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가 가장 시간을 많이 써야 하는 데가 어딜까? 말씀연구, 기도, 돌봄 등등, 맞다. 그런데 그런 것만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그렇게 목회의 소명을 다했다고 볼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 것에 그리 책잡을 게 없다고 하더라도 자녀가 망나니라면 어떨까? 칭찬 받을 목회자일까?
좀 다르게 접근해 보자. 목회자가 인격이며 지식이며 기도생활이며, 목회적 소양에 거의 나무람이 없다고 하자. 그런데 딱 하나 설교를 전달하는 면에서 점수를 줄 수 없다고 하자. 쉽게 말해 언어장애가 있다고 하자. 한 가지 정도의 단점이니 목회를 하는데 이상이 없을까?
언어장애와 소명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하지만 언어장애는 치명적이어서 목회자로서 소명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처럼 전혀 목회적 소명하고는 상관이 없는 것 같은 비본래적인 것이 목회를 방해할 때가 있다.
요즘 난 컴퓨터 때문에 속상했다. 컴퓨터가 말썽을 부려서 말이다.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설교를 준비하고, 목회 문서들을 만들고, 심지어는 목회 돌봄의 일환으로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낼 때도 컴퓨터가 없으면 안 된다. 컴퓨터와 목회는 전혀 상관이 없는 듯 보인다. 그러나 목회자에게 비본래적인 컴퓨터가 이리 목회를 방해하다니.
하는 수 없이 새 것으로 사고 말았다. 더 이상 방치하다가는 시간만 낭비하고 본질까지 흔들릴 것이기에. 비본래적인 것이라고, 부수적인 것이라고, 그냥 놔두면 안 될 것들이 많다. 아니 비본질적인 것 때문에 본질이 잘못되는 경우도 왕왕 있다. 본질과 비본질, 본래적인 것과 비본래적인 것, 핵심과 주변…, 이런 것들이 그렇게 딱 떨어지게 대칭을 이루는 개념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미 한스 큉은 “변하는 교회의 역사적 형태를 통하지 않고서는 교회의 영속적 본질을 알아낼 수 없듯, 교회의 악한 비본질을 통하지 않고서는 교회의 선한 본질을 분별할 수도 없다.”며, “본질과 형태, 영속하는 것과 변하는 것이 그렇듯이, 선과 악, 구원과 재난, 본질과 비본질도 서로 얽혀 있어서 인간의 지력으로는 완전히 풀 수가 없다.”고 했다.
‘본질에 충실하자.’ 맞는 말이다. 이 진리를 훼손하고 싶어 이런 글을 쓰는 게 아니다. 본질에 아무리 충실하더라도 비본질적인 것 때문에 본질이 흐려지고 망가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얘길 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이미 다양성이라는 사회가 자리 잡고 있다. 그 다양성을 인정하느냐 못 하느냐가 인생의 성패를 좌우할 수도 있다. 소위 ‘보수’로 대별되는 사상이 본질을 추구하는 것으로 만족하다가 주변 때문에 와르르 사회 근저까지 무너질 수 있다.
목회자만의 일, 성경연구와 설교, 기도와 목회적 돌봄 등이 중요하다. 그 일에 매진해야 한다. 하지만 본질에 아무리 충실해도 사회적 다양성 속에 존재하고 있는 비본질을 깡그리 무시한다면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목회자이기에 목회에 대하여 생각한 것뿐이다. 그 어떤 분야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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