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tv



 

   
 

   [10/06] 응답 받는 올바른 기도에 전념하는 삶 (막 1:35, 눅 6:12 ) - 좋은 소식교회


제가 2008년 1월 13일 강변교회에서 은퇴한 다음 지난 11년 9개월 동안 매 주일 전국의 작은 교회들을 주로 방문하면서 설교를 하고 있는데, 좋은 소식교회는 제가 강변교회에서 은퇴한 다음 세 번째 주일인 2008년 2월3일 주일 처음으로 와서 설교한 다음 지난 2019년 2월 10일 주일 여기 14번째로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설교를 했는데, 오늘 2019년 10월 6일 주일 여기 15번째로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설교를 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허기정 목사님과 이영란 사모님 그리고 성도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무슨 설교를 하면 좋겠냐고 허기정 목사님에게 물었더니 “응답 받는 기도”에 대한 설교를 하면 좋겠다고 해서 오늘 “응답 받는 올바른 기도에 전념하는 삶”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응답 받는 기도”가 너무너무 귀중한데 “응답 받는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순수한 믿음과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삶” 이라는 말을 하나 추가했습니다. 사실 제가 2018년 8월 19일 오산 주 영광교회에 가서 “기도에 전념하는 삶”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한 일이 있는데 오늘 그 설교를 참고하면서 많이 수정 보완해서 많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설교를 정성껏 준비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응답 받는 올바른 기도에 전념하는 삶”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오늘 설교 내용이 좀 길어졌는데 이영란 사모가 50분 정도 하라고 해서 50분 정도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성경은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또 강조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사 56:7). 사무엘은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치 않겠다고 말하며 평생 기도하기를 쉬지 않는 기도의 사람이 되었었습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삼상 12:23,24). 성부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건축하여 봉헌하며 기도하는 솔로몬에게 이런 놀라운 축복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이미 네 기도를 듣고 이곳을 택하여 내게 제사하는 전을 삼았으니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로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염병으로 내 백성 가운데 유행하게 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찌라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이는 내가 이미 이 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으로 여기 영영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 있으리라”(대하 7:12-16). 다윗은 성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기도하는 모든 자들에게 가까이 하신다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시 145:18). 결국 다윗은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시 4:1).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시 6:9).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시 39:12).

성자 예수님께서는 한 평생 기도에 전념하셨는데 이른 새벽에 기도하셨고 때로는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마 4:1,2).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 1:35).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눅 6:12). 성자 예수님께서는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다음과 같은 처절한 기도를 성부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마 26:39). 여기서 우리들이 기억하여야 할 아주 귀중한 사실은 성자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내용과 근거는 성부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시려고 하시는 간절한 소원과 뜻이 담겨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응답 받는 올바른 기도”는 그저 크게 소리를 지르는 소리의 기도라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기를 원하는 간절한 소원이 담긴 즉 섬김과 희생이 담긴 “삶”의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시기를 간절하게 소원하시면서 기도하셨는데, 주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도 시험에 들지 않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도록 깨어서 기도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 26:41).

사실 예수님께서는 그 전부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강조하시고 또 강조하셨습니다.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 6:5-9).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마 21:12,13).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 성자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 성도들이 힘쓴 것이 바로 기도였다고 사도행전이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행 1:14). “저희가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 2:42).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행 6:4).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던 사울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회개하고 또 회개하면서 “기도에 전념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행 16:25). 사도 바울은 여러 교회와 성도들을 위하여 평생 쉬지 않고 기도에 전념하는 기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롬 1:9).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엡 1:16).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살전 1:2). 그리고 항상 기도하라고 권면했습니다. “기도에 항상 힘쓰며”(롬 12:12).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엡 6:18).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

한국교회의 아버지들이라고 할 수 있는 길선주 목사님과 이기풍 목사님을 비롯한 한국교회의 신앙의 선배님들은 모두 “기도에 전념하는 삶”을 살다가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김익두 목사님도 최봉석 목사님도 주기철 목사님도 손양원 목사님도 이성봉 목사님도 김치선 목사님도 한경직 목사님도 박윤선 목사님도 모두 “기도에 전념하는 삶”을 살다가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길선주는 장로였고 조사였을 때부터 기도에 전념했습니다. 1905년 평양지역의 부흥을 위해서 새벽마다 산에 올라가서 기도한 사람들이 길선주 장로와 평신도들이었는데 그것이 한국교회 새벽기도의 시작이었습니다. 1907년 1월이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사경회가 열렸습니다. 그 사경회에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길선주 장로는 “이상한 귀빈과 괴이한 주인”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습니다. 길 장로는 “문을 열라 문을 열라 문을 열고 환영하라” 라고 준엄하게 외쳤습니다.설교가 끝나고 길 장로의 기도가 시작되자 감동을 받은 회중은 자기들도 모르게 “아이고 아이고” 소리를 지르며 통회 자복했습니다. 장내는 금새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응답 받는 올바른 기도에 전념하는 삶” 이란 어떤 삶인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선 “응답 받는 올바른 기도” 란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시는 기도 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기뻐하는 대로 하는 기도가 아닌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하는 기도가 “응답 받는 올바른 기도” 라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것이 첫째는 몸을 산 제물로 드리는 예배이고, 둘째는 형제를 사랑하며 섬기는 일이고, 셋째는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고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는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롬 12장 말씀을 인용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 12:10,11).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롬 12:14,20).



그러면 이제부터 “응답 받는 올바른 기도에 전념하는 삶”이란 어떤 “삶”인지에 대해서 5가지 삶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로, “응답 받는 올바른 기도에 전념하는 삶”이란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대로 “회개하고 참회”하면서 살아가는 “회개와 참회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윗과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대로 처절하게 “회개하고 참회하면서” 기도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저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저들의 기도를 응답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다윗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 결국 다윗이 울고 또 울면서 상하고 통회하는 “회개와 참회”의 기도와 제사를 드리고 또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다윗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고 다윗을 놀랍게 축복하셨는데 성자 예수님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울고 또 울면서 상하고 통회하는 “회개와 참회”의 기도와 제사를 드리고 또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고 사도 바울을 놀랍게 축복하셨는데 하나님께서 귀중하게 쓰시는 일꾼으로 복음전파의 삶을 살다가 죽게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응답 받는 올바른 기도에 전념하는 삶”이란 하나님 앞에서 나의 생각이나 나의 계획이나 나의 의지를 모두 포기하고 무릎을 꿇고 항복하는 즉 “회개하고 참회”하면서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윗은 맨날 울면서 “회개와 참회”의 삶을 살면서 “회개와 참회”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시 6:6).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 34:18).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시 56:8).

성자 예수님께서는 “회개”를 아주 귀중하게 여기시면서 갈릴리에 오셔서 제일 처음에 전파하신 말씀이 바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말씀도 “회개”의 메시지를 세상에 전파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눅 24:47,48). 결국 사도 베드로가 오순절 날 제일 먼저 전한 설교도 “회개하라” 라는 설교였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행 2:38). 사도 바울도 맨날 울면서 “회개와 참회”의 삶을 살았고“회개와 참회”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7:24,25).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믿음이 순수해지고 깊어질수록 “회개와 참회”의 삶이 깊어지고 “회개와 참회”의 기도가 깊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사실을 다윗과 사도 바울과 성 어거스틴괴 길선주 목사님과 이기풍 목사님 등에서 발견합니다. 믿음의 선배님들의 “회개와 참회”의 고백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망할 자이옵니다”(어거스틴은).“나는 죄인주의 과수요 못난 자중의 못난 자요 나는 작은 벌레입니다”(프랜시스). “나는 버림받을 죄인입니다”(루터). “나는 망할 자이옵니다”(칼빈). “나는 눈멀고 병들고 연약한 죄인입니다”(웨슬레). “나는 아간과 같은 죄인입니다”(길선주 목사). “나는 죄인 중의 괴수외다”(이기풍 목사). “이 놈이 주님이 차지하여야 할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습니다”(주기철 목사). “나는 발레요 사람이 아니며 티끌 같은 미말의 존재입니다”(이성봉 목사). 는 “나는 어릴 때부터 범죄를 계속한 불의하고도 붕충한 죄인중의 괴수입니다”(손양원 목사).“나는 신사참배한 죄인입니다”(한경직). 나는 고멜과 같은 음녀입니다”(김치선 목사). “나는 83년 묵은 죄인입니다(박윤선 목사)” 너무너무 귀중한 “회개와 참회”의 고백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회개와 참회”가 없는 믿음은 형식적인 믿음이고 위선적인 믿음이고 거짓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회개와 참회”가 없는 삶은 형식적인 삶이고 위선적인 삶이고 거짓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회개와 참회”가 없는 기도는 형식적인 기도이고 위선적인 기도이고 거짓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삶과 제사는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회개와 참회”의 삶과 제사라고 생각합니다. 다윗과 사도 바울을 비롯한 우리 믿음의 선배님들이 모두 평생토록 처절한 “회개와 참회”의 삶을 살았고 처절한 “회개와 참회”의 기도를 드리면서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주장과 자기 고집이 센 사람은 “회개와 참회”의 삶을 제대로 드리지도 못하고 “회개와 참회”의 기도를 제대로 드리지도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셔서 날마다 “회개와 참회”의 삶을 살게 하시고 날마다 “회개와 참회”의 기도를 드리면서 살아가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즉 “응답 받는 올바른 기도에 전념하는 삶”을 살게 하시기를 바라고 소원합니다.



둘째로, “응답 받는 올바른 기도에 전념하는 삶”이란 우리들의 몸과 마음과 소유를 정성껏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와 예배”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응답 받는 올바른 기도”는 말과 소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몸과 마음과 소유와 생명을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와 예배”와 밀접하게 관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벨이 양의 첫 새끼를 잡아서 “제사”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며 아벨을 축복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며 아브라함을 축복하셨습니다. 베다니 마리아가 지극히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씻었을 때 예수님께서 너무너무 기뻐 받으시면서 마리아를 칭찬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구원 받은 죄인들이 제일 먼저 우선적으로 하여야 할 일이 몸과 마음과 정성을 하나님께 “제사”로 드리는 “영적 예배” 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기독교는 “제사와 예배”를 정성껏 드리는 “제사와 예배”의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성막과 성전에서 “제사”를 정성껏 드리게 하셨고, 신약시대와 교회 시대에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교회에서 “예배”를 정성껏 드리게 하셨습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교회에서 “예배”를 정성껏 드리는 것이 기독교의 중심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날은 거의 전부 주일 아침이나 주일 저녁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인식 후 첫날인 주일 아침부터 밤까지 드린 “예배”의 모습이 사도행전 20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행 20:7-11). 청교도들이 가장 강조한 것은 “주일성수”와 “예배”였습니다. 한국교회도 그 초기부터 “주일성수”와 “예배”를 철저하게 강조해 왔습니다. 주일에는 온종일 모든 세속적 업무를 중단하고 “예배”와 “봉사”에 바쳐야 할 것을 엄격히 가르쳤습니다. 우리들이 주일을 종일 거룩하게 지키며 정성을 다해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서 우리들의 기도를 응답하시고 우리들을 축복하십니다. 그리고 앞으로 하늘에서 이루어질 영원한 안식의 축복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사실 저는 “주일성수”와 “예배”의 삶을 바로 살기 위해서 11살 떼 사랑하는 부모님과 고향을 떠나 캄캄한 밤에 38선을 혼자 뛰어넘어서 남한에 와서 살게 되었고 한 평생 고아와 나그네로 외롭고 슬픈 삶을 살아왔는데 하나님께서는 저의 삶을 너무 많이 축복해 주셨습니다.



셋째로, “응답 받는 올바른 기도에 전념하는 삶”이란 우리들이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사랑을 몸에 지니고 불우한 이웃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금식과 기도는 불우한 이웃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삶이라는 놀라운 말씀을 오래 전에 하셨습니다.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 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사 58:6-9). 우리 부족한 죄인들이 긍휼과 용서와 사랑를 몸에 지니고 불우한 이웃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삶을 살려고 할 때 성부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쁘게 받으시면서 우리들이 부르짖으며 드리는 기도에 즉시 응답하신다는 놀라운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1장에서 비슷한 말씀을 이미 하셨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마 9:13).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 25:35,36). 사도 바울도 믿음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긍휼과 용서와 사랑”이 없는 믿음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긍휼과 용서와 사랑”이 없는 기도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고전 1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2). “응답 받는 올바른 기도에 전념하는 삶”이란 긍휼과 용서와 사랑을 몸에 지니고 불우한 이웃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넷째로, “응답 받는 올바른 기도에 전념하는 삶”이란 우리들이 근심 걱정 불평 불만 염려 두려움을 모두 다 내어버리고 “평안과 기쁨과 감사”를 지니고 가볍게 여유롭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요 15:17).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순수하게 믿고 사랑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면서 이전에 지니고 있던 근심 걱정 불평 불만 염려 두려움을 모두 다 내어버리고 “평안과 기쁨과 감사”를 지니고 가볍게 여유롭게 행복하게 살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모세가 그랬고 다니엘이 그랬고 사도 바울이 그랬고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들이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순수한 믿음을 지니고 “응답 받는 올바른 기도에 전념하는 삶”이란 우리들이 근심 걱정 불평 불만 염려 두려움을 다 내어버리고 “평안과 기쁨과 감사”를 지니고 가볍게 여유롭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속에 들어갈 것을 잘 알면서도 근심 걱정 불평 불만 염려 두려움을 다 내어버리고 “평안과 기쁨과 감사”를 지니고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감사했습니다(단 6:10).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관원들에게 붙잡혀 많이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지만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평안과 여유로움을 지니고 옥중에서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행 16:25). 사도 바울은 나중에 로마 옥에 갇힌 죄수의 몸이 되었지만 근심 걱정 불평 불만 원망 불평 염려 두려움을 지니는 대신 “평안과 기쁨과 감사”를 지니고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0-13). “응답 받는 올바른 기도에 전념하는 삶”이란 근심 걱정 불평 불만 염려 두려움을 모두 다 내어버리고 “평안과 기쁨과 감사”를 지니고 가볍게 여유롭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삶을 하나님께서 바라보시면서 아주 기뻐하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부족하고 부족하지만 어릴 때부터 순수한 믿음을 지니고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근심 걱정 원망 불평 염려 두려움을 모두 다 내어버리고 “평안과 기쁨과 감사”를 지니고 그리고 모험심과 담력을 지니고 막 뚫고 나아가면서 행복한 한 평생을 살았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순수한 믿음을 몸에 지니고 기도하면서 살아갈 때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요 14:13). 순수한 믿음을 지니고 “응답 받는 올바른 기도에 전념하는 삶”이란 근심 걱정 불평 불만 염려 두려움을 모두 다 내어버리고 “평안과 기쁨과 감사”를 지니고 가볍게 여유롭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모험심과 담력을 지니고 막 뚫고 나아가면서 멋지게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또 베풀어주셔서 고난과 환난이 많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근심 걱정 불평 불만 염려 두려움을 모두 다 내어버리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기도에 전념하면서 “평안과 기쁨과 감사”를 지니고 가볍게 여유롭게 행복하게 살아가게 하시기를 바라고 소원합니다. 그리고 모세처럼 다니엘처럼 모험심과 담력을 지니고 막 뚫고 나아가면서 멋지게 그리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섯째로, “응답 받는 올바른 기도에 전념하는 삶”이란 우리들이 하늘을 바라보면서 “천국 소망”을 지니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이 고난과 환난 중에서도 하늘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서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지니고 기뻐하며 즐거워할 때 하나님께서 귀중하게 보시면서 우리들의 소원과 기도를 응답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면서 하늘을 자주 우러러 보셨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요 11:4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요 17:1). 예수님께서는 8복을 말씀하시면서 팔 복의 결론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 5:12). 예수님께서는 또한 하늘을 바라보시면서 근심하지 말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1-3). 사도 바울의 마음과 눈도 항상 하늘을 바라보는 “천국 소망”을 지니고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에서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 좋은 일이었지만 사실은 세상을 떠나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 더 좋다고 솔직하게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었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빌1:23). “또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 하노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고후 5:1-3).

사도 요한이야말로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서 “천국 소망”을 지니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살았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계 4:1).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계 5:1). “내가 또 보니 힘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 오는데”(계 10:1).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계12:1). “내가 또 보니 어린양이 시온 산에 섰고”(계 14:1).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계 18:1).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가로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계 19:1).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계 20: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계 21:1).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계 22:1). 기독교 신앙의 중심과 목표는 새 하늘과 천국입니다. 믿음의 조상들은 모두 이 세상의 본향을 바라보지 않고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며 사모했다고 기록했습니다(히 11:16).

“응답 받는 올바른 기도에 전념하는 삶”이란 우리들이 땅을 바라보는 대신 하늘을 바라보면서 “천국 소망”을 지니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마라나타” 라는 인사를 주고 받았는데 “마라나타” 라는 말의 뜻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였습니다. 한국교회의 아버지 길선주 목사님은 요한계시록을 만 독을 하고 암송을 하며 천국을 바라보고 사모하면서 한 평생을 살았습니다. 한국교회의 무디라고 불리던 이성봉 목사님은 밤에 자다가 옆집 방앗간에서 방아 찢는 소리만 들려도 주님이 오시지 않나 하고 밖으로 나가서 하늘을 쳐다보곤 하셨다는 간증을 저는 중학생 때 12번이나 들었습니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도 감옥에 갇혀 있을 때 힘들고 지칠 때마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손수 지은 “주님 고대가”를 불렀습니다.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내 주님 오시기만 고대합니다. 가실 때 다시 오마 하신 예수님,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고적하고 쓸쓸한 빈 들판에서, 희미한 등불만 밝히어 놓고 오실 줄만 고대하고 기다리오니,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먼 하늘 이상한 구름만 떠도, 행여나 내 주님 오시는가 해 주님 계신 그 곳에 가고 싶어요.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천 년을 하루같이 기다린 주님, 내 영혼 당하는 것 볼 수 없어서 이 시간도 기다리고 계신 내 주님, 오 주여 이 시간에 오시옵소서.”

우리 인간은 본능적으로 천국에 대한 소망을 지니기가 어렵습니다. 세상이 너무 좋고 돈이 너무 좋고 명예가 너무 좋고 자리가 너무 좋고 쾌락이 너무 좋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사는 “천국 소망”을 거의 포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천국 소망”을 포기하고 세상의 정치 경제 문화 음악적인 유행에 정신이 빠지게 된 것이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은혜와 사랑을 베푸셔서 우리들이 순수한 믿음을 지니고 “천국 소망”을 회복하게 하시기를 바라고 소원합니다. 저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이지만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에게 “천국 소망”을 지니고 살아가는 은혜를 베푸셨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아마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일찍 이별했기 때문에 그리고 제가 너무너무 사랑하던 어린 아들 철원이가 뇌수종이라는 불치의 병을 몸에 지니고 살다가 네 살 때 저의 곁을 떠났기 때문에 천국을 더욱 더 사모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2008년 8월 31일 밤 천국을 바라보면서 “주님 앞에 섰을 때 나의 모습” 이란 제목의 글을 쓴 일도 있었습니다. 저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사랑하는 어린 아들 철원이와 그리고 길선주 목사님과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과 이성봉 목사님과 김치선 목사님과 박윤선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 등이 먼저 가 계시는 천국을 바라보고 사모하는 글을 써 보았습니다. 시간이 부족해서 그 글을 소개하지는 못합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기본적으로 필요하고 귀중한 것은 순수한 믿음을 지니고 “응답 받는 올바른 기도에 전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순수한 믿음과 간절한 기도가 없이는 죄 사함도 구원도 영생도 의롭다 함도 천국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과 기도는 우리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기 때문입니다. 순수한 믿음을 지니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이 너무너무 귀중합니다. 기도가 없이는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이룰 수가 없고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없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자들에게 가까이 하시고 죄를 사하시고 은혜와 복을 내리시기 때문입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찌라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이는 내가 이미 이 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으로 여기 영영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 있으리라”(대하 7:14-16).

순수한 믿음을 지니고 “응답 받는 올바른 기도에 전념하는 삶”이란 어떤 삶입니까? 첫째로 “응답 받는 올바른 기도에 전념하는 삶”이란 “회개하고 참회”하면서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응답 받는 올바른 기도에 전념하는 삶”이란 몸과 마음과 소유를 정성껏 드리는 “제사와 예배”의 삶을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로 “응답 받는 올바른 기도에 전념하는 삶”이란 긍휼과 용서와 사랑를 몸에 지니고 불우한 이웃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넷째로 “응답 받는 올바른 기도에 전념하는 삶”이란 근심 걱정 불평 불만 염려 두려움을 모두 다 내어버리고 “평안과 기쁨과 감사”를 지니고 가볍게 여유롭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섯째로 “응답 받는 올바른 기도에 전념하는 삶”이란 하늘을 바라보면서 “천국 소망”을 지니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와 여러분들에게 순수한 믿음을 더하셔서 우리들로 하여금 “응답 받는 올바른 기도에 전념하는 삶”을 살다가 죽게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찬송가 “내 기도하는 그 시간”(482장, 364장)을 함께 부르고 기도하겠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등록일
947  [10/13] 어떻게 살 것인가? 범사에 감사하며 (살전 5:16-18 ) - 샘물호스피스 선교회      21TV 2019/10/14
 [10/06] 응답 받는 올바른 기도에 전념하는 삶 (막 1:35, 눅 6:12 ) - 좋은 소식교회      21TV 2019/10/07
945  [09/29]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롬 8:1-13) - 포천 새힘교회      21TV 2019/09/30
944  [09/22] The benefits of poverty, affliction, sorrow and pain (Lk 눅 6:20,21, Mk 막 8:31, 마 Matt 5:4, Ps 시 119:71, Ecc 전 7:3, 2Cor 고후 12:10) - 남양주 암미 선교교회      21TV 2019/09/23
943  [09/15] 성자 예수님께서 전파하신 하나님의 나라 (눅 8:1, 행 1:3,7,8) - 그레이스 선교교회      21TV 2019/09/16
942  [09/08] 제일 좋은 사람은 착한 사람 (마5:16, 행11:24 ) - 문경 예스교회      21TV 2019/09/09
941  [09/01] 어린이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예수님 (막10:13-16 ) - 보은 창성교회      21TV 2019/09/02
940  [08/25] 귀중하고 아름다운 빌립보교회를 기리며 (빌1:1-11 ) - 익산 황등 제자교회      21TV 2019/08/26
939  [08/18] 최권능 목사님의 오직 예수 천당의 신앙 (빌1:20,21) - 개포동 사랑의 빛 교회      21TV 2019/08/19
938  [08/11] 주일 성수와 예배의 신앙 (출31:12-17, 마12:8, 행20:7) - 용인 사랑을 그리는 교회      21TV 2019/08/12

1 [2][3][4][5][6][7][8][9][10]..[95] [다음 10 개]

 
 
http://21tv.org/bbs/zboard.php?id=kangbyun
 
  21TV 유투브채널 오픈하다....
플로리스트 고급과정 회원...
영상 서비스가 업그레이드 ...
가을을 여는 성전꽃꽂이 세...
FFC 송년모임 및 성탄장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