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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7]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서 칭찬하실 일이 무엇일까? (막 1:14,15, 요 13:34, 계 2:10) - 수지 할렐루야교회


제가 개척해서 28년 동안 목회하던 강변교회에서 2008년 1월 13일 은퇴한 다음 지난 13년 동안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과 축복으로 주일 마다 전국의 작은 교회들을 주로 방문하며 설교를 하고 있는데, 지난 2019년 7월 28일 주일 교회 창립 8주년을 맞는 수지 할렐루야교회에 처음으로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바람직한 교회의 모습과 역할”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20년 5월 3일 주일 여기 두 번째로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교회가 주력하여야 할 사역”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는데, 오늘 2020년 12월 27일 금년 마지막 주일 여기 세 번째로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설교를 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저를 불러주신 석철효 목사님과 성도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무슨 제목으로 설교를 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석철효 목사님이 오늘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서 칭찬하실 일이 무엇일까?”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면 좋겠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서 칭찬하실 일이 무엇일까?” 라는 좀 긴 제목으로 종말론적인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오늘이 2020년도 마지막 주일이어서 종말론적인 설교를 하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의 한 평생을 잘 마무리하고 세상을 올바로 떠나는 일이 아주 귀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성부 하나님의 피조물들인 우리 인간들이 세상에서 한 평생을 살다가 죽게 될 때 시체는 땅에 묻히고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는 “개인적인” 종말을 맞게 될 것이고, 성자 예수님께서 천사들과 함께 재림하실 때 우리 인간들은 영육이 함께 연합하여 온 우주의 피조물들과 다 함께 모여서 최후의 심판을 받게 되는 “우주적인” 종말을 맞게 될 것입니다. “우주적인” 종말에 대한 말씀을 성자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마 16:27).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마 25:31-33). 우리 신자들이 세상에서 살다가 죽는 “개인적인” 종말을 맞은 다음, 성자 예수님께서 천사들과 함께 재림하시는 “우주적인” 종말을 맞아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 앞에 서게 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서 칭찬하실 일이 무엇인지를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사실 이와 같은 일은 전지전능하신 성부 하나님께서 홀로 판단하실 너무너무 수준 높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신자들이 세상에서 살다가 죽어서 “개인적인” 종말과 “우주적인” 종말을 맞아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 앞에 서게 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서 칭찬하실 일이 무엇인지를 함께 생각해 보는 것은 아주 귀중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 설교 준비를 하면서 아주 단순하고 아주 소박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즉 성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이렇게 살라고 분부하신 대로 그리고 성자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렇게, 이렇게 살라고 권면한 대로 살려고 최선을 다한 신자들이 “우주적인” 종말의 때에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의 기쁨과 칭찬을 받게 될 것이라는 소박하고 단순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성자 예수님께서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떠나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과 함께 가난과 고난과 슬픔의 삶을 사시면서 우리 죄인들에게 분부하신 간절한 분부의 말씀들을 여섯 가지로 요약해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성자 예수님의 제자들도 성자 예수님을 따라서 비슷한 권면의 말씀들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성자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말씀대로 그리고 성자 예수님의 제자들이 권면한 말씀대로 살려고 최선을 다한 사람들이 “우주적인” 종말의 때에 이르러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의 기쁨과 칭찬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의 설교를 준비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많은 시간을 들여서 거의 두주 동안 준비한 설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서 칭찬하실 일이 무엇일까?” 라는 제목의 설교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6 가지 귀중한 말씀들을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성자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처음에 분부하신 말씀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 1:14,15). “회개”와 “믿음”의 삶을 살라고 분부하셨습니다. 그런데 “믿으라” 라는 말씀을 하시기 전에 “회개하고” 라는 말씀들을 먼저 하셨기 때문에 “회개하라” 라는 말씀들을 먼저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 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회개” 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자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라는 말씀을 반복하셨습니다.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마4: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 5:31.3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 15:7). 성자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말씀도 “회개”의 메시지를 세상에 전파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눅 24:47,48). 성자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다음에 일곱 교회들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시면서 다섯 교회들에게 당부하신 말씀이 바로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회개”는 성자 예수님께서 전파하신 복음 신앙의 시작이요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처절한 “회개”의 기도와 제사를 하나님께 정성껏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성자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처음에 분부하신 말씀이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라는 말씀이었는데 “회개”와 함께 “믿음”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귀중함을 계속해서 강조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 성자 예수님께서는 “믿음”의 귀중함을 계속해서 강조하시고 또 강조하셨습니다. 우리 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하고 귀중한 것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도우심을 순수하고 진실하게 믿고 의지하는 “믿음” 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로 성자 예수님께서 귀중하게 여기시면서 실천해서 보여주신 것이 “주일성수”와 “예배”였다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인식 후 첫 날인 주일 날 부활하시므로 안식일 성수를 “주일성수”로 완성시키셨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마5:17).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마12:8). 안식 후 첫날 즉 주일날 이른 새벽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사랑하는 제자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셔서 위로와 기쁨과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여인들에게도 나타나 보여주셨습니다. 주일날 저녁에는 부활의 주님께서 사랑하는 열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위로와 기쁨과 사명과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일 주일이 지난 둘째 주일날 저녁에는 도마와 다른 열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나중에는 부활의 주님께서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던 사도 요한에게 주일날 나타나셨습니다.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일곱 교회에 보내라”(계1:10,11). 성자 예수님께서 인식 후 첫날인 주일 날 부활하시고 주일 날 계속해서 나타나 보이시므로 구약의 안식일 제도와 안식일 예배를 “주일제도”와 “주일예배”로 완성하셨다는 것을 분명하게 나타내 보여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 신자들도 “주일성수”와 “예배 드리는” 일에 정성을 다 하라는 뜻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보혜사 성령님께서도 주일의 중요성은 나타내 보여주시기 위해서 주일날 예루살렘에 급하고 강한 바람같이 불의 혀와 같이 강림하셨습니다. 결국 예루살렘교회의 신자들은 “주일성수”와 “예배 드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신자들에게 있어서 “주일성수”와 “예배 드리는” 일이 너무너무 귀중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식일 예배”와 “주일 예배”는 앞으로 “천국 예배”로 영원하게 이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성자 예수님께서 귀중하게 여기시면서 실천해서 보여주신 것이 이웃과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면서 사는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살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성자 예수님의 삶은 모든 종류의 불쌍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면서 사시는 “사랑과 섬김”의 삶이었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산에서 내려오시면서 병자들과 죄인들의 몸을 만지시면서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셨습니다.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진지라”(마 8:3). “예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대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마 9:29,30).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마 9:35). 그리고 모두에게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요 13:14). 그리고 강도 만나서 매를 맞고 거의 죽게 된 사람에게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편 사마리아 사람처럼 우리들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면서 살라고 분부하셨습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눅 10:33-37). 성자 예수님께서는 이웃뿐 아니라 악한 자들과 원수들에게까지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39-44). 마지막에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베푼 “사랑과 섬김”의 선행이 성자 예수님께 드린 선행과 꼭 같은 것이고 그래서 성부 하나님께로부터 영생의 복을 주시는 선행이 된다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마 25:34-40,46). 우리 신자들에게 있어서 불우한 모든 종류의 사람들에게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일보다 더 귀중한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섯째로 성자 예수님께서 귀중하게 여기시고 실천해서 보여주시면서 강조하신 것은 모두와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이루면서 사는 삶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화려하고 대단한 예배를 드리기 이전에 먼저 가서 형제와 “화해”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4). 사실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과 비전입니다. 성경의 목표이며 역사의 완성 점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연합하여 하나되는 아름다운 모습과 자연 만물이 모두 하나가 되어 하나님을 찬양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오래 전에 우리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 133:1). “해와 달아 찬양하며 광명한 별들아 찬양할 찌어다 산들과 모든 작은 산과 과목과 모든 백향목이며 짐승과 모든 가축과 기는 것과 나는 새며 다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 찌어다(시 148:3,9,10,13). 그리고 앞으로 종말에 이루어질 온 우주의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의 모습을 사도 요한을 통해서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찌로다 아멘 하더라”(계 7:9-12).

성자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오셔서 온갖 종류의 인종들과 온갖 종류의 죄인들과 심지어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로마 군인들과도 친밀하게 교제하면서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이루셨다고 생각합니다. 신약 성경은 성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그리고 성령의 사역을 통해서 이루신 것이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 이라고 상세하게 지적했습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화해)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 2:13-18).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 보혜사 성령님께서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 임하시므로 서로 갈라져서 불신과 증오가운데서 살던 다문화 다인종 다민족 3천여 명이 함께 모여 “화해”하며 친밀한 “교제”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서로 교제하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 2:42). 기독교는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의 종교입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심으로 우리 죄인들의 구원을 이루셨고 분열과 분쟁으로 치우시고 우리 죄인들의 삶에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 을 이루셨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신자들에게 있어서 모든 종류의 사람들은 물론 자연 만물들과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이루면서 사는 일보다 더 귀중한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섯째로 성자 예수님께서 귀중하게 여기시면서 강조하신 것은 “십자가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하라” 라는 말씀과 함께 “축도록 충성하라” 라는 말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자기를 세상에 보내신 성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시면서” “죽도록 충성”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성자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자기를 따라서 “십자가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리라” 라는 말씀과 함께 “죽도록 충성하라”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7,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계 2:8-11). 너무너무 귀중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서머나의 감독 폴리캅은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데 죽도록 충성하다가 나중에는 불에 타서 죽는 순교를 당했습니다. 사실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순교자들이신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들께서 가장 귀중하게 여기시던 말씀이 바로 “죽도록 충성하라”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신의주와 평양에서 감옥 생활을 자주 하시다가 순교하신 저의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도 아주 귀중하게 여기시던 말씀이 바로 “죽도록 충성하라”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히브리서는 성자 예수님의 충성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저가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충성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으니 저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히 3:1-3). 우리 신자들에게 있어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면서 “죽도록 충성하는” 삶과 죽음보다 더 귀중한 삶과 죽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성자 예수님께서 귀중하게 여기시면서 강조하신 “회개”와 “믿음”과 “주일성수의 예배”와 “사랑과 섬김”과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과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면서” “죽도록 충성” 하는 삶과 죽음을 사신 신앙의 선배님들 중에서 몇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추려서 하려고 합니다.

첫째로, 배신자인 사도 베드로가 성자 예수님께서 귀중하게 여기시는 올바른  길을 걸어갔다고 생각합니다.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시려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던 배신자 베드로가 디베랴 바다가로 찾아오셔서 “애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는냐” 라는 부드러운 말씀으로부터 일곱 마디 말씀 즉 “해변 칠언”의 귀중하신 말씀을 하시는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통곡하면서 “회개”한 다음 진실한 “믿음”과 “예배”와 “섬김”과 “화해”와 “복음 전파”와 “순교”의 길로 걸어간 사도 베드로야말로 성자 예수님께서 귀중하게 여기시면서 강조하신 그 길로 걸어간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모인 신자들과 불신자들 앞에서 선포한 말씀이 바로 “회개”와 “믿음”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행 2:36,38). 사도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면서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삼천 여명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행 2:41). 새로 믿게 된 사람들이 주일은 물론 날마다 교회에 모여서 예배를 정성껏 드리게 되었고, “친밀한 교제”와 “사랑과 섬김”에 전력하게 되었고, “회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이루는데 전력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2-47). 사도 베드로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성자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대로 “죽도록 충성”하는 순교의 길로까지 달려갔다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사도 베드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예언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요 21:18,19). 사도 베드로는 나중에 로마로 가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다가” 십자가에 꺼꾸로 달려서 죽는 “순교”를 당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얼마나 귀중하고 아름다운 올바른 신앙의 길로 걸어간 삶과 죽음이었는지 모릅니다.

둘째로, 일곱 집사들 중의 한 사람인 스데반 집사도 성자 예수님께서 귀중하게 여기시는 올바른 신앙의 길로 걸어갔다고 생각합니다. 스데반 집사는 예루살렘교회의 성도들 중의 한 사람으로 사도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개”와 “믿음”과 “주일성수의 예배”와 “사랑과 섬김”과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과 “십자가의 복음 전파”와 “죽도록 충성” 하는 삶과 죽음의 길로 걸어갔다고 생각합니다. 스데반 집사는 일곱 집사들 중의 한 사람으로 구제하는 “사랑과 섬김”의 사역에 전력을 다했고, 특히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전하는데 “죽도록 충성”하면서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 쌔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 7:55-60).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분노와 증오와 저주의 모습은 전혀 나타내 보이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신 성자 예수님처럼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축복의 모습만 나타내 보였습니다.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너무너무 성자 예수님을 닮은 순수한 용서와 자비와 사랑의 모습만 나타내 보였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이렇게 순수하고 생생하게 전하는데 “충성”을 다한 사람도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스데반 집사의 “죽도록 충성”하는 순수한 모습을 바라보시고 너무 기뻐하시면서 스데반 집사의 기도를 들으시고 저주 받아 마땅한 사울의 죄를 용서하시고 사울을 사도 중의 사도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스데반의 일로”(행 11:19) 안디옥교회가 세워지게 되었고 안디옥교회가 선교의 기지가 되기도 했습니다. 스데반 집사야말로 성자 예수님께서 귀중하게 여기시는 6 가지 순수한 신앙의 길로 달려간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성 어거스틴과 박윤선 목사님은 스데반 집사의 순수하고 간절한 사죄의 기도와 순교가 없었다면 사도 바울이 생기지 못했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너무너무 올바른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로, 위에서 지적한 대로 서머나 교회의 사자인 폴리캅 감독도 성자 예수님께서 귀중하게 여기시는 올바른 신앙의 길로 걸어갔다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서머나 교회의 사자를 칭찬하시면서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라는 아주 귀중한 권면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폴리캅은 사도 요한의 제자로서 성자 예수님께서 귀중하게 여기시는 신앙생활을 성실하게 하면서 서머나 교회의 감독으로 충성스럽게 봉사하다가 성자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권면 대로 “죽도록 충성” 하다가 로마 황제를 신으로 고백하고 그리스도를 저주하라는 로마 총독의 명령에 굴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면서 “충성”을 끝까지 지키다가, 주후 155년경 서머나의 투기장에서 순교를 당했습니다. 폴리캅 감독이 체포되어 서머나 투기장으로 끌려 왔습니다. 총독은 그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부인하고 로마 황제를 신으로 고백하라고 강요했습니다. 총독은 폴리캅을 향해서 “맹세하며 그리스도를 저주하라” 라고 다그쳤습니다. 폴리캅 감독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86년 동안 나를 구원하신 나의 왕을 섬겨왔소. 그리고 그분은 나에게 한번도 잘못하신 일이 없소. 그런데 어떻게 내가 그분을 모독할 수 있겠소.” 총독은 계속해서 황제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그리스도를 저주하라” 라고 요구했습니다. 군중들은 폴리캅을 처형하라고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폴리캅 감독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똑똑히 들으시오. 나는 그리스도인이요.” 총독이 다시 말하기를 “나는 야수들을 가지고 있소. 나는 너를 야수들 가운데 던지겠소.” 폴리캅 감독이 자기를 야수들에게 던지라고 말하니까 총독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야수들을 멸시하고 네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면 나는 너를 불에 태워 없애버리겠소.” 폴리캅 감독이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당신이 위협하는 불은 한 시간 동안 타고 곧 꺼질 것이요. 그러나 당신은 심판의 영원한 불을 알지 못하고 있소. 왜 이렇게 지체하시오.” 폴리캅 감독이 이와 같이 말했을 때 그는 용기와 기쁨으로 넘쳤고 그의 얼굴은 은혜가 충만했다고 했습니다. 군중들은 소리를 지르면서 폴리캅을 산 채로 불에 태우라고 했습니다. 군중들은 서둘러서 나무들을 모아왔고 폴리캅을 나무 단 위에 올려놓고 못을 박으려고 했습니다. 폴리캅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대로 있게 해 주시오. 불 가운데서 견딜 수 있게 하여주실 그 분이 내가 나무 단위에서 움직이지 않도록 힘을 주실 것이오.” 그들은 못을 박지 않고 묶기만 했습니다. 묵기를 다했을 때 폴리캅은 제사를 위해 준비된 고귀한 수양과 같이 하늘을 향해 다음과 같이 찬양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전능하신 주 하나님, 당신의 사랑하는 종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시여, 내가 당신께 찬양을 돌립니다. 당신은 오늘 이 시간 나로 하여금 순교자들의 수에 참예하는 영광을 주셨습니다. 이것을 인하여 그리고 모든 것을 인하여 나는 당신을 찬양하며 당신을 송축하며 당신께 영광을 올립니다. 당신의 사랑하는 종이시며 영원한 하늘의 대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들과 성령과 함께 당신에게 지금으로부터 세세토록 영광을 돌립니다. 아멘!” 폴리캅 감독은 온 몸이 불에 타서 하늘로 올라가는 귀중하고 보배로운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순교의 제물로 인해 소 아시아 곳곳에 십자가의 복음이 전파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폴리캅 감독이 형장에서 남긴 순교를 염원하는 처절한 고백들과 함께 감사와 찬양의 기도들은 그 후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가슴에 주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과 소망과 헌신과 충성을 새롭게 불러 일으키는 너무너무 귀중하고 보배로운 고백들과 기도들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폴리캅 감독이야말로 성자 예수님을 생생하게 증거하면서 “축도록 충성한” 너무너무 귀중한 주님의 “충성스러운” 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넷째로, 사도 바울이야말로 성자 예수님께서 귀중하게 여기시던 “회개”와 “믿음”과 “주일성수의 예배”와 “사랑과 섬김”과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과 “십자가의 복음 전파”와 “죽도록 충성” 하는 삶과 죽음의 길로 걸어갔다고 생각합니다. 사울은 예수님을 박해하던 훼방지요 핍박자요 포행자였는데 성자 예수님의 부드럽고 친절한 부르심을 받고 처절하게 “회개”하면서 철저한 “믿음”의 삶을 살게 되었는데 처절한 회개의 고백과 철저한 믿음의 고백을 다음과 같이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21-24).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3-15). 성자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다음과 같이 철저하게 고백하고 또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6,17).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 3:21,22).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 10:9-13). 사도 바울은 주일을 성수하면서 하루 종일 밤 늦게까지 예배 드리고 성찬식을 거행하고 설교를 했습니다.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쌔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우리의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았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 누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 보니 죽었는지라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저에게 있다 하고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래 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행 20:7-11). 사도 바울은 믿음도 귀중하고 천사의 말도 귀중하고 예언의 능도 귀중하고 구제도 귀중하지만 사랑이 없는 믿음과 천사의 말과 예언의 능과 구제는 아무 소용이 없다고 단언을 했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13). 그리고 “섬김”의 귀중성을 강조했습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 12:11).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롬 14:18).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롬 15:25,26). 사도 바울은 또한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귀중히 여기면서 강조했습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 2:13-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롬 12:18).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딤후 2:22).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3).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후 5:18,19). 결국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복음을 땅끝까지 이르러 전파하는데 “충성”을 다하다가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복음전파와 축도록 충성하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모습을 사도행전 20장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결국 사도 바울이 성자 예수님의 지시를 받고 로마에 가서 죄수의 몸으로 십자가의 복음을 전파한 모습을 사도행전 28장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일러 가로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하더라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행 28:23-31). 결국 사도 바울은 로마에서 순교의 제물이 되었는데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의 로마에서의 순교의 제물로 인해서 로마가 조만간 십자가의 복음을 받아 드리는 나라가 되었는데 콘스탄틴 황제는 321년 칙령을 내려 일요일에는 휴식할 것을 명했습니다. “모든 법관들과 도시의 시민들과 상업에 종사하는 자들은 영예스러운 날인 일요일에는 휴식을 취할 것이니라.”

  

그러면 이제 우주적인 종말의 때에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서 칭찬하실 일이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아주 간단하게 한 마디로 줄여서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성자 예수님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서 성자 예수님께서 귀중하게 여기시면서 분부하신 여섯 가지 말씀을 귀중하게 여기면서 실천하도록 최선을 다하고 그리고 성자 예수님의 진실한 제자들인 사도 베드로와 스데반 집사와 서머나 교회의 사자와 사도 바울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서 저들이 실천한 여섯 가지 삶과 죽음을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닮기를 바라고 소원하면서 최선을 다한다면 부족하고 또 부족한 우리들도 “우주적인 종말”의 때에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 보혜사 성령님의 기쁨과 칭찬을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이 자기 자신의 생각과 의지와 기질에 따라서 살지 말고 자신을 부인하면서 성자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말씀대로 살려고 최선을 다하고 그리고 성자 예수님의 진실한 제자들의 삶과 권면을 따라서 살려고 최선을 다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서 칭찬하실 귀중한 삶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살아가게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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