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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11] 한반도와 모두를 품자 (사 46:3,4, 막 9:36,37 ) - 도봉동 영신교회


제가2008년 1월 13일 28년 동안 개척해서 목회하던 강변교회에서 은퇴한 다음 지난 10년 1개월 동안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매 주일 전국의 작은 교회들을 주로 방문하며 설교하고 있는데 작년 5월 27일 주일 영신교회에 처음으로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설교를 했고 오늘 2018년 2월 11일 주일 두 번째로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설교를 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정종기 목사님과 성도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작년에는 정종기 목사님이 오늘의 시대를 분별하는 설교를 하면 좋겠다고 해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라는 제목으로 했는데, 오늘은 정종기 목사님이 금년도 영신교회의 표어가 “한 반도를 품자” 라고 말해서 “한반도와 모두를 품자”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품자” 라는 말이 아주 귀중하고 아름다운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성부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실 뿐 아니라 안아주시고 품어주시는 사랑의 하나님 이시라는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창조시고 구원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저들이 태어날 때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저들을 안아주시고 품어주시면서 저들을 사랑하신다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야곱 집이여 이스라엘 집의 남은 모든 자여 나를 들을찌어다 배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품기운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안을 것이요 품을 것이요 구하여 내리라”(사 46:3,4). 성부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창조하시고 구원하실 뿐 아니라 우리들을 안아주시고 품어주시는 너무너무 사랑이 많으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열왕기상 19장에 기록된 선지자 엘리야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엘리야는 대단히 유명한 선지자였습니다. 한번 기도하면 하늘이 닫히기도 하고 열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 엘리야는 이세벨이 자기를 죽이기로 작정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서 광야로 도망을 가서 로뎀 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했습니다. “저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여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 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왕상 19:3-5). 엘리야가 광야로 도망을 가서 로뎀 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했을 때 성부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천사를 보내셔서 엘리야를 어루만져주시고 또 어루만져주셨다고 했습니다. “로뎀 나무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왕상 19:5-7). 여기 “어루만지며” 라는 말이 두 번 반복해서 나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너무 인자하시고 너무 자비로우시고 너무 은혜와 사랑이 많으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엘리야가 죽겠다고 하며 쓸어졌다가 일어났습니다. 새 힘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40주 40야를 뛰어 갔다고 했습니다.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왕상19:8). 성부 하나님께서는 위기에 처한 우리들을 찾아오셔서 어루만져주시고 안아주시고 품어주시는 “은혜와 사랑과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하나님이신지 모릅니다.

그 다음 “하나님의 손” “하나님의 의로운 오른 손” “하나님의 손 바닥” 이라는 말씀이 나오는 성경 말씀들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시편 37편에 보면 우리가 길을 가다가 넘어질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손으로 붙들어주신다고 다윗이 고백했습니다.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시 37:24). 시편 104편에 보면 하나님께서 손을 펴시면 우리가 좋은 것으로 만족하게 된다고 고백했습니다. “주께서 주신즉 저희가 취하며 주께서 손을 펴신즉 저희가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저희가 떨고 주께서 저희 호흡을 취하신즉 저희가 죽어 본 흙으로 돌아가나이다”(시 104:28,29). 시편 119편에 보면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만들고 우리를 세우셨다고 고백했습니다.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 나로 깨닫게 하사 주의 계명을 배우게 하소서”(시 119:73). 시편 139편에 보면 하나님의 손이 우리의 전후를 두르시며 안수하시고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오른 손이 우리를 붙드신다고 다윗이 고백했습니다. “주께서 나의 전후를 두르시며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찌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 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시 139:5,9,10). 이사야 4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붙들어주신다고 말씀했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이사야 49장에 보면 엄마가 자기 애기를 버리는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들을 버리시지 않고 그 이름을 손바닥에 새기시고 잊지 아니하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사 49:15,16). 성부 하나님의 손은 참으로 신기한 손입니다. 넘어지는 자를 붙들어주시는 손이고, 두려워하고 놀랄 때 붙들어주시며 도와주시는 손이고, 어디를 가든지 붙들어주시는 손이고, 버림받아 마땅한 죄인들의 이름을 손 바닥에 새기시고 잊지 아니하시는 너무 신기하고 너무 이상한 사랑의 손입니다. 오늘의 한국교회와 목회자들도 다윗처럼 이사야처럼 하나님께서는 손을 내 밀어 우리 죄인들을 만져주시고 품어주시고 붙들어주시고 도와주시는 자비로우신 분이시라는 간증적이고 고백적인 설교를 자주 하여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성자 예수님께서도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실 뿐 아니라 안아주시고 품어주시는 사랑의 주님 이시라는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어린 아이들은 불론 각색 병자들과 죄인들을 안아주시고 만져주시고 품어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막 9:36,37).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막 10:13-16). 성자 예수님께서는 각색 병자들을 사랑의 손으로 만져주시곤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 한 문둥병자가 나아와 절하고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 진지라”(마 8:1-3).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마 8:14,15).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가실 쌔 두 소경이 따라 오며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예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대 그 눈들이 밝아 진지라”(마 9:27-30). 성지 예수님께서는 심지어 자기 제자들의 발을 손으로 만지시면서 물로 씻겨주시기도 했습니다.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 발 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요 13:4-9). 성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은 사실 저들의 발과 몸만 씻기신 것이 아니고 마음과 영혼도 씻기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몬 베드로가 “주여 내 발 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생각합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인들을 어루만져주시고 안아주시고 품어주시는 너무너무 인자하시고 따뜻하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들의 몸과 영혼을 깨끗하게 그리고 착하고 부드럽게 만들어주시기 위해서 우리 죄인들을 어루만져주시고 안아주시고 품어주신다고 생각합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인들과 병자들을 찾아오셔서 우리들을 만져주시고 품어주시는 너무 황송하고 너무 고마우신 분이십니다. 창조의 손, 피가 흐르는 구속의 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능력의 손, 지옥 문을 닫고 하늘 문을 여시는 손, 그 손으로 우리들을 만져주시면 우리들의 운명이 바꾸어 집니다. 우리들의 삶이 회복됩니다. 저주의 삶이 축복의 삶으로 회복됩니다. 근심 걱정 원망 불평 염려 두려움의 삶이 감사와 평안과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귀중한 삶으로 바뀌어집니다. 시편 31편 15절에 보면 우리의 운명이 우리의 시대와 우리의 인생이 주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했습니다.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와 핍박하는 자의 손에서 나를 건지소서”(시 31:15). 하나님과 예수님의 손은 대단한 손입니다.  



셋째로, 사람은 접촉의 존재이고 안기는 존재이고 품기는 존재라는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엄마는 아기가 태어날 때 아니 태어나기 전부터 어루만져주고 안아주고 품어줍니다. 잘 때나 깰 때나 밤이나 낮이나 엄마는 아기를 어루만져주고 안아주고 품어줍니다. 아기는 어떤 존재입니까? 접촉의 존재, 안기는 존재, 품기는 존재입니다. 아기가 태어날 때 웁니다. 왜 울까요? 의사들이 말하기를 아기가 태어날 때 엄마 품으로 돌려 보내달라고 운다고 합니다. 엄마 품이 따뜻하고 편안했는데 세상에 나오니까 큰일났구나 하면서 운다고 합니다. 그것을 “출생 충격” 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간호원이 빨리 아기를 안아준다고 합니다. 엄마 뱃속으로 돌려 보낼 수 없으니까 간호원이 빨리 안아주면 울음을 그친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도 계속해서 꼭 안아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엄마 품을 떠나면 아기는 웁니다. 결국 사람은 엄마의 품을 떠나서는 살수가 없고 하나님의 품을 떠나서는 살수가 없는 안김의 존재이고 품김의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어루만져주시고 안아주시고 품어주시는 분이시고, 우리들은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어루만짐을 받고 안김을 받고 품김을 받아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미국의 제임스 하디슨(James Hardison)이란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은 접촉의 존재이다. 인간은 접촉 없이는 창조될 수도 없다. 인간은 접촉이 없이는 살아 갈수도 없다. 인간은 하나님의 접촉과 부모의 접촉으로 지음 받은 존재이다.” 너무너무 귀중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켈란젤로(Michelangelo)란 유명한 화가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유명한 그림 중의 하나가 “Creation of men” 즉 “인간의 창조” 라는 제목의 그림입니다. 아담이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미켈란젤로가 그렸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고 바다에서 솟아난 게 아닙니다. 미켈란젤로가 “인간의 창조” 라는 그림을 그렸는데 아담이 있고 그 옆에 하나님의 손이 길게 뻗쳐 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아담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아! 하나님께서 손을 뻗쳐서 만드셨구나! 라고 생각을 하면서 그림을 그렸을 것입니다. 창세기 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태초에 흙으로 빚어서 사람을 만드시고 자신의 기운을 불어 넣으시니까 사람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만져주시고 안아주시고 품어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은 접촉과 안김과 품김을 통해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합니다. 미국의 르네 스피츠(Spitz) 라는 의사가 있었습니다. 고아들을 불쌍히 여기며 사랑하는 의사였습니다. 그래서 국립병원의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곳에는 아기 때부터 고아로 자라나는 아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영양분을 많이 공급하고 위생시설을 잘 했습니다. 아기들이 불쌍해서 스피츠 박사가 아기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습니다. 그런데 아기들이 건강하지도 행복하지를 않았습니다. 아기들이 자꾸 병이 들었습니다. 제일 좋은 영양분을 공급하고 제일 좋은 시설을 공급해 줬는데 왜 아이들이 병이 들까? 이게 무슨 병일까? 스피츠 의사는 그 병을 “시드는 병” 즉 마라스므스(Marasmus) 병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런데 스피츠 박사가 그 해 겨울 멕시코에 겨울 휴가를 갔습니다. 거기 고아들을 키우는 병원이 있었습니다. 그 병원에 가 보았는데 시설이 좋지도 않고 아이들에게 영양분을 잘 공급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했습니다. 병도 안 걸렸습니다. 왜 그럴까? 그 비결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동네에 사는 부인들이 매일 병원에 와서 아이들하고 놀아주고 아이들을 안아주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그네를 타고 이야기도 해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스피츠 박사가 이런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 아이들은 안아줘야 행복하구나! 아! 아이들은 아무리 음식을 잘해주어도 행복하지 않구나! 아! 아이들은 안아주고 함께 놀아주어야 행복하구나!” 그래서 스피치 박사가 이런 글을 썼습니다. “접촉을 가진 아이는 건강하게 자랐다. 유모차에서 피부의 접촉이 없이 자란 아이들은 점점 약해졌다. 점점 세포들이 죽어갔다. 우유병으로 키우면 병이 많아진다. 가장 강한 접촉은 입과 입술로 엄마의 젖을 빨아 먹는 것이다. 엄마의 젖을 빨아 먹지 못하고 엄마의 품에 안기지 못하는 아이들은 병에 많이 걸린다.” 너무너무 귀중한 가르침을 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넷째로, 저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저는 11살 때 즉 1948년 8월 주일 성수와 예배의 신앙을 몸에 지니고 살고 싶어서 부모님과 고향을 떠나 캄캄한 밤에 38선을 혼자 뛰어 넘어서 남한으로 온 다음 한 평생 고와와 나그네로 슬픔과 외로움을 몸에 지니고 살았지만, 하나님의 따뜻한 품 안에서 “은혜와 사랑과 위로”를 받으면서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귀중한 삶을 살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와 사랑” 때문이었고 신앙의 선배님들께서 “회개”와 “새벽기도”와 “주일성수의 예배”와 “순교 신앙”의 유산을 저의 몸에 부어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1948년 8월 38선을 혼자서 넘어 월남한 다음 2년 동안 서울에서 살다가 1950년 6.25 전쟁 때 대구로 피난 가서 3년 동안 중학생 생활을 했는데 저는 그 때 한국교회의 무디 라고 불리시던 이성봉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고 이성봉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부흥회에 12번은 참석하면서 너무나 큰 은혜와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성봉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부흥회에 참석하면서 토요일 새벽마다 안수기도를 받곤 했는데 기도 제목이 무엇이냐고 물으시면 “좋은 목사님이 되는 것입니다” 라고 대답을 하곤 했습니다. 몇 번 물으신 다음에는 기도 제목이 무엇이냐고 묻지도 않고 “너 기도 제목이 좋은 목사님이 되는 거지” 라고 하시면서 안수 기도를 해 주시곤 했습니다. 저는 안수기도를 12번은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저는 주님의 품으로 더욱 더 가까이 가게 되었고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사랑과 위로”를 듬뿍 받으면서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귀중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성복 목사님께 감사를 드리고 또 드립니다.

고등학생과 대학생 시절에는 힌국의 예레미아라고 불리시던 김치선 목사님의 사랑과 가르침과 기도를 받으면서 주님께로 더욱 더 가까이 가게 되었습니다. 김치선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던 새벽기도와 주일 아침 예배와 저녁 예배와 수요일 저녁 예배에 빠지는 일이 없었고 김치선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던 매년 연초마다 3일씩 인도하시던 금식기도회에 빠진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삼각산 관악산 부흥회는 물론 대구 주암산 부흥회까지 따라다니면서 깊은 은혜와 감동을 받곤 했습니다. 결국 저는 주님의 품으로 더욱 더 가까이 가게 되었고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사랑과 위로”를 듬뿍 받으면서 하나님의 따뜻한 품 안에서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귀중한 삶을 살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김치선 목사님께 감사를 드리고 또 드립니다.  



다섯째로, 하나님의 품에 안김과 품김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여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물론 이 세상 곳곳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안아주고 품어주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특히 불우한 형편에서 살아가는 북한 동포들과 모슬렘 사람들까지 안아주고 품어주는 귀중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몇 곳을 인용합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 우심이니라”(마 5:43-45).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 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 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눅 10:30-37).

저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들을 사랑하시고 안아주신 일을 생각하면서 강변교회에서 28년 동안 목회하는 동안 어린 아이들을 사랑하면서 자주 안아주곤 했습니다. 이레 라는 애기는 태어난 지 여덟 달 때부터 내가 안아주면 한 시간 또는 두 시간씩 내 품에서 자곤 했는데 이레가 5살 되었을 때 서대문으로 이사를 가서 나에게 예쁜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목사님께 메리 크리스마스. 안녕하세요. 목사님 저 이레예요. 목사님 저 어렸을 때 많이 돌봐주시고 기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 항상 챙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목사님 그리고 또 할 말이 있어요. 저 나중에 크면 놀러 갈께요. ♡ ♡ 해요. 이례 올림”(2004 12 21). 저는 지금도 그 편지를 찬송가 속에 넣고 다닙니다. 후에는 인도네시아로 갔는데 다음과 같은 메일을 써서 보냈습니다. “목사님 저 이레에요! 안녕하세요 목사님!! 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살고 있는 이레에요. 어릴적에 뵙고 많은 시간이 지나서 저도 벌써 고2가 됐는데 목사님도 연세가 더 많아지셨을 텐데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시는지 안부가 궁금했어요~ 저를 아직 기억하실지 모르겠어요. 이제 연락 드려서 죄송해요.. 그동안 많이 뵙고 싶었어요. 곧 방학이라 이번에는 한국 가서 꼭 찾아 뵙고 와야지 하는데 그래도 될까요? 자카르타에서 이레 올림”(2016.6.7). 이레는 2016년 7월에 저를 찾아와서 너무너무 반갑게 만났습니다. 이레뿐 아니라 저는 강변교회에서 어린 아이들을 자주 안아주곤 했는데 안아주는 것이 어린 아이들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것을 저는 너무 많이 발견했습니다. 이레와 주은이와 선희와 혜진이와 은정이와 하림이와 예은이와 예나가 그런 아이들이었습니다.

저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이지만 예수님께서 모든 죄인들과 병자들을 사랑하시고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주신 것을 생각하면서 이곳 저곳으로 달려 다니면서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곤 했습니다. 저는 본래 일본 사람들과 북한 사람들과 공산주의자들과 모슬렘 사람들을 멀리하면서 비판하던 반일 반북 반공 반 모슬렘 주의자였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조금씩 바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교회 지도자들을 존경하며 사랑하게 되었고, 북한 공산주의자들을 동족으로 받아드리면서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게 되었고, 어려움에 처한 모슬렘 사람들에게도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아프리카와 방글라데시와 북한과 중국 연변 지역과 아프가니스탄과 필리핀 산지와 파키스탄 등지를 찾아 다니면서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게 되었습니다. 저는 부족하지만 지난 18년 동안 중국 연변 지역의 불우한 조선족 어린이들 150여 명에게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면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들 중의 대부분은 고아들이고 상당수의 어린이들의 어머니는 북으로 잡혀갔습니다. 저는 지난 18년 동안 거의 매년 연변 지역을 방문하며 어린 학생들과 저들을 관리하는 지역 회장들을 만나며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고 있는데 그 동안 설교한 일도 전도한 일도 없지만 순수한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폈기 때문에 수 많은 어린이들과 학생들이 너무너무 고마워하면서 지역의 교회에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고 하나님을 모르던 지역회장들의 입에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들이 흘러나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또한 “악의 축” 이라고 불리는 아프가니스탄을 두 번 방문한 일이 있습니다. 첫 번 방문은 2003년 7월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50도의 뜨거운 열기와 먼지투성이 속을 걷고 달리면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낸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한국교회가 세워준 3개 학교의 개교 행사에 참여하면서, 내가 가지고 간 학용품 선물 가방들을 받아 들고 기뻐하는 수 많은 아프간 어린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학교 하나만 더 지어줄 수 없느냐고 나에게 다가와서 간청하는 압둘라우 장군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저는 아프간을 잊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저는 강변교회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드린 일억 수천만 원의 헌금으로 2년 후에 아프가니스탄의 쿤두스 지역 무랃취흐 마을에 학교를 하나 세울 수 있었고 이 학교의 준공을 기념하기 위해 아프간을 다시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황폐한 땅 아프간에 사는 어린이들을 잊을 수 없어서 1,400만원 상당의 선물 보따리를 가지고 2005년 12월 15일 밤 꽉 막힌 타직 국경과 과 아프간의 국경을 불법으로 혼자서 뛰어넘어 “지옥”과도 같은 아프간으로 갔습니다. 국경을 넘을 때 기적과 같은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16일 아침 10시 무랃취흐 학교 준공식을 거행했습니다. 400여명의 어린이들과 100여명의 모슬렘 지도자들이 학교로 들어가는 길 좌우편에 길게 서서 우리 일행을 열렬하게 환호했습니다. 10여 미터를 지날 때 마다 10여명의 어린이들이 노래를 부르고 종이로 만든 꽃다발을 목에 걸어주면서 우리들을 뜨겁게 환영했습니다. 이윽고 준공식이 거행되었습니다. 그 지역의 무슬렘 지도자들이 대거 참석했습니다. 주지사와 교육감등의 환영사가 있었습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는 내용의 환영사였습니다. 아프간 어린이들이 나와서 이런 노래를 불렀습니다. 발음이 정확한 한국말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할렐루야!”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400여명 학생들에게 Korean Church 라는 글이 인쇄된 가방과 티셔츠와 학용품 선물을 나눠주었을 때 저들은 너무너무 좋아했습니다. 가난의 빛이 진하게 드리워져 있었지만 귀엽고 예쁜 얼굴들에 행복한 웃음들이 꽃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사랑과 섬김의 손길” 앞에는 정치적인 이념도 종교적인 이념도 아무 힘을 쓰지 못한다는 사실을 눈으로 귀로 온 몸으로 체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불우한 이웃에게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일이 얼마나 귀중하고 아름다운 일인지를 온 몸으로 보고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또한 북한을 몇 번 방면하면서 북한의 종교 지도자들과 친밀한 교제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는데 1999년 1월 19일부터 26일까지 한국의 종교지도자들 7명이 북한을 방문하여 북한의 종교 지도자들과 친밀한 교제의 시간을 가졌고, 2002년 5월 21일부터 일주일 동안 한국의 종교지도자들이 다시 북한을 방문하여 친밀한 교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1997년 4월 3일에는 한국의 종교지도자들이 힘을 합해서 강원도의 감자 1690톤을 99대에 트럭에 실어 북한으로 보냈고, 2010년 8월 27일에는 한국의 종교지도자들 9명이 밀가루 300톤을 13대의 트럭에 싣고 개성으로 가서 북한의 민화협 실무자들에게 전달하고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 당시 밀가루를 가지고 북으로 가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강력한 대북 페쇄정책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통일부의 실무자들과 여러번 접촉하면서 방북을 허락해 주기를 간절하고 강하게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방북 예정 며칠 전 통일부 장관으로부터 방북을 허락할 수 없어서 미안하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저는 다음날 아침 통일부의 서 호 국장과 40여분 동안 전화로 비판과 충고가 담긴 아주 강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저의 평생 그렇게 강하고 비판적인 어조로 정부 당국자와 대화를 나눈 일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순수한 동기로 방북을 추진해 온 종교인들의 방북을 불허하는 것이 통일부의 반응이냐?” “통일부가 반 통일부냐?” “이 놈의 정부와는 상대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지금이라도 정책을 바꾸고 빨리 방북을 허락하도록 하라!” 는 등 아주 강한 어조로 비판과 충고의 말을 쏟아놓았습니다. 4 시간 후 서 호 국장으로부터 전회가 걸려왔습니다. 밀가루 300 톤을 가지고 방북을 하도록 허락한다는 통보였습니다. 저는 급히 우리 종교인들에게 연락을 취했습니다. 결국 방북 허락을 받은 8월 25일 이틀 후인 8월 27일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의 종교인들 9명(김대선 교무, 김명혁 목사, 김훈일 신부, 박경조 주교, 박남수 선도사, 박종화 목사, 법 륜 스님, 이정익 목사, 인명진 목사)이 방북의 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25톤 트럭 13대가 실은 밀가루 300톤을 가지고 북으로 가서 개성시내 봉동역 하차장에 하역하여 북측 “민화협” 실무자들에게 전해주었습니다. 북측 “민화협” 실무자들은 마음으로는 고마워하면서도 겉으로는 의식적으로 남측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과 비판과 분노를 나타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곳 여기 저기서 만난 북측의 군부 지도들이 제 옆으로 다가와서 귀속 말로 어떻게 이런 어려운 일을 했냐고 물었고 다음에는 언제 다시 오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종교인들은 몇 시간 동안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남북간에 현존하는 불신과 대결의 골이 깊은 것을 실감하며 서글픈 고민에 빠졌는데 그 서글픈 고민은 서울에 도착한 늦은 밤까지 우리 모두의 가슴을 가득 메웠다. “어떻게 하면 남북에 가로놓여있는 불신과 대결의 골을 메울 수 있을까?” 이것이 우리들의 고민이었고 결국 이것은 우리 종교인들과 국민들과 정부가 풀어가야 할 중대한 과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인들은 안아주시고 품어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사람들은 어루만짐을 받아야 하는 “접촉”의 존재들이고 안아줌을 받아야 하는 “안김”과 “품김”의 존재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어루만짐과 안아줌을 받을 때 우리는 한 없는 “은혜와 사랑과 위로”를 받게 됩니다. 사실 우리 사람들은 어머님의 품이 그립고 하나님의 품이 그리운 그리움의 존재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어루만져주시고 안아주시고 품어주시면 넘어지는 것도 겁이 안 나고, 병드는 것도 겁이 안 나고, 실패하는 것도 겁이 안 나고, 죽는 것도 겁이 안 납니다. “주님의 손으로 나를 안아주시고 품어주시옵소서.” 저는 이사야 46장 3절 4절을 너무 좋아하는데 그 말씀을 읽으므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야곱 집이여 이스라엘 집의 남은 모든 자여 나를 들을지어다 배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품기운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안을 것이요 품을 것이요 구하여 내리라”(사 46:3,4). 안아주시고 품어주시겠다는 말씀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 아버지, 나를 안아주시고 품어주세요” 라고 중얼거리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병들 때에도, 속상할 때에도, 지칠 때에도, 죽고 싶을 때에도 “하나님 아버지, 나를 어루만져주시고 안아주세요” 라고 중얼거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한 반도와 모두를 사랑으로 안고 품는 사랑과 섬김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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