31일 주일 여기 세 번째로 와서 “신앙생활의 기본 도리”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2015년 9월 13일 주일 여기 네 번째로 와서 “주일성수와 교회사랑”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6년 7월 31일 주일 여기 다섯 번째로 와서 “착함과 선행의 신앙생활”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2018년 12월 2일 주일 여기 여섯 번째로 와서 “천국 소망을 지닌 신앙의 선배님들을 바라보며”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오늘 2019년 10월 20일 주일 성주 계정교회에 일곱 번째로 와서 “사도행전에 나타난 신앙의 선배님들을 바라보며”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저의 제자인 윤찬열 목사님이 성주 계정교회의 성도들과 제직들의 신앙 성장을 바라고 소원하면서 오늘 성도들과 제직들의 신앙 성장에 대한 설교를 해 달라고 부탁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사도행전에 나타난 신앙의 선배님들을 바라보며”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우리들의 신앙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야 하지만 동시에 신앙의 선배님들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신앙의 선배님들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라고 권면을 했고 그리고 12장에서는 성자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권면을 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1,2).


우리들의 신앙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야 하지만 동시에 신앙의 선배님들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성자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다음 성령께서 임하시므로 이 세상에 세워진 어머니 교회인 예루살렘교회와 성도들의 삶과 사역의 모습을 살펴보고 그리고 사도행전에 나타난 여러 교회들과 성도들의 삶과 사역의 모습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저는 예루살렘교회와 사도행전에 나타난 여러 교회들과 성도들의 삶과 사역의 공통적인 특징 하나가 “착함”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사도행전이 사도들의 행전이고 성령님의 행전이지만 사실은 “착한” 사람들의 행전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와 같은 깨달음을 지니게 되었을 때 구약의 성부 하나님의 모습과 신약의 성자 예수님의 모습과 성령 하나님의 모습도 모두 “착함”의 하나님 이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한 평생을 살고 나서 할 수 있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사회에서 제일 좋은 사람과 제일 필요한 사람은 “착한 사람” 이라는 말입니다. 돈이 많은 사람도 아니고 지식이 많은 사람도 아니고 능력이 많은 사람도 아니고 얼굴이 예쁜 사람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 나라와 우리 교회에 제일 좋은 사람과 제일 필요한 사람은 “착한 사람” 이라는 말입니다.


저는 성부 하나님께서 제일 기뻐하시는 사람도 “착한 사람” 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시는 “착하신” 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신 10:18,19). “너희는 선행을 배우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사 1:17). 성부 하나님께서는 악독이 가득한 니느웨 사람들과 동물들까지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신 너무너무 “착하신” 분이셨습니다(욘 4:11). 성자 예수님께서도 모든 죄인들과 모든 병자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는 “착하신” 분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마 9:36).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행 10:38). 그리고 성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서 착한 행실을 나타내 보이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성자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십자가에 달아 못 박는 로마군인들까지 불쌍히 여기시고 저들을 위해서 기도하신 너무너무 “착하신” 분이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다”(눅 23:34). 성령 하나님께서도 우리들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우리들을 위해서 탄식하시면서 기도하시는 “착하신” 분이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그러면 이제부터 사도행전에 나오는 “착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저는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행전이고 성령님의 행전이지만 사실은 “착한 사람들”의 행전 이라고 생각합니다. “착한 사람들”을 통해서 사도들과 성령님께서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착한 사람”이란 자기의 유익을 추구하는 대신 다른 사람의 유익을 추구하는 따뜻한 사람을 말합니다. “착한 사람”이란 돈이나 소유에 집착하는 대신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기의 돈이나 소유를 기꺼이 바치는 희생적인 사람을 말합니다. “착한 사람”이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멸시하고 짓밟는 대신 그들을 변호하고 격려하는 너그러운 사람을 말합니다. “착한 사람”이란 자기를 내 세우는 대신 다른 사람을 내 세우는 겸손한 사람을 말합니다. “착한 사람”이란 자기를 낮추고 주님을 높이는 주님 닮은 사람을 말합니다. “착한 사람”이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수고와 고난을 기쁘게 받는 수고와 고난의 사람을 말합니다. 지금 한국교회와 사회에 필요한 사람은 유식한 사람도 유능한 사람도 아니고 설교만 잘하는 사람도 진리만을 외치는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교회와 사회에 제일 필요한 사람은 무엇보다 먼저 “착한 사람” 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부터 서도행전에 나오는 “착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줄여서 하려고 합니다.





첫째로, 예루살렘교회 신자들이 “착한 사람들” 이었습니다. 예루살렘교회 신자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지만, 무엇보다 가장 힘쓴 것은 재산과 소유를 팔아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도와주는 “착한 일” 이었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행2:44,45).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 이러라 바나바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행4:32-37). 결국 “착한 사람들”의 선행을 통해서 예루살렘교회가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고 결국 교회가 부흥되었습니다.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행6:7). 예루살렘교회 신자들 “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둘째로, 예루살렘교회의 집사들이 “착한 사람들” 이었습니다. 예루살렘교회의 집사들이 무엇보다 전력을 다해서 힘쓴 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착한” 일이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행 6:3,4). 일곱 집사들은 구제하는 일에 전력을 다하면서 전도에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구제하는 일에만 머물지 않고,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고 지혜와 성령이 충만해서 십자가의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와 선교의 삶을 살다가 순교의 길로까지 달려간 너무너무 귀중한 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행 6:10).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행 7:51-56). 스데반 집사의 철저한 십자가 복음 전파의 메시지를 들은 많은 무리들이 그에게 달려들어 돌로 쳐서 죽였는데 앞장 서서 스데반 집사를 돌로 친 사람이 사울이었습니다(행 7:57,58). 그런데 여기 놀랍도록 충격적인 사실은 돌로 쳐서 죽임을 당하는 스데반 집사의 마음과 입에서 분노와 증오의 기운은 전혀 찾아 볼 수가 없었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이 풍성한 십자가의 복음만이 나타나 보였다는 사실입니다.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 7:59,60). 너무너무 순수하고 너무너무 착하고 너무너무 거룩한 모습이었습니다. 성 어거스틴과 박윤선 목사님은 스데반 집사의 귀중하고 순결한 순교의 피와 중보의 기도가 없었다면 사도 바울도 없었을 것이고 사도행전의 역사도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스데반 집사님의 삶과 죽음은 성자 예수님을 닮은 너무너무 순수하고 너무너무 착하고 너무너무 거룩한 삶과 죽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스데반을 비롯한 예루살렘교회 집사들은 “착한 사람들” 이었습니다.





셋째로, 욥바에 살던 다비다 또는 도르가라는 여 제자도 “착한 사람” 이었습니다. 도르가는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았다고 했습니다.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행9:36). 가난한 과부들에게 속옷과 겉옷을 만들어 나누어주는 착한 일을 심히 많이 했다고 했습니다. 수고를 너무 많이 해서 그랬는지 도르가는 병들어 죽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도르가의 “착한” 일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고 수 많은 욥바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고 했습니다.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뉘우니라…. 모든 과부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이거늘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어 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가로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의 산 것을 보이니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행9:36-42). 결국 도르가의 선행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억지로 전도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착한” 일과 선행과 구제하는 일만 하면 되었습니다. 욥바가 복음화가 된 것은 전도 프로그램이나 행사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도르가의 선행으로 “착한” 일로 이루어졌다고 했습니다. 도르가는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넷째로, 가이사랴에 살던 로마 사람 백부장 고넬료도 “착한 사람” 이었습니다. 고넬료는 아직 예수님을 정식으로 믿지도 않았지만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구제하는 “착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넬료의 구제와 “착함”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천사를 고넬료에게 보내어 베드로를 청하여 말씀을 들으라고 분부하셨습니다.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저는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느니라 하더라”(행 10:1-6).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이라도 “착한 일”을 많이 하고 기도에 정성을 쏟을 때 이방인에게도 은혜와 사랑과 축복의 손길을 펴신다는 사실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베드로를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저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너를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행10:22). 베드로가 마지못해서 고넬료의 집에 가서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증거했을 때 성령께서 임하시고 가이사랴의 복음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결국 베드로의 인간관과 그리스도관과 세계관과 선교관이 달라졌습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행10:34,35).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행10:38). 모든 것이 “착한” 사람 고넬료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백부장 고넬료는 “착한 사람” 이었습니다.  


가이사랴에 살던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에 대한 이야기는 사도 베드로에게는 물론 우리들 모두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멸시와 천대와 적대를 받아 마땅한 이방인 백부장이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들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했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를 아주 귀중하게 보시고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베푸셨다는 이야기는 우리들로 하여금 편협한 자기 중심적인 생각과 자세를 조금씩 버리게 하시고 멸시하고 천대하던 이벙 사람들을 부드럽게 포용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부족하고 또 부족한 우리들이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를 바라보고 또 바라볼 수 있다면 그리고 그를 아주 귀중하게 보시고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베푸신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고 또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들의 지정의언행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바뀌어질 수도 있고 그래서 우리들의 신앙이 조금씩 아주 포용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할 수도 있고 그래서 구제를 아주 귀중하게 여기고 모두를 부드럽게 포용할 수도 있는 “착한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섯째로, 안디옥 교회의 설립자였던 바나바는 누구보다도 가장 “착한 사람” 이었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행11:24). 바나바가 “착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안디옥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주님께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은 바나바의 “착한” 모습을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바나바가 (사울을)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나중에는 선교지로 떠납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선교사 바나바와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자기들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고난과 핍박의 길로 달려갔다고 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의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가결하였노라”(행15:26). 착하지 않은 이기적인 사람은 순수한 선교사가 될 수도 없고 복음을 위해서 고난과 핍박을 받지도 못합니다. “착한 사람”만이 누군가를 위해서 자기의 목숨을 버릴 수가 있습니다. 결국 “착한 사람” 바나바에 의해서 사도행전의 역사가 만들어졌습니다. 바나바 때문에 사도 바울이 생겼고 바나바 때문에 안디옥교회가 생겼고 바나바 때문에 소 아시아 선교가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나바는 무엇보다 먼저 “착한 사람” 이었습니다.





여섯째로, 빌립보교회의 설립자 루디아도 “착한 사람” 이었습니다. 빌립보교회는 사도 바울이 제일 사랑하고 제일 보고 싶어하고 제일 귀중하게 여기던 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빌1:8).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찌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빌2:17). 어떻게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날 수가 있었습니까? “착한 사람” 루디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의 영에 이끌려 빌립보 강변에 이르렀을 때 그곳에서 기도하던 루디아를 만났습니다. 루디아가 사도 바울을 만났을 때 마음을 열고 사도 바울의 말을 청종했다고 했습니다. “착한 사람”은 마음을 엽니다. 그리고 온 집이 세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착한 사람”은 청종도 잘 하고 순종도 잘 하고 결단도 잘 합니다. 그 다음 집을 열고 지갑을 열어 바울의 일행을 자기 집으로 영접했습니다.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행16:15). “착한 사람”은 집을 열고 지갑을 엽니다. 결국 루디아의 집은 교회가 되었습니다. 빌립보교회는 사도 바울이 가장 사랑하는 가장 아름다운 교회가 되었습니다. “착한 사람” 루디아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루디아는 무엇보다 먼저 “착한 사람” 이었습니다. 저는 강변교회를 개척해서 28년 동안 목회하면서 빌립보교회를 모델로 삼으면서 목회를 했습니다. 제주도 복음화의 선구자 이기풍 목사님과 윤함애 사모님도 “착한 사람들” 이었고,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과 정양순 사모님도 “착한 사람들” 이었고, 모두에게 존경을 받으시던 한경직 목사님도 “착한 사람” 이었고 “작은 예수로 살면서 수 많은 병자들을 사랑으로 진료하시던 장기려 박사님도 “착한 사람” 이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 합니다. 제가 한 평생을 살고 나서 할 수 있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사회에서 제일 좋은 사람과 지일 필요한 사람은 “착한 사람” 이라는 말입니다.  저는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제일 기뻐하시는 사람도 “착한 사람” 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는 선을 행하는 “착함”의 제사라고 말씀했습니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히13:16). 지금 우리 한국 교회와 사회에 필요한 사람들도 무엇보다 먼저 “착한 사람들” 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이 어떻게 “착한 사람들”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착하신 분들”이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 그리고 사도 행전에 나타난 “착한 사람들”과 교회 역사에 나타난 성 프랜시스와 손양원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과 장기려 박사님들가 같은 “착한 사람들”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 우리들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 “착함”을 우리 몸과 마음에 지니고 나타내 보이는 “착한 사람들”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읽어드리므로 설교를 마무리합니다.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마5:3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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