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느 집 뒤뜰 감나무에 박혀 있는 못입니다.
큰 대못은 아니고 아이들 가운뎃손가락 길이 정도 됩니다.  나 같은 목재용 못은 집을 지을 때나 나무로 물건을 만들 때 쓰여야 하는데 뜻밖에도 감나무 둥치에 깊게 박혀 있습니다.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고 수십 개 정도나 말입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누구나 다 사는 제 자리가 있고 쓰이는 용도가 있는데,
이렇게 엉뚱하게도 감나무 둥치에 깊이 박혀 사는 나의 삶을
어떻게 설명해 드려야 할는지요.

사실 저는 사는 게 퍽 고통스럽습니다.
늘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합니다.
밤엔 잠도 못 자고 잔다 하더라도 늘 흉몽에 시달립니다.
절벽에서 끝없이 떨어지는 꿈이라든가,
망치한테 너무 심하게 얻어맞아 몸이 구부러지거나 동강나는 꿈을 많이 꿉니다.
그리고 감나무에 달린 감들이 돌멩이가 되어 밤새도록 나를 향해 날아오는 꿈도 많이 꿉니다.

사실 감나무가 나를 얼마나 싫어하고 미워하는지 모릅니다. 생각해 보세요.
자기의 몸에 나같이 날카로운 쇠붙이가 깊게 들어와 박혀 나갈 생각을 안 하니
감나무인들 그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나는 그런 감나무한테 미안해 죽을 지경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나 스스로의 힘으로 어떻게 해서든 빠져나가고 싶지만 내게 아무런 힘이 없으니 어떡합니까.

내가 이렇게 감나무에 깊게 박혀 살게 된 것은 전혀 내 탓이 아닙니다.
정말 오해하시지 말아 주세요. 그것은 이 집 주인여자 때문입니다.
아니, 주인여자의 남편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들 부부 사이는 원래 그리 나쁜 편이 아니었습니다.
남편은 너무 모범적이다 싶을 정도로 가정적인 남자였습니다.
성격 또한 자상하고 따뜻해 주인여자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곤 했습니다.
“아휴, 난 네 남편 같은 사람하고 한번 살아 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난 남편이란 게 너무 무뚝뚝해. 입에 자크를 채워 놓았는지 묻는 말에도 대답을 안 한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숨이 막혀 죽겠어.”
주인여자의 친구들이 툭하면 그런 말을 늘어놓을 정도였습니다.

그들 부부 사이에는 귀여운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결혼을 약속할 때부터 아이를 적어도 셋은 갖자고 자식 욕심을 내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아들 하나를 낳고는 여자의 몸에 이상이 생겨 더 이상 아기를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 대한 그들의 애정은 누구보다도 컸습니다.
정말 ‘금이야 옥이야’ 하고 아들을 길렀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 그만 동네 웅덩이에 빠져 제대로 살아 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풍선이 빠진 웅덩이가 깊은지도 모르고 들어갔다가 발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그만 그런 사고를 당하고 만 것입니다.
“이건 완전히 당신 잘못이야. 집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애도 하나 제대로 못 본단 말이야?”
좀처럼 화를 내지 않던 남편이 화를 내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남편은 마음이 크게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폭음을 일삼으며 밤늦게 돌아오는 일이 잦아지더니, 나중에는 아예 집에 들어오지 않는 일도 잦았습니다.

어린 아들을 잃은 그녀의 마음인들 그 얼마나 아프고 처절했겠습니까.
그러나 정작 남편의 따뜻한 위로와 사랑이 필요한 때에 남편은 아내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너무 괴로워 오직 죽고만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들처럼 그렇게 사고를 당하지 않는 한, 사람 죽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어느 10월 중순쯤 된 날이었습니다.
남편이 외박을 하고 아침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자 그녀는 말없이 창고에서
망치와 나를 찾아 들고 20년 넘게 자란 뒤뜰 단감나무한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는 단감이 주렁주렁 주홍빛 보석처럼 매달려 있는 감나무 둥치에 나를 쾅쾅 못질하는 것이었습니다.

“아!”
감나무는 놀라 소리쳤습니다.
“아니, 왜 나를 감나무에다 박는 거죠?”
나도 그녀가 왜 그러는지 의아해서 소리쳤으나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곧 그녀가 말을 하지 않아도 왜 그러했는지 잘 알 것 같았습니다.
아마 그녀는 자기 가슴에 못을 박는 심정으로 나를 감나무에 쾅쾅 박았을 것입니다.
그후 그녀는 남편의 외박으로 괴로움을 당할 때마다, 남편에 대한 미움을 어쩌지 못하고 분노에 휩싸일 때마다 감나무에 못을 박았습니다.

나는 그렇게 감나무에 자꾸 박혀 갔습니다.
감나무의 몸은 온통 못투성이가 되어 갔습니다.
“미안하다, 감나무야. 내 잘못이 아니야.”
“알았어. 나도 널 원망하는 게 아니야. 내가 잘 참고 견딜게.”
감나무는 오히려 나를 더 위로했습니다.
나는 그런 감나무가 안쓰러워 가슴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내가 빨리 녹이 슬어 없어져 버려야 할 텐데….”
나는 빨리 녹슬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런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마 그녀의 생일날이었을 겁니다.
그날도 남편이 외박을 하고 돌아오자 그녀는 남편을 뒤뜰 감나무 앞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여보, 여기 무엇이 있나 이 감나무를 한번 자세히 보세요.”
남편은 그녀의 말을 따라 감나무를 자세히 쳐다보다가 깜짝 놀라 소리쳤습니다.
“아니, 감나무에 왜 못이 박혀 있지? 한 두 개도 아니고, 누가 이랬지?”
“내가 그랬어요.”
“아니, 당신이 왜? 왜 이런 짓을?”
“여보, 이 못은 당신이 잘못할 때마다 내가 하나씩 박았던 못이에요.
당신은 이제 얼마나 더 감나무에 못을 박아야 예전의 당신으로 돌아갈 거예요?
이 감나무가 온통 못이 박혀 결국 죽고 말아야 당신이 그 못된 짓을 그만둘 거예요?”

“여보….”
남편은 그녀를 한 번 불러봤을 뿐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하고 그 자리에 돌덩어리처럼 서 있었습니다.
“여보,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감나무에 못을 박은 게 아니라 꼭 당신 가슴에 못을 박은 것 같군요. 미안해요.”
그녀가 천천히 남편에게 다가가 남편 손을 잡았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크게 숨을 한번 내쉬고 입을 열었습니다.

“아니오, 여보. 내가 당신 가슴에 이토록 못을 박고 말았군요. 내가 잘못했소.
이제 다시는 그러지 않으리다. 나를 용서해주시오.”

그날밤, 남편은 잠이 안 와 뒤뜰에 나왔다가 아내 몰래 감나무를 껴안고 엉엉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부터 예전의 다정다감했던 남편으로 돌아왔습니다.
술과 담배를 끊고 주말이면 아내와 등산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외박하는 일 또한 일체 없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아내를 먼저 생각하고 아내를 위하는 일에 시간과 마음을 던졌습니다.
그런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녀가 다시 남편을 감나무 아래로 데리고 갔습니다.

“여보, 이 감나무를 다시 한번 보세요.
당신이 내게 고맙게 할 때마다 못을 하나씩 뺐더니 이제 하나도 없어요. 고마워요, 여보.”

그녀는 사랑이 담뿍 담긴 눈길로 남편을 그윽이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물끄러미 감나무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습니다.
“여보, 내가 당신에게 용서를 받으려면 아직 멀었어요.
못은 없어졌지만 아직 못자국이 여기 남아 있어요.
이 못자국마저 없어져야 겨우 용서받을 수나 있을까….”

“아니, 여보, 무슨 그런 말씀을….”
그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얼른 남편을 꼭 끌어안았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주르르 흘렸습니다.
그후 감나무에 있던 못자국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  동화 - 정호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