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게 다 옻나무에요?’아내는 신기하다는 듯 몇 번이고 다져 묻는다. 그렇다는 내 대답에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갸우뚱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옻나무가 그리 고울 줄이야 누가 생각이나 했으랴.
우리부부가 거의 매일 오르고 있는 산이 오봉산이라는 우리 동네에 있는 자그마한 산이다. 나 혼자 오르면 1시간 30분이면 넉넉히 올랐다 내려오는 그런 산이다. 물론 아내와 함께 할 때는 그 시간에 거의 배는 더해야 하기는 하지만.
이 산에는 유난히 옻나무가 즐비하다. 손대면 빨간 물이 들 것 같이 찬란한 핏빛의 색깔서부터 곁에 핀 들국화 꽃보다 더 샛노란 빛깔의 이파리까지, 옻나무의 가을빛은 참으로 유난하다.
시골에서 자란 나와는 달리 아내는 시골풍경에 익숙하질 않다. 더군다나 풀이름, 나무이름은 더 설다. 그렇다고 옻나무 정도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옻나무가 가을이 되면 그리 아름다운 색깔들로 거듭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녀의 눈빛이 그걸 말한다.
하긴 나도 옻나무의 가을 변신이 신비롭기는 마찬가지다. 옻나무는 누구도 함부로 근접하지 못하는 나무다. 어렸을 때 옻을 옮기는 줄 모르고 옻나무를 함부로 꺾었다 혼났던 적이 있다. 온몸에 염증이 생기고 가려워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후로 옻나무를 가까이 한 적이 없다.
그런데, 그 접근하지도 않았고, 접근할 수도 없었으며, 멀리서 바라만 보아도 스멀스멀 몸에서 무언가 기어 다니는 느낌이 들었던 그 옻나무가 이렇게 이 가을에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내가 가을을 타서일까.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내 눈에는 같은 옻나무 같은데 각양각색의 색깔로 물들어있다. 우리나라에는 덩굴옻나무, 검양옻나무, 산검양옻나무, 개옻나무(털옻나무), 붉나무(오배자나무) 등이 자란다고 한다. 그러니 그 종류에 따라 다른 색깔의 옷을 입는 것이려니.
키 큰 나무들 밑에서 유난히 납작하게 엎드려 있는 것 같지만, 그들이 뿜어내는 색깔들은 키 큰 나무들이 따를 수 없는 마력을 지녔다. 눈으로만 보지 만지지는 못할 나무, 그래서 더 신비할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옻나무라 부르리라.
된 고생을 안겼던 어렸을 적 기억으로 인하여 옻나무를 좋아하지 못했었는데, 이 가을에 그가 준 기쁨은 희열을 넘어 엑스타시가 되었다. 이젠 슬슬 옻나무를 좋아해야겠다. 만질 수 없어서 더 자극적인, 가까이 할 수 없어서 더 신비로운, 현란한 색깔로 인하여 더 아름다운, 옻나무를 이 가을 사랑해야겠다.
옻나무는 혹 내가 그저 멀리만 바라보며 닿을 수 없다고 생각해왔던 사람이나 사물, 사건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했다. 그들도 아름다움이 있다고, 그들도 따스함이 있다고, 그들도 다가가 사랑하고픈 구석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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