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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09] 교회의 사명(1) (마 16:18, 행 2:38, 42-47 ) - 전주 미래교회


제가 2012년 4월 22일 주일 전주 미래교회에 처음으로 와서 “아름답게 성장하는 교회”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면서 첫째는 몸과 마음과 물질과 눈물과 생명을 예배의 제사로 정성껏 드리고 둘째는 도움이 필요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병자 등 불쌍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교회가 아름답게 성장하는 교회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제가 2012년 10월 28일 주일 여기 두 번째로 와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 예배와 교제와 봉사” 라는 제목으로 비슷한 내용의 설교를 하면서 첫째는 울면서 회개하면서 때로는 금식하면서 정성껏 예배 드리고 둘째는 모든 사람들과 원수들과 이방 사람들과도 회해하며 교제하고 셋째는 긍휼과 용서와 사랑을 몸에 지니고 모든 불쌍한 사람들에게 봉사와 섬김의 손길을 펴는 일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제가 2018년 5월 27일 주일 여기 세 번째로 와서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면서 스데반 집사의 “충성”에 대한 이야기와 폴리캅 김독의 순교의 이야기와 주기철 목사님의 일사 각오의 순교에 대한 이야기와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의 믿음과 사랑과 소망과 섬김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들도 죽도록 충성한 신앙의 선배님들의 신앙을 본받아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제가 2019년 1월 27일 주일 여기 네 번째로 와서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 이라는 제목으로 비슷한 내용의 설교를 하면서 첫째는 우리들의 몸과 마음과 정성과 소유와 생명을 다 쏟아 바쳐서 예배의 제사를 정성껏 충성스럽게 드리는 일이고 둘째는 우리들의 몸과 마음과 정성과 소유와 생명을 다 쏟아 바쳐서 우리들의 이웃과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정성껏 펴는 일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저는 지난 네 번 동안 거의 같은 내용의 설교를 했는데 사실 김춘기 목사님이 부탁한 제목과 내용의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설교의 내용이 성경 말씀과 십자가의 복음이 가르치는 헌신과 드림의 예배와 함께 사랑과 나눔과 섬김을 중점적으로 지적한 내용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몸과 마음과 정성과 생명을 다 쏟아서 바치는 예배의 제사와 함께 우리들이 소유한 모든 것을 다 쏟아서 불우한 이웃과 원수들에게까지 전해주는 사랑과 섬김과 봉사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귀중하고 아름다운 것은 세상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제물 되는 헌신과 예배의 삶을 살기 위해서 그리고 불우한 사람들에게 우리들의 모든 소유를 전하기 위해서 우리들이 가난과 고난과 핍박과 슬픔과 아픔과 죽음을 당하기까지 충성을 다하는 일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귀중하고 아름다운 것은 세상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오늘 2019년 6월 9일 주일 여기 다섯 번째로 와서 이제부터 “교회의 사명”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김춘기 목사님이 전주 미래교회가 18주년을 맞는다고 하면서 오늘 “교회의 사명”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해 달라고 부탁을 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하여야 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의 제목을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 라고 정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선 서론적으로 “교회의 귀중성”에 대한 말씀을 간단하게 하려고 합니다. 교회보다 귀중한 존재는 세상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구약 시대에 솔로몬이 성전 곧 교회를 건축해서 하나님께 헌납했을 때 성부 하나님께는 아주 기뻐하시면서 밤에 솔로몬에게- 나타나서 다음과 같은 축복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이르시되 내가 이미 네 기도를 듣고 이곳을 택하여 내게 제사하는 전을 삼았으니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로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염병으로 내 백성 가운데 유행하게 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찌라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이는 내가 이미 이 전을 택하고 거룩하게하여 내 이름으로 여기 영영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 있으리라”(대하 7:12-16). 성부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건축해서 하나님께 헌납한 성전 곧 교회를 아주 기뻐하시면서 하나님의 눈과 귀와 마음을 항상 교회로 향하고 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는 기도를 들으시고 죄를 사하시고 땅을 고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부 하나님의 이름으로 성전 곧 교회에 영영히 있게 하신다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눈과 귀와 마음을 항상 향하고 계시는 곳이고 하나님의 이름이 영영히 계시는 하나님의 집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또한 성자 예수님께서 피를 흘려서 세우신 예수님의 몸과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의 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교회를 세우시는 분이시라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신약성경은 성자 예수님께서 피를 흘려서 교회를 사신 분이시고 성자 예수님께서 교회의 몸과 머리가 되시는 분이시라고 지적했습니다.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행 20:28).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엡 1:23).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엡 5:23). 교회는 성자 예수님께서 피를 흘려서 사신 그리고 세우신 예수님의 몸과 머리라는 말씀에 저는 오래 전에 깊은 감동을 받고 울로 또 울고 또 운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고등학생 때 한국의 예레미아라고 불리시던 김치선 목사님께서 목회하시던 창동교회에 다녔는데 그 때 저는 김치선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던 산 부흥회에 참석하면서 많은 은혜를 받곤했습니다. 삼각산 관악산은 물론 대구 주암산 부흥회에도 참석했습니다. 대구 주암산 부흥회를 인도하시면서 찬송가 246장을 부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내 주의 나라와 주 계신 성전과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 저는 "피 흘려 사신 교회" 라는 가사에 충격을 받고 감격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고 "늘 사랑합니다" 라는 가사에 나는 늘 사랑하지 못하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회개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습니다. 교회는 또한 성령께서 임재하시는 성령의 전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6:19).



그러면 이제부터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신약 성경은 어머니교회라고 할 수 있는 예루살렘교회의 귀중하고 아름다운 모습과 이방에 처음으로 세워진 교회였던 안디옥교회의 귀중하고 아름다운 모습과 이방에 세워졌던 또 하나의 교회인 빌립보교회의 귀중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지적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예루살렘교회의 귀중하고 아름다운 모습 다섯 가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예루살렘 교회는 기도가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기도로 시작했고 기도로 계속된 기도가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 1:4) 라고 부탁하셨는데 120여명의 제자들은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에 올라가서 전혀 기도에 힘썼다고 했습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행 1:14).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께서 임하셨고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기도로 시작했을 뿐 아니라 계속해서 기도에 전력을 다했다고 했습니다. “저희가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 2:42). 예루살렘 교회의 기도는 그 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저희가 듣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가로되 대 주재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행 4:24,29,30). 교회가 성장한 후에도 사도들이 새로운 행사나 멋진 프로그램에 치중하지 않고 무식할 정도로 기도에 전무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행 6:4). 얼마나 소박하고 무식하고 행복한 모습인지 모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기도가 충만한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둘째로, 예루살렘 교회는 회개가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하고 통회하는 회개의 제사라고 말씀했는데, 예루살렘 교회는 상하고 통회하는 회개가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에게 축복받으라는 설교나 성공하라는 설교를 하지 않았습니다. 저들의 죄를 지적하며 회개를 촉구하는 회개의 설교를 했습니다. 저들은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림을 받으며 “우리가 어찌할꼬” 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베드로는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를 했습니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행 2:37,38).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회개로부터 시작했고 회개로 계속해서 자라갔습니다. 사도행전 3장과 4장과 5장에서도 사도 베드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지적하며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를 계속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행 3:19). 결국 예루살렘 교회는 회개로 시작해서 회개로 계속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회개가 충만한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셋째로, 예루살렘 교회는 말씀이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행 2:42). "무리가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행 4:31). 예루살렘교회가 성장한 후에도 무식할 정도로 기도와 말씀에 전력을 다했습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행 6:4).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행 6:7). 예루살렘교회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는 말씀이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기를 전혀 힘썼다” 라고 했습니다. 회개하라고 하면 회개하고. 세례 받으라고 하면 세례 받고. 기도하라고 하면 기도하고. 교제하라고 하면 교제하고. 봉사하라고 하면 봉사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라고 하면 팔고 밭을 팔라고 하면 팔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가르침을 받으며 사는 교회와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와 성도들이고 백성들의 칭송을 받는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와 성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넷째로, 예루살렘 교회는 교제가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은 떡을 떼며 교제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저희가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 2:42).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서로 화해하며 함께 교제하는 것을 보고 너무너무 기뻐하신다고 시편 기자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 133-1-3).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는 유대인들은 물론 메소보다미아 가바도기아 애굽 구레네 로마 아라비아 등 십 사오 개 지역에서 온 다 문화 다 인종들 수 천 명이 함께 모여 친밀한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행 2:41,42). 예루살렘 교회는 교제가 충만한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다섯째로, 예루살렘 교회는 구제와 봉사가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4-47).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이러라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번역하면 권위자)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행 4:32-37).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을 제일 길게 제일 상세하게 서술한 모습이 구제와 봉사가 충만한 모습이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기도도 힘썼고 회개도 힘썼고 말씀의 가르침을 받는 것도 힘썼고 교제하는 것도 힘썼지만 무엇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구제와 봉사의 손길을 펴는 데 제일 힘을 많이 썼다고 생각합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여 구제와 봉사를 전적으로 하게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루살렘 교회가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게 되었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구원 받는 사람들이 날마다 더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행 6:7). 전도가 저절로 이루어졌습니다. 전도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니었고 전도하는 기술을 습득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기도하고 회개하고 말씀의 가르침을 받고 교제하면서 사랑과 구제와 봉사에 전력을 다했더니 전도가 저절로 이루어졌습니다. 부흥이 저절로 이루어졌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무엇보다 사랑과 구제와 봉사가 충만한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그 다음 예루살렘 교회 이후 이방에 처음으로 세워진 교회였던 안디옥 교회의 귀중하고 아름다운 모습 일곱 가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안디옥 교회는 스데반의 순교와 환난의 일로 세워진 귀중한 교회였습니다.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전하는데”(행 11:19). 안디옥 교회는 스데반의 순교와 환난을 인하여 예루살렘으로부터 흩어진 피난민 신자들이 안디옥에 와서 세운 소박한 교회였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씨앗은 스데반의 순교의 피였고 안디옥 교회의 기초는 피난민 신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안디옥 교회는 순수한 교회였고 보배로운 교회였습니다. 환난을 경험한 사람들은 마음이 가난해지고 단순해지고 겸손해집니다. 환난을 경험한 사람들의 신앙은 진지하고 단순하고 따뜻해집니다. 환난을 경험한 사람들은 기도도 성경공부도 전도도 봉사도 열심히 하게 됩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신자들이 안디옥에 와서 기도와 전도를 열심히 했습니다. 저들이 주 예수를 전파했을 때 주의 손이 저들과 함께 했습니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행 11:21). 하나님께서 저들의 전도를 축복하셨습니다. 결국 수많은 안디옥 사람들이 믿고 주님께로 돌아 오게 되었고 그래서 안디옥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순교의 피와 환난을 통해서 세워진 순수하고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둘째로, 안디옥 교회는 착한 사람 바나바에 의해서 튼튼하게 세워진 귀중한 교회였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더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행 11:24). 성경은 바나바를 소개하면서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행 4:37) 라고 했습니다. 믿음도 중요하지만 착함을 구비하지 못한 믿음은 교회에 방해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성령충만도 중요하지만 착함을 구비하지 못한 성령충만은 교회 안에서 분란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착한 사람 바나바에 의해 튼튼하게 세워졌던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산상 설교를 하시면서 주님을 따르는 주님의 제자들은 무엇보다 먼저 착한 행실을 사람들 앞에 나타내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좋은 교회가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착한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착한 사람이란 욕심과 야심이 적은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제일 먼저 생각하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착한 성품은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것이지만 또한 후천적으로 감동과 훈련을 통해 만들어 지기도 합니다. 안디옥 교회는 착한 사람 바나바에 의해서 튼튼하게 세워진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셋째로,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와 사울의 협력 목회로 부흥 발전한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착한 사람 바나바는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갔다고 했습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행 11:25). 그리고 사울을 데리고 와서 둘이 협력 목회를 했다고 했습니다.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 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행 11:26). 착한 사람 바나바는 심각한 과거를 지닌 사울을 데려다가 그를 격려하고 그를 내 세우면서 협력 목회를 아름답게 했습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에 내어 보내실 때 하나씩 내어 보내지 않으셨고 둘씩, 둘씩 짝지어 내어 보내셨습니다. 목회와 선교에 있어서 협력 사역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협력 목회를 너무나 아름답게 한 모범적인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칭찬을 들으면서 “그리스도인” 이라는 아름다운 별명을 처음으로 얻게 되었습니다. “안디옥에서 비로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행 11:26). 바나바는 튼튼하게 세워져 가는 안디옥 교회에서 자기 혼자서 두각을 나타내며 일하려고 하지 않았고 자기 보다 유능한 사람인 사울을 청하여 자기와 함께 동역을 하게 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협력 목회로 부흥 발전한 교회였고 주님의 뜻을 이룬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넷째로, 안디옥 교회는 사랑과 구제 사역에 최선을 다한 귀중한 교회였습니다. 착한 사람이 힘쓰는 일은 사랑과 구제의 손길을 펴는 일인데 안디옥 교회는 무엇보다 먼저 사랑과 구제의 손길을 펴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구제 사역이 너무나 중요한 사역임을 나타내 보여주기 위해서 바나바와 사울이 직접 구제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행 11:29,30).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의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행 12:25). 교회가 존재하는 첫째 목적은 물론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과 구제 사역에 무관심한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다고 이사야와 야고보와 사도 요한 등이 강조해서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사 1:15-17).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 25:35,36). 주님의 뜻을 이루는 교회는 사랑과 구제 사역에 최선을 다합니다. 그런데 안디옥 교회는 사랑과 구제 사역에 최선을 다한 그래서 주님의 뜻을 이룬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다섯째로, 안디옥 교회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함께 모인 다 인종 다 문화 다 계급 다 사회 교회였습니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행 13:1). 안디옥 교회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함께 모인 교제가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오래 전부터 계획하시고 소원하셨던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3). “그 날에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과 앗수르로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을 주어 가라사대 나의 백성 애굽이여, 나의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찌어다 하실 것임이니라”(사 19:23-25). 안디옥 교회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교제하고 기도하며 예배 드린 다 인종, 다 문화 다 계급, 다 사회 교회였습니다. 바나바는 구브로 섬 출신의 유대인이었습니다. 시므온은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이었습니다. 루기오도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이었습니다. 마나엔은 귀족 출신의 유대인이었습니다. 사울은 다소 출신의 유대인었습니다. 안디옥 교회 안에는 수리아 출신의 이방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이룬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의 하나는 인간들 사이에 존재하는 인종적 장벽과 문화적 장벽을 깨트리고 하나를 이루시는 일이었는데, 이와 같은 일이 안디옥 교회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함께 모인 다 인종 다 문화 교회였고 그래서 주님의 뜻을 이룬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여섯째로, 안디옥 교회는 기도에 전력하며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고 성령의 지시에 순종한 교회였습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행 13:2). 기도에 전력할 수 있는 사람과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빈 마음 열린 마음 단순한 마음 겸손한 마음 사모하는 마음을 지니고 기도할 때 성령의 음성에 민감해 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한 마음으로 함께 모여 기도할 때 성령의 음성에 민감해 질 수가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음성에 민감한 축복 받은 행복한 교회였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음성에 민감했을 뿐 아니라 성령의 지시에 순종한 교회였습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는 일은 그렇게 힘들지 않지만 성령의 지시에 순종하는 일은 아주 힘든 일입니다. 사울 왕과 삼손과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성령의 감동과 은혜를 받았지만 성령의 지시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들은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고도 성령의 뜻과 지시에 순종하지 않으면 교회 안에서 분란을 일으킬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에는 박태선이나 양도천처럼 이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음성에 민감했을 뿐 아니라 성령의 지시에 순종한 축복 받은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일곱째로, 안디옥 교회는 결국 선교사를 파송하고 선교에 총력을 기울인 선교하는 귀중한 교회였습니다.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행 13:3). 결국 안디옥 교회는 성령님의 지시에 따라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고 두 사람에게 안수한 후 선교사로 파송을 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사실 거의 불가능한 일을 했습니다. 갓난 아이들과 같은 저들이 저들의 믿음의 어머니와 아버지와 같은 바나바와 사울을 안수해서 선교사로 파송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저들의 계획이나 선택에 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직 성령님의 계획과 선택과 지시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를 믿은 지 2,3년 밖에 되지 않는 초 신자들이 저들의 믿음의 어머니와 아버지와 같은 바나바와 사울을 핍박과 박해가 기다리고 있는 소 아시아와 마게도냐 땅으로 파송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성령의 지시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초 신자들이었기 때문에 무조건 순종했을지도 모릅니다. 오래된 신자들은 자기 고집과 주장이 생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안디옥 교회 성도들의 마음에는 부모 잃는 고아와 같은 석별의 정을 금할 수 없으면서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때 저들은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체험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을 것입니다. 결국 안디옥 교회는 주님의 예언이 성취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라는 주님의 예언과 분부를 이루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소아시아와 유럽에까지 가서 주님을 증거하는 선교의 일을 수행하는 선교의 기지가 되었습니다. 세계선교의 거점이 되었습니다. 안디옥교회는 두 사람을 선교사로 파송하고 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들은 계속해서 바나바와 사울을 기도와 물질로 후원했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저들을 파송한 안디옥 교회 성도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와 사울을 기억하며 저들의 위해서 기도와 사랑의 손길을 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결국 주님의 지상 명령인 세계선교의 사명을 수행하게 된 너무나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이것으로 오늘 오전 11시 예배의 설교를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교회 설립 18주년을 맞는 전주 미래교회가 어머니 교회인 예루살렘교회와 이방에 처음으로 세워졌던 안디옥교회가 지녔던 귀중하고 아름다운 모습들을 지니고 세상에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기를 바라고 소원합니다. 오후 2시 예배 시간에는 빌립보교회의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 세 가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시간이 남으면 제가 강변교회에서 목회하면서 주력했던 목회 사역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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