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tv
강변교회 원로/선교목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명예교수,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한국세계선교협의회 공동회장

  제목 :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며” 한중일 평화 컨퍼런스 개회사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며” 한중일 평화 컨퍼런스 개회사(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2014.10.23-25)

한중일 평화 컨퍼런스를 개최할 수 있도록 우리들을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여기 참석하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와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전합니다. 우선 자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11살 때 평양을 떠나 38선을 혼자 넘어서 서울로 왔습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신앙 생활을 바로 하기 위해서 그리고 아버지를 따라서 목사가 되기 위해서 11살 때 부모님을 북한에 남겨 두고 평양을 떠나 혼자서 38선을 넘어 서울로 왔습니다. 저는 그 후부터 부모님과 고향을 떠난 외로운 나그네의 삶을 한 평생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의 삶을 너무 많이 축복해 주셨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서도 일본 사람들을 싫어했고 북한 사람들을 싫어했고 중국 사람들을 싫어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보수신앙을 지니고 자유주의자들도 싫어했고 순복음주의자들도 싫어했고 모슬렘과 타 종교인들을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어거스틴과 프랜시스와 존 스토트 박사님과 빌리 그레함 박사님과 손양원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 등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그리고 아시아와 세계 각국을 여행하면서 저의 생각과 마음이 조금씩 바뀌어지기 시작했고 저의 인생관과 세계관이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사람들을 존경하며 사랑하게 되었고 일본 교회와 교류하는데 앞장을 서게 되었습니다. 북한 사람들을 사랑하며 북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앞장을 서게 되었습니다. 중국 사람들을 사랑하며 중국 연변에 있는 조선족 어린이들 160여명을 지난 13 년 동안 계속해서 돕게 되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학교 하나를 지어주고 아프간 어린이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기도 했습니다. 기장과도 순복음과도 친밀하게 소통하며 교제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있는 5개 종단의 타종교 지도자들과도 친하게 교제하면서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2010년 8월 27일에는 5개 종단 지도자들 9명과 함께 밀가루 300톤을 가지고 북한 개성에 가서 그곳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오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이고 신앙의 선배님들로부터 조금씩, 조금씩 배워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제가 즐겨 쓰게 된 단어는 “긍휼”과 “용서”와 “사랑”이 되었고 “화해”와 “평화”와 “통일”이 되었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 먼저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화해”와 “평화”와 “통일”의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는 “화해”의 하나님이십니다. 구약 성경 창세기는 야곱과 에서의 “화해”의 장면을 아름답게 묘사했고(창33:3,4). 요셉과 그의 형들과의 “화해”의 장면을 아름답게 묘사했습니다(창45:1,2). 구약 성경은 이스라엘은 물론 이방 나라들인 애굽과 앗수르와 “화해”를 이루는 것이 성부 하나님의 뜻이고 섭리라고 지적했습니다. “그 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사19:23). 신약 성경은 성부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우리들끼리만 아니고 세상과 “화해”를 이루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후5:18,19). 신약 성경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이루신 것이 “화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화해)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2:16,18). 성령께서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 임하시므로 서로 갈라져서 불신과 증오가운데서 살던 다문화 다인종 다민족 3천여 명이 함께 모여 “화해”하며 친밀한 “교제”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기독교는 “화해”의 종교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는 또한 “평화”의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레26:6). 성자 예수님께서는 "평화"를 이루시기 위해서 “평화”의 왕으로 세상에 오셨고 "평화"를 이루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이름은 평강(평화)의 왕이라 할것임이라”(사9:6).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사53:5).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우리의 “화평”(평화)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엡2:16). 성령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선물도 “화평”(평화) 이라고 지적했습니다(갈5:22).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는 또한 “통일”의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뜻은 둘로 갈라졌던 남과 북이 하나를 이루는 것이었고 이방인들과도 하나를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게 하라”(겔37:18).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엡2:13-16).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3:28). 성령님께서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 임하시므로 서로 갈라져서 불신과 증오가운데서 살던 다문화 다인종 다민족 3천여 명이 모두 함께 모여 친밀하게 “교제”하게 되었고 모두가 “하나”가 되어 “통일”을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3).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는 모든 종류의 죄인들에게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손길을 펴시면서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고 그리고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과 피조물들이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이루면서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서로 멸시하고 미워하고 싸우면서 살지 말고 모두를 향한 “긍휼”과 “용서”와 “사랑”을 지니고 나타내면서 살고 그리고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이루면서 행복하게 살라고 분부하셨습니다. “화해”와 “평화”와 통일”은 하나님의 뜻과 비전입니다. 성경의 목표이며 역사의 완성 점입니다. “화해”와 “평화”와 통일”은 부수적인 것도 아니고 선택적인 것도 아닙니다. 본질적인 것이고 필수적인 것입니다. 남북의 “화해와 평화와 통일”은 물론 모든 민족과 세계와 우주의 “화해”와 “평화”와 통일”은 하나님의 뜻과 비전이고 성경의 목표이며 역사의 완성 점입니다.  
지금 우리 한국과 일본과 중국과 아시아와 세계에 가장 시급하게 요청되는 것은 화려한 예배나 정통 진리의 선포 이전에 서로 붙잡고 울면서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기적이고 정욕적이고 배타적이고 위선적인 우리 죄인들이 십자가 상에 나타난 “긍휼”과 “용서”와 “사랑”과 함께 “화해”와 “평화”와 “통일”의 흔적을 몸과 마음과 영혼에 지니고 나타내면서 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 그리고 십자가의 정신을 몸에 지니고 사신 성 프랜시스와 손양원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과 같은 신앙의 선배들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 우리들도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흔적과 함께 “화해”와 “평화”와 “통일”의 흔적을 몸과 마음과 영혼에 조금씩 아주 조금씩 지니고 나타내면서 살 수도 있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스데반 집사님처럼, 토마스 선교사님처럼, 주기철 목사님처럼, 손양원 목사님처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수 있는 “화해”와 “평화”와 “통일”의 제물들이 될 때 '죄악'과 '분노'와 '증오'와 '갈등'과 '분열'과 '무질서'와 '혼돈'이 가득한 이 땅에 “긍휼”과 “용서”와 “사랑”과 함께 “화해”와 “평화”와 “통일”의 역사를 조금씩, 아주 조금씩 이룰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고맙고 감사한, 보고 싶고 뵙고 싶은 방지일 목사님께!
“한국교회의 개혁과 갱신을 염원하며” 기독교연합신문

 
 
 
[최근칼럼]
[김명혁] “아버지 김관주...
[유관지] (0121) 신촌(新...
[남상순] 주는 자의 복
[이광우] 가장 큰 은혜
[박성일] 향기
[김학현] 사람을 찾습니다...
[김종춘] 일단 맞서면 자...
[안정기] 함께 하면 강합...
[오디오칼럼] [보이는 오디...
[영상칼럼] 2020년 신년메시...