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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09] 교회의 사명(2) (빌 1:1-11, 2:17,18 ) - 전주 미래교회교회(오후2시)


오늘 오전 11시 예배 시간에는 어머니 교회인 예루살렘교회와 이방에 처음으로 세워졌던 안디옥교회가 지녔던 귀중하고 아름다운 모습들을 살펴보면서 “교회의 사명”(1) 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했는데 지금 오후 2시 예배 시간에는 이방에 세워졌던 또 하나의 교회인 빌립보교회의 귀중하고 아름다운 모습 세 가지를 살펴보면서 “교회의 사명”(2)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빌립보교회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교회입니다. 아마 사도 바울이 제일 좋아했던 교회가 바로 빌립보교회였다고 생각합니다. 빌립보교회는 이상적인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이 가장 사모하고 가장 사랑한 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모한다”(빌 1:8) 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가리켜 “나의 사랑, 나의 사모, 나의 기쁨, 나의 면류관” 이라고 불렀습니다(빌 4:1). 그리고 저들을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제물로 드려도 자기는 기뻐하고 또 기뻐할 것이라고 고백하면서 빌립보교회 성도들도 자기와 함께 기뻐하고 또 기뻐하라고 권면하기도 했습니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찌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빌 2:17,18).

사도 바울이 왜 빌립보교회를 귀중하게 여기면서 자기를 희생하기까지 사랑했습니까? 빌립보교회가 너무너무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빌립보교회는 세 가지 귀중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고 있었는데 사랑의 교제와 사랑의 봉사와 사랑의 기쁨을 지니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교제와 봉사와 기쁨이 즉 교봉기가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제가 빌립보를 두 번 방문한 일이 있었는데 빌립보 강변을 걸으면서 사도 바울이 걸어간 사역지를 돌아보면서 그리고 빌립보교회의 유적지를 돌아보면서 얼마나 깊은 감동과 은혜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사실 제가 1980년 4월 6일 청담동에 교회를 세우면서 교회 이름을 강변교회라고 지은 이유는 강변에 세워졌던 빌립보교회를 닮기를 소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강변교회의 표어를 “서로 돌아보고 기쁨으로 섬기면서” 라고 정했는데 빌립보교회가 “교제”와 “봉사”에 전력한 교회였고 “기쁨”이 충만한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가장 이상적인 아름다운 이방인 교회였던 빌립보교회의 특징 세 가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빌립보교회는 “교제와 봉사와 기쁨”이 즉 “교봉기”가 충만한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첫째로 빌립보교회는 사랑의 “교제”가 충만한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빌 1:5).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으니 잘하였도다”(빌 4:14). 빌립보서에는 “교제” 라는 말과 “참예” 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오는데 “교제” 라는 말과 “참예” 라는 말이 비슷한 말이면서도 조금 다른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제”는 가벼운 만남으로 그칠 수 있는데 “참예”는 보다 깊은 교제를 의미합니다. “참예”는 서로 나누는 sharing 의 교제를 의미하고 어떤 일을 함께 하는 partner-shipping 의 교제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시간과 물질과 몸을 드려서 무슨 일을 함께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은 복음과 은혜 안에서 서로 “교제”했고 바울의 고난과 선교 사역에 “참예”했다고 했습니다.

빌립보교회는 사도 바울과 루디아와의 “만남”과 “교제”와 “참예”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루디아는 강변에서 마음을 열어 사도 바울의 말씀에 청종했고 지갑과 물질과 집과 시간을 열어서 사도 바울의 복음 사역에 “참예”했습니다(행 16:15). “교제”가 친밀한 교제가 되려면 마음을 열어야 하고 지갑을 열어야 하고 집을 열어야 하는데, 루디아는 마음을 열고 지갑을 열고 집을 열었습니다. 루디아의 “교제”와 “참예”는 형식적인 만남과 교제가 아닌 실제적인 사랑의 교제와 사랑의 참예였습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루디아의 본을 따라서 모두 사랑의 교제와 사랑의 참예의 삶을 살았습니다. 빌립보교회 신자들은 방관자들이 아니었고 구경꾼들이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사도 바울의 목회 시역과 선교 사역에 “참예”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됨이라”(빌 1:7).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으니 잘하였도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빌 4:14,15). 여기 “참예” 라는 말이 계속해서 나옵니다.

빌립보교회는 기도와 물질뿐 아니라 몸으로 사도 바울의 사역에 “참예”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들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은 함께 모여서 회의를 했습니다. 교인들 중에서 한 사람을 대표로 뽑아 로마로 보내어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소식과 사랑을 전하기로 했습니다. 참된 사랑은 보고 싶어하고 만나고 싶어하고 몸으로 물질로 돕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대신해서 로마로 갈 사람을 정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에바브로디도였습니다. 성품이 부드럽고 착하고 충성스럽고 희생적인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누구나 만나면 위로를 받고 좋아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사랑의 편지와 사랑의 선물을 가득히 담은 커다란 보따리를 짊어지고 수 천리 바다 길을 항해한 후 로마에 도착했습니다. 로마 감옥에 갇혀 있던 죄수 사도 바울에게 뜻하지 않은 반가운 손님 한 사람이 찾아 왔습니다. 사도 바울이 꿈에도 그리며 사모하고 보고 싶어하던 빌립보교회 성도의 한 사람인 에바브로디도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때의 감정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빌 4:10).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빌 4:18). 빌립보교회는 사랑의 “교제”가 충만한 교회였고 사랑의 “참예”가 충만한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사랑의 “교제”와 사랑의 “참예”가 없는 교회는 건강한 교회도 아니고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도 아니고 행복한 교회도 아닙니다. 전주 미래교회가 사랑의 “교제”와 사랑의 “참예”를 힘쓰므로 건강하고 귀중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빌립보 교회는 사랑의 "섬김"과 “봉사”가 충만한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사도 바울의 고난에 참예하고 사도 바울의 선교 사역에 참예한 것을 가리켜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이미 "섬김"과 “봉사”와 “착함”의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사실 “교제”와 “참예”가 실제적이 될 때 교제와 참예는 사랑의 “섬김”과 사랑의 “봉사”로 나타납니다. “참예”는 곧 “봉사”입니다. 시간과 물질과 몸을 바쳐서 주님의 일에 참예하는 것이 곧  “섬김”이요 “봉사”요 “착함”이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하노라”(빌 1:6). “너희의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찌라도 나는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리라”(빌 2:17).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빌 2:30). 여기 “착함” “섬김” “봉사”란 말이 나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의 성도들과 에바브로디도가 주님을 섬기고 사도 바울을 섬기면서 자기들의 생명을 돌아보지도 않은 것을 지적하면서 깊은 감동에 사로잡히기도 했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는 사랑의 “섬김”과 사랑의 “봉사”와  사랑의 “착함”이 충만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믿을 때부터 착한 일을 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하면서 마지막 때까지 착한 일을 계속하게 되기를 위해서 기도한다고 말했습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하노라”(빌 1:6). 사실 “섬김”과 “착함”은 예수님의 삶의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행 10:38). 빌립보 교회는 사랑의 “섬김”과 사랑의 “봉사”와  사랑의 “착함”이 충만한 가장 이상적인 교회였고 가장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사랑의 “섬김”과 사랑의 “봉사”와 사랑의 “착함”이 없는 교회는 건강한 교회도 아니고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도 아니고 행복한 교회도 아닙니다. 전주 미래교회가 사랑의 “섬김”과 사랑의 “봉사”와  사랑의 “착함”을 힘쓰므로 건강하고 귀중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빌립보 교회는 사랑의 “기쁨”이 충만한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사랑의 “교제”와 사랑의 “봉사”가 있을 때 그것은 사랑의 “기쁨”으로 나타납니다. 빌립보서에는 “기쁨” 이라는 말이 제일 많이 나옵니다.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빌 1:3-5).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빌 1:18).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빌 4:10). 빌립보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기쁨”이 충만한 것이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강해설교자인 제임스 보이스 박사는 빌립보서 강해서를 쓰면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빌립보서는 성경 중에서 기쁨이 가장 충만한 책입니다. 빌립보서 전체를 통하여 사도 바울은 기쁨과 행복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짧은 네 장을 통하여 열 일곱 번이나 말하고 있습니다.” 아주 올바른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어떤 처지에 있든지 간에 자족하는 법을 배웠을 뿐 아니라 그 어떠한 처지에서도 기뻐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에게서는 기쁨이 넘쳐 흘렀습니다. 사도 바울은 기쁨의 참 근원을 찾아낸 사람이었습니다. 주님 안에서 그리고 성도들과의 사랑의 교제 안에서 기쁨을 발견했습니다. 이와 같은 기쁨은 사도 바울의 가슴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았습니다.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가슴 가슴에도 전염되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옥중에서 매를 맞으면서도 기뻐하며 찬송을 불렀는데 그때 그 기쁨은 간수에게 전염되었고 루디아에게 전염되었고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전염되었을 것입니다. 로마 옥중에서의 사도 바울의 기쁨의 비결은 환경이나 소유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님 안에 있었던 것이었고, 빌립보 교회 성도들과 친밀한 사랑의 교제 안에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빌 4:10). 로마 옥중에서 사도 바울이 가슴에 지녔던 기쁨과 승리는 에바브로디도에게 그대로 전염되었고 에바브로디도를 통해서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그대로 전달되었을 것입니다. 결국 빌립보교회 성도들은 극한 가난 중에서도 환난과 시련가운데서도 사도 바울처럼 기뻐하면서 사랑과 희생과 봉사의 아름다운 삶을 살 수가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지녔던 넘치는 기쁨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고후 8:1,2). 빌립보 교회는 사랑의 기쁨이 충만한 가장 이상적인 교회였고 가장 아름다운 교회였고 가장 건강하고 귀중한 교회였습니다. 사랑의 기쁨이 없는 교회는 건강한 교회도 아니고 행복한 교회도 아닙니다.

사실 기쁨을 지니지 못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모세도 다윗도 솔로몬도 기쁨을 최고로 예찬했고 기쁨을 간구했습니다.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시 90:14). 모세의 마지막 기도였습니다.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1).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시 16:3). 다윗의 고백이었습니다.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전 3:12,13). 솔로몬의 마지막 고백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도 기쁨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 5:12).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요 15:11).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마 25:21). 전주 미래교회가 주님 안에서 그리고 성도들의 사랑의 교제와 사랑의 봉사 안에서 진정한 기쁨을 지니고 누리는 귀중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빌립보교회는 사랑의 “교제”와 사랑의 “참예”가 충만한 교회였고,  사랑의 “섬김”과 사랑의 “봉사”와 사랑의 “착함”이 충만한 교회였고, 그리고 사랑의 “기쁨”이 충만한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빌립보교회는 한 마디로 사랑을 주고 받는 사랑의 교회였습니다.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주고 받는 사랑의 교회였고, 사도 바울로부터 사랑을 주고 받는 사살의 교회였고, 성도들로부터 사랑을 주고 받는 사살의 교회였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주고 받는 사랑의 교회였습니다. 전주 미래교회가 주님과 사람들의 사랑을 주고 받는 아주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전주 미래교회가 “교제”와 “참예”가 충만하고 “섬김”과 “봉사”가 충만하고 “기쁨”이 충만한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교봉기”가 충만한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시간이 좀 남았기 때문에 제가 개척해서 28년 동안 목회하던 강변교회에서의 목회 사역에 대해서 간단하게 줄여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1980년 4월 6일 강변교회를 시작하면서 강변교회의 표어를 다음과 같이 정했습니다. “서로 돌아보고 기쁨으로 섬기면서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적 신앙생활을 힘쓴다.” “교제”와 “봉사”와 "기쁨"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서로 돌아보고”는 교제를 힘쓴다는 말이고 “기쁨으로 섬기면서”는 "기쁨"으로 봉사를 힘쓴다는 말이었습니다. 교회 이름을 강변이라고 정한 것은 한강 변에 세워지기도 했지만 강변에 세워졌던 빌립보 교회를 모델로 삼았기 때문이었고 빌립보 교회를 본받아 “교제”와 “봉사”와 "기쁨에 치중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친밀한 교제와 사랑의 봉사가 부족한 교회는 부끄러운 교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부족하지만 “교제”와 “봉사”를 힘쓰면서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적 신앙생활을 힘쓰는 것을 교회의 표어로 삼고 28년 동안 목회를 계속했습니다. 성도들과 친밀하게 교제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과 봉사의 손길을 펴는데 주력하면서 목회를 했습니다. 저는 신자들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데 최선을 다했는데 특히 새 신자들과 친밀하게 교제하고 어린이들과 아주 친하게 지냈습니다. 이웃의 동회와 구청과 학교와도 가깝게 지냈고 불우한 사람들이 사는 구룡 마을과도 가깝게 지냈습니다. 그리고 이들 모두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폈습니다. 결국 "기쁨"이 충만한 목회였습니다. 저는 다시 목회를 시작한다 해도 여전히 같은 표어를 가지고 같은 방식으로 목회를 할 것이라는 갱각을 했습니다. 사실 교회는 설교 위주도 아니고, 교육 위주도 아니고, 행사 위주도 아니고, 프로그램 위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와 성도들과의 친밀한 교제를 힘쓰는 것이 교회의 본질이고, 성도들과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면서 봉사하는 것이 교회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주력하여야 할 실천 목표 다섯 가지를 정했습니다. “예배가 생동하는 교회,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교회, 연합운동을 펴 나아가는 교회, 북한동포를 돕고 선교하는 교회, 청소년을 육성하여 미래를 준비하는 교회.” 요사이 한국교회가 행사와 프로그램에 치중하는 것은 교회의 본질에서 벗어난 잘못을 범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목회하면서 주력한 것은 “새벽기도”와 “주일성수의 예배”와 “순교신앙”의 귀중 성이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신앙의 스승님들로부터 물려 받은 것이 바로 “새벽기도”와 “주일성수의 예배”였고 “순교신앙”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28년 동안 목회하면서 새벽기도를 빠진 일이 거의 없었고 외국에서 밤에 돌아와서도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고 참석했습니다. 새벽기도를 빠지려면 장로를 그만두라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주일 성수를 제일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실천 목표 5 가지 중 첫째를 “예배가 생동하는 교회”로 정했습니다. 교회 설립에 크게 이바지했던 한도정 집사님이 주일 저녁 예배에 이따금씩 빠진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중하게 “주일 저녁 예배에 자주 빠지면 집사를 그만 두는 게 좋겠다” 라고 말해서 집사님에게 충격을 준 일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 다음부터 주일 저녁 예배에 잘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저녁 예배에 잘 빠지는 젊은 여 집사들보고 “너희도 집사 그만두어야 할지 모른다” 라고 충고까지 하곤 했습니다. 사실 저는 한 평생 주일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에 가지 않고 종일 교회에 있으면서 예배를 인도하고 성도들을 돌아보았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평생 주일날 공부나 일이나 여행이나 매식을 하는 일도 없었고 예배와 기도와 섬김에 전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목회하면서 순교신앙을 귀중성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에 대한 설교를 자주 하곤 했습니다.

저의 목회사역의 특징은 또한 “교제”였습니다. 저는 성도들과의 교제를 힘썼는데 특히 새 신자들과의 교제에 힘썼습니다. 주일 예배를 마친 다음 간단한 점심 식사를 한 후 저는 제 방에서 20여명의 새 신자들과 만나 한 시간 반 정도 대화와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기 보다는 주로 저들의 말을 들어주면서 친밀한 대화와 교제에 힘썼습니다. 이 만남과 나눔의 시간들을 통해 새 신자들은 담임 목사와 가까워지고 교회에 쉽게 정착하며 신앙이 성장했습니다. 새 신자들의 고백들을 여기 적어본다. “지난 한 해는 저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행복한 한 해였습니다. 강변교회에 오게 된 것이 행복이었고 믿음이 성장하고 가치관이 바뀌게 된 것이 행복이었고 ‘일인 치하’의 가정이 ‘민주적인’ 가정으로 바뀌어 진 것이 행복이었고 직장에서 직원들에 대한 태도가 바뀌어진 것이 행복이었습니다.” 자기는 50을 바라보는 남자로 ‘행복’이란 단어를 쓰는 것이 쑥스러웠지만 지금은 떳떳하게 2004년이 가장 행복한 해였다고 다시 말했을 때 참석자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함께 앉았던 이 모 신자 부부도 공감의 뜻을 표했습니다. 자기는 교회에 나오기 전에는 주말에 등산이나 골프로 시간을 보냈는데 이제는 주일을 보람차게 보내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되었고 죄가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죄책감을 느끼며 죄를 슬퍼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랑을 느낄 줄 알고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란 사실도 배우게 되었다고 고백하며 자기 부부는 교회와 담임 목사를 너무 좋아한다고 고백했습니다. 김 모 신자는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감사의 글을 교회 홈 페이지에 올렸습니다. 그 일부를 여기 옮깁니다. “멋쟁이 김명혁 목사님, 강변교회에서 2004년 한 해 동안 참 행복하고 즐거웠습니다. 잊혀지지 않는 강변교회에 대한 그림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감동적인 그림은 예배였습니다. 어머니의 품 속에서부터 물려받은 신앙이었지만, 이토록 가슴 저리며 예배를 드려본 적이 없었습니다. 예배 시간에 2004년만큼 눈물을 흘려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지난 1년간 강변교회에서 제가 누린 예배의 감격은 너무도 소중합니다. 또 목사님, 마음 깊이 존경할 수 있는 목회자가 있다는 것에 저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한 해 동안 감사 기도 중 하나는 저의 발걸음을 강변교회로 인도하신 것이고, 이곳에서 말로 다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다시 한 번 새롭게 느끼고, 말씀과 복음을 향한 재도전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목회자는 이와 같은 새 신자들과의 만남과 교제를 통한 기쁨을 누리기 때문에 목회를 계속하는지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강변교회에서 목회하면서 어린이들을 아주 많이 좋아했습니다. 어린이들도 저를 아주 많이 좋아했습니다. 저는 주일 아침마다 주일 학교 각 부서(유아,유치,유년,초등부)에 들어가곤 했는데 유아부 유치부 어린이들은 나에게 달려 들어 안기고 업혔습니다. 유치부 어린이들 몇 명은 빙빙 돌려달라고 졸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린이들의 두 손을 붙잡고 빙빙 돌리곤 했습니다. 은우 라는 3살 난 아이는 주일 날 교회에 오면 꼭 목사님 방에 가자고 했습니다. 스티커 한 장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예배 후 점심 식사를 할 때 거의 매번 예은이와 지원이는 내 옆으로 다가 왔습니다. 그리고는 “엄마가 스티커 받지 말랬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생글생글 웃는 얼굴 표정은 스티커를 한 장 주었으면 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래서 스티커를 한 장씩 주면 활짝 웃으면서 좋아했습니다. 어린이들이 저에게 편지를 아주 많이 써서 보내곤 했습니다. 이레는 아기 때부터 내가 안아주며 예뻐하던 아이였는데 내가 내 방에서 안아주면 내 품에 안겨서 한 시간도 두 시간도 편하게 잠을 자던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이사를 갔습니다. 5살 난 이레가 성탄절에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목사님께 메리 크리스마스. 목사님 저 어렸을 때 많이 많이 돌봐주시고 기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 항상 챙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목사님 그리고 또 할 말이 있어요. 저 나중에 크면 놀러 갈께요. ♡♡해요. 이레 올림 2004.12.21” 그 다음 초등학교 4학년의 성혜진이 보낸 편지를 소개합니다. 아기 때부터 내가 예뻐하고 사랑하는 믿음과 생각이 깊은 어린이였습니다. “목사님 제 꿈이 커졌어요… 목사님 요번 성탄절을 생각하면서 선물을 먼저 떠 올렸지만 설교 말씀을 듣고 나서 깨달았어요. 예수님이 태어 나신 건 좋은 소식이지만 우리 죄를 위해서 돌아가실 분이었기 때문에 슬펐어요. 그래서 요번 성탄절은 선물만 고집할게 아니라 회개하고 예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드리고 싶어요. 목사님 추운 날씨에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사세요. 목사님 뜻 깊은 성탄절 되세요♪” 혜진이의 편지 또 하나를 소개합니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성탄절이 다가옵니다. 제일 먼저 목사님께 선물을 드리고 싶었어요. 목사님 저는 학교에서 회장이예요. 얘들이 말 한 들을 땐 너무 속상해요. 목사님께서도 저희가 말 안 들을 땐 힘드시죠. 그래서 동시 현 편 지었어요. 목사님 힘 내세요. 성혜진 올림. 동시. 목사님 세상에서 제일 멋진 우리 목사님 멋진 만큼이나 은혜로운 말씀 전해 주시네 세상에서 제일 가는 우리 목사님 예수님의 따뜻한 손처럼 안아주시네. 목사님 사랑해요.”

저의 목회사역의 특징은 또한 “섬김과 봉사”였습니다. 저는 언제부터인가 막10: 45을 아주 좋아하게 되었고 이기풍 목사님과 윤함애 사모님의 사랑과 섬김과 봉사의 삶을 흠모하게 되었고 성 프랜시스와 손양원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과 장기려 박사님의 사랑과 섬김과 봉사의 삶을 흠모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저는 이기적이고 정욕적이고 비판적이고 배타적이고 위선적이고 독선적인 죄인이지만 주변 사람들과 먼데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섬김과 봉사의 손길을 펴는데 최선을 다하면서 목회했습니다. 이웃의 동회와 구청과 학교와 가깝게 지내면서 사랑과 섬김과 봉사의 손길을 폈고 불우한 사람들이 사는 구룡 마을과도 가깝게 지내면서 사랑과 섬김과 봉사의 손길을 폈습니다. 매년 12월 말에 구청과 동회가 추천하는 어려운 사람들 50여명을 초청하여 “사랑의 음악회”를 열어 위로하면서 20만원씩 선물을 전달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섬김과 봉사와 나눔의 손길을 펴려고 애를 썼습니다. 1988년 여름 북 아프리카 부르키나 파소라는 나라를 찾아가서 가뭄으로 죽어가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서 우물 10개 이상을 파주기도 했습니다. 1989년에는 방글라데시를 찾아가서 재난과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방글라데시 사람들을 위해서 안과 병원을 하나 지어주기도 했고 노재인이라는 영양사 한 사람을 방글라데시에 파송하기도 했습니다. 1995년부터 홍수와 재난으로 고통 당하는 북한 동포들을 돕는 일에 앞장을 서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북한의 결핵환자들을 돕고 있습니다. 1999년경부터 불쌍한 연변의 조선족 고아 어린이들 150 여명을 돕는 일을 지난 20여년 동안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2005년 12월에는 아프가니스탄을 찾아가서 재난과 가난으로 고통 당하는 아프가니스탄 어린이들을 위해서 학교를 하나 지어주고 준공식을 거행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은 사랑과 섬김과 봉사 사역에 가장 큰 도움의 손길을 편 사람들은 강변교회 성도들이었습니다. 아프간에 세워진 학교는 전적으로 강변교회 성도들의 헌금으로 지어진 것이었습니다.

저의 목회사역의 특징은 또한 원로 목사님들을 초청해서 말씀을 듣곤 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본래 원로 및 선배 목사님들을 존경하고 사랑하며 본받기를 간절히 소원했습니다. 그래서 강변교회에서 은퇴하기 6년 전부터 매년 11월에 주일 마다 교파를 초월해서 교계의 원로 목사님들을 초청해서 말씀을 들으면서 주일 아침 예배를 드리곤 했습니다. 주일 아침 예배에 초청한 원로 분들 중에는 방지일, 김창인, 정진경, 강원용, 김준곤, 림인식, 조향록, 홍순우 목사님 등이었습니다. 교파와 배경이 다른 여러 목사님들의 정제된 보석 같은 말씀들을 들으면서 강변교회 성도들은 깊은 감동과 은혜를 받곤 했습니다. 교인들이 너무너무 좋아했습니다. 폭이 넓어졌습니다. 강변교회에 자주 오시던 정진경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한달 동안 강단을 원로 목사님들에게 내어주는 일은 다른 교회에서는 없습니다. 그런데 요사이 원로들을 초청하는 교회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원로 초청예배는 세대간의 간격을 좁히는 역할을 하고 원로들이 친밀한 교제를 하고 좋은 이야기들을 나누므로 교회연합운동에 공헌하며 교인들에게는 선배들의 신앙을 통해 복음을 배우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성도들이 원로 분들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하곤 했습니다. 교회에서 드리는 소정의 사례와 함께 세 사람의 성도들이 자원해서 준비한 세 가지 선물도 드렸는데 드리는 성도들이나 받는 원로 분들은 모두 즐거워했습니다.

이것으로 오늘 오후 2시 예배의 설교를 마무리 합니다. 교회 설립 18주년을 맞는 전주 미래교회가 빌립보교회가 지녔던 “교제와 봉사와 기쁨”이 충만한 즉 “교봉기”가 충만한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를 바라고 소원합니다. 그리고 부족한 사람이 강변교회에서 28년 동안 목회했던 목회사역도 다소의 참고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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