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자랑 아닌 자랑이지만 나는 딸만 8명이나 되는 여자나라에서 자랐다. 오빠소리를 해보지 못하고 자랐다. 게다가 내 소생은 남매인데 딸이 먼저라서 누나! 소리는 들어봤으나 내 아이들에게서마져도 오빠!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내게 가장 서툰 낱말이라면 오빠!라는 말이다. 오빠, 오래비, 오라버니, 오라방, 무슨말로 불러봐도 낯설기 짝이 없는 낱말이다.
그러다보니 남자라고는 아버지 뿐이던 집에서 아버지가 남자의 대명사인줄 알고 자랐다. 아침이면 뭇 여자들의 온갖 교태로운 서비스를 받으면서 출근하신다. 줄줄이 땅콩처럼 늘어선 딸들에게 용돈을 배급하시면서 개선장군처럼 대문을 나가시던 황제!
하두 딸들이 아름대니까 어머니는 뒷전에 서서
"일찍 들어오세요! 술드시지 마시고요"
수첩에 명함꼿드시 꽂아 드리던 어머니 말씀! 눈 한 번 마주치지 않으시고 두벅두벅 골목길을 돌아서셨다.
"남자는 저런거야!" 내게 그려진 남자의 상이었다.말은 없으셨지만. 자상하신 눈웃음과 흰머리 날리면서도 망내까지 가르쳐야 숙제를 다 하고 간다면서 늦으막할 때까지 펜대를 잡고 계시던 아버지! 조용한 전형적인 충청도 양반이셨던 아버지! 집안에선 큰 소리 한 번 지를 수 없었다.
말괄량이 기질이 있었던 내게는 견디기 힘든 집안이었지만 후덕하신 어머님의 말씀 "얘들아! 아버지 오신다! 아버지 들으실라!" 아버지는 온 집안의 평화이자 가득채우시는 전부이셨다.
한 남자와 결혼하고 나는 새 남자에 대해 신비로움이 가득했다. 아버지와 아주 다른 남자다. 박력에 과묵! 너무 좋았는데...
아버지와 너무 다른 남자도 있구나...! 이것이 늘 호기심과 적응점을 조화시켜야 하는 난제였다. 이제 이 남자와 30여년 살다보니 내가 길들여진건지 이 남자를 녹여낸건지 이 남자가 어떤땐 아버지처럼 든든하고 어떤땐 친구처럼 만만하다.
그런데 우리집에 또 다른 남자가 하나 있다. 아들이다. 어쩌면 그리도 내 성품을 빼 닮았는지? 어떤땐 화가 벌컥 날 때도 있다. 내면에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나의 약점들을 고대로 빼닮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 하나는 아들이 가장 중요한 순간에는 자기 일을 엄마와 의논한다. 엄마에게 인정받으면 온세상이 긍정한줄 알고 기가 펄펄 살아난다.
그런데도 나는 이 남자의 기를 죽이는데 일가견이 있다. 내가 유난히도 며느리를 좋아하는 것은 이리도 안쓰러운 내 약점을 빼 닮은 내 아들을 인정하고 좋아하는 여자이니까... 나랑 잘 맞는 모양이다.
남자! 세 남자에게서 나는 온 세상 남자들을 경험한양 남자에 대한 연민을 갖고있다. 나이 지긋한 남자를 보면 아버지처럼 따뜻해서 허물없어 좋다. 강한 남자를 보면 내 남편처럼 요리할 수 있다는 착각으로 매력이 발동을 한다. 내게 딱딱 부딛치는 거북한 남자를 보면 되돌아보고 싶다. 정말 잘 통할 사람은 아니었을까? 하고,,,
남자! 남자 없는 세상은 너무 무섭다! 내게 세남자가 없었다면 나는 어떻게 살았을까? 그래서 나는 너무나 평범한 여자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세남자 때문에 나! 많이 울었다.
남상순
인천YWCA 이사
청암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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