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tv



 

   
 

   [10/08]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나누신 친밀한 대화 (사 6:8) - 청주 양성교회


제가 지난 5월 21일 주일 청주 양성교회에 처음으로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헌신과 축복의 은혜”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우리 모두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김진상 목사님이 이틀 후인 5월 23일 늦은 밤에 다음과 같은 감사의 글을 메일로 써서 저에게 보내주었습니다. “김명혁 목사님께 감사 드립니다. 양성교회에 오셔서 말씀 증거해 주시므로 온 성도들이 은혜 받게 하여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목사님께서는 한국교회를 위해서 오랜 동안 많은 일을 하셨고 지금도 크고 귀한 일들을 여전히 하시고 계신 것을 보면서 더욱 감동을 받았습니다. 더욱이 목사님께서는 권위적이지도 않으시고 소탈하시고 청렴하신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목사님께서 고통 받는 자들과 가난한 자들과 북한 동포들을 사랑하셔서 실제로 도우시고 돌보시는 일을 하시는 것을 보면서 감명을 받았습니다. 남과 북의 평화를 지향하시는 목사님의 마음이 주님의 마음이신 것도 보았습니다. 또 약한 교회 교역자인 저에게 용기를 주시려고 귀한 선물까지 해 주신 것 너무 고마웠습니다. 목사님 우리 교회가 주님의 은혜로 조금 더 나아 질 때 목사님께 다시 방문요청 드리려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2017년 5월23일 23시35분 양성교회 김진상목사 올림”


제가 그 다음 날 다음과 같은 답신의 글을 메일로 써서 보냈습니다. “사랑하는 김진상 목사님에게. 지난 주일 양성교회 방문은 참으로 감동적인 은혜로운 방문이었습니다. ‘아멘’으로 충만한 은혜를 사모하는 성도들의 모습은 참으로 귀중하고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은혜를 사모하는 그런 귀중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자주 보는 것은 아닙니다. 예배에 참석한 김진상 목사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 있는 몇 분 목사님들과 장로님의 모습도 은혜를 사모하는 순수한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은혜를 받았다고 고마워하면서 활달하게 고백하는 사모님의 모습도 귀중하게 보였습니다. 오랜만에 부흥회를 한 것 같다며 언제 또 오느냐고 물었는데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가겠습니다. 부족한 사람의 설교를 통해서 양성교회 성도들이 은혜를 받은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와 사랑 때문이고 은혜를 사모하는 성도들의 귀중한 모습 때문이고 그리고 부족한 제가 신앙의 선배님들로부터 물려 받은 영적 유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이 김진상 목사님 가정과 양성교회 위에 늘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017년 5월 24일 김명혁 목사”





오늘 아침에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나누신 친밀한 대화”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제가 이런 제목으로 설교하기는 평생 처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난 5월 25일 아침 제 사무실에서 양성교회를 생각하면서 갑자기 생각하게 된 설교 제목입니다. 사실 저는 이 설교를 넉 달 전인 2017년 6월 3일에 마련했고 그 후 여러 번 수정 보완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나누신 친밀한 대화”를 우리 죄인들은 감히 상상 할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사 6:8). 성부 하나님께서는 저주 받아 마땅한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실 생각을 하시면서 이와 같은 고민을 오래 전부터 성자 예수님과 성령 하나님 앞에서 털어놓으시곤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부 하나님께서 고민하시는 비통한 소리를 선지자 이사야가 듣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사 6:8).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성자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라고 평생 처음으로 죄를 처절하게 고백하면서 회개하는 선지자 이사야가 성부 하나님께서 부르짖으시는 비통한 고민 소리를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빌리 그레함 박사의 딸 안 그레함 롯츠 여사는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라는 말씀을 설명하면서 “하나님께서 소리 내어 부르짖는 비통한 음성” 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제가 2000년 7월 31일 화란 암스텔담에서 열린 암스텔담 전도대회에 참석하면서 안 그레함 롯츠 여사의 설교를 들었는데 안 그레함 롯츠 여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사야의 가슴은 깨어지고 녹아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리 내어 부르짖으시는 비통한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는데 저들을 위하여 누가 갈꼬? 라고 부르짖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이사야의 가슴은 깨어지고 녹아졌습니다.” 안 그레함 롯츠 여사의 설교는 영감이 충만한 너무너무 귀중한 은혜로운 설교였습니다.


저는 선지자 이사야가 들은 성부 하나님의 비통한 음성은 선지자 이사야 에게만 들려주신 음성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이 세상의 온갖 죄인들을 바라보시면서 비통하게 부르짖으신 성부 하나님의 음성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과 성령 하나님께서 제일 먼저 들으셨고 천사들도 들었고 나중에는 아브라함도 다윗도 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으로 충만하신 성부 하나님께서 비통하게 부르짖으시는 음성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비통한 음성을 성자 예수님께서는 이미 오래 전에 들으셨는데 성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을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이시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성부 하나님께서는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라는 비통한 부르짖으심을 자주 발하시곤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평생 처음으로 “화로다 나여” 라고 처절하게 자기의 죄를 고백하면서 회개하는 선지자 이사야가 성부 하나님께서 비통하게 부르짖으시는 음성을 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선지자 이사야는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서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성자 예수님께서 하신 그리고 앞으로 하실 대답을 선지자 이사야가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서 자기도 모르게 토로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다윗은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서 성자 예수님께서 나중에 토로하실 처절한 고백을 자기가 먼저 토로한 일이 있었습니다. 시편 22편을 읽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시 22:1). 오랜 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시면서 이렇게 부르짖으셨습니다.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마 27:46). 다윗과 이사야는 너무너무 귀중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나누신 친밀한 대화”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우리는 여기서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의 친밀한 또는 처절한 대화”를 발견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저주 받아 마땅한 세상의 모든 죄인들을 바라보시면서 그리고 성자 예수님을 바라보시면서 다음과 같은 친밀한 또는 처절한 대화를 하셨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이와 같은 친밀한 또는 처절한 성부 하나님의 대화를 들으시고 성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을 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이시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결국 성자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세상에 와서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면서 죽게 되셨습니다. 그리고 성부 하나님께 이렇게 처절하게 부르짖으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27;46).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렇게 호소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성부 하나님께서는 성자 예수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내가 네 영혼을 내 손에 담을 께.”


우리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께서 십자가 앞에서 나누신 친밀한 그리고 처절한 대화”를 들으면서 가슴이 무너지는 처절한 충격을 받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런 충격적인 고백을 했습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 1:22-25).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1-5).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빌 3:7-9). 사도 바울은 지극히 낮아지시고 그리고 지극히 높아지신 성자 예수님의 놀라운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6-11).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나누신 친밀한 대화”는 구약 시대에도 계속되었고 십자가 사건 앞에서도 계속되었고 그리고 그 후에도 계속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예루살렘교회의 일곱 집사들 중의 한 사람인 스데반 집사가 사도행전 6장과 7장에서 성령으로 충만해서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을 증거하다가 돌에 맞아서 죽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증거하는 모습을 인용합니다.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 사람들을 가르쳐 말시키되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행 6:10,11,14,15).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행 7:51-54). 저희가 스데반을 향해서 이를 갈며 돌을 들어 스데반 집사를 쳐서 죽이려고 했을 는데 스데반 집사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저들의 잘못을 지적하면서도 저들을 향해서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는 너무너무 기뻐하시면서 친밀한 대화를 나누셨다고 생각합니다. 스데반 집사가 성령이 충만하여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행 7:55,56). 아마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께서는 너무너무 기뻐하시면서 이런 대화를 나누셨을 것입니다. “어쩌면! 어쩌면! 성자의 모습을 지닌 참된 제자가 나타났단 말인가!” “성부 하나님, 그래요 그래요. 스데반 집사는 내가 십자가에 달렸을 때의 모습을 나타내 보이고 있어요.” 성령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면서 “그래요, 그래요, 너무 귀중하고 아름다워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는 친밀한 기쁨의 대화를 나누시면서 스데반 집사와 함께 하셨을 것입니다. 결국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분노와 증오는 털끝만큼도 없었습니다. 자기를 돌로 쳐서 죽이려는 사람들에 대한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의 모습을 지니고 저들을 위해서 사죄의 기도까지 드렸습니다.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 쌔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 7:57-60).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는 너무너무 기뻐하시면서 친밀한 대화를 계속해서 나누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스데반 집사를 축복하시고 스데반 집사의 기도를 들으시고 살인자 사울이 변해서 사도 바울이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행전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셨을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 성령 하나님께서는 또한 살인자 사울이 변해서 예수님에게 미쳐서 십자가의 복음만을 전하는 사도 바울이 된 것을 바라보시면서도 너무너무 기뻐하시면서 친밀한 대화를 계속해서 나누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이 가는 곳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고 사도 바울을 인도하시고 지도하시고 도우셨습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행 16:6,7).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행16:10).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행 18:9,10).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행 19:11,12).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3,24).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행 23:11).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너무너무 귀중한 모습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서 일어난 모든 일들이 사도 바울이 혼자서 일으킨 일들은 절대로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친밀한 대화를 나누시면서 사도 바울과 함께 하시고 사도 바울을 인도하셔서 일어난 일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가서 감옥에서 옥중 생활을 하면서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행 28:23)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행 28:30,31) 라고 했는데, 사도 바울 혼자서 한 일들은 절대로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친밀한 대화를 나누시면서 사도 바울과 함께 하시고 사도 바울을 인도하셔서 하게 하신 일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있는 동안 주님을 위해 자신에게 다가온 순교를 예상하면서 디모데 후서를 기록했는데 다음과 같은 고백을 했습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6-8). 결국 사도 바울이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신 성자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하늘의 성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로마에서 순교의 제물이 되었는데 순교의 제물이 되는 것을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바라보시면서 너무너무 기뻐하시면서 친밀한 대화를 계속해서 나누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살아있을 동안에는 예루살렘교회 이후 가장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들인 안디옥교회와 빌립보교회를 섬겼고, 순교 후에는 로마의 복음화와 세계의 복음화를 이루는 소금과 거름이 되는 귀중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놀라운 일들이 사도 바울의 너무너무 귀중한 제물 되는 삶과 제물 되는 죽음으로 이루어졌지만 사실은 사도 바울을 바라보시면서 나누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친밀한 대화와 함께 하신 손길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너무너무 심각한 내용의 설교를 했습니다. 우리 죄인들이 감히 상상 할 수도 없고, 감히 이해할 수도 없고, 감히 이야기할 수도 없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 성령 하나님의 친밀한 대화”에 대한 설교를 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들을 너무너무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시고 자비와 사랑을 베푸시는 놀라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 죄인들을 바라보시면서 친밀하면서도 처절한 고민과 탄식의 대화도 나누시고 기쁨과 감탄의 대화도 나누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는 사도 베드로가 배신을 세 번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했을 때도 비통하게 슬퍼하시면서 처절한 탄식의 대화를 나누셨을 것이고, 스데반 집사가 주님 닮은 순교의 죽음을 죽었을 때와 사도 바울이 예수님에게 미쳐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자기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순교의 길로 달려가는 것을 바라보시면서 너무너무 기뻐하시면서 친밀한 기쁨과 감탄의 대화를 나누셨을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저와 여러분들을 바라보시면서도 탄식의 대화나 또는 기쁨의 대화를 나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세밀하심에 대해서 다윗이 이렇게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주께서 나의 전후를 두르시며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찌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찌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찌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시 139:1-10). 저는 1983년 7월 12일부터 10일 동안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지도아래 화란 암스텔담에서 개최된 “국제 전도대회”에 참석해서 깊은 감동과 은혜를 받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스랜드 어느 여관 방에서 하루 밤을 자면서 시편 139편을 일다가 너무 깊은 충격을 받고 울고 또 울고 또 운 일이 있었는데 특히 17절과 18절을 읽으면서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찌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시 139:17,18). “그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라는 말씀에 저는 깊은 충격을 받으면서 울고 또 울고 또 울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 같은 것을 별로 바라보시지도 생각하시지도 않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되는 대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사실 자동차의 네비게이션도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운전을 잘 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를 너무 정확하게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운전하라고 타이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나의 안고 일어섬을 모르실 이가 없을 것입니다. 내가 잘 하고 있는 것도 잘못하고 있는 것도 다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생각하고 계시는 것이 너무 많아서 모래보다 많다고 다윗이 고백했습니다. 나의 생각과 느낌과 행동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들입니까? 하나님께서 탄식하시는 것들입니까?






이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부터 우리 죄인들을 바라보시면서 우리들을 죄악에서 구원하실 방법을 생각해 오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부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성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시기 전에 그 생각을 성자 예수님과 성령 하나님께 말씀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친밀한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성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을 하셨을 것입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오랜 후에 선지자 이사야가 성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선지자 이사야는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서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고백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그 후 선지자 이사야는 오실 메시야를 전파하는데 전 생애를 바쳤습니다. 스데반 집사도 사도 바울도 나중에는 사도 베드로도 사도 요한도 주님의 안타까워하시는 음성을 듣고 이렇게 대답을 했을 것입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그리고 모두 주님을 증거하는 전도와 선교와 순교의 길로 걸어갔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너무너무 기뻐하시면서 피차 친밀한 대화를 나누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롯 유다를 바라보시면서는 슬픔과 탄식의 대화를 나누셨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습니까?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기쁨의 대화를 나누실 만한 순수하고 귀중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슬픔과 탄식의 대화를 나누실 만한 불순하고 귀중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습니까?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들께서 걸어가신 주님 닮은 온유와 겸손과 용서와 사랑과 섬김과 충성과 순교의 삶을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닮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성봉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과 장기려 박사님들께서 걸어가신 주님 닮은 온유와 겸손과 가난과 고난과 사랑과 섬김과 화해와 평화의 삶을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닮게 되기를 바랍니다. 찬송가 348장 “나의 생명 드리니”를 함께 부르겠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등록일
830  [11/26] 어떻게 살 것인가? 범사에 감사하며 (살전5:16-18 ) - 자 닮인 요양병원      21TV 2017/12/01
829  [11/19] 어루만져 주시고 안아주시는 위로의 하나님 (왕상 19:1-8 사 46:3,4 ) - 강변교회(      21TV 2017/11/20
828  [11/12] 성령으로 거듭나는 올바른 신앙생 (요 3:3-5, 행 2:37-42 ) - 수원 옥토교회      21TV 2017/11/13
827  [11/05] 전도와 섬김의 삶 (막 1:38,39, 10:45) - 하르빈 신흥교회(오후2시)      21TV 2017/11/09
826  [11/05] 상하고 통회하는 회개의 영을 부어주시옵소서! (시 34:18, 51:17) - 하르빈 신흥교회(      21TV 2017/11/09
825  [10/29] 내가 좋아하는 12가지 말씀 (눅11:28, 요 5:39, 딤후 3:15 ) - 전주 부르심교회      21TV 2017/10/30
824  [10/22] 헌신과 축복의 은혜 (롬 12:1) - 부천 주님의 교회 (오후 2시)      21TV 2017/10/23
823  [10/22] 주님 사랑, 교회 사랑, 이웃 사랑 (마22:37-40, 요21:15-17) - 부천 주님의 교회      21TV 2017/10/23
822  [10/15] 신앙 오도의 삶 (막1:14,15,요14:1-3) - 양주 예닮 제자교회(2시)      21TV 2017/10/16
821  [10/15] 복음 삼도의 삶 (막 1:14,15, 요 13:34,35, 막10:45) - 양주 예닮 제자교회(11시)      21TV 2017/10/16

1 [2][3][4][5][6][7][8][9][10]..[83] [다음 10 개]

 
 
http://21tv.org/bbs/zboard.php?id=kangbyun
 
  플로리스트 고급과정 회원...
영상 서비스가 업그레이드 ...
가을을 여는 성전꽃꽂이 세...
FFC 송년모임 및 성탄장식 ...
성전꽃꽂이 연구회 회원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