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tv



 

   
 

   [03/10] 사랑과 섬김의 삶 (요 13:34, 막 10:45, 엡 5:1,2 ) 분당 지구촌교회


저는 죄와 허물밖에 없는 죄인 중의 괴수인데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너무나 크신 은혜를 베풀어주셨고 아직까지 저를 버리시지 않고 심부름꾼으로 사용하시는 것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모릅니다. 저는 11살 때부터 주일성수와 예배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사랑하는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과 사랑하는 어머니를 떠나 38선을 혼자서 뛰어넘어 남한으로 와서 평생 고아와 나그네로 슬픔과 아픔을 몸에 지니고 살았는데 하나님께서 저에게 너무너 크신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저는 강변교회에서 은퇴한 다음 지난 11년 2개월 동안 주일마다 전국의 작은 교회들을 주로 방문하면서 설교를 하고 있는 데 오늘은 아주 크고 귀중한 교회인 수지 지구촌교회에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사랑과 섬김의 삶” 이라는 제목으로 8시와 10시와 12시 예배에서 3번 설교를 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저를 불러주신 진재혁 목사님과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2015년 8월 16일 주일 분당 지구촌교회에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한국교회가 힘써야 할 것들” 이란 제목으로 12시와 2시 예배에서 두 번 설교를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사랑과 섬김의 삶”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시작합니다. 부족한 제가 한 평생을 살아오면서 깨닫고 또 깨달은 것은 이 세상에서 가중 귀중하고 아름답고 축복된 삶은 “사랑과 섬김의 삶” 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 성경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 그리고 새 계명을 주시면서 “서로 사랑하라” 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그리고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이 섬기시려고 오셨고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시려고 오셨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영국의 존 스토트 박사님은 예수님의 삶을 가장 정확하고 올바로 묘사하는 말씀이 막 10:45 이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하늘 영광을 버시리고 세상에 오셔서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사셨고 우리 죄인들도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살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도 귀중하고 천사의 말도 귀중하고 예언의 능도 귀중하고 구제도 귀중하지만 사랑이 없는 믿음과 천사의 말과 예언의 능과 구제는 아무 소용이 없다고 단언을 했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13). 그리고 “섬김”의 귀중성을 강조했습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 12:11).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롬 15:25).


오늘 아침 우리 모두의 어버이와 스승이 되시는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의 “사랑과 섬김의 삶”을 기리는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우선 부족한 제가 손양원 목사님을 사랑하고 존경하게 된 이야기 하나를 합니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일 때 여름 어느 날 남대문 네 거리에 있는 기독교 서점에서 “사랑의 원자탄” 이란 책을 사서 들고 제가 새벽기도 후 날마다 올라가서 기도하곤 하던 남산 어느 숲 속으로 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랑의 원자탄” 책을 읽고 또 읽으면서 울고 또 운 일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런 사람도 있을 수가 있는가? 나병에 걸려있는 아이들이 손양원 목사님과 함께 소풍을 가서 점심을 먹는데 손 목사님이 아이들의 점심을 좀 나누어먹자고 했지만 아이들은 자기들의 나병이 손 목사님에게 전염될 까봐 자기들의 점심을 자기들끼리만 먹고 손양원 목사님에게는 주려고 하지 않았는데 손양원 목사님이 억지로 아이들의 점심을 빼앗아 먹었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저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면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으로 쏘아서 죽인 원수와 같은 사람을 자기의 양 아들로 삼았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라고 생각하면서 저는 충격과 감동의 눈물을 흘리면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 후부터 손양원 목사님은 제가 제일 존경하고 사랑하고 닮고 싶은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삶을 순수하게 사신 대표적인 스승이신데 무엇보다 “사랑과 섬김”을 온 몸으로 실천하시면서 사신 “사랑과 섬김”의 스승이셨습니다. 그리고 순교 신앙을 지니고 온갖 고난과 핍박을 당하시면서 사시다가 “순교의 죽음”을 죽으셨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사랑과 섬김의 삶”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시작합니다.


첫째로, 손양원 목사님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한경직 목사님과 유관순 열사가 태어난 해인 1902년 6월 3일 경남 함안군 칠원면에서 손종일씨와 김은수씨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손양원은 귀중한 믿음의 유산을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물려 받았습니다. 손양원은 동방요배 거부는 물론 주일성수를 위해 주일날 학교에 가는 것을 거부하므로 학교에서 벌을 받곤 했습니다. 그는 동방요배 거부로 교장으로부터 뺨을 맞고 코피를 흘리면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버지는 이렇게 기도하면서 아들을 격려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미천한 아들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큰 일에 사용하시기 위해 더 큰 망치로 두드려 주시옵소서." 그는 어릴 때부터 십일조 생활을 철저하게 했습니다. 손양원은 24살 때인 1926년 3월에는 진주에 있는 경남 성경학교에 입학했는데 3년 동안 경남 성경학교에 다니면서 주기철 목사님에게서 순교신앙을 배웠습니다. 손양원 전도사는 1935년 4월 33세에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여 1939년 7월에 졸업했습니다. 졸업하자마자 경상도 사람으로서 전라도 여수에 있는 나환자들 교회인 애양원 교회에 전도사로 부임했습니다. 손양원 전도사는 1939년 7월부터 사랑과 정성을 모두 쏟으며 애양원 교회에서 나환자들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1년 2개월후 일본 경찰은 1940년 9월 25일 수요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손양원 전도사를 연행해 갔습니다. 신사참배를 반대하며 거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손양원 전도사는 8. 15 해방까지 5년 간의 옥고를 치르며 갖은 고문을 다 당했으나 주님을 향한 일편 단심의 신앙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어 이틀 뒤인 17일 청주교도소에서 손양원 전도사가 석방되어 애양원 교회로 돌아왔을 때 1 천 여명의 나병환자들이 뛰어나와 손양원 전도사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며 환영했습니다. 그는 남은 생애를 애양원의 나환자들과 동고동락하며 그들에게 모든 사랑과 정성을 쏟아 부었습니다. 1946년 3월에 경남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 후로부터 4년 후인 1950년 9월 13일 손양원 목사님은 공산군들에게 체포되어 2주 동안 온갖 고초를 당하다가 9월 28일 밤 11시쯤 여수 미평 과수원에서 총살을 당하므로 48세에 순교자의 반열에 들어가셨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죽도록 충성하며 믿음을 지킨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둘째로, 손양원 목사님은 “소망”의 사람이었습니다. 순수한 믿음은 천국 소망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삶은 천국과 종말 신앙에 의해 지배된 소망의 삶이었습니다. 그의 가슴과 의지와 시선은 세상이나 세상의 안일에 매이지 않았고 오직 천국과 내세에 붙잡혀 있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이 세상의 재물이나 평안이나 명예에는 티끌만큼의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난을 애처로 고난을 선생으로” 그리고 “죽음을 소원으로” 삼으며 천국을 바라보면서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옥중 생활을 하면서 힘들고 지칠 때마다 손수 지은 “주님 고대가”를 불렀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얼마나 간절히 재림의 소망 가운데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내 주님 오시기만 고대합니다. 가실 때 다시 오마 하신 예수님,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고적하고 쓸쓸한 빈 들판에서, 희미한 등불만 밝히어 놓고 오실 줄만 고대하고 기다리오니,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먼 하늘 이상한 구름만 떠도, 행여나 내 주님 오시는가 해 주님 계신 그 곳에 가고 싶어요.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천 년을 하루같이 기다린 주님, 내 영혼 당하는 것 볼 수 없어서 이 시간도 기다리고 계신 내 주님, 오 주여 이 시간에 오시 옵소서.”


셋째로, 손양원 목사님은 “사랑과 섬김”의 사람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믿음과 소망은 “사랑과 섬김”으로 나타났습니다. 그의 믿음과 소망은 나환자 “사랑과 섬김”으로 그리고 원수 “사랑과 섬김”으로 나타났습니다. 손양원 전도사는 1945년 8월 해방 후 다시 애양원 교회로 돌아와 그의 남은 생애를 애양원 나환자들과 동고동락하며 그들에게 모든 정성과 사랑을 쏟아 부으면서 그들을 섬겼습니다. 한 번은 박옥선이란 여 환자가 발 밑에 난 종기 때문에 다리를 절단해야 할 만큼 심각하였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입으로 악취 나는 피고름을 빨아 주었습니다. 나병의 환부에는 사람의 침이 좋은 약이 된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나환자들에게 모든 사랑과 섬김의 정성을 다 쏟아 부은 한국의 프랜시스였습니다. 그의 딸 손동희 양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아버지는 이들을 너무나 사랑했다. 아버지는 분명 우리 남매의 아버지인데 내가 볼 땐 나환자들의 아버지인 것만 같아 보였다. 아버지는 병든 육신일지언정 저 바깥의 표리부동한 자들보다 몇 배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들이라 하며 그들의 정신적 상처를 아물게 하는 데 최선을 다하였다. 다음과 같은 아버지의 노래도 그런 심정의 한 표현이다.”


“주여 애양원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애양원을 참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을 주시옵소서. 주께서 이들을 사랑하심 같은 사랑을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나는 이들을 사랑하되 나의 부모와 형제와 처자보다도 더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차라리 내 몸이 저들과 같이 추한 지경에 빠질지라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만약 저들이 나를 싫어하여 나를 배반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저들을 참으로 사랑하여 종말까지 싫어 버리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내가 이들을 사랑한다 하오나 인위적 사랑, 인간적 사랑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람을 위하여 사랑하는 사랑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고 주를 위하여 이들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보다는 더 사랑치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내가 또한 세상의 무슨 명예심으로 사랑하거나 말세의 무슨 상급을 위하여 사랑하는 욕망적 사랑도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만 그리스도의 사랑의 내용에서 되는 사랑으로서 이 불쌍한 영육들만을 위한 단순한 사랑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나의 남은 생이 몇 해 일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몸과 맘 주께 맡긴 그대로 이 애양원을 위하여 충심으로 사랑케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애양원 나환자들에 대한 손양원 목사님의 “사랑과 섬김”은 노래에 그친 것이 아니라 그의 삶에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딸 손동희 양은 나환자들에 대한 아버지의 순수하고 뜨거운 사랑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습니다. “아버지는 하루의 거의 대부분을 나환자들과 함께 보냈다. 틈만 나면 집집마다 심방을 다니는 것이 일이었다. 당연히 가족들에게는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 우리 형제들은 늘 가슴 한 구석이 빈 듯한 허전함을 느끼며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불평을 늘어 놓거나 원망한 적이 없었다. 보통의 나환자들보다 훨씬 병이 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14호실이다. 아버지는 14호실 환자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더욱 많이 쏟았다. 환자들이 거부하는데도 그들의 손을 잡고 식사를 같이 하곤 했다. 아버지는 그들의 피고름 나는 손을 거침없이 부여잡고 장시간 대화를 나누곤 했다. 나병의 환부에는 사람의 침이 좋은 약이 된다며 입으로 피고름을 빨아내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너무 자주 스스럼없이 나환자들과 어울리는 아버지였기에 결국 나병에 걸렸다는 헛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극구 사양하는 아버지를 설득하여 피 검사를 했다. 그러나 결과는 보통 사람보다 오히려 피가 더 맑다는 것이다. 검사 결과를 전해 들은 아버지는 그저 담담한 어조로, ‘그래? 그러면 이번에도 틀린 건가?’ 할 뿐이었다. 자신의 나병 감염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은 아버지였다.”


그의 사랑의 극치는 1948년 10월 19일 여수 순천 반란 사건 때 나타나 보였습니다. 사랑하던 믿음의 두 아들 동인군과 동신군이 공산 폭도들에게 붙잡혀 10월 21일 순천 경찰서 뒷 마당에서 총살을 당했습니다. 예수를 부인하라고 했지만 오히려 예수를 증거하다가 총살을 당해 순교 당했습니다. 10월 25일 반란군에 의해 두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손양원 목사님 내외는 엄청난 충격에 쌓여 비통해 했습니다. 반란 사건이 진압되고 두 아들을 죽인 안재선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은 손양원 목사님은 밤을 새워 통곡하며 기도하고 교회를 나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 내 아들들은 죽어서 천국에 갔지만, 안재선은 죽으면 지옥 갈텐데,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 결국 손양원 목사님의 마음에는 커다란 사랑의 폭풍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를 살려야 한다. 그를 용서해야 한다. 그를 사랑해야 한다.” 아들을 잃은 비통함이 그렇게 컸었는데도 불구하고 손양원 목사님은 두 아들을 총살한 그 좌익 학생을 용서하고 사랑하기로 결심한 것이었습니다. 두 아들을 죽인 안재선이 체포되어 총살을 당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손양원 목사님은 계엄 사령관에게 딸을 보내어 그를 사면할 것을 간청했습니다. 그를 양자로 삼아 교육시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안 가겠다고 반항하며 대드는 딸 동희 양을 설득하여 용서의 메시지를 전달하게 했습니다. 딸은 몇 번이나 반항하며 아버지에게 소리를 지르며 대들었습니다. 혹 용서는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아들을 삼는다는 것은 무엇이냐고 악을 쓰며 달려들었습니다. “동희야, 용서만 가지고는 안 된다. 원수를 사랑하라 했으니 사랑하기 위해 아들을 삼으려는 것이다.” 딸은 자기 의지에 반해 아버지의 하나님 절대 신앙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결국 딸은 아버지의 용서와 사랑의 메시지를 국군 심문자에게 그대로 전하므로 처형되기 10여분 전에 원수를 살려냈습니다. 동희양은 취조 군인에게 달려가서 이렇게 아버지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아버지가 두 오빠를 죽인 자를 잡았거든 매 한 대도 때리지 말고, 죽이지도 말라 하셨어요. 그를 구해 아들 삼겠다고요. 성경말씀에 원수를 사랑하라 했기 때문이래요.” 그는 숨도 쉬지 않고 단숨에 말을 토해 놓고는 책상에 엎드려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동희양의 말이 끝나고, 동희양이 울음을 터뜨리자 방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충격을 받은 듯했습니다. 취조를 하던 군인은 입에 물고 있던 담배가 떨어진 줄도 모르고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으며 “위대하시다” “위대하시다” 라고 감탄의 소리를 토해 냈습니다. 안재선까지도 고개를 숙인 채 흐느껴 울고 있었습니다. 손동희 권사는 그 때를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이 광경이야말로 오늘까지 내 눈 앞에 잊혀지지 않는 역사적인 장면의 한 토막이었다.” 사랑의 원자탄이 떨어진 장면이었습니다. 안재선은 살아났습니다. 안재선은 석방이 되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그를 자기의 양 아들로 삼아 부산 고려 성경 고등학교에 보냈습니다. 안재선은 완전히 변화된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결혼하여 4남매를 두었는데 장남은 나중에 목사가 되었습니다. 저는 안재선이 손양원 목사님에게 써서 보낸 “아버님전 상서” 라는 편지를 읽으면서 가슴에 깊은 감동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아버님전 상서 천부님의 은혜 가운데 아버님 어머님 기체 만강하심을 비옵니다. 소자는 예수님의 피 공로를 믿음으로 구원 받음을 감사합니다. 이 죄인은 아버님의 사랑을 받아 하나님 앞에서 죄값을 회개하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믿음으로 중생하였습니다. 중생하였으나 소자는 때때로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죄인을 버리지 않으시고 사랑하여 주심을 진실로 감사하며 죄를 회개합니다. 중생하고 보니 하나님께 몸 받쳐야 되겠습니다. 나의 있는 것 모든 것 다 받쳐야 되겠습니다. 우리 신자는 다 순교할 의무가 당연히 있다고 나는 주장합니다…. 우리가 죽도록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아버님 어머님의 기도의 덕인 줄로 믿습니다. 아버님 모든 것 용서해 주시옵소서. 아버님의 사랑이 하나님이 주신 사랑이니 사도 바울의 뒷길을 따라가고자 한걸음 두 걸음 걷고 있습니다. 두 형님의 뒤를 따를 것을 하나님 앞에 맹세하나이다. 1949년 9월 15일 편지 받아본 즉시 저녁 안재선 상서.” 손양원 목사님의 나환자 사랑은 절대적이었습니다.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났을 때 누군가가 손양원 목사님과 가족이 피난을 가도록 여수 앞 바다에 배 한 척을 마련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어느 교회에 부흥회를 인도하러 가셨는데 가족들이 짐들을 배에 실고 목사님이 돌아오기를 기도리고 있었습니다. 부흥회를 마치고 돌아온 손양원 목사님은 자기는 피난을 가지 않고 나환자들과 함께 있겠다고 말을 했습니다. 결국 가족들도 모두 피난을 가지 않고 애양원에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달 후인 1950년 9월 12일 손양원 목사님께서는 여수 미평에서 총살을 당하므로 48세에 순교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 합니다. “사랑과 섬김의 삶”보다 더 귀중하고 아름답고 축복된 삶은 이 세상과 우주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한국 땅에 손양원 목사님과 같이 귀중한 “사랑과 섬김”의 스승님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손양원 목사님과 정양순 사모님께도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 한국교회 안에는 우리 신앙의 선배님들이 지녔던 순수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보다는 지나친 의인 의식을 가지고 소위 진리의 깃발을 휘두르며 모두를 비판하고 정죄하는 증오와 분노의 모습이 팽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 모두에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을 베푸셔서 우리들이 모두 부족하고 부족하지만 순수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부스러기를 지니고 모두를 끌어안고 울면서 사랑으로 녹일 수 있는 “사랑과 섬김”의 도구들과 제물들로 만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기적이고 정욕적이고 비판적이고 배타적이고 위선적이고 독선적인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이지만 “사랑과 섬김”의 부스러기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하면서 아프리카로 방글라데시로 아프가니스탄으로 파키스탄으로 중국의 연변 지역으로 때로는 북한으로 달려 다니면서 불쌍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려고 애를 쓰곤 했습니다. 오늘의 한국과 세계에 필요한 것은 유창한 설교보다는 심오한 신학강의 보다는 놀라운 이적을 나타내 보이는 것보다는 순수한 “사랑과 섬김의 삶”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합니다. “설교는 은이고 신학은 동이로 이적은 철이고 사랑은 금이다.” 수년 전에 제가 “사랑하고 싶어라” 라는 제목의 글을 쓴 일이 있는데 그 글을 인용함으로 오늘 말씀을 마무리 합니다.
『사랑하고 싶어라. 나는 요사이 주님을 생각하면 가슴에 눈물이 흐른다. 한 평생 나를 향하신 주님의 생각과 사랑이 어찌 그리 크고 어찌 그리 많은지! 실로 모래알보다 더 많은 주님의 긍휼과 용서와 사랑이 나의 가슴에 눈물을 자아낸다. 사랑하고 싶어라. 주님을 사랑하고 싶어라. 나의 맘 나의 몸 나의 정성 다 쏟아 주님을 사랑하고 싶어라. 나는 요사이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에 눈물이 흐른다. 어린이들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너무너무 귀엽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성도들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너무너무 예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 세상 곳곳에 흩어져 사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날 때도 비슷한 느낌을 가진다. 저들의 얼굴과 마음과 영혼 속에 창조주 하나님께서 심어놓으신 고귀한 인성과 신성의 흔적을 보기 때문이다. 저들을 모두 사랑하고 싶어라. 모슬렘도 공산주의자도 상관이 없다. 저들은 모슬렘이나 공산주의 라는 불행한 유산에 쌓여있는 가련한 영혼들일 따름이다. 사랑하고 싶어라.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어라. 나의 맘 나의 몸 나의 정성 다 쏟아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어라.(2007년 1월 3일 아침 교회로 운전하며 오는 차 속에서 쓴 글)』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다 네 몸을 아끼고 사랑하듯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라”(찬송가 369,218)을 함께 부르시겠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등록일
906  [03/17] 주님과 동행하는 삶 (시 23-1-6, 139:1-6,17,18 ) -광명시 늘 푸른 교회      21TV 2019/03/18
 [03/10] 사랑과 섬김의 삶 (요 13:34, 막 10:45, 엡 5:1,2 ) 분당 지구촌교회      21TV 2019/03/11
904  [03/03] 내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 (고전 15:10) - 면목동 참 빛 선교교회      21TV 2019/03/04
903  [02/17] Life pleasing God (2 Cor 5:9, Eph 5:10, Rom 12:1) - NamYangJu Ammi Mission Church      21TV 2019/02/18
902  [02/10]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며 (시133:1-3, 엡2:13-16 ) - 좋은 소식교회      21TV 2019/02/11
901  [02/03] 교회는 예수님께서 세우신 예수님의 집 (마 16:18, 엡 1:22,23 ) - 수원 동문교회      21TV 2019/02/07
900  [01/27]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 (고전 4:1,2) - 전주 미래교회      21TV 2019/01/28
899  [01/20]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 (출31:12-17, 마12:8, 행20:7) - 목동 지구촌 교회(저녁 7시)      21TV 2019/01/23
898  [01/20] 생활 전도와 교회 부흥 (막 1:38,39, 10:45, 요 13:34) - 청주 양성 교회      21TV 2019/01/21
897  [01/13] 인생 칠도의 삶 (히 11:13, 벧전 2:11 ) - 보은 창성교회      21TV 2019/01/14

1 [2][3][4][5][6][7][8][9][10]..[91] [다음 10 개]

 
 
http://21tv.org/bbs/zboard.php?id=kangbyun
 
  21TV 유투브채널 오픈하다....
플로리스트 고급과정 회원...
영상 서비스가 업그레이드 ...
가을을 여는 성전꽃꽂이 세...
FFC 송년모임 및 성탄장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