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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WCC 부산총회에 대한 비판적 평가와 복음주의적 제안 - 피터 바이어하우스



                   2013년 부산 WCC 총회에 대한 비판적 평가 및 복음주의적 제안


                                                                                      피터 바이어하우스 박사
                                           (튜빙겐대학 교수, 1980년 여의도 세계복음화대성회 강사)


2010년 한국 NCC(National Christian Council)는 2013년에 열리는 WCC(World Council of Churches) 제 10차 총회를 한국 부산에서 개최하도록 초청하기로 결정했다. 그것은 극동에서 최초로 열리는 WCC 총회가 될 것이다. 이런 선택을 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부는 한국 NCC를 위한 것이고, 일부는 WCC 제네바 본부의 의견을 고려한 것이다. 아마 WCC 제네바 사람들은 영적으로 활기찬 기독교 공동체로 유명한 나라에서 총회를 개최하는 것이 WCC가 장차 발전하고 부흥하는데 영향력을 발휘하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I. WCC의 현 상황.
현재 WCC는 자신들이 다소 병든 상태임을 깨닫고 있다. 과거 전 총무들인 비서트 후프트(W. A. Visser't Hooft)나 필립 포터(Philip Potter), 그리고 중앙 위원회 인도인 의장 토마스(M. M. Thomas) 같은 정력적이고 비전에 사로잡힌 지도자들을 수장으로 1961년 뉴델리와 1968년 웁살라에서 유명한 총회들이 열렸던 시대에 볼 수 있었던 의욕과 추진력은 1991년 캔버라에서 제 7차 총회가 열린 후 사라져버렸다. 중요한 회원 교회들인 정교회(Orthodox) 전체가 프로그램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끈 몇 가지 사건들, 특히 한국 훼미니스트 신학자 정현경 박사가 ‘성령이여, 오셔서 모든 피조물을 새롭게 하소서’라는 총회 주제라는 명목으로, 이른바 초혼제, 곧 죽은 자의 한(恨)맺힌 영혼을 불러낸 샤마니즘적 의식을 거행한 것에 대해 극도의 불만을 표했다.
정교회는 이것을 WCC가 공개적으로 혼합주의적인 행보를 시작했다는 증거로 보았다. 게다가 그들은 에큐메니칼 의사결정을 서구의 국회 규칙과 이데올로기적 개념들을 따르는 직원들과 협의회 당국이 쥐락펴락하고 있다고 불평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WCC 시스템 전체가 철저히 개혁되지 않으면 회원에서 탈퇴하겠다고 위협했다. 지난 재임 기간 시 WCC의 콘라드 라이저(Konrad Raiser) 총무는 이전의 권위주의적 스타일을 보다 민주적인 협의회 별 책임제로 바꾸라는 정교회의 요구에 따랐다. 그 때로부터 제네바의 리더십은 굵직한 선언들을 하고 미리 생각한 의제를 회원 교회들에게 시행하는 것을 다소 자제했다. 그 결과 WCC는 세속 언론에서 그리고 심지어 서구 각국의 회원 교회들에게서조차 대중들의 관심을 많이 잃어버렸다.

II. WCC의 신학적 방향에 관한 전통적인 복음주의자들의 관심사
전세계 복음주의 교회와 선교회들은 WCC 선언들과 에큐메니칼 활동들이 성경적 기초가 불안정한 것에 대해 우려한다. 그들은 특히 영혼 구원을 위한 전도와 20/40 창 내의 미전도 지역 내에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 공식 의제에서 대단히 하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한탄한다. 나는 고(故) 도날드 맥가브란(Donald McGavran) 박사가 1968년 제네바 기획단에 공개적으로 던진 “웁살라는 20억을 배신할 것인가?”라는 비판적 도전을 기억한다. 그가 말하는 20억이란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복음을 들어볼 기회를 한 번도 갖지 못한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웁살라 섹션 별 초안을 보면 세계 복음화에 대한 것은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웁살라에서 주된 관심사는 2, 3 세계 사회 정치적 구조의 ‘인도주의화’였기 때문이었다.
WCC 지도부는 그들이 교회의 선교적 소명을 포기했다는 것을 부인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용어 아래 보급된 선교와 복음화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개발시켜왔다. 이 개념이 함축하고 있는 것은 ‘선교’가 주로 교회에 부과된 과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선교는 그보다 세상에 임재하시는 삼위 하나님 자신의 일로 이해된다. 이 견해에 따르면, 하나님, 그리스도 혹은 성령이 세상을 정해진 목표인 ‘하나님의 나라’로 이끌고 있다. 교회들은 이 과정에서 인간적인(human) 도구가 될 수 있거나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이 실패하면, 하나님은 다른 도구들을 사용하실 것이다. 그 도구는 다른 종교들이 될 수도 있고 정치 해방 운동들이 될 수도 있다. 여기에서 두 가지 필수적 구분이 제거되었다. 하나는 신성한 것과 세속적인 것 간의 구분이고, 다른 하나는 구원 역사와 인류 역사 간의 구분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WCC 대변인이 Missio Dei에 대한 그들의 이해에 공산주의 집단들 역시 포함시킨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이것은 1989/90년 소비에트 시스템의 붕괴를 통해 전세계가 뒤집어질 때까지 WCC가 선지자적 주장을 한다고 하면서 공식적으로나 모임에서 했던 정치적 선언 중, 공산주의 통치자들이 자행한 억압과 핍박 행위에 대해 다룬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로 귀착되었다. 그런 억압과 핍박은 빼버리고 그저 ‘선택적인 분노’만 표명했다. 이 현상은 북한의 그리스도인 핍박에 관해 침묵을 지키는 듯이 보이는 것에서도 볼 수 있다. 지금까지 그것은 2013년 부산 총회 준비 문서에서 ‘쟁점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III. 부산 총회 준비 문서에 나와 있는 선교와 전도의 개념 비판적 평가
올해 9월에 WCC 중앙 위원회는 그리스 크레타에서 열린 모임에서 WCC 세계 선교와 전도 위원회 의장 쿠릴로스(Geevaghese Mor Coorilos) 감독이 제출한 긴 진술을 승인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제목으로 되어 있다. ‘함께 생명을 향해: 변화하는 조망에서 선교와 전도(Together towards life: mission and evangelism in changing landscapes)’ 그것은 1982년 ‘선교와 전도--에큐메니칼 주장(Mission and Evangelism--an Ecumenical Affirmation)’ 이라는 이름으로 선교에 대한 에큐메니칼 선언이 발표된 이후에 나온 최초의 선언이다. 쿠릴로스에 따르면, 이 새로운 진술은 “변화하는 세계적 조망 한 가운데서 선교와 전도의 실천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위한 비전, 개념, 방향을 추구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이 진술의 신학적 관심에 대해서는, 그것이 삼위일체(missio Trinitatis), 특히 ‘생명을 주시는 분’인 “성령의 선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증진할 것으로 기대된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그것은 선지자적 선교학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명확히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것은 정의, 창조의 총괄성 및 온전함과 관련해서, 충만한 ‘생명’을 단언하는 선교학이다.”
이것은 대담하고 지대한 영향을 가져올만한 발언이다. 그것은 선교학, 즉 선교 신학과 실천에 관한 교리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도입하고, 또한 ‘충만한 생명’이 무엇인지 개진할 것을 약속한다. 1986년 ‘협의회적 과정(Conciliar Process)’이 시작된 이래 에큐메니칼 운동의 새롭게 확장된 목표에 대해 특별히 언급된다. 그 목표는 ‘정의, 평화, 창조 세계의 보전’이었다--혹은 지금도 그렇다. 이 목표 배후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이전의 모든 고난이 제거된 완전히 새로워진 세계, 메시아적 통치 혹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성경의 예언들에서 보여진 새로운 창조세계에 대한 기대다. M. M. 토마스(Thomas)는 그것을 WCC의 ‘유토피아 비전’이라고 부른다.
쿠릴로스 감독은 새로운 사명 선언서가 이미 지금 ‘엄청난 주의’를 끌었다고 주장한다. 이 사실은 복음주의자들이 그 문서를 철저히 연구하도록 하는 동기가 될 것이며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 부산 총회에 제출된 ‘새 선교학’이 어떤 점에서 이전 선교학의 중심 요소들을 여전히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식으로 선교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이해와 그에 부응하는 새 방법론과 실천을 소개하는지 찾아보기 위해서다.
연속성은 그들이 Missio Dei, 즉 1952년 윌링겐(Willingen)에서 열린 제 5차 세계 선교 총회에서 소개되었던 하나님의 선교라는 개념을 인계 받은 것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중대한 일보 전진으로 선교학자들의 환호를 받았다. 그것은 선교의 신 중심적 기초를 새롭게 강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52년 윌링겐에서 이미 Missio Dei라는 용어의 내용을 이루는 두 개의 반대되는 관심사가 무엇인지 드러났다.
한 편으로는 ecclesio-centric(교회 중심적) 견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선교의 하나님은 인류를 십자가에서 그들의 죄로부터 구속하시기 위해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그 분의 선교를 시작하셨다. 예수님은 온 세상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그 분 자신이 행하신 구원의 일을 계속하도록 위임받은 그 분의 몸인 교회를 설립하셨다. 그래서 믿음과 회개로 그 복음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죄 용서, 하나님과의 평화, 영생을 발견하게 하셨다. 모든 민족이 복음을 듣고 받아들이든 거부하든 반응을 보였다면, 종말은 올 것이다. 예수님은 큰 권능과 영광 가운데 오셔서 그 분의 메시아 왕국을 건설할 것이다(마 24:14; 막 13:10).
다른 한 편, cosmo-centric(세계 중심적) 견해가 있었다. 이 견해에 따르면 하나님 자신이 세계 역사에 존재하고 계시며, 그것을 그 분이 정하신 목표, 여기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설립하는 것으로 직접 이끌고 가신다. 선교와 정치 간의 관계에 대한 이해가 세속화를 가져오는 결과를 낳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 강의 제 I부에서 이미 지적한 바 있다.
이 때문에 1968년 웁살라 총회 이후, 선교와 전도에 대한 두 개의 상충하는 개념 및 조직들 간에 경쟁이 일어났다. 그것은 ‘방콕 73’과 ‘로잔 74’라는 이름으로 상징된다. 이 둘 간에는 어떠한 협력도 있을 수 없고 오직 서로 상대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상대방의 입장에 대해 공공연히 비난만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전의 충돌은 힘을 잃은 듯하다. 양측 다 상대방에게 귀를 기울이려 하고 심지어 선교와 전도에 대한 그들의 개념들을 수용하기까지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명 선언서에 그럴듯하고 합법적인 것처럼 보이는 몇 가지 관심사를 포함시켰다. 이것은 그들의 주요 문서들, 곧 한 편으로는 1974, 1989, 2010년에 있었던 로잔 운동의 세 국제 회의에서 나온 선언들과 다른 한 편으로는 1982년과 2012년에 나온 두 개의 WCC 선교 성명서에 대한 분석에서 볼 수 있다.
특히 부산 총회를 준비하면서 씌어진 글, ‘함께 생명을 향해’는 얼핏 보면 다소 영적인 언어로 씌어진 것같다. 그것은 ‘성령’, ‘생명’, ‘창조’, ‘하나님 나라’ 같은 몇 개의 성경적 핵심 용어들을 사용한다. 그 사명 선언서는 10차 WCC 총회의 전체 주제인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인도하소서’와 긴밀한 조화를 이루려 애쓴다. 전체 주제에서 ‘생명의 하나님’ 이라고 부르는 신적 존재는 이 사명 선언서 112개 단락 전체에 걸쳐 주로 성령과 동일화된다. 이 성령은 세계 역사 및 우주 전체를 포함한 전 피조물 안에 존재하고 생동하시는 것으로 묘사된다. 성령은 하나의 중심 되는 사명을 가지고 계신다. 우리는 거기 참여하도록 부름 받는다. 인간 사회 구석구석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는 일, 그리고 피조 세계를 그것의 목표인 하나님 나라로 이끄는 일이 성령의 사명이다. 이 궁극적 목표는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새 땅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종말론적 행동에 의해 성취되는 것으로 여겨서는 안되고, 다소 점진적인 변혁에 의해 성취되는 것으로 여겨져야 한다.
변혁이라는 단어는 현재의 에큐메니칼 신학에서 핵심 용어가 되었는데 일부 복음주의 집단들도 점점 더 많이 사용하기 되었다. 성령의 임재는 불의와 갈등의 현재 상태에 변혁이 일어나고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계시는 것으로 인식되며, 그런 변혁에 참여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선교이기도 하다. 그 선언서는 제 10항에서 이렇게 단언한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향한 세상의 변혁을 위해 하나님이 세상에 주신 선물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교회의 선교는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애쓰는 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다. “이 땅이나 우리의 몸이나 둘 다 성령의 은혜를 통해 변혁되어야 한다”(20항). 이것은 모든 불의한 구조에 대항해서 기꺼이 싸우려는 형태의 적극적인 정치참여에서도 선교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삶을 파괴시키는 가치관과 체계들이 우리의 경제학, 우리의 정치, 심지어 우리의 교회들에서 역사하고 있는 곳마다, 선교의 정신은 그것에 저항하고 그것을 변화시키려 애쓴다.”
그것은 기독교 선교사들이 설교, 예배, 섬김이라는 영적 과업을 성취하는 일에 스스로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그 성명서는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생명의 선물은 우상숭배적 가정들, 불의한 제도들, 지배의 정치학, 그리고 현재의 세계 경제 질서에 직면하게 한다(30항)고 말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교회, 선교회, 개개 그리스도인들에게 얼마나 굉장한 과업이 주어졌는가! 그들이 전문적으로 구비되어 있든 아니든 상관없이 말이다. 그들은 정부들, 경제학자들, 과학자들, 다른 전문가들, 심지어 국제 연합이 대처하고자 노력했으나 허사로 돌아갔던 현재 세상의 모든 본질적 문제들을 해결하리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그 성명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또 하나의 핵심 용어는 ‘생명’이라는 말이다. 그 주제 자체가 ‘함께 생명을 향해’다. 총회 주제 역시 생명의 하나님이신 하나님께 호소하고 그 분이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시도록 애원함으로 우리가 생명에 주의를 돌리게 한다. 이것은 정의와 평화가 근본적으로 생명의 주된 선물이며, 주로 사회-정치적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 성명서 서론에서 작성자들은 그들과 함께 우리도 이렇게 고백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모든 생명의 창조주, 구속주, 유지자이신 삼위 하나님을 믿는다.” 특히 우리는 생명을 유지하고 능력을 부여하며 전체 피조물을 새롭게 하시는 생명 수여자 성령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그 다음 2항에서 교회의 선교는 “생명을 경축하고, 생명을 파괴시키는 모든 세력들을 성령의 능력으로 저항하고 변화시키는 것”으로 묘사된다. 여기에서 주의 깊은 독자라면 이렇게 큰 갈채를 받는 ‘생명’의 본질이 실제로 무엇인지 궁금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것은 창조 세계 자체와 동일한 것인 듯하다. 그리고 이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창조 세계를 온전한 상태로 유지하는 우리의 책임과 동일한 것이다. 그런 개념은 모든 종교와 이데올로기의 신봉자들에게 쉽게 호소력을 지닐 것이다. 이에는 모든 자연적 존재가 의지하고 있는 ‘생명력’을 중심으로 하는 아프리카 부족 종교도 포함된다.
하지만 그 성명서는 진정한 성경적 생명 개념에 어떤 식으로 집중하는가? 내가 보기에 그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두 종류의 생명을 분명하게 구분하는 것 같지 않다. 하나는 헬라어에서 bioV(bios)라고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zwh(zoe)라고 부르는 것이다. 성구 사전을 연구해보면 bios는 기본적으로 그 기능과 지속 기간에 따라 이 세상의 생명을 의미하는 반면, zoe는 훨씬 더 높은 형태를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이미 소유하고 계시며, 신자들이 그들의 부활 이후에 온전히 공유할 것이지만 그들이 믿음과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면 이미 누리고 있는, 초자연적 생명을 의미한다. zwh라는 용어는 특히 요한복음에 가장 자주 나오며 예수님이 그 분을 믿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구원의 선물로 설명된다. 요한복음 5:24에서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단언하신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유감스럽게도 ‘생명’에 대한 이런 진정한 기독론적이고 구원론적인 이해는 부산 총회를 위한 사명 선언서에 빠져 있다. 그것은 뉴에이지 운동의 구루들을 포함해서, 어떤 범신론적 종교나 이데올로기의 신봉자들에 의해서든 쉽게 뒤집힐 수 있는 보편적 힘으로 일반화된다.

IV. 복음주의자들이 부산 총회에 적극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몇 가지 가능성
WCC는 감사하게도 한국의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들 절대 다수가 복음주의적 신앙과 관행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한국 NCC의 초청을 수락했다. 하지만 한국의 모든 책임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WCC 총회가 그들 나라에서 열리는 것을 찬성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들이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제네바 에큐메니칼 운동의 특성들이 주최국인 한국 교회의 복음주의적 특성에 해가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특히 그들은 그 운동의 정치적 치우침, 이데올로기적 성향, 비기독교 종교들에 대한 다원주의적 견해 등을 비판한다.
하지만 두 가지 변치 않는 사실은 그 초청이 또한 한국의 잘 알려진 목사 및 교회들에 의해 후원을 받으며, 총회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주의 신학자들과 일반 신자들이 총회 진행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그래서 모든 대륙과 나라에서 온 참가자들이 영적 축복과 성경적 지향을 받도록 할 수 있는지 깊이 생각해보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다.
나는 두 가지로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잘못된 개념들을 신학적으로 바로잡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참가자들이 한국 기독교의 영성과 교회 생활을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제 2부에서 내가 WCC의 사명 선언서에 어떤 부분에 심각한 결점들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이미 밝힌 바 있다. 나는 특히 그 문서의 몇 가지 핵심 개념들을 간략하게 살펴보려 했다. 성령, 생명, 선교, 하나님 나라, 변혁 등이다. 복음주의 한국 신학자들, 특히 한국복음주의 협의회 지도자들과 회원들은 중요하고도 큰 갈채를 받고 있는 이 선언서를 대단히 집중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그들은 그것이 복음주의 스타일로 씌어졌다 해서 매혹되어서는 안된다. 거기에 신학적 핵심 개념들이 계속 반복되고 있지만, 그 개념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그보다 그들은 그 개념들이 정말로 진정한 성경적 내용들로 채워져 있는지 물어보아야 한다. 부분적으로는 그렇게 채워져 있다. 그리고 나는 어떤 본문들은 WCC 내의 복음주의자들이 쓴 것임을 안다.
하지만 로잔 운동에서 발표한 성명서와 비슷한, 성경적으로 정통한 것처럼 보이는 그 주장들과 밀접하게 붙어있는 것으로, 1968년 웁살라와 1991년 캔버라 사이의 기간 동안 WCC에서 나온 회의록, 프로그램, 성명서들을 지배하고 있던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분명하게 표현하는 다른 것들도 있다.
복음주의자들이 새로운 사명 선언서에 끼워 넣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정정 사항은 역사의 두 형태, 곧 세계 역사(World history)와 구원 역사(Salvation history) 간의 혼동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두 영역에서 서로 다른 식으로 일하신다는 것을 반드시 지적하고 넘어가야 한다. 세계사에서 하나님은 바울이 로마서 13:1-7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각국 정부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시행하도록 하시면서, 창조주, 유지자, 심판관으로 일하신다. 하지만 세계사 자체는 점진적으로 현재 상태를 하나님 나라로 변화시키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변혁’이라는 개념은 잘못된 것이다. 그 말이 여기에서 사용된 방식으로 볼 때, 그것은 성경적 용어가 아니다. 그 말의 개념은 로마서 12:2와 고린도 후서 3:18에서만 발견되는데, 거기에서 metamorphousthai는 대단히 다른 어떤 것, 즉 신자들의 개인적 성화를 말한다.
그것은 현재의 세상과 미래의 하나님 나라 간의 관계 및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이미 그 하나님 나라를 시작하시는 방식에 관한 기독교 교리와 모순된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의해 구분되는 두 상태 간에는 깊은 간격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현재의 세계에 대한 심판을 수행하심으로 현재 세계를 끝내실 것이며, 그 분 자신이 권능과 영광으로 그 분이 메시아적 통치를 세우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주의적 신학자들은 이 선지자적 진리를 지적하고 그 선언서에는 거의 완전히 빠져있는 성경적 종말론을 강력히 주장해야 한다! 하지만 복음주의자들은 선교에 참여할 때 언제나 주님의 재림--그것은 하나님 나라 복음이 세상 모든 민족에게 선포되었을 때에만 일어날 것이다(마태복음 24:14와 28:18-20 참고)--에 대한 기대로 인해 고무되어 왔다. 이 때문에 한국 교회는 언제나 사실상 세계 모든 나라에 선교사를 파송한 선교적 교회가 되었던 것이다.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너무나 소중한 영적 유산을 고수해야 하며, 그것이 왜곡되는 것을 절대 용인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의견을 제시함으로 나는 최종적으로 복음주의자들이 내년에 부산에서 열릴 제 10차 WCC 총회에 건설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두 번째 요소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한국 교회 교인들이 전세계의 수많은 자매교회에서 온 참가자들을 극진히 환대할 것이라 확신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 참가자들에게 왜 한국의 교회가 인상적인 내적 외적 성장으로 인해 유명하게 되었는지 그 비결을 나눌 것이다. 이 비결은 한국 교회가 언제나 기도, 성경 읽기, 후한 헌금, 이웃들에게나 지리적 경계를 넘어서나 복음을 증거하는 등의 특징을 지닌 교회였다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또한 일제 시대 및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공산주의 침략 기간 동안 많은 박해를 경험한 순교자 교회다.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북한 강제 수용소에서 고난 당하고 있고 죽어가고 있다. 부산 총회 참가자들을 38선으로 데리고 가서 핍박 받고 있는 그리스도 안의 형제 자매들이 위로받고 마침내 해방되도록 함께 기도하라. 그러면 총회는 정말로 복된 총회가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라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고전 12:26).
 
<원문>
In 2010, the National Christian Council of Korea decided to invite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to convene its 10th Assembly in 2013 in the Korean city of Busan. It will be the first time when a WCC Assembly is hold in the Far East. There are several reasons for this option; some lie in the interest of the NCC of Korea, others in considerations of the Geneva Staff of the WCC. Probably the latter is hoping that the hosting of the Assembly in a country known for the spiritual vitality of its Christian community will exercise a reviving influence on the future development of the WCC.

I. The present situation of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At present, the WCC finds itself in a rather ailing condition. Its former drive during the era of the famous Assemblies at New Delhi in 1961 and Uppsala in 1968 under energetic and visionary  leaders like the former General Secretaries W. A. Visser ’t Hooft and Philip Potter as well as the Indian Moderator of the Central Committee Mr. M. M. Thomas was halted after the 7th Assembly  held in Canberra in 1991. A whole block of important member churches, i. e. the Orthodox, were extremely dissatisfied with some spectacular events in the programme, especially the performance of a Shamanist ritual by the Korean feminist  theologian Dr. Chung, Hyun-Kyung who invoked the han spirits of the dead in the name of the Assembly theme: “Come, Holy Spirit, renew the whole creation!”
The Orthodox took this as a proof that the WCC had embarked on an openly syncretistic course. Moreover, they complained that the procedure of ecumenical decision making was in the hands of Staff members and Council authorities who followed Western parliamentary rules and ideological concepts. Therefore they threatened to quit their membership, unless the whole system of the WCC was thoroughly reformed.  During the last term of General Secretary Konrad Raiser, the WCC yielded to the Orthodox demands that the former authoritarian style should be replaced by a more democratic resp. conciliar one. Since then, the Geneva leadership has become rather restrained in making bold pronouncements and enforcing its own preconceived agenda on the member churches. As a consequence, the WCC has lost much of public interest in the secular press and even in its member churches in Western countries.
II.
Traditional evangelical concerns regarding the theological course of the WCC

Evangelical churches and mission societies all over the world did early express their theological concerns about the shaky biblical basis of WCC pronouncements and the ecumenical activities. They deplored especially that soul winning evangelism and church planting in unreached geographical areas within the 20/40 window was given very subordinate places in the official agenda. I remember the critical challenge which the late Dr. Donald McGavran in 1968 publicly put to the planning group in Geneva: “Will Uppsala betray the 2 Billion?” By this, he referred to those peoples on earth who never had got the chance to hear the Gospel of salvation in Jesus Christ. In the Section Drafts for Uppsala was little room given to world evangelization because the major concern in Uppsala was to be the “humanization” of socio-political structures in the Two-Thirds-World.

The leadership of the WCC would deny that they had given up the missionary vocation of the Church. But they had developed a new concept of mission and evangelization which was propagated under the term “Missio Dei”. The implication of this concept is that “mission” is not a task primarily assigned to the Church. It is understood to rather be the work of the Triune God Himself who is present in the world. According to this view God, Christ or the Spirit are leading the world to its appointed goal, the “Kingdom of God”.
The churches can or should be human instruments in this process; but if they failed, God would use alternative instruments, both other religions and political liberation movements. Here two essential distinctions were removed: the one between sacred and the secular and the other between the history of salvation and the history of mankind.
On a closer look, it was strange to observe that the spokesmen of the WCC included also communist groups in their understanding of Missio Dei. This resulted in the fact that until the world-wide turn-over through the downfall of the Soviet system in 1989/90 the political pronouncements given by WCC officials and meetings under prophetic claim very seldom addressed the acts of suppression and persecution committed by communist rulers. They were spared out so that only a “selective indignation” was uttered. This phenomenon can also be observed in the apparent silence with regard to the persecution of Christians in North Korea. Up to now it seems to be a “non-issue” in the preparatory documents for Busan 2013.
III.
The concept of mission and evangelism in the preparatory document for Busan
A critical assessment

In September this year the WCC Central Committee approved, at its meeting in Crete, Greece, a lengthy statement presented by Bishop Geevaghese Mor Coorilos, moderator of the WCC Commission on World Mission and Evangelism (CWME), under the title:
“Together towards life: mission and evangelism in changing landscapes”.
It is the first ecumenical declaration on mission since the one issued in 1982 under the name “Mission and Evangelism – an Ecumenical Affirmation”. According to Coorilos, this new statement is “about seeking vision, concepts and directions for a renewed understanding and practice of mission and evangelism amid changing global landscapes.” As for the theological concern of this statement, it is expected that it will promote a renewed appreciation of the Trinity (missio Trinitatis), especially the “mission of the Holy Spirit”, the “life-giver”.  To put it more concretely, “it aims at articulating a fresh understanding of a prophetic missiology that affirms ‘life’ in its fullness, in relation to justice, inclusivity and integrity of creation.”
This is a bold and far reaching announcement. It promises to introduce a new understanding of missiology, i. e. the doctrine on the theology and practice of mission, and also to unfold what “life in its fullness is”. Special reference is made to the new widened goal of the ecumenical movement since the start of the s.c. “Conciliar Process” in 1986 which was – or still is “Justice, Peace and integrity of Creation”. Behind this goal stands nothing less but the expectation of a totally renewed world from which all former suffering is removed, a new creation as shown in the biblical prophesies of the Messianic rule or the Kingdom of God. M. M. Thomas has called it the “Utopian Vision” of the WCC.
Bishop Coorilos claims that the new mission statement has already now gained “enormous attention”. This fact will and must motivate evangelicals to study the document thoroughly in order to find out in what respect the “new missiology” presented to the Busan Assembly still retains the central elements of the former missiology and in which way it introduces a completely new theological understanding of mission and a corresponding new methodology and practice.

The continuity can be found in their taking over of the concept of Missio Dei, i. e. God’s mission which was introduced at the 5th world missionary conference held in Willingen in 1952. It was hailed by missiologists as an important step forward, because it emphasized anew the theocentric basis of missions. But already at Willingen 1952 there were two contrary concerns by which the term Missio Dei was filled with content.
On the one hand there was the ecclesio-centric (church centred) view. According to this God in His mission started His Mission by sending His Son Jesus Christ to redeem mankind from their sins at the Cross. Jesus established the Church as his body which he commissioned to continue His own work of salvation by preaching the Gospel in the whole world to all nations, so that all those who accept it in faith and repentance will find forgiveness of their sins, peace with God and eternal life.  When all nations will have heard the Gospel and responded to it either in acceptation or by rejection, the end will come: Jesus will return in great power and glory and set up his messianic kingdom (Math 24:14; Mark13:10).

On the other hand, there was to cosmo-centric (world centred) view. According to this, God Himself is present in world history and leads it directly towards His appointed goal, the establishment of His kingdom here on earth.  The secularizing consequences for the understanding of the relation between mission and politics I have already pointed out in Part I of this lecture.

This is the reason why after Uppsala 1968 there arose a rivalry between two conflicting concepts and organizations for Mission and Evangelism, symbolized by the names ‘Bangkok '73’ and ‘Lausanne '74’. Between these two no cooperation was possible but only a mutual questioning or open denouncement of each other's position.
In recent years, however, the former conflict seems to have lost its vigour. Both sides have tried to listen to each other and even to accommodate their concepts of mission and evangelism. In their mission statements they included some concerns which appeared plausible and legitimate. This can be shown by an analysis of their major documents, the declarations of the three International Congresses of the Lausanne Movement in 1974, 1989 and 2010 on the one hand and the two Mission Statements of the WCC in 1982 and 2012 on the other hand.  
Especially the present one, written in preparation of Busan, “Together towards Life”, is, on the first glance, written in a rather spiritual language. It takes up some biblical key terms like “Spirit”, “life” , “creation”, “kingdom of God”.
The mission statement tries to fit closely to the general theme of the 10th Assembly of the WCC “God of Life: Lead us to Justice and Peace”. The divine person whom the general theme calls “God of Life” is identified in the mission statement throughout all its 112 paragraphs mainly with the Spirit, sometimes called “Holy Spirit”. This Spirit is described as being present and acting in world history and in the whole of creation, including the entire cosmos. The Spirit has one central mission in which we are called to participate. It is the mission of the Spirit to bring about justice and peace between all parts of the human society, and to lead the creation towards its goal, the kingdom of God. This ultimate aim is not considered to be reached by an eschatological act of  God in which he sovereignly creates a new earth, but rather by a gradual transformation.  
This word has become a key term in present ecumenical theology which is increasingly used by some groups of evangelicals as well. The presence of the Spirit is recognized wherever a transformation of the present state of injustice and conflict is taking place, and it is the mission of God’s people as well to engage in such transformation. The Statement affirms in § 10: “The church is the gift of God to the world for its transformation towards the kingdom of God.”
According to this view, the mission of the church is far wider than to set out for the salvation of souls. “Both the earth and our bodies have to be transformed through the Spirit’s grace” (§ 20). This means that mission is taking place also in active political involvement, in the form of a readiness to fight against all unjust structures:
      “Mission spirituality resists and seeks to transform all life-destroying values and systems
       wherever these are at work in our economies, our politics, and even our churches.”
That means that Christian missionaries may not confine themselves to fulfil their spiritual task in preaching, worshipping and serving.  For the Statement tells them that “God’s free gift of life compels us (sic!) to confront idolatrous assumptions, unjust systems, politics of domination and exploitation in our current world economic order” (§ 30).  
What a magnificent task is assigned here to churches, missions and individual Christians, irrespective if they professionally equipped or not! They are expected to solve all those intrinsic problems of our present world with which governments, economists, scientists and other specialists and even the United Nations – mostly in vane – try to cope with.

One other key term which in the Statement plays an important role is the word “life”. Its very theme is “Together towards Life”. The Assembly theme, too, leads our attention to life by invoking God as the God of Life and imploring Him to lead us to justice and peace. This indicates that justice and peace primarily are the main gifts of life, and primarily so in the socio-political sense. In the introduction of the statement its authors want us to join them in their confession: “We believe in the Triune God who is creator, redeemer and sustainer of all life.” Especially are we to believe in God, the Holy Spirit, the Life-giver who sustains and empowers life and renews the whole creation. In the following § 2 the mission of the church is described as “to celebrate life, and to resist and transform all life-destroying forces, in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Here the attentive reader will wonder what the essence of this highly acclaimed “life” actually is. It seems to be identical with the creation itself; and the upholding of this life is identical with our responsibility for the sustaining of creation in its integrity. Such concept will easily appeal to adherents of all religions and ideologies, including the tribal religion of the Africans which is centred on the “force vital”, of which all natural beings are dependent.  

But in which way does the Statement manage to concentrate on the genuine biblical concept of life? To me it appears that it does not clearly distinguish between two essentially different kinds of life, the one which in Greek is named biosthe otherzoeA study of a biblical concordance teaches us that whilst bios basically means earthly life according to its functions and duration, zoe refers to a much higher form: it means the supernatural life that God and Christ possess already and in which believers will share fully after their resurrection but which they enjoy already now if they are closely connected with Jesus Christ in faith and love. It is especially in the Gospel of St. John that the term occurs most frequently and where it is unfolded as that gift of salvation that Jesus grants to those who believe in him. In John 5:24 Jesus assures his followers:  I tell you the truth, whoever hears my word and believes him who sent me has eternal life and will not be condemned; he has crossed over from death to life.   Unfortunately this genuine christological and soteriological understanding of the very key term “life” is lost in the Mission Statement for Busan. It is generalized into a universal force that easily can be capsized by adherents of any pantheistic religion or ideology, including the gurus of the New Age movement.
IV.
Possibilities for evangelicals positively to influence the Busan Assembly
The WCC has thankfully accepted the invitation of the Korean NCC in awareness of the fact that the great majority of Christians and churches in Korea are evangelical in faith and practice. Not all responsible Christians in Korea, however, have been in favour to have the WCC Assembly take place in their country. For they fear that those features of the Geneva ecumenical movement which they are critical about, may become detrimental to the evangelical character of the hosting churches. Especially they criticize its political one-sidedness, its ideological leaning and its pluralistic treatment of non-Christian religions.
Yet two unchangeable facts are that the invitation was sponsored also by well known evangelical pastors and congregations in Korea and that the preparation of the Assembly has fully begun. Therefore it will be wise to deliberate what positive contribution evangelical theologians and ordinary believers can make to the proceedings of the Assembly, so that its partakers from all continents and countries may receive spiritual blessing and biblical orientation.  
I believe that such contribution can be rendered in two ways. The one is to provide theological correction of erroneous conceptions, and the other is to let the partakers make an experience of Korean Christian spirituality and church life.  
I have already indicated in Part II auf my lecture where I see serious shortcomings in the new Mission Statement of the WCC. I especially tried to explore shortly the meaning of some key concepts in the document: Spirit, life, mission, Kingdom of God, transformation. Evangelical Korean theologians, especially leaders and members of the KEF, ought to deal very intensively with this important and widely acclaimed declaration. They should not allow themselves to be fascinated by the evangelical style in which it is written. Inspite of the permanent reiteration of its theological key concepts they should not accept them on their face value. Rather they should question whether  they really are filled by their genuine biblical content. Partly they are, indeed, and I know that some passages have been written by evangelicals within the WCC.
Yet closely attached to those seemingly biblically orthodox affirmations which resemble statements issued by the Lausanne Movement , there are others that clearly express the political ideology which was dominant in the proceedings, programmes and statements of the WCC in the period between Uppsala 1968 and Canberra 1991.
The most important correction which evangelicals should insert in the new Mission Statement pertains to the confusion between the two forms of history: World history and Salvation history. It must be pointed out that God works in different ways in these two realms. In world history, God works as Creator, Sustainer and Judge, making the national governments to exercise His rule, as the apostle Paul shows in Romans 13:1-7. But World history as such does not gradually move onwards to change the present state into the Kingdom of God. The concept of “transformation” is erroneous; in the way it is used here it is no biblical term. . It contradicts the Christian doctrine concerning the relation between this present world and the future Kingdom of God and the way in which Jesus Christ Himself already now introduces it.

There is a deep hiatus between the two states which is marked by the Second Coming of Christ. He will end the present world by performing His judgment over it, and He Himself will set up His Messianic rule in power and glory. Therefore evangelical theologians should point out this prophetical truth and to make a strong plea for biblical eschatology – which is almost omitted in the Mission Statement! Yet evangelicals in their engagement in mission have always been inspired by the expectation of the Second Coming of the Lord, which will take place only when the Gospel of the Kingdom will have been proclaimed to all nations on earth (cf. Matthew 24:14 and 28:18-20). This is why the Korean church has always been a missionary church having sent out missionaries virtually to all countries on earth. Korean Christians have to hold on to their priceless spiritual heritage and can never give in to its distortion!

By this observation, I am touching finally the second contribution which evangelicals can make to a constructive course of the 10th WCC Assembly in Busan next year. I am sure that the Korean congregations will extent a wonderful hospitality to the participants from so many sister churches all over the world. And they will share with them the secret why the Church in Korea has become famous for its impressive inner and outer growth. This secret is that it has always been a church marked by prayer, Bible reading, generous offering and evangelistic witness both in the neighbourhood and beyond its geographical borders.
It is also a martyr church which has gone through many persecutions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and the communist invasion after the Second World War. Even today ten thousands of Korean Christians are suffering and dying in concentration camps in North Korea. Take the participants of the Busan Assembly to the 38th parallel and let them pray with you for the consolation and final liberation of your persecuted brothers and sisters in Christ.
Then the Assembly will be really blessed; for “we all are members of the one Body of Christ, and if one member suffers, all  suffer; if when one member is honoured, all members rejoice together” (I Corinthians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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