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연 저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독후감
김명혁 목사(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우리는 김윤찬 목사님의 생애를 다룬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를 읽으면서 우리 신앙의 선배들에 대한 지극한 존경과 경외심을 지니게 된다. 우선 김윤찬 목사님의 아버지 김락환 청년을 주님께로 인도한 마포 삼열 선교사에 대한 지극한 존경과 경외심을 지니게 된다. 마포 삼열 선교사는 평양의 도사 길선주와 평양의 깡패 두목 이기풍을 주님께로 인도하여 한국교회의 아버지들로 만들어주신 너무나 고마우신 분이다. 그리고 수많은 시련과 핍박과 환난 중에서도 세상의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고 오직 주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과 충성을 온 몸에 지니고 꿋꿋하게 살아오신 김윤찬 목사님에 대한 지극한 존경과 경외심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주님의 교회와 양 무리들을 자신보다 더 뜨겁게 희생적으로 사랑하신 김윤찬 목사님의 사랑에 대해 지극한 존경과 경외심을 지니게 된다. 우선 필자가 이 독후감을 쓰면서 느낀 소감을 간단히 적는다. 필자는 한 평생 비교적 많은 책을 읽고 연구하면서 살아온 사람이다. 그런데 필자가 이번에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를 읽으면서 책 속으로 그렇게 깊이 빠져 들어간 책은 별로 없었다고 생각한다. 김윤찬 목사님의 수 많은 시련과 고난으로 엮어진 파란만장한 생애가 다음에는 어떻게 전개될까 아슬아슬하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책을 정성껏 읽어 내려갈 수밖에 없었고 가슴에 깊은 감동을 지니며 목사님께 대한 지극한 존경과 경외심을 지닐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독후감’을 정성을 다해 써 내려갔다. 사실 ‘독후감’이라기 보다는 중요한 부분들을 간추린 너무나 긴 ‘요약 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김윤찬 목사님의 아버지 김락환은 평안도 대동강변의 한 마을에서 유교적 전통에 흠뻑 젖어 살아오던 중 1897년 여름 집밖으로 나오다가 이상한 광경을 보고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 노랑 머리에 파란 눈 새하얀 피부를 갖고 있는 짐승같이 보이는 사람이 평안도 사투리인 조선말로 외쳐대고 있었다. “자, 여러분. 하나님을 믿으세요. 하나님은 땅과 하늘의 주인이시고 사람들을 만드셨으며 복을 주시며, 우리 인간들을 이 땅에 살게 하셨습니다.” 김락환은 그 사람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마포 삼열 선교사가 산사리 마을에 와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한국에 복음이 들어 온지 12년째, 평양에서 마포 삼열 목사가 선교를 시작한지 7년째 되는 여름이었다. 김락환은 마포 삼열 선교사를 따라갔다. “당신이 말하는 그 신을 알고 싶습니다. 좀 더 자세히 가르쳐줄 수 없습니까?” 마포 삼열 목사의 기도와 인도로 청년 김락환은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신앙이 성숙해졌다. 김락환은 예수를 믿자마자 제사를 폐지하고 성황당 나무를 찍어 버렸다. 마포 삼열 목사는 전도사 송친서를 산사리에 보내서 교회를 세웠고, 김락환은 그 교회에 출석하며 충실한 주의 종이 되어갔다. 마치 손양원 목사님의 아버지 손종일 장로님의 이야기를 읽는 것과 같다.
김락환의 가정이 신앙생활을 철저하게 하고 있던 즈음 셋째가 태어났다. 첫째가 영찬이고 둘째는 딸인 신찬 그리고 셋째인 아들 윤찬이가 태어났다. 둘째 아들 김윤찬은 모태신앙을 안고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축복을 받으면서 태어났는데 태어나서부터 어머니의 등에 업혀서 한 주도 빠지지 않고 교회에 가서 기도와 찬송과 설교 등 모든 예배에 참예하며 신앙을 키워갔다. 어린 윤찬이가 6살이 되었을 때 마을 뒷산에 혼자 올라가서 묘지 위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면서 교회의 전도사님처럼 기도하고 찬송하고 성경 읽고 설교하면서 예배를 인도하는 것을 아버지가 몰래 훔쳐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신앙의 유산처럼 귀중하고 보배로운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필자도 어릴 때부터 11살 때까지 북한의 신의주와 평양에 살면서 아버지를 비롯한 신앙의 선배들이 물려준 신앙의 유산을 몸에 지니고 신앙생활을 철저하게 하면서 살았는데!!! 김윤찬 목사님은 청년 때부터 한 평생 수많은 슬픔과 아픔과 시련과 고난의 과정을 거치면서 일사 각오의 신앙을 지니고 주님과 교회를 생명을 다 바쳐 섬겼는데 그 과정 과정을 되 돌아보면서 우리는 많은 감동과 깨달음과 뉘우침을 받게 된다. 사실 성 어거스틴도 토마스 선교사도 손양원 목사님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별하는 슬픔과 아픔과 시련과 고난의 과정을 거치면서 주님께 온전히 바쳐진 제물들이 된 것을 우리는 발견한다.
김윤찬은 18세의 청년으로 산사리 삼성중학교에 입학해서 영어, 일본어, 산수, 국어, 역사, 지리 등의 신학문을 열정적으로 배우고 4년 후인 22세에 삼성중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김윤찬이 22세가 되었을 때 아버지의 권유로 신앙이 좋은 처녀 한부흥 양과 결혼을 했다. 청년 김윤찬은 결혼 후에도 학문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못하고 숭실전문학교에 입학하여 1년을 다니던 중에 어머니가 질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극심한 슬픔과 아픔의 시련을 경험했다. 1928년 3월 학교가 방학을 한 뒤 청년 김윤찬은 즐거운 마음으로 부모님과 가족이 기다리는 산사리에 들어섰다. 그런데 그를 반겨주어야 할 어머니가 안 보이는 것이었다. 병자가 되어 방안에 누워서 하얗게 굳어져 가는 어머니를 보며 김윤찬은 그 자리에 쓸어져서 통곡을 했다. 3일 후에 어머니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하늘로 올라갔다. 그는 싸늘히 굳어져있는 어머니를 부여잡고 통곡을 하며 소리쳤다. “어머니, 어머니. 천당에 가셨습니까?” 산사리에 김윤찬의 아버지인 김락환과 절친한 김진용이라는 영수가 있었다. 그는 윤찬의 어머니가 세상을 뜨자 첫날부터 윤찬이네 집에 와서 상을 위해 밤낮으로 일을 했다. 하루는 그가 피곤해서 잠시 자기의 집에 쉬러갔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그때 그의 귀에 비몽사몽간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진용아, 일어나라. 일어나서 이것을 보고 속히 증거 하여라.” 그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동쪽 하늘에서 이상한 광채가 쌍무지개처럼 흘러나와서 윤찬의 집에까지 길게 이어져 있었던 것이었다. 그는 윤찬의 집으로 달려가서 소리쳤다. “윤찬아! 윤찬아! 밖에 나와 봐라, 빨리!” 윤찬이 허겁지겁 뛰어나가 지붕 위를 올려다 보았다. “아!” 그의 입에서 감탄의 외마디가 새어 나왔다. 그 성스러운 광경에 청년 김윤찬의 온몸이 뜨거워졌고 그는 후들후들 떨면서 “주여! 주여!” 라고 부르짖었다. 쌍무지개! 청년 김윤찬의 가슴에는 강한 환희와 확신과 함께 어머님이 천당에 드셨다는 것과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받들어 평생을 하나님의 일을 하며 살리라는 강한 의욕이 용솟음쳤다.
청년 김윤찬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내려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해 숭실전문에서 숭신고성으로 옮겨가 본격적으로 성경과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신학과 성경 공부에 열정을 쏟고 있던 때 그에게 전도와 목회의 사명이 주어지기 시작했다. 평양노회 동언시찰회가 청년 김윤찬에게 산사리교회와 산골 송탄교회의 조사일을 맡아보라는 사명을 내려준 것이었다. 김윤찬은 험한 산골 길을 기쁨으로 걸어 다니면서 전도와 목회 사역에 최선을 다했다. 송탄교회를 찾아 다니면서 사역한지 1년 만에 7명에서 40여명으로 불어난 교인들을 바라보면서 김윤찬 조사는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정성으로 복음을 전하는 그를 인정한 노회는 삼합리와 천호리의 두 교회를 더 맡으라고 했다. 김윤찬 조사는 몸은 피곤하고 네 교회를 맡는다는 것이 자신의 힘에 벅찰지는 모르겠으나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라고 믿고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그 사명을 받아들여 기쁨으로 수행했다. 네 교회의 교인들은 김윤찬 조사를 하늘의 천사가 오는 듯이 맞았고 그의 설교를 가뭄에 단비처럼 빨아들였다. 청년 교역자 김윤찬은 24세에 숭신고성을 졸업하고 자신이 하나님에게서 받은 소명이 부흥이라는 것을 깨닫고 각처의 교회에 다니며 부흥회를 인도하기 시작했다.
이런 하나님의 크신 은총과 기쁨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에게 두 번째 시련이 닥쳐왔다. 슬픔과 아픔과 시련과 고난은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종들에게 주시는 필수 과목인 것 같다. 1933년 정월 청년 교역자 김윤찬은 상원 구계비교회 집회를 일주일간에 걸쳐 인도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상원으로 떠날 때 만삭이었던 아내를 보고 갔는데 아내가 벌써 아이를 순산해서 3일이 지나 있었다. 김윤찬은 부인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아들을 봐서 기쁘기도 했다. 첫째 재옥 둘째 재성에 이어 셋째 재진이가 태어난 것이었다. 한 주간을 아내의 산후조리에 신경을 쓰면서 지냈는데 그 다음 주간에 중판 간도읍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해 달라는 부탁이 들어왔다. 김윤찬은 부흥회를 떠나기에 앞서 준비를 하고자 서재에 들어가서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아내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내의 얼굴은 분칠을 한 것처럼 하얗게 변해 있었고 얼굴 전체에 진땀이 범벅이 되어있었다. 아내는 윤찬에게 춥다고 했다. 그는 허겁지겁 이불을 끌어내려 덮어 주었는데 아내는 이불을 덮고 또 덮어도 춥다고만 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아내의 옆에 앉으니 아내가 힘없이 손을 내밀었다. 윤찬의 눈에서는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고 열이 펄펄 끓고 있는 아내의 연약한 손을 잡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여보, 부인. 정신차리시요, 부인.” 그러나 이런 윤찬의 외침과 간절한 소망은 아무 소용이 없었고 그저 아내의 숨소리만 점차 약해져 갔다. “여보, 주님이 부르시는군요. 아이들을 잘 부탁합니다.” 이것이 아내가 윤찬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윤찬은 정신이 아득해지며 넋이 나가서 아내의 잡은 손을 마구 흔들었다. “부인, 부인! 일어나시요! 애들이 불쌍하지도 않소? 당신이 먼저 가면 저 갓난이는 어쩌란 말이요. 일어나시오, 부인!” 윤찬은 몸부림을 치며 통곡을 했다. 이곳 저곳 부흥회를 다니면서 한 번도 따듯한 말 한마디 건네 보지 못했던 아내이다. 그런 아내가 무정한 남편 윤찬을 남기고 떠난 것이다. 윤찬은 울부짖으며 몸부림치다가 다시 소리쳐 아내를 불렀다. 김윤찬은 세 아이를 무릎에 앉혀놓고 실성한 것처럼 멍하니 있었다. 모든 것이 허망하게 느껴졌다. 훌륭한 목사가 되겠다고 마음에 품고 있던 생각도 하나님의 일만을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도 그 순간에는 모두 다 한줌의 재처럼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지금 그가 생각하는 것은 어린 것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대책 없는 절망감뿐이었다.
한참을 이렇게 절망감에 빠져있던 그의 눈앞에 두 줄기의 무지개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윤찬아, 윤찬아. 나는 네게 언약의 무지개를 보여주었는데,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 주님의 꾸지람이 그의 귀에 들려오는 듯 했다. 윤찬의 가슴 속에서 다시 무엇이 불을 댕긴 듯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어린 삼 남매를 부여안고서 다시 주님의 성스러운 말씀을 온 세상에 전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 것이었다. 청년 교역자 김윤찬은 그때까지도 자신이 없어서 유보 중에 있었던 간도교회로 편지를 보냈고 간도교회에서는 부흥회를 인도해 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그는 간도교회 부흥회를 위해서 온 마음을 다해서 준비하기 시작했다. 갓난 재진이는 유모에게 맡기고 재옥이 재성이는 형수에게 부탁을 한 다음 슬픔을 잊고서 그는 힘차게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항상 그렇듯이 윤찬은 부흥회를 하면서 세상의 모든 생각을 잊어버렸다. 삶에 대한 걱정이나 세상에 대한 근심들은 부흥회 기간 동안 하나도 남김없이 그의 머리에서 떠나버리고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만 증거하는데 힘썼다. 그는 복음을 증거하며 부흥회를 이끌어나가면서 자신의 어머니가 천당에 가신 것을 상기했고, 곧이어 자신의 아내도 천국에 들어서 주님 곁에서 피곤한 심령을 위로 받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모든 것은 주님의 뜻이다. 그러자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 그는 다시 한 번 더 태어난 것이었다.
유능한 청년 교역자, 그리고 신앙심 깊은 김윤찬 조사가 상처했다는 소식이 곳곳에 퍼지자 그에게 재혼을 청하는 사람들이 많이 당도했다. 윤찬은 재혼하려고 하지 않았다. 천당에 간 아내의 문제도 그랬지만 더욱더 그의 결심을 굳힌 것이 아이들 문제였다. 그러던 중 편지 한 장이 당도했다. “조사님. 항상 주님 안에서 생활해왔고, 신앙 속에서 살아왔던 저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 이외에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주님과 굳게 맹세해 왔습니다. 엄마 없는 아이들은 제가 그 아이들의 어머니가 되어 주님의 은혜로 기도하며 키울까 합니다… 조사님이 하시는 주님의 일을 도울 수 있다면 이 또한 주님의 크나큰 은혜로 믿사옵고, ....” 김윤찬의 입술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주여,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이렇게 해서 청년 교역자 김윤찬은 그의 나이 30세인 1935년 10월 18일 평남 숙천교회에서 황봉찬 목사의 주례로 23세의 신앙심 깊은 처녀 이봉각 양을 맞아서 새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새 신부 이봉각 양은 결혼하자마자 세 남매를 친자식처럼 키웠고 교역자 김윤찬이 하는 주님의 사역에 지장이 없도록 내조했다.
청년 교역자 김윤찬은 하나님의 일을 더욱더 열심히 잘 하기 위해 1935년 평양신학교에 입학했다. 신학을 연구하고 성경을 공부하고 예배에 참석하면서 김윤찬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한껏 키워나갔다. 1938년 김윤찬은 평양신학교 졸업반이었는데 그 당시 기독교계나 조선에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신사참배였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신사참배를 강요했고 기독교계에서는 신사참배가 성경에 위배된다며 이를 거부했다. 이때 평양신학교에서 주기철 목사님이 경건회를 인도했는데 김윤찬이 참석해 있던 경건회에서 다음과 같이 외쳤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구원이며 주님만이 우리가 믿고 의지하며 따라야 할 분이십니다. 신사라는 것은 잡신을 숭배하는 것으로 신사참배는 잡신에게 경배를 하는 우상 숭배와 동일합니다. 신사참배는 엄연한 죄입니다. 세상에서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는 천국에서 사는 것을 두려워하는 자이고 세상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천국에서 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청년 김윤찬은 주기철 목사님의 설교를 가슴속 깊이 새겼다.
김윤찬은 1938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안수를 받아 목사가 되었다. 목사가 된 김윤찬에게 처음으로 맡겨진 교회가 평남 강동군 승호읍 승호리에 위치한 중부교회였다. 김윤찬 목사는 교회를 맡자 오로지 주님만을 의지하며 믿고 주님만을 모시고 섬기는 마음으로 시무에 임했다. 1938년 9월 10일 평양에서 제27회 조선예수교 장로회 총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일본경찰의 삼엄한 경계와 압력 속에서 신사참배는 종교의식이 아닌 국가의식인 고로 신사참배를 받아들이는 것은 기독교에 반하지 않는다는 치욕적인 결의를 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윤찬 목사는 주기철 목사님의 의연했던 설교를 사무치게 그리워했다. 김윤찬 목사는 자신에게 어떤 위협과 고난이 닥친다고 해도 주님만을 섬기기로 결심했다. 일본정부는 조선 교회에서 예배는 주일날 낮 예배 한번만 보라고 지시했고 신사참배는 꼭 동참해야 한다고 명령했다. 이런 험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김윤찬 목사는 신사참배를 반대하며 이에 대한 설교를 계속했고 주일 저녁예배와 삼일 저녁예배까지 보고 있었다. 김윤찬 목사는 친일파의 우두머리인 채필근 목사 앞으로 소환되었다. 채필근 목사의 책망은 대단했고 지독한 말로 김윤찬 목사를 위협했으나 김윤찬 목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김윤찬 목사는 채필근 목사에게 소환을 당한 후로도 계속해서 신사참배를 반대했으며 주일 저녁은 물론 삼일 저녁 예배까지 드리며 주님께 대한 충성을 다했다
1940년 4월 22일 평양 장별리 채정민 목사의 집에서 김인희, 김형락, 이주원 전도사, 한상동 목사, 오윤선 장로, 이광록 전도사, 방계성 장로, 안이숙 여사, 박인흠 전도사, 최봉석 목사, 김의창 목사, 그리고 주기철 목사 부부가 모여 신사참배 반대와 기독교인들이 걸어가야 할 길에 관한 비밀결사가 있었다. 그러나 이 비밀결사는 일본경찰에 포착되었고, 주기철 목사가 처음으로 검거되었고 이어서 최봉석 목사 이기선 목사 채정민 목사도 검거되었다. “오, 주여!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런 혹독한 시련을 주시나이까?” 젊은 목사 김윤찬의 가슴은 슬픔과 괴로움으로 찢겨져 나가는 것 같았다. 김윤찬 목사는 중부교회에서 목회하면서 신사참배 반대로 인한 교회당 기부 문제와 비밀결사 문제와 투서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당하다가 결국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영장이 발부되었다. 김중희 집사를 비롯한 교인들의 간곡한 건의로 당분간 황해도 곡산 언진 산속으로 피난을 가기로 했다. 1944년 4월 22일 새벽 1시경 가족들과 눈물의 이별을 한 후 집을 떠나 강을 건너고 며칠을 걸려 산을 넘고 또 넘는 고난의 길을 걸어 김중희 집사의 친구 송득경이 화전이나 약초를 캐며 살아가고 있는 황해도 곡산 언진 산속에 무사히 도착했다. 깊은 산속 동굴 안에서 외롭고 쓸쓸한 고난의 피난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김윤찬 목사는 세상에 버려진 고아처럼 온 가슴 가득히 밀려오는 고독감을 느끼고는 두고 온 가족들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그의 마음에 걷잡을 수 없는 설움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이를 악물었다. “이 고난을 이겨내야만 한다.” 그의 떨리는 두 손이 경건한 모습으로 합쳐졌다. 그리고 모아진 손끝에 밀려오는 슬픈 햇살을 보면서 그는 기도를 올렸다. 김윤찬 목사는 모든 감정을 전부 주님께 맡겼다. 외로움과 두려움에 떨었던 그의 마음이 차츰 가라앉으며 바로 자신의 옆에 아니 온 세상에 주님의 손길이 임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젠 두렵지도 외롭지도 않았다. 모든 것은 주님의 뜻이고 주님이 이끌어 나가는 길이라고 확신한 것이었다. 승호읍 중부교회의 교인들은 김윤찬 목사가 도피한 후에 일경들의 위협에 시달렸다. 깜쪽같이 사라진 김 목사의 행방을 대라고 교인들을 협박했다. 가족들에게도 위협의 손길이 뻗쳤다. 그러나 경찰들의 노력은 허사였다. 김윤찬 목사의 아버지 김락환은 승호리에 달려왔다. 아들 김윤찬 목사의 생사도 문제였지만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어린 손자들이었다. “아가야, 너는 재형이와 선옥이를 데리고 친정집에 가 있거라. 재옥이와 재성이는 내가 데리고 가마.”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날이 왔다. 목사 부인은 재형이와 선옥이를 데리고 숙천으로 가야했고, 김락환은 재옥이와 재성이를 데리고 산사리로 돌아가야만 했다. 목사 부인이 재옥이와 재성이가 떠나려 하자 견디지 못하고서 애들을 부둥켜안았다. 사실 주기철 목사님도 손양원 목사님도 주님께 대한 충성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들이 뿔뿔이 헤어지는 슬픔과 아픔을 모두 경험하지 않았던가!
1944년 4월 주기철 목사님은 신사참배 반대를 철회하지 않고 일제에 저항하다가 모진 고문과 옥고에 의해 평양형무소에서 순교했다. 최봉석 목사님과 박관준 장로님도 평양형무소에서 신앙의 순결성을 지키다가 순교했다. 일제의 막바지 발악이 온 조선을 휩쓸고 있을 당시 김윤찬 목사는 언진산 속에서 도피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다. 주일에는 중부교회에서 하던 대로 예배를 인도하고 있었다. 하늘을 교회지붕으로 땅과 산을 교회로 삼고 그리고 바위와 나무와 풀들을 신도들로 삼고 예배를 드렸다. 6살 때 산 위에서 드리던 예배와 비슷했다. 김윤찬 목사가 날마다 기도와 성경 읽기와 찬송과 예배 드리는 일을 계속하는 동안 세월이 흘렀다. 1945년 2월 전세는 이제 일본의 패배로 기울어졌고 강대국들은 얄타비밀 회담을 통해서 조선의 자주독립을 확정했다. 김윤찬 목사가 언진산에 들어와 산지가 어언 1년 3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송득경이 일 주일이나 열흘 만에 꼭 찾아와서 음식을 가져다 주고 소식을 전해주곤 했는데 1945년 8월 초에15일이 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김윤찬 목사는 불안감에 사로잡혀서 하루하루를 기다리다가 8월 13일 멀리서 걸어오는 송득경의 모습을 보고는 너무도 반가워 한달음에 그에게로 달려갔다. “김 목사님,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무슨 소식인데요?” “목사님, 기뻐하십시오. 일본패망이 가까워졌습니다. 일본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고 이제 일본은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조만간에 항복을 천명할 것입니다. 이제 목사님의 피신생활은 끝났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김윤찬 목사의 두 눈에서는 진한 눈물이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쏟아져 나왔다. “주여, 감사합니다.” 1945년 8월 15일 12시경 김윤찬 목사는 언진산 속에서 산이 떠나갈 듯 울려 퍼지는 만세소리를 들으며 송득경의 손을 굳게 잡았다. “목사님, 해방입니다. 우리나라가 독립이 되었어요. 보세요, 사람들이 독립만세를 부르고 있어요.” 산골구석에서 살던 사람들이 언제 나타났는지 태극기를 손에 들고 이곳 저곳에서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불러대고 있었다.
1945년 8월 17일 승호읍 동구 밖에서 많은 사람들이 서성대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가고 사람들이 맥이 빠져갈 무렵 한 사람이 동구 밖을 보고 있다가 큰소리로 외쳤다. “오신다. 목사님이 오신다.” 김윤찬 목사가 승호읍으로 들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해방 후 이틀 뒤였다. 사람들이 김 목사를 보자 기뻐서 환호성을 올렸고 가족들은 김윤찬 목사에게로 뛰어가서 가슴에 안겼다. 김 목사 부인은 참지 못하고 흐느껴 울고 있었다. 교인들도 따라서 눈물을 흘렸다. 모두가 다시 만난 기쁨이 얼마나 컸던지 다시 만나게 해준 하나님께 그저 감사하다는 기도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어둡던 이 땅이 밝아오네.”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중부교회 예배당 안에 가득 찼고 교인들의 가슴은 기쁨과 은혜로 충만했다. 해방 후 김윤찬 목사의 인도 하에 주님께 드리는 첫 예배였다. 11시 정각에 본 예배가 시작되었고 교인들의 묵도가 웅얼거림이 되고 목사도 교인들도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감격과 환희에 뜨거운 눈물을 뿌려댔다. 교인들은 온몸이 불같이 뜨거운 성령의 감화를 받아서 통성으로 기도를 올렸다. 김윤찬 목사의 설교가 시작되자 불 같은 뜨거움이 절정에 이르렀다.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김윤찬 목사의 설교는 언진산에서 주님께 받았던 요한계시록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은 교인들의 온몸과 마음에 은혜로운 양식이 되었다.
해방의 기쁨을 맞았지만 그것은 금새 분단의 조짐으로 변질되고 있었다. 해방이 되자마자 38선 남쪽에는 미군이 북쪽에는 소련군이 투입되었다. 일본에 의한 지배가 이제는 강대국 열강에 의한 지배로 바뀌려고 한 것이었다. 김윤찬 목사는 거센 폭풍에 흔들거리며 표류하는 것 같은 조국의 혼란스러움에 가슴이 아파왔다. 남한에서는 각종 정당이나 단체들이 난립했으며 북한에서는 공산당이 권력을 잡고서 모두를 장악하려고 했다. 북한에서는 기독교를 인정치 않는 공산주의에 의해서 신앙의 자유가 박탈당하게 되었다. 1946년 3월 1일 해방된 후 첫 번째 맞는 3.1절에 김윤찬 목사에게는 또 다른 시련이 닥쳐왔다. 김윤찬 목사는 어떤 단체나 정당에 관계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 섬김과 조국의 자주를 위해서만 일하기로 결심했다. 이때 그에게 공산당들이 찾아왔다. 승호읍 인민위원회가 주관하는 3.1절 기념 행사에 준비위원과 연사로 참여해 달라는 것이었다. 김 목사는 그 행사에 참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며 그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것이 공산당을 분노하게 했다. 결국 김윤찬 목사는 반동분자로 정죄를 당하며 강동경찰서로 끌려가서 지독한 고문을 당해 발목에 있는 살이 시뻘겋게 벗겨지게 되었다. 김윤찬 목사는 다시 평양경찰서로 호송되었다. 김윤찬 목사는 평양경찰서에 수감된 3일 동안 밥 한 톨도 입에 대지 못한 상태로 뼈를 깎는 듯 한 고문을 당했다. 아침부터 공산당들은 그를 끌고 돌아다니며 남조선과 작당한 악질 반동분자라고 하는가 하면 3.1절 기념연설을 거부한 악질적인 친일파라고 소리쳤고 지하 고문 실로 끌고 가서 온갖 고문을 가했다. 생뼈를 깎아내고 생살이 저며지는 듯한 고통 속에서 김윤찬 목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주님만을 부르며 기도하는 일이었다. 필자는 김윤찬 목사님이 주님만을 믿고 의지하고 섬기는 일사각오의 신앙 때문에 일제와 공산치하에서 당한 극심한 시련과 고난들을 돌아보면서 필자의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도 주님만을 믿고 의지하고 섬기는 일사각오의 신앙 때문에 일제하에서는 신의주에서 자주 감옥에 붙잡혀 다니면서 시련과 고난을 당하셨고 평양에서는 사동탄광에 붙잡혀가서 중노동을 하다가 순교의 길로 걸어가신 것을 생각하면서 신앙의 선배님들에 대한 지극한 존경과 경외심을 새롭게 지니게 되었다.
평양경찰서에서 3일 동안 모진 고문을 당해서 거의 혼이 나간 듯 한 김윤찬 목사를 공산당들은 소련군 트럭에 짐짝처럼 집어 던졌다. 그리고 트럭은 신음하는 김 목사의 사정을 봐주지 않고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마구 달렸다. 그는 비명을 질렀고 온몸의 뼈마디에서는 어긋나는 소리가 나는 듯 했다. “주여, 도와주소서. 주님, 주님!” 그는 목이 터져 라고 부르짖다가 혼절하고야 말았다. 캄캄한 어둠 속을 김 목사는 헤매고 있었다. 바로 그때 빛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그 빛 속에서 어떤 분의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윤찬아, 윤찬아. 네가 어디에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음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정케하리라.” “주여, 내가 믿사오니 사망의 권세에서 종을 자유케 하소서.” 김윤찬 목사는 벌떡 잠에서 깨어났다. 꿈이었다. 트럭은 계속해서 일주일을 달렸다. 트럭은 소련의 어느 도시에 도착했다. 트럭이 멈추자 김 목사는 소련군들에 의해 트럭에서 끌어내려졌다. 어두운 건물 안 긴 복도를 지나서 한 방의 문 앞에 세워졌다. 소련병사가 작은 방의 문을 열었고 그를 방으로 거칠게 떠밀었다. 누울 수도 앉을 수도 없게 좁게 만들어진 감방이었다. 앞에도 옆에도 뒤에도 벽이었다. 바람조차도 안 통하는 관같이 생긴 방에다 사람을 가두어두고 물이나 음식도 전혀 주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면 백 사람이면 백 사람 모두 굶어 죽든지 질식해 죽든지 목마른 갈증을 참지 못하고 말라 죽는 것이었다. 김윤찬 목사는 삼 일이 지나도록 아무 것도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주지 않자 그는 그들이 의도하는 것이 굶겨 죽이려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배고픔보다도 참을 수 없는 것은 질식할 것 같은 냄새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 안에서 죽어가고 썩어져 가면서 저들의 피땀과 대소변이 만들어낸 지독한 냄새였다. 김 목사는 이제 정말로 죽는다는 것을 절절히 느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 곁으로 갈 생각을 했다. 김윤찬 목사는 그 비좁은 감방에서 억지로 무릎을 꿇었다. 죽음을 앞에 둔 결연한 김 목사의 기도는 웅얼웅얼 암울한 회색공간에서 하나의 생명이 되어 맴돌았다. 김 목사는 아침기도를 드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찬송과 성경암송과 성경공부로 이어졌다. 이런 식으로 관 같은 감방생활을 하는 사이에 1주일 정도가 지났다. 그는 낙망하거나 슬퍼하지는 않았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이었다. 그의 가슴 속에는 “내가 너와 함께 있음에” 라는 한 구절이 더욱더 명확히 각인되고 있었다. 며칠이 또 지났다. 살아나갈 자신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김 목사는 이제 마지막 기도를 드리기 위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다. 이 세상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모두 하나의 꿈만 같았다. 그의 머릿속으로 가족들의 얼굴이 하나 둘씩 스쳐 지나갔다. 김윤찬 목사의 마지막 기도가 통렬하게 좁은 벽을 울리며 밖으로 새어나갔다. 절실하게 올리는 그의 기도는 그대로 뜨거운 불덩어리가 되어서 무쇠 같은 감방벽도 녹일 것 같았다. 결국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뜨겁게 임하기 시작했다. 전지전능하시고 무소 부재하시는 하나님께서 김윤찬 목사에게 엘리야에게 보냈던 까마귀와 똑같이 사람 까마귀를 보내신 것이었다.
김윤찬 목사가 올리는 기도소리는 감방 밖으로 타고나가서 마침 그 감방을 감시하고 있던 한 간수의 정수리에 날카롭게 들어박혔다. 캄캄한 밤에 불이 비치듯이 방 문이 확 열렸다. 김윤찬 목사의 어리둥절한 눈동자에 파란 눈을 가진 소련간수 병사의 놀란 표정이 확 들어왔다. 김 목사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김 목사가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고 소련간수 자신을 쳐다보고 있지 않은가! 소련간수가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짓더니 손짓을 했다. 나오라는 것이었다. 김 목사는 비틀대며 밖으로 나왔다. 김 목사는 어지럽고 정신이 멍멍해지는 가운데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두 손을 모으고 주님을 불렀다. “주님, 주님.” 그것을 보고도 믿기지 않아서 정신이 빠진 모습으로 있던 소련간수는 머리와 가슴에 성호를 긋더니 김 목사에게 무어라고 소련말로 물었다. 한참을 손짓발짓으로 김 목사에게 묻는 소련간수의 뜻하는 바가 기독교인이냐 라는 물음이라는 것을 파악한 김 목사는 두 손을 모으고 “아멘!” 이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이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시인했다. 그 소련 간수는 김 목사를 끌어안았다. 그가 감동의 눈물을 계속 흘리고 자신을 얼싸안는 것을 보고서 김 목사는 그도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안 순간 김 목사의 가슴에는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일어났다. 한참 동안 통하지도 않는 말을 하던 그는 갑자기 어디론가 뛰어갔다. 그 소련간수가 바삐 뛰어왔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손에 든 신문지에 싼 것을 김 목사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그는 김 목사를 감방 안으로 들여 넣었다. 김 목사가 신문지에 싼 것을 풀었다. 빵이었다. 그 빵을 보는 순간 김 목사는 흑흑 눈물을 흘렸다. 그가 눈물을 흘린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였다. 자신과 항상 함께 하시겠다는 말씀이 진실로 그의 몸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데에 대한 감격이었다. 눈물이 두둑두둑 마른 빵에 떨어지자 빵이 눈물에 젖어서 조금 부풀어 올랐다. 그는 딱딱한 빵을 입으로 가져갔다. 빵을 먹다 보니 목이 말랐는데 간수가 물을 가져왔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김윤찬 목사를 먹여 살릴 까마귀를 보내신 것이었다. 소련간부는 매일 딱딱한 빵 한 개를 주위 병사들 몰래 김 목사의 감방에 넣어주었고 김 목사는 그 빵으로 근근이 연명해갔다. 김 목사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앞날을 위해서 빵을 조금씩 남겨두었다. 김 목사가 남겨놓은 빵도 어느덧 6덩어리가 되었다. 김 목사는 기도하는 중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가 온 것이었다. 그 간수의 손이 가늘게 떨리는 것이었다. 김 목사도 떨리는 손으로 빵을 건네 받자 갑자기 간수가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김 목사가 그의 손을 마주잡자 그가 울먹이며 말했다. 그가 떠난다는 것이다. 오늘이 자신이 이곳에 있는 마지막 날이고 자신은 이제 내일이면 멀리 떠난다는 것이었다. 김 목사의 가슴은 찢어지도록 아파왔다. 소련간수는 자신이 이곳을 떠나면 김 목사는 이 어두운 감방 안에서 쓸쓸히 죽어갈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그의 눈에서 쉴새 없이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소련간수는 한없이 눈물을 흘리다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김 목사에게 손가락으로 2자와 9자를 펴 보였다. 무슨 뜻인가? 소련간수는 이 숫자만을 남겨놓은 채 미안한 듯 서러운 듯 김 목사의 곁을 떠났다. “잘 가시라, 주님의 일꾼이여. 어디에 가시든지 항상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김 목사의 입안에서 기도소리가 새어 나왔다.
지극히 아끼고 아꼈는데도 이제는 남은 빵이 없었다. 여섯 덩어리의 빵이 다 떨어진 것이었다. 소련간수가 이곳을 떠난 지도 꽤 오래된 것 같았다. 김 목사는 다시 굶어야만 했다. 좁은 감방, 창자가 끊어지는 듯 한 허기, 목젖이 타 들어가는 갈증, 그리고 무력감 등이 찾아왔다. 이제 엘리야의 까마귀도 제 처소를 찾아 떠났고 김 목사만이 홀로 싸늘한 콘크리트의 막막한 벽 사이에서 덩그러니 남겨져서 다시 말라가고 있었다. “주여! 주여!” 김 목사는 목구멍에서 피가 터지도록 주님을 불렀다. “하나님, 저를 이렇게 사망에 내놓을 바에는 제게 왜 언약의 무지개를 보여주셨고 온갖 이적도 보이셨으며, 왜 엘리야의 까마귀를 보내서 일용할 양식을 주셨습니까? 왜? 왜? 왜?” 김 목사의 피 토하는 절규는 검은 암흑이 깔깔대며 집어삼켰다. 점점 힘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때 김윤찬 목사는 그 암흑 속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들었다. “윤찬아. 무엇을 두려워하느냐? 무엇이 그토록 두려운 것이냐? 네가 두려워하는 것이 하나님의 진노보다도 더욱 무서운 것이더냐? 사탄의 권세가 주의 진노보다도 무섭단 말이냐?” “오, 주여!” 김윤찬 목사는 이를 악물고 두 손을 모았다. 그렇다. 사탄의 권세가 아무리 클지라도 감히 주님의 옷깃 하나 건드릴 수 있으랴? 사망이 아무리 두려운 것일지라도 주님이 자신을 버리는 것보다 더 두려우랴? 김 목사가 이렇게 생각하는 중에 갑자기 암흑이 쫙 열렸다. 김 목사는 갑자기 비쳐오는 빛에 당황해서 두 손으로 눈을 급히 가렸다. 그가 앞을 못 보고 있는 중에 그의 주위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고 어떤 손이 자신을 잡아서 감방 안에서 끌어냈다. 걷지도 못하는 그는 넘어지면서 밖으로 나왔다. 김 목사는 자신의 주위에서 당황함과 놀라움에 서성대며 수근 대는 소련간수 몇 명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감방 안에서 여태까지 살아있는 김윤찬 목사를 바라보며 너무도 놀라서 할 말을 잊고 있었다. 여태까지 이 감방에서 살아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보통 다른 사람들은 며칠이 지나면 고통과 외로움 그리고 공포심으로 견딜 수 없이 말라가다가 양식도 없고 물도 없어서 꼬치꼬치 말라서 죽어갔다. 간수들이 감방 문을 열 때면 그것은 사람을 끌어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죽은 시체를 치우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감방 속에서 김 목사가 살아 있는 것이었다. 몸은 꼬치꼬치 말라서 거의 뼈가 들어날 정도였지만 간신히 뜬 눈에서는 광채가 나고 있었고 두 손은 꼭 모은 채로 “주여, 주여”를 불러대고 있었다. 그들은 김 목사가 감방에 갇힌 지 29일째 되던 날에 김 목사의 시체를 치우기 위해 김 목사가 갇힌 감방 문을 열었던 것이었다. 나중에 그 29일의 관습을 안 김 목사는 자신을 먹여주었던 엘리야의 까마귀인 그 소련간수가 보여주었던 2와 9의 참 의미를 알았다. “29일만 견디시오. 그러면 사탄의 권세가 사라집니다.” 라는 의미를 알았다. 김윤찬 목사의 29일간 관속에서의 수난은 1952년 크리스마스 때 미국기독교 유학생회에서 성극으로 상연되었고 타임스지에 기사화되었는데 그 기사가 전 미국을 감동시켰다. 우리는 김윤찬 목사님이 29일 동안 지옥과 같은 관 속에서 극심한 고통과 죽음의 세력에 추호의 흔들림 없이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기도하면서 십자가의 길로 당당하게 걸어가신 모습을 바라보면서, 사도 바울이 온 이태를 로마 감옥에 갇혀서 극심한 고난을 당하면서도 “사망아 네 까짓 것이 무엇이냐?” 라고 호령하면서 승리의 개가를 불렀던 모습을 바라보면서 신앙의 선배들에 대한 극심한 존경과 경외심을 지니며 부끄러움과 감사의 마음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주님을 따라 극심한 고난과 절망과 죽음의 길로 걸어가면서도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의지했던 주님의 종들과 함께 하시고 도우셨던 주님의 긍휼하심과 자비하심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엎드려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주님께 돌릴 수 밖에 없다.
김윤찬 목사는 감방에서 나왔지만 걸음을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그가 간신히 한 발을 내딛자 소련간수들이 답답했던지 그를 질질 끌다시피 해서 한 감방 안에 쳐 넣었다. 김 목사가 몸을 가누지 못해서 감방바닥에 쓰러지자 안에 있던 사람들이 측은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김 목사는 힘이 빠져 그 자리에 쓰러진 채로 숨을 몰아 쉬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얼마 만에 보는 사람들이었던가? 얼마 만에 보는 조선 사람들이었던가?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감방 안에는 약 12명의 젊은 청년들이 처음 들어온 김윤찬 목사의 모습을 살펴보고 있었다. 짐승의 거죽 같은 피부는 창백했으며 온몸은 가죽만 남아 있었다. 험악하게 변한 김윤찬 목사를 찬찬히 살피고 있었던 청년 한 명이 경악의 신음을 내뱉었다. “저, 저, 혹시 김윤찬 목사님이 아니십니까?” 그 청년은 너무나 충격이 컸는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더듬댔다. 쓰러진 김 목사의 눈가에도 다가오는 학생들의 눈가에도 진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로부터 약 열흘 뒤 김 목사는 두 청년의 부축을 받으며 감방 안에서 걸음마를 배우고 있었다. 두 청년 가운데 한 명은 평양신양리 감리교회 임태정 목사의 아들이었고 다른 한 명은 평양산정현교회 임리걸 장로의 아들이었다. “청년들, 들어보게. 주님께서는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다네. 주님께서는 우리를 항상 측은히 여기시고 보호해 주신다네.” 김윤찬 목사의 말은 감미롭게 감방 안에 갇힌 청년들의 귀에 단비처럼 스며들었다. 이런 설교와 청년들의 질문 그리고 성경공부가 조그만 공간 안에서 매일 계속되었다. 12명의 청년들과 김윤찬 목사는 말 그대로 한 식구가 되었고 신앙공동체가 된 것이었다. 이러기를 약 2개월이 지났다.
1946년 7월 북한에서는 북조선민주주의 민족통일 전선위원회가 창립되었고 이로써 소련의 감시하에 소련감옥에 갇혀있던 조선 사람들은 모두 정치보위부로 넘겨져서 평양감옥으로 이송되었다. 그때 김윤찬 목사도 평양으로 이송되었다. 김 목사는 평양 감방에 들어서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는 사람을 보고는 코끝이 찡했다. 평양신학교 교장으로 있으면서 전국의 교인들에게 존경을 받던 김인준 목사가 그곳에 갇혀 있다가 김윤찬 목사를 맞아주었다. 김윤찬 목사가 김인준 목사의 손을 굳게 잡고 눈물지을 때 김인준 목사의 입에서 조그만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로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김윤찬 목사는 그의 손을 잡은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공산당 간수들은 두 목사를 번갈아 가며 고문했다. 김인준 목사가 피를 흘리고 감방 안으로 들어오면 그 다음에는 김윤찬 목사의 차례였다. 김윤찬 목사는 그 험악했던 관속의 고립생활 때문에 건강을 되찾지 못하고 점점 쇠약해졌다. 다음 날 김윤찬 목사는 바닥에 웅크리고 쓰러져서 움직일 줄을 몰랐다. 죽어가고 있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김윤찬 목사는 급히 제2인민병원 병동으로 이송되었다. 원장 김조훈 박사는 거의 다 죽어가는 김윤찬 목사를 응급실에 눕혀놓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세상에 이런 잔인한 짓들을, 짐승 같은 놈들.” 그는 황급히 응급조치를 취한다음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갔다. 인민위원회에 보낼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서였다. 장문의 보고서를 접한 인민위원회는 회의를 열고 김 목사의 가석방을 허가했다. 김윤찬 목사는 죽음 직전에 가석방을 받아 제2인민위원회 병원으로 입원되었고 김조훈 박사의 치료를 받게 되었다. 가석방이 되자 곧바로 김윤찬 목사의 행방이 교회와 가정에 알려졌고 약 4개월 동안 행방이나 생사도 몰랐던 김윤찬 목사의 행방이 드디어 알려졌다. 소식을 듣자마자 김 목사의 부인은 아이들을 데리고 급히 병동에 나타났다. 잠시 후에 교회의 장로와 집사들도 달려왔다. 한참이 지난 뒤에 김조훈 박사가 병실에서 나와서 목사 부인에게 말했다. “환자에게는 안정이 절대 필요합니다. 고비는 넘겼으니 이제 하나님의 뜻만을 기다려야 하겠지요.” 김조훈 박사는 이런 말을 남기고 사라졌고 목사 부인은 정신이 없이 병실로 들어갔다. 하얀 시트에 쌓여있는 창백하고 뼈만 남은 남편 김윤찬 목사! 부인은 그 자리에 무너지며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을 쏟아냈다. 목사 부인은 눈물을 흘리면서 가슴을 부여잡고 조심조심 김 목사에게로 다가갔다. 마치 빨리 다가가면 픽 하는 소리와 함께 꿈이 깰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목사 부인이 불안한 마음으로 머뭇대며 잡는 김 목사의 손은 꿈에서와는 달리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있었고 그의 손을 통해서 따듯한 온기가 전해왔다.
1946년 10월경 김윤찬 목사는 3개월의 입원치료를 마치고 비교적 안정된 모습으로 가정으로 다시 돌아왔다. 가정으로 돌아온 후에 그는 혼자 묵상에 잠기는 일이 많았고 그의 생활은 기도와 성경읽기로 이어졌다. 이때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친척 뻘인 강양욱이라는 목사가 공산당에 포섭되어 북조선 기독교연맹이라는 어용 단체를 만들려 하고 있었다. 그는 그 연맹을 결성하기 위해 목사들을 포섭하기 시작했다. 때로는 위협으로 때로는 감언이설로 때로는 금전으로 북한에 있는 목사들은 이 강양욱이라는 변질된 목사에게 고통을 받았다. 강양욱은 평양에 있는 저명한 목사들을 초대했고 그들을 설득하려고 노력했으나 목사들은 모두 그를 비난했고 특히 김윤찬 목사의 통렬한 공격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되자 기독교연맹에 반대하는 목사들이 다시 고난에 떨어지게 되었다. 김윤찬 목사는 닥쳐올 환란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굳세게 먹었다. 기독교연맹의 가입을 거부했던 목사들은 이유택, 김철훈, 최감은, 김윤찬 목사 등 여러 명이었다. 당시 정치보위부는 나는 새도 그 서슬에 놀라 떨어진다는 곳이었는데, 김윤찬 목사는 이곳에 끌려왔어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니 두려워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등 뒤에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또한 의연히 죽어갔던 다른 순교자들의 행동이 그를 더욱 담대하게 만들었다. 죽더라도 주님을 증거하며 깨끗이 죽자! 주님을 부인하고 사탄과 타협하면서 구차한 삶을 사느니 차라리 깨끗하게 죽어가자! 그의 가슴 속에는 항상 이런 생각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김윤찬 목사는 연맹에 가입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박윤모에게 가슴을 발로 채우고 김영찬에게 발길질을 당해 반 죽음이 되는 고통을 당하기도 했다. 사실 필자의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도 강양욱의 설득을 받아드리지 않고 거부했기 때문에 평양 교외의 사동탄광에서 중노동을 하면서 고통을 당하다가 결국 순교의 길로 걸어가신 것이었다.
김윤찬 목사와 그의 신앙동지들이 고난을 받게 되고 순교의 길로 걸어가게 된 일들 중의 하나가 1946년 11월 3일 주일에 실시한 북한 총선거를 반대한 일이었다. 이 선거는 북조선 인민위원회를 조직하기 위해서 도, 시, 군 인민위원회의 위원들을 선출하는 선거였다. 북한노동당이 선거일을 주일인 11월 3일로 잡은 것이 기독교 측의 강한 반대를 받았다. 선거일이 확정 공표되자 기독교 목사들과 교인들은 안식일인 주일날 선거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고 몇몇 목사들은 공산당이 주일날을 선거일로 책정한 데 대한 강한 반대를 표명했다. 평양에서는 김윤찬 목사를 포함한 이유택, 김철훈, 김길수, 최감은 목사는 신앙동지회를 조직하여 당국에 선거일을 변경해 달라는 신청을 했다. 그러나 당국은 그 신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하였고 마침내 선거일이 다가오자 5인 신앙동지회는 죽음으로써 신앙을 지킨다는 신념 하에 주일날 선거에 참여치 않고 새벽부터 밤 12시까지 교회 안에서 예배를 드린다는 결의를 했다. 11월 3일 새벽 4시 30분 김윤찬 목사는 시무 중이던 평양 연화동교회로 들어섰다. 새벽기도를 인도하기 위해서였다. 새벽기도가 끝나자 김 목사는 모여 있는 교인들에게 엄숙히 선포했다. “주일은 주님이 거룩하게 하신 날입니다. 그러므로 주일날에는 선거할 수가 없습니다. 교인들께서는 교회를 떠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김윤찬 목사가 이렇게 선포하자 교인들은 김 목사의 말에 따라서 교회를 떠나지 않았다. 오전 8시가 되자 주일 첫 예배가 시작되었다. 오전 11시 예배가 시작되자 교인들이 점점 불어났다. 본당 안이 교인들로 가득 찼고 이어서 본 예배가 시작되자 교인들의 입에서 입으로 교회가 선거에 불참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예배가 끝났는데도 아무도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이 없었고 김 목사는 교인들의 동참의식에 감동한 채로 찬송을 인도했다. 드디어 인민군이 총을 멘 채로 교회에 들어와서는 소리쳤다. “선거하러 나오시요. 선거 날이요.” 그러나 교회 안에서는 찬송가만이 인민군의 외침에 대답할 뿐이었다. 얼마 후에는 정치보위부 간부와 선거위원들이 달려왔다. “선거하러 나오시오. 그렇지 않으면 다 잡아넣겠소.” 정치보위부 간부가 위협을 했으나 응답은 한결같았다. 마침내 주일 밤은 깊어가서 밤 12시에 예배를 마쳤다. 안식일이 지났음을 김윤찬 목사가 선포하자 교인들은 모두 긴 하루를 마친 안도감에 허리를 폈다. 주님께서 명령하신 주님의 날을 거룩하게 지키는 일에 모두 함께했다는 뿌듯한 마음이 교인들의 마음에 간직된 채로 교인들은 교회를 나섰다. 너무너무 귀중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우리 선배들이 물려준 신앙의 유산을 지니고 필자도 어려서부터 새벽기도와 주일 성수를 생명처럼 귀하게 여기다가 결국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 11살 때 부모님과 고향을 떠나 혼자서 38선을 넘어 남쪽으로 왔는데!!! 지금 한국교회는 새벽기도를 등한시 하고 온전한 주일 성수를 거의 포기한 무서운 죄를 뉘우치면서 통곡을 하여야 할 것이다! 선거에 불참했던 5인 신앙동지회의 동지들은 모두 정치보위부로 끌려가서 갖은 폭행을 당했고 대부분이 순교의 길로 걸어갔다.
김일성의 공산당이 북한의 전권을 장악하자 기독교에 대한 탄압이 다시 시작되었다. 김윤찬 목사는 신의주 제7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한 후 용천노회 도사경회를 인도하기 위해 신의주 역에서 기차를 탔다. 김 목사가 기차를 탄 후 잠이라도 잘까 하여 자세를 바로잡는 순간 자기 앞에 우뚝 서있는 두 명의 건장한 청년과 눈이 마주쳤다. “김윤찬 목사 되시죠?” 말투는 공손한 것 같았지만 그 말속에는 위협적인 냄새가 풍겼다. 김 목사의 대답이 없자 두 청년은 그의 앞으로 다가서더니 조용히 그러나 날카롭게 말했다. “같이 가셔야 하겠습니다.” 김 목사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무릎 위에 놓여있었던 중절모를 들어서 머리에 썼다. 남 신의주역에 내려서 끌려간 곳은 바로 보안서다. 보안서에서는 얼마동안 그냥 앉아있었다. 그는 용천노회 도사경회가 열리는 용봉교회를 기억했다. 오후 8시 30분 용봉교회에서 도사경회가 열리는 시간이었다. 김윤찬 목사는 두 손을 모으고 사경회를 위해 기도를 올렸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때 컴컴한 어둠을 뚫고 소련제 지프차가 보안서 안에 멎었고 김윤찬 목사는 청년들에게 이끌려 차에 태워졌다. 그가 끌려간 곳은 신의주시 도경찰국이었다. 어둡고 캄캄한 감방에다 내팽개쳐지고 문은 육중하게 닫혀졌다. 감방 안에는 아무 곳에나 갈겨놓은 배설물과 담 벽에 싼 오줌냄새 땀에 절어서 썩어가는 퀴퀴한 냄새로 가득했고 감방 벽에는 핏자국이 줄줄 이상한 추상화를 그려놓았다. “또 왔구나. 주여, 함께 하소서.” 김 목사는 이렇게 속으로 중얼대며 눈을 감았다. 다음날 아침 김 목사는 간수들에 이끌려 조그만 방으로 끌려갔다. 심문관이 위압적으로 따지며 물었다. “조만식도 모르고 기독민주당에도 가입하지 않았다면서 왜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우리 공산당을 비방하고 다니는가?” “김 목사, 당신이 신의주 제7교회에서 요한계시록을 설교하면서 붉은 용은 붉은 세력이고 그것은 불의의 세력이며 반기독교국가이니 곧 망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소. 그리고 붉은 세력은 우리 공산당이라고 은근히 암시하지 않았소?” 갑자기 그의 머리에 불이 일듯이 충격이 오면서 그는 바닥에 꼬꾸라졌다. 몽둥이가 날아온 것이었다. 그는 그대로 바닥에 뒹굴었다. 땅바닥에 축 늘어진 김 목사의 몸 위로 몽둥이가 무수히 날아들었다. 다음날에도 꼭 같은 심문과 고문이 계속되었다. “주여. 이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이들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매일같이 잔인한 고문을 당하는 김 목사는 측 늘어져서 감방바닥에 누워 있었다. 이상한 것은 그 참을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 이제는 하나의 습관이나 속성처럼 김 목사의 몸에 배어있다는 사실이었다. 김 목사에게 날마다 몽둥이 고문, 전기고문, 물고문, 고춧가루고문 등 온갖 잔인한 폭행이 가해졌어도 김 목사는 온몸을 덜덜 떨면서 그것들을 이겨내야만 했다. “사람이 나를 어찌하겠느냐?” 그가 중얼거린 말이었다. 그러나 온갖 악독한 고문을 받은 김윤찬 목사는 점점 쇠약해져 갔다. 몸에는 온통 상처투성이었다.
1948년 12월 북한의 겨울은 살을 에는 정도가 아니었다. 뼛속마저도 얼릴 것 같은 매서운 바람이 온몸의 온기란 온기는 모두 빼앗아 갈 것 같았다. 김윤찬 목사는 상처들과 추위에 지쳐서 신음하고 있었다. 그가 소생할 가능성은 없었다. 그의 상처와 온몸은 누렇게 썩어갔다. 피부도 머리카락도 감각까지도 몽땅 죽어가고 있었다. 그에게는 마지막 소원이 하나 있었다. 가족들이 보고 싶은 것 그리고 살아서 나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소망이 있었다. 그가 간신히 손을 들자 간수 한 명이 그에게 측은한 눈길을 보냈다. 무엇이 그 간수에게 측은지심을 일으키게 했던가? 누가 그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들었던가? “여..보..시..오” 김 목사의 말소리가 간신히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졌다. 이 말을 하는데도 무척 힘이 들었다. 간수가 그의 말에 반응을 보이는 것 같았다. “성경책..좀..부탁..” 성경책을 몸에 지니기를 원하는 것이 김윤찬 목사의 마지막 소망이었다. 간수는 그 모습을 보고 인상을 찌푸리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 그것은 성경을 품에 안고 잠들고 싶은 것이었고 성경책을 품에 안고 주님의 곁으로 가고 싶은 것이었다. 얼마 후에 다시 돌아온 간수는 김윤찬 목사가 평소에 갖고 있던 성경을 찾아서 가지고 와서는 이미 정신이 나간 그의 품에다 놓았다. 이때가 12월 20일이었다. 김 목사의 싸늘하게 식어가는 몸에는 성경책이 하나 놓여졌다. 그의 마지막 소망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조금 후 김윤찬 목사는 자신이 끌어안고 있었던 성경책이 이상하게 저만치 떨어져 있는 것을 이상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이상하다. 분명히 내 품속에 있었는데.?” 그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성경책 앞에 한 청년이 나타났다. 그 순결해 보이는 청년의 입가에 다정한 미소가 흐르더니 청량한 목소리가 감방 안을 울렸다. “목사님, 제게 성경을 좀 가르쳐 주세요.” 김 목사는 감방 안에 청년이 어떻게 들어왔을까? 하는 의문이 전혀 들지 않은 채 청년에게 이렇게 말했다. “성경? 아무렴. 성경을 가르쳐주고 말고. 무엇을 가르쳐줄까?” “히브리서 13장 5-6절을 가르쳐 주세요.” “그래. 히브리서는....” 청년이 성경책을 김 목사에게 건네는데 청년의 뒤편으로 눈부신 빛이 나타났고 그 빛 안에서 주님의 인자하신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찬아, 네 믿음의 굳건함을 내가 아노니 네 믿음이 너를 살렸도다. 일어나라. 네 병은 치료함을 받았느니라.” 김 목사가 놀라서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주여!” 빛 속에 나타난 주님의 모습을 보자 온몸의 피가 뜨거워지며 등줄기에 불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온몸이 그대로 불덩어리가 되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주님의 모습도 청년의 모습도 사라져 버렸다. 김윤찬 목사는 자신의 몸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아픈 상처가 일시에 치유된 것이었다. 쑤시는 데도 없고 두 눈에 흐르던 눈물도 더 이상 흐르지가 않았다. 살결은 뽀얗게 탄력이 있었고 머리카락의 윤기도 살아났다. 김 목사는 너무도 기뻐서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엄청난 기적이 일어난 것이었다. 금방 죽어가던 생명이 파릇파릇하게 다시 살아난 것이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빌 4:13) 하신 성경의 말씀처럼 그의 믿음이 그를 다시 살린 것이었다. 그는 너무나 놀랍고 기뻐서 그 자리에 벌떡 일어나 저 만치에 떨어져 있던 성경책을 집으러 달려갔다. 아무런 아픔이 없었다. “오, 주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수없이 드리다가 넘쳐나는 환희를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었다. 다 죽어가던 그가 펄펄 뛰어다니고 얼어빠진 주먹밥도 아작아작 씹어 먹자, 간수들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김 목사는 기뻐서 감방 안을 동동 구르며 뛰어다녔다.
김윤찬 목사가 병의 치유함을 받았지만 아직도 사탄의 권세는 없어지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갖은 고문과 폭행을 당했지만 굴하지 않고 꿋꿋이 견디어냈다. 이러는 중에 세월은 흘러서 1949년 7월이 되었다. 김 목사가 부흥회를 떠나 체포된 지도 어언 1년이 지났다. 간수들의 발자국 소리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들려왔다. “136번!” 그를 부르는 소리가 났지만 김 목사는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았다. 그런데 험악하게 달려들 줄 알았던 간수들이 감방 문 앞에 그대로 서 있었고 그 사이로 검은 양복을 깨끗이 차려 입은 신사가 책 한 권을 옆에 낀 채로 김 목사에게 다가왔다. “당신이 136번 김윤찬이요?” 김윤찬 목사는 의외로 점잖은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흠. 직업은 목사, 소재지는 평양시 연화동교회라....” 신사는 이렇게 중얼대면서 김 목사에게 은근한 어투로 물었다. “김윤찬 목사, 당신은 기소되었소.” 1년이 넘게 기소조차 안한 채로 김 목사는 갖은 악행을 받았으니 과연 그의 죄가 무엇이었는가? “내 당신에게 선택할 자유를 주겠소. 이곳 신의주에서 재판을 받고 싶소, 아니면 평양에서 받고 싶소?” “나는 평양사람이요. 평양으로 보내주시면 고맙겠소.” 신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정한 눈빛을 보냈다. 여태까지 김 목사가 보아왔던 공산당과는 질이 전혀 다른 지성인인 듯했다. 그날로 김윤찬 목사에 대한 고문이 중단되었고 약 3일이 지난 후에 김윤찬 목사는 다른 감방으로 이감되었다. 8일 후 그는 평양감옥으로 이송되었다. 1949년 8월 평양역 한 무리의 사람들이 초조히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이거 왜 이리 늦지?” 1년 동안 생사도 모르고 사라져 버린 남편을 찾아 헤매던 부인이었다. 교회의 교인들과 목사 부인은 김윤찬 목사가 평양역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부랴부랴 달려왔던 것이다. 승객들이 거의 다 빠져나 갔는데도 김윤찬 목사는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 때 기관차 뒷 칸 특별실에서 간수들에 의해 김 목사가 수갑을 찬 채로 끌려 나왔다. “목사님이시다.” “아버지!” 재옥이가 숨이 막힐 정도로 소리쳤고 재성이는 그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목사 부인은 움직이지도 못한 채 다리와 온몸을 후들후들 떨고만 있었다. 김윤찬 목사는 교인들의 환영과 인사에 수척한 몸을 가누고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 안심하십시오. 나는 괜챦습니다.” 김 목사는 재성이와 재형이를 부등켜 안았다. 그리고 그대로 굳어져 있는 부인에게로 다가갔다. 김 목사는 재연이를 부인에게서 수갑 찬 손으로 넘겨받아 꼬옥 껴안았다. “고생 많았지?” 목사 부인은 기어코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어흐흐흑!” 김윤찬 목사의 평양감옥 생활은 교인들과 가족들이 찾아와서 그런대로 잘 지낼 수가 있었다. 고문과 잔혹행위는 계속되었지만 자신을 따르는 교인들과 가족 근처에 있다는 것이 그에게는 큰 위안이 되었다. 1950년 3월 오랜 감옥생활과 모진 고문과 악행에 의해 극도로 쇠약해진 김윤찬 목사는 병 때문에 가석방이 되었다. 아무리 공산당이지만 모든 가족이며 교인들이 곁에서 그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었기에 함부로 감옥에서 그를 옥사하게 만들 수는 없다는 판단 하에 가석방된 것이었다. 김 목사는 정신은 더욱 초롱초롱했지만 몸은 거의 망가져서 집으로 돌아왔다.
1950년 6월 22일 목요일 평양 신현교회에서 김윤찬 목사에게 25일 주일 낮 예배에 설교를 부탁했다. 김 목사는 교회목사의 간곡한 부탁에 병과 재 체포의 위험을 안고 설교를 수락했다. 1950년 6월 25일 주일 새벽 38선에 집결되어있던 인민군이 총공세로 38선을 넘어서 남한의 기습을 단행했다. 우세한 화력과 첨예한 군사력을 갖추고 있었던 북조선인민군들은 마침 일요일이라서 느슨해진 남한의 국방군을 파죽지세로 깨뜨리며 남하했다. 새벽 6시 평양방송뉴스. “인민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오늘 새벽을 기해 이승만 괴뢰정권이 38선을 넘어서 우리 북조선을 침략했습니다. 우리의 용감한 인민군대는 남조선괴뢰 군대를 맞아서 잘 싸우고 있습니다.” 김윤찬 목사는 이날 할 설교를 준비하고 있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김 목사는 뉴스를 듣자마자 바로 신현교회 목사 사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신현교회 목사와 김윤찬 목사는 만나자 마자 서로 부둥켜안고 이제야말로 적그리스도를 무찌를 시기가 왔다고 기뻐했다. 두 목사는 방송대로 남한이 통일을 위해 그리고 공산당을 무찌르기 위해 북침 했다고 믿었다. 주일예배를 마칠 때까지만 해도 아직 위험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런데 각지에서 거의 모든 교회의 목회자들이 잡혀 들어갔다. 김윤찬 목사는 재빨리 이들을 피해 평양에서 약 40여리 떨어진 고향 청룡면으로 내려갔다가 그곳에서 정치보위부에게 잡혀서 평양경찰서로 이송되었다. 김윤찬 목사는 감방 안에서 간절한 기도를 올렸건만 전세는 남한이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감방 안에 스피커에서 나오는 뉴스는 거의 절망적이었다. 북조선 인민군은 개전 3일 만인 6월 27일에 서울을 점령하고 있었고 3개월 후에는 대구 부산지역을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을 장악했다. 1950년 8월 김윤찬 목사는 이미 2개월간 감옥에 갇혀서 온갖 고문으로 그나마 추스린 몸이 다시 쇠약해져 갔다. 날씨마저도 지옥의 한가운데인 양 푹푹 찌는 폭염이 계속됐다. “김윤찬 나와.” 심문시간이었다. 김 목사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감방 밖으로 나왔다. 감방 밖으로 나오니 조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김 목사는 간수에게 끌려서 취조실로 들어갔다. 바로 그때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밖에 수백 명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웅성대며 몰려왔다. 그들은 의용군들이었다. 너무도 더웠기에 창문은 모두 열려 있었고 모든 경찰이나 보안요원들은 의용군들에게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쇠약했던 김 목사의 몸에 의욕이 솟아올랐다. 기회다! 그렇다. 바로 탈출의 기회가 생긴 것이었다. “주여! 믿습니다. 모든 것은 주님의 뜻대로 하소서.” 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용기를 내서 창문으로 다가가서 동정을 살핀 후에 창문을 번개같이 뛰어넘었다. 그리고는 담장을 향해 죽어라고 달렸다. 그는 담장을 훌쩍 뛰어서 밖으로 뛰어내렸다. 경찰서와 반대방향으로 죽어라고 뛰었다. “주여, 도와주소서.” 그의 입에서는 쉴새 없이 기도가 새어 나왔고, 그의 발은 비호처럼 움직여져서 쏜살같이 도망쳤다. 그의 등 뒤에서 갑자기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왔다. 멀리서 공포탄소리가 들렸다. 그는 죽어라고 뛰다가 옆에 보이는 논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는 논두렁 진흙 더미 속에 몸을 쳐 박았다. 얼마 후에 사람들의 발자국이 어지러이 들려왔고 아우성거리며 자신을 찾는 소리가 들렸다. “이 새끼, 잡히면 죽인다.” “주여, 내가 믿사오니, 항상 저와 함께 하소서.” 그는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소리와 기척은 김 목사의 주위에 와서 뚝 멈추더니 이리 저리 찾는 기척이 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지고 밤이 오고 있었다. 결국 캄캄한 밤이 되어서야 수색이 멈추었다. 김윤찬 목사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있다가 사람들이 완전히 없어졌다고 확신하고서야 진흙탕에서 몸을 일으켰다. “주여, 감사합니다.” 그는 이렇게 중얼대며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평양에서 약 40여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구동창교회 최감은 목사의 사택에 도착했다. 사택의 문을 두드렸다. “누구신지?” 경계하는 여자의 목소리는 최감은 목사의 부인이 분명했다. “사모님, 김윤찬 목사입니다.” 최 목사 부인이 와락 문을 열었다. “어쩐 일이예요, 목사님? 평양경찰서에 잡혀 있다더니” “탈출했습니다, 사모님.” “어서 들어오세요.” 최감은 목사는 그 시간에 이상한 기척을 느끼고는 장독대에 숨어있었다. 김 목사는 사지에서 도망쳐서 신앙의 동지를 만나자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최 목사를 덥썩 껴안았다. 김 목사도 최 목사도 그 험한 고난의 길을 넘어서 여태까지 온 것이었다. “잘 오셨습니다, 김 목사님. 놈들의 추적이 있을지 모르니 빨리 장소를 옮기도록 합시다.” 김윤찬 목사는 최 목사 부인이 바삐 내온 식은 밥덩어리를 덥석 움켜쥐고 허겁지겁 먹었다. “갑시다, 김 목사님.” 최 목사가 김윤찬 목사를 이끈 은신처는 산 쪽에 있는 외딴집이었다. 최 목사가 낮은 음성을 내자 문이 스르르 열렸다. 이곳이 최감은 목사와 교회의 장로 집사들이 은거하는 곳이라는 말을 들었다. 조그만 부엌에 사다리가 놓여 지자 천장에 은밀한 문이 열렸고 김윤찬 목사는 그 안으로 들어간 후, 피신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교회에 닥쳐온 환난을 가슴 아파했다. 최 목사의 권유에 김윤찬 목사는 한쪽에 자리를 잡고 누웠으나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다. 이렇게 함께 있다가 발각되는 날에는 모두 다 떼죽음을 당한다. “최 목사님, 저는 떠나야겠습니다.” “왜요? 하루쯤 푹 쉬고 가시지요.” “아닙니다. 어째 여기에 있는 것이 불안한 생각이 드는군요. 이렇게 함께 모여 있다가 들키는 날에는 꼼짝없이 떼죽음을 당할 것 같아서요.” 김윤찬 목사는 떠나기 전에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김윤찬 목사는 천장에서 내려오다가 깜짝 놀라 숨을 멈추었다. 사립문 밖에 다발총을 든 인민군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최 목사가 천장에서 고개를 내밀자 김 목사는 손짓으로 집밖을 가리켰다. 최 목사의 얼굴색이 파랗게 질리는 것을 보고 김 목사는 바삐 사다리를 뛰어내려 뒤꼍으로 돌았다. 잽싸게 밖으로 나선 그는 동네 밖으로 뛰었다. 그런데 인민군들이 사방에서 다발총을 들고 길을 막고 있었고 집집마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수색하고 있었다. 이제 도망갈 구멍은 없었다. 아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 난감해 하는 김윤찬 목사의 머릿속에 하나님의 지혜가 임하였다. 그는 서둘러 바지 잠방이의 중간부분을 쭉 찢어냈다. 그리고 웃 저고리에서도 헝겊을 찢어냈다. 단번에 그의 고문당한 상처며 피 흘린 자국이 들어났다. 김 목사는 헝겊으로 머리를 아무렇게나 동이고 나머지 헝겊으로 팔을 어깨에 동여맸다. 그는 순식간에 흙과 더러움투성이의 헝겊으로 인해 병자 걸인처럼 바뀌어 버렸다. “주여, 저들의 눈을 멀게 해서 베드로를 옥에서 구원하신 것과도 같이 이 종도 저들의 사이를 무사히 빠져나가게 도와주소서.” 김윤찬 목사는 이렇게 기도한 뒤에 결심한 듯이 인민군이 막아서 있는 마을 밖으로 향하는 길을 향해 다리를 절며 나아갔다. 얼굴은 태연함을 가장했지만 가슴 속에는 불안감에 숨이 금방이라도 막힐 것만 같았다. 과연 그들이 자신을 못 알아볼까? 그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다. 아니 불가능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주여, 이 종과 함께 하사, 이 난관을 극복하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는 계속 이렇게 기도하면서 그들의 앞으로 서둘지 않고 나아갔다.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 갈수록 가슴이 심하게 뛰고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이윽고 그들의 옆을 지나가는데 인민군들 중 하나가 그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야, 여기 좀 봐라.” 그 말에 벌써 김 목사의 가슴이 무너져 내리며 심장이 멎는 것 같았고 세상이 노랗게 변했다. “저 놈의 늙은이가 대동아 전쟁에서 부상당했나 보구나 쯧쯧쯧.” 혀 차는 소리가 들리고 어떤 병사는 저러려면 차라리 죽는 게 나을텐데 하는 말을 하면서 중얼댔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들의 눈을 멀게 하사 이 종을 그들의 손길에서 구원해 내서 감사합니다.” 그는 이렇게 마음속으로 부르짖으며 다리를 질질 끌면서 그들 앞을 천천히 지나쳤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김 목사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고 김 목사는 등 뒤에서 따갑게 느껴지는 불안감에 떨면서 아직도 안심을 못한 채로 앞으로만 나아갔다. 금방이라도 자신을 알아챈 인민군 중의 한 명이 자신의 등줄기를 다발총으로 갈길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며.
인민군이 안보이게 되자 김 목사는 죽어라고 앞으로 냅다 달렸다. 숨이 턱에 닿도록 달리던 김 목사는 얼마 후에 다리에 힘이 빠지고 다리가 후들거려서 도저히 더 뛸 수가 없었다. 그는 아무도 뒤따르는 자가 없다는 것을 살핀 후에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숨을 몰아쉬면서 한숨을 돌려 보니 길가에 집이 한 채 보였다. 김 목사는 목이 타는 갈증으로 물이나 한잔 얻어먹으려고 그 집으로 들어섰다. 마루에 걸터앉으며 소리쳤다. “주인장, 미안하지만 물 좀 한 그릇 얻어 마십시다.” 주인이 그 소리를 듣고 김 목사의 걸인차림이 측은했든지 물 한그릇을 떠오다가 그의 얼굴을 보더니 깜짝 놀란다. “김 목사님. 김윤찬 목사님이 아니십니까?” 김윤찬 목사의 가슴이 그 말을 듣고 덜컹 내려앉았다. 자신의 생각으로는 인민군들이 자신을 못 알아봤으니 이 사람도 자신을 못 알아 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게 잘못이었다. 그는 망설이면서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는데 그 모양을 보고 주인이 말했다 “목사님, 저는 각금리교회 홍장로의 아들 홍내선 집사입니다.” “그래요?” 아직도 김 목사는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목사님, 제가 이 마을 인민군 서기장 일을 맡고 있습니다.” 아! 김윤찬 목사는 이제는 틀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간신히 주님의 도움으로 사지를 벗어났는데 자신의 발로 호랑이의 굴에 들어온 셈이었다. “목사님, 안으로 들어가십시다.” 들어가? 그것은 그대로 날 잡아가라는 말과 똑같았다. 김 목사가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그에게 사정할 도리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홍 집사, 내가 죽고 사는 것은 홍 집사의 손에 달렸네. 내가 죽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주님의 사역을 다 못하고 가는 것이 아쉬울 뿐이네.” “목사님. 왜 이러십니까? 저는 공산당이 아닙니다. 다만 살기 위해서 이런 행세를 하는 것 입니다. 저는 아직도 기독교인이고 주님을 믿는 주님의 종입니다.” “오, 하나님!” 김윤찬 목사의 입에서 긴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주님께서는 인민군의 손에서 자신을 구원하시고 또 다시 쉴 곳을 마련해 주신 것인가? 김윤찬 목사는 홍내선이 이끄는대로 안방으로 들어갔다.
안방으로 들어가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는데 갑자기 길가가 소란스러워졌다. “인민군들입니다, 목사님.” 홍내선이 얼굴이 사색이 되며 소리쳤다. 과연 집밖에서 인민군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김 목사의 얼굴도 흑빛이 되며 도망갈 길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이미 도망할 길도 시간도 없었다. 벌써 인민군들은 집주위로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몇 명의 인민군들이 집안으로 들어섰다. 아아, 어떻게 할 것인가? “주여, 굽어 살피소서!” 갑자기 김윤찬 목사의 머리 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암담한 그 상황에서 주님께서 그의 지혜를 다시 열어주셨던 것이었다. “홍 집사, 빨간 약 있나?” 김 목사가 다급히 물었다. 홍내선이 당황해서 더듬댔다. “없, 없습니다, 목사님.” “그럼 빨간 물감이라도 있나?” “여기...” 상황은 급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인민군들이 이미 마당에 들어서 있었다. 김 목사가 홍내선이 급히 내미는 물감을 잽싸게 잡아채 머리며 얼굴에 처발랐다. “병자라고 하게.” 김 목사는 다급히 소리치면서 담요를 끄집어내서 머리 위까지 뒤집어썼다. “이집에 아무도 없나?” 밖에서 인민군이 소리를 쳤고 그 소리를 듣자마자 홍내선은 벼락에라도 맞은 양 자리에서 발딱 일어섰다. “아유, 어서 오십시오.” “이집에 다른 남자는 없나?” 이렇게 말하는 인민군들은 벌써 다른 방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있어요.” 갑자기 인민군에게 다른 남자가 있다고 말하는 여자애가 있었다. 바로 홍내선의 어린 딸이다. “있어? 누군데?” “우리 외할아버지예요.” 아이가 영리하게 대답하자 인민군이 김이 빠진 모양이었다. “어디 좀 봅세.” 인민군이 안방으로 들어섰다. 여태까지의 대화를 이불을 뒤집어쓰고 다 듣고 있었던 김윤찬 목사의 가슴이 무너질듯이 두근댔다. “편찮으십니다.” 홍내선이 불안하게 따라 들어와서 말했다. 김윤찬 목사의 이마며 얼굴에서는 온통 진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김 목사가 뻘뻘 땀을 흘리고 빨간 물감이 온통 범벅이 되어있자 인민군은 혀를 쯧쯧하고 찼다. 김 목사는 신음을 하면서 가늘게 떨렸다. “음, 매우 아픈 모양이군. 된장을 좀 바르도록 해보오.” 그자는 아는 체를 하더니 이불을 다시 덮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김윤찬 목사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나왔다. 살았다.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모면한 것이었다. 인민군들이 사라지자 김 목사도 홍내선의 가족들도 모두 깊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구사일생으로 위기를 넘긴 것이었다. 한숨을 돌린 김 목사를 위해 홍내선의 아내가 요기를 하라고 밥을 내왔다. 홍내선은 김 목사가 식사를 하고 있는 동안에 무슨 일이 있나 알아보기 위해 마을로 내려갔다. 얼마 후에 홍내선이 허겁지겁 돌아와서는 숨도 돌리지 않은 채로 말했다. “목사님, 마을 남자들 노소를 가리지 않고 42명이 의용군으로 잡혀갔고 그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많이 총살되었습니다.” “혹시, 혹시 최감은 목사님도?” “예, 목사님. 최감은 목사님뿐 아니라 그곳에 같이 숨어 계셨던 장로님 집사님들 모두가 총살당했습니다.” “그럴수가?” 김윤찬 목사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너무 허탈했다. 최감은 목사의 순교! 그것은 기독교 사역자들이 그 시대에 당했던 수난을 고스란히 대변해주고 있었다. 일제시대 때 평양신학교의 동창이었고 신앙의 동지였으며 일제와 공산당에 항거하고 오로지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최선을 다했던 5인의 신앙동지회의 한 명인 그가 이제 김윤찬 목사 만을 남겨놓은 채로 주님의 곁으로 떠난 것이었다. “최감은 목사! 부디 주님 곁에서 영광이 있기를!” 김윤찬 목사의 절절한 기도가 눈물에 녹아서 하늘로 올라갔다. 마음이 조금 가라앉은 김윤찬 목사는 자신이 홍내선의 집에 오래 머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인민군이 언제 다시 와서 집을 뒤질 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만에 하나 소문이라도 난다면 자신뿐 아니라 홍내선 가족들도 무사할 수는 없었다. 그가 이런 말을 하자 홍내선이 펄쩍 뛰었다. “아니 목사님, 가시면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이제 세상은 모두 인민군 천지입니다.” “그럼 어쩌겠소, 홍 집사?” “목사님, 우리 뒷곁에 외양간이 하나 있습니다. 그 외양간 아래에 땅을 파고 숨어있으면 쥐도 새도 모르는 은밀한 장소가 될 것입니다.” 김 목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홍내선은 그길로 소 외양간에 땅을 파고는 나무판자로 그 위를 덮은 다음 그 위에 덤불을 깔았다. 다른 것은 참을 만했으나 찌는 듯한 더위와 외양간에서 나는 악취는 못 견딜 지경이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래도 관 같은 감방이나 공산당의 고문이 기다리는 감옥보다는 나았다.
조국의 산하는 민족의 피로 시뻘겋게 물들고 있었다. 한국의 거의 모든 지역이 북조선인민군에 의해 점령되자 미국은 황급히 전쟁에 참전했고 곧이어 소련이 불참한 유엔총회에서 유엔군의 한국전참전을 결정했다. 이에 총 16개국의 참전국들이 한국전에 참전하자 이제 전쟁은 남북한의 전쟁이 아닌 국제전의 양상을 띄고 있었다. 1950년 9월 15일 맥아더 장군의 지휘 하에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되어 유엔군은 인민군의 허리를 끊고서 그 기세를 눌렀다. 이어서 유엔군과 남한국방군이 9월 28일 서울을 수복했고 병사들은 북으로 북으로 북진해갔다. 미군의 살벌한 폭격기 공습은 이 산하를 잿더미로 만들었으며 산은 시체로 가득 찼고 시내와 강물은 모두 핏덩어리가 되어 흘러내렸다. 홍내선 집사는 김윤찬 목사에게 매일 식사와 과일을 대접하면서 전쟁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김 목사는 처음에 어둡던 전황에 가슴을 졸이다가 인천상륙작전과 서울 수복소식을 듣고는 너무 기뻐했다. 1950년 10월 드디어 평양에 국군이 입성했다. 탱크와 군용트럭에 국군들은 빽빽이 타고서 손을 흔들어댔고 거리에 나와 있는 평양시민들은 태극기를 미친듯이 흔들며 국군을 환영했다. 인민군들은 자취도 없이 도망치고 말았다. “목사님, 목사님.” 홍내선이 죽어라고 소리치며 외양간으로 달려오자 외양간 아래에 숨어있던 김 목사는 깜짝 놀랐다. “나오세요, 목사님. 이젠 자유예요.” “아니, 홍 집사. 무슨일이요?” “목사님, 국군이 평양에 들어왔어요. 인민군들이 모두 도망을 갔다고요. 이제 우리 기독교인들은 해방이에요, 해방” 김윤찬 목사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자 홍내선이 마구 그를 잡아끌었다. 밖에는 태극기의 물결이 넘쳐나고 있었다. “정말이군, 홍 집사. 정말이야!” 김윤찬 목사는 기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쳤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으로부터 1950년 10월 국군의 평양입성 때까지 북한의 기독교인들은 모두 사탄의 손아귀에 잡혀서 고통과 죽음을 당했고 그래서 이 5년 동안 북한에서의 기독교인들은 거의 씨가 마를 정도가 된 것처럼 보였지만 다행히 이곳저곳에 숨어서 국군이 입성하자 기쁨의 눈물을 뿌렸던 것이었다.
1950년 10월 평양 모란봉극장에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모두가 피곤하고 찌들고 상처 입은 모습들이었지만 그들의 가슴은 성스러웠고 그들의 얼굴은 환한 표정들이었다. 바로 사탄의 환난에서 살아남았던 기독교인들이었다. 그들은 국군 평양 입성 3일째 되는 날 대대적인 강연회를 가지려고 모란봉극장에 모여 들었다. “할렐루야”와 “아멘” 소리가 곳곳에서 번져 모란봉극장에 모인 사람들은 이 두 마디의 말밖에 모르는 사람들 같았다. 모든 사람들이 고난을 이긴 기쁨을 나누면서 모란봉극장은 환희와 감동에 터져나갈 듯 했다. 모두가 은혜와 감격에 휩쌓여 기쁨으로 충만할 때 그 충만함 사이로 들어서는 초췌하고도 피곤하게 보이는 남자를 보고서 사람들이 소리를 죽였다. 김윤찬 목사였다. 얼마나 고난을 받았는가? 얼굴이 반쪽이 되었고 몸에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와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한 사람이 달려와서 그를 앞자리로 안내했다. 공산당에 잡혀가서 순교 당한 줄 알았던 그가 극장에 나타나자 교인들은 모두 그 크신 하나님의 은혜에 깊은 감사를 드렸다. 잠시 후 이 강연회의 연사인 목사가 극장으로 들어섰다. 군복을 입고 오른편 어깨에 십자가가 왼쪽 어깨에는 소령 계급장을 단 군목이었다. 사람들이 들어오는 군목에게 환호를 하자 김 목사도 고개를 돌려 극장 안으로 들어오는 연사를 쳐다보았다. 엇! 그의 입에서 짧은 소리가 새어나오더니 김 목사는 갑자기 그 연사에게로 달려나갔다. “황 목사! 황 목사가 아니오.” 김윤찬 목사가 이렇게 소리치자 군목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김 목사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누구신지 ...?” “나요, 김윤찬이요.” “김윤찬? 김 목사?” “그렇소. 평양신학교의 김윤찬이요.” 갑자기 군목이 김윤찬 목사를 얼싸안았다. “김윤찬 목사가 맞구료. 살아있었구료.” 황은균 목사, 그는 김 목사의 옛 신앙 동지였던 절친한 목사였다. 두 목사는 서로 부등켜안고 흐느껴 울었고 그것을 지켜보는 극장의 모든 교인들이 함께 흐느꼈다. 잠시 후 다른 군목이 들어왔는데 그가 김 목사의 옛 신앙의 동지였던 황금천 목사란 것을 알자 김 목사는 다시 그를 얼싸 안았다. 그것을 보고 극장 안은 온통 통곡의 바다가 되어버렸다. “하늘을 향해 늠름하게 치솟던 교회의 십자가는 다 어디로 갔으며, 하늘에 울려 퍼지던 아름다운 교회의 종소리는 또 어디로 갔단 말입니까? 한국의 예루살렘이라고 일컬어지던 아름다운 주님의 나라 평양이 어이하여 잿더미로 변했고, 옛 신앙의 동지들은 또 어디로 갔단 말입니까? 아직도 그들의 기도소리와 가슴을 울리는 찬양소리가 귓가에 남아 있는데 어이하여 우리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가슴을 에이는 고통을 받아야만 했습니까?” 황은균 목사의 절규하는 연설은 끝내 극장 안을 울음바다로 만들었으며 이어서 등단한 김윤찬 목사의 환영사는 교인들의 애간장을 끊는 듯하여 서로가 서로를 부등켜안고 통곡하고 말았다. 강연회 내내 장내는 줄곧 울음바다였으며 교인들은 서로가 부등켜안고 손을 꼭잡으며 가슴이 메어서 캑캑대며 울어댔고 눈에서는 울어도 울어도 없어지지 않을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며칠 후에 김윤찬 목사는 평양 장대현교회의 시무목사로 임명되었다. 기독교구국회가 결성되었고 김윤찬 목사는 부회장으로 선임되어 인민군이나 폭격에 의해 외롭고 고독하게 된 교인들을 위로하는 한편 구국운동에 박차를 가했다. 평양시내의 교인들은 오랜만에 신앙의 자유를 누렸고 교회는 나날이 은혜로 충만해 갔다.
1950년 10월 25일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 부근까지 진격하자 이에 위협을 느낀 중공군이 참전을 결정했다. 이렇게 되자 지금까지 파죽지세로 북진하던 국군과 유엔군에게는 상당한 타격이 되었고 곳곳에서 유엔군이 중공군에게 패하는 사태가 생겼다. 전세는 유엔군 쪽이 불리하게 전개되었고 유엔군들이 전선에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중공군들은 꾕과리를 쳐대며 죽어도 죽어도 인해전술을 쓰면서 계속해서 남하했다. 중공군은 각지에서 승전고를 울리고 있었고 전세는 유엔군에게는 극도로 불리해졌다. 1950년 11월 26일 평양 서문외교회에서는 서울 승동교회의 이대영 목사를 강사로 평양기독교 연합부흥회가 열리고 있었다. 김윤찬 목사는 이대영 목사를 맞아 부흥회에 최선을 다했고 전 교우들이 하나가 되어 은혜를 흠뻑 받았다. 그런데 전세가 급격하게 악화되어 유엔군과 국군이 후퇴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1950년 11월 28일 새벽 이대영 목사가 김윤찬 목사를 조용히 불렀다. “김윤찬 목사님, 저는 서울로 돌아가야겠습니다. 어젯밤에 선교사가 찾아왔더군요. 전세가 불리해서 유엔군이 후퇴를 하고 있답니다.” “후퇴를요?” 김윤찬 목사가 경악했다. “해서, 오늘 비행기를 타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굳이 비행기를 타라는 겁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김 목사님도 아시다시피 제게도 교회가 있고 돌보아야할 교인들이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목사님.” 맞는 말이었다. 김 목사가 이끄는 교인들이 있듯이 이대영 목사도 자신이 책임지는 양떼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김 목사는 너무 허무했다.
결국 김윤찬 목사도 가족들과 교인들을 데리고 도저히 남하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남쪽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패전 군이 평양에 이르자 평양의 다리는 모두 후퇴하는 군인들의 군 퇴로로만 이용되었고 민간인들의 통행은 금지되었다. 민간인들의 다리통행이 금지되자 기독교인들은 그야말로 독안에 든 쥐꼴이 되고야 말았다. 그 당시에 평양시에 살고 있던 기독교인들과 그 가족들 수만 명은 모두 국군의 평양 입성 시에 쌍수를 들고 환영했기에 더 이상 북한에 남아있을 수 없었다. 북한에 그대로 남아 있는다는 것은 자살행위와 다를 바가 없었다. 중공군과 인민군이 밀려 내려오고 대동강은 그들의 앞에서 발길을 잡아매고 있었다. 대동강은 걸어서 건널 수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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