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tv



 

   
 

   [10/25] 다윗의 감사와 나의 감사 (시23:1-6, 139:14,17,18) - 영천 하나승리교회


제가 2014년 12월 21일 주일 영천 하나승리교회에 처음으로 와서 오전 11시 예배 시간에는 “나의 삶과 목회”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오후 2시 예배 시간에는 “교회는 세상의 소금과 빛”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2016년 6월 26일 주일 두 번째로 와서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는 삶과 사역"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7년 6월 4일 주일 세 번째로 와서 "전도와 섬김의 삶"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8년 6월 24일 주일 네 번째로 와서 오전 11시 예배 시간에는 “주일 성수의 귀중한 신앙”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오후 2시 예배 시간에는 “모험심과 담력의 귀중한 신앙” 이라는 제목으로 간증 설교를 했고, 2019년 6월 2일 주일 여기 다섯 번째로 와서 “모험심과 담력의 귀중한 신앙”(2) 이라는 제목으로 간증 설교를 했고, 2019년 11월 10일 주일 여섯 번째로 와서 "말씀을 사랑하며 말씀대로 사는 삶"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20년 3월 15일 주일 여기 일곱 번째로 와서 “십자가와 부활 신앙”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오늘 2020년 10월 25일 주일 여기 여덟 번째로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설교를 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저를 불러주신 우기진 목사님과 성도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무슨 제목으로 설교를 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우기진 목사님이 추수감사주일을 몇 주 앞두고 “감사”에 대한 설교를 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다윗의 감사와 나의 감사” 라는 제목의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제가 개척해서 세운 강변교회에서 28년동안 목회한 다음 12년 전인 2008년 1월 13일 은퇴한 후 지난 12년 10개월 동안 주일마다 전국의 작은 교회들을 주로 방문하며 설교를 하고 있는데 강변교회는 일년에 두 번씩 즉 부활주일과 추수감사주일에 방문해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은퇴한 해인 2008년 11월 추수감사주일에 강변교회를 두 번째 방문해서 “다윗의 감사와 나의 감사” 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습니다. 오늘 그 때 한 설교를 거의 그대로 하려고 합니다. 제가 그때 설교를 다음과 같이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여러분들이 많이 보고 싶었는데 오늘 은퇴한 후 두 번째로 강변교회에 와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을 만나 보게 되어서 너무 좋습니다. 오늘 추수 감사 주일을 맞아서 “다윗의 감사와 나의 감사” 라는 제목으로 간증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감사를 가슴에 지니고 사는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이고 행복한 사람입니다. 감사와 함께 기쁨과 기도와 사랑과 보고 싶음을 가슴에 지니고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최고로 아름답고 최고로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다윗은 하늘을 바라보고 자연만물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자기 자신을 바라보면서 감사와 감격에 넘치는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19:1).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도 두려울 정도로 놀라울 정도로 멋지고 대단하게 지어주셨습니까 그래서 나는 주님께 감사를 드릴 뿐입니다.” 다윗은 자기의 모습을 이리로 보나 저리로 보나 두려울 정도로 놀라울 정도로 멋지고 대단하게 지어졌음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렸습니다. 오늘 아침 다윗의 감사의 조목 다섯 가지를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제가 그때 설교를 다음과 같이 계속했습니다.


『첫째로, 다윗은 자기를 하나님을 믿고 따를 수 있는 믿음의 존재로 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 다윗은 평생 하나님을 자기의 목자로 삼고 목자 되시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것이 다윗의 감사의 첫째 조목이었습니다. 제가 대학생 때 한 동안 수요일마다 영락교회에 가서 한경직 목사님의 시편 설교를 듣곤 했는데 어느 날 한경직 목사님께서 시편 23편을 가지고 설교를 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들도 다윗처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라고 고백하십니까? 다른 사람의 목자가 아니고 ‘나의’ 목자라고 고백하십니까? 그러면 여러분들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다윗은 평생 하나님을 자기의 삶을 인도하시는 ‘나의’ 목자로 삼고 목자 되시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다윗은 목자 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 찌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 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시139:9,10). 그래서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자기로 다닐 찌라도 무서워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습니다. 다윗은 언제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저에게도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을 믿고 따르면서 살수 있는 믿음의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사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영혼에 부어주시는 가장 귀중한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도 다윗처럼 목자 되시는 하나님을 어머니나 아버지보다 더 믿고 더 따를 수 있는 보배로운 믿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저도 다윗처럼 아무리 어려운 형편에 처해도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담력도 주셨습니다. 38선을 넘을 때도, 남산 중앙정보부에 끌려가서 심문을 받을 때도, 북한에 가서 여기저기 다니면서 나의 소신을 마음껏 말하면서도, 캄캄한 밤에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아프간 국경을 혼자서 걸어서 넘을 때도, 무서움이나 두려움은 전혀 지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목자가 되셔서 나의 길을 항상 인도하심을 믿고 따라갔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과 저의 감사의 첫째 조목은 한 평생 하나님을 믿고 따르면서 사는 믿음의 존재로 지어주신 것입니다.





『둘째로, 다윗은 자기를 울면서 회개할 수 있는 눈물의 존재로 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시6:6).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시56:8). 다윗은 평생 자기의 죄를 바라보며 슬퍼하면서 울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회개할 수 있는 존재로, 울 수 있는 존재로, 지어주신 것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것이 다윗의 감사의 둘째 조목이었습니다. 아마 다윗처럼 그렇게 많은 눈물을 쏟으면서 산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다윗의 눈물의 근본적인 원인은 자기의 범죄였습니다.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시51:3). 다윗의 눈물의 두 번째 원인은 백성들이 당하는 불행과 고통이었습니다. 다윗은 자기 백성들이 당하는 불행과 고통을 바라보면서 울 기력이 없도록 슬프게 울었다고 했습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에 이르러 본즉 성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다윗과 그와 함께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삼상30:3,4).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저에게도 어렸을 때부터 눈물을 흘리면서 울면서 살수 있는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밤마다 울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때문에 울었고 그 다음에는 나의 죄와 허물 때문에 울었습니다. 저는 최근에 저의 불순종과 정욕과 위선과 교만의 죄를 생각할 때마다 뜨거운 눈물을 전보다 더 많이 흘리곤 합니다. 저는 또한 불행과 고통에 처해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슬픔의 눈물을 흘리곤 합니다. 제가 금년 3월 중국 연길에서 눈물로 쓴 글의 일부를 읽어드리겠습니다. “부활절 새벽부터 흐르기 시작한 뜨거운 눈물이 지난 며칠 동안 하염없이 흐르고 있다. 나는 강대에 오른 순간 내가 앉을 의자 앞에 무릎을 끓었다. 그런데 그 순간 뜨거운 눈물이 눈과 가슴에서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 위해 죽으시고 나 위해 부활하신 주님께 대한 회개와 감사의 눈물이었다…… 나는 지금 중국 연변에 와서 또 다른 종류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그 눈물을 나의 가슴 병에 담고 있다. 가난과 고난의 슬픔과 아픔 중에서 자라가는 불쌍한 우리 조선족 어린이들과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저들의 슬픔과 아픔을 함께 느끼면서 슬픔과 아픔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윗과 저의 감사의 둘째 조목은 울면서 회개할 수 있는 눈물의 존재로 지어주신 것입니다.





『셋째로, 다윗은 자기를 용서하며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존재로 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나는 사랑하나 저희는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시109:4). 다윗은 한 평생 자기를 대적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분노와 정죄대신 용서와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지니면서 살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용서하고 사랑할 할 수 있는 용서와 사랑의 존재로 지어주신 것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것이 다윗의 감사의 셋째 조목이었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이 자기를 미워하면서 자기를 죽이려고 했을 때에 그를 미워하거나 대적하지 않고 그에게 자비를 베풀었습니다(삼상26:9,11). 사울 왕이 전쟁터에서 칼에 찔려 죽었을 때에는 승리의 개가를 부르는 대신 자기의 옷을 잡아 찢으면서 울었다고 했습니다. “이에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으매 함께 있는 모든 사람도 그리하고 사울과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음을 인하여 저녁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하니라”(삼하1:11,12). 시므이라는 사람이 다윗을 저주하며 돌로 치려고 했을 때에도 다윗은 저를 미워하거나 대적하지 않고 그를 용서하며 그에게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저로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주시리라”(삼하16:11,12).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마음을 분노와 미움으로 채우시는 대신 용서와 자비로 채우시는 것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저에게도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내가 싫어하고 미워하던 사람들에 대해서 용서와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조금씩, 조금씩 지니면서 살수 있는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일본 사람들에 대해서, 북한 사람들에 대해서, 모슬렘 사람들에 대해서 용서와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조금씩, 조금씩 지니면서 살수 있는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중얼거리곤 합니다. “사랑하고 싶어라. 나는 요사이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에 눈물이 흐른다. 성도들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너무너무 예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 세상 곳곳에 흩어져 사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날 때도 비슷한 느낌을 가진다. 저들의 얼굴과 마음과 영혼 속에 창조주 하나님께서 심어놓으신 고귀한 인성과 신성의 흔적을 보기 때문이다. 저들을 모두 사랑하고 싶어라. 모슬렘도 공산주의자도 상관이 없다. 저들은 모슬렘이나 공산주의 라는 불행한 유산에 쌓여있는 가련한 영혼들일 따름이다. 사랑하고 싶어라.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어라. 나의 맘 나의 몸 나의 정성 다 쏟아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어라.” 다윗과 저의 감사의 셋째 조목은 용서하며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존재로 지어주신 것입니다.





『넷째로, 다윗은 자기를 보고 느끼면서 시와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찬양의 존재로 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다윗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19:1).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시와 노래로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와 사랑을 찬양하는 찬양의 존재로 지어주신 것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것이 다윗의 감사의 넷째 조목이었습니다. 다윗의 마음과 생각과 입에서 나오는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과 자비하심과 은혜로우심과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시와 노래들 뿐이었습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시103:1-8).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열 줄 비파로 주를 찬양하리이다”(시144:9).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저에게도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보고 느끼면서 시와 노래로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면서 살수 있는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저에게도 약간의 시적인 소질을 부어주셨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인 1983년 여름 알프스의 절경에 도취되어 이런 글을 쓴 일이 있었습니다. “제네바 호수를 거슬러 올라가며 좌우에 펼쳐지는 그림과 같은 아름다운 경치에 마음과 정신을 몽땅 빼앗기고 있었다. 몽트뢰라는 곳에서 기차를 타고 알프스의 산속을 거슬러 올라갔다. 계속 펼쳐지는 경치의 아름다움에 나는 완전히 도취되고 있었다. 하늘을 찌를 듯이 꿋꿋하고 빽빽하게 높이 솟아 오른 침엽수들의 부요함과 벼랑 밑으로 부서지며 흘러내리는 폭포수들의 강직함과 깨끗함! 새파란 잔디 언덕 위에 띄엄띄엄 그려져 있는 검붉은 색깔의 나무 집들과 그 사이에서 한가로웁게 풀을 뜯는 젖소들의 평화로운 모습! 나는 점점 정신을 잃고 있었다. 아름다움이 지나치니 가슴에 탄식과 아픔을 느낀다. 창조의 신비와 아름다움에 영혼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저는 최근 독일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를 기렸는데 그 글의 일부를 여기 인용합니다. “나는 요사이 이곳 저곳에서 말씀을 전할 때마다 자주 고백하는 말은, 나의 삶을 돌이켜볼 때 이리로 보나 저리로 보나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없음을 고백하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나의 설교를 너무나 크게 축복하셨다. 모두가 하나님의 망극하신 긍휼과 자비와 은혜 때문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90여명의 신자들이 모두 나와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받았다고 했다. 모두들 마음에 뜨거운 감동을 받으며 기뻐하며 감사했다고 했다. 모두가 망극하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은혜 때문이었다.”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와 긍휼과 사랑에 눈물의 감사와 찬양을 드릴 뿐이다.” 다윗과 저의 감사의 넷째 조목은 시와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찬양의 존재로 지어주신 것입니다.





『다섯째로, 다윗은 자기를 아버지의 집을 그리워하는 천국 소망의 존재로 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23:6).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시17:15). “내가 깰 때에도 오히려 주와 함께 있나이다”(시139:18). 성경에서 깬다는 말은 죽은 후에 다시 일어난다는 뜻입니다(살전5:10). 다윗은 천국에 대한 개념을 분명하게 지니지는 못했지만 믿음의 선배들처럼 하늘에 있는 아버지 집을 그리워하고 사모하면서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다윗의 감사의 다섯째 조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모세처럼 현세를 그림자와 같고 허사뿐이라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 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 뿐이니이다(셀라)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시39:4-7).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저에게도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점점 아버지 집을 그리워하고 사모하면서 살수 있는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저는 최근에 (바로 지난 8월 31일 늦은 밤에) 아버지 집을 바라보면서 “주님 앞에 섰을 때의 나의 모습” 이란 제목의 글을 써 보았는데 그 글을 여기 그대로 인용합니다. 그 글에는 천국을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과 함께 처절한 회개의 마음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내가 앞으로 아버지 집으로 올라가서 주님 앞에 섰을 때 나의 모습이 어떠할까? 기뻐 뛰는 모습일까? 소리 지르며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모습일까?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소리 없이 흐느끼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그런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죄송하고 부끄럽고 고마워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흐느껴 우는 그런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평생 사는 동안 주님 위해서 산다고 떠들었지만 사실은 불순종과 정욕과 위선과 교만으로 가득했던 것을 되돌아 보면서 얼굴도 들 수 없고 입도 열수 없어서 그저 고개를 떨구고 흐느껴 우는 그런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나를 주님의 입에서 토해 내지 않으시고 한 평생 붙드시며 사용하셨을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너무 부끄럽고 너무 죄송하고 너무 고마워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흐느껴 우는 그런 모습이 주님 앞에 섰을 때의 나의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또 하나의 나의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 그리고 길선주 목사님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이성봉 목사님 김치선 목사님 박윤선 목사님 한경직 목사님 등 신앙의 선배들 앞에 무릎을 끓고 감사와 존경과 사랑을 표시하고 또 표시하는 나의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내가 지옥의 형벌에 떨어지지 않고 아버지 집으로 올라오게 된 것은 첫째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긍휼과 자비와 은혜와 사랑 때문이지만 둘째는 신앙의 선배들이 나의 몸과 영혼에 심어준 회개와 믿음과 눈물과 사랑의 씨앗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또 하나의 나의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나를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도 아름답게 사랑하시던 어머니를 붙잡고 뜨거운 사랑의 눈물을 흘리는 그런 모습입니다. ‘손이라도 한번 꽉 쥐어보고 싶다’고 말씀하시던 어머니에게 두 손과 두 팔과 온 몸을 안겨드리면서 뜨거운 사랑의 눈물을 흘리는 그런 모습입니다. 그리고 옆에서 빙그레 웃으시면서 나를 바라보시는 나의 아버지 품에 힘껏 안겨드리는 모습입니다. 믿음의 길 충성의 길 순교의 길을 몸으로 보여주신 나의 아버지 품에 힘껏 안겨서 사랑과 존경과 고마움을 속삭여 드리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내가 너무나 슬프고도 아프게 사랑하던 어린 아들 철원이를 품에 안고 너무너무 보고 싶었다고 속삭이는 모습입니다. 저는 또 하나의 나의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과 친족들과 성도들을 만나서 너무너무 반가워하는 행복한 나의 모습입니다. 나의 부족한 전도와 목회와 선교를 통해 주님을 알게 되고 믿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섬기게 된 수 많은 성도들! 부족한 나에게 눈물과 기도와 사랑을 쏟아 바친 수 많은 성도들! 강변의 성도들을 비롯한 지구 곳 곳에 흩어져 살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하늘 집으로 올라와서 다시 만나게 된 수 많은 성도들을 만나서 너무너무 반가워 하는 행복한 나의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저는 너무너무 부끄러워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흐느껴 울다가 너무너무 반갑고 너무너무 고마워서 소리 내어 웃으면서 행복해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토록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긍휼과 자비와 지혜와 권능과 위대하심을 무릎을 꿇고 두 손 높이 들어 찬양하고 또 찬양하고 또 찬양할 것입니다.”(2008년 8월 31일 밤). 다윗과 저의 감사의 다섯째 조목은 아버지의 집을 그리워하는 천국 소망의 존재로 지어주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다윗이 가슴에 지니고 살았던 다섯 가지 감사의 조목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부족한 저에게도 다섯 가지 감사의 조목들을 지니고 살게 하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처음에 한 말을 다시 반복합니다. “감사를 가슴에 지니고 사는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이고 행복한 사람입니다. 감사와 함께 기쁨과 기도와 사랑과 보고 싶음을 가슴에 지니고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최고로 아름답고 최고로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로 여러분들과 제가 남은 여생을 원망과 불평대신, 근심 걱정대신, 미움과 분노대신, 무정함과 냉정함대신, 감사와 함께 기쁨과 기도와 사랑과 보고 싶음을 가슴에 지니고 행복하고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윗처럼 목자 되시는 하나님만 믿고 따르면서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 말씀 몇 곳을 읽으므로 말씀을 맺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롬12:10-15).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살전2:17).』


이것이 12년 전인 2008년 11월 추수감사주일에 강변교회에서 한 간증설교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이 얼마나 감사하고 얼마나 귀중하고 얼마나 놀라운지 모릅니다. 감사가 충만한 귀중하고 아름다운 삶을 계속해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며 축원합니다.
” 영천 하나승리교회(20.10.25)


x





제가 2014년 12월 21일 주일 영천 하나승리교회에 처음으로 와서 오전 11시 예배 시간에는 “나의 삶과 목회”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오후 2시 예배 시간에는 “교회는 세상의 소금과 빛”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2016년 6월 26일 주일 두 번째로 와서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는 삶과 사역"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7년 6월 4일 주일 세 번째로 와서 "전도와 섬김의 삶"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8년 6월 24일 주일 네 번째로 와서 오전 11시 예배 시간에는 “주일 성수의 귀중한 신앙”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오후 2시 예배 시간에는 “모험심과 담력의 귀중한 신앙” 이라는 제목으로 간증 설교를 했고, 2019년 6월 2일 주일 여기 다섯 번째로 와서 “모험심과 담력의 귀중한 신앙”(2) 이라는 제목으로 간증 설교를 했고, 2019년 11월 10일 주일 여섯 번째로 와서 "말씀을 사랑하며 말씀대로 사는 삶"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20년 3월 15일 주일 여기 일곱 번째로 와서 “십자가와 부활 신앙”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오늘 2020년 10월 25일 주일 여기 여덟 번째로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설교를 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저를 불러주신 우기진 목사님과 성도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무슨 제목으로 설교를 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우기진 목사님이 추수감사주일을 몇 주 앞두고 “감사”에 대한 설교를 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다윗의 감사와 나의 감사” 라는 제목의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제가 개척해서 세운 강변교회에서 28년동안 목회한 다음 12년 전인 2008년 1월 13일 은퇴한 후 지난 12년 10개월 동안 주일마다 전국의 작은 교회들을 주로 방문하며 설교를 하고 있는데 강변교회는 일년에 두 번씩 즉 부활주일과 추수감사주일에 방문해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은퇴한 해인 2008년 11월 추수감사주일에 강변교회를 두 번째 방문해서 “다윗의 감사와 나의 감사” 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습니다. 오늘 그 때 한 설교를 거의 그대로 하려고 합니다. 제가 그때 설교를 다음과 같이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여러분들이 많이 보고 싶었는데 오늘 은퇴한 후 두 번째로 강변교회에 와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을 만나 보게 되어서 너무 좋습니다. 오늘 추수 감사 주일을 맞아서 “다윗의 감사와 나의 감사” 라는 제목으로 간증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감사를 가슴에 지니고 사는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이고 행복한 사람입니다. 감사와 함께 기쁨과 기도와 사랑과 보고 싶음을 가슴에 지니고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최고로 아름답고 최고로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다윗은 하늘을 바라보고 자연만물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자기 자신을 바라보면서 감사와 감격에 넘치는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19:1).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도 두려울 정도로 놀라울 정도로 멋지고 대단하게 지어주셨습니까 그래서 나는 주님께 감사를 드릴 뿐입니다.” 다윗은 자기의 모습을 이리로 보나 저리로 보나 두려울 정도로 놀라울 정도로 멋지고 대단하게 지어졌음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렸습니다. 오늘 아침 다윗의 감사의 조목 다섯 가지를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제가 그때 설교를 다음과 같이 계속했습니다.


『첫째로, 다윗은 자기를 하나님을 믿고 따를 수 있는 믿음의 존재로 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 다윗은 평생 하나님을 자기의 목자로 삼고 목자 되시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것이 다윗의 감사의 첫째 조목이었습니다. 제가 대학생 때 한 동안 수요일마다 영락교회에 가서 한경직 목사님의 시편 설교를 듣곤 했는데 어느 날 한경직 목사님께서 시편 23편을 가지고 설교를 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들도 다윗처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라고 고백하십니까? 다른 사람의 목자가 아니고 ‘나의’ 목자라고 고백하십니까? 그러면 여러분들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다윗은 평생 하나님을 자기의 삶을 인도하시는 ‘나의’ 목자로 삼고 목자 되시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다윗은 목자 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 찌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 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시139:9,10). 그래서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자기로 다닐 찌라도 무서워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습니다. 다윗은 언제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저에게도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을 믿고 따르면서 살수 있는 믿음의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사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영혼에 부어주시는 가장 귀중한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도 다윗처럼 목자 되시는 하나님을 어머니나 아버지보다 더 믿고 더 따를 수 있는 보배로운 믿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저도 다윗처럼 아무리 어려운 형편에 처해도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담력도 주셨습니다. 38선을 넘을 때도, 남산 중앙정보부에 끌려가서 심문을 받을 때도, 북한에 가서 여기저기 다니면서 나의 소신을 마음껏 말하면서도, 캄캄한 밤에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아프간 국경을 혼자서 걸어서 넘을 때도, 무서움이나 두려움은 전혀 지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목자가 되셔서 나의 길을 항상 인도하심을 믿고 따라갔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과 저의 감사의 첫째 조목은 한 평생 하나님을 믿고 따르면서 사는 믿음의 존재로 지어주신 것입니다.





『둘째로, 다윗은 자기를 울면서 회개할 수 있는 눈물의 존재로 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시6:6).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시56:8). 다윗은 평생 자기의 죄를 바라보며 슬퍼하면서 울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회개할 수 있는 존재로, 울 수 있는 존재로, 지어주신 것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것이 다윗의 감사의 둘째 조목이었습니다. 아마 다윗처럼 그렇게 많은 눈물을 쏟으면서 산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다윗의 눈물의 근본적인 원인은 자기의 범죄였습니다.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시51:3). 다윗의 눈물의 두 번째 원인은 백성들이 당하는 불행과 고통이었습니다. 다윗은 자기 백성들이 당하는 불행과 고통을 바라보면서 울 기력이 없도록 슬프게 울었다고 했습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에 이르러 본즉 성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다윗과 그와 함께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삼상30:3,4).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저에게도 어렸을 때부터 눈물을 흘리면서 울면서 살수 있는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밤마다 울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때문에 울었고 그 다음에는 나의 죄와 허물 때문에 울었습니다. 저는 최근에 저의 불순종과 정욕과 위선과 교만의 죄를 생각할 때마다 뜨거운 눈물을 전보다 더 많이 흘리곤 합니다. 저는 또한 불행과 고통에 처해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슬픔의 눈물을 흘리곤 합니다. 제가 금년 3월 중국 연길에서 눈물로 쓴 글의 일부를 읽어드리겠습니다. “부활절 새벽부터 흐르기 시작한 뜨거운 눈물이 지난 며칠 동안 하염없이 흐르고 있다. 나는 강대에 오른 순간 내가 앉을 의자 앞에 무릎을 끓었다. 그런데 그 순간 뜨거운 눈물이 눈과 가슴에서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 위해 죽으시고 나 위해 부활하신 주님께 대한 회개와 감사의 눈물이었다…… 나는 지금 중국 연변에 와서 또 다른 종류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그 눈물을 나의 가슴 병에 담고 있다. 가난과 고난의 슬픔과 아픔 중에서 자라가는 불쌍한 우리 조선족 어린이들과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저들의 슬픔과 아픔을 함께 느끼면서 슬픔과 아픔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윗과 저의 감사의 둘째 조목은 울면서 회개할 수 있는 눈물의 존재로 지어주신 것입니다.





『셋째로, 다윗은 자기를 용서하며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존재로 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나는 사랑하나 저희는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시109:4). 다윗은 한 평생 자기를 대적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분노와 정죄대신 용서와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지니면서 살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용서하고 사랑할 할 수 있는 용서와 사랑의 존재로 지어주신 것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것이 다윗의 감사의 셋째 조목이었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이 자기를 미워하면서 자기를 죽이려고 했을 때에 그를 미워하거나 대적하지 않고 그에게 자비를 베풀었습니다(삼상26:9,11). 사울 왕이 전쟁터에서 칼에 찔려 죽었을 때에는 승리의 개가를 부르는 대신 자기의 옷을 잡아 찢으면서 울었다고 했습니다. “이에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으매 함께 있는 모든 사람도 그리하고 사울과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음을 인하여 저녁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하니라”(삼하1:11,12). 시므이라는 사람이 다윗을 저주하며 돌로 치려고 했을 때에도 다윗은 저를 미워하거나 대적하지 않고 그를 용서하며 그에게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저로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주시리라”(삼하16:11,12).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마음을 분노와 미움으로 채우시는 대신 용서와 자비로 채우시는 것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저에게도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내가 싫어하고 미워하던 사람들에 대해서 용서와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조금씩, 조금씩 지니면서 살수 있는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일본 사람들에 대해서, 북한 사람들에 대해서, 모슬렘 사람들에 대해서 용서와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조금씩, 조금씩 지니면서 살수 있는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중얼거리곤 합니다. “사랑하고 싶어라. 나는 요사이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에 눈물이 흐른다. 성도들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너무너무 예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 세상 곳곳에 흩어져 사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날 때도 비슷한 느낌을 가진다. 저들의 얼굴과 마음과 영혼 속에 창조주 하나님께서 심어놓으신 고귀한 인성과 신성의 흔적을 보기 때문이다. 저들을 모두 사랑하고 싶어라. 모슬렘도 공산주의자도 상관이 없다. 저들은 모슬렘이나 공산주의 라는 불행한 유산에 쌓여있는 가련한 영혼들일 따름이다. 사랑하고 싶어라.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어라. 나의 맘 나의 몸 나의 정성 다 쏟아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어라.” 다윗과 저의 감사의 셋째 조목은 용서하며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존재로 지어주신 것입니다.





『넷째로, 다윗은 자기를 보고 느끼면서 시와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찬양의 존재로 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다윗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19:1).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시와 노래로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와 사랑을 찬양하는 찬양의 존재로 지어주신 것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것이 다윗의 감사의 넷째 조목이었습니다. 다윗의 마음과 생각과 입에서 나오는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과 자비하심과 은혜로우심과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시와 노래들 뿐이었습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시103:1-8).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열 줄 비파로 주를 찬양하리이다”(시144:9).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저에게도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보고 느끼면서 시와 노래로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면서 살수 있는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저에게도 약간의 시적인 소질을 부어주셨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인 1983년 여름 알프스의 절경에 도취되어 이런 글을 쓴 일이 있었습니다. “제네바 호수를 거슬러 올라가며 좌우에 펼쳐지는 그림과 같은 아름다운 경치에 마음과 정신을 몽땅 빼앗기고 있었다. 몽트뢰라는 곳에서 기차를 타고 알프스의 산속을 거슬러 올라갔다. 계속 펼쳐지는 경치의 아름다움에 나는 완전히 도취되고 있었다. 하늘을 찌를 듯이 꿋꿋하고 빽빽하게 높이 솟아 오른 침엽수들의 부요함과 벼랑 밑으로 부서지며 흘러내리는 폭포수들의 강직함과 깨끗함! 새파란 잔디 언덕 위에 띄엄띄엄 그려져 있는 검붉은 색깔의 나무 집들과 그 사이에서 한가로웁게 풀을 뜯는 젖소들의 평화로운 모습! 나는 점점 정신을 잃고 있었다. 아름다움이 지나치니 가슴에 탄식과 아픔을 느낀다. 창조의 신비와 아름다움에 영혼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저는 최근 독일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를 기렸는데 그 글의 일부를 여기 인용합니다. “나는 요사이 이곳 저곳에서 말씀을 전할 때마다 자주 고백하는 말은, 나의 삶을 돌이켜볼 때 이리로 보나 저리로 보나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없음을 고백하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나의 설교를 너무나 크게 축복하셨다. 모두가 하나님의 망극하신 긍휼과 자비와 은혜 때문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90여명의 신자들이 모두 나와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받았다고 했다. 모두들 마음에 뜨거운 감동을 받으며 기뻐하며 감사했다고 했다. 모두가 망극하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은혜 때문이었다.”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와 긍휼과 사랑에 눈물의 감사와 찬양을 드릴 뿐이다.” 다윗과 저의 감사의 넷째 조목은 시와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찬양의 존재로 지어주신 것입니다.





『다섯째로, 다윗은 자기를 아버지의 집을 그리워하는 천국 소망의 존재로 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23:6).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시17:15). “내가 깰 때에도 오히려 주와 함께 있나이다”(시139:18). 성경에서 깬다는 말은 죽은 후에 다시 일어난다는 뜻입니다(살전5:10). 다윗은 천국에 대한 개념을 분명하게 지니지는 못했지만 믿음의 선배들처럼 하늘에 있는 아버지 집을 그리워하고 사모하면서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다윗의 감사의 다섯째 조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모세처럼 현세를 그림자와 같고 허사뿐이라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 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 뿐이니이다(셀라)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시39:4-7).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저에게도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점점 아버지 집을 그리워하고 사모하면서 살수 있는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저는 최근에 (바로 지난 8월 31일 늦은 밤에) 아버지 집을 바라보면서 “주님 앞에 섰을 때의 나의 모습” 이란 제목의 글을 써 보았는데 그 글을 여기 그대로 인용합니다. 그 글에는 천국을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과 함께 처절한 회개의 마음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내가 앞으로 아버지 집으로 올라가서 주님 앞에 섰을 때 나의 모습이 어떠할까? 기뻐 뛰는 모습일까? 소리 지르며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모습일까?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소리 없이 흐느끼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그런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죄송하고 부끄럽고 고마워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흐느껴 우는 그런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평생 사는 동안 주님 위해서 산다고 떠들었지만 사실은 불순종과 정욕과 위선과 교만으로 가득했던 것을 되돌아 보면서 얼굴도 들 수 없고 입도 열수 없어서 그저 고개를 떨구고 흐느껴 우는 그런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나를 주님의 입에서 토해 내지 않으시고 한 평생 붙드시며 사용하셨을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너무 부끄럽고 너무 죄송하고 너무 고마워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흐느껴 우는 그런 모습이 주님 앞에 섰을 때의 나의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또 하나의 나의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 그리고 길선주 목사님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이성봉 목사님 김치선 목사님 박윤선 목사님 한경직 목사님 등 신앙의 선배들 앞에 무릎을 끓고 감사와 존경과 사랑을 표시하고 또 표시하는 나의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내가 지옥의 형벌에 떨어지지 않고 아버지 집으로 올라오게 된 것은 첫째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긍휼과 자비와 은혜와 사랑 때문이지만 둘째는 신앙의 선배들이 나의 몸과 영혼에 심어준 회개와 믿음과 눈물과 사랑의 씨앗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또 하나의 나의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나를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도 아름답게 사랑하시던 어머니를 붙잡고 뜨거운 사랑의 눈물을 흘리는 그런 모습입니다. ‘손이라도 한번 꽉 쥐어보고 싶다’고 말씀하시던 어머니에게 두 손과 두 팔과 온 몸을 안겨드리면서 뜨거운 사랑의 눈물을 흘리는 그런 모습입니다. 그리고 옆에서 빙그레 웃으시면서 나를 바라보시는 나의 아버지 품에 힘껏 안겨드리는 모습입니다. 믿음의 길 충성의 길 순교의 길을 몸으로 보여주신 나의 아버지 품에 힘껏 안겨서 사랑과 존경과 고마움을 속삭여 드리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내가 너무나 슬프고도 아프게 사랑하던 어린 아들 철원이를 품에 안고 너무너무 보고 싶었다고 속삭이는 모습입니다. 저는 또 하나의 나의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과 친족들과 성도들을 만나서 너무너무 반가워하는 행복한 나의 모습입니다. 나의 부족한 전도와 목회와 선교를 통해 주님을 알게 되고 믿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섬기게 된 수 많은 성도들! 부족한 나에게 눈물과 기도와 사랑을 쏟아 바친 수 많은 성도들! 강변의 성도들을 비롯한 지구 곳 곳에 흩어져 살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하늘 집으로 올라와서 다시 만나게 된 수 많은 성도들을 만나서 너무너무 반가워 하는 행복한 나의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저는 너무너무 부끄러워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흐느껴 울다가 너무너무 반갑고 너무너무 고마워서 소리 내어 웃으면서 행복해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토록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긍휼과 자비와 지혜와 권능과 위대하심을 무릎을 꿇고 두 손 높이 들어 찬양하고 또 찬양하고 또 찬양할 것입니다.”(2008년 8월 31일 밤). 다윗과 저의 감사의 다섯째 조목은 아버지의 집을 그리워하는 천국 소망의 존재로 지어주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다윗이 가슴에 지니고 살았던 다섯 가지 감사의 조목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부족한 저에게도 다섯 가지 감사의 조목들을 지니고 살게 하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처음에 한 말을 다시 반복합니다. “감사를 가슴에 지니고 사는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이고 행복한 사람입니다. 감사와 함께 기쁨과 기도와 사랑과 보고 싶음을 가슴에 지니고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최고로 아름답고 최고로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로 여러분들과 제가 남은 여생을 원망과 불평대신, 근심 걱정대신, 미움과 분노대신, 무정함과 냉정함대신, 감사와 함께 기쁨과 기도와 사랑과 보고 싶음을 가슴에 지니고 행복하고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윗처럼 목자 되시는 하나님만 믿고 따르면서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 말씀 몇 곳을 읽으므로 말씀을 맺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롬12:10-15).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살전2:17).』


이것이 12년 전인 2008년 11월 추수감사주일에 강변교회에서 한 간증설교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이 얼마나 감사하고 얼마나 귀중하고 얼마나 놀라운지 모릅니다. 감사가 충만한 귀중하고 아름다운 삶을 계속해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며 축원합니다.






 
http://21tv.org/bbs/zboard.php?id=kangbyun
 
  [한복협] 2020년 5월 발표
21TV 유투브채널 오픈하다....
플로리스트 고급과정 회원...
영상 서비스가 업그레이드 ...
가을을 여는 성전꽃꽂이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