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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22]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 대하 7:12-16, 사 41:10, 롬 5:3,4, 롬 8:31-39 ) - 전주 대언교회


제가 2008년 1월 13일 강변교회에서 은퇴한 다음 지난 12년 11개월 동안 동안 주일마다 전국의 작은 교회들을 주로 방문하면서 설교를 하고 있는데 전주 대언교회는 2009년 6월 21일 주일 첫 번째로 와서  "구원 받은 사람들의 삶: 드리는 삶, 함께 하는 삶, 사랑하는 삶"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0년 12월 12일 주일 두 번째로 와서 11시에는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시에는 세 교회가 함께 모여서 연합예배를 드렸는데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2011년 9월 17일 토요일 세 번째로 와서 3시에는 “최재석 목사 위임예배 축하와 권면의 말씀”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그 다음 날인 9월 18일 주일 11시 예배에는 “새로 시작한 안디옥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2012년 3월 3월 11일 주일 네 번째로 와서 11시에는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주님 사랑, 교회 사랑"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3시 30분에는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이웃 사랑, 원수 사랑"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2013년 5월 19일 주일 다섯 번째로 와서 “스승의 은혜를 기리며”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3년 11월 10일 주일 여섯 번째로 와서 “어떻게 살 것인가?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며”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2014년 4월 20일 주일 일곱 번째로 와서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 내가 주님을 믿고 주님을 사랑합니다”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5년 5월 10일 주일 여덟 번째로 와서 "하나님의 은혜와 부모님의 은혜"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2015년 9월 6일 주일 아홉 번째로 와서 11시에는 "기회말교봉이 충만한 예루살렘교회의 아름다운 모습"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오후 1시 30분에는 "교봉기가 충만한 빌립보교회의 아름다운 모습"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2016년 5월 8일 주일 열 번째로 와서 “주일성수와 부모공경”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7년 9월 3일 주일 열한 번째로 와서 “부드럽게 만져주시고 안아주시는 사랑의 예수님”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8년 3월 11일 주일 열두 번째로 와서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으로 부름 받은 존재”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8년 10월 7일 주일 열세 번째로 와서 “즐겁게 살도록 지음 받은 존재”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9년 5월 5일 어린이 주일 열네 번째로 와서 “어린이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예수님”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9년 12월 29일 마지막 주일 열다섯 번째로 와서 “한 해를 돌아보고 새 해를 맞으며”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오늘 2020년 11월 22일 주일 열여섯 번째로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설교를 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최재석 목사님과 강명희 사모님과 성도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사실 저는 최재석 목사님과 강명희 사모님을 위해서 매일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무슨 제목으로 설교를 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지난 8월 7일 최재석 목사님이 저에게 전화를 걸고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로 모두 어려움을 당하면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근심 걱정에 사로잡혀 있는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가 파 식의 긍정적인 삶에 대한 설교를 하면 좋겠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라는 제목으로 막가 파 식의 긍정적인 삶에 대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지금 중국과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재난은 물론 이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재난들은 우연히 일어나는 재난이 아니고 하나님의 섭리가운에서 일어나는 재난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우리들이 잘못을 깨닫고 회개함으로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사기 시대에는 7번 재난을 당했고 나중에는 70년 동안 바벨론으로 잡혀가서 노예 생활을 하는 극심한 재난을 당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러 가지 재난들을 통해서 회개하면서 올바른 신앙을 회복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들은 재난과 고난의 유익을 이렇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시 13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 119:67).



사실 조선교회가 일본 통치하에서 36년 동안 재난과 고난을 당하므로 조금씩 조금씩 교회다운 귀중한 교회로 탈바꿈하게 되었고, 한국교회가 1950년 6.25 전쟁의 재난과 고난을 당하므로 조금씩 조금씩 교회다운 귀중한 교회로 탈바꿈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회개"를 아주 많이 하게 되었고 "주일성수의 예배"와 "새벽기도"에 전력하게 되었고 "이웃 사랑과 섬김"은 물론" 원수 사랑과 섬김"까지 전력을 다하게 되었고 그리고 수 많은 "순교자들"을 배출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재난을 통해서도 한국교회가 우리 신앙의 선배님들이 귀중하게 여기던 처절한 "회개"와 철저한 "주일성수의 예배"와 "새벽기도"와 순수한 "이웃 사랑"과 "원수 사랑"을 회복하게 되기를 바라고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언제나 선하시고 따뜻하십니다. 선하시고 따뜻하신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믿고 바라보고 의지하고 순종하면서, 올바른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회복하게 되기를 바라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평안과 기쁨과 소망을 지니고 두려움과 놀람을 모르는 담대함을 지니고 "막가파"로 달려가게 하시기는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라는 제목의 설교를 시작합니다.







먼저 대하 7:12-16 말씀의 가르침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이르시되 내가 이미 네 기도를 듣고 이곳을 택하여 내게 제사하는 전을 삼았으니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로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염병으로 내 백성 가운데 유행하게 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찌라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이는 내가 이미 이 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으로 여기 영영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 있으리라”(대하 7:12-16).



대하 7:12-16 말씀이 가르치는 서론적이고 기본적인 교훈은 비가 내리지 않는 가뭄이나 메뚜기가 토산을 먹는 재난이나 염병이 백성 가운데 유행하는 재난들이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이 아니고 성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일어나는 일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교훈입니다. 여기 “혹 내가” “혹 메뚜기로” “혹 염병으로” 라는 말씀들은 성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라는 말씀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재난들은 우연히 일어나는 재난들이 아니고 성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일어나는 재난들이라는 교훈을 우리들에게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하 7:12-16 말씀이 가르치는 본론적이고 실천적인 교훈은 첫째로 하나님께서 재난들을 주시는 목적이 자기 백성들로 하여금 악한 길에서 떠나 “회개”하면서 스스로 “겸비”하게 되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교훈입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우리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될 때 이기적이 되고 교만하게 되고 자만하게 되고 악하게 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재난을 당하면 악한 길에서 떠나 “회개”하면서 스스로 “겸비”하게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죄인들에게 있어서 첫째로 필요한 것은 처절한 “회개”라고 생각합니다.



대하 7:12-16 말씀이 가르치는 본론적이고 실천적인 교훈은 둘째로 하나님께서 재난을 주시는 목적이 자기 백성들로 하여금 겸비해져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게 하시기 위함인데 겸비해져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우선적으로 하나님께 정성껏 예배 드리는 일임을 깨닫게 된다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하 7:12-16 말씀이 예배의 귀중성을 지적했습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내가 이미 이 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으로 여기 영영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 있으리라.” 우리 죄인들에게 있어서 둘째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 정성껏 예배 드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하 7:12-16 말씀이 가르치는 본론적이고 실천적인 교훈은 셋째로 하나님께서 재난을 주시는 목적이 자기 백성들로 하여금 겸비해져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게 하시기 위함인데 겸비해져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정성껏 예배 드리는 일임과 함께 불우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일임을 깨닫게 된다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구약 성경은 성부 하나님께서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 같은 불우한 사람들을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시는 착하신 분이시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하나님처럼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신 10:17-19)..    







결국 재난이 일어날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본적으로 기억하여야 할 일은 모든 재난이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 가운데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천적으로 기억하여야 할 일은 첫째로 악한 길에서 떠나 “회개하면서 스스로 겸비”하게 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실천적으로 기억하여야 할 일은 둘째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일인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정성껏 예배 드리는 일” 이라는 것입니다. 실천적으로 기억하여야 할 일은 셋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이웃과 불우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데 전력하는 일” 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재난이 일어날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실천적으로 기억하면서 실천하여야 할 일들인 “회개”와 “예배 드림”과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일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들을 찾아보면서 설교를 계속하려고 합니다.







첫째로, 성경은 “회개”의 귀중성을 거듭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죄와 허물로 가득한 우리 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귀중하고 올바른 신앙적인 삶은 회개하면서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회개”의 귀중성을 이곳 저곳에서 지적하고 또 지적했습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국문할찌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찌어다 그리한즉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아니하리라”(겔 18:30).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욥 42:6).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시 6:6).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시 51:1-7). 아마 구약에서는 다윗이 가장 처절하게 회개의 고백을 많이 한 사람인데 결국 성부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들어서 성자 예수님을 가리켜 “다윗의 자손” 이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도 “회개”의 귀중성을 거듭해서 지적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 1:14,15). “이때부터 예수께서 해변에 다니시며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마 4:17). 성자 예수님께서는 부활 승천하신 다음 사도 요한을 통해서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시면서 다섯 교회들에게는 “회개하라” 라는 말씀을 다섯 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계 2장과 3장에서). 사도 바울이야말로 다윗에 이어서 처절한 “회개”의 고백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이었는데 성자 예수님께서 가장 귀중하게 사용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의 회개의 고백들을 인용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 7:21-25).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고전 4:13).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우리 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귀중하고 올바른 신앙의 삶은 회개하면서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신앙의 선배님들의 “회개”의 고백들을 써서 성경책과 수첩에 넣고 다니면서 자주자주 읽곤 하는데 신앙의 선배님들의 “회개”의 고백들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았습니다.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다윗).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이사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사도 바울). “나는 망할 지이옵니다”(어거스틴). “나는 작은 벌레입니다”(프랜시스). “나는 버림 받을 죄인입니다”(루터). “나는 망할 자이옵니다”(칼빈). “나는 눈 멀고 병 들고 연약한 죄인입니다”(웨슬레), “나는 아간과 같은 죄인입니다”(길선주). “나는 죄인 중의 괴수외다”(이기풍). “이 놈이 주님이 차지하여야 할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습니다”(주기철)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며 티끌 같은 미말의 존재입니다”(이성봉). “나는 고멜과 같은 우상숭배한 음녀입니다”(김치선) “나는 어릴 때부터 범죄를 계속한 불의하고도 불충한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 나는 큰 죄인임을 깨닫고 떨면서 울었습니다”(손양원) “나는 신사 참배한 죄인입니다”(한경직). “나는 83년 묵은 죄인입니다”(박윤선). “제가 잘못했습니다”(김창인, 강원용, 조용기). “사람들 앞에서는 그리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지만 나 혼자 있을 때면 우는 때가 많습니다”(방지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이란 “회개”하면서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회개”가 없는 믿음은 형식적인 믿음이고 위선적인 믿음이고 거짓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







둘째로, 성경은 “예배 드림”의 귀중성을 거듭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실 구약과 신약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창조하시고 구원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이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정성껏 예배 드리도록 하는데 있다고 지적하고 또 지적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시는 목적이 “하나님을 섬기는데” 즉 “예배의 제사”를 드리는데 있다고 거듭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바로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8:1). 여기 섬긴다는 말씀은 예배의 제사를 드린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9:1).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라”(출 10:3). 이와 같은 말씀을 출애굽기 4장부터 10장까지 10번이나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독립하여 자유를 누리는데 있다기 보다는 복 받고 잘 사는데 있다기 보다는 하나님께 예배의 제사를 정성껏 드리는데 있다고 거듭해서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궁극적인 목적도 하나님께 정성껏 예배의 제사를 드리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우리들로부터 예배의 제사를 받으시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11장까지 구원의 진리를 설명한 다음 구원의 은혜를 받은 성도들에게 제일 먼저 권면한 말씀이 다음과 같았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예배의 제사" 그것이 구원함을 받은 성도들이 힘써야 할 첫째 일이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첫째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예배의 제사"의 중심은 구약시대에는 안식일 성수의 예배의 제사였고 신약시대에는 주일성수의 예배의 제사였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마 12:8) 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성자 예수님께서 구약의 안식일을 완성하신 분이시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 후 첫날인 주일 새벽에 부활하셨고 그리고 첫 주일 이른 새벽에 사랑하는 제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위로와 기쁨과 함께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저녁 즉 첫 주일 저녁에 부활의 주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 열 명에게 나타나셔서 위로와 기쁨과 사명과 함께 성령을 부여하셨습니다. 한 주간이 지난 둘째 주일 저녁에는 도마를 포함한 열 한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서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20:27)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께서 강림하신 날도 예루살렘 교회가 탄생한 날도 안식일 다음 날인 주일날이었습니다. 부활의 예수님께서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던 사도 요한에게 나타나신 날도 “주의 날” 곧 주일이었습니다(계 1:10). 사도 바울 자신은 안식 후 첫날인 주일날 함께 모인 성도들과 종일 밤중까지 성찬을 하고 말씀을 전하며 예배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 쌔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행 20:7). 신약 성경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신약의 “주일”은 영원한 “천국의 안식일”을 예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천국의 인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히 4:1,11).



구원함을 받은 저와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가장 귀중하고 가장 아름다운 일은 교회에 나와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면서 하나님께 예배의 제사를 정성껏 드리는 일입니다. "주일성수와 예배"보다 더 귀중하고 더 아름다운 일은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주일성수의 신앙은 성경의 중심적인 신앙이고 기독교의 핵" 심적인 신앙입니다. 그리고 "새벽기도"의 신앙도 성자 예수님과 길선주 목사님 등 신앙의 선배님들께서 우리들에게 물려주신 아주 귀중한 신앙의 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 1:35). 저는 주일성수의 신앙과 새벽기도의 신앙과 순교신앙을 몸에 지니고 살기 위해서 만 11살 때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와 고향을 떠나 38선을 혼자서 뛰어넘어서 남한으로 왔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별의 슬픔과 아픔이 가득한 저의 한 평생을 너무너무 많이 축복해 주셨습니다. 사실 길선주, 이기풍, 주기철, 김치선, 이성봉, 손양원 목사님들을 비롯한 한국교회의 신앙의 선배님들은 모두 "주일성수"의 신앙과 "새벽기"의 신앙과 "순교" 신앙을 몸에 지니고 사시다가 죽으셨는데 오늘의 한국교회는 온전한 주일성수의 신앙과 철저한 새벽기도의 신앙과 순수한 순교신앙을 거의 모두 멀리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주일저녁 예배를 포기한 교회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런 귀중한 신앙의 유산을 회복하게 하시기 위해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통한 재난을 우리들에게 주셨는지를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를 통한 재난을 당하면서 오히려 온전한 주일성수의 예배와 간절한 새벽기도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데 너무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온전한 주일성수의 예배와 새벽기도는 교회에서 드리는 것이 원칙적인 올바른 일인데 교회에 오는 것을 두렵게 생각하면서 자기 집에서 드리게 되었으니 너무 부끄럽고 안타깝고 너무 기가 막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로, 성경은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일의 귀중성을 거듭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정성껏 예배 드리면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제사가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기도와 예배가 너무너무 귀중한데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시는 기도와 제사는 이웃과 모든 불우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일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의 신이시며 주의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니라”(신 10:18-19). 성부 하나님께서는 학대 받는 자와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지 않는 제사와 제물과 기도를 받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사 1:11,15,17).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기도와 금식은 주린 자와 벗은 자와 어려움에 처한 자를 돌아보며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그와 같은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신다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 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사 58:6-8).



성자 예수님께서도 꼭 같은 아니 좀 지나친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공의의 원리대로 행동하지 말고 자비의 원리대로 행동하라고 말씀하셨고 이웃은 물론 원수들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하셨고 그리고 어려움에 처한 모든 자들을 돌아보며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면서 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영생에 들어가라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38-48).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너희는) 영생에 들어가리라”(마 25:34-36,40,46). 성자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살던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초대교회의 신자들은 대부분 예배와 말씀과 기도와 교제에 전력하면서도 가장 힘쓴 일은 이웃과 불우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예루살렘교회 신자들이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편 일을 기록했습니다(행 2:47).  그 다음에 욥바에 살던 여 신자인 도르가가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편 일을 기록했습니다(행 9:36-42). 그 다음에 가이사랴의 백부장 고넬료가 백성들을 많이 구제함으로 가이사랴의 복음화가 이루어진 일을 기록했습니다(행 10:44-48). 그 다음 착한 사람 바나바의 착한 삶과 사역으로 안디옥교회가 부흥 발전한 일을 기록했습니다(행 4:36,37, 11:22,24,29,30). 아마 사도 바울처럼 극심한 고난을 당하면서까지 불우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과 섬김”의 손길을 편 사람도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당한 고난의 리스트를 길게 나열했습니다(고후 11:23-27). 사도 바울은 결국 주님을 위해서 그리고 이 땅에 흩어져 있는 모든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서 자기의 몸을 사랑과 희생의 제물로 드리는 진정한 사랑과 도움과 섬김의 삶을 살다가 진정한 사랑과 도움과 섬김의 죽음을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넷째로, 한 말씀 더 드리려고 합니다. 위의 3가지 귀중한 신앙의 삶을 살 때 우리들은 근심 걱정 불평 불만 염려 두려움이 없이 “평안”과 “기쁨”과 “감사”와 “용기”와 “모험심”과 “담력”을 지니고 막 뚫고 나아가는 “막가 파”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성경은 근심 걱정 불평 불만 두려움과 놀람이 없이 평안과 기쁨과 감사와 용기와 모험심과 담력을 지니고 막 뚫고 나아가는 삶을 살아가라고 말씀한다고 생각합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요 14:2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벧전 5:7).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은 근심 걱정 불평 불만 염려 두려움이 없이 “평안”과 “기쁨”과 “감사”와 “용기”와 “모험심”과 “담력”을 지니고 막 뚫고 나아가는 “막가 파”의 삶을 살아가는 살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 속에 들어갈 것을 잘 알면서도 근심 걱정 불평 불만 염려 두려움을 다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평안”과 “기쁨”과 “감사”와 “용기”와 “모험심”과 “담력”을 지니고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감사”했습니다(단 6:10). 그리고 사자 굴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관원들에게 붙잡혀 많이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지만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평안”과 “기쁨”과 “감사”를 지니고 옥 중에서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행 16:25). 사도 바울은 나중에 로마 옥에 갇힌 죄수의 몸이 되었지만 근심 걱정 원망 불평 염려 두려움을 지니는 대신 “평안”과 “기쁨”과 “감사”를 지니고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1-13). 성자 예수님께서는 순수한 “믿음”을 지닐 때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믿음”이 한 겨자씨 만큼만 있어도 못할 것이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7:20, 눅17:6).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은 근심 걱정 불평 불만 염려 두려움이 없이 “평안”과 “기쁨”과 “감사”와 “용기”와 “모험심”과 “담력”을 지니고 막 뚫고 나아가는 “막가 파”의 삶을 살아가는 살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부족하고 또 부족하지만 어릴 때부터 “믿음”을 지니고 살면서 근심 걱정 불평 불만 염려 두려움을 모두 다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평안”과 “여유로움”과 “기쁨”과 “감사”를 몸에 지니고 그리고 “모험심”과 “담력”을 지니고 한 평생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사실 저는 한 평생 “모험적인” 일들을 즐기면서 살아오고 있습니다. 제가 11살 때인 1948년 8월 38선을 혼자서 넘은 일을 생각하면 그것은 대단한 “모험심”과 “담력” 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서울에 와서 서울 중 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후 1년 동안 총신에서 공부한 다음 1962년 8월 단 돈 100불을 가지고 배를 타고 미국으로 유학을 간 일도 대단한 “모험심”과 “담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12년 동안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서 목회와 교수의 일을 했는데 “주일성수”를 방해하는 박정희 군사정권의 정책을 비판하다가 1977년 11월 20일 남산 중앙정보부에 붙잡혀 가서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그리고 다음날 새벽까지 극심한 심문을 받으면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심문하는 사람들을 책망하면서 충고하고 권면한 일과 잠깐 쉬는 시간에 설교 준비까지 한 일도 대단한 “모험심”과 “담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1999년 1월 평양을 방문했을 때 소신껏 말하고 소신껏 비판하고 소신껏 행동한 일도 대단한 “모험심”과 “담력” 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2005년 12월 굳게 닫힌 타직 국경과 아프간 국경을 캄캄한 밤에 혼자서 뛰어넘어 아프가니스탄으로 가서 아프간 무라취드에 세운 학교 준공식에 참석한 일도 대단한 “모험심”과 “담력” 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은 근심 걱정 불평 불만 염려 두려움이 없이 “평안”과 “기쁨”과 “감사”와 “용기”와 “모험심”과 “담력”을 지니고 막 뚫고 나아가는 “막가 파”의 삶을 살아가는 살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은혜를 부어주시고 또 부어주셔서 고난과 환난이 많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근심 걱정 불평 불만 염려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면서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어떤 일을 당해도 “평안”과 “기쁨”과 “감사”와 “용기”와 “모험심”과 “담력”를 몸에 지니고 “막 뚫고 나아가면서” “즐겁고” “멋지고” “행복하게” 살아가게 하시기를 바라고 소원합니다.(2020.8.8 저녁). 찬송가 "십자가 군병들아 주 위해 일어나"(390,352)를 함께 부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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