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네가 미국으로 인턴목회차 떠난뒤 네식구가 살던 두 방이 텅 비어 허전하기 이를데 없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나도록 사진한장 물건 하나 옮겨놓을 수가 없었던 것은 마치 아들네의
소중한 기억이라도 상실될 것 같은 아쉬움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달 5월16일이면 아들네가 이사간지 만 1년이 된다
2년전에 새 주택을 구입해서 지금 사는 이 집으로 이사왔다
이사 올 때 거실 앞 베란다에 마루를 깔고 내 책상 하나를 놓아주었다
베란다인지라 겨울에는 몹시 춥고 여름 오후는 찜방 수준이다
거실과 통한 베란다인지라 노출공간이므로 허허롭기조차 했다
그래도 300여권의 책을 꼽을 수 있는 붙박이 책장이 만들어져
남편의 서재에서 내 책만을 구별해서 꼽을 때 진한 감동이 밀려왔었다
그러던 중 다시 아들이 쓰던 방으로 3일전 내 살림들을 이사했다
베란다 신세를 면하고 비로소 63세에 나의 방이 생겼다
큰 책상으로 바꾸고 컴퓨터 환경도 개선하고 사진 프린트 장비와
음악감상도 제법 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마련되었다
결혼후 38년 단 한번도 내 공간이란 없었다
학교 교사 5년을 할때도 나만의 교육관련 도서들을 따로 정리할 공간이 없었고
준비물을 가즈런히 정리할 곳이 없었다
식탁에서 교안 교재 연구를 하고
밥상을 펴고 아무곳이나 편리하게 이동하며 공부했다
자녀들이 자라서 학교다닐 때 아이들 책상을 마련해 주고
아이들이 없을 때 아이들 자리에서 공부하곤 했다
막내가 4세일 때 대학원을 다니며 논문 정리할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삶의 환경속에서 "나만의 공간" 이란 필수적이었건만
역시 사치스런 여유에 불과해서 꿈도 꿀 수 없었다
모교에서 강의청탁이 들어와서 명색이 교수님 소리를 8년여 듣던 날에도
학생들의 과제물을 들여다 볼 필요공간이 없어 식탁위에 줄줄이 늘어놓거나
거실에 펼쳐 놓고 정신을 못차린 기억이 떠오른다
되는대로 닥치는대로 임기응변식으로 살아온 처지가 번거로웁다는
생각조차 해볼 여지가 없었다
마땅히 그럴수 밖에 없었으므로 문제의식조차도 없었다
그런데 63년만에 나만의 공간이 생겼으니 자랑이라기보다 내 생애에 기록적 사건이 아닌가?
만족할만한 나의 공간이 생겼다면 이제 해야할 일이 무엇일까?
이제는 인생을 돌아볼 때인즉 글도 써 볼 일이고
사진도 열심히 찍어 이웃을 섬길 수 있는 사진작업의 산실
그리고 무엇보다 영력을 공급받는 신령한 처소를 삼아야 할 일이 아닐까?
누군가를 성공시키는 리더쉽이 중요한 일인줄 알고 살아왔는데
"이제는 네 인생도 노년에 성공해 보라"는 주님의 명령이 아닐까?
이런 경사스러운 이사에 퐁퐁 하이타이 선물도 받고 싶지만
무엇보다도 총명한 지혜와 건강한 정신과 거룩한 순종을 드림으로
내인생 노년의 성공을 빌어준다면 이보다 더 귀한 선물이 있을까?
무릇 주어진 환경을 감사하며 살다보면
더 좋은 감사의 조건으로 여호와이레이심을 보여주심이 놀랍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