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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교회 원로/선교목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명예교수,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한국세계선교협의회 공동회장

  제목 : “인생은 기쁘고 즐거운 것” 『내 인생에 빛이 된 말씀』



“인생은 기쁘고 즐거운 것” 『내 인생에 빛이 된 말씀』(웅진씽크빅 2014.11.14 출판)

_즐거운 일이 하나도 없다는 그대에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16:11).

주님 안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건 정말 기쁘고 즐거운 일이다. 나는 평생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 안에서 기쁘고 즐겁게 살았지만, 은퇴한 후에는 더 여유롭고 즐겁고 보람되게 살아가고 있다. 매주 주일 아침이 되면 (때로는 토요일에), 나는 소풍 가는 어린아이처럼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마음이 들뜬다.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작은 교회들이 은퇴한 목사 할아버지를 초대해주기 때문이다. 작은 차에 어른들과 어린이들에게 줄 떡과 초콜릿과 스티커를 챙겨 싣고 떠나면, 나는 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산타클로스가 된다.
얼마 전에는 전주의 한 작은 교회에 가서 설교를 했다. 그 교회는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더 많았다. 아이들이 피아노 반주를 하고, 헌금도 걷었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많으니 소란스러운 느낌이 있었지만 그것조차 활기처럼 느껴져서 좋았다. 어린 아이들은 솔직하고 명랑하다. 어떤 작은 교회를 찾아갔는데 어린 아이들 몇 명이 내 무릎에 함께 앉아서 왜 자기들을 자꾸 찾아와서 선물을 주느냐고 물으면서 반가워하며 고마워 했다. 어린이들은 작은 일로도 즐거워하고, 넘어져서 울다가도 금방 일어나 웃으며 즐겁게 논다. 나는 강변교회에 있을 때부터 어린이들을 아주 좋아했는데 어린이들이 내 품에 안기기도 하고 내 등에 업히기도 했다. 어린이들과 함께 놀다 보면 너무너무 기쁘고 즐겁고 재미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어린이들을 사랑하시면서 어린 아이와 같아져야 천국에 간다고 말씀하셨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기적이고 정욕적이고 비판적이고 배타적이고 위선적인 죄인인데 하나님께서 한 평생 내 버리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종으로 사용하셨고 특히 은퇴 후 지난 6년 동안 한 주도 빠지지 않고 나를 내 버리지 않으시고 이곳 저곳으로 보내시면서 계속해서 심부름꾼으로 사용하시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큰 놀라움과 감사와 감격과 기쁨에 휩싸일 수 밖에 없고, 부족한 사람을 계속해서 사랑과 고마움으로 맞아주시면서 기뻐하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 너무나 큰 놀라움과 감사와 기쁨에 휩싸일 수 밖에 없다.
세상을 살다 보면 별별 일들이 다 생긴다. 무서운 일, 두려운 일, 슬픈 일, 아픈 일, 힘든 일, 불행한 일 등등 별별 일들이 다 생긴다. 이와 같은 일들이 우리들에게서 기쁨과 즐거움을 앗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불평 불만 원망 절망에 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성경은 두려워하지 말고 기쁨과 즐거움을 잃지 말라고 가르친다. 하나님의 품 안에서 성도들의 품 안에서 자연의 품 안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지니고 행복하게 살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성경의 저자들은 기쁨과 즐거움을 예찬하고 간구하면서 환난 중에서도 기쁨과 즐거움을 지니고 행복하게 살았다.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16:11).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시16:3). “할렐루야 하늘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며 높은 데서 찬양할찌어다 해와 달아 찬양하며 광명한 별들아 찬양할찌어다”(시148:1,3).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찌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찌어다”(시100:1,2).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시90:14).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롬5:3).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고후12:10).  
나는 하나님만을 믿는 단순한 믿음을 지니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뚫고 나아가면서 기쁘고 즐겁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것을 어린 아이 때부터 부모님과 주일학교 선생님들로부터 배웠다. 모세와 다니엘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뚫고 나아간 것을 어린 아이 때부터 배웠다. 내 고향은 평안남도 안주인데 어린 시절을 신의주와 평양에서 살았다. 신의주 제이교회와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는데 신의주에서도 평양에서도 주로 감옥에 가 계시던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그리고 주일학교 선생님들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주일성수 때문에 학교에서 벌을 받든지 정학을 당하든지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주일을 지키고 새벽기도를 하면서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을 분명하게 배웠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신앙생활을 철저하게 했는데 모험심도 강하고 장난도 잘 치는 성격을 지녔다. 신의주에 있을 때 감옥에 계시는 아버지를 찾아 어머니와 함께 감옥 담장 밖에서 아버지 들으시라고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제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라는 노래를 목청을 돋우어 불렀고 “아버지! 아버지!” 라고 소리쳐 부르곤 했다. 평양에 있을 때 감옥에 계시는 아버지를 찾아 어머니와 함께 사동탄광에 가서 아버지를 만나 뵙곤 했는데 아버지께서 나를 격려해주시곤 했다. 내가 주일을 지키며 신앙생활을 바로 하기 위해 남쪽으로 가겠다고 말했을 때 아버지는 나를 한참 바라보시다가 그러면 가라고 말씀했다. 나는 그 때부터 신앙생활은 고난을 무릅쓰고 하는 것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나를 너무너무 사랑하시던 어머니도 울면서 그러면 가라고 말씀했다.
결국 나는 11살 때인 1948년 8월 사랑하는 부모님과 동생들을 북에 두고 38선을 넘어서 남쪽으로 왔다. 평양을 떠나 기차를 타고 황해도 해주까지 왔다. 해주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캄캄한 밤에 38선을 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인민군에게 붙잡히게 되었다. 손을 들고 서지 않으면 총을 쏜다고 위협했다. 어른들은 모두 손을 들고 섰다. 나는 설 수가 없었다.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혼자서 남쪽을 향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두려움을 느끼지는 않았다. 약간의 스릴을 느꼈다.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라는 말씀을 기억하면서 언덕을 넘고 파밭을 지나고 목에 차는 강을 건너서 남쪽에 도착했다. 캄캄한 밤에 38선을 혼자서 뛰어 넘은 사건은 나의 삶의 성격과 방향을 정해주는 중요한 사건이 되었다. 남쪽에 도착해서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밤마다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지만 신앙의 자유를 누리면서 감사와 기쁨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기쁨과 즐거움을 몸에 지니고 사는 것보다 큰 축복은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나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몸에 지니고 한 평생을 살게 하셨다. 얼마나 큰 은혜이고 축복인지 모른다.
인생은 보기에 따라서 슬픈 것이 될 수도 있고 즐거운 것이 될 수도 있다. 군대에 가서 훈련 받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힘이 들어서 군대에 가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논산에서 훈련을 받을 때 밧 줄을 타고 높은 곳을 올라갔다가 내려오고 밧줄을 타고 타잔처럼 공중으로 날아가는 훈련이 있었는데 그것이 너무나 재미가 있어서, 나는 한 번 하고 다시 돌아와서 두 번씩 하곤 했다. 노동하는 것도 힘들고 귀찮게 생각하면 힘들고 귀찮지만 보람 있고 재미있게 생각하면 아주 보람 있고 재미가 있다. 나는 12년 동안 유학 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지 노동을 했다. 마루 청소, 화장실 청소, 인쇄소 일, 도금 공장의 일, 접시 닦기, 페인트 칠하기, 정원 가꾸기, 판매원 일 등등 여러 가지 일을 했다. 그 여러 가지 일들 중에서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일은 집을 페인트 하는 일과 정원을 가꾸는 일이었다. 뜨거운 여름 날 땡 볕에서 집 안과 밖을 페인트 칠하는 일과 풀을 깎고 화단을 정돈하며 정원을 가꾸는 일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페인트 칠과 정원 가꾸는 일을 하면서 보람과 즐거움을 느끼곤 했다. 낡은 집이 깨끗한 모습으로 바꾸어 지는 것을 바라볼 때 나는 아주 재미가 있었다. 흐트러져 있던 정원과 화단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꾸어 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최선을 다해서 정성껏 노동을 하곤 했다. 여행하는 일이 얼마나 즐겁고 기쁜 일인지 모른다.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얼마나 보람되고 즐거운 일인지 모른다. 운동하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온 몸에 땀을 흠뻑 흘리면서 탁구를 치고 그리고 볼링을 치는 일이 얼마나 즐겁고 재미가 있는지 모른다. 스키타는 일이야말로 너무너무 즐겁고 재미있는 일이었다.
물론 세상을 살아가면서 도둑 맞는 일도 있고, 붙잡혀 가서 협박을 당하는 괴로운 일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슬픈 일도 있다. 그러나 그런 일들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의미 있고 보람되고 기쁜 일로 바꾸어지기도 한다. 나는 여행을 하면서 두 번 도둑을 맞고도 걱정이나 당황을 하지 않았고, 남산 정보부에 붙잡혀 가서 심문을 당하면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재미를 느꼈다. 나는 나의 아들 철원이의 불치의 병을 통해서 많은 아픔과 슬픔을 경험했다. 그러나 그 아픔과 슬픔 가운데서도 나는 보람과 기쁨과 즐거움도 맛 보았다. 왜냐하면 철원이의 모습에서 보석과 같은 믿음을 볼 수 있었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볼 수 있었고, 천국의 평화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생은 보기에 달려 있다. 사도들은 붙잡혀 가서 능욕을 당하면서도 오히려 기뻐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을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행5:41).
사람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기쁘고 즐겁게 살도록 지음을 받은 존재들이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16:11). 성경은 우리들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말한다. 기쁜 일이 있을 때만 기뻐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기쁜 일이 있을 때나 슬픈 일이 있을 때나 두려운 일이 있을 때나 “항상” 기뻐하라고 말한다. 도망치고 싶은 상황, 죽고 싶은 상황,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항상” 기뻐하라고 말한다. 주님 안에 있기 때문이다. 주님을 따라서 주님을 위해서 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왜 기쁨과 즐거움을 지니지 못하고 근심 걱정 두려움에 싸여 어둡고 불행하게 살고 있는가? 자신의 못된 기질에 얽매이고 세상의 잘못된 풍습과 가치관에 얽매여서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기질에 얽매일 때 모든 것이 못마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추워도 더워도 모든 것이 못마땅하게 보인다. 자신의 독선적인 의인 기질에 얽매일 때 모든 것을 증오하고 정죄하게 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모두 못된 사람들로 보인다. 부귀영화를 귀중하게 여기는 세상의 풍습과 가치관에 얽매일 때 가난과 고난과 질병과 죽음을 당당하게 맞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게 되고 결국 근심 걱정 두려움에 싸이게 되기 때문이다. 성경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지만 나의 못된 기질과 성격은 두려워하고 근심 걱정하고 원망 불평하며 살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기질이 운명이다” 라는 말을 자주 한다. 부정적인 기질을 긍정적인 기질로 바꾸어야 한다. 심리학적으로 교육학적으로 바꾸자는 말은 아니다. 사도 바울처럼 십자가 신앙으로 바꾸자는 말이다.
그러면 이렇게 기쁨을 지니고 당당하게 외치게 된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15:55).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1:20,21).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12:10).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8:35).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7).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0-13).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시4:7,8). 우리는 십자가 신앙 안에서, 주님과 성도들의 사랑 안에서 그리고 주님을 위해서 고난과 능욕과 핍박과 곤난을 당하므로 기뻐하게 된다.
김명혁 목사의 고향은 아버지의 고향인 평안남도 안주이지만 태어나기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일본에서 공부하던 때와 곳인 1937년 6월 4일 일본에서 태어났다. 한 살 때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과 함께 평안북도 신의주에 와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아버지가 한경직 목사님의 초청으로 신의주 제이교회의 부목사로 부임하여 9년 동안 부목사와 담임목사로 목회했기 때문이다. 그 후 아버지를 따라 평양에 와서 2년 동안 소년 시절을 보냈는데 아버지가 서문밖교회의 담임 목사로 사역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1년 동안 서문밖교회에서 목회하다가 사동탄광에 투옥되어 감옥 생활을 하다가 1950년 6월 23일경 순교했다.
김명혁 목사는 11살 때인 1948년 혼자서 38선을 넘어 서울에 와서 이모 집에서 살며 신앙생활과 공부를 했는데 서울중학교 서울고등학교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으로 유학 가서 훼이스 신학교(B.D.), 웨스트민스터 신학교(Th.M.), 예일대학교신학원(S.T.M.), 아퀴나스 신학원(Ph.D.), 예일대학교 신학원(Research Fellow), 훌러 선교신학원 (Research Associate)에서 연구했다. 1974년 귀국 후 후암교회에서 교육목사와 총신에서 조교수와 부교수로 사역했고, 1980년부터는 합동신학교에서 부교수 교수 교장의 사역과 함께 강변교회를 개척해서 교제와 봉사를 강조하면서 “서로 돌아보고 기쁨으로 섬기면서”를 표어로 삼고 29년 동안 목회했다. 1984년에는 튜빙갠대학교(Research Fellow)에 가서 1988년에는 빌리 그레함센터(Scholar in Residence)에 가서 연구를 계속했다. 2008년 1월 강변교회를 은퇴한 후 지난 7년 동안 매주 전국의 작은 교회들을 방문하며 설교하고 있고 선교지도 자주 방문하며 돌아보고 있다. 그리고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한국세계선교협의회 공동회장, 소련선교회 부이사장 등으로 한국교회를 섬기고 있다. 김명혁 목사는 회개와 십자가 신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십자가 신앙의 특징은 약함과 착함과 주변성에 있다고 지적한다.





“행복 드림교회 장로 및 권사 임직예배 축사"
박용규 교수 저 “세계부흥운동사” 추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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