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tv



 

   
 

   [01/06] 새해의 소원: 하나님을 기쁘시게 (고후5:9, 엡5:10, 롬12:1 ) - 영등포 광야교회

제가 강변교회에서 은퇴한 다음 지난 11년동안 주일마다 전국의 작은 교회들을 주로 방문하면서 설교를 하고 있고 이따금씩 큰 교회들도 방문하면서 설교를 하고 있는데 광야교회와 중국동포교회도 매년에 한두 번씩 방문하고 있습니다. 제가 직년 1월 7일 새해 첫 주일 광야교회에 와서 “감사와 소망의 신앙생활”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작년 9월 16일 주일 광야교회에 와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자연 사랑”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오늘 2019년 1월 6일 새해 첫 주일 여기 다시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새해 첫 예배를 드리면서 설교를 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임명희 목사님과 정경화 사모님과 성도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무슨 설교를 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임명희 목사님이 오늘 “새해의 소원”에 대한 설교를 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새해의 소원: 하나님을 기쁘시게”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은 기쁭에 대한 고백과 권면을 했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고후 5:9).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엡 5:10). “그런즉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사울은 본래는 자기 자신의 소원과 욕망을 채우면서 이기적으로 배타적으로 부정적으로 살았는데 “사울아 사울아” 라고 자기를 부르시는 십자가와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다음부터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자기의 삶을 모두 쏟아바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하나님을 기쁘시게” 라는 제목에 초점을 맞추면서 "새해의 소원"에 대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주님께 기쁘시게 할 것인 무엇인지를 시험하면서 살아가라고 권면했습니다.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엡 5:10).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까? 세 가지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로, 우리들의 몸을 하나님께 제사로 드리는 “헌신”과 “예배”의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일은 우리들의 몸과 마음과 정성과 눈물과 물질과 소유를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과 “예배” 라고 생각합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렸을 때 그리고 아이 이삭이 자기 몸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너무너무 기뻐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 그리고 아브라함과 이삭의 삶을 크게 축복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이삭은 오실 메시야의 그림자가 되었습니다. 모리아산은 후에 골고다 언덕이 되었습니다.

한나가 아이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렸을 때 그리고 아이 사무엘이 자기를 하나님께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너무너무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무엘아! 사무엘아! 사무엘아!” 라고 부르시면서 아이 사무엘의 삶을 크게 축복하셨습니다. 사무엘은 기도의 사람이 되었고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되었습니다. 다윗이 밤마다 눈물로 침상을 적시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상하고 통회하는 눈물의 제사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너무너무 기뻐하시면서 다윗에게 분에 넘치는 은혜와 축복을 쏟아 부어주셨습니다. 후에 예수님을 부를 때 “다윗의 자손” 이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

어린 아이 하나가 예수님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사랑의 예물로 드렸을 때 예수님께서는 너무너무 기뻐하시면서 오병 이어를 손에 쥐시고 축하하신 후 오천여 명을 배부르게 먹이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런 귀중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요 6:51). 예수님께서는 죄인인 한 여자가 눈물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쏟아 부으면서 눈물과 향유의 제사를 드렸을 때 예수님께서는 너무너무 기뻐하시면서 그 여자와 자신을 비웃는 시몬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내가 네 집에 들어오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눅 7:44-47). 예수님께서는 한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동전)을 연보 궤에 넣는 것을 보시고 너무 귀중하게 보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막 12:43,44).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일은 우리들의 몸과 마음과 정성과 눈물과 물질과 소유를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과 “예배” 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하나님께 바로 예배 드리는 삶을 살기 위해서 11살 때 북한 평양을 떠나 부모와 동생들을 북에 두고 혼자서 38선을 넘어서 남쪽으로 왔는데 그래서 저의 삶을 하나님께 드렸는데 하나님께서는 저의 삶을 너무 많이 축복해 주셨습니다. 몸과 마음과 정성과 눈물과 물질과 소유를 쏟아바치면서 예배 드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청교도들의 삶의 첫째 원리였고 한국교회 선배님들의 삶의 첫째 원리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주일 하루를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면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주일성수와 주일 예배가 점점 사람들의 편리 위주로 변질되어가는 모습을 바라볼 때 서글픈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우리들의 몸과 마음과 정성과 눈물과 물질과 소유를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는 “헌신”과 “예배”에 최선을 다하고 주일 하루를 거룩하게 지키는 “주일성수”에 최선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이웃에게 우리들의 사랑의 손길을 펴는 “긍휼”과 “사랑”과 “도움”의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하면서 우리들의 몸과 마음과 정성과 눈물과 물질과 소유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예배라고 하지만 또한 이웃에게 사랑의 손길을 베푸는 “긍휼”과 “사랑”과 “도움”도 예배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와 금식은 고아와 과부와 같은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펴는 “긍휼”과 “사랑”과 “도움” 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사 1:15-17).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사 58:6,7). 주린 자에게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요 금식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자기는 화려한 제사보다는 “긍휼”과 “사랑”을 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마 9:13).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예수님께서는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 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주고 병든 자를 돌아보는 것이 사람들에게 행한 인도주의적인 선행에 그치지 않고 예수님 자신에게 행한 신본주의적인 예배와 같은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35,36,40). 그리고 마지막 날에 그와 같은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축복의 말씀을 하실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마 25:34).

결국 예루살렘 교회는 구제하는 일에 힘을 썼고 안디옥 교회도 구제하는 일에 힘을 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과부들에게 겉 옷과 속옷을 만들어주면서 사랑의 손길을 펴는 도르가를 보시고 너무 기뻐하시면서 그에게 사도 베드로를 보내시어 욥바 복음화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이 구제하는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를 보시고 너무 기뻐하시면서 그에게 천사를 보내시고 사도 베드로를 보내시어 가이사랴 복음화를 이루셨습니다. 루디아와 빌립보교회가 이웃에게 착한 일을 하였을 뿐 아니라 선교사 사도 바울에게 사랑의 선교 헌금을 보냈는데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사도 바울이 지적을 했습니다.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빌 4:18). 우리가 구제와 선교에 힘쓰고 구제 헌금과 선교 헌금을 드릴 때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라는 말씀을 깊이 기억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은 우리들의 몸과 마음과 정성과 눈물과 물질과 소유를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과 “예배” 이지만 동시에 도움이 필요한 어려움에 처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펴는 “긍휼”과 “사랑”과 “도움”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헌신”과 “예배”와 같은 귀중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너무너무 부족하고 이기적인 사람이지만 언제부터인가 하나님께서 저의 마음에 “긍휼”과 “사랑”과 “도움”의 마음을 조금씩, 조금씩 부어주셔서 한국복음주의협의회를 통해서 남북한을 비롯한 세계 곳곳의 재난을 당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에게 “긍휼”과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펼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지금도 북한의 결핵환자들을 돕는 일을 계속하고 있고 연변지역의 조선족 어린이들 150여명에게 매달 5만원씩 사랑의 후원금을 보내고 있는데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우리들의 몸과 마음과 정성과 눈물과 소유와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과 “예배”에 최선을 다하여야 하고 동시에 우리들의 도움이 필요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에게 “긍휼”과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기 위해서 “수고”와 “고난”과 “희생”의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데반 집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십자가 구원의 복음을 유대인들에게 전파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증거하다가 돌에 맞아서 죽는 “수고”와 “고난”과 “희생”을 당하게 되었을 때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는 너무너무 기뻐하시면서 총 동원하셨습니다.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행 7:55,56). 성령께서 스데반 집사에게 충만하게 임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의 영광이 하늘에 나타났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일어서서 스데반을 내려다 보시고 계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기 위해서, 십자가 구원의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파하기 위해서, 돌에 맞고 감옥에 갇히고 파선의 위험을 당하는 온갖 “수고”와 “고난”과 “희생”을 당하면서 달려갔을 때도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는 너무너무 기뻐하시면서 사도 바울과 함께 하셨습니다. 루스드라에서는 돌에 맞아서 죽을뻔한 일을 당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들을 초인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밖에 끌어 내치니라”(행 14:19). 그런데 바로 그와 같은 때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는 너무너무 기뻐하시면서 바울과 함께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서 “고난”의 현장에서 자기와 함께 하셨던 일을 간증하며 보고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고하고”(행 14:27). 예수님께서는 고난 당하는 사도 바울에게 자주 나타나서 사도 바울을 격려하시곤 했습니다.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행 23:11).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렇게 고백하곤 했습니다. “나의 속한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행 27:23-25). 성령께서는 사도 바울의 가는 길을 인도하셨습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행 16:6).

결국 사도 바울은 자기의 “수고”와 “고난”과 “희생”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알고 “수고”와 “고난”과 “희생”을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그리고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서 자기의 피를 쏟아도 기뻐하고 또 기뻐한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찌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빌 2:17,18).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고후12:10). 그리고 “수고”와 “고난”과 “희생”의 리스트를 감사한 마음으로 길게 나열했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11:23-27).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해서 당하는 수고와 고난을 기뻐한다고 말하면서 수고를 넘치도록 자기 몸에 채운다고 고백했습니다.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 사도 바울은 “수고”와 “고난”과 “희생”을 기뻐하는 사람이 되었고 “수고”와 “고난”과 “희생”을 예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의 달려 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우리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그리고 이웃의 유익을 위해서 “수고”와 “고난”과 “희생”의 길을 기쁨으로 걸어가도록 최선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두 사람이 있는데 두 사람은 모두 “수고”와 “고난”과 “희생”을 기쁨으로 받아드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그의 마지막 설교가 된 1939년 2월 첫 주일 산정현교회에서 한 “다섯 종목의 나의 기도” 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주님을 위한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 위해 “수고”와 “고난”과 “희생”을 향해서 달려가는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을 위하여 열 번 죽고 백 번 죽어도 좋지만 주님을 버리고 백 년 살고 천 년 살면 무엇합니까? 오 주여! 이 목숨을 아끼어 주님께 욕되지 않게 하시옵소서. 이 몸이 부서져 가루가 된다 하여도 주님의 계명을 지키게 하옵소서… 주님 나 위하여 죽으셨거늘 내 어찌 죽음을 무서워하겠습니까? 다만 일사 각오가 있을 뿐이올시다… 의에 살고 의에 죽도록 하여 주옵소서… 못합니다.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다른 신에게 정절을 깨뜨리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신사에 절하지 못합니다… 아! 내 주여! 예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는구나. 평양아! 평양아! 예의 동방의 내 예루살렘아! 영광이 네게서 떠났도다. 모란봉아 통곡하라. 대동강아 천백 세에 흘러가며 나와 함께 울자! 드리리다. 드리리다. 이 목숨이나마 주님께 드리리다. 칼날이 나를 기다리느냐? 나는 저 칼날을 향하여 나아가리라…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옥중에서나 사형장에서나 내 목숨 끊어질 때 내 영혼을 부탁하나이다. 아멘.” 주기철 목사님의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수고”와 “고난”과 “희생”과 “죽음”의 삶과 죽음이야말로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한 제사였다고 생각합니다.

손양원 목사님도 주님을 위해서 그리고 불쌍한 나환자들을 위해서 “수고”와 “고난”과 “희생”의 길을 기쁨으로 걸어가신 분이었습니다. 주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나환자들을 향한 사랑 때문에, “가난”을 애처로 삼고 “고난”을 스승으로 삼고 “죽음”을 소원으로 삼으면서 “수고”와 “고난”과 “희생”과 “죽음”의 길을 기쁨으로 걸어가신 분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애양원에서 6년 동안의 나환자 섬김의 “수고”와 “고난”을 그만 둘 수도 있었고 순교의 “죽음”을 피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손양원 목사님은 피할 수 있는 길을 스스로 거부하고 “수고”와 “고난”과 “희생”과 “죽음”의 길을 기쁨으로 달려가셨습니다.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자 선교사들이 1950년 7월경 손양원 목사님과 가족이 피난을 갈 수 있는 배 한 척을 마련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짐을 다 배에 실었습니다. 부흥 집회에서 돌아온 손양원 목사님은 그 사실을 알고 자기는 피난을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자기는 마지막까지 애양원의 나환자들과 함께 남아 있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가족들은 자기들도 다 손양원 목사님과 함께 애양원에 남아 있겠다고 했습니다. 할 수 없이 짐을 다시 내려놓았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마지막까지 나환자들을 사랑하며 그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들을 너무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피난도 안전도 평안도 다 포기하고 “수고”와 “고난”과 “희생”과 “죽음”의 길을 기쁨으로 걸어갔습니다. 여수 손양원 목사 순교기념관에 가면 지금도 여수 앞 바닷가에 떠 있는 배 한 척의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저는 그 사진을 바라보면서 가슴에 뜨거운 감동의 눈물을 흘린 일이 있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나환자들을 사랑하면서 “수고”와 “고난”과 “희생”과 “죽음”의 길을 스스로 걸어가신 “사랑”의 사도요 “사랑”의 성자였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두 달 후인 1950년 9월 13일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2 주간 동안 갖은 고초를 당하다가 9월 28일 밤 11시쯤 미평 과수원에서 총살당하여 48세의 젊은 나이에 순교를 당하셨습니다. 자기를 총살한 사람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사랑의 원자탄” 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한국교회의 그 어느 목사님이나 성도들보다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우리들의 선배님들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그리고 이웃의 유익을 위해서 “수고”와 “고난”과 “희생”과 “죽음”의 길을 기쁨으로 걸어가도록 최선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제 한 말씀을 더 드립니다. 우리 부족한 죄인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때 우리들은 놀라운 “기쁨”을 누리고 또 누리게 된 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그리고 교회들을 섬기는데 자기의 삶을 쏟아바치게 되었을 때 자기에게 놀라운 “기쁨”이 채워지고 또 채워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빌 4:10).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찌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빌 2:17).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9,10).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사도 바울은 로마 옥중에서 온갖 고난과 고통을 당하면서 쓴 빌립보서 낙 장에서 “기쁨” 이라는 말을 17번이나 사용했습니다. 사도 바울이야말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누구보다도 기쁘시게 한 사람이었는데 사도 바울만큼 극심한 고난과 고통 중에서도 기뻐하고 또 기뻐한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빌 4:10).

사실 “기쁨”은 우리들의 삶에 있어서 가장 귀중한 요소입니다. 부귀영화보다 성공보다 “기쁨”이 더욱더 귀중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여러 곳에서 기쁨을 예찬하고 고백하며 간구했습니다.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1). 다윗의 진솔한 고백이었습니다.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수고함으로 낙[기쁨]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줄을 또한 알았도다”(전 3:12,13). 솔로몬의 진솔한 마지막 고백이었습니다.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시 90:14). 모세의 진솔한 마지막 기도였습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1). 예수님의 마지막 축복의 말씀들 중 한 말씀이었습니다.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빌 4:10). 로마 옥에 갇혔던 사도 바울의 진솔한 고백이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살전 5:16). 사도 바울의 진지한 권면과 명령의 말씀이었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마 25:21). 역사의 종말에 예수님께서 하실 축복의 말씀입니다. 저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인데 한 평생 하나님의 은혜로 기쁨과 즐거움을 지니고 살아왔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진정한 기쁨이 어디에서 옵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때 놀라운 기쁨이 옵니다. 주님 앞에 있을 때 순수한 기쁨이 오고, 주님 안에 있을 때 진정한 기쁨이 옵니다. 주님을 섬길 때 그리고 주님께서 부탁하신 주님의 양들을 돌아보며 섬길 때 진정한 기쁨이 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핍박과 곤란을 당할 때 진정한 기쁨이 옵니다. 아멘! 아멘! 아멘!




이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들이 “기쁨”을 누리면서 사는 것은 가장 축복된 삶이고 가장 행복한 삶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리고 누군가를 기쁘게 하면서 살 수 있다면 그래서 기쁨을 누리면서 살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귀중하고 더 아름다운 삶은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삶의 목적을 두 가지로 요약을 했는데 하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대신 많은 사람의 유익과 모든 사람의 기쁨을 구하며 사는 것이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고후 5:9). “그런즉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고전 10:31,33).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온갖 고난과 핍박 중에서도 기뻐하고 또 기뻐하고 또 기뻐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세 가지 종류의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라는 말씀 드렸습니다. 첫째로, 우리들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로 드리는 “헌신”과 “예배”의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우리들의 몸과 마음과 정성과 눈물과 물질과 소유를 모두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과 “예배”에 최선을 다하고 주일 하루를 거룩하게 지키는 “주일성수”에 최선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이웃에게 우리들의 사랑의 손길을 펴는 “긍휼”과 “사랑”과 "도움"의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우리들의 도움이 필요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에게 “긍휼”과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는 “수고”와 “고난”과 “희생”의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그리고 이웃의 유익을 위해서 “수고”와 “고난”과 “희생”의 길을 기쁨으로 걸어가도록 최선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2019년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우리들 모두에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부족한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귀중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게 하시고 이웃을 기쁘게 하는 귀중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게 하시고 그리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기 위해서 어떤 수고와 고난을 당해도 두려워허지 않고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축원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나그네와 행인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임명희 목사님과 정경화 사모님과 광야교회 성도 여러분들 모두에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부족한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귀중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게 하시고 이웃을 기쁘게 하는 귀중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게 하시고 그리고 우리들이 어떤 어려운형편에 처해도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축원합니다. 찬송가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364) 을 다 같이 부르겠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등록일
899  [01/20]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 (출31:12-17, 마12:8, 행20:7) - 목동 지구촌 교회(저녁 7시)      21TV 2019/01/23
898  [01/20] 생활 전도와 교회 부흥 (막 1:38,39, 10:45, 요 13:34) - 청주 양성 교회      21TV 2019/01/21
897  [01/13] 인생 칠도의 삶 (히 11:13, 벧전 2:11 ) - 보은 창성교회      21TV 2019/01/14
 [01/06] 새해의 소원: 하나님을 기쁘시게 (고후5:9, 엡5:10, 롬12:1 ) - 영등포 광야교회      21TV 2019/01/08
895  [12/30] 하늘을 바라보며 천국 소망을 지니고 (요14:1, 골3:1,2 , 벧후3:13 ) - 창동 문화교회      21TV 2018/12/31
894  [12/23] 북한선교의 비결은 화평통의 신앙 (고후 5:18,19, 엡 2:13-16, 엡 1:10) - 대구 새 비전 교회(오후 2시)      21TV 2018/12/24
893  [12/23] 성탄의 기쁨과 슬픔과 사랑 이야기 (마2:1,2,11) - 대구 새 비전 교회      21TV 2018/12/24
892  [12/16] 주님 사랑과 영혼 사랑 (마 22:37-40, 요 13:34, 요 21:15 ) - 광주 호산나교회      21TV 2018/12/17
891  [12/09] 고난과 슬픔과 아픔의 유익과 축복 (시 119:71, 전 7:3, 마 5:4,11,12, 고후 12:8-10 ) - 김천 월명교회      21TV 2018/12/10
890  [12/09] 올바른 삶과 올바른 죽음 (롬 14:8, 빌 1:20,21) - 김천 월명교회      21TV 2018/12/10

1 [2][3][4][5][6][7][8][9][10]..[90] [다음 10 개]

 
 
http://21tv.org/bbs/zboard.php?id=kangbyun
 
  21TV 유투브채널 오픈하다....
플로리스트 고급과정 회원...
영상 서비스가 업그레이드 ...
가을을 여는 성전꽃꽂이 세...
FFC 송년모임 및 성탄장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