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평생을 교회 역사 연구와 선교 전력 개발에 모든 정열을 쏟아 바치면서 즐겁고 멋지게 살다가 주님 품으로 돌아가신 랄프 원터 박사님에게 감사와 존경과 사랑을 담은 추모의 글을 쓴다. 내가 윈터 박사님의 역사적 및 선교적 안목에 접하게 된 것은 조동진 목사님의 권면으로 이루어졌다. 내가 미국에서 11년 동안의 유학을 마칠 무렵인 1973년 조동진 목사님이 나를 만나자고 했다. 후암교회의 교육목사로 와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즉시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풀러신학교에 가서 1년 동안 선교학을 연구하고 나서 후암교회로 오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즉시 그러겠다고 대답하고 1974년 초 풀러 신학교에 가서 Research Associate의 자격으로 8개월 동안 선교학을 연구하게 되었다. 역사신학과 선교신학을 접목할 수 있는 너무나 중요한 기간이었다. 미국 교회사의 아버지 라토렛 교수가 교회사와 선교학을 겸해서 연구했고 윈터 박사가 교회사와 선교학을 겸해서 연구했는데 나도 교회사 연구에다 선교학 연구를 접목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나는 풀러 신학교 선교신학원에서 윈터 교수를 비롯한 그 당시 유명한 선교학 교수들의 강의를 들으면서 나의 안목을 넓혀갈 수가 있었다. 윈터 교수의 강의를 들으면서 나는 그 분의 진취적인 입장을 다소 비판하며 질문도 했지만 많은 깨달음과 도전도 받았다.
나는 1974년 가을에 귀국하여 후암교회의 교육 목사가 되었고 총신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그런데 1976년에 랄프 윈터 박사님이 조동진 목사님의 초청으로 한국에 와서 며칠 동안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내가 그 분의 통역을 맡게 되었다. 그 분의 강의는 깊은 통찰력과 예리한 분석과 과감한 제안으로 일관된 고무적인 강의였다. 윈터 박사는 자기들의 입장만이 옳다고 생각하며 다른 기독교의 전통을 무시하는 분파적인 교회나 운동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윈터 박사는 우리에게 두 권의 책이 필요한데 제 1권은 성경책이고 제 2권은 라토렛 교수의 단권 교회사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그와 같은 역사신학적이고 선교신학적인 입장에 전적으로 동조하면서도 때로는 그 분의 선교신학적 입장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서 통역을 하면서도 그 분의 입장에 동의할 수 없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 중의 한 가지만 지적하면 윈터 박사가 신학적인 다양한 전통들을 상대적인 문화적 형태들로 볼 뿐만 아니라 성경 자체를 복음인 동시에 문화라고 보려고 한 점이었다. 성경에 있는 모든 구절이 복음인 동시에 문화적 표현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므로 매 구절의 중요성은 ‘어린양’ ‘십자가’와 같은 문화적 표현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문화적 유추가 전달하려고 의도했던 본래의 내용 즉 복음을 파악하는데 있다고 주장했다. 나는 그와 같은 주장에 약간의 타당성은 있지만, 이 원리를 성육, 십자가, 부활과 같은 그리스도 사건에까지 적용시키려는 것은 너무 지나치다고 비판하면서 통역을 했다. 윈터 박사는 나의 비판적인 통역을 별로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작년 5월 한국을 방문한 랄프 위터 박사님을 반갑게 만났다. 강의도 같이 했고 대담도 같이 하며 오랜 만의 교제를 나누었다. 그런데 그 때 내가 충격을 받은 것은 윈터 박사님이 미국 복음주의교회의 잘못들을 진솔하게 지적하는 것이었다. ‘구원’을 단순이 몇 마디 말을 감성적으로 고백하는 것으로 얻어진다고 간주하는 것은 큰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단기 선교 여행만큼 선교에 해를 끼치는 것은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북 치고 시끄럽게 노래하는 것은 예배를 해 치는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풍자적인 말까지 했다. 즉 사도 신경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고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성부 하나님을 믿습니다. 성자 예수님을 믿습니다. 성령님을 믿습니다. 거룩한 교회를 믿습니다.” 그리고 “북 치고 장구 치는 것을 믿습니다. (We believe in drum)” 라고 추가하여야 할 것이라고 재미있게 지적했다. 사실 요사이 한국교회는 북치고 장구치고 시끄럽게 음악을 연주하므로 예배를 해치고 영성을 죽이는 것같이 보인다. 원터 박사님의 지적은 너무나 정확하고 시의 적절한 지적이었다. 윈터 박사님은 또한 신앙의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의미가 변질되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회는 본래 가족 중심의 신앙공동체였는데 오늘날 서구화와 개인주의화와 대형화 때문에 가족공동체의 특성이 해체하기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한국교회는 이와 같은 미국 복음주의교회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고 충고했는데 너무너무 진솔하고 귀중한 충고였다.
나는 5월 10일 윈터 박사님과 마지막 대담을 했는데 그 대담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윈터 박사님은 한국교회가 미국과 서구교회의 실수들을 반복하지 말 것을 재차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은 점들을 지적했다. 윈터 박사님은 단기선교에 대해 “다른 나라를 배우는 것은 좋지만 선교적 관점에서 도움이 안 된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선교에 공헌을 못할 뿐만 아니라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는 것을 볼 때가 있다. 오히려 방해꾼이 되거나 소란을 일으키는 일도 있다. 그럴 경우 선교사는 여행안내자일 뿐이다. 또 다른 문제는 장기선교사가 쓸 돈을 단기선교사가 쓰는 것이다. 전쟁할 때 군인들을 전쟁터에 보내는데 일반 시민도 전쟁터가 보고 싶다고 해서 다 태워 보내는 것은 낭비고 방해다. 군인만 보내야지 무장되지 않은 일반 시민을 보낼 필요는 없다.”
문화와 복음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교는 문화와 복음을 엮는 작업을 하게 되는데 모든 문화 안에는 결점이 있기 마련이다. 다른 문화가 나쁘다고 하기 전에 미국의 문화도 가장 나쁜 문화 중 하나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문화 안에 좋은 면이나 배워야 할 면 도움이 되는 면도 있다. 결점이 있는 문화권 속에서도 신앙이 자리잡게 될 수 있고 문화도 변할 수 있다. 모든 문화는 질그릇에 비유할 수 있다. 복음은 보배다. 어느 한 질그릇의 보배를 다른 문화권의 질그릇에 집어넣는 것이 바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보배가 한 질그릇에 담겨졌을 때 그 보배가 문화권 속에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보배가 문화라는 질그릇에 스며들면서 그 질그릇의 결점들이 조금씩 변화되는 것을 경험했다. 인도에는 힌두권에 속하면서도 예수를 따르는 자들 2천 4백만 명이 있다. 그들은 예수라는 보배를 가지고 있지만 힌두권이라는 질그릇 안에서 계속 사역하고 있는 것이다. 회교권에서 예수를 따르는 자와 예수를 따르지 않는 자의 차이는 무엇인가.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언어를 쓰지만 보배가 있고 없고가 차이 나는 것이다. 매우 중요한 차이지만 드러나는 문화적 행위에서는 크게 차이가 안 난다.”
윈터 박사님은 미국복음주의의 오류들을 지적하면서 미국의 복음주의를 성경과 동일시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성경에 근거한 기독교가 참되지 복음주의에 근거한 기독교를 성경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미국의 복음주의는 결점도 많고 완전한 해석이 아니다. 미국의 복음주의는 하나의 종교다. 예를 들어 복음주의는 복음, 신앙, 구원, 하나님의 나라, 은혜 등의 용어를 성경에서 의미하던 것과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 복음주의의 못된 이단 중에서도 가장 큰 이단은 아주 짧은 시간에 ‘구원’을 단순이 몇 마디 말을 감성적으로 고백하는 것으로 얻어진다고 간주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순간적으로 구원 받는 것, 이런 가르침은 아주 못된 것이다. 구원은 감정적으로 순간적으로 받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과정이다.”
내가 윈터 박사님에게 “한국교회에 더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이렇게 대답했다. “복음으로 돌아가라고 조언하고 싶다. 믿음은 순종하는 것이다. 외부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통치에 항복하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 왕국이 이뤄지는 곳이다. 하나님의 뜻이 이 세상에 도래했는데 거기에 순종하는 것이다. 복음주의는 하나님의 뜻이 이 세상에 온 것에 완전 복종하는 것이다. 그냥 믿는 것이 복음이 아니라 복종해야 한다. 믿는 것은 마귀도 한다. 그러나 마귀는 가슴으로 순종하는 것이 아니다.”
랄프 윈터 박사님은 존 스토트 박사님, 피터 바이어하우스 박사님과 함께 현대 선교 신학계의 대표적인 선구자였다. 선교신학의 중요한 용어들인 sodality, unreached people, frontier mission 은 모두 윈터 박사님이 만들어내 말들이다. 랄프 윈터 박사님은 지식이 풍부한 분이었고 안목이 균형 잡힌 분이었고 판단이 명석한 분이었고 표현이 진솔한 분이었고 가슴이 따뜻한 분이었고 시간에 충실한 분이었다. 나로 하여금 랄프 윈터 박사님, 존 스토트 박사님, 피터 바이어하우스 박사님과 가까이 지내며 그 분들로부터 귀한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면서 랄프 윈터 박사님에 대한 추모사를 마무리한다.“<목회와 신학,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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