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치적 방광암 절제술을 마치고 중환자실에서
하루를 지난 후 나오던 환자의 모습은 다시 생각하기도 두렵다
수 많은 줄들이 몸안에 연결되어 있고
몸밖에서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중환자실을 문병해 본 사람들은 짐작을 할 것이다.
퇴원날이 가까워 오면서
그 수 많은 줄들이 하나씩 제거될 때의 기쁨이 있다
늘 모든 줄들이 혹시 잠결에라도 빠져서 비상사태가 된다거나
그 줄들로 세균감영이 올까봐 걱정이 되고 예민했었다
먼저 산소 호흡기 줄이 빠져 나가고
목을 뚫어서 중앙정맥으로 연결했던 줄을 뽑아내고
코에 연결했던 줄도 뽑아내고
피주머니들을 몇차례에 걸쳐 뽑아내고
소변줄 뽑아내고
시술했던 장액을 뽑아내던 줄도 제거하고
종합영양제 들어가던것 뽑아내고
또 다른 영양제 뽑아내고
무통주사액 줄 뽑아내고
수액도 뽑아내고
이제는 주사바늘 꼽아 놓은 곳에
하루 몇차례 항생제만 주사하고 있다
온몸에 주렁주렁 매달렸던 것들이 하나 둘 제거될 때
참 홀가분하고 회복되는 기쁨이 참 행복하다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세속적 욕망에 사로잡힌 줄들이 어디 한두개이던가?
죽기를 무릅쓰고 자존심의 줄을 붙들고 지켜야 하고
대수롭지도 못한 성취를 위해 자기 관리의 줄을 놓지 못하고
끈끈한 정 때문에 괴로운 인간관계의 매듭을 자르지 못하고
병실을 떠나 회복되어 퇴원하는 날에
그 모든 줄들이 다 해결되고 끊어져야 집으로 가듯이
인생의 나를 끌어당기고 소중해 보이던 그 모든 줄들이
가혹하고 아프지만 다 빠지고 끊어져야 영원한 내집 새땅으로 들어간다
가능하다면 그 줄들에 대한 의존도가 적을수록
그날의 행차는 가볍고 행복할 것이다.
나이가 들면 이 줄을 붙들고 의지하는 모습을 노욕이라고 한다
자신이 없어지고 흐미해지는 존재감 때문에
노욕. 그것을 버릴 수 있어야 비운만큼 행복하다는 것을 어렴프시 알게 된다
노욕, 그것은 곧장 노추로 통하므로 떠나는 길에 지장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자기를 지탱해주던 도도한 자존심도 스르르 내려놓아 보기도 하고
옳고 그름의 자기 잣대와 저울도 겸허하게 포기하고
아직 식지 못한 열정이 있으면 더운 피 식듯이 허허로이 식어짐을 인정해야 한다
여호수아 앞에서 위용을 상치 않으며 떠나던 모세처럼
디모데를 훈계하며 저린 가슴으로 떠나던 바울처럼
요한을 지켜주며 이름없이 사라졌던 스데반처럼
믿음으로 낳은 아들 마가에게 부탁하던 베드로처럼
이제는 집착, 집요, 집중, 마저 마이너스 변수라고 생각하고
조용히 시들어가는 기쁨을 간직해야한다
힘없이 사라지는 감격도 맛보도록 해야한다
새날을 위해 헌날이 무너져 내리듯이
낙엽처럼 땅속으로 가라 앉는 시간을 감사해야한다
어쩌면 어느날엔가 나를 기억해 주기를 바라던
이 모든 글들을 삭제해버리고 떠나야 하는 순간도 필요할지 모른다
우리 주님은 진리로 살다 가셨을 뿐
글 한자, 그림자 하나 , 초상화 하나 남기셨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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