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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31]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비결 (신 6:1-9, 미 22:37-40) - 광야교회

제가 2008년 1월 13일 강변교회에서 은퇴한 다음 지난 12년 5개월 동안 주일마다 전국의 작은 교회들을 주로 방문하면서 설교를 하고 있고 이따금씩 큰 교회들도 방문하면서 설교를 하고 있는데, 제가 2008년 4월 26일 주일 광야교회에 처음으로 와서 “루디아와 브리스길라 부부와 같은 일꾼” 이러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9년 12월 1일 주일 열 다섯 번째로 와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오늘 2020년 5월 31일 주일 여기 열 여섯 번째로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설교를 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저를 불러주신 임명희 목사님과 정경화 사모님과 성도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무슨 설교를 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임명희 목사님이 오랜 동안 생각을 하다가 신 6:4-9 말씀을 분문으로 삼고 “성경적인 새 습관을 갖자”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면 좋겠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즉 술이나 방탕이나 폭력이나 윤락에 빠지는 옛 습관이 아닌 성경적인 새로운 삶의 습관을 지니게 되는 비결에 대한 설교를 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세속적으로 기울어지고 있는 오늘의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모습을 바라보면서 지니게 된 간절한 소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신 6:1-9과 마 22:37-40 말씀을 분문으로 삼고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비결”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귀중하게 여기면서 자기 사랑과 돈 사랑과 세상 사랑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 경외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빠져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이웃과 나누면서 "사랑과 섬"의 삶”을 살아가는 것보다 귀중하고 아름답고 축복된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착한 삶”이 너무너무 귀중하다는 말씀을 오래 전에 하셨는데, 불쌍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착한 삶”을 무시하는 믿음과 예배와 기도는 받지 않으신다는 말씀을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다음과 같이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사 1:11,15-17).

성부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착한 삶”이 부족한 기도와 금식을 받지 않으신다는 말씀을 계속해서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착한 삶”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기도와 금식이라는 좀 이상한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 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사 58:6-9).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이신지를 분명하게 가르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착한 삶”이 바로 성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기도와 금식이라는 좀 이상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신약 시대에 와서도 기도와 함께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착한 삶”을 아주 귀중하게 여기시고 축복하신다는 말씀을 계속해서 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고넬료의 많은 구제와 선행을 보시고 아주 귀중하게 여기시면서 천사를 그에게 보내어 그를 축복하신 일을 다음과 같이 서술했습니다.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행 10:1-5). 백성을 많이 구제하는 “사랑과 섬김”의 “착한 삶”을 하나님께서 아주 귀중하게 보셨다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도 기도와 예배를 아주 귀중하게 보시면서도 “사랑과 섬김”이 부족한 기도와 예배는 귀중하게 보시지 않으신다는 좀 이상한 말씀을 아주 분명하게 아주 길게 하셨습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마 25:31-46). 성자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이신지를 분명하게 가르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착한 삶”을 너무 예찬하는 좀 지나친 인본주의적인 또는 자유주의적인 말씀 같다는 생각을 하게도 됩니다. 예수님을 바로 믿으면 죄 사함과 구원을 받고 천국에 간다고 생각을 하는데, 지극히 작은 불쌍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착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천국에 가는 축복을 받게 된다는 말씀이 좀 지나친 말씀 같이 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부 하나님의 말씀과 성자 예수님의 말씀이 잘못된 말씀이라고는 절대로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 믿음도 귀중하고 예배도 귀중하고 기도도 귀중하지만 불쌍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착한 삶”이 너무너무 귀중하다는 말씀을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께서 똑 같이 말씀하셨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말씀을 철저하게 읽고 철저하게 순종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들이 “올바른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 경외와 하나님 사랑이 기본적으로 본질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경외와 하나님 사랑의 말씀을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 경외와 하나님 사랑이 너무너무 귀중한데 하나님 경외와 하나님 사랑으로부터 이웃 사랑과 이웃 섬김의 착한 삶이 시작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신명기 6장에서는 하나님 경외와 하나님 사랑을 기본적인 것으로 철저하게 강조하셨고 신명기 10장에서는 이웃 사랑과 이웃 섬김을 필연적인 것으로 철저하게 강조하셨습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의 신이시며 주의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니라”(신 10:17-19). 나중에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이웃 사랑과 이웃 섬김의 귀중성을 너무너무 철저하게 강하게 강조하셨습니다.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사 1:15-17).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사 58:5,6).  

성자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믿음과 사랑을 강조하셨지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아주 많이 강조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 13:34,35).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사도 요한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1 5:1,2).  

우리 죄인들이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올바로 믿고 경외하고 사랑할 때 우리 죄인들의 삶과 운명이 변화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죄인들의 성격과 기질이 변화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죄인들의 살과 피와 세포가 변화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착한 삶”을 살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던 사울이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라고 부드럽게 자기를 부르시는 성자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래서 울면서 회개하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고 사랑하게 되었을 때 그의 삶과 운명이 완전하게 바뀌어지고 말았습니다. 온유 겸손한 사람이 되었고 부드럽고 따뜻한 사람이 되었고 모두를 사랑하고 섬기는 “사랑과 섬김”의 사람이 되었고 자기 자신의 삶과 생명을 모두 제물로 드리는 드림과 순교의 삶을 살다가 죽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의 사랑과 헌신의 고백을 인용합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찌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빌 2:17,18).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행 28:30,31).



이제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지도자들인 이기풍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의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새로운 삶을 살게 된 비결”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이기풍 목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이기풍 목사님은 평양의 유명한 깡패 두목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경외하고 사랑하게 되므로 그의 인생이 변화되어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평양의 대표적인 깡패 두목이었던 이기풍이 평양에 와서 전도하던 마포 삼열 선교사에게 돌을 던져서 턱을 부서뜨렸습니다. 마포 삼열 선교사는 피 투성이가 되어 길 모퉁이에 쓸어졌습니다. 이기풍이 28세 되던 1893년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마포 삼열 선교사가 건축하던 장대현교회당을 깡패들을 동원해서 때려 부스고 온통 수라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죄인중의 죄인인 이기풍이 의기양양했지만 양심 한 구석에 찔림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잠을 자는데 꿈에서 예수님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기풍아! 기풍아! 왜 나를 핍박하느냐? 너는 나의 복음의 증인이 될 사람이다!” 그는 너무 놀라서 잠에서 깨었습니다. 그러나 즉시 항복하지는 못했습니다. 어느 날 그의 앞에 이상한 옷 차림을 한 서양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평양 거리의 마포 삼열 선교사와 비슷한 모습의 서양 사람이었습니다. 원산에서 선교하고 있던 스왈렌 선교사였습니다. 그가 이기풍을 보자마자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라” 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소리는 마치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우뢰 소리와 같았습니다. 결국 이기풍은 스왈렌 선교사 앞에 무릎을 꿇고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가 29세 되던 해인 1894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즉시 마포삼열 선교사를 찾아가서 그 앞에 무릎을 꿇어 백배 사죄하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마포 삼열 선교사는 잃었던 한 마리 양이 돌아온 것을 바라보며 뜨거운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후부터 이기풍은 평양 시내를 누비며 예수님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깡패 두목이 전도자가 되었다는 소문이 평양 온 성안을 발칵 뒤집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권서 활동과 선교사를 돕는 일을 하면서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예수님을 전하기에는 너무 무식하다는 것을 깨닫고 1903년에는 평양 신학교에 입학하여 전도자와 목회자로서의 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결국 한국교회에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던 해인 1907년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이기풍은 한국교회의 최초의 일곱 사람 목사님들 중의 한 사람으로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노회 셋째 날인 9월 19일 길선주 목님의 사회로 열린 노회가 선교사들의 헌신적 노력에 보답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뜻으로 제주도에 선교사를 한 사람 파송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의를 했습니다. 그 당시 제주도는 풍속이나 언어가 다른 외국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이 때 이기풍 목사님이 제주도에 선교사로 가기로 자원하고 나섰습니다. 자신도 흑암에 사는 사람들로부터 돌 팔매질을 당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이기풍 목사님과 윤함애 사모님은 1908년에 제주도를 향해 평양을 떠났습니다. 아기를 등에 업고 개나리 봇짐을 머리에 얹고 평양성을 떠나 인천항으로 향하는 두 사람을 보고 울지 않는 여전도회 회원들이 없었다고 합니다. 제주도를 향하던 배가 난파하여 많은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었으나 이기풍 목사님은 간신히 헤엄을 쳐서 추자도에 상륙했습니다. 그 이후 13년 동안의 제주도 복음화 사역은 수 많은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고통스러웠고 미신과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고통스러웠습니다. 잠잘 곳도 얻지 못했고 먹을 것도 얻지 못해 때로는 산 기슭에 때로는 바닷가에 때로는 마구간에 쓸어져 기운이 없어 정신을 잃기도 했습니다. 이기풍 목사님은 산 속 동굴 안 구렁이 신에게 제물로 바쳐진 소녀를 구하기 위해 동굴 속으로 들어가서 구렁이를 때려 눕힌 일도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이기풍 목사님과 사모님이 금식하고 기도하므로 미치광이를 고친 일도 있었습니다. 이기풍 목사님은 13년 동안의 제주도 사역은 가난과 고난을 무릅쓰고 모두를 사랑으로 끌어 안는 “사랑과 섬김”의 “착한” 사역이었습니다. 결국 제주도에서 사탄 마귀의 어두움의 세력을 몰아내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을 비추게 했습니다. 30여 개의 교회를 설립했습니다. 1934년에는 제주도 독노회를 조직하게 했습니다.

이기풍 목사님의 성공적인 제주도 사역 뒤에는 윤함애 사모님의 기도와 사랑의 수고가 있었던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기도의 여인이었고 “사랑과 섬김”의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항상 머리맡에 약 상자와 성경책을 두고 자다가도 부르면 벌떡 일어나 제주도민들을 돌봐주었다고 합니다. 그는 교인들 중 누가 운명하면 항상 달려가서 시체를 목욕시키고 얼굴에 화장을 해 준 다음 손수 만든 수의를 입히고 밤새 유가족을 위로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또한 그늘진 곳에서 울고 있는 영혼들을 사랑으로 돌보았다고 합니다. 그의 집은 항상 아침에는 거지 떼들로 낮에는 나병 환자들로 가득 찼다고 합니다. 손이 떨어진 나환자에게는 손수 밥을 떠서 먹여주었다고 합니다. 나환자들이 돌아간 뒤에도 그녀는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이기풍 목사님과 윤함애 사모님은 제주도의 어두운 밤 하늘을 밝힌 두 개의 새벽 별들이었습니다.



그 다음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에 대한 긴 이야기를 아주 간단하게 줄여서 하려고 합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과 소망으로 그의 인생이 변화되어 완전히 새로운 긍휼과 용서와 “사랑과 섬김”의 “착한 삶”을 살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손양원 목사님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1902년 6월 3일 경남 함안군 칠원면에서 손종일씨와 김은수씨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손양원은 믿음의 유산을 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았습니다. 손종일씨는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은 다음에 가족들을 전도하여 예수님을 믿게 한 후에는 매일 아침 교회에 가서 새벽기도를 드렸고 집에서는 가정예배를 드렸고 주일성수와 십일조를 철저하게 했습니다. 손종일씨는 장로로 김은순씨는 집사로 칠원교회를 열심히 섬겼습니다. 후에 그의 세 아들은 모두 목사가 되었습니다. 큰 아들이었던 손양원은 어려서부터 부모를 따라 새벽 기도회에 다니며 신앙생활을 힘썼습니다. 손양원은 11살 때 칠원 보통학교에 입학하였는데 일본인 교장은 매일 일본 왕을 향하여 절하는 동방요배를 하고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동방요배를 거절했습니다. 어느 날 손양원은 동방요배 거부로 교장으로부터 뺨을 맞고 코피를 흘리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아버지 손종일 장로는 이렇게 기도하며 아들을 격려했습니다. “주님, 이 부족한 것의 미천한 아들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쇠는 두드릴수록 강해진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더 큰 일에 사용하시기 위해 제 아들을 더 큰 망치로, 더 강한 힘으로 두드려 주십시오.” 손양원은 아버지의 기도를 들으면서 하나님을 바로 믿고 섬기기 위해서 라면 그까짓 학교 안 다녀도 그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손양원은 동방요배 거부는 물론 주일성수를 위해 주일날 학교에 가는 것을 거부하므로 학교에서 벌을 받곤 했습니다.  손양원은 22살 때인 1924년 19살의 정양순양과 결혼을 했고 칠원교회의 집사로 교회 봉사를 열심히 했습니다. 1926년 3월에는 진주에 있는 경남 성경학교에 입학하였는데 3년 동안 경남 성경학교에 다니면서 주기철 목사님에게서 순교신앙을 배웠습니다. 손양원 전도사는 1935년 4월 33세에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여 1939년 7월에 졸업했습니다. 졸업하자마자 경상도 사람으로서 전라도 여수에 있는 나병원 교회인 애양원 교회에 전도사로 부임했습니다. 그리고 사랑과 정성을 쏟으며 애양원 교회에서 나환자들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일본 경찰은 1940년 9월 25일 수요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손양원 전도사를 연행해 갔습니다. 신사참배를 반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손양원 전도사는 일경들에 의해 체포되어 여수 경찰서, 광주 형무소, 경성 구치소, 청주 구치소 등에서 8. 15 해방까지 5년 간의 옥고를 치르며 갖은 고문을 다 당했으나 주님을 향한 일편 단심의 신앙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어 이틀 뒤인 17일 청주교도소에서 손양원 전도사가 석방되어 애양원 교회로 돌아왔을 때 1 천 여명의 나병환자들이 뛰어나와 손양원 전도사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며 환영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죽도록 충성하며 믿음을 지킨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둘째로 손양원 목사님은 사랑의 사람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믿음은 “사랑과 섬김”으로 나타났습니다. 그의 믿음은 나환자 사랑과 원수 사랑으로 나타났고 나환자 섬김과 원수 섬김으로 나타났습니다. 손양원 전도사는 1945년 8월 해방 후 다시 애양원 교회로 돌아와 그의 남은 생애를 애양원 나환자들과 동고동락하며 그들에게 모든 정성과 사랑을 쏟아 부었습니다. 출옥 후인 1946년 3월에야 비로서 경남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한 번은 박옥선이란 여 환자가 발 밑에 난 종기 때문에 다리를 절단해야 할 만큼 심각하였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입으로 악취 나는 피고름을 빨아 주었습니다. 나병의 환부에는 사람의 침이 좋은 약이 된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나환자들에게 모든 사랑과 정성을 다 쏟아 부은 한국의 프랜시스였습니다. 그의 딸 동희양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아버지는 이들을 너무나 사랑했다. 아버지는 분명 우리 남매의 아버지인데 내가 볼 땐 나환자들의 아버지인 것만 같아 보였다. 아버지는 병든 육신일지언정 저 바깥의 표리부동한 자들보다 몇 배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들이라 하며 그들의 정신적 상처를 아물게 하는 데 최선을 다하였다. 다음과 같은 아버지의 노래도 그런 심정의 한 표현이다.” “주여 애양원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애양원을 참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을 주시옵소서. 주께서 이들을 사랑하심 같은 사랑을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나는 이들을 사랑하되 나의 부모와 형제와 처자보다도 더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차라리 내 몸이 저들과 같이 추한 지경에 빠질지라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만약 저들이 나를 싫어하여 나를 배반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저들을 참으로 사랑하여 종말까지 싫어 버리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내가 이들을 사랑한다 하오나 인위적 사랑, 인간적 사랑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람을 위하여 사랑하는 사랑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고 주를 위하여 이들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보다는 더 사랑치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내가 또한 세상의 무슨 명예심으로 사랑하거나 말세의 무슨 상급을 위하여 사랑하는 욕망적 사랑도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만 그리스도의 사랑의 내용에서 되는 사랑으로서 이 불쌍한 영육들만을 위한 단순한 사랑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나의 남은 생이 몇 해 일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몸과 맘 주께 맡긴 그대로 이 애양원을 위하여 충심으로 사랑케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손양원 목사님의 사랑의 극치는 1948년 10월 19일 여수 순천 반란 사건 때 나타나 보였습니다. 사랑하던 믿음의 두 아들 동인군과 동신군이 공산 폭도들에게 붙잡혀 10월 21일 순천 경찰서 뒷 마당에서 총살을 당했습니다. 예수를 부인하라고 했지만 오히려 예수를 증거하다가 총살을 당해 순교했습니다. 10월 25일 반란군에 의해 두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손 목사님 내외는 엄청난 충격에 쌓여 비통해 했습니다. 반란 사건이 진압되고 두 아들을 죽인 안재선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은 손양원 목사님은 밤을 새워 통곡하고 기도하고 교회를 나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 내 아들들은 죽어서 천국에 갔지만, 안재선은 죽으면 지옥 갈텐데,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 결국 손양원 목사님의 마음에는 커다란 사랑의 폭풍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를 살려야 한다. 그를 용서해야 한다. 그를 사랑해야 한다.” 두 아들을 잃은 비통함이 그렇게 컸었는데도 불구하고 손양원 목사님은 두 아들을 총살한 그 좌익 학생을 용서하고 사랑하기로 결심한 것이었습니다. 두 아들을 죽인 안재선이 체포되어 총살을 당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손양원 목사님은 계엄 사령관에게 딸을 보내어 그를 사면할 것을 간청했습니다. 그를 양자로 삼아 교육시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안 가겠다고 반항하며 대드는 딸 동희양을 설득하여 용서의 메시지를 전달하게 했습니다. 딸은 자기 의지에 반해 아버지의 하나님 절대 신앙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딸은 아버지의 용서와 사랑의 메시지를 국군 심문자에게 그대로 전하므로 처형되기 10여분 전에 원수를 살려냈습니다. 딸 동희양은 취조 군인에게 달려가서 이렇게 아버지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아버지가 두 오빠를 죽인 자를 잡았거든 매 한 대도 때리지 말고, 죽이지도 말라 하셨어요. 그를 구해 아들 삼겠다고요. 성경말씀에 원수를 사랑하라 했기 때문이래요.” 딸은 숨도 쉬지 않고 단숨에 말을 토해 놓고는 책상에 엎드려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동희양의 말이 끝나고 동희양이 울음을 터뜨리자 방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충격을 받은 듯했습니다. 취조를 하던 군인은 입에 물고 있던 담배가 떨어진 줄도 모르고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으며 “위대하시다” 하고 감탄의 소리를 토해 냈습니다. 안재선까지도 고개를 숙인 채 흐느껴 울고 있었습니다. 딸 손동희 권사는 그 때를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이 광경이야말로 오늘까지 내 눈 앞에 잊혀지지 않는 역사적인 장면의 한 토막이었다.” 사랑의 원자탄이 떨어진 장면이었습니다. 안재선은 살아났습니다. 안재선은 석방이 되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그를 자기의 양 아들로 삼아 부산 고려 성경 고등학교에 보냈습니다. 그는 결혼하여 4남매를 두었는데 장남은 대한신학교에 다녔고 나중에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셋째로 손양원 목사님은 소망의 사람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삶은 천국과 종말신앙에 의해 지배된 소망의 삶이었습니다. 그의 가슴과 의지와 시선은 세상이나 세상의 안일에 매이지 않았고 오직 천국과 내세에 붙잡혀 있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이 세상의 재물이나 평안이나 명예에는 티끌만큼의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난을 애처로 고난을 선생으로 죽음을 소원”으로 삼으며 천국을 바라보면서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옥중 생활을 하면서 힘들고 지칠 때마다 손수 지은 “주님 고대가”를 불렀습니다. 이 가사를 보면 그가 얼마나 간절히 재림의 소망 가운데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내 주님 오시기만 고대합니다. 가실 때 다시 오마 하신 예수님,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고적하고 쓸쓸한 빈 들판에서, 희미한 등불만 밝히어 놓고 오실 줄만 고대하고 기다리오니,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먼 하늘 이상한 구름만 떠도, 행여나 내 주님 오시는가 해 주님 계신 그 곳에 가고 싶어요.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천 년을 하루같이 기다린 주님, 내 영혼 당하는 것 볼 수 없어서 이 시간도 기다리고 계신 내 주님, 오 주여 이 시간에 오시 옵소서.”

딸 손동희 권사는 손양원 목사님의 천국 신앙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아버지는 하늘 나라의 복음을 전할 뿐, 현세의 안락과 풍요를 약속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가끔 안수 기도를 해 달라고 찾아오는 병자가 있었지만, 아버지는 특별히 병 고침을 위한 안수기도를 한 적이 없다. ‘나는 영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육신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병들면 어떻습니까? 병신이면 또 어떻습니까? 잠간인 나그네 세상에서 병신으로 살다가 천국 가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다구요.’ 이런 말로 병자를 돌려보낼 뿐이다. 나병환자들과 평생을 같이 보내며 그들을 사랑으로 돌보았지만, 그들의 병든 상태를 나쁘다거나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지 않았다.”

손양원 목사님은 결국 1950년 9월 13일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2주일간 온갖 수모를 다 당하시고 9월 28일 밤 11시쯤 미평 과수원에서 총살당하여 48세에 순교하셨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자기를 죽이려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다 총 개머리 판으로 입을 얻어맞아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시면서 하늘 나라로 가셨습니다. 그가 그렇게도 그리고 사모하던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이튿날 아침 남편의 순교 소식을 접한 정양순 사모님은 남편의 시신 앞에서 지난 밤에 갓 태어난 아기를 안고서 비통해 하면서도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오! 당신 소원대로 됐군요. 평소 주기철 목사님을 그렇게도 부러워했는데.... 하나님, 감사합니다. 평생 동안 주의 일을 하게 하시고, 손양원 목사가 소원하던 순교를 허락해 주신 은혜,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정양순 사모님은 마지막까지 나환자들의 친구로 살다가 1977년 11월 26일 사랑하는 남편과 두 아들이 있는 천국으로 옮겨졌습니다. 그가 운명하기 전 가슴에 꼬깃꼬깃 간직했던 돈을 꺼내어 딸에게 전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돈을 밀양교회에 전해 주어라.” 밀양교회는 건축 중에 있던 나환자 교회였습니다. 그의 시신은 남편의 무덤과 합장되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과 정양순 사모님은 순교적 믿음을 지닌 믿음의 사람들이었고 생명을 다 바쳐 나환자들과 원수를 사랑한 사랑의 성자들이었으며 천국을 바라보며 산 소망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삶이어야 하는 것을 보여주고 우리 곁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 합니다. 믿음도 귀중하고 예배도 귀중하고 기도도 귀중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변화된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보다 귀중하고 아름답고 축복된 일인 없다고 생각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착한 삶”이 너무너무 귀중하다는 말씀을 오래 전에 하셨는데, 불쌍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착한 삶”을 무시하는 믿음과 예배와 기도는 받지 않으신다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한국교회의 신앙의 선배님들 중에서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변화된 새로운 삶을 즉 “사랑과 섬김”의 “착한 삶”을 살게 되신 이기풍 목사님 부부와 손양원 목사님 부부에 대한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우리들도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변화된 새로운 삶을 즉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착한 삶”을 살게 하시기를 바라고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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