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늘하다고 표현하기는 아직 이른 가을이다. 아침으로는 꽤 고즈넉한 안개가 드리고, 저녁으로는 물안개가 온 들녘에 내려앉는다. 그러나 여태껏 한낮에는 반팔이 어울리는 그런 가을이다. 아직은 난방이 필요 없지 싶다.
그러나 내 아내는 안 그런가 보다. 하도 산골에 들어앉은 집이라 그런지, 벌써 자기 전과 새벽녘에는 어김없이 보일러 타령을 한다. 그뿐이랴. 지난겨울까지 잘 쓰던 매트가 고장 나자 벌써 다른 놈을 하나 구입해 갖춘 터이기도 하다. 그것도 한쪽만 난방을 할 수 있는 2인용으로.
지난여름, 쉬지 않고 내리 때리는 빗줄기는 한밤중에도 조립식 건축물의 방에서 포근한 잠을 기대하는 우리 내외를 사정없이 깨워댔었다. 온갖 징그러운 길짐승들이 문만 열면 나뒹굴고 있고, 창문도 날짐승들이 달려들어 제대로 맘 놓고 열지 못하던 그 찌는 듯 했던 여름에, ‘이 후텁지근하고 지긋지긋한 여름이 언제 간데.’ 하던 때가 어젠데.
벌써 날씨가 가져다 준 그 싸늘함으로 인하여 포근함을 찾는가? 인간의 그 가벼운 간사함에 대하여 무어라 설명을 해야 할까. 스스로 간사함을 깨달은 나조차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걸 안다. 한 20분 정도만 보일러 스위치를 넣어야 하는데, 깜박하고 한 시간을 흘렸다. 얼마나 덥던지.
나는 하루 종일 그 가벼운 간사함에 대하여 불평을 해대며 들락날락했다. 물론 나의 실수이기에 들리는 말로 한 불평은 아니지만. 보일러를 돌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지는 까마득히 잊은 채, 왜 적당한 온도에 자동으로 스위치가 떨어지지 않는 지를 불평하면서…….
지난겨울은 지금보다 훨씬 넓고, 자동으로 잘 떨어지는 보일러가 돌아가는, 조립식이 아닌 고급 아파트에서 났다. 그러나 올 가을과 겨울은 조립식이며 훨씬 좁고, 무엇보다 보일러 스위치가 자동으로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나야 한다.
그러나 빨리 내달라는 아우성을 들어야 했던 지난가을의 아파트보다는 훨씬 대궐이 조립식 건물인 지금의 주택이다. 누구도 방 빼라는 이 없는 평안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산속 깊은 곳이라 자동차를 의탁하지 않고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곳이기도 하지만 역시 맘 편하니 대궐이다.
왜 우리는 좋은 면을 보기보다 나쁜 면을 더 잘 보는 걸까? 그것은 좋은 것들에 너무 익숙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혹 궁핍하고 힘들었던 지난날을 떠올리려 치면, 곰삭아 빠진 옛날이야기나 하는 것쯤으로 치부해 버리며 산다.
진한 한숨과 모진 걱정으로 지내온 지난날을 가진 이라면, 안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지금의 형편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하리라. 나의 가벼운 간사함을 질책하면서 오늘은 그저 감사하는 노랠 부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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