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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05] 선교 칠도의 삶 (요 1:14, 막10:45) - 방배동 새 생명교회


죄와 허물 투성이인 부족한 죄인을 은퇴한지 10년 7개월이 되는 지금까지 버리지 않으시고 매 주일 전국의 작은 교회들을 주로 방문하면서 설교하는 심부름꾼으로 써 주시는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고 오늘 부족한 사람이 새 생명교회에 처음으로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저를 불러주신 이상형 목사님과 성도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이상형 목사님이 저보고 선교를 주제로 세 번 설교를 해 달라고 부탁을 해서 지금 주일 오전 11시 예배 시간에는 “선교 칠도의 삶” 이라는 제목으로 선교에 대한 기본적인 설교를 하고 내일 오전에는 “데이빗 브레이너드의 선교적 삶과 사역” 이라는 제목으로 내일 저녁에는 “이기풍 목사님과 윤함애 사모님의 선교적 삶과 사역” 이라는 제목으로 선교에 대한 구체적인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제가 설교를 하기 전에 저 자신에 대한 간증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이상형 목사님이 간증의 이야기를 해 달라고 부탁을 했기 때문입니다. 부족한 제가 평생토록 목회와 교수와 선교의 삶을 살게 된 것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와 사랑과 축복 때문이지만 그 다음에는 감옥살이를 하시다가 순교의 길로 걸어가진 저의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의 죽도록 충성하신 삶과 저를 너무너무 사랑하시면서 희생적인 사랑의 길로 걸어가신 저의 어머니 유춘택 사모님의 사랑의 삶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에서 신앙의 절개를 지키며 충성스럽게 목회를 하시다가 45세에(1950년 6월 23일) 순교하신 분이 바로 저의 아버지 김관주(金冠柱) 목사님입니다. 아버지는 평남 안주 출신인데(1905년 9월 25일생) 일본으로 가서 법학공부를 하시다가 그만두시고 신학공부를 하시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의학전문을 나온 여의사와 결혼을 해서 저를 낳았습니다. 아버지는 동경신학교를 마친 후 한경직 목사님의 초청으로 1938년부터 신의주 제이교회에서 한경직 목사님과 함께 목회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함께 가지지는 못했습니다. 목회 일에 바쁘셨을 뿐 아니라 신의주에 계실 때나 평양에 계실 때 자주 감옥에 가서 감옥살이를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일제하에서는 신사참배를 반대하셨고 공산치하에서는 공산당 정부와 타협을 하시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신의주에 있을 때 이따금씩 저를 칭찬해 주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아물거립니다. 신의주 감옥에 갇혀 계시던 아버지를 뵙기 위해 저는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감옥을 찾아가곤 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아버지를 만나 뵙지 못했고 감옥 담장 밖에서 목소리를 돋우어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를 불렀고 “아버지! 아버지!” 라고 소리를 지르곤 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1946년 5월까지 신의주 제이교회에서 9년 동안 목회를 하시다가 해방 후 1947년 평양 서문밖교회로 옮겨서 목회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나 1947년 11월 18일 평양에서 투옥되었다가 사동 탄광으로 옮겨져 그곳에서 복역하시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함께 사동 탄광을 찾아가곤 했는데 죄수 복을 입으신 아버지를 몇 번 만나 뵌 기억이 납니다.


저는 아버지로부터 신앙적인 감화를 은은하게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바로 믿고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 위해서는 고난도 감옥생활도 감수해야 한다는 교훈을 말이 아닌 삶으로 체 받았습니다. 제가 평양 제5 인민학교를 2년 동안 다녔는데 일요일마다 학교에 오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2년 동안 일요일에 학교에 간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주일에는 교회에 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정성껏 예배를 드렸습니다. 결국 월요일마다 한교에서 벌을 서고 정학을 당하면서도 주일성수를 끝까지 고수했던 이유도 바로 아버지의 충성스러운 신앙적인 감화와 교훈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제가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1948년 7월 사동 탄광에서였습니다. 제가 아버지에게 주일을 성수하면서 신앙생활을 바로 하기 위해서 남쪽으로 가겠다고 말씀 드렸을 때 아버지는 저를 한참 바라보시다가 그러면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님에게 남쪽으로 가겠다고 말씀 드렸을 때 저를 너무너무 사랑하시던 어머니는, 저 없이는 못살겠다고 자주 말씀하시던 어머니께서는 눈물을 흘리며 우시면서 그러면 가라고 말씀했습니다. 사실 어머니께서는 저를 너무너무 사랑하셨는데 제가 짓궂은 장난을 자주자주 치곤 했지만 저를 야단치는 일은 거의 없었고 잔소리를 하는 일도 거의 없었습니다. 저를 너무너무 따뜻하게 품어주시면서 사랑하시곤 했습니다. 결국 어머니께서는 가장 사랑하던 아들을 남쪽으로 떠나 보내시는 희생적인 사랑을 감수 허셨습니다. 결국 저는 11살이 되던 1948년 8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 아버지의의 뒤를 이어 하나님의 종이 되기 위해서 캄캄한 밤에 38선을 뛰어 넘어서 월남을 했습니다. 캄캄한 밤에 38선을 넘다가 우리들은 인민군에게 발각이 되었습니다. 모두 손을 들고 서지 않으면 총을 쏘겠다고 위협을 했습니다. 어른들은 모두 손을 들고 섰습니다. 그러나 저는 설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혼자서 남쪽을 향해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두려움은 없었습니다. 약간의 스릴을 지니고 언덕을 넘고 파밭을 달리고 강을 건너서 남쪽으로 무사히 오게 되었습니다. 38선을 혼자서 넘은 사건은 저의 삶과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의 한 평생의 삶을 되돌아볼 때 하나님께 대한, 부모님에 대한, 주일학교 선생님들과 신앙의 선배님들에 대한 감사의 고백을 하고 또 하고 또 하지 않을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11살 때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버지와 동생들과 생 이별한 후 한 평생 고아와 나그네로서의 외로운 삶을 슬픔과 아픔을 몸에 지니고 살게 되었는데 부족함이 없는 넉넉한 삶을 즐겁고 기쁘고 감사하게 살게 되었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부모님께서 저를 믿고 사랑하시면서 저의 몸과 마음에 심어주신 믿음과 사랑의 씨앗이 꽃을 피우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몸과 마음에 지녔던 “모험심과 담력”의 DNA와 어머니가 몸과 마음에 지녔던 “사랑과 눈물”의 DNA를 저의 몸과 마음에 심어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한 평생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근심 걱정 불평 불만하지 않고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몸과 마음에 지니고 그리고 “모험심과 담력”을 몸과 마음에 지니고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면서 부족함이 없는 풍성한 삶을 즐겁게 기쁘게 살아오게 되었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선교 칠도의 삶” 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시작합니다. 구원의 은혜를 받은 우리 신자들에게 있어서 선교보다 귀중하고 아름답고 축복된 일은 없더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의 마지막 부탁이 선교의 사역을 수행하라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행 23:11).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는 세계적이시고 우주적이시고 선교적이시지만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개인적이고 인종적이고 민족적이고 국가적이고 반 선교적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부터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12:3)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끝까지 이르게 하리라”(사49:6)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외치라”(욘1:2) 라고 말씀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말씀을 그대로 받아드리지 않고 오히려 이방을 멸시하고 정죄까지 했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셔서 애굽으로 사마리아의 수가성으로 여리고 성으로 이방으로 골고다로 가셨지만, 제자들은 그런 곳으로 가는 것을 싫어하며 거부했습니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보고 가이사랴로 가라고 했지만 베드로는 처음에는 가기를 싫어하며 거부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가기 싫다고 하는 요나를 니느웨로 강제로 보내신 것처럼, 성자 예수님께서는 가기 싫다고 하는 베드로를 가이사랴로 강제로 보내셨고 마지막에는 베드로와 사도 바울을 반기독교 세력의 중심부인 로마로까지 가게 하셨습니다. 오늘의 현실에서 볼 때 한국교회와 세계 교회의 선교의 시급한 대상은 공산권과 모슬렘권 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이 지칭한 두 “악의 축”이 오늘의 선교의 중요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니느웨와 로마가 정복의 대상이 아닌 선교의 대상이었던 것처럼, 북한과 아프가니스탄 등 공산권과 모슬렘 권은 정복의 대상이 아닌 선교의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본래 이기적이고 정욕적이고 비판적이고 배타적이고 위선적이고 독선적인 죄인중의 죄인인데 저에게 세계적이고 우주적이고 선교적인 하나님의 관심과 비전을 깨우쳐주신 분들이 조동진 목사님과 랄프 윈터 박사님과 풀러 신학교의 선교학 교수님들과 영국의 존 스토트 박사님과 독일의 피터 바이어하우스 박사님 등이었습니다. 저는 11년 동안의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기 전 조동진 목사님의 권유로 1974년 초 풀러 신학교에 가서 Research Associate의 자격으로 8개월 동안 선교신학을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풀러 신학교 선교신학원에서 랄프 윈터 교수님을 비롯한 그 당시 저명한 선교신학 교수님들의 강의를 들으면서 저의 안목을 조금씩 넓혀갈 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후에 존 스토트 박사님으로부터 “균형 잡힌” 선교관과 복음관과 대화관과 구원관과 회심관을 배울 수 있었고 특히 십자가 복음의 약함과 어리석음의 신비를 터득할 수 있었습니다. 피터 바이어하우스 박사님으로부터는 현대 에큐메니칼 선교신학의 동향과 복음주의 선교신학의 동향에 대해서 정확하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선교 칠도의 삶” 이라는 제목으로 선교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목회가 무엇이고 선교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목자이시고 선교사이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고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히 3장과 12장은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예수를 바라보자” 라고 권면했습니다. 우리들의 생각과 눈을 오직 예수님께 고정시키라는 말씀입니다. 다른 것들은 생각도 보지도 말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만을 깊이 생각하고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목회와 선교의 모델이신 예수님의 삶과 사역을 가장 분명하게 나타내 보여주는 말씀이 요 1:14과 막 10:45이라고 생각합니다. 존 스토트 박사님이 예수님의 삶과 사역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말씀이 막 10:45 이라고 지적한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선교 행적” 즉 “선교 칠도”를 살펴보면서 선교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가 선교를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선교는 “버리고” “떠나서”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선교의 모델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하늘 집을 “떠나시고” 세상을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과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빌 2:6,7). 여기 “자기를 비어” 라는 말씀은 박윤선 목사님이 지적하신 대로 “하늘 영광을 떠나셨다” 라는 뜻이고 자기를 포기하고 “버리셨다” 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요하신 자로서 가난하게 되심은”(고후 8:9) 이라는 말씀도 부요함을 “버리시고” 가난과 약함을 몸에 지니셨다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하늘 영광 떠나서 이 세상에 오신 주님, 섬기러 오신 주님 우리 위해 죽으셨네.” 성자 예수님께서는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하늘 집을 “떠나서” 세상을 “찾아오시되” 구유에 찾아오셨습니다.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눅 2:6). 구유에 찾아오신 예수님께서는 한평생 목수의 집에서 가난하게 사시다가 가난한 자들과 병자들과 멸시 받는 자들과 저주 받은 자들을 일일이 찾아 다니시면서 죄인들과 병자들의 친구로 사셨습니다. 예수님의 선교행적은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하늘 집을 “떠나서” 세상을 “찾아오시되” 가난한 자들과 병자들과 멸시 받는 자들과 저주 받은 자들을 일일이 찾아오신 “버림”과 “떠남”과 “찾아감”의 행적이었습니다.


사실 아브라함도 모세도 예수님의 제자들도 모두 “버림”과 “떠남”과 “찾아감”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 모세는 태어나자마자 고향과 부모를 떠나 애굽에 가서 살았고 나중에는 애굽을 떠나 미디안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결국 “버림”과 “떠남”과 “찾아감”의 길을 걸었는데 예수님께서 크게 칭찬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 19:27-29).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 선교사는 웨일즈를 “버리고” “떠나서” 조선 땅을 “찾아왔고,” 언더우드 선교사와 아펜실라 선교사는 미국을 “버리고” “떠나서” 조선땅을 “찾아왔습니다.”





둘째로, 선교는 찾아가는데 그치지 않고 찾아 간 곳의 사람들처럼 “되는” 것입니다. 선교의 모델이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본래 하나님이셨고 말씀이셨는데 하늘 집을 버리고 떠나서 세상에 찾아오셔서 육신을 가진 사람이 “되셨다” 라고 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요 1:14). “The Word became flesh.” 선교는 “되는” 것입니다. 선교는 becoming 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성육” 즉 “Incarnation” 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냥 사람이 되신 것이 아니고 “죄 있는 육신”을 가진 사람이 되셨다고 했습니다. 너무너무 놀라운 일입니다.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롬 8:3). 본래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살과 피를 가진 “죄 있는 사람”이 되신 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이고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물론 헬라 인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으로 살다가 사람으로 죽는 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미련한 일이고 약한 일이고 멸시를 받을만한 일이라고 비난을 했습니다. 그러나 선교는 “되는” 것입니다. 찾아간 곳의 사람들처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요하신 분으로서 우리들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다” 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고후 8:9).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즉 선교를 위하여 종이 “되었고” 유대인과 같이 “되었고” 율법 아래 있는 자와 같이 “되었고”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되었고” 약한 자와 같이 “되었고” 여러 모양이 “되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고전 9:19-23). 선교는 “성육”의 사건을 본 받아서 백인이 흑인이 “되는” 일이고, 미국 사람이 한국 사람이 “되는” 일이고, 한국 사람이 태국 사람이 “되는” 일입니다. 성 프랜시스는 본래 앗씨시의 부유한 포목상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일부러 가난한 거지가 “되었고” 일부러 병든 환자가 “되었고” 고통을 몸에 지닌 고통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나병환자가 “되기”를 그렇게도 간절히 소원했습니다. 선교는 나 자신을 포기하고 나와 다른 종류의 사람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그것이 어려운 일이지만 선교의 모델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선교사의 모습이 바로 “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삶에 지친 그래서 목이 마른 수가성 여인에게 복음을 전하시기 위해서 그 여인과 비슷한 모습을 취하셨습니다. 여인처럼 행로에 피곤하여 주저 앉으셨다고 했고 여인처럼 목이 말랐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제 육시쯤 되었더라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요 4:6,7). 그 여자가 알아 들을 수 있는 평범하고 쉬운 말로 소통을 시도했습니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요 4:7). 너무너무 황송한 일이었지만 그것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시고 죄인들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예수님께서 취하신 선교적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선교는 “버리고” “떠나서” “찾아가는” 것이고 그리고 “되는” 것입니다. 나와 다른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선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선교의 모델이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본래 하늘에서 성부 하나님 성령 하나님과 함께 그리고 천군 천사들과 함께 영광 중에서 사셨지만 하늘 영광을 버리고 하늘을 떠나 세상에 오셔서 세상의 사람들과 “함께 사셨다” 라고 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1:14). “The Word became flesh and made his dwelling among us.” 선교는 “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것을 말합니다. 선교는 dwelling together 입니다. 선교는 리빙스톤이나 슈바이쳐처럼 백인이 아프리카의 흑인들과 “함께 사는” 것이고 언더우드 선교사 4대 손처럼 미국 사람이 한국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이고 신홍식 선교사 3대 손처럼 한국 사람이 태국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성 프랜시스와 손양원 목사님은 한센병자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선교는 나 자신의 평안한 삶을 포기하고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들과 “함께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태어나시자마자 어머니 마리아 아버지 요셉과 “함께 사셨고” 나중에는 제자들과 “함께 사셨고” 그리고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면서 가까이 교제”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 9:10-13). 선교는 선교지에 가서 대형 집회를 잠깐 하고 돌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 나라가 아닌 다른 곳에 가서 나와 다른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독일의 저명한 선교신학자 준더마이어(Sundermeier) 박사는 올바른 선교는 “콘비벤츠”(Konvivenz) 즉 “함께 사는” 삶이라고 정의를 내렸습니다. 콘비벤츠는 브라질의 도시나 농촌에 있는 소집단들이 이웃 돕기 운동에서 유래한 것으로, “서로 돕고, 서로 배우며, 함께 축하하는” 공동체적 삶의 형태를 갖는다고 말입니다. 준더마이어 박사는 서로 돕고, 배우고 함께 축제를 경험하는 “콘비벤츠”의 원리를 무엇보다 복음서에 기록한 예수님의 삶에서 입증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사람들 가운데 살았으며 그들과 함께 동고 동락 하셨다. 예수님은 그들을 ‘위하여’ 살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았다. 특히 예수님은 사람들과 자주 함께 식사를 나누었는데 이러한 식탁 공동체야 말로 예수님의 선교에 중심이 된다. 왜냐하면 함께 하는 식탁은 ‘공동체’와 ‘잔치’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선교적 교회는 타자와 함께 사는 교회이다.” 너무너무 귀중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선교는 “함께 사는” 것입니다. 나와 다른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넷째로, 선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다른 사람들을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막 10:45).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눅 22:27).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의 몸을 어루만져주시면서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으로 “섬기셨고” 열병환자의 손과 소경의 눈을 어루만져주시면서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으로 “섬기셨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면서 온유와 겸손과 사랑으로 “섬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로마 군인들과 그리고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는 강도에게도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으로 “섬김”의 손길을 폈습니다. 그리고 원수에게까지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을 베풀라고 말씀했습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선교는 “함께 사는” 것이고 그리고 모두를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섬김”의 선교적인 삶을 성 프랜시스와 손양원 목사님이 사셨다고 생각합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을 몸으로 나타내면서 말이 아닌 삶과 죽음으로 불쌍한 사람들을 “섬겼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선교의 깃발을 높이 휘두르지는 않았습니다. 설교를 유창하게 하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손양원 목사님만큼 십자가의 사랑과 구원을 온 세상에 강력하게 전파한 복음의 증인과 복음의 선교사도 별로 없을 것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을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으로 섬긴 “섬김”의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이지만 신앙의 선배님들을 따라서 세계 곳곳을 찾아 다니면서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려고 애를 쓰곤 했습니다. 1988년 여름 북 아프리카 부르키나 파소를 찾아가서 가뭄으로 죽어가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서 우물 10개 이상을 파주기도 했습니다. 1989년에는 방글라데시를 찾아가서 재난과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방글라데시 사람들을 위해서 안과 병원을 하나 지어주기도 했고 노재인이라는 영양사 한 사람을 방글라데시에 파송하기도 했습니다. 1995년부터 홍수와 재난으로 고통 당하는 북한 동포들을 돕는 일에 앞장을 서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북한의 결핵환자들을 돕고 있습니다. 1999년경부터 불쌍한 연변 지역의 조선족 고아 어린이들 150 여명을 돕는 일을 지난 18년 동안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지난 6월 25일부터 29일까지 연변 지역의 조선족 고아 어린이들을 돌아보고 왔습니다. 2005년 12월에는 아프가니스탄을 찾아가서 재난과 가난으로 고통 당하는 아프가니스탄 어린이들을 위해서 학교를 하나 지어주고 준공식을 거행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1997년 4월 3일 강원도의 감자 1690톤을 사서 북한에 보내기도 했고, 지난 2010년 8월 27일에는 5개 종단 대표 9명과 함께 밀가루 300톤을 13대의 대형 트럭에 싣고 황해도 개성에 가서 그곳 민화협 대표들에게 전달하고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2014년 1월 13일부터 17일까지는 파키스탄 페샤와르를 방문하고 테러로 130여명의 생명을 잃고 170여명이 부상을 당한 역사적인 교회인 올 쎄인트 교회의 성도들과 유족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제가 세계 곳곳을 방문하면서 조그만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면서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제가 모슬렘과 공산주의 진영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설교나 강의나 전도를 하지 않았지만 저들의 마음과 생각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선교의 길은 반드시 설교나 강의나 전도를 하는 길이 아니고 다양한 행사나 프로그램에 치중하는 길도 아니고 순수한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으로 섬기는 “섬김”의 길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놀라운 사실을 북아프리카 부르키나 파소에서도 방글라데시에서도 중국 연변지역에서도 발견했습니다. 부르키나 파소의 모슬렘의 최고 지도자가 수백 년 동안 간직해온 가보를 우리들에게 전해주면서 자기들은 자손들을 살릴 수가 없는데 여러 교회의 지도자들이 와서 자손들을 살려주어서 너무너무 고맙다고 절을 했습니다. 중국 연변지역의 고아 아이들과 저들을 보살피고 있는 지역의 회장들 대부분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을 저는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습니다. 2005년 12월 16일 아프가니스탄 무라취드에 세워준 학교 준공식에 참석했는데 모슬렘 지도자들이 나와서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또 하고 또 했으며 아프간 어린이들이 나와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할렐루야!” 라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조용히 펼 때 거의 모든 사람들의 마음과 가슴이 녹아지는 “선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눈으로 생생하게 목격했습니다.





다섯째로, 선교는 “함께 놀아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만들어낸 말이지만 틀리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설교만 하고 강의만 하고 가르치기만 하고 함께 놀아주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선교는 설교만 하고 강의만 하고 가르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함께 놀아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셨고 세리와 죄인들과 식사도 함께 하시고 대화도 함께 하시면서 함께 놀아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2005년 11월 12일자 기독교 개혁신보에 실렸던 글의 일부를 여기 그대로 소개합니다.


『나는 선교지를 여행하면서 현지인들과 선교사들과 자녀들에게 위로와 격려와 사랑과 힘과 기쁨이 되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내가 지난 10여 년 동안에 발견한 한 가지 사실은 설교나 강의가 반드시 저들에게 위로와 기쁨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때로는 저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놀아주는 것이 위로와 기쁨이 된다는 사실이다. 내가 2년 전 브라질을 방문한 일이 있다. 이틀 동안 밤마다 강성철 선교사와 총신 제자 한 사람과 젊은 초년생 선교사 한 사람과 밤 늦게까지 볼링을 친 일이 있다. 아주 재미가 있었다. 물론 내가 모두 이겼다. 그런데 내가 생각지도 못한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강성철 선교사를 통해서 들은 이야기이다. 그 젊은 초년생 선교사가 많은 스트레스와 좌절을 경험하면서 선교지를 떠나려고 했었는데 스승인 나하고 이틀 동안 볼링을 치고 나서 위로와 격려와 힘을 얻었고 새로운 용기를 가지고 선교에 임하게 되었다는 반가운 말을 들었다.


『내가 5년 전에 불라디보스톡에 간 일이 있었다. 어느 날 20여명의 선교사 자녀들과 서너 시간 동안 열심히 논 일이 있었다. 게임도 하고 선물도 나누어주고 농구도 같이 하고 그네도 같이 타고 씨이소도 같이 타며 신나게 놀았다. 어린이들이 나를 너무 좋아했고 모두 너무 기뻐했다. 유치부 어린 아이 하나는 내가 떠날 때 예쁜 상자를 선물로 주었다. 그네를 함께 탄 아이였다. 그 상자 속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정예찬 2000.6.10” 하루 오후에는 선교사 사모들 대 여섯 명을 데리고 바다 가에 가서 놀다가 왔다. 맛있는 바다 가제도 사 주었다. 너무너무 좋아했다. 늘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가 스승이 되는 내가 그들을 데리고 바닷가에 가서 함께 놀아준 것이 그들에게 많은 위로와 기쁨이 되었다. 나는 두 주전에 한 주간 동안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을 다녀왔다. 러시아 목회자 50여명과 한인 선교사 20여명이 한데 모여 연해주 목회자 수련회를 가졌다. 내가 저들에게 강의도 하고 설교도 했지만 내가 주력한 것은 저들과 함께 교제하고 음식을 먹고 놀아준 것이었다. 도착하던 날 저녁 46명의 한인 선교사 가족들과 한국식당에서 음식을 나누었다. 고등학생이 된 은덕이라는 여학생이 나에게 사진 한 장을 보여 주었다. 5년 전 내가 블라디를 방문 했을 때 어린 아이들 20여명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그 때 은덕이는 초등 학생이었다. 은덕이는 그 사진을 고이 간직하였다가 다시 자기들을 찾아온 나에게 보여준 것이었다. 나는 가슴이 뭉클함을 느꼈다.』


선교는 “함께 놀아주는” 것입니다. 함께 놀아줄 때 선교사들과 자녀들은 물론 현지인들의 마음이 열립니다. 그들의 마음에 감동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그들의 마음에 사랑이 들어가고 복음이 들어가고 예수님이 들어가십니다. 저는 이와 같은 경험을 태국에서도 캄보디아에서도 인도네시아에서도 홍콩에서도 했습니다. 선교는 “함께 놀아주는” 것입니다.





여섯째로, 선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이루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구유에 탄생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목적이 우리 죄인들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심에 있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증오와 분노와 분쟁으로 가득한 세상과 우주에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가져오시는데 있었다고 누가와 사도 바울이 지적했습니다.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화해)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2:14-16). 예수님께서는 산상 설교에서 “화해와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해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3,24).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인들을 죄와 사망과 저주에서 구원하시는 구세주로 세상에 오셨지만 동시에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의 주님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느 날 세상을 등지고 절망 가운데서 살아가는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에게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의 주님으로 찾아가셨습니다. 수가성 여인을 찾아가신 예수님의 모습은 낮아진 모습이었고 따뜻한 모습이었습니다. 말하기 싫어하는 수가 성 여인에게 먼저 말을 건네셨습니다. 소통을 먼저 시도하신 것이었습니다. 사실 소통이야말로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이루는 중요한 방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낮아진 모습으로 그리고 따뜻한 모습으로 수가성 여인에게 말을 건네셨습니다. “여인이여, 내가 목이 마른 데 내게 물 한 모금 마시게 해 줄 수가 있소?” 그 여인은 아주 퉁명스러웠습니다. “별 사람 다 봤네. 점잖은 유대 양반이 개 같은 사마리아 여자에게 말을 건네며 물 한 모금까지 달라고 하시네.” 아주 무례하고 퉁명스러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낮은 자세로 따뜻한 모습으로 말을 건네셨습니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3,14). 결국 소통이 이루어졌습니다.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요 4:15). 수가성 여인은 자기가 죄인임을 고백했고 예수님을 향해서 “선지자로소이다” 라는 고백을 했습니다. 나중에는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수가성 여인에게 주님과의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수가성 사람들과의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도 이루어졌습니다. 수가성 여인은 물동이를 내 버려두고 수가성으로 달려가서 만나기 싫어하던 수가성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만난 그리스도를 증거했습니다. 그 결과 수가성 사람들이 예수님에게로 나왔다고 했습니다(요 4:28-30).


저는 예수님의 삶과 사역과 십자가에 나타난 긍휼과 용서와 사랑과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가장 생생하게 나타내 보이신 분이 평화의 사도인 성 프랜시스와 사랑의 원자탄인 손양원 목사님과 한국교회와 사회가 존경하던 한경직 목사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성 프랜시스와 손양원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은 모든 사람들을 찾아가서 낮은 자세와 따뜻한 자세로 말을 건네고 소통하면서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이루었습니다. 성 프랜시스는 사람들은 물론 동물들과 식물과도 친밀한 소통을 하면서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이루었습니다. 선교사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다른 사람들을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으로 섬길 때 거기에는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이 이루어집니다. 사마리아와의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가이사랴와의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로마와의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일본과의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북한과의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아프가니스탄과의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이 이루어지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은 성경의 목표이며 역사의 완성 점입니다. 선교는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이루어가는 방편이고 과정이고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남북의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과 함께 모슬렘과의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적인 일이 아닙니다. 남북의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은 한국교회와 한국 민족이 반드시 이룩하여야 할 필수적인 일이고 민족적인 과제입니다. 아니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 막대기들을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겔 37:17). 엡 1:10과 계 7:9-12은 앞으로 이루어질 우주적인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0).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모든 천사가 보좌 앞에 엎드려”(계 7:9,10).


어떻게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이룰 수 있습니까? 정치적인 방법이나 군사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진리의 깃발만을 휘두르는 방법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어린 양의 피로 씻음을 받는 일이 선행되어야 하고 그리고 온유와 겸손과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가슴과 몸에 지닌 하나님의 사람들과 민족의 지도자들이 일어나야 하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의 악을 선으로 갚으며 악을 행한 상대방을 존중하고 포용하고 품었던 야곱과 같은 그리고 요셉과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과 민족의 지도자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야곱은 형 에서 앞에서 일곱 번 땅에 허리를 굽히고 절하며 예물을 드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주여,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습니다”(창 33:10). 남한 교회가 북에 대해서 이와 같은 겸손과 존경과 사랑의 자세를 취하여야 남북의 화해와 평화와 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2007년 10월 12일 신촌 성결교회에서 림인식 목사님께서 지적한 일이 있었습니다. 요셉은 자기에게 악을 행한 형들을 만나자 방성대곡하며 형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창 45:5,7,8). 모슬렘과의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이루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분쟁과 분열로 치닫고 있는 한국과 세계 안에 지금이야말로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의 도구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세계가 필요로 하는 선교사야말로 분노와 증오 그리고 분쟁과 분열로 치닫고 있는 세계 곳곳을 찾아가서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이룰 수 있는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의 도구들로서의 선교사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양의 피로 씻음을 받는 일과 온유와 겸손과 긍휼과 용서와 사랑과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가슴과 몸에 지니고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는”(요 3:16) 하나님의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본래 일본 사람을 싫어했고 북한 사람을 싫어했고 중국 사람을 싫어했고 모슬렘을 싫어했고 타 종교인들을 싫어했었습니다. 자유주의자도 순복음주의자도 싫어했었습니다. 그러나 성 프랜시스와 손양원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므로 조금씩, 조금씩 저의 생각과 마음이 바뀌어졌습니다. 일본 사람을 존경하며 사랑하게 되었고 일본 교회와 교류하는데 앞장을 서게 되었습니다. 북한 사람을 사랑하며 북한 사람을 돕는 일에 앞장을 서게 되었습니다. 중국 사람을 사랑하며 중국 연변에 있는 조선족 어린이들 150여명을 지난 18년 이상 돕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와 방글라데시를 방문하며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기도 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학교 하나를 지어주고 아프간 어린이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기도 했습니다. 강원용 목사님도 조용기 목사님도 존경하며 사랑하게 되었고 가까이 소통하며 교제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있는 5개 종단의 지도자들과 친하게 교제하면서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을 만들기도 했고 2010년 8월 27일에는 5개 종단 지도자들 9명과 함께 밀가루 300톤을 가지고 북한 개성에 가서 그곳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오기도 했습니다. 동물들과 식물들과도 친밀하게 소통하는 흉내를 내기도 합니다. 개들도 고양이들도 새들도 물고기들도 식물들도 친밀하게 다가가면 반갑게 반응하는 것을 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일이고 조금씩, 조금씩 흉내를 내고 배워서 되어진 일입니다. 성 프랜시스와 손양원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께서 물려주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의 귀한 영적인 유산들을 조금씩 조금씩 물려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선교가 힘써야 할 일은 무엇보다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이루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일곱째로, 선교는 “제물 되는 삶”을 살다가 “제물 되는 죽음”을 죽는 것입니다. 선교의 모델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제물 되는 삶”을 사시다가 “제물 되는 죽음”을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는니라”(엡5:2). 기독교는 “제물 되는 삶”과 “제물 되는 죽음”으로 이루어진 종교입니다. “제물 되는 삶”과 “제물 되는 죽음”이 없이 선교가 이루어진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1866년 9월 5일 대동강 변에서 27살의 젊은 나이에 순교의 제물이 된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 선교사의 “제물 되는 삶”과 “제물 되는 죽음”이 없었다면 1885년 조선땅에 선교의 역사와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토마스 선교사의 “제물 되는 삶”과 “제물 되는 죽음”이 16년 후인 1882년에는 조미 수호 통상조약이 체결되게 했고, 그 2년 후인 1884년에는 알렌 의사가 조선에 들어오게 했고, 그 다음 해인 1885년에는 아펜셀라 선교사 부부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조선 땅에 들어오게 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한 사람의 “제물 되는 삶”과 “제물 되는 죽음”이 하나님의 구원 및 선교 역사의 흐름에 얼마나 길고도 깊은 고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놀라움과 감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헨리 아펜셀라와 호레이스 언더우드 선교사는 조선에 와서 희생적인 “제물 되는 삶”을 살다가 “제물 되는 죽음”을 죽었습니다. 그래서 조선의 교육과 조선의 의료 사역의 기초가 놓여졌고 조선의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저는 언더우드 가의 3대가 조선 구원의 역사의 흐름에 합류하여 조선 사람들에게 끝이 없는 사랑을 쏟아 부으면서 희생적인 “제물 되는 삶”을 살다가 “제물 되는 죽음”을 죽어 지금 양화진에 모두 함께 묻혀 있다는 사실 앞에서 저는 지극한 경외감과 존경과 사랑을 느끼면서 한 없이 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선교는 “제물 되는 삶”을 살다가 “제물 되는 죽음”을 죽는 것입니다. “제물 되는 삶”과 “제물 되는 죽음”이 구원의 역사와 선교의 역사를 만듭니다. 토마스 선교사와 언더우드 선교사의 “제물 되는 삶”과 “제물 되는 죽음”이 조선땅에 구원의 역사와 선교의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2005년 12월 31일 강변교회에서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면서 2006년도 새해의 기도 제목을 다음과 같이 정한 일이 있었습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예수님의 마음과 생각과 눈물을 품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물 되는 삶을 살다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물 되는 죽음을 죽게 하시옵소서!” 사실 저눈 지금도 같은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말씀을 더 드리고 싶습니다. 선교적인 삶과 선교적인 죽음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 무한한 영광을 돌리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스데반 집사의 순교적인 죽음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 무한한 영광을 돌렸습니다. 스데반 집사의 순교의 장면을 성경은 이렇게 귀중하고 아름답게 묘사했습니다.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쌔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앞에 두니라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 7:56-60). 스데반 집사의 순교의 죽음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는 무한한 영광이 되었고 저주 받아 마땅한 사울을 비롯한 안디옥의 이방인들과 그 밖의 모든 이방인들에게는 은혜와 축복이 되었습니다.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의 죽음도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의 순교의 죽음도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는 무한한 영광이 되었고 저주 받아 마땅한 조선 사람들과 그들의 후손들인 허물과 죄악으로 가득한 못된 우리들 모두에게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 합니다. 선교가 무엇입니까? 선교의 모델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선교의 삶과 사역이 어떤 것입니까? 첫째로, 선교는 “버리고” “떠나서” “찾아가는” 것입니다. 둘째로, 선교는 찾아가는데 그치지 않고 찾아 간 곳의 사람들처럼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선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넷째로, 선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다른 사람들을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선교는 “함께 놀아주는” 것입니다. 여섯째로, 선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이루는 것입니다. 일곱째로, 선교는 “제물 되는 삶”을 살다가 “제물 되는 죽음”을 죽는 것입니다. 한 마디 더 하면서 선교는 하나님께 무한한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은혜와 축복을 베푸는 것입니다. 저와 우리들이 모두 너무너무 부족한 죄인들이지만 선교의 모델이 되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서 그리고 위에서 지적한 일곱 가지 선교의 모습들을 몸과 마음과 영혼과 삶에 조금씩 아주 조금씩이라도 지니고 세계 곳곳을 찾아가면 십자가에 나타난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구원과 함께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의 선교의 역사가 세계 곳곳에 아름답게 나타나고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들 모두에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함께 주님 닮은 선교의 삶을 살다가 선교의 죽음을 죽을 수 있는 놀라운 은혜를 부어주시기를 바라고 소원하고 기원합니다. 방배동 새 생명교회의 이상형 목사님과 성도 여러분 모두를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귀중한 선교의 심부름꾼들로 사용하시기를 바라고 소원하고 기원합니다. 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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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2  [08/19] 기도에 전념하는 삶 (막 1:35, 눅 6:12) - 오산 주 영광교회      21TV 2018/08/20
871  [08/15] 눈물의 감동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 (시 139:14-18) - 마포 성가교회 수련회      21TV 2018/08/17
870  [08/12] 화해와 평화와 통일의 하나님 (시 133:1-3, 엡 2:14-16) - 전북 익산 황등지역 교회연합회8.15 광복절 기념 연합집회(황등교회)      21TV 2018/08/13
869  [08/12] 내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 (고전 15:10, 딤전 1:14, 롬 5:20) - 익산 황등 제자교회      21TV 2018/08/13
 [08/05] 선교 칠도의 삶 (요 1:14, 막10:45) - 방배동 새 생명교회      21TV 2018/08/07
867  [07/29] 병든 자들과 죄인들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마 9:12,13) - 전주 부르심 교회      21TV 2018/07/30
866  [07/22] 올바른 신앙생활 (막1:14,15, 롬 12:1,2, 요 14:1) - 김천 상남교회      21TV 2018/07/23
865  [07/20] 신앙 오도의 삶 (막1:14,15, 롬 12:1,2) - 여의도 순복음교회 장로 월례기도회      21TV 2018/07/23
864  [07/15] 신앙 오도의 삶 (막1:14,15, 요14:1-3, 롬 12:1,2) - 통영 도산제일교회      21TV 2018/07/16
863  [07/08] 내게 베푸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 (고전 15:10) - 포항 아름다운 고백교회      21TV 2018/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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