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등학교 만5년 교사 경력이 있다. 기독교 계통의 사립학교였다. 채용되면서 전혀 뇌물을 바치지 않았다. 교장 선생님은 이 학교의 자랑이 바로 뇌물을 용납하지 않으며 학부모들에게 촌지를 받지 않는 학교로 정평이 났다고 했다. 24세 풋내기로서는 너무도 당연하고 전혀 신경 쓸일이 아니어서 좋았다.
첫번 가정방문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소문과는 달리 학부모들은 온갖 정성을 다해 담임교사를 맞이했고, 학교장의 뜻을 받들어 촌지를 거절하는 것은 엄청난 전쟁이었다. 아이들 앞에서 너무나 창피하게 권할 때는 일단 받아서 다음 날 봉투에 가정통신처럼 넣어 돌려보내면서 아주 단호하게 거부하였다. 단 한 번의 실수도 내겐 용납되지 않았고,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믿고 있던터라 진정 그 돈을 받으면, 그 아이를 다른 아이보다 더 사랑해야 한다는 무거운 부담감과 그 학부형의 노예가 된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카랑카랑 또렷하게 의지를 표명했던 어린교사에게 '때묻지 않아서 좋다고 했을런지!' '햇병아리 언제 타락 하는가 보자!' 하였을런지 '미련한 바보 혼자 잘난척 하네!' 그런 생각을 했을런지 나도 모를 일이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나이가 지긋한 아주머니 한 분이 비가 오는 날 막내 아이를 위해서 우산을 가지고 학교에 왔다가 담임교사인 내게 인사나 하고 간다면서 복도에서 나를 불렀다. 나는 우중충 시끌벅적한 교무실 옆 복도로 나온 순간, 인사 하자마자 치마를 훌렁 들추더니 고쟁이 주머니에서 부시럭 거리느라 나를 무색하게 하던 아주머니가 봉투 하나를 내 놓는 것이 아닌가?
나는 즉시 "어머니 저희 학교는 전혀 촌지를 받지 않습니다, 학교 방침입니다. 교장선생님의 뜻이죠, 받은 것처럼 생각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순간 내 얼굴을 빤히 뚜러지게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위 아래를 훑터 내리며, "아니~ 적어서 (돈 액수가) 그러나?" 나는 순간 얼굴이 화끈했다. 내가 그 봉투에 얼마가 들었는지를 어찌 알겠는가?
이 때 바로 교장님이 복도를 지나시다가 이 광경을 보셨다. 복도에는 학생들도 많이 있었다.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어머니! 어서 가세요, 가시면 됩니다." 내 목소리가 날카로웠고 곁에 있던 아이는 당황해서 울상이 되었다. 교장 선생님에게는 촌지를 받는 현장을 들킨 것처럼 그림이 그려졌다. 변명의 여지가 없이 찍혔다는 서글픔에 노엽고 창피했다. 아주머니는 딱하다는드시 혀를 차며 가셨고, 그 아이는 내내 나에게는 쑥스런 존재가 되어버렸다. 지금도 이 기억은 촌지에 관한 멋적은 추억이다.
종례시간에 아이들에게 일렀다."어머니께 가서 말해라. 선생님은 누군가에게 촌지를 받으면, 즉시 돈 준 아이가 이뻐 보일 것 같다. 이 유혹을 엄마들이 막아 주어야만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와, 그래도 선생님에게 순수하게 고마운 마음 을 표하고 싶은 사람은 학년이 다 끝나서 담임 선생님이 바뀔 때 선물을 주시면 얼마든지 받겠다고 말씀드려라! " 일장 연설을 진지한 마음으로 했다. 아이들은 이 말을 잘 알아 들었고 잘 전달했던 모양이다.
그 아주머니 사건 이후 나는 5년 동안 단 한 번도 촌지 때문에 실랑이를 해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단 한분 약사로서 만학으로 석사학위를 하시던 분인데 학년이 끝나고 담임이 바뀔 때 당시에 아주 비싼 돈을 들여 내 옷을 한 벌 해주었던 기억이 있다.
내가 학부모가 되었다. 교사 때의 기억을 되살려 정말 감동적인 그 엄마처럼 학년이 끝날 때 진심으로 내겐 좀 지나칠 정도의 값비싼 선물을 정성드려 준비해서 식사 대접과 함께 드렸다.
내 친구들이 이 사실을 알고는 정말 멍청하기 짝이 없다고 했다. 경제원칙에 빗나간다는 것이다. 그 돈은 전혀 가치를 잃었고, 무의미하게 사용된 돈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고맙다는 뜻을 표현할 목적을 달성했으므로 흐뭇했고, 유감없이 이 일을 지속적을 고3때까지 두 아이의 선생님들께 했다.
엊그제 젊은 부인이 상담을 해왔다. 초등 4학년 아들이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촌지를 했더니 다음날부터 아이가 학교가 재미있다고 한단다. 어찌 앞으로 교육을 시킬런지 캄캄하다면서, 내 경우는 어떠했는지 물었다. 지금은 사뭇 세상이 달라지기도 했을 터인데...
고3까지 12년 아이 둘을 고집스레 내 방법으로 촌지를 드리면서 가슴아픈 일도 많이 당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잘 자라주었다. 철부지를 가르쳐 주심에 대해 구체적으로 감사를 표현하는 촌지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방법이 조건으로 주는 뇌물이 되다보니 문제다.
내 아이들이 이유없는 선생님의 미움을 받을 경우 그 상황을 극복하는 것을 배울 기회라고 생각하고 꿋꿋히 버티는 것을 가르쳤다. 물론, 하나님께 선생님의 마음이 변화도록 기도했다. 아이가 이 세상을 살아가자면 이유없이 미움을 받아야 할 때도 있을테니 바로 지금이 이 아이가 그 힘을 키우기 위해 예방주사를 맞는다는 생각으로 무던히 마음 졸이고 애쓰면서 어려움을 극복시켰다.
아이들은 2학기쯤 되면 아예 선생님들은 기대하지 않았고, 내 아이의 실력만큼만 인정 받았다. 엄마 점수는 포기 되었으므로 아이들은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터득해 갔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아부하거나 추근거리거나 토라지지 안으면서 대인관계를 당당하게 맺어나가는 것을 보면 감사한다.
내 아이들의 전 우주요 인생길의 중요한 스승인 선생님들에게 촌지를 드리는 것은 시대가 어찌 변하던지 당연하다. 그러나 순수하게 감사의 표현으로 족할 것이다.
남상순
인천YWCA 이사
청암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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