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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21]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마 9:12,13, 요 4:6-8 ) - 포천 새힘교회


제가 2008년 1월 13일 주일 강변교회에서 은퇴한 다음 지난 13년 1개월 동안 매주일 전국의 작은 교회들을 주로 방문하면서 설교를 하고 있는데 포천 새힘교회는 매년 9월 마지막 주일에 한번씩 지금까지 12번 와서 설교를 했습니다. 2008년 9월 28일 주일 포천 새힘교회에 처음으로 와서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09년 9월 27일 주일 두 번째로 와서 “어린 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0년 9월 26일 주일 세 번째로 와서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1년 9월 25일 주일 네 번째로 와서 “예수란 이름의 의미”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2년 9월 30일 주일 다섯 번째로 와서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3년 9월 29일 주일 여섯 번째로 와서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가”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4년 9월 28일 주일 일곱 번째로 와서 “부자와 나사로가 주는 교훈”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5년 9월 20일 주일 여덟 번째로 와서 “십자가의 도”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6년 9월 25일 주일 아홉 번째로 와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7년 9월 24일 주일 열 번째로 와서 “인생과 주인”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8년 9월 30일 주일 열한 번째로 와서 “에녹의 믿음처럼”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9년 9월 29일 주일 여기 열두 번째로 와서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제가 2020년 9월 27일 주일 설교를 하려고 했는데 포천 새힘교회의 사정으로 2021년으로 연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2021년 2일 21일 주일 여기 열세 번째로 와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병호 목사님은 제가 올 때마다 거의 매 번 제가 할 설교의 본문과 제목을 정해 놓고 저보고 설교를 하라고 부탁을 하곤 합니다. 이병호 목사님이 오늘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라고 정해서 주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마 9:12,13, 요 4:6-8 말씀을 본문으로 삼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성자 예수님을 직접 만나서 예수님을 믿게 되고 삶이 변화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주 이상한 일은 성자 예수님을 직접 만나서 예수님을 믿게 되고 삶이 변화된 사람들의 대부분이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던, 온갖 죄와 허물로 가득한, 저주 받아 마땅한 죄인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또 한가지 이상한 일은 이와 같은 저주 받아 마땅한 죄인들이 먼저 성자 예수님을 찾아와서 만난 것이 아니고 성자 예수님께서 먼저 저들을 찾아가서 만나주시기도 했고 그리고 저주 받아 마땅한 죄인들에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의 손길을 먼저 펴신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의인을 부르러 오시지 않고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 9:12,13). 너무 이상한 말씀이지만 제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성자 예수님께서 의인들을 부르러 오시지 않고 죄인들을 부르러 오셨고, 건강한 사람들보다는 병든 자들을 부르러 오셨다는 이야기와 그래서 죄인들과 병자들이 성자 예수님을 만나게 된 이야기들을 하려고 합니다.







첫째로, 사마리아의 수가성 여인이 성자 예수님을 만남으로 삶이 변화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수가성 여인은 부도덕한 여인이었습니다. 남편 다섯과 또 한 사람을 두었던 부도덕한 여인이었습니다. 상대할 가치가 없는 멸시를 받아 마땅한 부도덕한 여인이었습니다. 수가성 사람들은 그 여인을 만나기를 꺼려했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은 사람들 만나기를 피하면서 사람들이 물 길러 오지 않는 정오 시간에 물을 길러 우물로 왔습니다. 그런데 성자 예수님께서 바로 그 시간에 맞추어 수가성 우물로 가셨습니다. 수가성 여인을 만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천사의 모습으로 가시지 않고 수가성 여인과 비슷한 목이 마르시고 피곤하신 모습을 지니시고 가셨습니다. 보잘것없는 가치 없는 죄인을 만나시기 위해서 피곤하고 목마르신 모습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먼저 말을 걸으셨습니다.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제 육시쯤 되었더라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요 4:6,7).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죄인을 만나시려고 사마리아의 수가성으로 가시는 것 싫어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예수님께서 수가서 여인과 이야기 하시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겼다고 했습니다. “이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저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이가 없더라”(요 4:27). 수가성 여인은 성자 예수님을 만났을 때 처음에는 매우 부정적이었습니다. 거부감까지 나타내 보였습니다. “당인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요 4:9) 라고 말하면서 대들었습니다. 그러나 성자 예수님께서는 참고 인내하시면서 그 여인의 부정적이고 거부적인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주셨습니다. 결국 그 여인은 성자 예수님 앞에 항복을 했습니다.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요 4:19). 그 여인의 마음과 영혼의 움직임이 바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여인은 메시아 곧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운명이 바뀌어졌습니다. 그녀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만난 다음 수가성으로 달려가서 만나기 싫어하던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리스도 주님을 증거까지 했습니다.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요 4:28-30). 어떻게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까? 성자 예수님께서 멸시와 저주를 받아 마땅한 수가성 여인을 찾아가셔서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시면서 만나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수가성 여인은 성자 예수님을 만남으로 삶이 변화되고 운명이 변화되었습니다.







둘째로, 막달라 마리아가 성자 예수님을 만남으로 삶이 변화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인간 쓰레기였습니다. 눅 8:2에 보면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이 나간 사람이었다고 했습니다. “일곱 귀신이 나간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눅 8:2). 이 말씀에 대한 세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첫째 해석은 막달라 마리아가 문자적으로 일곱 귀신 들려서 미쳤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몸도 마음도 정신도 영혼도 모두 파괴되어서 사람으로서의 구실을 할 수 없었던 폐인이었다는 것입니다. 둘째 해석은 막달라 마리아가 부도덕한 길거리의 여자였다는 것입니다. 이 해석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눅7장에 나오는 죄인인 한 여자를 막달라 마리아와 동일시 합니다. 셋째 해석은 막달라 마리아가 일곱 가지 죄악의 늪에 빠졌던 죄인중의 죄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스코트랜드의 유명한 설교자 매클라렌이 그렇게 해석을 했습니다. 그 일곱 가지 죄악은 단테가 기술했던 일곱 가지 죄악인데 교만, 시기, 분노, 음란, 탐욕, 무절제, 영적 게으름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자 예수님께서는 인간 쓰레기였던 막달라 마리아에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시면서 만나주셨습니다. 그와 같은 행동은 윤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 판단할 때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드릴 수도 없는 행동이었을 것입니다. 안락사 시켜야 마땅한 인간 폐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막달라 마리아를 만나신 이야기를 성경은 자세히 서술하지는 않습니다. 눅 7장에 나오는 죄인인 여인이 막달라 마리아라면 막달라 마리아가 어느 길가에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시는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 9:13) 라는 말씀을 듣고 가슴에 깊은 감동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한 바리새인의 집에 초청을 받으셨다는 말을 들고 그 곳으로 달려갔다고 생각합니다. 눅 7장 말씀을 인용합니다.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눅 7:36-38). 성자 예수님께서는 죄인인 한 여인의 눈물과 향유를 귀중하게 보시면서 죄인인 한 여자 즉 막달라 마리아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귀신의 쇠사슬에서 건져 내셨고, 윤락의 늪에서 건져 내셨고, 죄악의 덫에서 건져 내셨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놀라운 축복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 하시니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눅 7:48,50). 눅 8:1-3에 보면 막달라 마리아가 열두 제자들과 함께 성자 예수님을 섬기는 제자의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반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 쌔 열 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눅 8:1-3). 얼마나 놀랍고 귀중하고 아름다운 일인지 모릅니다. 부활하신 성자 예수님께서 제일 먼저 자신을 나타내 보이신 사람이 바로 막달라 마리아였고 십자가와 부활의 메시지를 제자들에게 가서 전하라고 부탁하신 사람이 바로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어떻게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까? 성자 예수님께서 “저주 받아 마땅한 인간 쓰레기”에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시면서 만나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막달라 마리아는 성자 예수님을 만남으로 삶이 변화되고 운명이 변화되었습니다.







셋째로, 간음 현장에서 붙잡혀 돌에 맞아 죽을 뻔 했던 여자가 성자 예수님을 만남으로 삶이 변화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간음 현장에서 붙잡혀 돌에 맞아 죽을 뻔 했던 여자에게 나타내 보이신 성자 예수님의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살펴보겠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간음 현장에서 잡힌 남자와 여자는 둘 다 돌에 쳐서 죽이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한 여자를 끌고 와서 돌로 치기 전에 예수님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고 물었습니다. 성자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때 성자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고 손 가락으로 땅에 글을 쓰시면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결국 사람들이 하나씩, 하나씩 돌을 내려놓고 모두 그 자리에서 떠났고 성자 예수님과 그 여자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 때 성자 예수님께서는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 여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하던 자가 없느냐?” 그 여자는 울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주여 없나이다.” 그 때 성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 8:11). 간음 현장에서 붙잡혀 돌에 맞아 죽을 뻔 했던 그 여자는 살아났습니다. 몸만 살아난 것이 아니고 그의 마음도 영혼도 살아났습니다. 아마 그 여자도 막달라 마리아와 비슷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을 것입니다. 평생 울면서 주님의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을 수 많은 죄인들에게 전하고 또 전하는 성자 예수님의 증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까? 성자 예수님께서 “돌에 맞아 죽어 마땅한 인간 폐인”에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시면서 만나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간음 현장에서 붙잡혀 돌에 맞아 죽을 뻔 했던 여자는 성자 예수님을 만남으로 삶이 변화되고 운명이 변화되었습니다.  







넷째로, 온갖 죄인들 뿐 아니라 각색 병에 걸려서 고통을 당하던 여러 종류의 병자들이 성자 예수님을 만남으로 병 고침을 받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마 8장과 9장에 각색 병자들이 성자 예수님을 만나서 병 고침을 받은 이야기가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일 먼저 한 문둥병자가 성자 예수님을 만나서 병 고침을 받은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 한 문둥병자가 나아와 절하고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진지라”(마 8:1-3).



그 다음에 중풍병에 걸려서 괴로워하던 한 백부장의 하인이 성자 예수님을 만나서 하인의 병 고침을 간구했더니 그 하인의 병이 고침을 받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가로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와하나이다 가라사대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찌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마 8:5-8,10,13).



그 다음에 베드로의 장모가 성자 예수님을 만남으로 열병에서 고침을 받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마 8:14,15).



그 다음에 귀신들린 자들과 병든 자들이 성자 예수님을 만남으로 고침을 받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마 8:16,17).  



그 다음 마 9장에 침상에 누운 한 중풍병자가 성자 예수님을 만남으로 병 고침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마 9:1,2,6,7).



그 다음에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한 여자가 성자 예수님을 만남으로 병 고침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일어나 따라 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마 9:19-22).



그 다음에 한 직원의 딸이 죽었었는데 성자 예수님을 만남으로 살아남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직원이 와서 절하고 가로되 내 딸이 방장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으소서 그러면 살겠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그 직원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훤화하는 무리를 보시고 가라사대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저들이 비웃더라 무리를 내어 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마 9:18,23-26).



그 다음에 두 소경이 성자 예수님을 만남으로 눈들이 밝아져서 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가실쌔 두 소경이 따라 오며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소경들이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대 그 눈들이 밝아 진지라”(마 9:27-30).



그 다음에 귀신 들려 벙어리 된 자가 성자 예수님을 만남으로 귀신이 쫓겨나고 벙어리가 말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희가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벙어리 된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귀신이 쫓겨나고 벙어리가 말하거늘 무리가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때가 없다 하되”(마 9:32,33).



그 다음에 성자 예수님께서는 두루 다니시면서 천국복음을 전파하시고 그리고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다고 기록했습니다.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마 9:36).



성자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두루 다니시면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모든 죄인들의 죄를 사하시고 모든 병자들의 병을 고치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고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그리고 재림하실 우리 죄인들의 영원한 구세주이십니다.







다섯째로, 성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던 로마 군인들이 성자 예수님을 만남으로 삶이 변화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던 저주받아 마땅한 로마 군인들에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으로 충만하신 모습으로 나타나 보이셨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던 포악한 로마 군인들을 향해서 분노와 증오와 저주를 나타내 보이시는 대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으로 충만하신 모습을 지니시고 다음과 같은 사죄의 기도를 성부 하나님께 올려 드리셨습니다. 가상 칠언 중의 첫 번째 말씀이었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이와 같은 사죄의 기도는 베드로는 물론 하늘의 천사들도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 드릴 수도 없는 모순되는 기도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모순되어 보이는 사죄의 기도가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로마 군인들을 지휘하던 백부장이 성자 예수님의 사죄의 기도 소리와 강도 한 사람에게 하시는 축복이 말씀을 듣고 그리고 성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 “다 이루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바라보면서 충격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눅 23:47). 성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던 가장 악독한 로마 군인들에게, 지옥의 저주를 받아 마땅한 죄인들에게, 어떻게 이런 놀라운 영혼의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지옥의 저주를 받아 마땅한 자기들을 위해서 사죄의 기도를 드리시는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으로 충만하신 성자 예수님을 자기들 눈앞에서 생생하게 만났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진리의 칼을 휘두르셨기 때문은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사실 진리의 칼은 사람들을 죽이고 은혜의 손길은 사람들을 살린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성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던 로마 군인들이 성자 예수님을 만남으로 삶이 변화되고 운명이 변화되었습니다.  







여섯째로, 십자가에 달려서 죽어가던 한 강도가 성자 예수님을 만남으로 삶이 변화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강도는 이스라엘 국법에 의해서도 처형 받아 마땅한 죄인이었고, 이스라엘의 종교법에 의해서도 저주 받아 마땅한 죄인이었습니다. 한 강도는 평생 죄만 짓던 범죄자였습니다. 회개한 일도 없었고, 예수님을 믿은 일도 없었고, 교회를 다닌 일도 없었고, 세례를 받은 일도 없었습니다. 평생 죄만 짓던 범죄자였고 세상을 원망하면서 죽어가던 강도였습니다. 사실 십자가에 달려서 죽어가던 다른 강도는 세상을 원망하고 그리고 자기 옆 십자가에 달려서 죽어가던 예수님을 비방하고 있었습니다.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눅 23:39). 그런데 한 강도는 원망하며 비방하는 자기 동료 강도를 바라보면서 원망도 분노도 증오도 나타내 보이시지 않았고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로마 군인들을 위해서 기도하시는 성자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성자 예수님의 입에서 다음과 같은 간절한 기도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을 한 강도는 들었을 것입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결국 한 강도는 마음에 감동을 받게 되었고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강도는 성자 예수님을 비방하는 동료 강도를 꾸짖으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는 것이 없느니라”(눅 23:40,41). 한 강도는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성자 예수님을 향해서 이렇게 호소했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눅 23:42). 한 강도는 흐느끼면서 호소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유창한 설교였습니까? 진리의 칼이었습니까? 아니었습니다. 저주받아 마땅한 죄인들을 바라보시면서 분노와 정죄의 말씀을 하시는 대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이 충만하신 모습을 지니시고 사죄의 기도를 드리시는 성자 예수님을 옆에서 바라보면서 만나 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한 강도는 이렇게 호소하게 되었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눅 23:42). 한 강도의 진솔한 호소에 대한 성자 예수님의 응답은 너무너무 놀라웠습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 성자 예수님께서는 저주 받아 지옥 불에 떨어져야 마땅한 마귀새끼 같은 죄인들에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도움과 축복의 손길을 펴시는 놀라운 분이십니다. 결국 한 강도는 성자 예수님을 만남으로 삶이 변화되고 운명이 변화되었습니다.







일곱째로,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던 사울이 성자 예수님을 만남으로 삶이 변화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사울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와 사랑을 도저히 받을 수 없는 저주 받아 마땅한 죄인 중의 괴수였습니다. 사실 사도 바울은 나중에 다음과 같은 고백들을 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24).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그런데 의인들 보다는 죄인들을 부르시러 오신 성자 예수님께서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던 사울을 부르셨습니다. 사울이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서 죽인 다음에 성자 예수님께서 사울을 부르시었습니다. 아마 스데반 집사가 순교의 죽음을 죽으면서 사울의 죄를 용서해달라는 사죄의 기도를 드렸는데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행 7:59,60, 8:1, 9:1,2 말씀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 7:59,60).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행 8:1).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 함이라”(행 9:1,2).



사실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던 서울은 성자 예수님을 만날 자격이 전혀 없던 반 스데반적이고 반 그리스도적이고 반 기독교적인 저주받아 마땅한 죄인중의 괴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너무너무 이상하게도 성자 예수님께서 사울을 부르셨고 사울을 만나시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9장 1,2 절에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 함이라” 라고 지적했는데 사도행전 9장 3,4절에 성자 예수님께서 사울을 부르시면서 사울을 만나셨다고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행 9:3,4). 너무너무 놀라운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사울의 삶과 운명은 완전하게 변화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들 중의 일부를 인용합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찌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빌 2:17,18).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7,8).




여덟째로, 배신자 베르도와 그를 따라 고기 잡으로 디베랴 바다로 갔던 여섯 제자들이 자기들을 찾아오신 부활하신 성자 예수님을 만났을 대 그리고 자기들에게 하시는 일곱 마디 말씀들을 한 마디 한 마디 들으면서 통곡하며 회개했을 때 저들의 배신적인 삶이 완전히 변화되고 저들의 운명이 변화된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시간이 없어서 하지 못합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의인들보다는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시고 만나주시는 너무너무 귀중하시고 고마우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삶과 운명을 변화시켜주시는 너무너무 고마우신 분이십니다. 지금까지 성자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을 믿게 되고 삶이 변화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하신 귀중한 말씀을 다시 인용합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 9:13). 우리 죄인들이 성자 예수님을 만나고 또 만나고 또 만나는 일이 너무너무 귀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부족하고 또 부족한 우리들로 하여금 성자 예수님을 만나고 또 만나고 또 만나면서 살다가 죽게 하시기를 바라고 소원합니다. 성자 예수님을 친밀하게 만나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의인들이 되지 말고 죄인들이 되어야 하고 그래서 회개하고 또 회개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의인들이 되기를 소원하는 우리들로 하여금 죄인들이 되어서 사도 바울처럼 길선주 목사님처럼 이기풍 목사님처럼 이성봉 목사님처럼 김치선 목사님처럼 평생토록 회개하면서 성자 예수님을 친밀하게 만나게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사랑하는 이병호 목사님과 포천 새힘교회에 하나님께서 은혜와 사랑과 위로와 평안과 기쁨과 축복을 충만하게 채워주셔서 성자 예수님을 친밀하게 만나게 하시고 삶이 변화되게 하시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회개와 예배와 사랑과 섬김이 충만한 귀중한 삶을 살다가 죽게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며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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