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적 고통이 있을 때 우리는 즉각 반응하며 그 원인을 찾아 제거하려 한다. 예컨대 두통이 있을때, 현명한 사람은 소화불량이 원인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그러나 현명치 못한 사람은 아스피린으로 두통을 억누르려 하면서, "아스피린이 두통을 없애 줄 거야."라고 자위한다. 물론 아스피린도 두통을 일시적으로 완화시켜 주겠지만 근본적인 치유책은 아니다. 두통의 원인을 치유한 것이 아니라 통증을 전달하는 신경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킨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고통과 질병이 우리를 위해 고안된 자연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에게 이것은 저주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자연은 우리를 병석에 눕게 만들 때 움직일 힘까지 빼앗아 간다. 모든 에너지를 건강 회복에 집중시킬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한 배려이다. 또한 자연은 우리에게 충분한 휴식과 시간을 주어 정신력을 되찾게 해줄 뿐 아니라 명상과 사색을 통해서 질병의 원인을 추적하게 해준다.
육체적 고통의 정복은 수련과 극기를 통해서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숙제 중 하나이다. 또한 육체적 고통은 당신의 정신을 완벽하게 지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정신의 지배! 이것은 삶을 당신의 뜻대로 꾸려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아메리카 인디언은 육체적 고통에서 거의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심한 상처를 입었을 때에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씩씩하게 사냥을 다니고 밭을 갈았다. 남부 산악지대의 여인들은 아기를 낳은 다음 날부터 집안 일을 시작한다. 그들은 해산을 그저 가벼운 두통이나 감기쯤으로 여길 뿐이다. 요컨대 그들은 육체적 고통에 따른 두려움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육체적인 고통이나 정신적인 고통, 실망과 좌절, 슬픔 등에 따른 괴로움은 더 높은 곳을 향한 도약의 기회일 수도 있지만 영원한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타격일 수도 있다.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전적으로 당신의 정신자세에 달려 있다. 그런 상황을 장애물로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더 높은 곳을 향해 가는 디딤돌로 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당신 안의 기적을 깨워라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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