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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3] 나를 만드신 신앙의 선배님들과 손양원 목사님을 기리며 (히 12:1,2) - 수원 동문교회


제가 2008년 1월 13일 강변교회에서 은퇴한 다음 지난 12년 11개월 동안 주일마다 전국의 작은 교회들을 주로 방문하면서 설교를 하고 있는데, 수원 동문 교회는 2008년 3월 17일부터 지난 2020년 9월 6일 주일까지 12년 동안에 15번 와서 설교를 했습니다. 저는 죄와 허물밖에 없는 죄인 중의 죄인인데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너무나 크신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주셨고 아직까지 저를 버리시지 않고 심부름꾼으로 계속해서 사용하시는 것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모릅니다. 사실 오늘은 수원 옥토교회에 가서 설교할 예정이었는데 코로나 방역 조치 2.5 단계 격상으로 오늘 수원 옥토교회에 오지 말라는 연락을 3일전인 지난 목요일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날인 지난 금요일 수원 동문교회 오에녹 목사님에게 전화를 걸고 오늘 동문교회에 와서 설교를 하면 어떻겠냐고 물었더니 오늘 와서 설교를 하면 좋겠고 해서 오늘 여기 와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리고 오늘 “나를 만드신 신앙의 선배님들”에 대한 간증 설교를 하면 어떻겠냐고 물었더니 아주 좋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를 만드신 신앙의 선배님들”인 김관주 목사님, 주일학교 선생님들, 이성봉 목사님, 김치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한경직 목사님, 정진경 목사님, 박윤선 목사님, 방지일 목사님들 중의 한 분에 대해서 좀 상세한 설교를 하고 싶은데 누구에 대해서 좀 상세한 설교를 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손양원 목사님에 대해서 좀 상세한 설교를 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나를 만드신 신앙의 선배님들과 손양원 목사님을 기리며” 라는 제목의 설교를 시작합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한 평생을 죄와 허물로 가득한 죄인중의 죄인으로 살아왔는데 하나님의 망극하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와 축복으로 하나님께서 쓰시는 심부름꾼으로 살아오고 있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이 하나님께서 쓰시는 심부름꾼이 된 것은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망극하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와 축복으로 된 것이지만 또한 신앙의 선배님들의 귀중한 가르침과 기도와 사랑의 손길에 의해서 된 것이라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부족한 저에게 귀중한 신앙의 유산들을 물려주신 신앙의 선배님들에 대한 감사와 사랑과 존경의 이야기들을 간단하게 줄여서 하려고 합니다.

첫째로 저의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께서는 부족한 저에게 주일성수와 새벽기도와 순교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께서는 처음에는 북한 신의주 제이교회에서 9년 동안 한경직 목사님과 함께 목회하시고 그 다음에는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2년 동안 목회를 하셨는데 일본 시대에는 신의주에서 신사참배를 반대한다고 자주 감옥에 잡혀가시는 고난을 당하셨고 공산 시대에는 평양에서 공산정치를 반대한다고 자주 감옥에 잡혀 잡혀가시는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저는 자주 감옥에 붙잡혀 가시는 그리고 나중에는 순교의 길로 가시는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주일성수와 새벽기도와 순교 신앙의 유산을 조금씩 몸에 지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둘째로 제가 평양에 있을 때 평양 서문밖교회 주일학교 선생님들인 이인복 명선성 최병목 선생님들로부터 주일성수와 새벽기도와 순교신앙의 유산을 보다 분명하게 물려받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인복 명선성 최병목 선생님들은 저에게 주일성수와 새벽기도와 순교신앙이 가장 귀중한 신앙이라고 분명하게 가르쳐주셨는데 저는 주일학교 선생님들과 함께 주일을 종일 성수했고 새벽기도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고 순교신앙을 가장 귀중한 신앙으로 받아드리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때 평양 제 오 인민학교에 2년 동안 다녔는데 일요일에 학교에 오지 않는다고 월요일마다 벌을 서고 정학을 당하게 되었는데 저는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셋째로 제가 11살 때인 1948년 8월 주일성수의 신앙을 지니고 신앙생활을 바로 하기 위해서 캄캄한 밤에 38선을 혼자서 뛰어넘어 서울에 와서 이모님 집에서 이별의 슬픔과 함께 신앙의 자유를 누리는 감사를 지니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2년 후인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서 대구로 가서 3년 동안 피난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한국교회의 무디 라고 불리시는 이성봉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부흥회에 12번 참석하면서 너무나 큰 은혜와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맨 앞자리에 앉아서 말씀을 들었고 금요일에는 철야기도를 했고 토요일 새벽에는 이성봉 목사님의 안수기도를 12번 받으면서 좋은 목사가 되기를 다짐하곤 했습니다. 결국 회개와 기도와 은혜 사모와 성결과 청빈과 재림 신앙의 유산을 조금씩 조금씩 물려받게 되었는데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넷째로 제가 고등학생과 대학생 시절에 서울 창동교회에 다니면서 한국교회의 예레미아 라고 불리시던 김치선 목사님으로부터 눈물의 회개와 은혜 사모와 기도와 전도와 헌신의 유산을 조금씩 물려받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김치선 목사님께서는 새벽기도회 때마다 “애통하며 회개할 맘 충만하게 합소사” 찬송을 부르시면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시곤 하셨는데 저는 새벽기도 후 남산으로 올라가서 30여분 이상 더 기도하고 내려오곤 했습니다. 저는 김치선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산 기도회에는 삼각산 관악산은 물론 대구 주암산까지 찾아가곤 했습니다. 그리고 2만 8천여 동내에 우물을 파게 대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시던 김치선 목사님의 기도와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서 저는 고 3때와 대 1때 토요일과 주일에 왕십리 들판에 나가서 찬송을 부르고 전도를 하면서 어린이들과 어른들을 불러모으고 천막교회를 세우기도 했는데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다섯째로 저는 손양원 목사님으로부터 순수한 믿음과 사랑과 소망과 함께 희생적인 섬김과 순교신앙의 유산을 조금씩 물려받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서울고등학교 2학년 학생일 때 여름 어느 날 남대문 네 거리에 있는 기독교 서점에서 『사랑의 원자탄』 이란 책을 사서 들고 제가 새벽기도 후에 날마다 올라가서 기도하곤 하던 남산 어느 숲 속으로 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랑의 원자탄』 책을 읽고 또 읽으면서 울고 또 운 일이 있었습니다. 나병에 걸려있는 아이들을 사랑하면서 저들의 점심을 빼앗아 먹었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리고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양 아들로 삼았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떻게 이런 일이 세상에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생각하면서 저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면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 후부터 손양원 목사님은 제가 제일 존경하고 사랑하고 닮고 싶은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여섯째로 저는 1살 때부터 평생 한경직 목사님의 친밀한 사랑과 가르침을 받으면서 살았는데 한경직 목사님으로부터 회개와 기도와 온유와 겸손과 사랑과 섬김과 가난과 고난과 화해와 평화의 유산을 조금씩 물려받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경직 목사님께서는 신의주 제이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시면서부터 월남 후 영락교회에서 목회하시는 동안에 가난하고 병들고 약한 자들을 정성껏 돌아보시는데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그래서 보린원, 모자원, 경로원, 노인요양소, 농아원, 장애아원, 어린이 집, 재가노인복지 상담소 등을 세우셨습니다. 한경직 목사님께서는 은퇴 후 남한산성의 아주 작은 집에서 26년 동안 불편하게 사셨는데 3무 4무 5무의 가난과 고난과 청빈의 삶을 사셨습니다. 제가 남한산성을 제일 많이 찾아가곤 했는데 한경직 목사님을 마지막까지 돌아보시던 백운경 장로님이 “한 목사님이 김 목사님이 오면 제일 좋아하지요” 라는 말을 하곤 했습니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일곱째로 저는 정진경 목사님으로부터 온유와 겸손과 포용과 협력과 따뜻함과 사랑과 격려와 칭찬의 유산을 조금씩 물려받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정진경 목사님께서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저를 누구보다도 너무너무 사랑해주시고 아껴주시고 격려해주시고 칭찬해주셨습니다. 저는 온유 겸손하신 한경직 목사님으로부터도 분에 넘치는 사랑을 많이 받았지만, 정진경 목사님으로부터는 더욱더 친밀한 사랑과 격려와 칭찬을 몽땅 받았습니다. 백두산을 비롯한 중국 일본 러시아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홍콩 등 세계의 수 많은 곳을 정진경 목사님과 함께 여행하면서 저는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시간들을 가졌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이 배웠는지 모릅니다. 한국교회에 훌륭하신 분들이 많이 계시지만 정진경 목사님과 같이 항상 가까이 친밀하게 사귈 수 있는 분들은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정진경 목사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면서 살아온 것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여덟째로 저는 총신과 합신에서 교수 생활을 하면서 박윤선 목사님으로부터 기도와 말씀, 소박함과 진솔함, 착함과 따뜻함의 유산을 조금씩 물려받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박윤선 목사님께서는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께 완전하게 붙잡히신 분이셨고 그래서 기도와 말씀에 전념하신 분이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너무 소박하시고 진솔하시고 착하시고 따뜻하신 인간미를 몸에 지니신 분이셨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자주 전화를 거시고 가슴에 지니신 안타까운 생각들을 진솔하게 말씀하시면서 “이 말을 다른 사람들에게는 하지 마” 라는 말씀을 자주 하시곤 하셨습니다. 정진경 목사님과 비슷하신 진솔함을 지니신 분이셨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박윤선 목사님께서 마지막 한 주 동안 입원하고 계시던 영동 세브란스 병원에 매일 찾아 뵈면서 친밀한 교제와 기도의 시간을 가지곤 했는데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아홉째로 저는 방지일 목사님의 사랑과 보살핌을 많이 받으면서 방지일 목사님으로부터 순수함과 섬세함과 정확함과 따뜻함과 사랑과 섬김과 눈물의 유산을 조금씩 물려 받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방지일 목사님께서는 부족한 저에게 특별한 사랑의 손길을 따뜻하게 펴시며 진솔한 말씀들을 해 주시곤 했습니다. “김 목사, 점심 대접할게” 라는 송구한 말씀을 수십 번 하셨고 제가 달려가면 일산으로 강화도로 경기도로 서울 곳곳으로 저를 데리고 가서 맛있는 음식을 사 주시곤 했고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계시는 생각들을 저에게 진솔하게 이야기해 주시곤 했습니다. 저는 방지일 목사님을 모시고 중남미 도미니카로, 모스크바로, 몽골로, 태국 등지로 다니면서 선교대회에 참석하곤 했는데 선교사들과 현지인들은 물론 저는 너무너무 깊은 감동과 은혜를 받곤 했습니다. 방지일 목사님께서 하신 귀중한 말씀들이 너무너무 많은데 한 가지만 소개합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그리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지만, 나 혼자 있을 때면 우는 때가 많아요. 깊은 밤중에 일어나 우는 때도 있고 혼자 길을 걸으면서 우는 때도 적지 않아요. 어린 아이는 잘 울어요. 배가 고파도 울고, 보고 싶어도 울고, 기저귀가 젖어도 울어요. 어린 아이는 우는 방법밖에 알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우리 신앙인들은 이런 의미에서 어린 아이가 되어야 해요. 너무 지나치게 생각하고 통달하려고 하다 보니 울지 않게 된 것이에요. 기도의 최고봉은 눈물의 기도입니다. 우리는 어린 아이 한데서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방지일 목사님과 친밀한 교제의 시간들을 가진 것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귀중한 영적 유산들을 저에게 물려주신 신앙의 선배님들 9분들 중의 한 분이신 손양원 목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제가 지난 2020년 6월 18일 영락교회 예배당에서 모인 “6.25 70주년 및 손양원 목사 순교 70주년 기념예배”에 참석해서 시 50:15, 계 2:10을 본문으로 삼고 특별강연을 했는데 그 때 한 강연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소개하려고 합니다. 저는 그 때 다음과 같이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우리 나라의 역사를 돌아볼 때 가장 불행한 일은 일본의 통치를 36년 동안 당한 원통한 일이었고 북한의 침략과 지배를 수년 동안 당한 원통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랄 정도로 이상한 일은 그런 불행하고 원통한 일들이 없었다면 우리들은 주기철 목사님이나 손양원 목사님과 같은 귀중한 신앙의 선배님들과 순교자들을 가지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의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도 일본 시대와 북조선 시대에 북한에서 목회하시면서 자주 감옥에 붙잡혀 가사다가 1950년 6월 23일경 순교를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들이 당하는 고난이나 환난이나 원통한 일들이 귀중한 일들이라고 지적합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5).

사실 6.25 사변이 없었다면 한국교회는 처절한 회개의 기도를 드리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6.25 사변으로 인해서 부산까지 피난 온 수백 여명의 목사님들이 한 곳에서는 한경직 목사님을 중심으로. 다른 곳에서는 박윤선 목사님을 중심으로 한 주간 동안 금식하면서 회개의 기도를 드리게 되었고 그 이후부터 이곳 저곳에서 회개의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한국의 무디 라고 불리시던 이성봉 목사님께서는 평생토록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시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6.25 사변으로 인해서 부산에 가서 잠시 머물다가 대구에 가서 3년 동안 피난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이성봉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부흥회를 12번 참석하면서 회개와 성결과 구령과 재림의 신앙적 유산을 물려받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6.25사변은 부족한 저에게 있어서는 영적으로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과 위로와 축복을 받는 아주 귀중한 보석과 같은 기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의 긍휼과 용서와 사랑과 섬김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줄여서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에게 베풀어주신 은혜가 너무너무 많은데 그 중의 하나가 “눈물의 감동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 라고 고백합니다. 부족한 자에게 베풀어주신 “눈물의 감동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9 가지가 있는데 그 중의 첫째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저에게 “눈물의 감동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 중의 하나는 제가 고등학교 학생일 때 손양원 목사님의 삶과 사역에 대한 책인 “사랑의 원자탄” 이란 책을 읽으면서 울고 또 운 일이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었을 때 어느 여름날 아침 남대문 네거리에 있던 기독교 서점에서 “사랑의 원자탄” 이란 책을 사 들고 제가 새벽기도 후에 매일 올라 가서 30여분 이상 기도하던 남산의 어느 숲 속에 올라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그 책을 읽으면서 울고 또 울고 기도하고 또 기도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사랑의 원자탄”으로 사시다가 죽으신 손양원 목사님의 “사랑과 섬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저는 17년 전인 2003년 2월 18일 손양원 목사님의 시신과 정양순 사모님의 시신과 두 아들의 시신이 함께 묻혀 있는 여수 애양원 묘지 앞에 서서 가슴이 저려오는 아픔과 감동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일본 사람도 공산당도 사랑했고 두 아들을 죽인 원수도 사랑했고 버림 받은 나환자들을 누구보다도 사랑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1992년 4월 29일 베를린에서 템플턴 상을 수상하면서 그의 수상 연설을 이렇게 마무리하셨습니다. “인간의 삶을 지탱해주는 세 다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그리고 손양원 목사님의 원수 사랑의 이야기를 한 다음 이렇게 말씀을 마무리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여수교회 옆에 세 무덤을 가지고 있습니다. 손양원 목사는 이 세계가 필요로 하는 사랑의 본보기를 손수 보여 준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손양원 목사님의 삶과 죽음을 간단하게 줄여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순수한 믿음의 사람이었고 사랑의 사람이었으며 소망의 사람이었습니다. 시간상 관계로 “사랑과 섬김”의 사람 손양원 목사님에 대한 이야기만 하려고 합니다.

손양원 목사님께서는 일제의 박해와 공산당의 박해를 극심하게 받으셨지만 자기를 극심하게 박해하던 일본 사람들이나 공산당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와 저주는 조금도 지니지 않으시고 긍휼과 용서와 사랑과 섬김의 마음과 몸과 영혼을 지니고 사시다가 자기의 “소원”이신 순교의 죽음을 죽으신 분이시라고 생각합니다. 손양원 목사님께서 일제 시대에 신사참배를 반대하신다고 감옥에 붙잡혀가서 극심한 심문과 고문을 당하셨는데 해방 후 어느 곳에서 자기를 극심하게 심문하고 고문하던 일본 순사를 만났다고 합니다. 그 일본 순사는 너무 놀라서 자기는 이제 맞아 죽게 되었다는 생각을 했는데 손양원 목사님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그 사람이 나빠서 자기를 극심하게 고문한 것이 아니고 시대가 나쁘고 그 사람의 직업이 나빠서 자기를 극심하게 고문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용서와 위로와 사랑의 말씀을 하시면서 전도까지 하셨다고 합니다.

손양원 전도사는 1935년 4월 33세에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여 1939년 7월에 졸업했습니다. 졸업하자마자 경상도 사람으로서 전라도 여수에 있는 나병원 교회인 애양원 교회에 전도사로 부임했습니다. 손양원 전도사는 1939년 7월부터 사랑과 정성을 쏟으며 애양원 교회에서 나환자들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일본 경찰은 1940년 9월 25일 수요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손양원 전도사를 연행해 갔습니다. 신사참배를 반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손양원 전도사는 일경들에 의해 체포되어 여수 경찰서, 광주 형무소, 경성 구치소, 청주 구치소 등에서 8. 15 해방까지 5년 간의 옥고를 치르며 갖은 고문을 다 당했으나 주님을 향한 일편 단심의 신앙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손양원 전도사는 1945년 8월 해방 후 다시 애양원 교회로 돌아와 그의 남은 생애를 애양원 나환자들과 동고동락하며 그들에게 모든 정성과 사랑을 쏟아 부었습니다. 출옥 후인 1946년 3월에야 비로서 경남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한 번은 박옥선이란 여 환자가 발 밑에 난 종기 때문에 다리를 절단해야 할 만큼 심각하였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입으로 악취 나는 피고름을 빨아 주었습니다. 나병의 환부에는 사람의 침이 좋은 약이 된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나환자들에게 모든 사랑과 정성을 다 쏟아 부은 한국의 프랜시스였습니다. 다음과 같은 손양원 목사님의 노래도 그런 심정의 한 표현입니다. “주여 애양원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애양원을 참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을 주시옵소서. 주께서 이들을 사랑하심 같은 사랑을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나는 이들을 사랑하되 나의 부모와 형제와 처자보다도 더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차라리 내 몸이 저들과 같이 추한 지경에 빠질지라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만약 저들이 나를 싫어하여 나를 배반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저들을 참으로 사랑하여 종말까지 싫어 버리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내가 이들을 사랑한다 하오나 인위적 사랑, 인간적 사랑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람을 위하여 사랑하는 사랑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고 주를 위하여 이들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보다는 더 사랑치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내가 또한 세상의 무슨 명예심으로 사랑하거나 말세의 무슨 상급을 위하여 사랑하는 욕망적 사랑도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만 그리스도의 사랑의 내용에서 되는 사랑으로서 이 불쌍한 영육들만을 위한 단순한 사랑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나의 남은 생이 몇 해 일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몸과 맘 주께 맡긴 그대로 이 애양원을 위하여 충심으로 사랑케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손양원 목사님의 사랑의 극치는 1948년 10월 19일 여수 순천 반란 사건 때 나타나 보였습니다. 사랑하던 믿음의 두 아들 동인군과 동신군이 공산 폭도들에게 붙잡혀 10월 21일 순천 경찰서 뒷 마당에서 총살을 당했습니다. 예수를 부인하라고 했지만 오히려 예수를 증거하다가 총살을 당해 순교했습니다. 10월 25일 반란군에 의해 두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손양원 목사님 내외는 엄청난 충격에 쌓여 비통해 했습니다. 반란 사건이 진압되고 두 아들을 죽인 안재선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은 손양원 목사님은 밤을 새워 통곡하고 기도하고 교회를 나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 내 아들들은 죽어서 천국에 갔지만, 안재선은 죽으면 지옥 갈 텐데,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 결국 손양원 목사님의 마음에는 커다란 사랑의 폭풍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를 살려야 한다. 그를 용서해야 한다. 그를 사랑해야 한다.” 두 아들을 죽인 안재선이 체포되어 총살을 당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손양원 목사님은 계엄 사령관에게 딸을 보내어 그를 사면할 것을 간청했습니다. 그를 양자로 삼아 교육시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안 가겠다고 반항하며 대드는 딸 동희를 설득하여 용서의 메시지를 전달하게 했습니다. 딸은 자기 의지에 반해 아버지의 하나님 절대 신앙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딸은 아버지의 용서와 사랑의 메시지를 국군 심문자에게 그대로 전하므로 처형되기 10여분 전에 원수를 살려냈습니다. “아버지가 두 오빠를 죽인 자를 잡았거든 매 한 대도 때리지 말고, 죽이지도 말라 하셨어요. 그를 구해 아들 삼겠다고요. 성경말씀에 원수를 사랑하라 했기 때문이래요.” 그는 단숨에 말을 토해 놓고는 책상에 엎드려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취조를 하던 군인은 입에 물고 있던 담배가 떨어진 줄도 모르고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으며 “위대하시다” “위대하시다” 라고 감탄의 소리를 토해 냈습니다. 안재선까지도 흐느껴 울고 있었습니다. 안재선은 살아났습니다. 안재선은 석방이 되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그를 자기의 양 아들로 삼아 부산 고려 성경 고등학교에 보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1950년 9월 28일 공산군들에게 끌려가며 갖은 고초를 당하시다가 여수 미평 과수원에서 총살을 당하시므로 순교하셨는데 자기를 총살한 공산군인을 위한 사죄의 기도를 드리신 사랑의 사람이셨습니다. 1950년 10월 13일 애양원에서 손양원 목사님의 영결식이 거행되었을 때 옷을 찢으며 통곡하는 1천여명 애양원 식구들 중 더욱 더 슬피 통곡하는 이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안재선이었습니다. 그는 결혼하여 4남매를 두었는데 장남은 대한신학교에 다녔다고 합니다.

이것으로 오늘 “나를 만드신 신앙의 선배님들과 손양원 목사님을 기리며” 라는 제목의 간증 설교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죄와 허물밖에 없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에게 신앙의 선배님들이 물려주신 귀중한 영적 유산을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물려받게 하신 그리고 신앙의 선배님들을 사랑과 존경을 지니고 바라보면서 살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특히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으로 하여금 “사랑의 원자탄” 이라고 불리시던 손양원을 알게 하시고 은혜와 감동을 받게 하시고 사랑과 존경을 지니고 바라보게 하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면서 손양원 목사님께도 감사와 존경과 사랑을 표합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와 여러분들에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주셔서 저와 우리들로 하여금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만 바라보고 믿고 사랑하고 소망하면서 살게 하시고 그리고 우리 신앙의 선배님들을 바라보고 사랑하고 존경하고 배우면서 살게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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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1  [03/07] 학교와 하나님과 교회와 나라를 사랑한 3.1운동의 주역 이승훈 선생을 기리며 (히 12:1-3 -영등포 광야교회      21TV 2021/03/08
1020  [02/28] 천국 소망을 지닌 신앙의 선배님들을 바라보며 (요14:1-3, 골3:1,2 , 벧후3:13, 계 21:1) - 영천 하나승리교회      21TV 2021/03/02
1019  [02/21]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마 9:12,13, 요 4:6-8 ) - 포천 새힘교회      21TV 2021/02/22
1018  [02/14] 귀중하고 놀라운 십자가와 부활 신앙 (고전 15:51-58, 고후 12:10) - 수원 동문교회      21TV 2021/02/15
1017  [02/07] 드림과 나눔의 귀중한 삶 (롬 12:1, 딤후 2:15, 히 13:16) - 문경 예스교회      21TV 2021/02/08
1016  [01/31]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 (행 2:38-47) - 의정부 한꿈교회      21TV 2021/02/01
1015  [01/24]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 (막1:14,15, 롬 12:1,2, 요 14:1-3) - 구룡마을 소망교회      21TV 2021/01/26
1014  [01/17] 주일성수와 예배 드림의 귀중한 신앙 (롬 12:1,2) - 좋은 소식교회      21TV 2021/01/18
1013  [01/10] 주일성수와 새벽기도와 순교 신앙의 유산을 염원하며 (마12:8, 막 1:35, 계2:10 ) - 세종시 소망교회      21TV 2021/01/11
1012  [01/03] The benevolent God who allows us disasters and trials - 1Cor. 10:13, 2 Cron. 7:12-16, Ps. 50:15, Rom. 5:3,4 (Nam YangJu Ammi Mission Church)      21TV 2021/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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