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tv



 

   
 

   [05/17] 사랑과 섬김에 전력하는 삶 (요 13:34, 막 10:45, 엡 5:1,2 ) - 광주 보배교회


저는 제가 개척해서 28년 동안 목회하던 강변교회에서 2008년 1월 13일 은퇴한 다음 지난 12년 4개월 동안 거의 매 주일 전국의 작은 교회들을 주로 방문하면서 설교를 하고 있는데 작년인 2019년 5월 19일 주일 광주 보배교회에 처음으로 와서 “기도와 말씀에 전력하는 삶” 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습니다. 오늘 2020년 5월 17일 주일 여기 두 번째로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설교를 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저를 불러주신 장석진 목사님과 보배교회 성도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작년에 여기 와서 “기도와 말씀에 전력하는 삶” 이라는 제목의 설교하면서 다음에 기회가 주어지면 “사랑과 섬김에 전력하는 삶” 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장석진 목사님에게 오늘 “사랑과 섬김에 전력하는 삶” 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하면 어떻겠냐고 물었더니 저의 신학교 제자인 장석진 목사님이 “사랑과 섬김에 대한 주제가 정말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문자를 저에게 보내왔습니다. 장석진 목사님은 신학교에서 공부를 아주 잘했고 미국에 유학을 가서 공부도 잘했고 이민 목회도 잘 했고 귀국 후 월산교회와 보배교회에서 목회도 잘 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사랑과 섬김에 전력하는 삶” 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시작합니다.





성자 예수님의 삶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랑과 섬김”의 삶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 “사랑”은 마음과 정성을 다 해서 사랑하는 것을 의미하고 “섬김”은 건강과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사랑과 섬김”의 귀중성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 10:11).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그리고 주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은 “사랑과 섬김”을 실천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4,15). 성자 예수님께서는 이웃뿐 아니라 원수들에게까지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야 한다고 다음과 같이 아주 길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3-48).


성부 하나님께서는 저주와 심판을 받아 마땅한 이 세상의 모든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아주 오래 전부터 처절하게 펴셨다고 생각합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섬김”의 모습을 아주 오래 전에 길고 상세하게 표현하고 또 표현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저주와 심판을 받아 마땅한 이 세상의 모든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구세주로 성자 예수님을 천사의 모습으로 보내시려고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극심하게 저주를 받아 마땅한 죄인 중의 괴수의 모습으로 구세주로 보내시려고 하시는 성부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과 섬김”의 모습을 아주 길고 아주 상세하게 묘사했습니다.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사 53:1-8,12). 저주와 심판을 받아 마땅한 이 세상의 모든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베푸시려고 하시는 성부 하나님의 극심한 희생적인 죽음의 “사랑과 섬김”의 모습을 인간의 글이나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었습니다. 아마 선지자 이사야는 성령님의 영감을 받아 성부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과 섬김”의 예언의 글들을 쓰면서 엎드려져서 울고 또 울고 또 울었을 것입니다.


성자 예수님의 “사랑과 섬김”을 최고로 받은 사도 요한은 나중에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섬김”의 모습들을 일일이 섬세하게 서술하면서 울고 또 울고 또 울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6-18).


“(사마리아)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예수의 말씀을 인하여 믿는 자가 더욱 많아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줄 앎이니라 하였더라”(요 4:-39-4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와서 보이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가로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가라사대 그를 어디 두었느냐 가로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요 11:32-36,43,44).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 13:1,4-6,14,15,34,35).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1-3).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요 19:25-27).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이 이러하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요 21:1,5,6,17). 사도 요한이 바라보고 또 바라본 성자 예수님의 모습과 듣고 또 들은 성자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는 “사랑과 섬김”이 없는 모습과 말씀은 하나도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사도 요한은 성자 예수님의 모습들을 묘사하고 하신 말씀을들 기록하면서 울고 또 울고 또 울었을 것입니다.


다른 사도들도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합니다. 마태복음을 기록한 마태는 성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위해서 끌려가시면서 당하신 극심한 고통과 멸시와 저주의 모습과 마지막에 고백하신 다음과 같은 성자 예수님의 고백의 말씀을 기록하면서 통곡하면서 울었을 것입니다.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 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찌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희롱을 다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마 27:27-31). “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더니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마 27:45,46).


순수한 “사랑과 섬김”이 나타나는 곳에는 감동의 눈물이 흐르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죄와 허물이 많은 우리 인간사회 안에서도 조그만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펼 때에 감동의 눈물이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인데 강변교회와 중국 연변 지역과 모슬렘 지역의 어린이들에게 조그마한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곤 했는데 감동의 눈물이 나타나는 것을 많이 보곤 했습니다. 아주 최근에 9살 난 주애라는 어린 아이에게 조그만 사랑의 손길을 편 일이 있었는데 감동의 눈물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지난 4월 26일 주일 제가 샘물 호스피스 병원을 방문해서 설교를 했는데 언제나 저를 반겨주고 제 옆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던 주애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배 후 식사를 한 다음 주애 집으로 달려가서 주애를 만났습니다. 주애를 안아주고 곰 인형과 스티커도 주었습니다. 주애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9살난 주애와 제가 주고 받은 글들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저의 홈 페이지 방명록에 올려있는 글들입니다.


“사랑하는 김명혁 목사님께 드리는 편지~ 안녕하세요. 목사님! 저 주애예요^^ . 저희 집에서 찍은 사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코로나가 나아지면 목사님 사무실에 놀러갈께요~. 다음에 또 뵐께요~. 다시 뵐 때까지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길 기도할께요~. 안녕히 계세요~. 사랑해요 목사님^^~. 손주애 올림^^*”


“내가 아주아주 많이 사랑하는 주애에게. 지난 주일 샘물 호스피스 병원 교회에 갔는데 주애가 나를 기다릴 줄 알았는데 보이지 않아서 깜짝 놀랐다. 예배를 드릴 때는 언제나 내 옆에 앉아서 예배를 드렸는데 계속해서 나타나지 않아서 너무너무 섭섭했다. 주애 주려고 가지고 간 곰 인형과 동물 스티커를 나는 계속해서 손에 죄고 있었다. 원주희 목사님이 어린이들이 교회에 오지 못하게 되어서 주애가 교회에 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해 주셔서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예배와 식사를 한 다음 나는 주애를 만나려고 주애 집으로 달려 갔지. 주애를 만나서 너무너무 좋았다. 곰 인형을 주니까 주애가 아주 좋아했지. 그리고 전에 내가 준 곰 인형이 내가 새로 준 인형을 안아주도록 하면서 곰 부부가 서로 좋아한다는 말까지 했지. 코로나가 나아지기 전에라도 엄마 아빠와 함께 주애가 목사님 사무실로 오면 아주 좋겠다. 언제든지 오면 주애를 즐겁고 기쁘게 해 주고 싶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이 사랑하는 주애와 엄마와 아빠와 할머니에게 늘 함께 하시기를 기도 드린다. 2020년 4월 29일 김명혁 목사”


“내가 아주아주 사랑하는 김명혁 목사님께. 사랑하는 김명혁 목사님의 편지를 읽고 감동했어요. 저를 그렇게 많이 사랑해 주셔서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편지를 그렇게 감동적으로 잘 쓰셔서 울어버렸어요.. 샘물에 목사님 오실 때 주애가 반겨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다음에 함께 예배드리게 되면 꼭 환영해 드리고 같이 예배드릴께요~ 사랑해요 목사님~ 주애 올림^^* “


다시 말씀 드리지만 성자 예수님의 삶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랑과 섬김”의 삶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과 섬김”의 삶보다 귀중하고 아름다운 삶은 세상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영국의 대표적인 복음주의 신학자요 설교자인 존 스토트 박사님은 예수님의 삶을 가장 정확하고 올바로 묘사하는 말씀이 막 10:45 이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세상에 오셔서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사시다가 죽으셨는데 주님을 믿고 따르는 제지된 우리 죄인들도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살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산을 옮길만한 믿음도 귀중하고 천사의 말도 귀중하고 예언의 능도 귀중하고 구제도 귀중하지만 “사랑”이 없는 믿음과 천사의 말과 예언의 능과 구제는 아무 소용이 없다고 단언을 했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13). 그리고 “섬김”의 귀중성을 강조했습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 12:11).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롬 15:25).


사도행전에 나타난 신앙의 선배님들은 거의 모두 성자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살았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와 신자들은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사는데 제일 많은 정성을 쏟아바쳤습니다. 욥바 복음화의 주역이 된 도르가도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사는데 제일 많은 정성을 쏟아바쳤습니다. 가이사랴 복음화의 주역이 된 고넬료도 “사랑과 섬김과 구제”의 삶을 사는데 제일 많은 정성을 쏟아바쳤습니다. 안디옥 복음화의 주역이 된 예루살렘에서 온 피난민들과 예루살렘교회가 파송한 바나바야말로 무엇보다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사는 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빌립보 복음화의 주역이 된 루디아도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편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사랑과 섬김”의 목회자인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의 “사랑과 섬김”의 삶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사람이었는데 무엇보다 “사랑과 섬김”의 사람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믿음과 소망은 “사랑과 섬김”으로 나타났습니다. 그의 믿음과 소망은 나환자 “사랑과 섬김”으로 그리고 원수 “사랑과 섬김”으로 나타났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이런 고백과 기도를 했습니다. “주여 애양원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애양원을 참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을 주시옵소서. 주께서 이들을 사랑하심 같은 사랑을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나는 이들을 사랑하되 나의 부모와 형제와 처자보다도 더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차라리 내 몸이 저들과 같이 추한 지경에 빠질지라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만약 저들이 나를 싫어하여 나를 배반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저들을 참으로 사랑하여 종말까지 싫어 버리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내가 이들을 사랑한다 하오나 인위적 사랑, 인간적 사랑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람을 위하여 사랑하는 사랑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고 주를 위하여 이들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보다는 더 사랑치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내가 또한 세상의 무슨 명예심으로 사랑하거나 말세의 무슨 상급을 위하여 사랑하는 욕망적 사랑도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만 그리스도의 사랑의 내용에서 되는 사랑으로서 이 불쌍한 영육들만을 위한 단순한 사랑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나의 남은 생이 몇 해 일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몸과 맘 주께 맡긴 그대로 이 애양원을 위하여 충심으로 사랑케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사랑”이란 말을 21번이나 사용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사랑과 섬김”의 극치는 1948년 10월 19일 여수 순천 반란 사건 때 나타나 보였습니다. 사랑하던 믿음의 두 아들 동인군과 동신군이 공산 폭도들에게 붙잡혀 순천 경찰서 뒷 마당에서 총살을 당했습니다. 예수를 부인하라고 했지만 오히려 예수를 증거하다가 총살을 당해 순교를 당했습니다. 10월 25일 반란군에 의해 두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손양원 목사님 내외는 엄청난 충격에 쌓여 비통해 했습니다. 반란 사건이 진압되고 두 아들을 죽인 안재선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은 손양원 목사님은 밤을 새워 통곡하며 기도하고 교회를 나오면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 내 아들들은 죽어서 천국에 갔지만, 안재선은 죽으면 지옥 갈텐데,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 “그를 살려야 한다. 그를 용서해야 한다. 그를 사랑해야 한다.” 두 아들을 죽인 안재선이 체포되어 총살을 당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손양원 목사님은 계엄 사령관에게 딸을 보내어 그를 사면할 것을 간청했습니다. 그를 양자로 삼아 교육시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안 가겠다고 반항하며 대드는 딸 동희 양을 설득하여 “용서와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하게 했습니다. 결국 딸은 자기 의지에 반해 아버지의 하나님 절대 신앙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딸은 아버지의 “용서와 사랑”의 메시지를 국군 심문자에게 그대로 전하므로 처형되기 10여분 전에 원수를 살려냈습니다. 동희양은 취조 군인에게 달려가서 이렇게 아버지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아버지가 두 오빠를 죽인 자를 잡았거든 매 한 대도 때리지 말고, 죽이지도 말라 하셨어요. 그를 구해 아들 삼겠다고요. 성경말씀에 원수를 사랑하라 했기 때문이래요.” 그는 숨도 쉬지 않고 단숨에 말을 토해 놓고는 책상에 엎드려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동희양의 말이 끝나고 동희양이 울음을 터뜨리자 방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충격을 받은 듯했습니다. 취조를 하던 군인은 입에 물고 있던 담배가 떨어진 줄도 모르고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으며 “위대하시다, 위대하시다” 라고 감탄의 소리를 토해 냈습니다. 안재선까지도 고개를 숙인 채 흐느껴 울고 있었습니다. “사랑의 원자탄”이 떨어진 장면이었습니다. 안재선은 살아났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그를 자기의 양 아들로 삼아 부산 고려 성경 고등학교에 보냈습니다. 안재선은 완전히 변화된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결혼하여 4남매를 두었는데 장남은 나중에 목사가 되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뿐만은 아니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도 장기려 박사님도 자기 자신의 평안과 부귀와 영화를 다 포기하고 3무 4무 5무의 “가난과 청빈”의 삶을 살면서 불우하고 불쌍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살았습니다. 한국교회 선배님들인 길선주 목사님과 이기풍 목사님과 최봉석 목사님과 이성봉 목사님들도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기보다는 불우하고 불쌍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가난과 청빈”의 삶과 함께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살았습니다. “사랑과 섬김”의 삶보다 더 귀중하고 더 아름답고 더 축복된 삶은 세상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교회 안에는 우리 신앙의 선배님들이 지니셨던 순수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과 섬김” 보다는 지나친 의인 의식을 가지고 소위 진리의 깃발을 휘두르며 모두를 비판하고 정죄하는 증오와 분노와 분쟁의 모습이 팽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 모두에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을 베푸셔서 우리들이 모두 부족하고 부족하지만 순수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과 섬김”의 부스러기를 몸에 지니고 모두를 끌어안고 울면서 사랑으로 녹일 수 있는 “사랑과 섬김”의 도구들과 제물들로 만들어주시기를 바라고 소원합니다.


저는 이기적이고 정욕적이고 비판적이고 배타적이고 위선적이고 독선적이고 게으르고 나태한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이지만 “사랑과 섬김”의 부스러기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하면서 아프리카로 방글라데시로 아프가니스탄으로 파키스탄으로 중국의 연변 지역으로 때로는 일본으로 북한으로 달려 다니면서 불쌍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려고 애를 쓰곤 했습니다. 저는 지난 20여 년 동안 중국 연변 지역의 불우한 조선족 어린이들 150여 명에게 “사랑과 구제와 섬김”의 손길을 펴면서 돌아보고 있는데 그들 중의 대부분은 고아들이고 상당수의 어린이들의 어머니는 북으로 잡혀갔습니다. 저는 지난 20여 년 동안 거의 매년 연변 지역을 방문하며 어린 학생들과 저들을 관리하는 지역 회장들을 만나며 “사랑과 위로와 도움과 섬김과 격려”의 손길을 펴고 있는데 그 동안 설교한 일도 없고 전도한 일도 없지만 순수한 “사랑과 구제와 섬김”의 손길을 폈기 때문에 수 많은 어린이들과 학생들이 너무너무 고마워하면서 지역의 교회에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고 지역 회장들의 입에서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들이 흘러나오게 되었습니다. “사랑과 구제와 섬김”이 얼마나 귀중하고 아름다운 일인지 모릅니다. 어린이들이 저에게 아주 많은 감사의 글들을 써서 보냈는데 그 중의 두 개만 내용을 줄여서 소개합니다.


강금화의 편지인데 어머니는 북으로 잡혀갔습니다. “김명혁 목사님께: 안녕하십니까? 저는 강금화입니다. 그동안 목사님을 뵙지 못하다가 목사님을 만나 뵙게 되어서 저는 정말 기뻤고 반가웠습니다. 저처럼 많고 많은 가난한 아이들을 여태껏 후원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목사님의 이런 후원이 없었더라면 저는 지금 생활하기가 어려웠을 것이고 ‘행복’이란 이 두 글자에 담긴 깊은 뜻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매번 김명혁 목사님의 후원을 받을 때마다 목사님은 마음씨가 곱고 훌륭한 분이라는 것을 가슴속 깊이 느끼곤 합니다. 저의 소원은 김명혁 목사님처럼 훌륭한 사람으로 되어 가난한 애들을 돕는 활동을 벌려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사람이 되기 위해 학습방면, 도덕방면에서 기초를 많이 쌓겠습니다. 아, 참! 목사님의 팔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후에 다시 만날 때엔 목사님의 건강하고 건장한 모습을 봤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럼 이만 필을 놓도록 하겠습니다. 김명혁 목사님,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합니다!!! 2013년 6월 20일 강금화 올림 ♥♥♥ I am very Happy ♥♥♥”


그 다음 라혜연의 편지를 줄여서 소개합니다. “존경하는 목사님: 안녕하세요. 저는 그동안 목사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로 학업을 지금까지 잘 완성하고 있습니다. 2007년 3월 11일 저의 어머니는 갑작스레 쓰러졌습니다. 2년 반 동안 어머니는 그 아프고 힘든 시간들을 겪으면서 병마와 투쟁을 해보았지만 저의 이름 한 번 불러보지 못하고 저의 얼굴 한 번 더 보지 못하고 그렇게 아프고 괴로워하다가 저의 곁을 영원히 떠나갔습니다. 저의 머릿속에 흐릿하게나마 기억되는데 그건 아마도 6년 전이었습니다.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목사님을 처음 보았을 때 저는 15살이었습니다. 초 중 때 항상 일등만 하던 저는 어머니의 갑작스런 아픔 소식을 듣고 청천 병력에 맞은 것처럼 눈앞이 캄캄하였습니다. 그 때 저한테는 희망도 없고 의지도 없고 신심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 목사님을 만나고 목사님은 저한테 두말없이 도움을 주셨습니다. 저의 어머니 만나러도 가시고 어머니가 있는 영로원에 후원도 해 주시고 어머니를 위해서 기도도 해 주시고 그 때부터 저는 목사님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매달 저한테 생활비도 보내주시고 관심도 많이 가져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힘을 다시 얻게 되었습니다. 저는 시련은 삶의 필수 과목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힘을 가지고 학업에 몰두 하였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희망인 제가 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이루어주었습니다. 저는 이것만으로도 어머니가 기뻐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목사님의 도움을 이렇게 받고 있어서 얼마나 감사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항상 목사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나갈 것이고 남을 돕는 것은 복을 짓는 일이라고 목사님처럼 앞으로 남을 도우면서 살겠습니다. 그동안 저에게 준 사랑을 잊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2013년 6월 19일 라헤연 올림”


오늘의 한국과 세계에 필요한 것은 유창한 설교보다는 심오한 신학강의 보다는 놀라운 이적을 나타내 보이는 것보다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랑과 섬김”의 삶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합니다. “설교는 은이고 신학은 동이로 이적은 철이고 사랑은 금이다.” 오래 전에 제가 “사랑하고 싶어라” 라는 제목의 글을 쓴 일이 있는데 그 글을 인용함으로 오늘 말씀을 마무리 합니다.


“사랑하고 싶어라. 나는 요사이 주님을 생각하면 가슴에 눈물이 흐른다. 한 평생 나를 향하신 주님의 생각과 사랑이 어찌 그리 크고 어찌 그리 많은지! 실로 모래알보다 더 많은 주님의 긍휼과 용서와 사랑이 나의 가슴에 눈물을 자아낸다. 사랑하고 싶어라. 주님을 사랑하고 싶어라. 나의 맘 나의 몸 나의 정성 다 쏟아 주님을 사랑하고 싶어라. 나는 요사이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에 눈물이 흐른다. 어린이들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너무너무 귀엽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성도들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너무너무 예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 세상 곳곳에 흩어져 사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날 때도 비슷한 느낌을 가진다. 저들의 얼굴과 마음과 영혼 속에 창조주 하나님께서 심어놓으신 고귀한 인성과 신성의 흔적을 보기 때문이다. 저들을 모두 사랑하고 싶어라. 모슬렘도 공산주의자도 상관이 없다. 저들은 모슬렘이나 공산주의 라는 불행한 유산에 쌓여있는 가련한 영혼들일 따름이다. 사랑하고 싶어라.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어라. 나의 맘 나의 몸 나의 정성 다 쏟아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어라(2007년 1월 3일 아침 교회로 운전하며 오는 차 속에서 쓴 글)”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다 네 몸을 아끼고 사랑하듯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라”(찬송가 369,218)를 함께 부르시겠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등록일
981  [05/31]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비결 (신 6:1-9, 미 22:37-40) - 광야교회      21TV 2020/06/01
980  [05/24] 하늘을 바라보며 영원을 사모하는 삶 (요14:1-3, 고후5:1,2, 골3:1,2 , 벧후3:13, 계 21:1) - 올람교회      21TV 2020/05/25
 [05/17] 사랑과 섬김에 전력하는 삶 (요 13:34, 막 10:45, 엡 5:1,2 ) - 광주 보배교회      21TV 2020/05/18
978  [05/10]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께로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 (시 51:10-13) -그레이스 선교교회      21TV 2020/05/11
977  [05/03] 교회가 주력하여야 할 사역 (대하 7:14-16, 요 13:34, 엡 2:13-16) - 수지 할렐루야교회      21TV 2020/05/04
976  [04/26] 고난과 슬픔과 아픔의 유익 (시 119:71, 전 7:3, 마 5:4,) - 샘물 호스피스선교회      21TV 2020/04/27
975  [04/19] 예수님을 바라보며 기도와 말씀에 전념하는 삶 (히 12:2, 행 6:4 ) - 강변교회      21TV 2020/04/20
974  [04/12] 성탄과 십자가와 부활과 재림의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며 바라보자 (히3:1,12:2) - 의정부 한꿈교회      21TV 2020/04/13
973  [04/05] 재난을 통한 올바른 신앙생활 (대하 7:12-16, 롬 5:3,4, 시 50:15 ) - 보은 창성교회      21TV 2020/04/06
972  [03/29] 이성봉 목사님께서 물려주신 보배로운 영적 유산 (시 50:15, 시 37:4-6, 시 81:10, 렘 33:3 ) -개포동 사랑의 빛 교회      21TV 2020/03/30

1 [2][3][4][5][6][7][8][9][10]..[99] [다음 10 개]

 
 
http://21tv.org/bbs/zboard.php?id=kangbyun
 
  [한복협] 2020년 5월 발표
21TV 유투브채널 오픈하다....
플로리스트 고급과정 회원...
영상 서비스가 업그레이드 ...
가을을 여는 성전꽃꽂이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