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하는 남편 곁에서 헌금하는 성도들의 각가지 모습을 보면 서글프기도하고 감격하기도 한다. 부흥회나 특별한 목표를 두고 헌금을 할 때 빈 봉투에 [작정헌금 10만원] 이렇게 쓰인 것을 본다. 년말이 되면 작정했던 분들이 미결산 하고 넘기는 경우도 있다.
하나님께 작정한 것을 사람이 독촉할 성질이 못될 뿐 아니라, 언제까지 낸다고 기한을 정한 바도 아니니, 그야말로 은밀한 개인적 비밀로 넘어간다.
남편이 부담임으로 부임해 갔는데 '새우젓집사'가 있었다. 나는 그 분이 새우젓 장사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내용은 그게 아니었다. 교회건축을 하는동안 여선교회원들이 새우젓을 드럼에 담가 굴 속에서 저장했다. 깡통으로 옮겨 시중보다 싼 값에 팔고 그 이윤을 건축헌금을 했던 모양이다.
그 집사는 새우젓 한깡 값을 일년이 넘도록 갚지 않았단다. 형편이 어렵기도 했지만, 원래 심이(계산이) 흐리기로 알려진 사람이었다. 집사님 뒤통수에 대고 사람들이 수근거리다가. 그만 공공연하게 별명이 '새우젓집사'가 된 것이다. 새우젓 한깡 값을 떼어먹은 집사에게 붙여진 부끄런 별명이었다.
지금 섬기는 교회에서 경험한 일이다. 암투병중이셨던 집사님이 계셨다. 12지장암인데 마지막엔 임파선을 타고 전신에 번져서 목에 장정 주먹만한 혹이 매달리고 다리에도 혹이 두드러져 눈뜨고 참혹해서 바라뵙기 민망했다.
어렵게 교회 건축을 마치고 입당예배를 드리는 날이 되었다. 언제고 그렇지만 공사가 뜻대로 시간을 맞추지 못해서 밤새워 내일 입당예배를 위해 준비하고 있던 차, 거의 뜬눈으로 새우고 새벽이 되었는데 집사님에게 새성전을 보여주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그 집사님의 피눈물의 흔적이 성전 구석구석에 서려있었기 때문이다. 가난했던 집사님은 교회에 건축헌금 할 돈이 없었다. 60이 다된 몸으로 당신 살림하면서 파출부를 나갔다. 파출부해서 번돈을 모두 모아 주일마다 건축헌금을 했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정성을 다해서 몸과 마음을 바친 헌금이었다.
그가 암으로 판정되어 와병하게 될때는 암이 전신에 퍼진 후라서 수술조차도 할 수 없고 속수무책이었다. 파출부를 해서 교회에 건축헌금을 했다면 불신자들에겐 맹신자, 광신자, 미친여자라고 할 것이다. 더구나 교회는 노동력을 착취하는 악질들이 모인곳이라고 할것이다.
거기서 목사는 악당두목쯤으로 생각할 것이다. 집사님은 밤이면 교회 와서 성전에 엎드려 성경을 썼다. 지금 우리교회 머릿돌 속에 집사님이 한자 한자 쓴 성경이 들어있다. 이 성경을 다 쓰기 전에 건축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매일 밤 기도하셨다.
집사님이 돌아가신 후 친하던 권사님이 봉투 두개를 내게 내밀었다. 한개는 추수감사헌금이었다. 자신이 추수감사주일 전에 죽을것 같으니 죽은 후에 성전에 바쳐 달라는 것과 다른 한 봉투는 죽은후 장례식을 집례하신 목사님께 감사하다고 드려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추수감사절이 오기전에 드려진 선불헌금인 셈이다. 두개의 하얀 봉투를 받아들고 많이 울었다. 임종하실 때는 촛불이 꺼지듯 후루륵! 너무도 조용하고 힘없이 그렇게 꺼져 버렸다. 잊을수가 없다.
내가 특별한 사랑을 그녀에게 받았던 것은 아니다. 그가 생전에 내게 개인적으로 선물을 주었거나 늘상 몸으로 나를 도와주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하나님을 너무 사랑하므로 내 가슴을 뜨겁게 해주었던 집사님이셨다.
하나님을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자의 삶을 만나는 것! 그것이야말로 삶의 용기와 힘을 준다. 살맛을 가르쳐준다. 위대한 설교만큼이나 도전을 준다. 집사님은 내게 언제나 희망의 메시지였다.
집사님이 생전에 전도한 한 분이 지금 우리교회의 아주 훌륭한 중직이 되어 내 곁에서 나를 가장 잘 돕고 있다. 나는 집사님이 옆에 지금 함께 계신것으로 믿고 있다.
한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니 열매를 맺는다. 나는 아직도 땅에 떨어지기도 두려워하니 죽기는 얼마나 무서울 것인가? 죽지 못하고 낮추지도 못하는 이 못난이에게 지금도 살아서 말씀하시는 집사님이 문득 그리울 때가 있다. 작정헌금과 선불헌금의 교훈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남상순
인천YWCA 이사
청암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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