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를 낳아 기르면서,아이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다보면,황홀한 생명의 감동을 문득 문득 경험하게 됩니다. 어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하는 동작들을,아이들은 무척 힘겨워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신생아들은,분명히 눈이 있으면서도 보지 못합니다. 생후 며칠이 지나서야 비로소 눈으로 사물을 인식하게 됩니다. 대소변을 못가리는 건 말할 것도 없고,자기 목을 가누는 간단한 일 하나만 해도,퍽 힘든 시간이 흘러야만 합니다. 목 가누는 시간이 좀 오래 걸리는 아이들은,그 엄마 아빠의 마음을 무척 조마 조마하게 만듭니다. 아무리 목을 바로 세워주어도 이내 '12시 30분' 방향으로 목이 기우는 것을 보면서 많은 부모들은,
'혹 우리 아이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
가슴 콩콩 조바심이 납니다. 그러나 그런 걱정도 잠시,며칠 뒤 목을 건드렁 건드렁 가누면서 아이의 또 다른 움직임이 시작 됩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엎드리려고 꽁꽁 애를 쓰고,또 며칠 지나고 보면 어느 사이엔가 엎어져가지고는 이제는 다시 몸을 뒤집지 못해서 힘들다고 얼굴이 벌겋게 울어댑니다.
이렇듯,하루 하루,한 달 두 달 세월이 가면서 아이는,이내,앉고,서고,걷고,뛰고,손에 닿는 모든 것들을 호기심 어린 손길로 잡아 제치며 온 방안을 뒤집고 다닙니다. 사실 누구나 이런 고지식한 성장단계를 거쳐서,오늘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하지만,많은 사람들이 거의 똑같이 거치는 과정이기 때문에 우리들은,우리 몸의 신비로운 움직임에 대해 별로 경외감을 느끼지도,감사하지도 못하고,그것을 매우 당연시하곤 합 니다.
십오년쯤 전,
급성맹장염으로 수술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짧은 30여분간의 수술이었지만,수술 도중 마취가 깨는 바람에,반의식 상태에서 정말 죽을 고생을 하는 우여곡절 끝에,입원 4일만에 퇴원을 했습니다. 전주시내 어느 고등학교의 교사로 일하고 있을 때였는데,퇴원 직후,학교에 꼭 나가야 할 일로 엉거주춤 집을 나서서 조심조심 시내버스를 탔습니다. ……그 날따라 빈자리가 많았습니다. 느긋이 자리에 앉아 버스가 출발하기까지 잠시 동안,며칠 사이에 무척 낯설게 느껴지는 낯익은 창밖 거리 풍경을 잠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버스가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구머니나,버스가 출발하자마자 저는 정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전엔 한 번도 시내버스가 뛴다는 생각을 해 본 일이 없었는데,그날 비로소 저는 시내버스가 몹시 심하게 요동한다는 것을 절감하게 됐습니다. 도시의 잘 포장된 도로,그나마 서서 가는 것도 아닌,편히 자리를 잡고 앉아서 가는 길이 얼마나 편안한지를 다 아실 터입니다마는,그 날 저는 전혀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버스가 한 번씩 작게 출렁일 때마다 수술한 부위가 얼마나 땅기고 아픈지 생땀이 절로 났습니다. 어쩌다 기사 아저씨가 브레이크를 좀 급히 밟거나 급커브를 돌 때는 수술 부위가 다시 터지는 듯 괴로웠습니다. 학교까지의 여남은 정거장이 다 뭡니까,어찌어찌 다음 정거장에 도착하기를 정말 목을 빼며 기다리다가,아랫배를 움켜준 채 고슴도치 마냥 웅숭크린 몸으로 겨우 버스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까지 걸어가자니, 무더위에 너무 아득한 생각이 들어서 다시 집으로 돌아와버린 적이 있습니다. 몸이 불편하면,편히 앉아서 시내버스 타는 일도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그 날 절실 히 깨달았습니다.
……또 언젠가는 오른쪽 다리에 골절상을 입어서 수 개월간 깁스를 했다가 조심스레 걸음마를 연습하기 시작했는데,한 30 분쯤 걷는 연습을 하고 난 후,발바닥이 얼마나 아프던지 눈물이 찔끔거려서 혼난 적도 있습니다. 그 몇 개월 사이에 발바닥의 굳은살이 다 없어져버렸던 것이지요. 여러분,큰 병원 중환자실이나,재활병동에 한번 가보십시오. 조금 전에 제가 말씀드린 것 말고도,우리가 보통 사람으로 보통 몸짓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신기하며 또 얼마나 감격스러운 것인지를 보다 분명히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몇 년 전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현장의 정말 초조한 구조작업을 지켜보면서도 인간 생명의 신비와 존엄성을 넉넉히 확인하셨을 것입니다. 어느 작가의 책 제목처럼,정말
"산다는 것이 황홀한 것"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구약성경 시편 118편 1,29절)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신약성경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
탐욕으로 눈이 뒤집혀 돈과 명예밖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아무리 많은 은혜와 복을 누려도 결코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합니다. 끝없는 욕망의 도가니를 채우느라 숨가빠할 뿐,내 생명의 신비로운 움직임과 우리 일상의 지극히 당연시되는 놀라운 이적들에 대해 감사하지 못합니다.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고, 걸을 수 있고, 먹을 수 있고, 호흡할 수 있다는
이 놀라운 사실에 결코 감사하지 못합니다.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탐욕의 하중" 때문에 반드시 스스로 붕괴되고 맙니다. 참된 신앙은 '감사하는 삶'에서 비롯됩니다. 우리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정말 작은 것부터 감사하는 삶을 살도록 합시다.
이광우목사
전주열린문교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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