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몇 살이냐?" "응,○○ 살." "동갑이군. 그러면 몇 월생?" "○ 월." "와,그것도 같네! 그러면 생일은?" "○ 일이야." "으이휴,생일은 나보다 며칠 늦구나. 너 오늘부터 나를 형님으로 깍듯이 모셔라." "아냐,사실은 호적이 좀 늦게 된 거야!"
성장기의 청소년들 사이에 흔히 오가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도토리 키재듯,생일생시까지 까락까락 따지며 아옹다옹하다가, 옆 친구보다 단 몇 시간만이라도 더 '연세(?)를 드신' 사실이 확인되면,무슨 남 못한 장원급제나 한 듯 자랑스럽던 시절이 있지요. 그래,머슴애들은,조금이라도 더 노숙하게 보이려고,'면도를 자주 하면 턱수염이 굳세진다'는 풍문을 함부로 믿고,남몰래 거울 앞에서 틈나는 대로 그 어리디 어린 턱에 벌겋게 면도칼질을 해대기도 합니다.
그 결과,어쩌다 까칠한 턱수염 한 오래기나 만져지면,무슨 천연기념물이나 되는 양 그것을 소중하게 간직하는 데,그 '보물 1호(?)'를 정말 몰상식하게도 "똥털"로 매도하며 뽑으러 달려드는 생활지도주임 선생님을 피하느라 교문 근처를 마음 졸이며 맴돈 추억도 더러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누구에게나 어서 어른 되고 싶어 안달하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습니다만,결국 그토록 고대하던 어른이 된 후론,이젠 거꾸로,시내버스비를 아낄려고 슬슬 대학생 티를 내는데,그래도 안내양이 대충 속아주던 시절도 있긴 했지요. 그런데,언제부턴가 사람들이 나를 자연스레 '아저씨'로 불러주고,그런 변화에 섬칫 놀라는 것도 잠깐,어느덧 그 호칭에 잘도 익숙해져가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언젠가는,'할아버지'라는 말에 소스라쳐 놀라다가,거기에 또 자연스럽게 젖는 서글픔도 별수없이 맛볼 것입니다.
이렇듯,바라보는 세월은 가끔씩 아득해 보여도,되돌아보는 시간은 턱없이 허망할 때가 많습니다. 그 허망함은,삶이 순탄하거나 험난하거나 별반 차이가 없는 듯합니다. 여하튼 주어진 시간을 알뜰히 가꾸지 못한 "때늦은" 아쉬움은,남들이 보기에 제법 열심히 사는 것같은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천근으로 남는 것 같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한 해가 가고 오는 시점이면,그 무게는 물먹은 솜마냥 더욱더 버거워옴을 느낍니다. 그럼에도,만원 짜리 하나만 누가 가져가도 길길이 뛸 사람들이,정작 소중한 "시간"뭉치를 TV 앞에서 대충 보내는 것에는 정말 무덤덤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어리석지요.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 가나이다. (구약성경 시편 90편 10절/ 모세의 고백)
도대체 이 "시간"이란 무엇인가?
형체도,빛깔도,냄새도,느낌도,움직임도,그림자도 없는 것. 느린 듯 빠르고,빠른 듯 더딘 것. 좀 더디 갔으면 하는 이 앞에서는 사정없이 빨리 가고,좀 빨리 가기를 바라는 이 앞에서는 한없이 굼 뜬 괴짜. 자기 정체를 전혀 드러내지 않은 채,만물을 그 품 안에서 떡처럼 주무르는 그 무엇. 그래서 유사 이래로 '시간'을 비유한 화려한 언어들이 그토록 많은지 모릅니다. 이래저래 '시간'은 '바람'과 많이 닮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바람을 붙잡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바람 같은 세월…….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인생 120년을 살다간 위대한 신앙인 모세도,이렇게 붙잡을 수 없는 시간 속의 인생을,
"신속히 날아가는 것"
으로 묘사했는지 모릅니다. 그 신속히 날아가는 듯한 인생길,뒤 돌아보면 언제나,모세의 말마따나 자랑스럽고 감격스런 순간보 다는,수고와 슬픔이 훨씬 더 많은 것도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러 니,지난 2001년처럼 다사다난했던 세월,참으로 우리네 삶의 현장에 더 있어서는 안될 슬픈 일들이 많았던 시간이야 더 일러 무 엇하겠습니까?
무심한 시간 속에 몹시 목타던 한 해를 힘겹게 보내고,또 한번 벅찬 소망의 새해를 맞습니다. 작년 이맘 때,부푼 가슴으로 새해 새날을 함께 꿈꾸던 많은 이들이,시간 속에 세상을 떠나 지금은 우리 곁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1995년 새해 새날을 함께 꿈꾸는 우리들 가운데 몇몇은,내년 이맘 때쯤이면,사랑하는 이들의 가슴에 축축한 추억으로만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우리의 노력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지는 또 한 묶음의 시간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게 주시는 최고의 선물,가장 환희로운 꽃다발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또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이것을 믿느냐? (신약성경 요한복음 11장 25-26절/ 예수님의 말씀)
아무리 허망하고 매몰차게 흘러도, 이 "시간"이,구원주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2002년이라는 또 한 묶음의 복된 시간의 꽃다발을 안고,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이들에게,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의 향내가 벅찬 감격으로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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