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텁지근한 바람 탓인지 벨소리조차 열을 뿜으며 울린다. 따르릉 따르릉... 송수화기를 드는 순간 저쪽에서 아주 가냘픈 목소리가 ‘예은교회죠?’ 한다. 예은교회인 줄 알고 전화를 하고선 되묻는 것은 뭐람. ‘저, 저,..... ’‘예, 말씀하세요.’
한참을 뜸을 들인 후 전화 속 목소리가 말을 했다. 대강의 내용은 이렇다. 자신은 이웃 동네에 있는 천리교회에 머물고 있는데 구원을 받고 싶다는 것이다. 천리교에서 하도 때려서 다른 곳으로 갈까 생각하고 무작정 나왔단다. 어떻게 교회에 전화를 할 생각을 했느냐는 내 물음에 그는 지난 번 병원에 입원을 한 적이 있는데 어느 아주머니가 와서 전도를 해서 교회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지난주에 교회에 들렀지만 예배에 참석하지는 못했단다. 용기를 내어 전화를 한 것이라고. 그러니 영접 기도를 받고 싶다고. 얼른 교회로 오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남루한 옷매무새를 보니 그의 힘든 삶이 빼곡히 그 옷에 배어 있는 것 같았다. 기도실로 안내하여 영접기도를 같이 하였다. 또박또박 잘도 따라했다.
내가 어떻게 해 주길 원하느냐고 했더니 다시 천리교로 들어가면 45일 동안 있는 집회에 참석해야 하고 집회 기간 동안은 출입이 제한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병원에 있을 때 간증을 오셨던 장로님께서 완도에서 들어가는 섬에서 김 양식장을 하는데 오라고 했단다. 그곳에 보내 달라는 것이다.
차비를 구하는, 그것도 완도처럼 먼 곳의 차비를 구하는 사기꾼들을 한두 번 대한 게 아니어서, 그 말을 듣는 순간 어떻게 하는 게 슬기로운 일일까 생각했다. 그의 순진한 눈빛을 보면 주님이 보낸 이임에 틀림이 없고, 그의 수법을 보면 사기꾼이 틀림이 없었다. 이럴 때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속는 셈 치고 그를 천사로 대하기로 했다. 아브라함이 그랬듯이. 그러나 현금을 주는 일은 아무래도 그래서 내 차에 그를 태우고 고속터미널까지 가서 친히 완도행 티켓을 끊어 손에 쥐어주고 돌아섰다. 그는 돌아선 내 등 뒤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이 돈 담에 꼭 갚겠습니다.” 저녁때가 다가오는데 차표만 사준 게 마음에 걸려 다시 돌아가서 그의 손에 빳빳한 지폐 한 장을 더 들려주었다.
돌아오면서 차 안에서 그와 나누던 이야기를 떠올려 보았다. 4살 때 부모 잃은 자기를 보육원에서 천리교의 2인자인 이 아무개 씨의 양자로 보내줬는데 그때부터 천리교회 안에서 살게 되었으며 구타를 당하며 살았다고 한다. 몸이 많이 아파 병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고, 병이 좀 나아 자신의 삶터인 천리교회로 돌아가면 항상 매질이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47살이 되는 현재까지 그렇게 길들여져 살아왔다는 것이다.
이명수, 이 이름 앞에 붙은 성도 그 양아버지의 성이라고 했다. 그의 처절하고 매몰찬 삶을 생각하니 가슴이 메었다. 그러나 하루 이틀, 5일이 지나면서 나의 메던 가슴이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돈 갚은 것는 그만두고 도착하는 대로 그 장로님께 잘 도착했다고 전화나 넣으시라고 부탁했는데, 전화는 찌는 무더위에 더위를 먹은 모양이다. 아, 이명수 씨! 당신도 천사는 아니었던가. 이젠 목사도 사람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공식을 확고히 해야만 한다고 당신의 이름이 외치는 것 같아 그게 마음 아프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