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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22] 눈물의 감동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 (시 6:6, 39:12, 56:8, 139:17,18) - 수원 동문교회


       제가 2008년 1월 13일 강변교회에서 은퇴한 다음 지난 12년 동안 주일마다 전국의 작은 교회들을 주로 방문하면서 설교를 하고 있는데, 수원 동문 교회는 2008년 3월 17일부터 지난 2020년 1월 26일 주일까지 12년 동안 12번 와서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방문한지 2달 후인 오늘 13번째로 와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오늘 수지 할렐루야교회에 가서 설교를 하기로 되어있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 환자가 한 명 생겨서 오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되었다고 지난 수요일 저에게 전화를 걸고 죄송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난 수요일 갑자기 오에녹 목사님에게 전화를 걸고 오늘 수원 동문교회에 와서 설교를 하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좋다고 해서 갑자기 여기 오게 되었습니다.





설교를 시작하기 전에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한 마디 간단하게 하려고 합니다.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와 교회사 시대를 돌아보면 이 세상에는 때때로 여러 가지 재난들이 일어났습니다. 여러 가지 재난들은 인간의 범죄와 관련되어서 일어난 재난들이지만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일어난 재난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래 전에 여러 가지 재난들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로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염병으로 내 백성 가운데 유행하게 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찌라”(대하 7:13,14). 재난이 일어날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여야 할 일은 악한 길에서 떠나 회개하면서 스스로 겸비하는 겸손의 자세를 지니는 일과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일이고 그래서 이웃과 불우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눈물의 감동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라는 제목으로 저의 삶에 대한 간증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본래는 아주 긴 내용의 간증설교이지만 줄여서 하려고 합니다. 저는 죄와 허물밖에 없는 죄인중의 죄인인데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부족하고 또 부족한 저에게 너무나 많은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주셨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눈물의 감동을 베풀어주신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11살 때인 1948년 8월 주일성수의 자유를 누리면서 하나님께 정성껏 예배 드리는 삶을 살기 위해서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평양에 두고 캄캄한 밤에 38선을 혼자서 뛰어넘어서 남쪽으로 온 다음 평생 고아와 나그네로 슬픔과 아픔을 지니고 눈물을 많이 흘리면서 살게 되었는데 그것이 결국에는 제가 신앙적인 삶을 사는데 귀중한 보석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눈물을 아주 귀중하게 보십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눈물을 아주 귀중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던 다윗은 맨날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는데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들었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시 6:6). “여호와여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시 39:12).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시 56:8). 하나님께서 귀중하게 사용하신 선지자 예레미아도 맨날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는데 예레미아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그렇게 되면 살륙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곡읍하리로다”(렘 9:1). “밤새도록 애곡하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애 1:2). “내가 우니 내 눈에 눈물이 물같이 흐름이여”(애 1:16).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끓으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는 처녀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젖 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혼미함이로다”(애 2:11).

사실 성자 예수님께서도 자주 눈물을 흘리면서 우셨다고 했습니다. 나사로가 죽었을 때에도 눈물을 흘리면서 우셨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요 11:35). 예루살렘 성이 망할 것을 바라보시면서도 우셨다고 했습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눅 19:41,42). 성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히 5:7). 성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라고 부르짖으시면서 통곡하셨다고 했습니다. 부활하신 후 주님께서 디베랴 바다가에서 배신자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을 만나서 타이르시면서도 우셨다고 생각합니다(요 21:15-17).

사도 바울도 자기 죄 때문에 그리고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사랑하는 성도들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울고 또 울었다고 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24).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행 20:31). “내가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고후 2:4).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빌 3:18). 길선주 목사님과 이기풍 목사님과 이성봉 목사님과 김치선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께서도 자기 죄 때문에 그리고 민족이 당하는 불행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 때문에 평생토록 눈물을 흘리면서 우신 눈물의 목회자들이셨습니다.

눈물은 아주 귀중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눈물은 가장 진솔한 자기 표현의 방식이고 가장 친밀한 소통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눈물을 흘릴 때 하나님과 친밀하게 소통하게 되고 사람들과도 친밀하게 소통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면서 우는 자들에게 가까이 하시면서 친밀하게 소통하셨습니다. 자기의 죄 때문에 흘리는 눈물도 귀중하고, 자기가 당하는 슬픔과 아픔과 고통 때문에 흘리는 눈물도 귀중하고, 민족이 당하는 재난 때문에 흘리는 눈물도 귀중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에 감격하여 흘리는 눈물도 귀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아모스에게 울음 군을 불러다가 울게 하라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암 5:16). 성부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요엘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욜 2:12,13). 눈물은 너무너무 귀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귀중하게 받으시는 것이 눈물이고,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의 은혜를 받게 하는 것이 눈물이고, 나를 살리는 것이 눈물이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까지 움직이게 하는 것이 눈물입니다. 니느웨성이 굵은 베옷을 입고 울며 회개했을 때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려고 하셨던 재앙을 내리지 않으시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야곱이 울 때 에서가 함께 울면서 화해했고, 요셉이 울 때에 형들이 함께 울면서 화해했고, 다윗이 울 때 백성들이 함께 울면서 하나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눈물은 가장 귀중한 은혜의 통로이고 가장 귀중한 소통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인 저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눈물의 감동을 많이 주셨습니다. 저는 이별의 슬픔과 아픔을 통해서 눈물을 흘리면서 울기 시작했고, 이성봉 목사님 김치선 목사님 등 신앙의 선배님들을 통해서 회개와 은혜 사모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내가 범한 죄를 회개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울기 시작했고,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을 경험하고 묵상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별의 슬픔과 아픔의 눈물들은 저로 하여금 십자가에 나타난 주님의 슬픔과 아픔으로 가까이 다가가게 만들었고 슬픔과 아픔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게 만들었고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 철원이가 먼저 간 슬픔과 아픔이 없는 천국을 사모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눈물의 감동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 라는 제목의 간증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첫째로, 저에게 “눈물의 감동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 중의 하나는 제가 고등학생 때 손양원 목사님의 삶과 사역에 대한 책인 “사랑의 원자탄” 이란 책을 읽으면서 울고 또 운 일이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었을 때 어느 날 아침 남대문 네거리에 있던 기독교 서점에서 “사랑의 원자탄” 이란 책을 사 들고 제가 새벽기도 후 매일 올라 가서 기도하던 남산의 어느 숲 속에 올라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그 책을 읽으면서 울고 또 울고 기도하고 또 기도한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손양원 목사님이 나병 환자들과 함께 산으로 소풍을 갔습니다. 도시락을 먹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환자들은 자기들을 너무너무 사랑하는 손양원 목사님께서 혹시라도 자기들 때문에 나병에 걸릴까 봐 걱정을 하면서 손양원 목사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앉아서 자기들끼리 도시락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손양원 목사님은 그것을 눈치채고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그들의 도시락을 빼앗아서 나누어 먹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읽으면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리고 손양원 목사님이 자기가 사랑하던 두 아들을 총으로 쏘아서 죽인 마귀 새끼 같은 공산당 청년을 미워하고 죽이고 싶어하는 대신 그를 불쌍히 여기면서 용서하고 사랑했다는 그리고 자기의 양 아들로 삼았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저는 울고 또 울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세상에 있다는 말인가! 그 후부터 손양원 목사님은 제가 가장 존경하고 가장 사랑하는 본받고 싶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결국 저는 진리보다는 긍휼과 용서와 사랑을 더욱 더 귀중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저에게 “눈물의 감동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 중의 또 하나는 제가 고등학생인가 대학생 때 주암산 부흥회에 참석해서 찬송가 246장을 부르면서 울고 또 운 일이었습니다. 저는 한국의 예레미아라고 불리던 김치선 목사님께서 목회하시던 창동교회에 다니면서 은혜를 받곤 했습니다. 저는 김치선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부흥회에 쫓아 다니면서 은혜를 많이 받곤 했는데 삼각산 관악산은 물론 대구의 주암산까지 쫓아 다니면서 은혜를 받곤 했습니다. 주암산 부흥회 어느 시간에 찬송가 246장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내 주의 나라와 주 계신 성전과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 저는 1절을 부르고 나서 더 이상 찬송을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 라고 찬송을 부를 때 나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피를 흘려서 교회를 사셨을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너무 놀랍고 너무 감격해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늘 사랑합니다” 라고 찬송을 부르면서 나는 늘 사랑하지 못하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제가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면서 우니까 옆에 있던 어른 한 사람이 무슨 슬픈 일이나 어려운 일이 있느냐고 나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울었습니다. 주님께서 피 흘려 사신 귀중한 교회를 늘 사랑하여야 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하면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셋째로, 저에게 “눈물의 감동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 중의 또 하나는 제가 미국에서 유학할 때 어머니로부터 온 편지를 받아서 읽으면서 울고 또 운 일이었습니다. 제가 어머니를 이별한 지 17년이 되던 때인 1965년 10월 어느 날 북에 계시는 어머니가 저에게 보낸 슬픔과 아픔의 편지 한 장을 받았습니다. 제가 홍콩을 통해서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었습니다. “내 아들 명혁에게 9월 5일 네의 편지와 동시에 외로이 자라 성인이 된 내 아들 명혁이에 얼굴을 더구나 훌륭하게 된 내 아들을... 나는 보고 십고나. 손이라도 한번 꽉 쥐어 보고 십고나. 이 내 기쁨을 지면상으로는 표현할 수 없다. 명혁아! 나는 네 말 그대로 오래 오래 살아서 내 사랑하는 아들 만날 날을 기다리겟다. 몽중엔들 이저스랴 내 명혁이. 부디 건강하기를 축원하면서. 어머니 글 9월 29일” 저는 그 편지를 받아 들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뒷 마당에 가서 읽고 또 읽으면서 울고 또 울고 또 울었습니다. 결국 저는 슬픔과 아픔과 보고픔의 눈물을 흘리면서 사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 후부터 십자가에 나타난 슬픔과 아픔의 이별에 깊이 공감하게 되었고 슬픔과 아픔을 당한 여러 종류의 사람들에게로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습니다. 아마 어머니를 이별한 수 많은 중국 연변의 조선족 고아들에게로 가까이 다가가게 된 것도 그런 연유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어머니의 편지 사본을 성경책 속에 넣고 다니면서 읽곤 합니다. 편지 원본은 귀국 후 중앙정보부에게 빼앗겼습니다.

넷째로, 저에게 “눈물의 감동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 중 또 하나는 제가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지 20년 후에 북한을 바라보면서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라고 부르면서 울고 또 운 일이었습니다. 어머니의 편지를 압수 당한 지 20여 년이 지난 1997년 1월 5일 뜻밖에 어머니의 편지 사본 한 장을 이모님 한 분으로부터 전해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5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어머니의 예쁜 사진도 함께 전해 받았습니다. 저는 너무나 기뻤습니다. 30여 년 전의 감격이 되살아났습니다. 저는 편지를 읽고 또 읽으며 어머니의 피 맺힌 사랑을 다시금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를 부르고 또 부르면서 다음과 같은 글을 써 보았습니다. 북녘 하늘을 바라보면서 어머니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면서 눈물로 쓴 아주 긴 편지였습니다. 저는 편지를 쓰면서 울고 또 울고 또 울었습니다. 아주 긴 편지를 줄이고 줄여서 간단하게 소개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부르고 또 불러도 못다 부를 그 이름,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부르고 또 불러도 좋고 또 좋은 그 이름,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압수 당했던 어머니의 편지 사본을 20여 년 만에 다시 찾아 읽고 또 읽고, 그리고 5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어머니의 예쁜 사진을 보고 또 보면서 나는 어머니를 부르고 또 불러 보았습니다. 아,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나는 나를 부르시는 어머니의 애절한 절규를 한마디 한 마디 다시 들으면서 어머니의 가슴에 피 맺힌 아픔과 슬픔을 가슴으로 다시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나를 너무나 사랑하셨고 너무나 사랑하시다가 나중에는 나를 남쪽으로 떠나 보내시는 가장 큰 희생을 감수하셨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어머니로 하여금 가장 큰 희생을 치르며 가장 큰 아픔과 슬픔을 안게 한 나의 불효를 무엇으로 갚아 드릴 수가 있사옵니까? 어머니, 나의 불효를 책하시고 또 책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도 보고 싶어하는 어머니에게 얼굴 한번 보여 드리지 못했고, 그렇게도 잡아보고 싶어하시는 손 한번 쥐어 드리지 못한 채 20여 년이 지났고 30여 년이 지났으며 이제는 50여 년이 지났습니다. 이 몹쓸 불효 자식을 책하시고 또 책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나는 어머니가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기도와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나는 부족함이 없는 한 생애를 살아 왔습니다. 아니 너무나 넉넉한 한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너무나 많이 사랑하셨고 너무나 많이 축복해 주셨습니다. 마음껏 공부도 할 수 있게 해 주셨고 마음껏 하나님을 예배하며 섬길 수도 있게 해 주셨습니다. 어머니, 나는 병원에 가는 것도 잘 모를 정도로 건강하게 한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행복한 가정도 이루었습니다. 지금은 여러 가지 일들을 하지만 특히 북한동포 돕기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나는 어머니 뵈올 날을 날마다 기다리겠습니다. 어머니, 어머니를 사랑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머니를 위로하시고 축복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1997년 1월 12일 불효자식 명혁 올림.”

다섯째로, 저에게 “눈물의 감동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 중 또 하나는 뇌수종이라는 불치의 병을 지니고 태어나서 4년 동안 극심한 고통과 아픔을 지니고 살다가 세상을 떠나 하늘 집으로 올라간 철원이를 바라보면서 저는 맨날 울고 또 울면서 기도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철원이를 경기도 양주시 신세계 공원묘지에 묻고 돌아와서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라는 제목의 긴 글을 썼는데 그 글이 총신대보(1977년 19월 31일) 에 실렸습니다. 저의 제자들이 그 글을 읽고 너무나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고백하고 또 고백했습니다. 아주 긴 글의 첫 부분을 요약해서 인용합니다.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고생과 수고로운 삶을 다 마치고 이제는 주님의 품 안에서 고운 옷을 입은 동무들과 함께 주님을 섬기며 즐거워하는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네가 즐겨 부르던 찬송소리가 지금도 아빠 귀에 쟁쟁하구나. “예수께로 가면 기쁘리로다. 걱정 근심 대신 재미 많도다. 예수께로 가면 기쁘리로다. 나와 같은 아이 부르셨도다. 영화로운 곳에 있는 동무들 고운 옷을 입고 주를 섬기네” 가사의 뜻을 되새겨 물으며 몇 십 몇 백 번을 아빠와 함께 부르던 그 찬송가의 뜻이 정말 그대로 이루어졌구나! “아빠, 걱정 근심이 아야 아야 이렇게 아픈거지? 재미 많은 게 뭐야? 아프지도 않고 좋고 기쁜 거지? 아빠, 누구와 같은 아이 부르셨지? 이렇게 물어봐” “그래 철원아, 누구와 같은 아이 부르셨지?” “철원이와 같은 아이 부르셨지 뭐” “누가 부르셨나?” “예수님이 부르셨지 뭐” “철원아 네 마음이 슬프나 기쁘나?” “기뻐!” “왜 기쁜가?”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시니까 기쁘지!”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견디기 어려운 그 아픔 중에서도 너는 그렇게도 잘 참았고 기뻐했지! 철원아 너는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가장 견디기 어려운 괴로움과 아픔을 당하였단다. 머리 속 뇌수의 압력이 너무 심해져 머리뼈가 벌어질 정도의 아픔을 당하면서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울곤 하던 네 모습을 생각만 해도 이 아빠의 가슴은 미어지는 것만 같단다.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너는 아픔을 당할 때마다 아빠에게 기도해달라고 했었지? 이 아빠는 너 때문에 기도하는 법을 차츰 배우게 되었단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여 죄를 뉘우치며 간절하고 진실하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준 사람은 바로 너 철원이었단다. 아빠가 너를 위해 오래 오래(때로는 종일) 기도할 때마다 너는 그렇게도 좋아했지. “아빠는 기도를 잘 해서 최고야!”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그렇게도 괴롭고 아픈 나날을 보내면서도 너는 한 번도 하나님이나 아빠를 원망하지도 않았고 불평하지도 않았지! 마지막 1년 동안 시력을 잃고 아무것도 보지 못하면서도 너는 한번도 답답하다고 불평하지 않았지! 아빠는 너의 마음 속에서 천국의 평화와 기쁨을 볼 때마다 천국이 점점 더 가까워짐을 느끼곤 했단다. 네가 시력을 잃은 마지막 1년 동안 때때로 “아빠 하늘이 보여!” “아빠 예수님이 오셨어” 라고 말하던 뜻을 이제야 분명히 알게 되었구나!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것을 보는 너의 눈을 가리우시고 천국을 볼 수 있는 눈을 여시었던 것을 이제야 분명히 깨닫게 되는구나!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너는 괴로울 때마다 “아빠 나 천국 가고 싶어. 엄마, 아빠, 누나 다같이 천국 가고 싶어. 천국에 가면 구주 예수님이 나 아픈 것 완전히 다 고쳐주시지” 이렇게 이야기하곤 했지. 너는 심한 고통을 당할 때마다 이런 말을 하곤 했었지. “아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머리에 가시관 쓰시고 피 흘렸지! 손에도 발에도 못 박히어 피 흘리셨지! 아빠 예수님은 나보다도 더 아프셨지!” 네가 하던 말을 생각할 때마다 나의 가슴은 너무도 귀한 아픔으로 가득히 미어지는 것만 같구나! 고난의 축복을 나에게 가르쳐 준 사람은 바로 너 철원이었단다.』 철원이야말로 부족한 저로 하여금 사랑의 눈물과 슬픔의 눈물과 아픔의 눈물과 회개의 눈물과 기도의 눈물과 감사의 눈물을 계속해서 흘리게 한 보석과 같은 어린 아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귀중하고 아름다운 보석과 같은 어린 아들을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들립니다.

여섯째로, 저에게 “눈물의 감동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 중의 또 하나는 제가 1983년 7월 21일 밤 아이스랜드 리카벡의 어느 작은 호텔 방에서 시 139:18을 읽으면서 울고 또 운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찌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시 139:17,18). 저는 1983년 7월 암스텔담에서 열린 빌리 그레함 국제전도대회를 마치고 카나다로 가는 길에 아이스랜드 리카벡의 어느 작은 호텔 방에서 하룻밤을 묵은 일이 있었는데 그 때 이 성경 구절을 읽다가 너무나 깊은 감동을 받고 울고 또 울면서 무릎을 꿇고 감사와 회개의 기도를 드린 일이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빌리 그레함 전도대회 때 빌리 그레함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너무 감격해서 의자에 앉았다가 마루 바닥에 앉아서 울면서 회개와 감사와 헌신의 기도를 드린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제 옆에는 박윤선 목사님께서 앉아계셨습니다. 리카벡의 어느 작은 호텔 방에서 시 139:18을 읽으면서 울면서 감사와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다윗에게는 물론 부족한 저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선하신 은혜와 긍휼과 사랑과 섭리의 조목 조목들이 모래알 보다 더 많다는 사실 앞에 너무나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감사와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습니다. 제가 이릴 때부터 그 때까지 지내온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지난 날의 모든 일들을 너무너무 세밀하게 간섭하시면서 저를 가장 선한 길로 이끌어 오신 하나님의 손길을 생각하면서 너무 감격해서 울고 또 울고 또 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시편 51편과 103편과 139편과 143편과 145편 등을 너무너무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일곱째로, 저에게 “눈물의 감동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 중 또 하나는 2005년 10월 중남미 도미니카 선교대회에 참석해서 은혜와 감동을 받으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운 일이었습니다. 중남미의 조그만 섬인 도미니카 공화국의 싼타 도밍고에 한국과 미국과 중남미 곳곳에서 80여명의 선교 지도자들이 함께 모여 함께 기도하고 찬양하고 교제하고 발표하면서 세계선교에 대한 비전과 전략을 함께 나누며 모색했는데 도미니카 선교대회는 은혜와 감동이 충만한 너무나 좋은 선교대회였습니다…….  마지막 날 밤의 모임은 뜻 깊은 감동적인 모임이었습니다. 최복규 목사님의 말씀이 끝난 후 최복규 목사, 최일식 목사, 김명혁 목사, 강승삼 목사는 선교 제 1세대인 방지일 목사님 앞으로 다가가서 마루에 엎드려 큰 절을 올리며 감사와 존경과 사랑을 표했는데 우리는 물론 참석자들은 모두 깊은 감동에 사로 잡혔습니다. 폐회 기도를 저보고 하라고 해서 제가 강대에 올라가서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왼편에는 최복규 목사님, 오른편에는 최일식 목사님이 서 계셨는데, 저는 감동의 울음이 북 바쳐 올라와 도저히 기도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했습니다. 평생 처음 갖는 경험이었습니다. 소리 내어 울다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신 성자 예수님께, 자비와 긍휼을 베푸신 성부 하나님께, 순교의 피를 흘리신 신앙의 선배님들께, 수고의 눈물과 땀을 흘리신 신앙의 선배님들께, 그리고 선교의 현장에서 수고하고 있는 동역자들과 후배 선교사님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감사의 기도를 눈물로 드렸습니다. 그리고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선교사들과 저들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도우시는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기도 드리고 축도로 밤 집회를 마쳤습니다. 눈물의 감동과 은혜가 충만한 도미니카 선교대회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축복이었는지 모릅니다.

여덟 번째로, 저에게 “눈물의 감동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 중의 또 하나는 제가 강변교회에서 목회할 때인 2006년 9월 어느 날 새벽기도회 시간에 롬 7:24 말씀을 읽으면서 울고 또 운 일이었습니다. 제가 그 당시의 상황을 글로 썼는데 그 글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라는 제목으로 뉴스파워(06.9.14)와 국민일보(06.9.21)에 그대로 실렸습니다. 그 글의 일부를 인용합니다.

『나는 오늘 새벽기도회 시간에 성도들과 함께 사도 바울의 처절한 죄 고백의 탄식을 읽으면서 가슴과 눈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오늘 아침 차를 타고 교회로 오는 시간에도 그 눈물은 계속해서 내 가슴과 눈에서 흐르고 있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What a wretched man I am!” 자기 자신을 가리켜 ‘저주 받을’ 사람이라고 처절한 죄 고백을 한 사람이 정말 사도 바울 자신이었을까? 그래서 일부 성서 학자들은 그 죄 고백이 사도 바울 자신의 죄 고백은 아니고 중생하지 못한 자나 죄인 일반의 죄 고백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제가 가장 존경하고 신뢰하는 성서 학자 박윤선 목사님은 그것이 사도 바울의 죄 고백이라고 말하면서 “중생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이런 경험이 없다”라고 잘라서 말했다. 나는 오늘 새벽 사도 바울의 처절한 죄 고백의 탄식을 한 마디 한 마디 읽으면서 “어쩌면! 어쩌면!” 하면서 나 자신도 감동에 떨며 탄식하고 있었다. 삼층 천에 올라갈 정도로 가장 큰 은혜를 체험한 사도가! 그의 손 수건이 닿기만 해도 불치의 병들이 물러갔던 가장 큰 능력을 지녔던 사도가! 어떻게? 어떻게? 그런 처절한 죄 고백의 탄식을 할 수가 있었다는 말인가! 나는 가슴과 목이 메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기독교는 값싼 은혜를 파는 종교가 아니다. 만사형통을 빌어주는 종교도 아니다. 그럴듯한 선으로 포장해주는 종교도 아니다. 기독교는 자신의 부끄러운 수치와 절망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벌거벗은 모습 그대로, 들어내는 종교이다. 그리고 자신의 저주스러운 모습을 하나님께 진솔하게 고백하는 종교이다. 지금 우리는 처절한 죄 고백의 탄식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자기 자신을 미워하며 한탄했던 욥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는 지금 모두 너무 의인들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메마른 나의 가슴에 사도 바울이 가슴에 지녔던 처절한 죄 고백과 탄식의 몇 백분의 일이라도 주신 주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결국 저는 회개를 가장 귀중한 것으로 여기며 사모하게 되었고 회개를 가장 많이 한 다윗과 사도 바울을 가장 존경하게 되었고 길선주 목사님 이기풍 목사님 등 신앙의 선배들을 가장 존경하며 본 받고 싶게 되었습니다.

아홉째로, 저에게 “눈물의 감동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 중의 또 하나는 제가 중국 연변 지역을 방문하면서 그곳에서 살고 있는 조선족 고아 아이들을 만나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울고 또 운 일이었습니다. 그 때 쓴 기행문이 일부를 인용합니다.  

『나는 지금 중국 연변에 와서 또 다른 종류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그 눈물을 나의 가슴 병에 담고 있다. 가난과 고난의 슬픔과 아픔 중에서 자라가는 불쌍한 우리 조선족 어린이들과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저들의 슬픔과 아픔을 함께 느끼면서 슬픔과 아픔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 일행은 호텔에 들러 여장을 풀지도 못하고 그 길로 즉시 왕청으로 달려갔다. 소형버스로 2시간 달려서 왕청에 도착했다. 이번에 긴급 지원하게 된 네 가정을 일일이 찾아 보기 위해서였다. 엄마 아빠 없이 할머니 손에서 자라고 있는 8살 난 정권일이는 10리 되는 초등학교를 걸어서 다니는데 학교에서는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반찬도 없는 밥을 정신 없이 먹어 치우는 손자를 바라볼 때마다 할머니는 가슴으로 눈물을 흘린다고 말했다. 8살 난 이봉림은 간염으로 고생하는 엄마와 함께 둘이서 살고 있는데 엄마는 병원에도 한번 가보지 못하고 오직 어린 딸에게 모든 소망을 두고 하루 하루 아픈 몸으로 품팔이를 하면서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나의 집사람은 봉림이 엄마와 헤어질 때 둘이 한동안 부둥켜 안고 슬픔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모두 가슴에 슬픔과 아픔의 눈물을 지니고 연길로 돌아와서 된장찌개 하나로 저녁식사를 하고 호텔에서 여장을 푼 후 하루 밤을 편하게 잤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화요일 아침 식사를 한 후 우리 일행은 2시간 거리에 있는 화룡으로 달려갔다. 결연가정과 긴급지원 가정 8가정을 일일이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나는 한 가정 한 가정을 방문할 때마다 또 다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대부분의 홀 엄마, 홀 아빠는 각종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다리 하나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홀 엄마와 함께 사는 초등학교 1학년 박 성 어린이는 예쁘고 착하게 생겼는데 너무너무 가난하고 불쌍했다. 탈북 여성 엄마가 어디론가 도망가서 홀 아빠와 함께 사는 초등학교 1학년 이 화 어린이는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울면서 엄마에게 편지를 쓰곤 한다고 했다. 가장 슬픈 이야기는 식물인간이 된 엄마를 눈물과 사랑으로 쓰다듬으면서 착하고 예쁘게 살아가고 있는 라혜연이의 이야기이다. 엄마 림계향은 한국에 와서 일하다가 뇌출혈로 쓸어져서 식물 인간이 되었다. 슬픔과 아픔과 절망 중에서도 라혜연이는 학교에서는 최 우등생으로 공부를 뛰어나게 잘하고 있었다. 내가 식물 인간이 된 혜연이 엄마의 머리에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했을 때 엄마는 약간의 반응을 나타내며 눈물을 조금 흘렸다. 박 성, 이 화 어린이와 혜연이가 나란히 앉아서 식사를 했는데 너무너무 예쁘고 불쌍해서 안아주고 안아주고 또 안아주었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가슴 병에 담으면서. 그 자리에서 혜연이는 다음과 같은 글을 읽었다. 예쁘게 또박또박 쓴 글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제 고마운 분들의 후원을 받게 될 팔가자 중학교 3학년 5반에 다니고 있는 라혜연입니다. 저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이 현실 앞에서 멍해지고 말았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고마운 분들도 있구나! 한 학생도 아니고 이 숱한 빈곤 학생들에게 후원의 손길을 뻗치신다는 생각에 저는 떨리고 긴장된 마음을 가라 앉히고 고마운 분들에 대한 감사하고 또 감사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전달하기 위해서 필을 들게 되었습니다. 고마운 분들이여! 정녕 당신들은 날개 잃은 천사와도 비길 바가 아니며 당신들의 따스한 매 손길 하나하나가 얼마나 친근하며 벅찬 감동을 느끼게 하는지 모릅니다. 저는 오늘의 벅차고 감동된 심정을 안고 꼭 고마운 분들이 우리들에 대한 기대 훌륭히 성장하여 나라의 유용한 인재로 되는 이 기대를 저버리지 않게 바르고 훌륭히 성장하여 열심히 학습에 힘써서 고마운 분들의 크나큰 은정에 대해 조금이나마 보답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너무너무 착하고 예쁜 마음의 글을 대하면서 나는 계속해서 슬프고도 아픈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그 눈물을 나의 가슴 병에 담는다. 나는 라혜연이와 엄마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 밤이 깊었다. 내일 수요일 아침에는 안도와 용정으로 달려간다. (엄마들이 북으로 잡혀간) 금화와 선화도 반갑게 만날 것이다. 부족한 나에게 달려갈 곳을 주신 주님께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펼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을 주신 주님께 눈물겨운 감사를 드린다. 2008년 3월 25일 화요일 늦은 밤에.』  




이제 말씀을 마무리 합니다. 오늘 아침 “눈물의 감동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 라는 제목으로 저와 관련된 간증 설교를 했습니다. 저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인데, 이기적이고 정욕적이고 비판적이고 배타적이고 위선적인 죄인인데,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서 눈물을 흘리면서 살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에 감사를 드리고 또 감사를 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제가 범한 모든 죄악을 회개하며 눈물을 흘리고, 다른 사람들이 당하는 재난과 고통과 슬픔과 아픔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저에게 베푸시는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울면서 살다가 죽게 되기를 바라고 소원할 뿐입니다. 눈물은 아주 아주 귀중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눈물은 가장 진솔한 자기 표현의 방식이고 가장 친밀한 소통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눈물을 흘릴 때 하나님과 친밀하게 소통하게 되고 사람들과도 친밀하게 소통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향해서 울라고 말씀하십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눈물에 약하신 분이시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큰 죄를 범한 사람이라도 눈물을 흘리며 진실하게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뜨거워 지시면서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을 베푸십니다. 분에 넘치는 축복까지 부어주십니다.

지금은 눈물을 흘리며 울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심성이 메말랐고 우리들의 교회와 가정과 사회와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회사처럼 학원처럼 세속화되어가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프로그램과 행사에 너무 치우쳐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사야만 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야만 할 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이웃을 외면하면서 이기적으로 그리고 세상 유행을 따르면서 세속적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하나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회개하면서 울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웃과 동포가 당하는 고통을 함께 아파하며 눈물을 흘리며 울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우리들에게 은혜와 사랑을 베푸셔서 눈물을 흘리면서 울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회개의 눈물과 슬픔과 아픔의 눈물과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의 눈물과 감사와 감격과 찬양의 눈물을 흘리면서 살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한국교회의 아버지 길선주 목사님께서 집회 때마다 부르시던 찬송가, 김치선 목사님께서 새벽 기도회 때마다 부르시던 찬송가 177장 “성령이여 강림하사 나를 감화하시고 애통하며 회개할 맘 충만하게 합소서”를 부른 다음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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