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21일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
나의 사랑하는 딸 주은혜가 31살로 노처녀를 졸업했다.
내 딸은 이대 초등교육을 전공하고 미국 미시건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현재 인천에서 초등학교 교사이다. 나이 30을 훌쩍 넘기면서 은근히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결혼적령기를 지나 일에만 몰두하고 있으니 어미 마음에 겁이 덜컥 나기도 한다. 아침이면 "할 일과 삶의 목적이 뚜렷하면 혼자 사는 것도 멋진 일이 아니냐?" 했다가 저녁이 되면 "왜 시집을 안 가느냐"고 구박을 했다.
선을 몇번 보았지만 그게 그리 쉬운게 아니었다.
'바닷가에 모래밭에 어여뿐돌 주워보면 다른 돌만 못해 보여 자꾸 새것 바꿉니다.'라는 동요가 생각났다. 어떤 날은 딸에게 절망적인 선언을 하기도 했다.
"너는 시집 못간다. 결혼조건을 바꾸기 전에는 힘들다. 통계적으로 그렇다" 라고 폭언을 마다치 않았다.
첫째, 목사의 딸이니 상대가 최소한 기독교인이라야 하는데 인구의 4/1에 불과하지 않는가?
둘째, 최소한 대학을 나와야겠지? 대학원을 공부 했으니...많이 배운것도 결혼조건으론 부담스런 함정이었다. 결혼상대자의 선택의 폭이 더욱 좁아진다.
게다가 키 큰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한다. 바로 이 부분이 엄마 아빠에게 많이 꾸중을 들은 부분이다.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어려서부터 가르쳤건만 너무 실망스런 말이었기 때문이다. 키큰 사람을 만날 확률은 거의 결혼하지 않겠다는 말과 다름이 없질 않는가? 게다가 첫눈이 느낌이 와야 한다니...그 느낌이란게 도대체 무엇인지?
자랄 때 거의 속을 썩여본 일이 없는 내 딸과 결혼문제로 많이 충돌했다. 그러던 어느날 구척장승(내 느낌에 그랬다) 키가 187cm되는 친구가 있는데 착하다고 조심스럽게 엄마에게 소개를 했다.
"나보다 한 살 어리구요. 건강하고 착하고 예수 믿어요. 하지만 사랑과 가능성뿐입니다." 소개의 내용은 간단했다. 순간 나는 놀랬다. 모전여전이로구나.
내가 그 옛날 내 친정 아버지께 드렸던 말을 내 딸이 내 앞에서 하고 있질 않는가? 딸은 현재 초등학교 선생이다. 사윗감은 현재 학생이다. 학생과 선생의 결혼이다.
내가 학교선생 할 때 나도 학생인 사람과 결혼했다. 학생과 선생의 결혼이었다. 나도 영어교사를 했는데 딸도 영어전담교사이다. 빈털털이와 결혼했다. 딸도 빈털털이와 결혼을 하겠다고 한다.
나와 남편은 키 차이가 크게 난다. 딸과 사위될 녀석도 키 차이가 크게 난다. 나는 맏딸이고 내 딸도 맏딸인데 남편은 여섯째 아들이고 사위될 녀석은 다섯째다. 그러니 부모님이 양쪽 다 연로하실 수 밖에...
내가 살던 집으로 남편이 장가들어 왔다 내 딸의 살던 집으로 사위녀석이 장가들어 온다. 왜 이렇게 비슷한 점이 많은걸까?
그 옛날 결혼 승락을 받고자 내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젊음, 사랑, 가능성 세가지는 있습니다. 결혼을 허락해 주세요. "
내 딸도 똑 같은 소릴 마침내 아빠에게 했다.
"아빠! 결혼을 허락해 주세요. 젊음과 가능성 뿐입니다. 사랑합니다."
모전녀전! 이럴수가... 그래도 30년 세월이 흘렀건만. 어쩜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똑같은 굴레를 돌고 있단 말인가? 지금 딸과 사위는 미국에 신혼여행 중이다. 8월5일 돌아온다.
잘 살았으면 좋겠다. 서로 결혼한 과정만 같고 우리가 살아온 어려운 고비들은 모두 생략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저...서로 감싸주며 거룩한 사명앞에 진실하게 살려고 몸부림쳤던 가치있다싶은 고뇌. 그런것만 비슷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결혼 그 엄연한 현실을 빨리 눈치 챘으면 좋겠다.
하나뿐인 딸을 훌쩍 떠나보내고 문득 그리움에 자취를 뒤져보니 미국유학중에 딸에게 보낸 편지 한통이 방긋 웃으며 허전한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여기 그 편지를 옮겨본다.
사랑하는 딸에게...
꽃샘바람을 타고 파르르 떨며 날아든 네 음성이 잔진히 귓가에 남아서 행복하다.
네가 몹시도 보고싶다만 일에 쫓기다 보니 그저 견딜만 하다. 세상에는 역사의 비운으로 갈라진 이산가족도 많고, 운명의 한계상황으로 인한 이별도 있건만, 잠깐, 그것도 영광스런 결실을 기대하는소망스런 헤어짐인데 단지. 당장 보고싶다는 이유만으로 슬퍼지는 것은 사치스런 감정이라고 나무랐다.
그래도 보고싶은 마음에 네 방을 청소하면서...말이다. 보오얗게 먼지가 묻은 액자며, 조가비, 소도구들, 네 손길 닿은 자욱마다 보고픈 마음을 애서 털어내며, 세월이 어쩌면 더디 흐른다는 생각까지 들질 않겠니?
늦가을 나무잎같은 무서운 고독, 문화갈등, 자기도전에 지치고 힘들 너에게,home sick.감기 몸살 그런것처럼 내면에 싸워 이길 자생력이 있어야 한다. 킬케골이 말한대로 [인간은 마침내 고독과 싸우는 존재]라고 했던가?
[자기가 자기되려는 고독]과 [자기가 자기되지 않으려는 고독]사이에서 씨우는 실존이라던가? 철학을 말하는 엄마보다는 모모처럼 웃으며, 울며, 그저 곁에서 들어주는 엄마가 그리울테지...
한가지에 집중해야 하는 네 삶의 단조로움과 누군가에게 신세져야만 한다는 부담감등이 때로는
대화단절의 고독 이상으로 힘겨울테지...
사랑스런 내 딸아!
멀리 있어 더욱 그리운 내 딸아! 그립다 못해 참으로 소중한 나의 딸아!
아빠하고 열애의 편지를 쓰던 시절을 벗어나 메마른 세월을 보내던 엄마에게 태평양 건너 날아갈 파아란 엄마의 편지가 딸의 고독과 그리움을 상쇄시켜 줄수만 있다면,쓰고 또 쓰고...
시심이 살아난다. 날마나 새벽기도한다. 엄마의 무릎이 너의 고통을 옮겨놓을수만 있다면...
괴로운 날에 날아든 엄마의 편지 한통이 한마리의 비둘기가 될 수만 있다면...
으스러지도록 밝게 웃는 개나리며...
멍청하기조차 함빡 웃어버린 목련과,,,
아우성치듯 화사한 철쭉이... 봄의 생명력을 벅차오르게 한다.
엄마의 세대가 지나도, 너희들의 세대가 북받쳐 올라오드시 말이다.
딸아! 오늘은 엄마의 봄소식에 나른히 주저않자 보렴! 잘 달려온 길인가?
많이 빗나간 것은 없는지? 어떻게 숨돌이고 다시 전진할까? 건강 또 건강하여라 몸도 마음도...
나의 grace 엄마의 사랑을 보낸다.
남상순
인천YWCA 이사
청암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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