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식사 때만 되면 즐거운 시험에 빠진다. 누구의 커피를 받아야 하는지 하는 시험과 누가 커피를 사주려고 하는지 알아맞혀야 하는 시험이 그것이다. 실은 그것보다 더 먼저 식사 후 커피를 마셔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하는 시험에 빠졌었다. 그러나 그 시험은 마시는 쪽으로 시험 답안을 이미 제출하였으니 이젠 더 이상 시험이 아니다.
내가 이상한 체질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커피를 마시면 그날 잠을 설치는지라, 잠만 설치면 괜찮지만 그 여파는 곧바로 그 숭고한 사명인 새벽기도회로 어김없이 이어지기에 그 동안 커피는 일절 입에 대지 않았었다. 실은 잠은 핑계이고, 몸에 좋지 않다는 낭설을 굳게 믿는 신봉자였기에 그랬다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랬던 내가 요새 커피 마시기의 행복에 폭 빠져 산다. 우리 사랑의마을 어르신들의 행복을 빼앗을 재간이 없어 마시기 시작한 커피는 이제 나를 행복하게 하는 악마(?)로 변신한 지 오래다. 목사에게 누가 먼저 커피 한 잔을 사는가, 이 게 우리 어르신들의 즐거운 경쟁 릴레이인 듯하다.
하루는 아침 운동을 마치고 샤워를 하고 나서 좀 늦었다 싶어 빨리 식당으로 달려갔다. 세 번의 식사시간이 정해져 있는 터라, 그 시간을 맞춰 식당을 가야 한다. 그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 힘들었다. 그러나 조금만 늦는다 싶으면 여지없이 직원이 내 사는 집까지 달려와 ‘목사님 식사하세요!’ 하는지라, 그들의 수고가 미안해 시간을 맞춰 달려가려고 얼마나 애를 쓰는지.
허겁지검 달려간 어느 날이다. 식당으로 들어서자마자 할머니 한 분이 내 앞으로 쏜살같이 돌격해 오셨다. 깜짝 놀라 멈칫하는 내게 편 손을 내미셨다. 그 손바닥에는 동전 두 닢이 들려있었다. ‘식사하고 나서 커피 드세유!’ 깜짝 놀랐던 것이 부끄러웠다. 동전 두 닢을 받아들며 고마움도 함께 마음속에 새겼다. 돌아선 할머니 등 뒤에 대고 외쳤다. ‘고맙습니다. 잘 먹을게요.’
다른 할머니께서 식사가 끝나자마자 동전 두 닢을 내게 주기에, 식사를 오래 하시는 할머니로선 커피 사기가 어렵다 판단 되셔서 그런지 이번에는 식사 전에 그렇게 커피 사기를 시도하셨던 것이다. 그녀의 재빠른 커피 사기는 그 식사 전 돌격으로 인하여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요새 난 하루하루를 달콤하고 쌉싸래한 커피 향에 취해 시작한다. 이젠 아침도, 점심도, 심지어는 저녁을 먹고도 커피를 마셔야만 하는 신세가 되었다. 예전의 건강이 어떻고 하던 핑계는 이젠 추억 속에나 묻어야 할 판이다. 그녀들이 기쁠 수 있다면, 나의 건강에 조금의 이상이 온다손 치더라도 개의치 않기로 했다.
식당 한편에 놓인 자그만 자판기가 오늘도 날보고 빙그레 웃는다. 100원짜리 동전 두 닢이 달그랑 작은 구멍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오늘도 작은 행복은 검은 악마가 되어 내게로 달려온다. 프랑스 작가 타테랑이 말했듯,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천사처럼 아름답고, 사랑처럼 달콤한’ 커피로 인하여 오늘도 행복하다. 그리고 기대한다. 내일은 또 어떤 분의 커피로 인하여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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