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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0] 우리 교회와 민족이 힘써서 하여야 할 일 (마 4:17, 요 4:23, 요 13:34, 엡 2:13-16 ) 그레이스 선교교회


제가 2008년 1월 13일 강변교회에서 은퇴한 다음 지난 12년 11개월 동안 주일마다 전국의 작은 교회들을 주로 발문하면서 설교를 하고 있는데 그레이스 선교교회는 2008년 7월 20일 주일부터 2020년 5월 10일 주일까지 12년 11개월 동안 31번 와서 설교를 했습니다. 오늘 2020년 12월 20일 주일 32번째로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황은혜 목사님과 이종헌 장로님과 성도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이렇게 많이 와서 설교한 교회는 그레이스 선교교회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너무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저의 한 평생의 삶과 사역을 돌아볼 때 저는 죄와 허물밖에 없는 죄인중의 괴수인데 아직까지 버리시지 않고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 써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모릅니다. 오늘 무슨 제목의 설교를 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황은혜 목사님이 오늘 우리 교회와 민족이 힘써야 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설교를 하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우리 교회와 민족이 힘써서 하여야 할 일” 이라는 제목으로 시대적인 사명에 대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사실 오늘 설교하려고 하는 내용들은 그 동안 제가 그레이스 선교교회에 와서 설교한 설교 내용들에 대부분 포함되어있는 내용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같은 내용의 설교를 두 번 또는 세 번 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중요한 내용의 말씀들은 두 번 또는 세 번 들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제가 오늘 설교를 석달 전에 준비해서 지난 9월 8일 제 홈페이지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어제 설교 준비를 하면서 조금 수정 보완을 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우리 교회와 민족이 힘써서 하여야 할 일” 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시작하는데 먼저 오늘의 한국교회가 힘써야 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첫째로 오늘의 한국교회가 힘써야 할 일은 “회개의 기도”에 전력을 다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씀은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말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몸이 되시는 성자 예수님께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라는 말씀을 반복하시고 또 반복해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갈릴리에 오셔서 제일 처음에 전파하신 말씀이 바로 “회개하라”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마 4:17). 성자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바로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말씀도 “회개”의 메시지를 세상에 전파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눅 24:47,48). 부활 승천하신 다음에도 성자 예수님께서는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 중 다섯 교회들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시면서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라고 다섯 번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성자 예수님의 조상이 되시는 다윗이야말로 평생토록 “회개”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라고 고백하면서 처절한 “회개의 기도”를 다음과 같이 드렸습니다. 부족한 제가 매일 여러 번 암송하면서 드리는 “회개의 기도” 입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나로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사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그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주여 내 입술을 열어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성을 쌓으소서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저희가 수소로 주의 단에 드리리이다”(시 51:1-19).

사도 바울도 “회개의 고백”을 다음과 같이 하고 또 하고 또 했습니다. 부족한 제가 매일 여러 번 암송하면서 고백하는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 7:21-25).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딤전 1:12-16).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신앙의 선배님들인 길선주 목사님과 이기풍 목사님께서는 예수님을 믿을 때부터 세상을 떠나실 때까지 처절한 “회개의 기도”를 평생토록 울면서 드리셨습니다. 사실 신구약과 교회 역사에 나타난 우리 신앙의 선배님들은 거의 모두 상하고 통회하는 “회개의 기도”를 평생토록 드리셨습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님들의 “회개의 고백들”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다윗).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이사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사도 바울). “나는 망할 지이옵니다”(어거스틴). “나는 작은 벌레입니다”(프랜시스). “나는 버림 받을 죄인입니다”(루터). “나는 망할 자이옵니다”(칼빈). “나는 눈 멀고 병 들고 연약한 죄인입니다”(웨슬레), “나는 아간과 같은 죄인입니다”(길선주). “나는 죄인 중의 괴수외다”(이기풍). “이 놈이 주님이 차지하여야 할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습니다”(주기철)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며 티끌 같은 미말의 존재입니다”(이성봉). “나는 고멜과 같은 우상숭배한 음녀입니다”(김치선) “나는 어릴 때부터 범죄를 계속한 불의하고도 불충한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 나는 큰 죄인임을 깨닫고 떨면서 울었습니다”(손양원) “나는 신사 참배한 죄인입니다”(한경직). “나는 83년 묵은 죄인입니다”(박윤선). “제가 잘못했습니다”(김창인, 강원용, 조용기). “삼합리 교회에서 흘린 눈물의 바다를 본 후로 ‘눈물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가 내 기도 제목이 되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그리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지만 나 혼자 있을 때면 우는 때가 많습니다”(방지일). 세계 곳곳에 전에 볼 수 없었던 말세의 징조라고 할 수도 있는 각종 재난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우리 한국교회의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 받으시는 상하고 통회하는 “회개의 고백”과 “회개의 기도”를 드려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오늘의 한국교회가 힘써야 할 일은 “주일 성수”와 “예배의 제사”를 드리는데 전력을 다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씀도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말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들로부터 받으시기를 원하시며 기뻐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몸과 마음과 시간과 정성과 물질과 생명을 제물로 드리는 “예배의 제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들을 창조하시고 구원하시는 목적은 우리 죄인들로 하여금 우리들의 몸과 마음과 시간과 정성과 물질과 생명을 다 쏟아 바치며 하나님께 “예배의 제사”를 정성껏 드리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창 2:3). 출애굽의 목적도 성부 하나님께 “예배의 제사”를 드리기 위함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바로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8: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라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9:1).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라”(출10:3). 여기 섬긴다는 말은 제사 드리고 예배 드린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은 말씀을 하나님께서 출4장부터 출12장까지 10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성경은 “안식일 성수”를 절대적으로 강조하면서 안식일을 범하는 자들은 반드시 죽이라고 분부했습니다.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찌니 이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라 무릇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찌며 무릇 그 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쳐지리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제 칠일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무릇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일찌니라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 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 하라”(출 31:14-17).

성자 예수님께서도 “예배”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니라”(요 4:23). 성자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주일 날 부활하셨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날은 모두 주일 날 새벽과 주일 날 저녁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안식 후 첫날인 주일 아침부터 밤까지 드린 예배의 모습이 사도행전 20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행 20:7-11).  그래서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구원 얻은 신자들에게 제일 먼저 힘써야 할 일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 즉 “주일 성수”의 영적 예배를 드리는 일이라고 분명하게 지적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기독교는 “제사와 예배” 드림의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는 “안식일을 종일 성수” 하면서 성막과 성전에서 “제사” 드리게 하셨고, 신약시대와 교회 시대에는 “주일을 종일 성수” 하면서 교회에서 “예배” 드리도록 분부하셨습니다. “주일을 종일 성수” 하면서 교회에서 “예배” 드리는 것이 기독교의 중심입니다. 청교도들이 가장 강조한 것은 “주일 성수”와 “예배” 였습니다. 한국교회도 그 초기부터 “주일 성수”와 “예배”를 강조해 왔습니다. 주일에는 온종일 모든 세속적 업무를 중단하고 예배와 전도와 봉사에 바쳐야 할 것을 엄격히 가르쳤습니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헌법 제 6부 예배모범은 “주일 성수”의 원리를 엄격히 규정했습니다. “이 날은 주일인 즉 종일토록 거룩히 지킬지니 공동 회집으로나 개체로 예배하는 일에 씀이 옳으며 모든 사무와 육신적 쾌락의 일을 폐할지니 세상 염려와 속된 말도 금함이 옳다. 먹을 것까지라도 미리 준비하고 이 날에는 가족이나 집안 사환으로 공동 예배하는 일과 주일을 거룩히 함에 구애가 되지 않도록 함이 옳다.” 구약시대의 “안식일 성수의 예배”와 신약시대의 “주일 성수의 예배”는 앞으로 천국에서 이루어질 “천국 안식의 예배”로 이어진다고 히브리서가 강력하게 지적하면서 지금 “주일 성수”를 철저히 하라고 분부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히 4:1,9-11). 천국에서 영원토록 계속될 것은 천국 안식일 예배뿐입니다. 목회도 선교도 구제도 다 그치고 맙니다. 지금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주일 예배에 정성을 다하는 사람들이 천국의 안식에 들어간다고 지적했습니다. 지금 저와 우리들 모두와 한국교회가 특별히 힘써야 할 일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주일 성수”의 “예배”를 교회에 함께 모여서 정성껏 드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이 주일을 종일 거룩하게 지키며 정성을 다해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우리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우리들을 축복하십니다. 우리들의 삶과 운명이 변화됩니다. 그리고 앞으로 하늘에서 이루어질 영원한 천국 안식의 축복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는 신앙의 선배님들께서 물려주신 “주일 성수”의 영적인 유산을 점점 저버리고 세속화와 인간화와 편의주의로 치닫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일 저녁 예배를 폐지한 교회가 너무 많아졌는데 너무 불행한 일이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방지일 목사님께서 너무너무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저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이지만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로 주일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교회에 가서 예배 드리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저는 강변교회에서 28년 동안 목회하면서 “주일 성수”와 함께 “새벽기도”를 귀중하게 여기면서 강조했습니다. 주일 성수를 제대로 하지 않은 집사님들과 장로님을 책벌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이란 “주일 성수”를 하면서 정성껏 “예배” 드리는 일에 전력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저와 우리들 모두와 한국교회가 특별히 힘써야 할 일은 “주일 성수”를 철저하게 하면서 교회에 함께 모여서 하나님께 정성껏 “예배” 드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로, 오늘의 한국교회가 힘써야 할 일은 이웃과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데 전력을 다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씀도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말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의 신이시며 주의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니라”(신 10:17-19).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사 58:6,7). 성자 예수님께서도 “사랑과 도움”의 귀중성을 강조하시고 또 강조하셨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4,1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 13:33,35). 성자 예수님께서는 이웃은 물론 악한 사람들과 원수들에게까지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것이 너무너무 귀중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39-44).

사도 바울도 비슷한 권면의 말씀을 했습니다.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롬 12:17,20).  저는 성 프랜시스의 믿음과 한경직 목사님의 믿음과 손양원 목사님의 믿음과 장기려 박사님의 믿음과 이성봉 목사님의 믿음은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분들과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는 이기적이고 정욕적이고 비판적이고 배타적이고 위선적이고 독선적인 게으르고 나태한 온갖 죄악과 허물로 가득한 죄인중의 죄인이지만, 주님께서 지니셨던 그리고 우리 신앙의 선배님들께서 지니셨던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도움”의 조그만 아주 조그만 부스러기라도 몸에 지니고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면서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프리카로, 방글라데시로, 북한으로, 일본으로, 중국 연변지역으로, 필리핀으로, 아프가니스탄으로, 타지키스탄으로, 파키스탄으로 달려가서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조금씩, 조금씩 펴기도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과 한국교회가 무엇보다 힘써야 할 것은 북한을 비롯한 세계 곳곳의 불우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오늘의 한국교회가 힘써야 할 일은 분노와 증오와 분쟁과 분열로 치닫고 있는 한 반도와 이 세상에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이루는데 전력을 다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씀도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말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는 창조와 구원의 하나님이시지만 궁극적으로는 온갖 죄악으로 가득한 그래서 분쟁과 분열로 치닫고 있는 이 세상과 온 우주와 모든 피조물 세계 안에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이루시려고 하시는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의 하나님이시라고 생각합니다.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과 비전입니다.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은 성경의 목표이며 역사의 완성 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연합하여 하나되는 아름다운 모습과 자연 만물이 모두 하나가 되어 하나님을 찬양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오래 전에 우리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 133:1). “해와 달아 찬양하며 광명한 별들아 찬양할 찌어다 산들과 모든 작은 산과 과목과 모든 백향목이며 짐승과 모든 가축과 기는 것과 나는 새며 다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 찌어다(시 148:3,9,10,13).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과 모든 피조물들이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이루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시는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의 하나님이십니다.

구약 성경 창세기는 야곱과 에서가 목을 어긋 맞기고 입을 맞추고 피차 울면서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이루는  장면을 감동적으로 묘사했습니다(창 33:3,4). 창세기는 또한 요셉이 방성대곡하며 울면서 자기를 팔아먹은 그의 형들과의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이루는 장면을 감동적으로 묘사했습니다(창 45:1,2). 구약 성경은 또한 이스라엘은 물론 애굽과 앗수르와도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이루는 것이 성부 하나님의 뜻이고 섭리라고 지적했습니다(사 19:23-25).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이루는 것이 인류를 향하신 성부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약 성경은 성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이루신 것이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 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화해)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 2:14,16,18). 성령님께서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 강림하시므로 서로 갈라져서 불신과 증오가운데서 살던 다문화 다인종 다민족 3천여 명이 함께 모여 “화해”하며 친밀한 “교제”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서로 교제하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 2:42). 기독교는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이루는 종교입니다.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은 우리 죄인들과 피조물을 향하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과 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부 하나님의 뜻은 둘로 갈라졌던 남과 북이 “하나”를 이루는 것이었고 서로 원수같이 지내던 이방인들과도 “하나”를 이루는 것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게 하라”(겔 37:18).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백성 애굽이여 나의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니라”(사 19:25). 성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못박혀 죽으심으로 갈라져서 서로 싸우고 서로 죽이는 인간들을 “화해”하게 하시고 “평화”를 이루게 하시고 그리고 “하나”가 되어 “통일”을 이루면서 살게 하셨다고 사도 바울이 선언하고 또 선언했습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2:13-16).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두가 “하나” 라고 강하게 선언했습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 성령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도 바로 “하나되게 하시는” 일이라고 사도 바울이 지적했습니다.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3). 성령님께서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 강림하시므로 서로 갈라져서 불신과 증오가운데서 살아가던 다문화 다인종 다민족 3천여 명이 모두 함께 모여 친밀하게 교제하게 되었고 그래서 모두가 “하나”가 되어 “통일”을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과 비전입니다.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은 성경의 목표이며 역사의 완성 점입니다.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은 부수적인 것도 아니고 선택적인 것도 아닙니다.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은 본질적인 것이고 필수적인 것입니다. 남북의 “화해와 평화와 통일”은 물론 모든 민족과 세계와 우주의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은 하나님의 뜻과 비전이고 성경의 목표이며 역사의 완성 점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 안에서 온 세계와 온 우주가 즉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모두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이루게 될 것을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찌로다 아멘 하더라”(계 7:9-12).

지금 우리 한국 교회와 사회 안에 시급하게 요청되는 것은 화려한 예배나 정통 진리의 선포 이전에 서로 끌어안고 울면서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인 의식”을 가질 때는 불가능하고 “죄인 의식”을 가질 때 비로서 가능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이 땅에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이루기 위해서는 야곱과 요셉과 같은 눈물을 지니고 상대방의 죄와 잘못을 덮어주는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을 지닌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땅에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이루기 위해서는 스데반 집사와 토마스 선교사와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과 같은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포용”을 지니고 모두를 끌어안는 “제물 되는” 사람들 몇 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본래 일본 사람들을 싫어했고 북한 사람들을 싫어했고 중국 사람들을 싫어했고 모슬렘 사람들을 싫어했고 타 종교인들을 싫어했었습니다. 자유주의자들도 순복음주의자들도 싫어했었습니다. 반일 반북 반공 반중 반 모슬렘 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성 프랜시스와 손양원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과 장기려 박사님과 존 스토트 박사님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므로 조금씩, 조금씩 저의 생각과 마음이 바뀌어졌습니다. 일본 사람들을 존경하며 사랑하게 되었고 일본 교회와 교류하는데 앞장을 서게 되었습니다. 북한 사람들을 사랑하며 북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앞장을 서게 되었습니다. 중국 연변에 있는 불우한 조선족 어린이들 150여명을 지난 20 년 동안 계속해서 돕게도 되었습니다. 북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 가서 가뭄으로 죽어가는 모슬렘 사람들에게 우물 열 몇 개를 파 주었고, 가난과 고난과 질병 중에 있는 방글라데시 사람들을 찾아가서 안과 진료소를 지어주고 간호사 한 사람을 파송하기도기도 했고, 극심한 가난으로 고통을 당하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찾아가서 아프간 무라취드에 학교 하나를 지어주고 아프간 어린이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기도 했습니다. 기장과도 순복음과도 친밀하게 소통하며 교제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있는 5개 종단의 종교 지도자들과도 친밀하게 교제하면서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1997년 4월에는 5개 종단 지도자들이 강원도에서 썩어가는 감자 1690톤을 사서 99대의 트럭에 실어 북한에 보내기도 했고, 2010년 8월 27일에는 5개 종단 지도자들 9명과 함께 밀가루 300톤을 13 대의 트럭에 싣고 북한 개성에 가서 그곳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오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오늘의 한국교회가 힘써야 할 일 네 가지에 대한 말씀을 전했습니다. 첫째로 오늘의 한국교회가 힘써야 할 일은 “회개의 기도”에 전력을 다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오늘의 한국교회가 힘써야 할 일은 “주일 성수”와 “예배의 제사”를 드리는데 전력을 다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로, 오늘의 한국교회가 힘써야 할 일은 이웃과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데 전력을 다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넷째로, 오늘의 한국교회가 힘써야 할 일은 분노와 증오와 분쟁과 분열로 치닫고 있는 한 반도와 이 세상에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이루는데 전력을 다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오늘의 우리 민족이 힘써서 하여야 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말씀을 아주 간단하게 줄여서 세 가지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오늘의 우리 민족이 특히 정치 지도자들과 사회 지도자들이 힘써서 하여야 할 일은 대한민국의 건국 정신인 애국가의 정신을 이어받아 세 가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하늘을 바라보면서 온유 겸손한 자세를 지니고 하늘의 도우심을 바라는 일이고, 둘째로 포용적인 따뜻한 자세를 지니고 나라와 민족은 물론 이웃 나라와 이웃 민족들까지 사랑으로 품고 섬기는 일이고, 셋째로 폭 넓은 관용의 자세를 지니고 사람들뿐 아니라 자연 만물을 귀중하게 여기면서 돌아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애국가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우리 민족의 정치 사회 지도자들이 반드시 기독교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1) 하느님 경외의 정신과 의지와 2) 민족 화해와 협력의 정신과 의지와 3) 자연 보호의 정신과 의지는 반드시 지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우리 민족이 정치 사회적으로 양극으로 분열되고 자기 중심적인 독재 의식에 사로잡혀서 상대방을 정죄하며 때려 잡으려고 하기 때문에 1) 하느님 앞에서 자기를 낮추는 온유 겸손한 자세를 지니는 일이 필요하고, 2) 모두를 사랑으로 품고 섬기려는 포용적인 따뜻한 자세를 지니는 일이 필요하고, 3) 자연 만물까지 귀중하게 여기면서 돌아보려고 하는 폭 넓은 자연 보호의 자세를 지니는 일이 너무너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의 건국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의 기도문 하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완전한 사람이었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 분의 기도는 본 받을 수 있는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 이 민족을 돌아보시고 이 땅에 복을 내리셔서 감사에 넘치는 오늘이 있게 하심을 진심으로 감사하나이다. 하나님께서 오랜 세월 동안 이 민족의 고통과 호소를 들으시고 정의의 칼을 빼셔서 일제의 폭력을 굽히셨으며 세계인의 양심을 움직이시고 우리 민족의 염원을 들으심으로써 역사적인 환희의 날이 우리에게 오게 하시고 하나님의 섭리가 세계 만방에 드러나게 하셨음을 믿나이다. 하나님이시여! 이로부터 남북이 둘로 갈리어진 이 민족의 어려운 고통과 수치를 신원(伸寃: 원통한 일을 풂)하여 주시고, 우리 민족, 우리 동포가 손을 같이 잡고 웃으며 노래 부르는 날이 우리 앞에 속히 오기를 기도하나이다. 오늘의 우리의 환희와 우리의 감격에 넘치는 이 민족적 기쁨을 다 하나님에게 영광과 감사를 올리나이다. 아멘” 이 기도는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 제1차 본회의에서 한 기도였다고 하는데 우리 민족이 즉 정치 지도자들과 사회 지도자들이 본 받을만한 귀중한 기도였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저는 오늘의 정치 지도자들과 사회 지도자들이 애국가의 정신을 이어받아 첫째로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를 외치면서 자신을 의지하고 들어내는 대신 하느님 경외와 하느님의 보우하심을 기원하면서 온유 겸손하게 자기의 사역을 수행하는 일이 너무너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를 과신하고 자신을 절대화하는 독재 정신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처럼 민족의 화해와 평화와 통일의 날이 속히 오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겸손한 자세가 올바른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라고 노래하면서 경상도 사람들이 전라도 사람들과 협력하고 남한 사람들이 북한 사람들과 협력하는 일이 너무너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셋째로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길이 보전하세”를 외치면서 자연을 무시하고 파괴하는 대신 자연을 귀중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친환경적인 삶을 사는 일이 너무너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물론 정치지도자들이 자기 자신을 절대화하면서 상대방의 잘못을 적대적으로 정죄하며 때려 잡으려고 하지 말고 상대방의 잘못을 부드러운 자세로 지적하면서 끌어안는 수준 높은 자세를 지니도록 최선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사실 구약의 성부 하나님께서는 죄악이 하늘에까지 상달한 니느웨를 때려 부시지 않으시고 요나를 그곳으로 보내시어 니느웨로 하여금 잘못을 뉘우치면서 회개하게 하셨고 그래서 저주대신 축복을 받게 하셨고, 신약의 성자 예수님께서는 저주 받아 마땅한 로마 군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도 바울과 베드로로 하여금 로마로 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셔서 로마를 복음화하게 하셨습니다. 오늘의 우리 나라의 교회와 민족의 정치 지도자들도 그와 같은 부드럽고 포용적인 수준 높은 자세를 지니고 자기와 입장이 다른 남한의 지도자들은 물론 북한의 지도자들까지 끌어안는 민족의 화해와 협력과 하나됨의 길로 가도록 그리고 아시아와 세계의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조금이라도 실현하는데 최선을 다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여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물론 민족과 세계의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이루는 것이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유민주주의 안에서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다양성은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양성을 품는 포용성이 너무너무 귀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으로 오늘 “우리 교회와 민족이 힘써서 하여야 할 일” 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마무리합니다. 우리 교회가 힘써서 하여야 할 일 4 가지에 대한 말씀을 전했고 우리 민족이 하여야 할 일 3 가지에 대한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와 민족을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들을 수행하여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찬송가 526장 “주 예수 안에 동서나 남북이 있으랴”를 함께 부르겠습니다. 그리고 애국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를 함께 부르겠습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황은혜 목사님이 앞으로 5일이 지나면 성탄절이니까 성탄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하면 좋겠다고 해서 지금 성탄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간단하게 하려고 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시는 성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늘 영광을 모두 버리시고 세상에 있는 모든 백성들을 구원하실 구주로 마리아의 아들로 탄생하셨는데 이보다 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세상에 없다고 하겠습니다. 성탄절 날 천사가 전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눅 2:10-14). 그런데 성자이시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사람과 같은 육신이 되어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게 되신 사실은 너무너무 놀라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그런데 사도 바울은 나중에 성자 예수님께서 취하신 사람의 모습은 “죄 있는 육신”의 모습이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3,4). 거룩하신 성자 예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죄 있는 육신”의 모습을 지니시고 오셨다는 사실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너무너무 놀라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말씀 더 드립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시는 성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늘 영광을 모두 버리시고 세상에 있는 모든 백성들을 구원하실 구주로 마리아의 아들로 탄생하신 사실보다 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성탄의 사실은 동시에 너무너무 슬프고 가슴 아픈 사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태어나실 곳이 없어서 말과 소들의 먹이를 담아주는 구유에 탄생하셨고 그리고 태어나시자 마자 애굽으로 피난을 가서 그곳에서 피난생활을 하셨다는 일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너무너무 슬프고 가슴 아픈 사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마 2:13-15). 사실 성자 예수님께서는 평생을 가난과 고난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래서 성자 예수님께서는 나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마 8:20). 구유에 탄생하셔서 평생을 가난과 고난과 슬픔을 지니고 사신 성자 예수님을 정말로 사랑하며 닮기를 소원한다면 우리들도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이성봉 목사님, 한경직 목사님, 장기려 박사님들처럼 가난과 고난과 슬픔을 지니고 사는 것이 성탄절의 정신을 이어받고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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